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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 간 '콜', 대본·연출·연기의 삼박자가 만든 전율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외딴 산 속의 고택. 그 집의 낡은 전화기가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과거의 영숙(전종서)과 현재의 서연(박신혜)을 연결한다. 넷플릭스 영화 <콜>은 이 단 하나의 설정으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다룬 스릴러다.

 

본래 좋은 판타지일수록 단 하나의 룰을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런 점에서 <콜>은 20년의 시간의 장벽을 넘어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두 인물이 연결된다는 그 설정 하나로 기막힌 반전의 반전이 이어지는 스릴러를 완성해낸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가 바뀐다는 지점은 화재로 아버지를 잃었던 서연이 20년 전의 영숙에 의해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 영숙은 학대하던 엄마에게 자신이 살해된다는 미래의 사실을 서연을 통해 알게 되면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는 영숙이 과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서연에게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서연의 아빠를 살려내 그에게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죽여 서연의 미래를 비극 속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결국 폭주하는 영숙에 손아귀에 붙잡힌 서연의 삶이 주는 공포감이 이 영화가 주는 쫄깃한 스릴러의 정체다.

 

<콜>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설정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능한가를 그 촘촘한 대본이 보여준다. 또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서연이 과거의 영숙을 공격하는 놀라운 상상력도 돋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멀리 시간의 벽을 두고 있던 두 인물이 점점 가까워지며 결국 부딪치는 폭발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단선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설정의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다양한 변주를 이어간다.

 

과거가 바뀌면 미래도 바뀌는 그 변화들을 이충현 감독은 음산한 고택의 분위기를 표현해낸 미장센과 신비롭게까지 느껴지는 효과적인 CG 연출로 담아낸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고택의 분위기가 빛과 어둠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잘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세 요소 중 가장 독보적인 역할을 한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연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통해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에너지와 전율을 보여줬던 전종서는 폭주하는 연쇄살인범 영숙을 소름끼치게 연기해낸다. 고택에 엄마에 의해 갇혀 있던 그가 그 곳을 빠져나와 동네로 달려가는 장면은 연쇄살인범의 끔찍함과 더불어 이 인물의 '자유'를 느끼게 할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즉 전종서가 연기하는 영숙은 살인자의 끔찍함과 동시에 억압에 의해 짓눌려왔던 날짐승의 자유를 표현해낸다. 전종서가 아니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싶은 에너지가 영숙이라는 인물에 의해 뿜어져 나오고 그 힘은 이 스릴러의 긴장감이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이유가 된다.

 

단연 이 작품의 힘이 전종서에게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상대역으로서 서연 역할을 연기한 박신혜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연기였다. 처음 시작점에는 우리가 늘상 봐왔던 선하고 밝은 이미지의 박신혜로 등장하지만, 폭주하는 전종서의 에너지와 더불어 박신혜도 그 본래의 이미지를 찢고 나와 폭주하는 에너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신혜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싶은 순간이 주는 카타르시스라니.

 

<콜>은 코로나19 때문에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 독점 방영을 선택했지만, 만일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더 뜨거운 입소문으로 화제가 됐을 작품이다. 촘촘한 대본과 효과적인 연출 그리고 독보적인 연기의 삼박자가 보는 이들에게 만족스런 전율을 주는 영화였을 테니.(사진:넷플릭스 영화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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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토반', 시대의 권력과 맞서는 상고 출신 삼총사가 주는 판타지들

 

이종필 감독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 시기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대의 변곡점처럼 기억되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앞두고 그 징후들이 보이던 때이고, 나아가 그 거품의 극점을 향해 달리던 이른바 '세계화'의 그림자가 사회 전체를 뒤덮었던 때다.

 

그 시대 삼진그룹에 다니는 상고 출신 여사원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회사생활을 일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새 어질러진 사무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상사들의 커피를 타서 일일이 갖다 주며 심지어 구두까지 닦아 대령해놓는 그런 허드렛일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게다가 회사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영어 토익 600점 이상을 받으면 상고 출신 여사원들도 대리 승진을 할 수 있다고 공표한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결과를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실무 능력 베테랑의 '선배님'이지만 실상은 커피 타 나르는 일이 주업무(?)인 생산관리3부의 이자영(고아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대졸 출신 여사원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고 자신은 회의 시간에 햄버거나 나르는 일을 하는 마케팅부 정유나(이솜)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이지만 회계부에서 가짜 전표 맞추는 일을 하는 심보람(박혜수)이 영어토익반에 함께 한다.

 

이러한 상고 출신 여 삼총사를 주인공을 세운 건 다분히 현재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투영된 선택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노동'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회사의 위기와 이를 이겨내는 판타지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개연성 때문이기도 하다. '오지랖'으로 대변되는 이자영이 우연히 공장에 갖다가 보게 된 폐수 유출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것이나,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정유나 같은 행동파가 나서고 뭐든 척척 계산해내는 심보람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그렇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시대가 모욕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면으로 끌어오면서 동시에 외환위기의 전조로 보이던 글로벌 투기자본들이 벌이는 음모들에 맞서는 작은 영웅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회사에서는 천시됐던 이들의 능력들은 의외로 거대한 글로벌 투기자본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활용되고, 이로써 삼진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1990년대를 향수하게 만드는 이들의 옷이나 스타일들 그리고 음악 같은 것들이 더해지면서 복고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 영화는 기실 스토리에 있어서도 현실보다는 판타지를 선택한다. 실제로는 1997년 IMF 체제로 이어지며 글로벌 투기자본에 의해 여기저기 무너졌던 당대의 현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이들의 승리와 그로 인해 보상받는 회사 내에서의 달라진 위상 같은 것들이 현실로 느껴질 리 없다. 결국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가장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린 건 바로 잉여 노동 취급 받던 여성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선택은 이 영화가 1990년대를 시대로 가져왔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때는 우리가 막아내지 못했고 또 변화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땅히 그렇게 막아내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판타지로 말해주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여성 삼인방이 등장하면서도 그 흔한 멜로 하나 들어가 있지 않고, 대신 이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이 전면에 담긴 점이 눈에 띤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이라고 외쳤듯이 영화가 온전히 일의 세계 속에서의 여성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이자영과 정유나 그리고 심보람이라는 삼총사 캐릭터가 굉장한 투사가 아닌 평범하지만 그 속에 '사회적 선'에 대한 비범함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벌레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이들의 외침처럼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 어딘가에서 그저 포기하지 않고 꿈틀대는 그 누군가가 있어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으니.(사진:영화'삼진그룹 영어토익반)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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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영화의 많은 영상문법들을 깬 흥미로운 시각체험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난해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보다 보면 빨려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무려 2시간 반 동안의 적지 않은 런닝타임이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이 있다. 물론 이 영화를 기존 방식으로 이해하려 애쓴다면 상당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저런 상황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테고 그것은 오히려 영화를 즐길 수 없게 만들 테니 말이다.

 

영화 <테넷>에는 '인버전'이라는 색다른 기술이 등장한다. 그것은 하나의 설정이다. 미래에서 현재로 던져진 이 기술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것이란다. 그래서 인버전 된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날아간 총알이 다시 총으로 돌아온다. <테넷>의 포스터를 보면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앞으로 걸어오는 모습과 저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동시에 겹쳐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영화 속 장면 속에 점점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다.

 

<테넷>이 한번 보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건 근본적으로 이 영화가 시간의 예술인 영화의 문법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과관계의 산물이다. 과거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래서 미래에 그 결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테넷>은 이 인과관계가 마구 꼬이고 뒤틀어져 있다. '인버전'이라는 설정으로 시간의 역순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일어난 결과를 되돌려 원인을 바꾸려는 인물들의 작전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은 앞으로도 흐르지만 의지에 의해 과거로 흘러가기도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버전 기계를 통해 가운데 유리막을 두고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서로의 행동들을 보는 장면은 <테넷>이 깨고 있는 영화문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에서 미래로 나가는 시간의 축과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의 축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심지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서로 격투를 벌이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뒤로 갈수록 영상문법의 파괴는 더 과감해지고 심지어 블록버스터의 성격을 띤다. 세상의 종말을 오게 할 수 있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를 막기 위해 그가 처음 이 인버전의 알고리즘을 갖게 됐던 과거 시간대로 옮겨가 벌어지는 전쟁에 가까운 장면은 우리가 봐왔던 영화 속 전쟁장면과 너무나 다른 영상을 연출해낸다.

 

앞으로 달려 나가는 요원들이 있는 반면 뒤로 가는 요원들도 존재하고, 이들의 공격으로 건물이 폭파되는 장면과 이미 폭발로 인해 거대한 구멍이 난 곳이 거꾸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장면들이 겹쳐진다. 시간의 순방향과 역방향이 하나로 겹쳐진 곳에서의 전쟁 장면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지만, 그 시각체험은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주인공이 보호하려 애쓰는 사토르에게 거의 인질이 되다시피 붙잡혀 살아가는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이 세상의 종말을 막는 일에 일조하면서도 '자유'를 향해 나가는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저 여자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던 미래의 캣이 나중에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대목은 시간의 역순이 만들어낸 인과관계를 뒤집어놓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래의 자신이 가진 어떤 욕망(원인)이 과거의 자신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테넷>은 난해하고 불편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역순이라는 '인버전'이라는 설정을 가져와 영화가 늘상 틀에 박혀 있던 '시간과 인과관계'라는 그 구조를 깨고 있는데서 생겨나는 난해함과 불편함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치 캐치 프레이즈처럼 달아놓은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문구가 와 닿는 면이 있다. 어쩌면 그 시각체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으니.(사진:영화'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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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7 18:18 신고 BlogIcon 지후니7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화 소개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면 이해가 쉽가 안됐습니다. 그래도 흥미있는 영화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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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 황정민·이정재만큼 빛난 박정민의 연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이나 느와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만족할만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황정민과 이정재가 보여주는 미친 연기를 보는 맛만으로도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 이들이 몸 사리지 않고 보여주는 액션은 스타일리시한 영상 연출과 더해져 시종일관 영화의 긴장을 높여준다. 여기에 박정민의 파격적인 변신이 더해주는 웃음은 긴장 속에 숨통을 틔워준다.

 

이야기는 다소 단조롭다. 청부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암살자 인남(황정민)은 이제 은퇴해 파나마에 가서 다른 삶을 살려 한다. 하지만 그 때 태국에서 과거 자신과 연인 관계였다 헤어진 여자와 그 딸이 납치되고 그 사건이 사실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사체로 돌아온 여자를 통해 그 납치된 딸이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 인남은 태국으로 가게 되고, 자신의 형제가 인남에 의해 죽게 된 사실을 알게 된 레이(이정재)가 복수를 위해 그 뒤를 추적한다.

 

인남이 납치된 딸을 구출하기 위해 태국의 인신매매, 장기매매 조직과 전쟁을 치르는 그 내용은 여러모로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전직 요원이 조폭들과 치르는 전쟁. 인남 역시 과거 국가를 위해 특정 임무를 수행하던 인물이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당대 <아저씨>의 성공이 끔찍한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중년남성들의 부채감과 카타르시스를 건드렸던 것처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다소 힘이 빠져버린 아버지들의 부성애 판타지를 건드리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아저씨>의 정서를 닮았다 여기게 되는 건, 납치된 딸이 무자비한 액션을 벌이는 아저씨 혹은 아버지들의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납치된 딸들은 어떤 능동적인 행동이나 말도 취하지 않는다. 다만 그 끔찍한 현실 앞에서 던지는 다소 텅 빈 눈빛을 통해 어떻게든 구해내야만 할 존재로서 서 있을 뿐이다.

 

강한 부성애 판타지를 액션을 통해 끄집어내기 위해 아이를 대상화하는 이런 시선은 다소 불편함을 남기지만, 그래도 액션과 느와르를 담은 오락영화로만 본다면 영화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 두 남자의 무자비한 대결 속에 들어오게 되는 유이(박정민)라는 성소수자의 존재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 면이 있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 유이이라는 성적 경계에 선 존재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그 자체로 이 영화가 가진 단점들을 상쇄시켜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정민과 이정재의 연기대결을 기대하고 본 관객이라면 어느 순간부터 의외로 박정민이라는 배우에 대한 매력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의 맛이 남다른 영화다. 하지만 부성애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희생되는 여성과 아이라는 그 설정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황정민과 이정재의 연기 속에서 오히려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면이 있다. 그가 있어 영화가 가진 약점들조차 어느 정도는 상쇄되고 있으니.(사진:영화'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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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네 콘텐츠에도 유행처럼 부는 소재 중 하나가 평행세계다. SBS 드마라 '더 킹'이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두 평행세계가 겹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OCN 드라마 '트레인'은 한 사건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인물이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평행세계가 겹쳐지면서 벌어지는 스릴러를 다뤘다.

 

양우석 감독이 3년 만에 가져온 '강철비2'는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지만, 3년 전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어냈던 '강철비1'과 기묘한 평행세계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것은 정우성과 곽도원이 '강철비1'에서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와 남측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로 등장하지만, '강철비2'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정우성)과 북 호위총국장(곽도원)으로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이건 전작에서 좋은 합을 보였던 배우들과 감독의 의기투합으로 이뤄진 결과이겠지만 '강철비'라는 세계관이 그려내는 한반도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선택지들과 그 선택에 의해 공멸하던가 아니면 공존하는가가 결정되는 그 변수들을 떠올려보면 의도적으로 평행세계 같은 뉘앙스를 담으려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강철비2'는 전작에서 그랬듯 '선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남과 북 그리고 이를 둘러싼 미,중,일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때론 국가의 존폐 아니 나아가 전 인류의 존폐를 결정짓는 건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 같은 이들의 선택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강철비2'가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다.

 

호위총국장에 의해 발생한 쿠데타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 그리고 북한 최고지도자인 위원장(유연석)이 북한 핵잠수함에 인질로 잡히는 상황은 그들의 죽고 사는 문제만이 아닌 남북한과 미국 나아가 중국과 일본의 운명까지 결정할 수 있는 중대사가 된다.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세 정상의 갈등과 협력은 마치 하나의 상황극처럼 그려지지만 적어도 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 늘 놓여져 살아가는 우리네 관객들에게는 손에 땀을 쥐고 볼 수밖에 없는 몰입을 만들어낸다.

 

영화 '강철비2'는 대부분 핵잠수함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핵잠수함과 다른 국가의 잠수함들과의 교전상황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잠수함이 등장하는 전쟁영화들이 주는 그 긴박한 스릴러의 묘미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부딪치는 인물들의 치열한 부딪침을 담는다. 흥미로운 건 세 정상이 좁은 방 안에서 벌이는 소동이 우리네 한반도 상황과 이를 두고 국가 간 외교를 해나가는 정상들의 모습들을 자꾸만 연상시키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는 잠수함 속에서의 이야기는 때때로 그 긴장을 무너뜨리는 풍자적 웃음이 채워지기도 한다.

 

'강철비2'는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벌어지는 이 사건을 마침 북상하는 태풍과 겹쳐 이야기한다. 태풍의 이름이 'Steel rain'이고 그것은 마치 한반도 상황이 일촉즉발의 태풍을 마주하고 있다는 걸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관객들은 저들의 올바른 '선택'에 의해 이 태풍 같은 긴장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게 된다.

 

'강철비1'과 '강철비2'는 연달아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특정 상황극을 마치 평행세계의 이야기처럼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평행세계는 결국 선택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선택은 국가의 정상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걸 엔딩크레딧이 끝난 후 대한민국 대통령의 목소리로 전한다. 자칫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슬기롭게 넘겼다 해도 궁극적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향해가는 길은 우리네 국민의 선택에 의해 가능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사진:영화 '강철비2')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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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좀더 쿨한 강동원이었다면 어땠을까

 

<부산행> 그 후 4년. 바로 이 문구만으로도 연상호 감독의 <반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K좀비라는 지칭이 나올 정도로 '한국형 좀비'에 대한 관심이 커진데다, <#살아있다> 같은 올 여름을 겨냥한 좀비물이 이미 등장했던 터라, <반도>에 거는 기대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땠을까. 뚜껑을 연 <반도>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가 확연히 갈린다. 별 생각 없이 여름 블록버스터로서 액션을 즐기고 싶은 관객이라면 좀비 떼들과 두 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에 푹 빠져들 수 있다. 공포와 스릴러와 액션이 잘 버무려진 작품인데다, 무엇보다 이러한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배경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공간이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울 수 있다.

 

<반도>에서 압권은 자동차를 타고 벌이는 액션 신이다. 마치 차가 날아서 이단 옆차기를 하는 것 같은 실감을 주는 자동차 액션은 마치 <매드맥스>의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특히 좀비떼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원들이 특수 개조된 차량을 몰고 도주하는 정석(강동원) 일행을 추격하고 또 따돌리는 액션은 우리도 이런 액션이 가능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을 즐겁게 해준다.

 

게다가 폐허가 된 인천항이나 오목교의 살풍경 같은 공간들을 종말론적인 분위기로 그려내는 대목이나, 무엇보다 마치 하나의 행위예술을 보는 것만 같은 좀비 떼들의 소름끼치는 동작들과 마치 그림처럼 묘하게 뒤섞인 모습은 대단히 독특하다. 만일 <부산행>에 이어 <반도>까지 K좀비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지분의 상당 부분은 좀비 역할을 한 배우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좋은 액션과 연출에도 불구하고 <반도>가 남기는 가장 큰 아쉬움은 너무 평이한 인물을 신파적 구도 속에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매력을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정석이 바로 그렇다. 그는 좀비 천지가 된 한국에서 배를 타고 홍콩으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누나와 조카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바로 이 지점이 정석의 캐릭터를 다소 신파적으로 만든 이유다.

 

그를 이러한 트라우마를 가진 존재로 세웠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간 반도에서 만난 민정(이정현)의 가족과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다소 감정과잉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정석의 캐릭터는 액션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러한 아픈 감정을 얹는 역할이 더 많이 부여되어 있다. 대신 액션은 대부분 정석이 반도에서 만난 민정(이정현)과 그 가족들인 준이(이레), 유진(이예원)이 맡는다.

 

그래서인지 액션을 맡은 민정과 준이, 유진은 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정석의 매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민정의 가족 중 첫째 딸 준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액션을 맡고 있어서인지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주인공인 정석보다 서브에 가까운 준이가 더 주목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는 이 영화가 가진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액션은 좋은데 감정 과잉은 어딘지 한계를 남긴다는 것. 트라우마 때문에 시종일관 인상 쓰고 있는 주인공보다 좀 더 껄렁하거나 쿨한 주인공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사진:영화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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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 흥행으로 유아인·박신혜가 진짜 살려낸 건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살아있다>가 100만 관객을 넘겼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100만 관객 돌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뚝 끊겨버렸던 영화관 발길이 이 영화로 인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건 아닌가 영화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살아있다>가 이 같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건 먼저 코로나19 시국이 장기화되면서 철저한 사전방역과 검사, 마스크 쓰기 그리고 극장 내 좌석 간 띄어 앉기 같은 예비책을 통해 극장에서의 영화 보기가 어느 정도는 용이해졌다는 관객들의 판단이 생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예비책보다 더 중요한 건 영화가 그만큼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이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살아있다>는 확실히 코로나 시국에 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최근 <부산행>에 이어 <킹덤> 그리고 개봉 예정인 <반도>로 이어지는 이른바 K좀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데다, 이 좀비 세상이 그려내는 풍경이 지금의 시국을 통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서다.

 

<#살아있다>는 갑자기 터진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로 공격하는 좀비들 세상에 아파트에 고립된 채 생존해가는 준우(유아인)가 건너편 아파트의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 밖에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게 된 현 상황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영화다.

 

반드시 살아남으라는 부모의 마지막 메시지를 들은 후 홀로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이겨내며 버텨내던 준우가 결국 절망에 빠져 생존의 끈을 놓으려 할 때 나타난 또 다른 생존자 유빈의 존재는 그가 살아야 하는 새로운 의미가 된다. 그는 자신의 생존은 물론이고 유빈이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좀비들과도 맞서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좀체 쉽게 꺾일 것 같지 않은 코로나 시국에 답답함과 절망감마저 느끼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던지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준우는 과연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또 가족은 살아 있을까를 궁금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의 가치와 의미가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그렇다.

 

영화는 아파트 한 동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채워져 있어 다소 단순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초반 3분의1 정도는 대부분 준우의 집에 카메라가 집중되어 있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한 아파트라는 공간에 집중함으로써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달려드는 좀비떼들의 움직임이 더 긴박감 있게 펼쳐지는 효과를 내는 것도 사실이다.

 

준우와 유빈 사이에 애써 멜로 구도 같은 걸 넣지 않은 것도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위해서는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들이 서로 돕고 함께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건 개인적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증명 같은 것이니 말이다. "살아있어요!"라는 외침이 "사람 있어요!"라는 외침과 겹쳐지는 대목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인간성이 살아있는 그 존재여야 비로소 사람이고,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일 테니.

 

영화 제목이 <#살아있다>여서인지 이 영화가 개봉 첫 주말을 지나며 코로나 시국이후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절망적인 영화계에 여전히 영화는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한 사전방역과 검사, 거리두기를 통해 안전한 관람이 지켜져야 하겠지만 모쪼록 이 영화를 기점으로 우리네 영화들이 살아있다는 걸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사진:영화#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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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 도망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은 정확한 시간적 배경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머지않은 미래라는 것이고, 또다시 벌어진 금융위기로 인해 일상이 처절하게 파괴된 상황이라는 걸 황량한 거리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특정한 시공간을 적지하지 않고 있어서인지 이 영화는 암울한 미래의 청춘들이 겪는 현실을 은유한 가상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윤성현 감독은 어떻게 그런 공간들을 헌팅하고 축조한 것인지 현재의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의 공간 같은 그 느낌을 포착해낸다. 분명히 우리가 어디선가 봤던 공간이지만, 영화가 연출하고 편집해낸 영상 속 그 공간은 그 현실과 살짝 뒤틀려 있어 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사실상 <사냥의 시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이 독특한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만들어낸 영화적 공간 위에서 준석(이제훈),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그리고 상수(박정민)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지옥으로부터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도박장 금고를 털겠다는 것. 모든 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자그마한 고리들이 드러나면서 이들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미스터리한 인물 한(박해수)이 사냥을 시작하고, 사냥감이 되어버린 준석, 장호, 기훈은 필사적으로 도주해 그들이 애초 꿈꿨던 하와이를 닮은 대만 컨딩으로 밀항하려 한다. 한 탕 해서 휴양지로 도망치려 하는 청춘들과 이들을 막아 서 사냥하기 시작하는 한의 대결은 영화 전편을 추격전으로 만들어 버린다.

 

쫓고 쫓기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추격전이지만, 준석, 장호, 기훈의 끈끈한 우정과 총을 들긴 들었지만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청춘의 초상들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느와르 액션의 틀을 갖고 왔지만 사냥감이 되어 쫓기는 신세라는 그 은유는 영화를 액션 이상의 사회극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경제위기로 인해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는 청춘들과, 그래서 그들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근 미래 설정의 가상극을 현재의 현실과 중첩시켜 놓는 이유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이들을 추격하며 죽이거나 죽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지가 없어 보이는 한이라는 존재의 공포 역시 마찬가지다. 청춘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막연한 공포감이 그 캐릭터를 통해 실감나게 구현된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목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곳 역시 현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자각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하와이와 비슷해서 가려 했던 대만의 컨딩은 하와이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실제 하와이를 갔다고 해도 그 곳이 그들이 상상했던 그런 하와이는 결코 되지 못했을 게다. 그들은 다만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이 현실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질문한다. 사냥감이 되어 끝없이 쫓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사냥하려는 이와 맞서 싸울 것인가. 어느 곳으로 도망친다 해도 출구는 없다. 그러니 이 지독한 ‘사냥의 시간’을 벗어나는 길은 그들을 사냥감으로 만든 이들과 부딪치는 길 뿐이다. 저 멀리 있을 것처럼 보이는 허상이 아닌 바로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과 마주하는 길 뿐.(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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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맨', 명절 특수 누릴 복병으로 떠오르나

 

권상우 주연의 영화 <히트맨>은 사실 제목부터가 그리 확 당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권상우가 총과 연필을 양 손으로 쥐고 전면을 노려보는 포스터도 어딘가 B급 유머의 뉘앙스가 풍긴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은 관객 분들 중 이런 선입견 때문에 굉장한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의외로 웃기고 의외로 액션 터지는 <히트맨>에 적이 놀랐을 게다. 도대체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이 영화의 무엇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된 걸까.

 

한때 국정원에서 살인무기로 키워진 이른바 ‘방패연’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암살요원 준. 그는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죽음을 위장해 국정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한 참의 세월이 지나 아내와 딸을 둔 웹툰 작가로 연재하는 작품마다 악플 신기록을 경신하던 그는 술김에 1급 비밀인 자신의 과거를 그린 작품을 공개해버린다. 하루아침에 초대박이 나지만 그건 암살요원 준을 노리는 이들과 국정원 사람들이 그를 찾게 되는 이유가 되어버린다.

 

전직 국정원의 전설적인 인물이 정체를 숨기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일상인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은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는 다소 의도적으로 과장된 이야기와 연기, 연출을 더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뭘 그렇게까지 말하고 행동할까 싶은 장면과 대사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연출 또한 과장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B급 코미디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히트맨>이 빵빵 터지기 시작하는 건 준(권상우)과 그를 키워낸 악마교관 덕규(정준호)가 다시 만나게 되고 국정원 요원들을 암살해온 제이슨(조운)과 그 일당들은 물론이고 국정원 형도(허성태)의 추격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거의 코미디 콩트에 가까운 상황들이 벌어지면서다. 두 사람은 웹툰 속 전설적인 인물들이지만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어린아이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과장된 코미디는 역시 과장된 액션과 절묘하게 더해지면서 웃음과 동시에 액션이 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상황들은 웃긴데 액션은 의외로 고급지다.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건 역시 배우들이다. 권상우는 과거 <말죽거리 잔혹사> 이래 꾸준히 보여줬던 액션에 코믹한 캐릭터 연기까지 더해 마치 성룡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명절하면 떠오르던 성룡 영화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점, 권상우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충분할 것 같은 새로운 면모다.

 

정준호 역시 지금껏 봐왔던 어떤 역할보다 이 작품 속 망가지며 웃기는 코미디 연기가 제격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여기에 최근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통해 악역만이 아닌 코믹 연기도 잘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던 허성태나, 역시 코미디 연기에 가능성이 더 보이는 이이경과 황우슬혜가 더해지니 연기만 봐도 웃음이 풍성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귀요미 이지원의 연기. <스카이캐슬>에서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던 이지원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을 울리며 웃기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이번 설 연휴에 압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남산의 부장들>이 이병헌이나 이성민, 곽도원 같은 굵직한 배우들을 통해 시선을 끌고 있지만 영화가 너무 무거워 명절 흥행을 보장한다 말하기는 어렵다. <미스터주>나 <해치지 않아> 같은 동물 소재의 영화들이 자리했지만 역시 관객몰이를 하기에는 확실한 재미를 주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 <히트맨>은 의외의 복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 굳이 찾아서 볼 정도의 영화라 말하긴 어렵지만, 명절을 맞아 어떤 영화든 보겠다며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히트맨>처럼 조금은 별 생각 없이 깔깔 웃고 시원한 액션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선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사진:영화'히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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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새삼스러운 비감

 

이거 갱스터 무비 혹은 스파이 무비 아냐. 아마도 이 영화를 우리네 현대사를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게다. 총이 등장하고, 도청은 물론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팽팽한 권력 대결이 있고 정점에서 그 대결구도를 이용하는 독재자가 있다.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같은 한 나라의 중차대한 정책들을 결정하는 이들이 등장하지만 그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마치 갱스터 무비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욕설이 난무하고 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위협하기도 하며 몸싸움을 벌인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미국 측 인물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에게 ‘갱 영화’ 운운하는 대목은 그래서 흥미롭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에서 총이 일상적으로 꺼내지는 국정의 풍경이라니.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물론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지긴 했지만 우리에게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41년 전 궁정 안가에서 울려퍼진 총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쏴 시해한 10.26 사태가 그것이다.

 

영화는 혹여나 벌어질 수 있을 잡음들을 없애기 위해 실제 인물 대신 가상의 이름으로 대체했다. 김규평(이병헌)은 김재규이고 비서실장 곽상천(이희준)은 차지철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통(이성민)’으로 불린다. 이미 10.26 사태가 여러 차례 다큐와 영화 등에서 소개된 바 있어 누구나 보면 익숙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름을 이렇게 바꿔놓고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 벌어졌던 일들과 인물들을 촘촘히 구성해 채워 넣자 <남사의 부장들>은 진짜 갱스터 무비와 스파이 무비의 장르적 색깔을 드러낸다.

 

‘혁명’을 꿈꾸며 군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박통을 보좌하며 함께 걸어온 김규평은 그 장기집권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한다.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독재타도’와 ‘민주화’의 목소리들이 무력으로 눌러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마음은 더 오랜 집권에 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곽상천 같은 군 강경파의 달콤한 충성이 있었다. 수백만의 시위대들도 탱크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하는 얼토당토않은 말들이 무시로 오가고 또 그걸 지시하는 집권자. 게다가 그 독재자는 2인자를 키워주는 듯 이용하곤 내버린다.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임자 맘대로 해.”라는 대사로 집약되는 이 독재자는 알아서 충성하라며 일을 시키지만(심지어 사람 죽이는) 그렇게 일이 끝나고 나면 토사구팽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픈 현대사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이미 그 결론이 다 나와 있다. 박통은 그렇게 시해되고 곽상천도 그 자리에서 죽는다. 박통을 시해한 김규평은 사형 판결을 받고 이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혁(서현우) 보안사령관은 신군부 독재를 이어간다. 워낙 영화 같은 이야기인데다, 영화가 이를 갱스터 무비 같은 장르적 색깔을 더해 보여주고 있어 아는 이야기인데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는 영화.

 

하지만 그럴수록 새삼스런 비감이 느껴진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권력자와 그 권력을 주무르던 2인자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갱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렇다. 그건 영화적 각색 때문이 아니라 당대 시대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니 당대를 살았던 국민들은 얼마나 더 비극적인 삶을 겪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사진:영화'남산의 부장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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