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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가치를 되새긴 ‘알쓸신잡3’, 합당한 예의를 갖추다 

“웬만하면 절판된 책은 안 가지고 나오려고 했는데, 이런 책은 사라져서는 안된다.” tvN <알쓸신잡3> 마지막편에 출연자들이 추천 도서를 소개하는 시간에 김영하는 김은성 작가의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렇게 말했다. 40세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만화가가 뭘 그릴까 생각하다 그린 그 만화는, 함경북도 북청에서 피난 와서 이제 여든 살이 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하나하나 어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를 취재해 그린 그 만화책은 완성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니는 80대 10년을 당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시며 시간을 보내셨다’며 ‘지금은 내가 어머니보다 어머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김영하 작가는 이 만화의 멋진 점으로 “철저히 함경도 사투리로 재현했다”는 걸 꼽았다. 

총 4권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망라하고 있는 이 책에서 구술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화를 그린 딸은 “우리 엄마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았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말에 “100번을 시켜도 내가 똑같이 얘기해준다” 말했다 한다. 소설을 많이 읽어 웬만하면 읽다 우는 일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 “감정이 흔들린다”는 김영하는 그 이유로 “진짜 이야기가 있어서”라고 했다. 김영하는 “만약 한국의 퓰리처상이 있다면 수상할 만한 책”이라며 “우리 모두 하나의 역사고 현대사라는 걸 만화로 보여준 위대한 작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놀랍고도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이 절판된 책이라는 것이었다. 김영하는 세상에는 사라져선 안되는 책이 있다며 이 책은 꼭 다시 누군가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출판계가 가진 안타까운 상황을 잘 드러낸다. 좋은 책이 살아남기보다는 잘 팔리는 책이 살아남는 현실이 아닌가. 김영하가 굳이 절판된 책을 들고 온 데는 그 안타까움을 전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여겨졌다. 

마지막편에서는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책 한 권씩을 가져와 추천했다. 김상욱은 과학박사답게 나탈리 엔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를 소개하며 그 추천이유로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담고 있는 책이어서라고 했다. 유희열은 마스마 미리의 <밤하늘 아래>라는 만화책을 소개했다. 편안하게 읽으며 잠깐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유시민 작가는 나온 지 55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가져왔다. 최근에 본 플라스틱으로 배가 가득 채워진 고래를 보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책을 추천하게 됐다고 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세상을 바꾼 책이라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에세이로서 하나의 모델이 될 만큼 훌륭한 책이라는 사실이었다. 김진애 박사는 케빈 켈 리가 쓴 <통제불능>이란 책을 추천했다. 영화 <매트릭스>에 영향을 준 이 책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알쓸신잡>이 시즌1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 시즌3에서도 그 마무리를 책 소개로 한 뜻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교양을 예능으로 끌어안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 자칫 책보다 재밌는 영상을 통한 교양을 보여줌으로써 ‘책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어서다. 실제로 출판가를 들여다보면 방송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방송으로 유명해진 저자들이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를 장악하고 있는 게 출판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알쓸신잡3>만 두고 봐도 이 프로그램의 토대가 되는 건 무수히 많은 인문서적들이라는 걸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이야기됐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그렇고, 유시민 작가가 스스로 소크라테스빠(?)를 자청하며 언급한 이야기들을 담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란 책도 그러하며 독일에서 다시 끄집어낸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책도 그렇다. 

사실 너무 많아 하나하나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들이 이들의 지식 수다를 통해 소개되었다. 결국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은 이 많은 책들에 빚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마지막회에 추천도서를 통해 책의 가치를 되새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예의처럼 보인다. 특히 김영하가 절판된 책을 추천한 점은 ‘좋은 책’은 사라지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됐다고 생각된다. 팔리는 책만 살아남는 환경을 넘어서서.(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골목식당’ 포방터시장편이 특히 감동적이었던 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며 굳이 솔루션을 줘봐야 어머니만 더 힘들게 된다고 얘기되던 포방터 시장의 홍탁집 아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방송 전만 해도 부엌에 거의 들어가지 않아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가 이제는 손만 뻗으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척척 알 정도로 부엌이 익숙해졌다. 당구장 출입에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던 그는 이제 새벽같이 출근해 닭을 삶고 고기를 일일이 발라내 하루 장사를 준비하고, 밤늦게 퇴근했다. 몸이 피곤해 당구장에는 갈 여력도 없다고 했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가장 문제아로 지목됐던 홍탁집 아들의 극적인 변화는 물론 쉽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백종원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걸 몸에 느끼게 만든 백종원의 수고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계기가 된 건 방송이 가진 힘이었다. 이러한 사적인 영역의 노출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떠나, 결국 홍탁집 아들이 스스로 선택한 이 방식은 자신을 온 시청자들에게 드러냄으로써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는 홍탁집에 붙은 ‘알바 구함’이라는 문구 하나도 시청자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상황이 됐다. 물론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과 부쩍 늘어난 손님들 때문에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알바를 구하려 했던 것이지만, 이런 작은 문구 하나에도 보이는 반응들은 홍탁집 아들이 과거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가게 한쪽 벽을 빼곡하게 채운 찾은 손님들이 남긴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종원이 굳이 각서를 받아낸 것도 그 아들의 결심을 더욱 굳히기 위함이었다. 

흥미로운 건 포방터 시장에서 ‘돈가스 끝판왕’으로 등극한 돈가스집 사장님이 홍탁집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러 잘 하고 있는가를 살핀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 집은 물론이고 이번 편에 등장했던 다른 가게들도 두루두루 살피며 이른바 ‘포방터시장 반장님’이 되어 있었다. 홍탁집 아들은 손님이 부쩍 늘어난 것이 돈가스집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방송이 나가며 전국적인 인파가 몰릴 정도로 성황이 된 돈가스집 덕분에 찾아왔다가 순번에 밀려 못 먹고 돌아가는 분들이 다른 가게를 찾아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포방터 시장편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애초에 하려고 했던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려낸 방송이 되었다. 그 혜택은 방송에 나간 음식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 백종원에게 인사하는 시장 상인들은 방송 덕분에 동네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보리밥집도 도넛집도 매출이 훌쩍 늘었다는 것. 돈가스집이 만든 좋은 효과는 다른 집들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포방터 시장 상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번 포방터 시장편의 이야기가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래서 실제로 그 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만든 건 뭐였을까. 그건 ‘포기’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이번 편의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 덕분이었다. 홍탁집 아들처럼 모두가 포기했던 인물이 이제 희망을 갖게 되는 그 변화도 그렇고, 실력은 끝판왕이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포기하려 했던 그 순간에 백종원을 만나 희망에 불씨에 불을 지핀 돈가스집의 변화도 그랬다.

경기가 좋지 않아 생존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돕기보다는 누군가를 이기려 했던 현실 속에서 포방터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두가 홍탁집 아들을 걱정했고, 돈가스집 사장님의 진심에 공감했다. 그래서 함께 서로 도우려 했고 그래서 그 집이 잘 되게 되자 그 수혜는 고스란히 함께 도왔던 이웃들에게도 나눠졌다. 

중요한 건 이것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해피스타팅이라는 점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함께 도움을 주는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짐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아가고픈 곳으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 어쩌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취지는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작점을 찾아주는 것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 곳 상권 모두로 그 수혜가 이어져 함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더 팬’, 오디션 그 후, 새 스토리텔링 찾는 음악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장 뜨겁게 우리네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2009년부터였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포문을 열었고, 2010년 이 프로그램의 시즌2는 케이블 채널 역사상 첫 두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지상파들도 오디션 트렌드에 뛰어들었고 그 성공작으로 얘기되는 SBS <케이팝스타>가 2011년 방영되며 이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의 데뷔와 심사위원들의 심사로 이뤄지는 이 오디션 트렌드는 이내 꺼져버렸다. 2016년 <슈퍼스타K>는 결국 종영을 선언했고, <케이팝스타>도 2016년 말 ‘더 라스트 찬스’라는 제목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Mnet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오디션을 시도했지만 이 형식은 이미 지나간 트렌드가 되어갔다.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키워드들이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노력해 성장한다는 일이 점점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은 ‘소확행’ 같은 경쟁 바깥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기 시작했고, 수직 계열화된 시스템 바깥에서 순위가 아닌 저마다의 취향을 찾아갔다. 오디션의 사실상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는 이제 ‘지적질’로 받아들여지며 대중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시점에 <케이팝스타>를 만들었던 박성훈 PD가 새롭게 들고 온 <더 팬>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러한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먼저 제목에 담긴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심사가 없다. 유희열, 보아, 이상민, 김이나 등이 팬 마스터로 출연하긴 하지만, 이들은 심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음악을 듣고 팬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200명의 팬이 버튼을 눌러야 2라운드에 통과하는 첫 무대에서 MC들도 관객들과 똑같이 표 한 개를 행사한다. 

중요한 건 이 무대에 올라올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무대에 선다는 건 좋은 기회이자 특혜일 수 있다. 그만한 실력이나 매력이 분명해야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과 관객들이 납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추천하는 셀럽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타이거JK와 윤미래 부부가 나와 소개한 비비는 그 매력적인 보이스와 독특한 재즈적 감성으로 그가 왜 이 무대에 설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설득시켰고, 도끼와 수퍼비가 소개한 트웰브는 팝가수 같은 느낌의 알앤비로 ‘귀르가즘’을 자극했다. 

악동뮤지션 수현이 추천한 오왠 같은 감성 보컬이나 장혜진이 반해 소개한 카더가든 같은 실력파 보컬은 이미 아는 분들은 다 아는 가수지만, 아직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가수라는 점에서 <더 팬>이라는 무대가 가진 색깔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무대는 아마추어든 아니면 프로든 상관없이 팬을 확보하는 자리라는 것.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아마도 그래서 더더욱 마니아적일 수 있을 게다)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지는 않은 아티스트들을 더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그래서 <더 팬>은 경연 형식을 갖고는 있지만 그건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일 뿐, 숨겨진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경연 형식은 이들에게 주목시키고 그 음악적 색깔을 좀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일 뿐,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색깔의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발굴이라는 것. 

결국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맞는 가수들을 순위표 형태로 드러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더 팬>이 ‘팬심’이라는 말로 드러내는 취향의 경연이 공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무이한 한 사람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적 취향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알쓸신잡3’, 개화기 폐쇄정책이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건

“열어서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닫아걸고 성공한 나라는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기술발전과 교통수단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전과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의존해서 상부상조 분업해서 살아가는 범위는 계속 커지는 게 빅뱅처럼 진행되어 온 거죠. 가속팽창 하는 우주에서 혼자서 고립하겠다고 하면... 결국 조선은 열어서 실패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성공할 기회조차 잡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일제 식민지로 떨어져 버린 거죠. 안타깝죠.”

첫 눈 내리는 날 강화도로 간 tvN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은 개화기에 그 곳에서 벌어졌던 병인양요, 신미양요 같은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함대가 연달아 강화도를 침범했던 사건들. 김상욱 교수는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있었던 미군과의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군대 규모나 총기에 있어 절대적인 열세에 있던 조선 수비군 300여명이 전멸했고, 그 때 미군들이 질렸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저항하는 걸까’ 했다는 것. 이 광경은 우리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 참혹함을 목도한 바 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거예요. 그냥 지키고 산다 우리 것을. 그리고 당시 조선의 집권세력들이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것을 다 억누르는 식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도 그걸 따라간 거죠. 그 외에는 다른 가치관이 없으니까. 나라를 위해서 또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해서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이렇게 한 건데 거기서 병사들이나 군인들이나 백성들이 죽어나간 건 너무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지만 조선은 눈 가리고 있었던 거예요.” 유시민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우리가 사는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던 대로의 삶과 가치관만을 지키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일 수 있는가를 설파했다. 

유시민의 이 이야기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또 지켜지고 있는 안의 것들과 새롭게 들어오는 외부의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들여다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강화도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데 최적지가 아닐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꽤 많은 외부의 힘들이 들어와 내부에 영향을 미친 공간이 강화도이기 때문이다. 몽골 항쟁 때 39년 왕조가 들어와 지냈던 그 시기에 강화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 때부터 벌인 간척사업은 섬의 3분의 1을 육지로 만들었고, 10만이나 되는 인구가 유입되었다고 했다. 현재 인구가 6만8천 정도인 걸 생각해보면 그 변화의 진폭을 실감할 수 있다. 왕조가 들어오면서 거기 살던 백성들의 피곤함을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농사는 농사대로 지어야 돼, 간척해야 돼, 산성 쌓아야 돼, 돈대 만들어야 돼. 죽어났을 것 같아요. 여기 양민들이.” 

강화도는 왕가의 유배지로 주로 활용되기도 했고, 교동도 같은 경우에는 6.25 전쟁 이후 38선이 나뉘며 북측에서 들어왔다 가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사는 곳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개화기에는 프랑스, 미국이 ‘이상하게 생긴 배’를 끌고 들어와 처참한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했고 이어 일본도 들어와 그 유명한 ‘강화 불평등 조약’이 맺어졌던 곳이기도 했다.

외부의 힘들에 의해 독특한 삶의 방식들이 만들어진 곳. 결국 유시민이 말하듯 이 강화도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건 그 이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우리 것을 지켜나가는가 하는 점일 게다. 폐쇄정책으로 일관하며 무조건 배척하는 건 고립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가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성공회 성당이나 온수리 성당이 보여주듯 외국의 문물이 우리의 전통과 접목되어 독특한 문화로 피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바실리카 구조의 예배당을 만들기 위해 겉모습은 그대로 한옥으로 만들었지만 들어가는 입구를 측면으로 바꿔놓은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독특한 두 문화의 접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구 고택으로 알려진 대명헌에서 김영하가 발견한 마루가 헤링본의 형태로 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또 이런 새로움과 전통의 조화는 신구의 조화로도 피어날 수 있었다. 강화에서 발견한 폐 공장을 카페로 만든 이른바 ‘뉴트로 카페(뉴+레트로)’가 그 사례였다. 한 때는 방적공장이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그 곳을 다시 카페로 만들어 독특한 기억과 시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 

결국 문화란 소통하고 영향을 주면서 또 다른 새로움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걸 이번 <알쓸신잡3>가 간 강화도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현재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개화기에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국가와 민족과 언어와 인종의 모든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그 외부의 것들을 끌어안아 우리 것과 조화를 시킬 것이며, 또 과거의 것을 현재와 접목시키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엮어낼 것인가. 그저 닫아놓고 관성대로 지킬 것이 아니라, 열어두고 소통함으로써 생겨날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골목식당’, 한 사람이 바뀌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들

애초에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결과지만 홍탁집 아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백종원으로부터 닭곰탕 레시피를 받아 어머니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닭곰탕을 내놓았다. 뭉클했던 장면은 그렇게 만든 닭곰탕의 첫 번째로 어머니가 시식하는 대목이었다. 이가 좋지 않으신 어머니는 아들의 닭곰탕 국물을 연거푸 수저로 떠먹으며 “맛있다”고 말하셨다. 그건 아마도 미각으로만 전해지는 맛이 아니라, 아들이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해낸 사실이 주는 ‘살 맛’나는 느낌이 더해진 표현이지 않았을까.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포방터 시장편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이 해왔던 이야기를 뒤집었다. 그 한 가지는 돈가스집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음식으로서나 서빙으로서나 ‘끝판왕’이었던 그 집은 한때의 사업 실패가 준 트라우마 때문에 줄이지 못했던 메뉴를 간편하게 줄이는 것으로 감동적인 성공의 서사를 보여줬다. 영업 시작 전부터 줄지어 늘어선 손님들은 한참을 기다려 음식을 먹고도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는 이들도 흡족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홍탁집 이야기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사장은 아들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어머니가 가게를 전부 맡아서 하고 있는 그 집은 아들이 바뀌지 않으면 솔루션이 전혀 소용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사람이 쉽게 변하는가 하는 점이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송 프로그램이 사람을 바꾸는 일까지 나서는 게 과연 합당한가 하는 점이었다. 시청자들 중에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며 이런 출연자에 공력을 뺄 게 아니라, 노력을 하고 있지만 노하우가 부족해 잘 되지 않는 집을 차라리 대상으로 하는 게 낫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번 포방터 시장편에서 이 돈가스집과 홍탁집은 이 프로그램에 가장 최적화된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의 양극단을 보여준 면이 있었다.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었고, 오랜 세월의 노력까지 더해졌지만 사업 노하우가 부족해 힘들게 버텨왔던 돈가스집은 이 프로그램과 백종원의 도움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마인드 자체가 준비되지 않았던 홍탁집 아들은 굳이 도와줘야 할까 하는 의구심까지 만드는 집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이 홍탁집 아들을 통해 보여준 건 결국 장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사업 솔루션과 음식 노하우를 갖고 있어도 그걸 활용하는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그래서 심지어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을 바꾼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이 프로그램은 수행한 면이 있었다. 방송이 그런 일까지 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방송이었기 때문에 불가능을 어느 정도는 넘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백종원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면 안된다’며 시청자들이 다 보고 기억하고 있다는 걸 새삼 상기시키기도 했다. 

물론 사람 일이란 알 수 없어 앞으로도 계속 잘 운영해 나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이 홍탁집 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백종원도 말한 것처럼 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음식점들 중에서도 당시에 잘 됐지만 초심을 잃어버려 잘 안 되는 집도 있다. 방송도 백종원도 어느 정도까지는 도와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책임질 수가 없는 노릇이다. 

또 한 가지 홍탁집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사실은 한 사람이 바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과 계기와 기회들이 주어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주변 상인들을 모시고 자신이 만든 닭곰탕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그 분들은 저마다 이 홍탁집 아들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또 앞으로 자신들이 감시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만일 홍탁집 아들이 앞으로도 홀로 이 음식점을 잘 운영하게 된다면 이분들의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백종원 대표의 남다른 마음과 노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유시민 모습 통해 본 '알쓸3'의 진가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심훈이 쓴 시 ‘그 날이 오면’을 읽던 유시민은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고통을 절절히 담아낸 그 시의 표현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방이 되는 날을 상상하면서 쓴 그 시는 우리가 심훈 하면 먼저 떠올리는 소설 <상록수>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tvN <알쓸신잡3>가 찾아간 서산, 당진에서 유시민은 심훈문학관을 찾았다. 유시민이 안타까워한 건 심훈의 <상록수>에 대해서 ‘순진한, 지식인류의 계몽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소설로 많이 읽혀졌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심훈의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면 어째서 <상록수>를 그렇게 ‘야들야들한’ 연애소설의 틀로 썼는가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1901년에 태어나 지주집안의 도련님이었던 심훈은 “그냥 낭만적인 글이나 끄적이면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1919년에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잡혀가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다. 8개월만에 집행유예로 나왔지만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심훈은 중국으로 건너가 이시형, 이회영, 신채호 같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고 공부하고 돌아와 시인, 소설가, 영화배우,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신문기자, 아나운서, 독립운동가, 비평가로 맹렬히 활동한다. 

하지만 그토록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일제의 사상 검열에 원고 삭제 연재 중단은 계속 이어진다. 실제로 문학관에 남아있는 심훈의 원고에는 빨간 줄이 빼곡하게 그어져 있고 삭제라는 문구들이 찍혀 있었다. 즉 유시민은 심훈이 <상록수> 같은 연애소설의 달달한 방식의 포장이 아니면 민족의식을 담아내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것이다. 즉 그 방식이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의도였을 거라는 것이다.

유시민이 심훈이라는 인물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그가 쓴 <상록수>라는 작품을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과정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를 잘 드러낸다. 만일 엄격한 교양의 형식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이런 식의 ‘해석들’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데 어떤 한계가 드리워졌을 게다. 하지만 예능이고, 여행하며 수다를 풀어놓는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알쓸신잡>에는 더 많은 자유로운 상상들이 더해진다. 

해미읍성을 다녀와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잔혹하게 이어졌던 박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는 다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다로 이어진다. 그 많은 종교에 대한 박해와 차별을 보고 있으면 ‘종교가 인간성을 북돋운다’는 말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유시민은 말한다. 여기에 대해 과학자이자 무신론자라는 김상욱 교수는 종교의 의미를 다른 차원에서 생각한다고 말한다. “종교는 인간이 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합의를 갖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 그는 인간이 돼지를 마음껏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종교가 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문명의 기반에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들에 종교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종교 이야기에서 이어진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의 나무의 구부러진 형태 그대로 기둥을 세워 만든 범종각을 보며 유시민은 그 자연의 선이 주는 ‘안온함’을 이야기하고, 김영하는 소설가답게 개심사는 이름답게 모든 게 자유롭다며 비뚤어진 기둥도 “괜찮아”라고 말했을 것 같다는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준다. 종교 이야기에 개심사의 불교 이야기로 넘어간 수다는 <매트릭스>가 담은 다종교적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그 이야기는 다시 SF가 가진 ‘지구제국’이 형성될 거라는 예감으로까지 나아간다. 

김종필이 만들었다는 한우목장에서 관리되는 수소의 이야기에서 다시 SF적 상상력이 더해져 ‘관리되는 인간세계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유전자 관리를 통해 지금 좋다고 선택된 어떤 유전자가 다양성을 잃어버리면 간단한 박테리아 하나로 멸종까지도 될 수 있다는 김상욱의 과학적 상상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인위적 선택이 가진 근시안적 성격은 기묘하게도 대부분의 만이 간척되어 농경지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갯벌이 더 산업적 가치를 갖게 되고 나아가 환경문제가 심각해져 역간척이 논의되고 있다는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주어진 자연적인 조건들이 있고 그 조건 위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좋게도 나쁘게도 만들어진다.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의 결과들을 읽어내며 해석함으로써 다음의 선택을 좀 더 좋게 하려는 노력이다. <알쓸신잡>이 어느 특정 지역의 현장으로 가서 그 곳에 만들어진 누군가의 선택들을 들여다보며 수다로 주석을 다는 행위는 그래서 ‘신비로우면서도’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심훈의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던 치열하게 선택했던 삶을 통해 <상록수>를 다시 보게 되고, 해미읍성의 종교 박해를 통해 종교의 잔인함과 동시에 우리 문명에 깃든 선택을 읽어내며, 개심사의 구부러진 나무기둥을 선택한 ‘열린 마음’이 지금껏 찾는 이들에게 안온함을 주고 있다는 걸 새삼 발견한다. 한우목장의 관리되는 소와 한 때 간척을 선택했던 곳에서 논의되고 있는 역간척 사업을 들여다보며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알쓸신잡>이 가진 예능적인 열린 틀과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상상의 틈입들은 그래서 잡다한 수다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선택했던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신비로운 가치’로 다가온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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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밝은 화사 뒤에는 진짜 어른 아빠가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나 함께 산다’를 본 듯한 느낌이다. MBC <나 혼자 산다>가 보여준 전북 남원의 안씨 집성촌을 찾아간 화사(본명 안혜진)와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 아빠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훈훈한 풍경을 보여줘서다. 

특히 화사와 아빠는 남다른 부녀지간의 정이 느껴졌다. 살갑게 손을 잡는 건 물론이고, 차안에서 출출하다는 화사에게 떡을 가져왔으니 꿀 찍어먹으라는 아빠에게 “이벤트남이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친근했다. 아빠 역시 “너 온다고 하니까 아빠가 설렜다”고 말해 남다른 딸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찾아간 집성촌의 입구에서부터 화사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과, 그렇게 찾아간 할머니집에서 반갑게 그를 챙겨주는 할머니와 고모, 당숙 어르신들에게서도 똑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특히 할머니에게 살가운 화사는 몸이 힘들다고 하자 애교에 뽀뽀로 할머니를 기운 나게 만들었다.

떡 벌어지게 차려진 한 상은 마치 잔칫집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할머니, 아빠 그리고 친척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밥상의 반찬들은 아버지가 직접 텃밭에서 키운 식재료들을 일 나가는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다 준비해놓은 것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화사는 엄마의 마음을 느끼며 뭉클해졌다. 딸이 좋아한다며 직접 불을 화로에 피워 구워낸 장어구이에 담긴 아빠의 마음 또한 따뜻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함께 경운기를 타고 밭으로 가는 길과, 그 곳에서 함께 일을 마무리하고 들어오는 길. 아빠와 딸에게서는 각별한 정이 묻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스르륵 잠이 들었다가, 출출하다는 화사에게 굳이 다시 장어를 구워다 내주는 아빠. 이런 집에서의 하루는 도시에서의 그 힘든 나날들을 이겨내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연습생 시절에 옥탑방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물을 비추는 아빠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고 싶었던 그 마음이 느껴졌다. “여력이 없어 전세를 못 얻어줬다”는 것. 하지만 스물 네 살의 어린 나이에 성공해 자신들의 빚을 전부 갚아줬다고 말하는 아빠에게서는 딸에 대한 대견함이 묻어났다. 

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화사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데는 아빠처럼 자상하고 인자한 따뜻한 가족이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초저녁에 잠 들어서 새벽에 딸 전화를 기다리게 된다”는 아빠. 특히 아빠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가 화사에게 하는 말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너는 운이 좋았잖아. 일찍 성공하고. 좋은 선배가 돼서 너처럼 힘들었던 후배들을 보면 잘 해줘라.” 화사에게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따뜻한 아빠지만, 동시에 다른 힘든 이들도 챙기려는 아빠. 진짜 어른의 마음이 느껴졌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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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3' 과학자 선입견 깬 김상욱, 로맨티스트가 따로 없다

“우주는 원래 심심해요. 어떤 뜻에서는 우주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거나 무엇이 거기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좀 인간의 편견이지. 그냥 계속 돌뿐이고 끊임없이 부딪치고 떨어지고 이런 것에 불과하니까 반복되는 심심함 밖에 없어요.” 유희열이 혼자 바다에서 너무 심심했다는 이야기에 김상욱 교수가 ‘심오한 이야기’라며 그렇게 말하자, 유시민은 농담을 섞어 “김상욱 샘이 결혼을 어떻게 하셨을까” 신기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상욱은 그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우주에 있는 하나의 작은 물질의 집합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말씀하신대로 작은 호모 사피엔스 하나. 저도 제가 가진 어떤 감정, 본능에서 벗어날 수 없죠. 당연히 제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을 때 아무 의미 없는 이 우주에서 거대한 의미가 생겼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서 단세포생물로부터 지금까지 진화해 왔어. 너를 만나기 위해서 공룡이 다 멸종했어.”

<알쓸신잡3>가 부산의 어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진행된 지식수다의 향연 속에서 김상욱 교수가 한 말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던 과학자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었다. 어딘가 예술이나 감성과는 거리가 있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세계라고만 여기던 그 분야가 어쩌면 그래서 더 예술과 감성과 어울릴 수 있다는 걸 김상욱 교수는 연애를 통해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심하고 ‘무의미한’ 것이 우주가 본질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이 ‘의미’라는 역설.

흥미로운 건 김상욱 교수를 포함해 10명의 과학자가 모여 만들었다는 ‘엔트로피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남녀의 만남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 곡에서 천체물리학자는 ‘아주 오랜 옛날 빅뱅 초신성 폭발’로 빛났던 너로 표현했고, 천문학자는 ‘138억 년 지나’ 지구라는 작은 곳에서 우리가 이제 만났다고 표현했다. ‘이 넓은 우주 속에 우리 함께 있어 (가속팽창 하더라도) 서로 멀어지지 않아’ 같은 가사는 이들 과학자들이 그 과학적 세계 속에서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김상욱 교수는 이 곡에서 “세상 모든 것이 그저 정보라 해도 이 세상 모든 것이 있고 동시에 없고”라고 노래한다. 각자 자신들이 연구하는 과학영역을 통해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을숙도에 위치한 부산현대미술관을 다녀온 김상욱 교수는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관점을 미술이 저한테는 준다”고 말했다.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과학과 미술이 그렇게 만나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건 부산현대미술관 외벽을 가득 덮은 식물은 패트릭 블랑의 ‘수직정원’이라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건물 외벽에 계속 식물이 자랄 수 있게 장치되어 있는 그 작품을 설명하며 김상욱 교수는 현대미술은 “아이디어만큼이나 이를 구현할 과학적 기술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 곳에서 김상욱 교수는 두 개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봤다며 소개해줬다. 하나는 신문지를 쌓아 거대한 벽을 만들고 그 저편으로 신문 찢는 소리가 들려오게 한, 장 페이리의 ‘임시 개방된 명승지’라는 작품이었다. 김상욱 교수는 “예술에 정답은 없지만” 그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언론이 장벽을 만든다”는 것이라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 이 작품을 통해 “소통에 대한 욕구”를 담으려 했다고 한다.

김상욱 교수가 인상적으로 본 또 하나의 작품은 스마다 드레이푸스의 ‘어머니의 날’이라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니 완전히 깜깜해진 공간에 들어가게 됐는데, 두려움 속에서 나가야된다 생각할 때 확성기로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와서 그 작품설명을 보니 그 소리를 낸 정체가 어머니와 아들이었다고 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분쟁지역인 골란고원에서 어머니의 날이 되면 이른바 ‘외침의 언덕’이 만들어지는데, 서로 다른 영토로 분리되어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자식이 그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 바로 그 소리라고 했다. 

“저는 타라 엘 무스타파예요. 어머니 축복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보고 싶어요. 어머니가 너무나도 그리워요.” “타라야, 좋은 아침이구나. 거기 모두들, 좋은 아침이에요!” “어머니,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요.” “오래 오래 살아 나를 묻어야지. 야 움미 매해 좋은 일만 있기를.. 내 생명. 우리 건강하게 볼 수 있기를.” 어머니와 자식이 나누는 그 대화였다는 걸 알고 나서 김상욱 교수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게 너무 좋아요. 이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게. 과학이 할 수 없는, 어떤 예술의 창조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분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김상욱 교수는 예술의 새삼스런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무의미해 보이는 세계, 심지어 누군가 선을 그어 냉혹하게 갈라놓아 버린 곳에서조차 서로에게 외침으로 들려주는 존재의 의미들. 어쩌면 심심한 세계이기에 더더욱 소중해지는 사람들... 김상욱 교수의 과학이 따뜻한 온기로 느껴지는 이유였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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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이 찾아가야할 바로 그 집, 포방터 시장 돈가스집

“망하면 내가 손해배상 한다고. 진짜로. 자신감을 가져요. 자신감을.” 백종원의 이 한 마디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해졌을까.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홍은동 포방터 시장 돈가스집에서 백종원은 메뉴를 줄이는 것에 대해 불안을 호소하는 돈가스집 남편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무려 21개의 메뉴를 갖고 있는 돈가스집은 그렇게 메뉴가 많아 가게 일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직접 요리를 하는 남편이야 고생을 자처한다고 해도, 홀 서빙을 맡고 있는 아내는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지난 주 조보아가 홀 서빙 서비스를 보여주겠다며 직접 돈가스집에 가서 체험을 해본 결과, 그 일의 과중함을 오히려 깨닫지 않았던가. 

남편이 ‘돈가스의 끝판왕’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 집은 아내 역시 알고 보니 ‘홀 서빙의 끝판왕’이었다. 요리마다 다 다른 소스들을 찾아온 손님에 딱 맞게 준비해 내놓고. 심지어 손님들이 어디서 오신 분인지 무얼 좋아하는 지까지 척척 알아 맞췄다. 백종원은 자신도 저런 홀 서빙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메뉴가 21개까지 된 데는 돈가스집 남편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게를 쫄딱 망했던 경험은 메뉴가 빠지면 손님도 빠질 것 같은 불안감을 만들었고, 그래서 한두 손님을 챙기기 위해 여러 메뉴를 유지하다보니 가장 잘 나가는 치즈카츠는 하루 8인분밖에 준비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메뉴를 줄이는 건 장사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선택이었지만, 남편은 그러기 위해서는 그 망한 경험이 남긴 트라우마를 이겨내야 했다. 

백종원의 설득법은 실로 신묘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이 묻어난 설득법이었다. 당사자의 힘겨움을 이야기해봐야 그건 본인이 감수할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 백종원은 아내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남편이 다른 건 몰라도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종원은 남편의 메뉴 고집이 아내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가를 통해 설득을 이어갔다. 그러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백종원은 “날 믿으라”며 “망하면 손해배상”까지 하겠다는 파격제안을 했다.

그 말에 결국 남편도 고집을 꺾었다. 백종원이 간 후, 아내는 그 설득력에 놀라워했다. “대표님 갑이시다 설득력이... 1년을 넘게 설득해도 안 되던 걸 한 시간도 안돼서..”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모르게 예예가 나오고.” 그리고 아내는 차분히 지금 자신들에게 온 큰 행운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골똘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말해주길 바라는 순간이 있잖아. 그래서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조언을 듣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한테는 그런 사람이 없었어. 아주 중요한 순간에 이 프로그램이 온 거야 우리한테.”

이 말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가진 가장 중요한 취지를 담고 있었다. 백종원도 이전에 했던 이야기지만, 요식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걸 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치기 마련이다. 백종원은 이 프로그램이 그렇게 조금만 도와주면 더 잘될 수 있는 가게들을 위한 것이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취지에 비춰보면 홍은동 포방터 시장의 돈가스집은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가장 잘 맞는 집이 아닐까 싶다. 무려 17년 간이나 망하기도 하고 남의 집에서 힘겹게 일을 하기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지금껏 버텨온 이 집은 이제 잘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게다. 백종원을 비롯해 많은 시청자들이 이 가게의 성공을 지지하는 건 그들이 그간 해온 남모를 노력들이 진심으로 다가와서다. 

망하면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백종원의 ‘파격제안’은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이 집은 제대로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지어 TV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조차 이 집이 잘 되기를 바라는 상황 아닌가. 절대로 망할 수가 없다. 망해서도 안 되고.(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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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3’, 유시민이 김성환·장기려의 삶에서 감명 받은 까닭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관저나 집무실, 응접실 이런 데 보다 나는 밖에서 본 김성환 화백의 그림이 훨씬 더 강렬한...” 부산을 찾아간 tvN 예능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은 우리가 고바우 영감을 그린 화백으로 알고 있는 김성환 화백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알고 보니 김성환 화백은 19살 때 전쟁을 목격했던 걸 그림으로 남겼고, 당시 종군화가로도 활동했던 분이었다. 그가 남긴 그림에는 포연이 올라오는 전장과 공중폭격을 하는 비행기 같은 당대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었다. 유시민은 그 중에서도 낙산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청량리 쪽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라며 “공포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유희열은 김성환 화백이 “대단한 화가였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알쓸신잡3>가 들여다 본 부산은 우리가 흔히 여름 인파들이 몰리는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 회를 먹기 위해 가던 자갈치 시장이 아니었다. <알쓸신잡3>는 부산이 6.25 한국전쟁이 만든 도시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으로 피란민들이 들어오면서 전쟁이 끝난 후까지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던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우리가 영화 등에서 자주 봐왔던 40계단은 당시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이 갈 곳 없어 엉덩이라도 붙이고 앉았던 곳이었고, 그래서 피난 중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이들이 애타게 서로를 찾던 곳이었다. 

부산은 그 많은 상처 입고 갈 데 없는 피란민들을 그나마 살 수 있게 넉넉히 안아주던 곳이었다. 당장 몸 누일 곳이 급했던 시절, 심지어 아미동 일본식 묘지에는 천막치기 쉬워 피란민들의 새로운 거처가 되었다. 지금도 아미동 비석마을이라 불리는 그 곳에는 여전히 그 때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의 묘지였던 곳은 그 위에 집이 지어진 채 지금도 남아 있었고, 비석들은 축대 등에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연탄 아궁이에서 뼈가 나와 산에 묻어주고 제를 지내기도 했다는 아미동 사람들은 그래서 그 이름 모를 일본인들을 위한 술 한 잔을 올리곤 했다고 한다. 김진애 교수는 “죽음과 시간의 켜 위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키워갔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며 “인간이 설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유시민이 김성환 화백의 그림이 대통령 관저보다 더 강렬하다고 얘기한 것이나, 김진애 교수가 아미동 비석마을을 보며 어떤 유명한 도시설계가가 한 것보다 더 놀라운 삶의 터전이 가능했던 게 민초들의 ‘생명력’이라고 말한 부분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사실 훗날 밝혀진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오들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북한군이 내려오기도 전에 먼저 피난을 가면서 아무 문제없으니 그냥 그 곳을 지키라 녹음 방송을 내보내고, 심지어 한강다리를 무너뜨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던 일들... 하지만 그 난리통에도 위대한 민초들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바로 김성환 화백의 그림이고, 아미동 일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흔적들이었다. 

김진애 교수는 그 전시관에서 봤던 당시 교사로 재직했던 신경복 선생의 일기를 이야기했다. “그 안에도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살았느냐는 판잣집부터 이런 거 많이 보여주잖아요. 그 중에서도 감동적인 것 하나가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십 년 동안 그 모든 기록을 다 쓰신 거예요. 부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안네프랑크 일기 쓰듯이 그렇게 하신 분들이 있구나 생각을 하니까 너무 고맙더라고요.” 신경복 선생의 ‘학원일기’에는 전쟁 통에 벌어졌던 일들이 매일매일의 기록으로 빼곡하게 담겨져 있었다.

유시민이 부산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 이야기도 꺼냈다. 북한에서 살다 월남해 부산에서 한 평생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그를 유시민은 “따라 하기만 해도 좋을 분”이라고 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분처럼 성자에 가까운 삶을 사신 분이 없다”는 유시민은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처방전으로 내렸던 장기려 박사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너무 못 먹어 생긴 병이라며 환자에게 닭을 사먹으라 돈을 주는 처방전을 내렸다는 것.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대납하기도 했고, 딱한 환자들이 밤에 도망갈 수 있도록 병원 뒷문을 열어주기도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평생 병원이 없는 무의촌을 다니며 진료봉사를 했고, 처음으로 민간 의료보험조합을 만들기도 했던 분이 바로 장기려 박사였다. 훗날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도 먼저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장기려 박사는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이 그렇게 하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이유였다. 평생을 그렇게 봉사하며 살았던 장기려 박사가 머물던 곳은 작은 옥탑방이었다. 유시민은 장기려 박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흉내만 내도 좋을 분”이라며 극찬을 덧붙였다.

<알쓸신잡3>가 부산에서 발견한 건 6.25 한국전쟁이 남긴 흔적들이었지만, 그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온기를 유지하게 한 이들은 ‘위대한 민초들’이었다. 전장을 따라다니며 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남긴 김성환 화백이나, 매일매일 일기로 당시의 기록을 남긴 신경복 선생, 평생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신 장기려 박사나 저 아미동 일대에서 저마다 살아가기 위해 죽음의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던 이름 모를 동네 사람들. 위대한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걸 <알쓸신잡3>는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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