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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맨', 명절 특수 누릴 복병으로 떠오르나

 

권상우 주연의 영화 <히트맨>은 사실 제목부터가 그리 확 당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권상우가 총과 연필을 양 손으로 쥐고 전면을 노려보는 포스터도 어딘가 B급 유머의 뉘앙스가 풍긴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은 관객 분들 중 이런 선입견 때문에 굉장한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의외로 웃기고 의외로 액션 터지는 <히트맨>에 적이 놀랐을 게다. 도대체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이 영화의 무엇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된 걸까.

 

한때 국정원에서 살인무기로 키워진 이른바 ‘방패연’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암살요원 준. 그는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죽음을 위장해 국정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한 참의 세월이 지나 아내와 딸을 둔 웹툰 작가로 연재하는 작품마다 악플 신기록을 경신하던 그는 술김에 1급 비밀인 자신의 과거를 그린 작품을 공개해버린다. 하루아침에 초대박이 나지만 그건 암살요원 준을 노리는 이들과 국정원 사람들이 그를 찾게 되는 이유가 되어버린다.

 

전직 국정원의 전설적인 인물이 정체를 숨기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일상인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은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는 다소 의도적으로 과장된 이야기와 연기, 연출을 더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뭘 그렇게까지 말하고 행동할까 싶은 장면과 대사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연출 또한 과장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B급 코미디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히트맨>이 빵빵 터지기 시작하는 건 준(권상우)과 그를 키워낸 악마교관 덕규(정준호)가 다시 만나게 되고 국정원 요원들을 암살해온 제이슨(조운)과 그 일당들은 물론이고 국정원 형도(허성태)의 추격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거의 코미디 콩트에 가까운 상황들이 벌어지면서다. 두 사람은 웹툰 속 전설적인 인물들이지만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어린아이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과장된 코미디는 역시 과장된 액션과 절묘하게 더해지면서 웃음과 동시에 액션이 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상황들은 웃긴데 액션은 의외로 고급지다.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건 역시 배우들이다. 권상우는 과거 <말죽거리 잔혹사> 이래 꾸준히 보여줬던 액션에 코믹한 캐릭터 연기까지 더해 마치 성룡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명절하면 떠오르던 성룡 영화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점, 권상우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충분할 것 같은 새로운 면모다.

 

정준호 역시 지금껏 봐왔던 어떤 역할보다 이 작품 속 망가지며 웃기는 코미디 연기가 제격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여기에 최근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통해 악역만이 아닌 코믹 연기도 잘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던 허성태나, 역시 코미디 연기에 가능성이 더 보이는 이이경과 황우슬혜가 더해지니 연기만 봐도 웃음이 풍성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귀요미 이지원의 연기. <스카이캐슬>에서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던 이지원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을 울리며 웃기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이번 설 연휴에 압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남산의 부장들>이 이병헌이나 이성민, 곽도원 같은 굵직한 배우들을 통해 시선을 끌고 있지만 영화가 너무 무거워 명절 흥행을 보장한다 말하기는 어렵다. <미스터주>나 <해치지 않아> 같은 동물 소재의 영화들이 자리했지만 역시 관객몰이를 하기에는 확실한 재미를 주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 <히트맨>은 의외의 복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 굳이 찾아서 볼 정도의 영화라 말하긴 어렵지만, 명절을 맞아 어떤 영화든 보겠다며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히트맨>처럼 조금은 별 생각 없이 깔깔 웃고 시원한 액션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선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사진:영화'히트맨')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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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새삼스러운 비감

 

이거 갱스터 무비 혹은 스파이 무비 아냐. 아마도 이 영화를 우리네 현대사를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게다. 총이 등장하고, 도청은 물론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팽팽한 권력 대결이 있고 정점에서 그 대결구도를 이용하는 독재자가 있다.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같은 한 나라의 중차대한 정책들을 결정하는 이들이 등장하지만 그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마치 갱스터 무비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욕설이 난무하고 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위협하기도 하며 몸싸움을 벌인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미국 측 인물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에게 ‘갱 영화’ 운운하는 대목은 그래서 흥미롭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에서 총이 일상적으로 꺼내지는 국정의 풍경이라니.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물론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지긴 했지만 우리에게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41년 전 궁정 안가에서 울려퍼진 총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쏴 시해한 10.26 사태가 그것이다.

 

영화는 혹여나 벌어질 수 있을 잡음들을 없애기 위해 실제 인물 대신 가상의 이름으로 대체했다. 김규평(이병헌)은 김재규이고 비서실장 곽상천(이희준)은 차지철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통(이성민)’으로 불린다. 이미 10.26 사태가 여러 차례 다큐와 영화 등에서 소개된 바 있어 누구나 보면 익숙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름을 이렇게 바꿔놓고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 벌어졌던 일들과 인물들을 촘촘히 구성해 채워 넣자 <남사의 부장들>은 진짜 갱스터 무비와 스파이 무비의 장르적 색깔을 드러낸다.

 

‘혁명’을 꿈꾸며 군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박통을 보좌하며 함께 걸어온 김규평은 그 장기집권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한다.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독재타도’와 ‘민주화’의 목소리들이 무력으로 눌러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마음은 더 오랜 집권에 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곽상천 같은 군 강경파의 달콤한 충성이 있었다. 수백만의 시위대들도 탱크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하는 얼토당토않은 말들이 무시로 오가고 또 그걸 지시하는 집권자. 게다가 그 독재자는 2인자를 키워주는 듯 이용하곤 내버린다.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임자 맘대로 해.”라는 대사로 집약되는 이 독재자는 알아서 충성하라며 일을 시키지만(심지어 사람 죽이는) 그렇게 일이 끝나고 나면 토사구팽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픈 현대사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이미 그 결론이 다 나와 있다. 박통은 그렇게 시해되고 곽상천도 그 자리에서 죽는다. 박통을 시해한 김규평은 사형 판결을 받고 이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혁(서현우) 보안사령관은 신군부 독재를 이어간다. 워낙 영화 같은 이야기인데다, 영화가 이를 갱스터 무비 같은 장르적 색깔을 더해 보여주고 있어 아는 이야기인데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는 영화.

 

하지만 그럴수록 새삼스런 비감이 느껴진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권력자와 그 권력을 주무르던 2인자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갱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렇다. 그건 영화적 각색 때문이 아니라 당대 시대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니 당대를 살았던 국민들은 얼마나 더 비극적인 삶을 겪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사진:영화'남산의 부장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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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최민식과 한석규의 브로맨스만큼 먹먹했던 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끈끈했던 관계를 브로맨스에 가깝게 그린 작품이다. 브로맨스를 넘어 로맨스에 가깝다는 관객들 반응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우정과 신의 그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여성 출연자가 거의 없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남성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지지만 때론 가슴이 설레고 때론 먹먹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

 

관노로 태어나 하늘과 별을 보는 걸 좋아했지만 고개 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아 땅만 보고 살았던 장영실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보고 세종은 함께 누워 하늘과 별을 보자고 한다. 세종은 왕의 자리가 늘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해야 하는 자리라서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이 좋았다고 한다. 가장 빛나는 별 북극성을 세종의 별이라고 말하며 천민으로서 자신의 별은 없다는 장영실에게 세종은 북극성 바로 옆에 있는 별을 “너의 별”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세종은 하늘의 별이 백성들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백성을 올려다보는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대사다.

 

하지만 왕이 관노인 장영실을 면천하게 해주고 나아가 관직까지 주며 총애하면서 사대부들은 반발하기 시작한다. 백성들이 모두 잘 살고 또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세종은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서 장영실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한다. 중화 사대에 젖어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중국의 시간을 강요하던 시대. 조선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격루와 간의 같은 천문기구를 만들기를 꿈꾸고 장영실은 그 꿈을 현실화해준다.

 

세종과 장영실의 끈끈한 브로맨스가 관객들을 설레게 하고 또 먹먹하게 울리는 이유는 단지 그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 같은 관계 때문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함께 꿈을 꾸고 실현해간다는 그 과정들이 주는 설렘과 먹먹함이 더해져 있다. 장영실은 세종이 그런 꿈을 꾸었기에 자신의 재주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하고, 세종은 장영실이 만든 그런 기구들이 있어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세상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허진호 감독은 역시 멜로의 대가답게 함께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촘촘한 감정 선을 이어 그려나간다. 세종이 한 마디 그저 던진 말을 실현해내기 위해 장영실은 쉬지 않고 손을 놀리고, 세종은 그렇게 거칠어진 장영실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 그 마음이 전해진다. 비 오는 날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는 세종을 위해 장영실이 처소에 마련하는 ‘밤하늘(?)’은 마치 이들의 서사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려진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함께 하늘과 별을 꿈꾸는 장면으로.

 

브로맨스가 이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무언가를 쉽게 꿈꾸거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제는 허망해진 현실의 판타지가 어른거린다. 꿈꾸고 노력한다고 그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 세상. 태생으로 결정된 대로 미래가 주어지는 세상. 그래서 더 이상 하늘을 보지 않게 된 우리네 청춘들이 처한 현실들이 저 세종 시절 장영실의 서사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남다른 울림을 만든다. 영화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진 건, 도대체 하늘을 쳐다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사진:영화'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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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충분한 볼거리·미약한 스토리, 그럼에도 이병헌과 하정우

 

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했다? 우리 재난영화 소재로 이만큼 좋은 게 있을까. 그건 단지 화산이 폭발해 도시를 잿더미로 만드는 그런 재난만 있는 게 아니라,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정세와 거기에 끼어드는 미국, 중국의 개입 같은 복잡한 상황들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백두산>은 그래서 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요한 건 화산 폭발과 지진과 여진 등으로 무너지는 건물 같은 블록버스터급 CG를 제대로 소화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유치한 B급 재난 영화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우려는 시작한 지 단 몇 분 만에 쉽게 해결해버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강남역에 건물이 무너지고 아비규환이 되는 그 상황은 우리의 CG 능력도 이제 꽤 수준이 높아졌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렇게 시선을 확 잡아 끌어놓고 이제 영화는 백두산에서 앞으로 벌어질 2차, 3차 화산 폭발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백두산의 폭발을 예측하고 연구해온 강봉래(마동석) 박사는 거의 확률이 없지만 시도해보지 않을 수 없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북으로 침투되는 요원들이 이야기가 긴급하게 전개된다. 전역을 앞두고 임신한 아내를 지키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조인창(하정우)은 북에서 만나게 되는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이자 이중스파이인 리준평(이병헌)과 티격태격 위험한 대결을 벌이며 함께 작전을 수행한다.

 

먼저 전제해야 할 건 <백두산>은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 영화를 끌고 가는 건 특정 상황들이 보여주는 볼거리들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듯 강남역 붕괴 장면, 북한 침투 시퀀스처럼 하나하나 볼거리의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를 즐기듯 별 생각 없이 빠져서 볼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볼거리에서 살짝 눈을 돌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클리셰를 보기 시작하면 <백두산>은 너무 진부한 작품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클리셰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남북 간의 관계를 다룬 우리네 영화들의 클리셰들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여기에 백두산이 폭발한 상황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아무런 대응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개연성 부족 또한 적지 않다.

 

그런 개연성 부족을 제작진들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영화는 의외로 재난장르에 남북관계를 담으면서도 코미디적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는다. 그건 대부분 북에서 만나는 조인창과 리준평의 티격태격 관계의 케미를 통해서 보여진다. 역시 이병헌과 하정우라는 배우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오히려 힘을 쪽 뺀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만일 이들이 힘이 잔뜩 들어가 저 절체절명의 상황에 과도하게 몰입하기만 하는 연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로 인해 영화가 가진 개연성 부족과 클리셰들이 더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게다.

 

<백두산>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CG 수준도 높아 보는 내내 스크린에 대한 몰입도도 충분하다. 하지만 스토리의 개연성과 클리셰는 많이 아쉽다. 그나마 이를 상쇄시켜주는 건 이병헌과 하정우의 연기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연기력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사진:영화'백두산')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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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한 발 뒤로 물러선 마동석이어서 더 좋았던 건

 

마동석은 마동석을 연기한다는 말이 있다. 또 마동석은 하나의 장르라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마동석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그의 존재감이 작품 전체를 장악한다는 뜻일 게다. 물론 그건 좋은 의미지만 마동석에게도 또 작품에도 반드시 좋을 수만은 없다. 결국 작품이란 여러 배우들이 골고루 보여야 그 울림이 커질 수 있고 마동석 자신도 자신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야 배우로서도 더 확장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 <시동>은 마동석을 대단히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관객들이 ‘마동석 영화’라고 부르는 작품에는 늘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손바닥 하나에 붕붕 날아가는 악당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물론 <시동>에도 그런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동>은 그런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는다.

 

대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 이를테면 학교도 중퇴하고 공부보다는 돈을 벌겠다며 가출한 택일(박정민)이나 어쩌다 사채업 일에 빠져들게 된 그의 친구 상필(정해인), 만만찮은 복싱 실력으로 걸 크러시를 보여주는 경주(최성은) 또 주방장을 꿈꾸는 배달원 배구만(김경덕) 같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물론 마동석이 연기하는 거석이라는 인물은 가출한 택일이 찾아가게 된 장풍반점의 주방장이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포스가 저절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풍반점을 두고 벌어지는 깡패들의 폭력 앞에 그는 전면에 좀체 나서질 않는다. 대신 거석이 초반 내내 보여주는 건 이 캐릭터가 주는 유쾌한 코미디적인 요소들이다.

 

<시동>은 그래서 이 만만찮은 포스를 숨기고 있는 거석이 언제 폭발할 것인가를 계속 기대하게 만들며 영화에 몰입시킨다. 그러면서 장풍반점에 오게 된 사람들과 그 반점을 운영하는 공사장(김종수) 그리고 택일의 친구인 상필과 택일의 엄마 정혜(염정아)가 처한 녹록찮은 현실들을 찬찬히 담아낸다.

 

코미디적 요소로 웃음을 계속 유발하지만 그 뒤에 남겨지는 짠한 현실들이 어떤 페이소스 같은 걸 그려낸다. 그것은 청춘들의 막막한 삶이고 또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점점 더 밑바닥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웃음은 조금씩 짠한 연민과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마동석 영화들이 이런 현실에 대한 통쾌한 주먹질로 사이다 판타지를 제공해왔다면, <시동>은 그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선택한다. 결국 제목에 담긴 것처럼 영화는 어떻게 삶의 새로운 시동을 걸 수 있는가에 대한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누군가가 주는 판타지를 기대하기보다는 “소중한 건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

 

마동석이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어서 <시동>은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다. 뻔한 마동석 영화가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살아나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동석이라는 배우에게도 새로운 시동을 걸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작품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작품을 살리는 배우 본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사진:영화'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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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바꾸는 영화의 풍경들

 

2020년 골든글로브상이 발표한 후보들을 보면 단연 넷플릭스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영화는 도드라진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두 교황>이 영화 작품상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오른 것. 드라마 부문 작품상 다섯 편 중 세 편이 넷플릭스 영화라는 건 지금 세계 영화판에 넷플릭스가 가진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건 이들 작품들이 가진 새로운 특징들이다. 사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특징은 극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점점 더 효과에 집중하고 실감나는 영상과 음향을 강조하면서 거기 걸리는 영화들도 그 특징에 맞게 변화한 면이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그래서 극장을 하나의 놀이공원이자 체험관처럼 만드는 극장용 영화들로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다 보니 영화 고유의 진중한 스토리텔링이나 미장센 같은 것들보다 효과에 집중되는 면들이 강했다. ‘볼거리 영화들’이 많아진 이유다. 하지만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를 보면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 그리고 조 페시, 하비 케이틀 같은 어찌 보면 자신의 영화적 아이콘들을 한 자리로 끌어 모아 “본래 영화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주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이 영화는 무려 런닝타임이 209분이나 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저 볼거리가 만드는 극장용 몰입감과는 너무나 다른.

 

<결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사랑했지만 작은 균열이 차츰 거대해지면서 파경을 맞게 된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결혼과 이혼, 사랑, 가족 등에 대한 의미들을 찬찬히 담아낸다. 대단히 극적인 사건들이 담겨지진 않지만 이혼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들이 굉장한 폭발력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사실 <아이리시맨>이나 <결혼 이야기>는 극장용 영화로 본다면 사실 기획되기가 쉽지 않고 또 나아가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애매한 작품들이다. 그건 작품이 가진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과 거기서 관객들이 요구하게 된 걸맞는 영화의 틀이 이들 영화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극장용 영화와 넷플릭스 같은 OTT에 세워지는 영화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런닝타임이다. 사실 <아이리시맨> 같은 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영화는 아무래도 극장에서는 부담스럽다. 물론 최근 들어 극장에서도 런닝타임이 긴 영화들이 세워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몇 편의 에피소드로 나눠진 영화들도 상영되었지만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블록버스터였다. 충분한 볼거리가 제공되기 때문에 한 편에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만으로 상영이 가능했던 것.

 

하지만 <아이리시맨> 같은 블록버스터라기보다는 긴 이야기에 가까운 영화는 얘기가 다르다. 어찌 보면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넷플릭스처럼 집에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극장은 어느 정도 거기에 적합한 러닝타임을 요구한다. 너무 짧아도 애매하지만 너무 길어도 성공이 어렵다. 그래서 한 시간이 살짝 넘는 정도의 중편 영화들은 극장에서 세워지지 않아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경향도 생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 같은 80분짜리 영화는 극장만이 플랫폼이라면 만들어지기 애매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한 때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방영하며 멀티플렉스와 한 판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다. 멀티플렉스가 영화를 걸어주지 않은 것. 하지만 최근 들어 멀티플렉스들은 넷플릭스 영화들을 하나 둘 걸기 시작했다. 물론 오래 걸어놓거나, 상영관을 많이 잡지는 않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마치 멀티플렉스가 그 특성상 만들어온 볼거리 경향을 이제는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맞춰진 영화들이 조금씩 보완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그 화려한 효과들을 보여주는 영화에 도취되어 잠시 잊고 있던 영화 본래의 맛을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오히려 복원해내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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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예약 ‘겨울왕국2’, 진취적 스토리와 퇴행적 독과점의 양면

 

영화 <겨울왕국2>는 개봉과 함께 어쩌면 일찌감치 1,000만 관객 돌파를 예약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개봉한 지 10일도 안돼서 무려 760만 관객(11월30일 기준)을 돌파했다. 2013년 개봉했던 <겨울왕국>이 애니매이션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넘겼던 걸 떠올려보면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일게다. 따라서 <겨울왕국2>가 1,000만을 돌파한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렇게 된 건 <겨울왕국2>가 이미 전편에서 드러냈던 것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불어넣은 색다른 공주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폭넓은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고, 거기에 디즈니 특유의 뮤지컬 무비가 갖는 감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 보면 물론 전편의 ‘Let it go’를 뛰어넘는 노래를 찾기는 어렵지만 ‘into the unknown’이나 ‘Show yourself’ 같은 꽤 괜찮은 음악들이 포진해 있다. 음악적 감흥도 감흥이지만, 스토리와 엮어져 그 노래가 전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 엘사와 안나의 메시지가 더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스토리도 <겨울왕국2>는 진일보했다고 보인다. 젠더적 관점의 변화는 더 명확해졌고, 거기에 소수민족 이야기와 환경 문제까지 더해져 다양한 페미니즘의 논제들이 영화 구석구석에 포진됐다. 무엇보다 엘사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 과정은 이야기로도 또 화려하고 역동적인 애니메이션의 표현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줄만하다. 또한 엘사와 안나, 그리고 그 부모와 그 조부모의 세대를 하나의 역사적으로 엮어 그 잘못된 역사를 현재 바로잡는 이야기 구성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겨울왕국2>가 거둔 성취가 돋보이는 대목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디즈니가 그려냈던 공주와 왕자 이야기를 별 거부감 없이 너무나 유연하게 뒤집어 놨다는 점이다. 젠더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단어만 들어도 어딘지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겨울왕국2>는 그 얘기들을 다 꺼내면서도 별다른 선입견 없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그건 젠더 이야기를 환경문제나 소수민족 문제까지 확장해서 끌어안았기 때문에 생겨난 자연스러움이다. 사람들은 젠더 문제에는 민감하지만, 그 확장일 수 있는 환경문제나 소수민족 문제에는 훨씬 포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품의 완성도로 충분히 평가받고 또 대중적 성공도 가져갈 수 있었던 <겨울왕국2>에 시작부터 불거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오점이 될 수밖에 없다. <겨울왕국2>는 상영점유율(63%)과 좌석점유율(70%)를 기록함으로써 <어벤져스:엔드게임>이 기록했던 상영점유율(80.9%)와 좌석점유율(8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독과점 비율을 기록했다. 결국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가 다양성 침해라며 비판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젠더와 환경, 소수민족 문제 같은 다소 소외된 것들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것들을 복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가 독과점 논란을 일으킨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건 극장 체인이 이미 지난 <겨울왕국> 1편의 성공을 통해 이번 2편의 성공도 일찌감치 예상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바람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가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영화의 메시지와는 정반대의 또 다른 피해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겨울왕국2>의 진취적인 메시지와 그와는 정반대 흐름을 갖는 독과점 문제의 공존을 들여다보면, 이제 기존 잘못된 질서와 자본을 비판하는 콘텐츠도 결국은 자본의 질서 안에 편입되고 있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왕국2>의 메시지와 완성도에 박수를 치면서도 남는 씁쓸함이다.(사진:영화'겨울왕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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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의 흥행실패, 과연 시국 때문 만일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전작이었던 <너의 이름은.>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370만 관객이라는 흥행을 거둔 감독이다. 국내에는 이미 그 작품 때문에 그의 전작들이었던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5센티미터> 등 또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 투자한 영화사측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첫 주말에 약 33만 관객을 동원한 것에 적이 실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관계자는 공식 입장문까지 내놨다.

 

공식 입장문의 주요 내용을 보면 <너의 이름은>에 비해 <날씨의 아이>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가 지금의 냉각된 한일관계 때문이라는 것이고, 이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이 토로되어 있다. 물론 지금의 이런 시국이 이 작품의 성패에 영향을 준 건 사실일 게다. 아무래도 일본 영화라는 사실이 주는 막연한 부담감(?)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주말에 33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과연 실패라고 볼 수 있는지, 또 그 실패의 기준으로 <너의 이름은>의 흥행 성공을 내세우는 것이 온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작품으로만 보면 <날씨의 아이>는 전형적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 스타일의 연출과 이야기 기법을 가져온 작품이다. ‘빛의 마술사’라는 지칭대로 빗방울 하나하나, 폭죽이 터지는 색감, 하늘의 풍경 등등이 만들어내는 감성들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색채로서 화려하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그 색깔에 빠져들면 단지 눈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보는 이들의 감성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날씨의 아이>라는 날씨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작품은 세계적인 기상이변 같은 지구적 위기의 문제를 특유의 판타지적 기법으로 들여다보고 머리만이 아닌 감성으로까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야망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그 기조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건 날씨가 사람들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그 사실이고, 그것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아니면 색채로 표현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감정 과잉 부분이 몰입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잔잔하게 흐르던 감정을 어느 순간 폭발시키고 그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마치 구호를 외치듯 대사를 던지며 부감으로 거대한 도시나 자연으로 확장되는 그런 영상 연출과 음악이 이어지는 그 연출방식은 이미 <너의 이름은>에서도 충분히 반복되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건 <너의 이름은>에서 큰 힘을 발휘한 연출이었지만, 이미 그것이 익숙한 관객들에게 비슷한 연출방식을 보이는 <날씨의 아이>가 그만한 효과를 발휘했을 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주관적 체험이고 그래서 그 반응은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영화의 흥행이란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날씨의 아이> 영화사측이 첫 주의 결과를 보고 내놓은 공식 입장문이 과연 공감할만한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공식 입장문에 담겨진 것처럼 영화사측은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감독 중 한 명의 작품’으로 <날씨의 아이>를 꼽고 있고 그래서 이 정도 성적은 일찌감치 실패이며 그 이유는 한일관계 때문이라 내놓고 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대단한 감독인 건 사실이지만, 모든 대중들이 영화사측처럼 생각하는 건 아닐 게다. 또 첫 주말에 33만 관객 수를 실패로만 보지 않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알겠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객관적 사실처럼 얘기하며 생각한 만큼 관객이 들지 않았다고 시국을 가져오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과 행동이 아닐까. 반드시 관객 수가 그 작품 완성도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사진:영화'날씨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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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와제네거, 제임스 카메룬 그리고 린다 해밀턴

 

1984년 처음 등장했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터미네이터>는 이 레전드가 될 영화의 신호탄이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서 온 인간과 터미네이터의 대결이라는 이 흥미진진한 설정에 확실한 아우라를 부여한 건 터미네이터로 등장했던 아놀드 슈와제네거였다. 그 정도로 부서지고 깨지면 끝날 법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계속 해서 공격하는 터미네이터라는 캐릭터는 당대의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제대로 본 궤도에 오르게 된 건 1991년 제작된 <터미네이터2>였다. 레전드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놀라운 스케일의 액션이 CG와 더해져 풍부해졌고, 스토리도 탄탄해졌다. 무엇보다 1탄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냈던 터미네이터가 이제는 유일한 미래의 희망으로 남은 존 코너를 지키는 수호천사로 미래로부터 날아온다. 더 강력한 액체 금속형 로봇 T-1000(로버트 패트릭)이 쉽게 파괴되지 않는 적으로 등장하고, 그와 무심한 듯 온몸을 던져 대적하는 T-101(아놀드 슈와제네거)의 압도적인 대결이 그려진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히어로가 합류하는데 그가 바로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다. 훗날 인류 저항군의 사령관이 될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사라 코너와 T-101의 T-1000을 물리치려는 사투가 벌어진다. 사라 코너는 이 미래를 두고 벌이는 사투 속에서 또 한 명의 여전사로서 강력한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그 후 <터미네이터>는 몇 편의 후속작을 내놨지만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했고 작품으로서의 호평도 받지 못했다. <터미네이터3>,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그 불운의 작품들이다. 거기에는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출연했다는 걸 빼놓고 <터미네이터> 1,2편이 보여줬던 그 독특한 세계의 압도적 긴장감과 페이소스 같은 걸 느끼기가 어려웠다. 제임스 카메룬과 린다 해밀턴의 부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 작품들이다.

 

이 일련의 흐름을 봐왔던 <터미네이터>의 원조 팬이라면 이번에 개봉한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에 이 세 사람이 뭉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렐 수밖에 없을 게다. 물론 감독은 팀 밀러가 맡았지만 제임스 카메룬이 제작했고 스스로 “2편에서 이어지는 속편”이라며 원조의 계보라는 걸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사라 코너로 린다 해밀턴이 합류함으로써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 골수팬들을 흥분시켰다.

 

이제 나이가 지긋하고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살이 가득한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이지만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는 놀랍게도 이들의 액션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젊은 피로 미래에서 온 슈퍼솔져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가 합류하고 그가 지키려는 대니(나탈리아 레이즈)가 더해졌지만 영화의 아우라를 장악하고 있는 건 역시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이다.

 

미래에서 온 새로운 터미네이터 ReV-9(가브리엘 루나)은 터미네이터 1탄과 2탄의 로봇이 결합한 듯한 형태다. 금속으로 이뤄진 터미네이터의 골격에 액체 형태로 형상이 마음대로 변환하는 T-1000이 분리됐다 결합했다 하며 대니를 제거하겠다는 목표하나로 앞뒤 재지 않고 공격하는 모습이 압도적인 액션으로 그려진다. 강력해진 적만큼 그와 대결하는 사라 코너와 T-800(아놀드 슈와제네거) 그리고 그레이스, 대니의 공조가 더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지금 시대에 걸맞는 젠더적 관점을 투영시켰다는 점이다. 린다 해밀턴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걸 크러시를 여지없이 멋지게 보여주고, 미래에서 온 그레이스의 놀라운 액션과 대니와의 워맨스가 보는 내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미래의 희망이 되는 자를 죽이려는 터미네이터와 그를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연대 그리고 이를 돕는 로봇 T-800의 구도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액션에 더 큰 몰입감을 주는 요소다.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거쳐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는 원조의 맥을 잇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이 들었지만 여전히 멋진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의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원조 팬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다. 그 액션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그 모습들이 중첩되어 불러일으키는 추억 게다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보이는 이들의 멋진 모습이 주는 기분 좋은 몰입감까지 느낄 수 있으니.(사진:영화'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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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극 같은 ‘82년생 김지영’, 그 담담함의 의미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평점 테러할 영화인가 하는 것이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전부터, 캐스팅 당시부터 쏟아져 나왔던 악플들과 비난들에 휩싸였던 작품이다. 이른바 남혐 여혐 갈등을 조장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어디서도 혐오나 갈등 조장의 연출이나 내용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물론 원작 소설도 ‘혐오’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는 더더욱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마치 한 편의 가족극을 보는 듯한 담담함.

 

가족극의 시선으로 보면 <82년생 김지영>은 육아와 가사 그리고 경력단절을 겪는 김지영(정유미)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인 문제를 갖게 되고, 이를 남편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나서서 해결하려 애쓰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잘 다니던 회사를 육아와 가사 때문에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이라는 주인공의 상황과, 그가 시댁에서 겪는 혼자만 소외되어 있는 것만 같은 상황은 여러 모로 젠더적 관점이 들어있다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어디 새삼스러운가. 종영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이야기고, KBS 주말드라마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시대는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사회적으로도 또 심지어 가족 시스템에서도 김지영은 스스로도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는다. 그래서 그는 어딘가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그냥 옛날 생각 자꾸 나고, 해 질 무렵에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데,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스스로도 괜찮다 말했던 김지영은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어쩌면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그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갑자기 다른 사람에 빙의해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김지영은 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쌓이고 쌓인 문제들을 끄집어내놓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자, 그 억압을 빙의라는 형태로 꺼내놓기 시작한 것.

 

사실 <82년생 김지영>에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이 빙의사건 정도다. 나머지는 김지영을 걱정하는 남편과 그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고 껴안아주는 어머니와의 공감이고, 빙의사건을 계기로 플래시백 되어 보여지는 과거 김지영이 살아왔던 삶 속에 저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차별들이다.

 

<82년생 김지영>에는 딱히 두드러지는 악역이 없다. 김지영의 시어머니도 또 친아버지도 차별 섞인 말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악의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명절에 며느리인 김지영에게 시누이가 귀한 만큼 며느리도 친정에 가게 해주는 배려 없이 “음식 좀 내와라”하는 시어머니는 물론 감정을 건드리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악의적인 건 아니다. 또 밤늦게 다닌다며 김지영을 나무라면서 “바위가 굴러오면 피해야 한다”는 논리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피하지 못하는 걸 나무라는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이지만 그건 악의라기보다는 살아왔던 사회에서 오래도록 그 가부장적 시스템 속에서 학습된 결과라고 보인다.

 

이건 아내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또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는 남편이지만,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선 김지영에게 “일 그만두게 한 것도 미안한데 그 딴 아르바이트나 하냐”고 말하는 남편 정대현(공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내를 누구보다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그가 처한 세계와 환경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김지영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자기 관점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 들어가 보는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 개봉 전 마치 엄청난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평점 테러까지 이어졌지만, 심지어 가족극처럼 보일 정도로 담담하고 소소하다. 그런데 이것은 이 작품이 소소해서가 아니라 김지영이 겪는 차별의 문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네 일상에 내재되어 있는 이른바 ‘먼지 차별’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영화가 더 극적인 상황이나 사건들을 가져왔다면 그건 특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문제로 오도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담담함과 소소함 속에 이 영화가 가진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이 다 함께 봐도 될 법한 영화다. 우리의 어머니와 우리의 아내 그리고 당대의 아버지들까지 모두 같이 겪었을 힘겨움을 새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한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공감대를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마치 성별 갈등을 조장하기라도 할 듯 오도하는 일이다. 평점 테러? 영화를 보면 그런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사진:영화'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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