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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국, '미나리'는 잔잔해서 더 큰 위로를 줬다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개점폐업 상태였던 주말 극장가가 활기를 띠고 있다.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봄철이고 코로나19의 백신접종이 시작된 것도 그 원인일 수 있지만, 영화 <미나리>의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 주말에만 이 영화를 보기 위해 20만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물론 여기에는 해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다 앞으로 오스카 수상 역시 유력시된다는 <미나리>에 쏟아진 해외의 찬사가 일조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을 차치하고라도 <미나리>는 그 작품 자체가 이 어려운 시국에 주는 큰 위로로 입소문이 퍼져가고 있다.

 

먼저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미나리>의 서사가 굉장히 극적이라고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미국 아칸소의 외딴 곳으로 이주한 제이콥(스티븐 연)과 아내 모니카(한예리) 그리고 의젓한 큰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이 농장을 꿈꾸며 정착해가는 과정이 담겼다.

 

그래서 도시의 복잡한 풍경 자체는 등장하지도 않고, 미국 조용한 시골 마을이 영화 내내 채워지고 그 곳에서 농장을 시작하며 쉽지 않은 그 과정들을 이 영화는 잔잔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담아나간다. 물론 그 담담함을 지루하지 않게 채워주는 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는 인물들과 그들을 통해 미소 짓게 만드는 따뜻한 유머들이다.

 

맞벌이를 하는 이 부부를 위해 아이들을 챙겨주러 이 낯선 땅 미국으로 오게 된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는 사실상 이 영화의 제목이자 메시지를 은유하는 '미나리' 같은 존재다. 할머니지만 전혀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의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들은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도 삶의 지혜가 느껴지고 때론 가족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우리네 엄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엿보게도 만든다.

 

이 잔잔하고 소박한 영화가 어째서 미국에서조차 그토록 호평과 찬사를 받았는가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잔잔함과 소박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감염병 하나도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글로벌 사회의 거창한 역설 속에서, 마치 미국 내 한인(을 포함한 이민자들 모두)들처럼 거대한 용광로 속에 들어가 적응해 살아가는 작디작은 로컬문화가 주는 매력과 힘이 <미나리>에는 넘쳐난다.

 

미국 같은 거대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살아갈 수 있는가의 저 토양을 내려다보면 그렇게 어디선가 낯선 땅으로 넘어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타인 또한 이롭게 하며 살아온 이민자들이 보인다.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줘." <미나리> 속 순자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이들 이민자들은 미나리 같은 존재들이었다.

 

물론 <미나리>에는 미국 사는 딸을 위해 고춧가루며 참기름이며 멸치까지 바리바리 싸갖고 오면서, 동시에 화투를 챙겨와 손주와 같이 치는 그 정이 많으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지극히 한국적인 엄마 순자가 등장한다. 그의 유쾌함과 강인함과 따뜻함은 실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당연하고 미국인들조차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가 됐을 게다.

 

또한 <미나리>는 굳이 낯선 땅에 서게 된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낯설어 고된 환경을 맞이하게 된 이들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그래서 코로나 시국으로 1년 넘게 이 낯선 환경을 버텨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이만한 위로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낼 것이고, 우리만이 아닌 주변까지도 살려낼 것이라는 걸, 저 어디서나 잘 자라고 누구나 건강하게 해준다(돈을 벌게 해준다는 그런 게 아니라)는 물가에 피어난 푸릇푸릇한 풀이 말해주고 있으니.(사진:영화 '미나리')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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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극장가 대목? 아 옛날이여!

 

보통 설이면 극장가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대목에 맞춰진 영화들도 속속 개봉했었고 극장가는 연회 매진을 기록하며 발 디딜 틈 없는 인파가 몰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작년 한 해 내내 극장가가 한산했고 명절이라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새로운 풍경은 명절에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승리호>는 딱 봐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어울리는 영화다. 실제로 작년 여름을 겨냥해 만들어진 작품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추석 개봉으로 미뤄졌고 이마저 어려워지면서 결국 넷플릭스행을 결정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승리호>에 대한 반응은 그래서 호불호가 갈린다. 애초 영화관 영화로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작품인지라, 블록버스터 특유의 비주얼적 완성도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스토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통한 안방극장 시청은 아무래도 이러한 비주얼적인 자극보다는 스토리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다.

 

'신파'적 요소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지만, 사실 우리네 여름이나 명절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이른바 '되는 작품'은 신파 같은 다소 쉬운 가족용 스토리에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법한 확실한 볼거리나 웃음, 액션 같은 요소들이 들어간 작품들인 게 사실이다. 그러니 <승리호>에 대한 호불호는 물론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데도 원인이 있지만, 플랫폼이 바뀐 영향도 적지 않다 여겨진다.

 

어쨌든 올해 설 명절 영화로 떠오르는 건 극장가에 세워진 작품이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승리호>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설 명절 영화의 색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는 건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이다. 설 명절에 아이와 함께 부모가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늘 선전할 수밖에 없는 장르였지만, <소울>은 특히 어른들도 감동받을 만큼 깊이 있는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코로나 시국에도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20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이 120만 명을 넘어섰다.

 

설 명절에 맞춰 개봉한 우리네 작품으로는 옴니버스 로맨틱 코미디 <새해전야>가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데, 누적 관객 수 7만 명대(12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소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렇게 현저히 적은 관객 수는 코로나가 바꾼 극장가의 상황을 실감하게 해준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극장가 대목을 겨냥한 작품 자체가 세워지지 않는 형국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나면 극장가 풍경은 달라질 것이고 또 극장에 어울리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다시 기지개를 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이 '경험의 관성'은 향후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승리호>를 통해 느낄 수 있듯이 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한 영화 관람이 그리 낯선 풍경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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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억짜리 비주얼 갑 '승리호', 넷플릭스와의 어색한 만남

 

한국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 아마도 조성희 감독의 영화 <승리호>에 대한 가장 큰 기대감은 바로 이 지칭 안에 들어 있을 게다.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서사들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할리우드의 이야기로만 여겨온 우리네 관객들에게 <승리호>는 그 제목이 먼저 소개됐을 때부터 어딘가 이질감을 줬던 게 사실이다. 일본 만화를 번역해 방영했던 추억의 만화 <이겨라 승리호>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는 그러나 생각보다 괜찮은 비주얼 블록버스터의 색깔을 보여줬다. 시작부터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가 다국적 경쟁 청소선들과 우주쓰레기를 놓고 벌이는 추격전은 시선을 잡아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우주선들의 이미지들이나, 빈티지한 무게감까지 더해진 미술로 구현된 승리호 내부의 이미지는 할리우드의 비주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구현되었다. 

 

승리호의 주역들인 4인방 캐릭터도 저마다의 색깔이 뚜렷하게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다. 아웃사이더이면서 아이를 찾기 위해 돈 되는 일이면 뭐든 다 하는 조종사 태호(송중기), 거대한 레이저총을 난사하는 걸 크러시 캐릭터 장선장(김태리), 조직 두목으로 살벌한 문신을 하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그리고 유해진의 목소리가 입혀진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는 애초 이 작품이 IP의 확장으로 계획하고 있는 캐릭터 비즈니스가 충분하게 느껴지는 매력들을 보여준다. 

 

게다가 2092년 사막화된 지구의 디스토피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각종 위성들 속 도시 풍경들도 흥미롭다. 나라나 언어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질 정도로 다국적화된 그 도시들 속에서 어딘지 비정한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들은, 지구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하는 UTS의 리더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이 꿈꾸는 화성의 자연이 살아있는 풍광과 대비를 이룬다. 

 

영화 <승리호>가 공개된 후 여러 언론들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아쉬움은 역시 스토리다. 이렇게 비주얼적으로 잘 구현된 세계와 상반되게 이야기는 너무 평이한 클리셰에 머물고 있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파적인 이야기가 공들인 세계를 다소 허무하게 만들었다 여겨질 수도 있다. 스토리는 확실히 아쉽다. 도로시라는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은 부성애 코드가 강조되면서 너무 뻔한 스토리로 이어진다. 

 

또한 <승리호>라는 한국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라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우리식의 어떤 해석이나 색깔이 이야기나 연출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한 '국뽕'이 아니라, 글로벌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해도 우리네 '로컬'의 색깔 같은 차별성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킹덤>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좀비 장르라는 보편성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조선'이라는 차별성을 내세워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소 신파적인 스토리가 그 로컬의 색깔처럼 드리워진 건 <승리호>에 가장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스토리의 아쉬움은 이 작품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결정한 넷플릭스를 통한 상영이 과연 괜찮은 선택이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만일 블록버스터로서의 우주 액션과 비주얼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형스크린을 통해 봤다면 그 느낌이 사뭇 달랐을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블록버스터로서의 시각적 쾌감이 그 부족함을 채워줬을 테니 말이다. 

 

다만 제작비 240억원이 투입된 <승리호>가 우리네 영화에서는 미지의 세계처럼 여겨졌던 우주를 소재로 끌어와 적어도 이물감 없이 구현해냈다는 점이 분명한 성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이 내딛은 첫 걸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갖게 된 노하우가 향후 또 다른 우주 SF에서는 채워지길 기대한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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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우리의 삶은 추락인가 비행인가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디즈니 픽사는 어떻게 삶과 죽음 같은 철학적인 주제마저 이토록 경쾌하고 명징한 상상으로 그려내는 걸까. <소울>은 한 마디로 인생 전체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지만, 그걸 표현해내는데 있어서는 아이들도 즐길 만큼 쉽게 담아낸 놀라운 작품이다. 그건 마치 구상에서 점점 깊어져 선의 단순한 연결로 오히려 실체에 접근한 피카소의 추상을 보는 듯하다. 스토리도 그렇지만, 그림이나 연출에서조차도 우리네 삶이 가진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추락과 비행의 아름다운 이중주가 묻어나는 작품이라니.

 

뉴욕에서 음악선생님으로 일하지만 평생의 목표가 재즈클럽에서 최고의 밴드와 함께 연주하는 것인 조. 드디어 그 기회를 갖게 된 조는 그러나 맨홀에 빠지는 불의의 사고로 영혼이 되어 저 세상으로 가는 길 위에 서게 된다. 거대한 빛을 향해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 위에 서게 된 조는 그러나 그 목표가 눈앞에 있던 순간 이렇게 끝나게 된 걸 용납할 수가 없고, 결국 그 곳을 벗어나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그 곳은 탄생 전 영혼들이 자신의 관심사로 인해 켜지는 마지막 불꽃을 찾아 지구로 돌아가는 곳. 하지만 조는 그곳에서 지구로 가는 걸 원치 않는 영혼 22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조는 다시 살아나 그토록 원하던 재즈클럽에서의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소울>의 스토리는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조가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 영혼 22 대신 지구로 가는 통행증을 갖게 되어 다시 살아난 조는 자신이 삶의 목표로 생각했던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하게 되지만, 그걸 마치고 나서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목표를 달성하긴 했지만 그것이 삶의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는 어느 날 은행나무에서 비행하며 떨어지는 씨앗을 보며 깨닫는다. 삶의 행복은 그런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었던 게 아니고, 매일 먹던 음식,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느꼈던 희열의 순간, 처음 재즈를 접했을 때의 그 기분 같은 일상의 순간순간에 깃들어 있던 행복감에서 찾아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소울>은 이러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조와 22의 모험을 통해서 우리네 삶이 추락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비행하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드디어 평생을 원하던 목표를 눈앞에 둔 순간 맨홀로 '추락'하는 비운을 겪는 조의 상황은 우리네 삶에 대한 비관적 시각을 담아낸다. 삶이란 그렇게 어떤 최고의 순간에 다다르기 직전 추락하기도 하는 비극일 수 있다는 것. 추락하는 삶은 그래서 무겁디 무거운 존재의 무게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혼이 된 조는 거대한 빛을 향해 저절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삶의 무게는 죽음 후의 가벼워진 영혼과 대비된다. 그래서 추락하는 삶은 죽음 이후의 비상하는 영혼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조는 그렇게 저 위로 가벼워진 채 비상하는 영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뛰어내리고 그 무게 그대로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소울>이 깊은 감동을 주는 건 그것이 단지 삶과 죽음이라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의 섬세한 표현들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혼의 세계가 마치 피카소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2차원적 형상으로 제리, 테리는 물론이고 영혼들의 가벼움을 표현해냈다면, 삶의 세계는 이와는 상반되는 중력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을 담아낸 점이 그렇다. 이런 가벼움과 무거움, 경쾌함과 장중함은 조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재즈의 연주 속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그 누가 추락하길 원할까. <소울>은 조가 그랬듯이 어떤 목표를 세워두고 그 곳을 향해 오르는 이들의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추락에 대한 회피를 포착해낸다. 하지만 삶은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추락의 과정 그 연속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걸 마주하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을 뿐. 그렇지만 조는 떨어지는 은행 씨앗을 보며 그것이 추락이 아닌 비행이라는 걸 알게 되고, 더 이상 추락하지 않고 저 높은 곳으로 오르는 영혼의 세계보다 그 비행이 더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소울>이 전하는 '일상'의 소중함과 그 가치는 지금 같은 일상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 시국에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몰랐던 길거리를 마스크 없이 활보하고, 마음껏 숨을 쉬며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그 일상의 소중함들. 그것이 진짜 삶의 행복이었다는 걸 우리는 깨닫고 있지 않은가. <소울>이 말하고 있듯이.(사진:영화'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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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 간 '콜', 대본·연출·연기의 삼박자가 만든 전율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외딴 산 속의 고택. 그 집의 낡은 전화기가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과거의 영숙(전종서)과 현재의 서연(박신혜)을 연결한다. 넷플릭스 영화 <콜>은 이 단 하나의 설정으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다룬 스릴러다.

 

본래 좋은 판타지일수록 단 하나의 룰을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런 점에서 <콜>은 20년의 시간의 장벽을 넘어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두 인물이 연결된다는 그 설정 하나로 기막힌 반전의 반전이 이어지는 스릴러를 완성해낸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가 바뀐다는 지점은 화재로 아버지를 잃었던 서연이 20년 전의 영숙에 의해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 영숙은 학대하던 엄마에게 자신이 살해된다는 미래의 사실을 서연을 통해 알게 되면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는 영숙이 과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서연에게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서연의 아빠를 살려내 그에게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죽여 서연의 미래를 비극 속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결국 폭주하는 영숙에 손아귀에 붙잡힌 서연의 삶이 주는 공포감이 이 영화가 주는 쫄깃한 스릴러의 정체다.

 

<콜>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설정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능한가를 그 촘촘한 대본이 보여준다. 또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서연이 과거의 영숙을 공격하는 놀라운 상상력도 돋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멀리 시간의 벽을 두고 있던 두 인물이 점점 가까워지며 결국 부딪치는 폭발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단선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설정의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다양한 변주를 이어간다.

 

과거가 바뀌면 미래도 바뀌는 그 변화들을 이충현 감독은 음산한 고택의 분위기를 표현해낸 미장센과 신비롭게까지 느껴지는 효과적인 CG 연출로 담아낸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고택의 분위기가 빛과 어둠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잘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세 요소 중 가장 독보적인 역할을 한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연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통해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에너지와 전율을 보여줬던 전종서는 폭주하는 연쇄살인범 영숙을 소름끼치게 연기해낸다. 고택에 엄마에 의해 갇혀 있던 그가 그 곳을 빠져나와 동네로 달려가는 장면은 연쇄살인범의 끔찍함과 더불어 이 인물의 '자유'를 느끼게 할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즉 전종서가 연기하는 영숙은 살인자의 끔찍함과 동시에 억압에 의해 짓눌려왔던 날짐승의 자유를 표현해낸다. 전종서가 아니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싶은 에너지가 영숙이라는 인물에 의해 뿜어져 나오고 그 힘은 이 스릴러의 긴장감이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이유가 된다.

 

단연 이 작품의 힘이 전종서에게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상대역으로서 서연 역할을 연기한 박신혜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연기였다. 처음 시작점에는 우리가 늘상 봐왔던 선하고 밝은 이미지의 박신혜로 등장하지만, 폭주하는 전종서의 에너지와 더불어 박신혜도 그 본래의 이미지를 찢고 나와 폭주하는 에너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신혜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싶은 순간이 주는 카타르시스라니.

 

<콜>은 코로나19 때문에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 독점 방영을 선택했지만, 만일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더 뜨거운 입소문으로 화제가 됐을 작품이다. 촘촘한 대본과 효과적인 연출 그리고 독보적인 연기의 삼박자가 보는 이들에게 만족스런 전율을 주는 영화였을 테니.(사진:넷플릭스 영화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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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토반', 시대의 권력과 맞서는 상고 출신 삼총사가 주는 판타지들

 

이종필 감독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 시기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대의 변곡점처럼 기억되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앞두고 그 징후들이 보이던 때이고, 나아가 그 거품의 극점을 향해 달리던 이른바 '세계화'의 그림자가 사회 전체를 뒤덮었던 때다.

 

그 시대 삼진그룹에 다니는 상고 출신 여사원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회사생활을 일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새 어질러진 사무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상사들의 커피를 타서 일일이 갖다 주며 심지어 구두까지 닦아 대령해놓는 그런 허드렛일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게다가 회사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영어 토익 600점 이상을 받으면 상고 출신 여사원들도 대리 승진을 할 수 있다고 공표한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결과를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실무 능력 베테랑의 '선배님'이지만 실상은 커피 타 나르는 일이 주업무(?)인 생산관리3부의 이자영(고아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대졸 출신 여사원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고 자신은 회의 시간에 햄버거나 나르는 일을 하는 마케팅부 정유나(이솜)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이지만 회계부에서 가짜 전표 맞추는 일을 하는 심보람(박혜수)이 영어토익반에 함께 한다.

 

이러한 상고 출신 여 삼총사를 주인공을 세운 건 다분히 현재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투영된 선택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노동'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회사의 위기와 이를 이겨내는 판타지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개연성 때문이기도 하다. '오지랖'으로 대변되는 이자영이 우연히 공장에 갖다가 보게 된 폐수 유출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것이나,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정유나 같은 행동파가 나서고 뭐든 척척 계산해내는 심보람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그렇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시대가 모욕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면으로 끌어오면서 동시에 외환위기의 전조로 보이던 글로벌 투기자본들이 벌이는 음모들에 맞서는 작은 영웅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회사에서는 천시됐던 이들의 능력들은 의외로 거대한 글로벌 투기자본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활용되고, 이로써 삼진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1990년대를 향수하게 만드는 이들의 옷이나 스타일들 그리고 음악 같은 것들이 더해지면서 복고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 영화는 기실 스토리에 있어서도 현실보다는 판타지를 선택한다. 실제로는 1997년 IMF 체제로 이어지며 글로벌 투기자본에 의해 여기저기 무너졌던 당대의 현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이들의 승리와 그로 인해 보상받는 회사 내에서의 달라진 위상 같은 것들이 현실로 느껴질 리 없다. 결국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가장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린 건 바로 잉여 노동 취급 받던 여성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선택은 이 영화가 1990년대를 시대로 가져왔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때는 우리가 막아내지 못했고 또 변화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땅히 그렇게 막아내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판타지로 말해주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여성 삼인방이 등장하면서도 그 흔한 멜로 하나 들어가 있지 않고, 대신 이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이 전면에 담긴 점이 눈에 띤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이라고 외쳤듯이 영화가 온전히 일의 세계 속에서의 여성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이자영과 정유나 그리고 심보람이라는 삼총사 캐릭터가 굉장한 투사가 아닌 평범하지만 그 속에 '사회적 선'에 대한 비범함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벌레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이들의 외침처럼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 어딘가에서 그저 포기하지 않고 꿈틀대는 그 누군가가 있어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으니.(사진:영화'삼진그룹 영어토익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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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영화의 많은 영상문법들을 깬 흥미로운 시각체험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난해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보다 보면 빨려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무려 2시간 반 동안의 적지 않은 런닝타임이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이 있다. 물론 이 영화를 기존 방식으로 이해하려 애쓴다면 상당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저런 상황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테고 그것은 오히려 영화를 즐길 수 없게 만들 테니 말이다.

 

영화 <테넷>에는 '인버전'이라는 색다른 기술이 등장한다. 그것은 하나의 설정이다. 미래에서 현재로 던져진 이 기술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것이란다. 그래서 인버전 된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날아간 총알이 다시 총으로 돌아온다. <테넷>의 포스터를 보면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앞으로 걸어오는 모습과 저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동시에 겹쳐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영화 속 장면 속에 점점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다.

 

<테넷>이 한번 보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건 근본적으로 이 영화가 시간의 예술인 영화의 문법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과관계의 산물이다. 과거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래서 미래에 그 결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테넷>은 이 인과관계가 마구 꼬이고 뒤틀어져 있다. '인버전'이라는 설정으로 시간의 역순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일어난 결과를 되돌려 원인을 바꾸려는 인물들의 작전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은 앞으로도 흐르지만 의지에 의해 과거로 흘러가기도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버전 기계를 통해 가운데 유리막을 두고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서로의 행동들을 보는 장면은 <테넷>이 깨고 있는 영화문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에서 미래로 나가는 시간의 축과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의 축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심지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서로 격투를 벌이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뒤로 갈수록 영상문법의 파괴는 더 과감해지고 심지어 블록버스터의 성격을 띤다. 세상의 종말을 오게 할 수 있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를 막기 위해 그가 처음 이 인버전의 알고리즘을 갖게 됐던 과거 시간대로 옮겨가 벌어지는 전쟁에 가까운 장면은 우리가 봐왔던 영화 속 전쟁장면과 너무나 다른 영상을 연출해낸다.

 

앞으로 달려 나가는 요원들이 있는 반면 뒤로 가는 요원들도 존재하고, 이들의 공격으로 건물이 폭파되는 장면과 이미 폭발로 인해 거대한 구멍이 난 곳이 거꾸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장면들이 겹쳐진다. 시간의 순방향과 역방향이 하나로 겹쳐진 곳에서의 전쟁 장면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지만, 그 시각체험은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주인공이 보호하려 애쓰는 사토르에게 거의 인질이 되다시피 붙잡혀 살아가는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이 세상의 종말을 막는 일에 일조하면서도 '자유'를 향해 나가는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저 여자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던 미래의 캣이 나중에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대목은 시간의 역순이 만들어낸 인과관계를 뒤집어놓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래의 자신이 가진 어떤 욕망(원인)이 과거의 자신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테넷>은 난해하고 불편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역순이라는 '인버전'이라는 설정을 가져와 영화가 늘상 틀에 박혀 있던 '시간과 인과관계'라는 그 구조를 깨고 있는데서 생겨나는 난해함과 불편함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치 캐치 프레이즈처럼 달아놓은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문구가 와 닿는 면이 있다. 어쩌면 그 시각체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으니.(사진:영화'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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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7 18:18 신고 BlogIcon 지후니7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화 소개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면 이해가 쉽가 안됐습니다. 그래도 흥미있는 영화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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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 황정민·이정재만큼 빛난 박정민의 연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이나 느와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만족할만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황정민과 이정재가 보여주는 미친 연기를 보는 맛만으로도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 이들이 몸 사리지 않고 보여주는 액션은 스타일리시한 영상 연출과 더해져 시종일관 영화의 긴장을 높여준다. 여기에 박정민의 파격적인 변신이 더해주는 웃음은 긴장 속에 숨통을 틔워준다.

 

이야기는 다소 단조롭다. 청부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암살자 인남(황정민)은 이제 은퇴해 파나마에 가서 다른 삶을 살려 한다. 하지만 그 때 태국에서 과거 자신과 연인 관계였다 헤어진 여자와 그 딸이 납치되고 그 사건이 사실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사체로 돌아온 여자를 통해 그 납치된 딸이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 인남은 태국으로 가게 되고, 자신의 형제가 인남에 의해 죽게 된 사실을 알게 된 레이(이정재)가 복수를 위해 그 뒤를 추적한다.

 

인남이 납치된 딸을 구출하기 위해 태국의 인신매매, 장기매매 조직과 전쟁을 치르는 그 내용은 여러모로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전직 요원이 조폭들과 치르는 전쟁. 인남 역시 과거 국가를 위해 특정 임무를 수행하던 인물이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당대 <아저씨>의 성공이 끔찍한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중년남성들의 부채감과 카타르시스를 건드렸던 것처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다소 힘이 빠져버린 아버지들의 부성애 판타지를 건드리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아저씨>의 정서를 닮았다 여기게 되는 건, 납치된 딸이 무자비한 액션을 벌이는 아저씨 혹은 아버지들의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납치된 딸들은 어떤 능동적인 행동이나 말도 취하지 않는다. 다만 그 끔찍한 현실 앞에서 던지는 다소 텅 빈 눈빛을 통해 어떻게든 구해내야만 할 존재로서 서 있을 뿐이다.

 

강한 부성애 판타지를 액션을 통해 끄집어내기 위해 아이를 대상화하는 이런 시선은 다소 불편함을 남기지만, 그래도 액션과 느와르를 담은 오락영화로만 본다면 영화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 두 남자의 무자비한 대결 속에 들어오게 되는 유이(박정민)라는 성소수자의 존재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 면이 있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유이이라는 성적 경계에 선 존재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그 자체로 이 영화가 가진 단점들을 상쇄시켜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정민과 이정재의 연기대결을 기대하고 본 관객이라면 어느 순간부터 의외로 박정민이라는 배우에 대한 매력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의 맛이 남다른 영화다. 하지만 부성애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희생되는 여성과 아이라는 그 설정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황정민과 이정재의 연기 속에서 오히려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면이 있다. 그가 있어 영화가 가진 약점들조차 어느 정도는 상쇄되고 있으니.(사진:영화'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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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네 콘텐츠에도 유행처럼 부는 소재 중 하나가 평행세계다. SBS 드마라 '더 킹'이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두 평행세계가 겹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OCN 드라마 '트레인'은 한 사건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인물이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평행세계가 겹쳐지면서 벌어지는 스릴러를 다뤘다.

 

양우석 감독이 3년 만에 가져온 '강철비2'는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지만, 3년 전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어냈던 '강철비1'과 기묘한 평행세계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것은 정우성과 곽도원이 '강철비1'에서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와 남측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로 등장하지만, '강철비2'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정우성)과 북 호위총국장(곽도원)으로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이건 전작에서 좋은 합을 보였던 배우들과 감독의 의기투합으로 이뤄진 결과이겠지만 '강철비'라는 세계관이 그려내는 한반도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선택지들과 그 선택에 의해 공멸하던가 아니면 공존하는가가 결정되는 그 변수들을 떠올려보면 의도적으로 평행세계 같은 뉘앙스를 담으려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강철비2'는 전작에서 그랬듯 '선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남과 북 그리고 이를 둘러싼 미,중,일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때론 국가의 존폐 아니 나아가 전 인류의 존폐를 결정짓는 건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 같은 이들의 선택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강철비2'가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다.

 

호위총국장에 의해 발생한 쿠데타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 그리고 북한 최고지도자인 위원장(유연석)이 북한 핵잠수함에 인질로 잡히는 상황은 그들의 죽고 사는 문제만이 아닌 남북한과 미국 나아가 중국과 일본의 운명까지 결정할 수 있는 중대사가 된다.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세 정상의 갈등과 협력은 마치 하나의 상황극처럼 그려지지만 적어도 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 늘 놓여져 살아가는 우리네 관객들에게는 손에 땀을 쥐고 볼 수밖에 없는 몰입을 만들어낸다.

 

영화 '강철비2'는 대부분 핵잠수함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핵잠수함과 다른 국가의 잠수함들과의 교전상황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잠수함이 등장하는 전쟁영화들이 주는 그 긴박한 스릴러의 묘미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부딪치는 인물들의 치열한 부딪침을 담는다. 흥미로운 건 세 정상이 좁은 방 안에서 벌이는 소동이 우리네 한반도 상황과 이를 두고 국가 간 외교를 해나가는 정상들의 모습들을 자꾸만 연상시키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는 잠수함 속에서의 이야기는 때때로 그 긴장을 무너뜨리는 풍자적 웃음이 채워지기도 한다.

 

'강철비2'는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벌어지는 이 사건을 마침 북상하는 태풍과 겹쳐 이야기한다. 태풍의 이름이 'Steel rain'이고 그것은 마치 한반도 상황이 일촉즉발의 태풍을 마주하고 있다는 걸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관객들은 저들의 올바른 '선택'에 의해 이 태풍 같은 긴장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게 된다.

 

'강철비1'과 '강철비2'는 연달아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특정 상황극을 마치 평행세계의 이야기처럼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평행세계는 결국 선택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선택은 국가의 정상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걸 엔딩크레딧이 끝난 후 대한민국 대통령의 목소리로 전한다. 자칫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슬기롭게 넘겼다 해도 궁극적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향해가는 길은 우리네 국민의 선택에 의해 가능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사진:영화 '강철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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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좀더 쿨한 강동원이었다면 어땠을까

 

<부산행> 그 후 4년. 바로 이 문구만으로도 연상호 감독의 <반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K좀비라는 지칭이 나올 정도로 '한국형 좀비'에 대한 관심이 커진데다, <#살아있다> 같은 올 여름을 겨냥한 좀비물이 이미 등장했던 터라, <반도>에 거는 기대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땠을까. 뚜껑을 연 <반도>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가 확연히 갈린다. 별 생각 없이 여름 블록버스터로서 액션을 즐기고 싶은 관객이라면 좀비 떼들과 두 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에 푹 빠져들 수 있다. 공포와 스릴러와 액션이 잘 버무려진 작품인데다, 무엇보다 이러한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배경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공간이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울 수 있다.

 

<반도>에서 압권은 자동차를 타고 벌이는 액션 신이다. 마치 차가 날아서 이단 옆차기를 하는 것 같은 실감을 주는 자동차 액션은 마치 <매드맥스>의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특히 좀비떼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원들이 특수 개조된 차량을 몰고 도주하는 정석(강동원) 일행을 추격하고 또 따돌리는 액션은 우리도 이런 액션이 가능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을 즐겁게 해준다.

 

게다가 폐허가 된 인천항이나 오목교의 살풍경 같은 공간들을 종말론적인 분위기로 그려내는 대목이나, 무엇보다 마치 하나의 행위예술을 보는 것만 같은 좀비 떼들의 소름끼치는 동작들과 마치 그림처럼 묘하게 뒤섞인 모습은 대단히 독특하다. 만일 <부산행>에 이어 <반도>까지 K좀비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지분의 상당 부분은 좀비 역할을 한 배우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좋은 액션과 연출에도 불구하고 <반도>가 남기는 가장 큰 아쉬움은 너무 평이한 인물을 신파적 구도 속에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매력을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정석이 바로 그렇다. 그는 좀비 천지가 된 한국에서 배를 타고 홍콩으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누나와 조카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바로 이 지점이 정석의 캐릭터를 다소 신파적으로 만든 이유다.

 

그를 이러한 트라우마를 가진 존재로 세웠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간 반도에서 만난 민정(이정현)의 가족과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다소 감정과잉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정석의 캐릭터는 액션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러한 아픈 감정을 얹는 역할이 더 많이 부여되어 있다. 대신 액션은 대부분 정석이 반도에서 만난 민정(이정현)과 그 가족들인 준이(이레), 유진(이예원)이 맡는다.

 

그래서인지 액션을 맡은 민정과 준이, 유진은 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정석의 매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민정의 가족 중 첫째 딸 준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액션을 맡고 있어서인지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주인공인 정석보다 서브에 가까운 준이가 더 주목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는 이 영화가 가진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액션은 좋은데 감정 과잉은 어딘지 한계를 남긴다는 것. 트라우마 때문에 시종일관 인상 쓰고 있는 주인공보다 좀 더 껄렁하거나 쿨한 주인공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사진:영화 '반도')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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