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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떠올리는 별자리 이야기

당신이 가끔 고개를 쳐들고 별을 보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가.
지금도 저기 당신의 별은 빛나고 있건만,
당신은 지금 왜 고개를 떨구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별을 보던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꿈꿀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그 별
매포 외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길은 늘 낯설고 두려웠다. 버스가 당도하는 시각은 늘 어둠이 내린 한밤중이었고,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려면 빛 한 자락 찾기 힘든 캄캄한 길을 걸어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어머니는 어떻게 걸었던 것일까. 어린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그게 궁금했다. 배 건너 와요- 어둠만큼 깊은 정적 속에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 한참 후에 저편에서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나룻배의 움직임을 강물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겨우 알게 될 즈음, 문득 쳐다본 하늘 위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 빛 한 자락 없는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나며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던 그 별들은 지금도 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

물론 그 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이제 도시의 빛에 멀어버린 눈은 그 별을 바라보지 못한다. 별들은 분명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고, 지금도 건네고 있지만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어머니가 조곤조곤 들려주시던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갇혀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꿈으로 채워주곤 했다. 그 때 알았다. 이야기는 바로 꿈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선덕여왕'의 별자리가 상기시킨 것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이 끊임없이 그 때의 그 별자리를 상기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덕만(이요원)이 태어날 때 화두처럼 던져진 "북두칠성의 개양성이 둘로 갈라져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대적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은 바로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미실(고현정)과 덕만이 천문을 사이에 두고 권력의 대결구도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이 별자리의 이야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 인물의 정지된 화면 위로 반짝반짝 빛나며 별자리들이 드리워지는 엔딩장면은 오래도록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별자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별자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것처럼 이야기일 뿐이다. 하늘의 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별들은 그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일 뿐,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어머니처럼 그 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하는 사람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것은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주 오래 전, 하늘의 별빛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두려움의 하늘을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하늘로 변모시킨 이야기꾼은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아무 의미 없이 죽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었을 테니까. 그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었을 테니까. 이야기는 실로 꿈의 다른 말이다.

'선덕여왕'은 그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환상을 내세웠다면, 덕만은 희망을 내세웠다. 환상은 실체를 모르면서 이야기를 믿는 것이라면, 희망은 실체를 알면서도 이야기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별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별자리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삶의 계획들, 덕목들, 꿈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야기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을 실체로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당신의 별자리,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별자리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들이야말로 저 하늘의 별처럼 그저 흩어져 무엇이 될 지도 모르고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 존재들이 어떻게 삶의 목표를 만들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빈 도화지를 하나씩 받았고, 그 위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이야기들을 써나갔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별자리 이야기다. 당신 스스로 꿈꾸었던 인생이 이야기처럼 그 속에는 들어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일러주는 대로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빛 한 줄기 없어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암흑의 길 위를 한 발작씩 걸어왔다. 두려움조차 없이. 어떻게? 이야기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힘겨워질 때, 고개 숙인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바로 그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일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도시의 불빛에 멀어버린 눈을,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를 찾기 위해 한참을 달려 인적 드문 어딘가로 떠나도 좋을 것이다. 그 곳에 서서 어린 시절부터 늘 거기서 이야기의 빛을 쏟아내던 그 별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 그 상상의 힘을 복원하는 것. 당신이 힘겨운 것은 현실이 주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어느새 상상하기를 멈춰버린 당신 자신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을 보자. 적어도 하늘에 붙어 있는 별은 숙여진 당신의 고개를 꼿꼿이 쳐들게 할 것이니.

Posted by 더키앙

똑똑한 TV의 시대, 새로운 가족의 풍경

자물쇠를 찬 바보상자, 옛날TV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TV에 대한 첫 기억으로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자물쇠’라고 말할 것이다. 큰 맘 먹고 아버님이 모셔온(?) TV는 방 한 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접근 불가능의 물건이었다. 가구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던 그 녀석은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양옆으로 연 후에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교육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 시기, 이른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저희들끼리만 보려고 누군가 고안했던 고약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가린다고 안볼 우리들이었을까. 저녁 시간마다 TV를 볼 수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가는 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결국 서랍장에 모셔둔 TV 때문에 밖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백기를 든 아버님은 저녁 공부 몇 시간을 조건으로 자물쇠를 풀어내며 감금된 TV를 해방시켜주었다. 그 순간,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저 바깥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던 우리들의 눈도 해방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보상자이기는커녕 온갖 진기한 세상의 일들을 바로 눈앞으로 가져다 주는 놀라운 알라딘의 마술램프가 아니었나 싶다.

TV는 늘 집안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고, 가족들은 TV를 중심으로 저녁을 보내기 시작했다. TV가 점점 많이 보급될수록 동네의 유대감도 TV로 매개되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프로레슬러 김 일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연실 박치기를 해댈 때마다 온 마을은 들썩거렸고, ‘짜자자잔짜잔 -’하는 특유의 시그널송이 울리면 당연히 그 앞에 앉아 봐야만 했던 ‘수사반장’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은 묘한 집단적인 도취감마저 느끼게 했다. 바보상자로 서랍장 속에 가둬져 있던 TV는 어느새 가족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상시대, 여가로 자리한 TV, 가족을 대리해주다
80년대 컬러TV시대가 열리자 바뀌어진 총천연색 화면은 그 때까지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신기하기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명암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흑백TV가 가진 그 아우라를 깨버린 것은 바로 그 컬러영상이 아니었나 싶다. 컬러시대와 함께 현란해진 광고들은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영상은 점점 대중화되었다. 이른바 영상시대에 우리는 들어와 있었다.

때마침 등장한 리모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광고들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 전에 방영되던 수십 개에 달하는 광고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TV 앞으로 가서 드륵 드륵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채널을 바꿔주는 리모컨은 멀찌감치 놓여진 소파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TV 시청을 새로운 여가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에서부터 ‘게리슨 유격대’, ‘맥가이버’에 이르는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은 지금의 미드 열풍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던 당대에 ‘주말의 명화’는 안방극장이란 말을 탄생케 했다.

가족들은 이제 집에서의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TV를 통해서 하기 시작했다. 리모콘을 누가 쥐는가는 그 가족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느냐를 대변했고, 그것에 따라 가족들은 멜로 드라마를 보며 울거나,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거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웃곤 했다. 오랜 시간 가족의 중심에 서있던 TV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고, 심지어 핵가족화되고 개인화된 공간으로 사라진 가족을 대리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똑똑한 TV 시대, 시공을 넘어 개개인의 삶 속으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컴퓨터는 점점 TV를 향해 진화했고 결국 이 두 지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IPTV가 등장했다. TV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즉 송출하는 영상을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은 수정되어야 했다. 이제 자신이 보고싶은 영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 있고, 보다가 무언가 해야할 다른 일이 생기면 화면을 멈춰놓을 수도 있다. 물론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보면서 좀더 분석적으로 TV를 바라볼 수도 있다. 분석적인 시선들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지고 그 힘이 모아져 TV가 독주하는 것을 견제한다. IPTV 시대의 TV란 이제 늘 대상으로서 시청자를 세워놓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집중되는 존재로 변모했다. 이른바 똑똑한 T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동네에 한 대 있는 TV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어린 시절과, 또 TV 한 대를 놓고 서로 가족들이 리모콘 쟁탈전을 벌이던 시대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실로 수없이 많은 TV들에 둘러싸여 가족의 풍경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거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 TV와 버리기에는 아까워 안방 한 구석에 놓아둔 옛날 TV는 물론이고, 버튼 하나로 유선TV로 변신하는(?) 모니터, 자동차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네비게이션 속으로 들어온 DMB,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꺼내 TV를 볼 수 있는 휴대폰까지. 가족들은 저마다의 시공간 속에서 TV(이제는 그저 영상이라 불리는)와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본방을 사수하고 있을 때, 자녀들은 DMB나 모니터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고, 못 본 프로그램들은 IPTV를 통해 언제든 내려볼 수 있게 되었다. 다운로드를 통한 시청은 몰아보기 같은 새로운 시청 패턴을 만들어 이제 주말 가족의 여가풍경을 바꾸기도 했다. TV를 중심으로 채널권으로 대변되는 가족 간의 관계는 이제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매체 선택 가능성(시공간을 넘어서는)으로 인해 좀더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에 의한 강권이 아닌, 저마다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이 똑똑한 TV의 시대에 이제 바보상자는 자물쇠가 채워진 저 과거의 서랍 속에 넣어진 옛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우리 가족 구성원의 풍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하지만 TV가 똑똑해지거나 아니면 바보로 있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이제 당신의 집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가족을 돌아 보라. 그 가족은 충분히 똑똑한가, 아니면 여전히 바보인가.(이 글은 IPTV가이드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MBC스페셜’ 곰배령 사람들 편에서는 강원도 오지 중의 오지인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취재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길에 바퀴가 빠져버리자 취재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뒤에서 차를 민다. 그것은 만일 현지에 살아가는 생활인들이라면 몹시 곤란하고 귀찮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를 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는 그 사건(?)조차 일상의 파격이 주는 어떤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결국 차가 오를 수 없는 길에서부터 카메라와 장비를 메고 한 시간이 넘게 산을 올라가야 했다.

현장에서조차 현지인들과 방문인들의 느낌이 이다지도 다른데, 오지에서의 삶에 대한 현지인들의 느낌과 그걸 편안하게 집안에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며 보는 우리의 느낌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 아름다운 곰배령의 눈과 자연 풍광이 담겨진 영상 속에서 현지인들이 겪는 실제 삶의 아우라는 이미 여러 차례 벗겨져 있다. 시청하는 입장에서 그 곰배령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노스탤지어의 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는 이미 카메라와 TV의 인공적인 작업들에 매개된(그래서 익숙한) 산골이 있을 뿐, 실제 혹한의 날씨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밤의 포근한 어둠이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을 감싸안는 그 느낌, 산골 생활에 귀할 수밖에 없는 생선 요리가 주는 미감, 인공이 삭제된 공간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야생화들, 그 야생화에서 벌들이 모아놓은 벌꿀을 손으로 직접 뜯어먹는 그 느낌 같은 것들은 체험될 수 없다. TV 속의 곰배령은 따라서 엄밀히 말해 진짜 곰배령이 아니다.

‘곰배령 사람들’같은 다큐멘터리는 그래도 촘촘한 취재를 통해 현실에 가까운 곰배령을 재현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은 어떨까. 이른바 여행 버라이어티쇼가 주말이면 몇 명의 캐릭터들을 내세워 여행을 대리하고 있고, 아침방송과 저녁방송에서는 매일 여행지로 달려간 리포터들이 현지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시청자들 앞에 날라다주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의 향수를 채워주기 위해 매개된 영상이 여행을 대리해주는 것을 그다지 나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매개된 영상이 바꿔놓는 진짜 여행지의 모습이다.

진짜 시골은 ‘패밀리가 떴다’가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이 삭제된 공간이 아니며, ‘1박2일’이 보여주는 것처럼 먹거리를 놓고 복불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매개된 삶이 더 리얼하게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이 진짜가 아닌 여행지의 영상들은 진짜 여행지를 바꿔버린다. 종종 촬영에 따른 현지인들의 불만이 논란거리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워낭소리’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성공하자 경상북도가 이 촬영지를 관광상품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매개된 영상이 삶의 공간마저 여행지로 바꾸는 이 현상은, 이제 노동실종의 시대에 시골이라는 공간이 노동과 삶의 공간이 아닌 전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다이어트

“다이어트 아니면 죽음을(Diet or die!)!” 이 말장난 같은 문구가 식상해질 정도로 다이어트는 이제 생활이 되었다. 과거 같으면 “다이어트를 한다”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표현 속에 다이어트가 있었다면, 지금은 “운동을 한다”거나 “좀 덜 먹는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행동방식으로 다이어트가 들어와 있다. 이것은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이 이제는 삶의 한 행동양식 속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굶어서 병나던 시대에서 많이 먹어 병나는 시대로
우리나라에서 다이어트라고 하면 최근의 일처럼 여겨지지만 서구에서 다이어트의 역사는 꽤 이전으로 돌아간다.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인 지나 콜라타가 쓴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에 의하면 서구에서 다이어트는 이미 19세기에 광풍이 불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바이런은 식초 다이어트의 선두주자였으며, 저단백 다이어트,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등등 다양한 다이어트 비법들이 이미 당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다이어트를 얘기한다면 일단 80년대는 들어서야 그 본격적인 유행의 흐름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몇몇 특정 계층들은 그 이전에도 서구의 다이어트를 생활 속에서 실행하고 있었겠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유행처럼 퍼진 것은 그나마 좀 먹고 살기 시작해지는 80년대 이후부터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80년대 이전까지 우리의 관심사는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그 때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음식을 통해 축적할 수 있는가 하는 ‘영양’에 있었다. 70년대 짜여진 영양식단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그 영양의 3대요소로서 우리 생활에 이것을 어떻게 골고루 섭취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균형 잡힌 식단’에 있다. 이른바 식품 피라미드에서 위 3대 요소는 그 피라미드 속에서의 위치가 정해진다. 피라미드의 맨 밑 부분은 곡류, 즉 탄수화물이 차지하고 맨 윗 부분은 육류 즉 지방과 단백질이 차지한다. 그런데 이 피라미드의 중간에는 과거의 3대 요소 이외에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채소와 과일 즉 비타민, 무기질, 섬유질 같은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추가된 것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것들은 실제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요소들이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를 대사시키는데 활용되는 요소들이다. 이처럼 지금 같은 과잉영양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먹는 것은 오히려 병을 일으킨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못 먹어서 병이 났고,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 병이 난다. 따라서 과거의 관심사는 잘 먹는 것이었고, 지금의 관심사는 오히려 잘 배설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들어 점점 늘어가는 위장질환과 장 질환, 고혈압,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들은 바로 이런 변화를 말해주는 바로미터다.

정신의 시대에서 몸의 시대로
그러나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은 위에서 언급한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다. 20세기 후반까지 사실상 몸은 정신의 지배를 받으며 핍박받는 존재였다. 수행을 위해 고행하는 몸과 시각이 주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위해 코르셋에 구겨 넣어지는 몸이란 존재는 늘 정신의 하위의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과학의 시대가 인체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몸은 오히려 정신을 지배하는 그 무엇으로 바뀌어졌다. 몸의 생리학적인 변화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몸의 시대를 열었다.

몸은 더 이상 숨기거나 억눌려져야될 존재가 아니라 드러내고 가꾸어져야할 존재로 변모했고, 따라서 몸 가꾸기는 당당해졌다. 과거에 똥배는 인격이라는 정신적인 무엇을 뜻했지만, 지금은 그저 축 늘어진 비계덩어리로 거꾸로 그 사람의 게으름과 나태를 뜻하게 되었다. 몸 가꾸기는 보기 좋은 외모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다이어트에 대한 작금의 지대한 관심은 바로 이 몸의 시대가 가져온 변화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몸의 시대로의 변화는 시대적 흐름일 뿐, 거기에 어떤 가치판단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몸의 시대가 가진 긍정적인 요소, 즉 몸을 가꾸고 또 그로 인해 건강을 챙기며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유하겠다는 그 목적에 우리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무식한 살 빼기, 똑똑한 다이어트
다이어트에 대한 수많은 유행 속에 숨겨진 것은 두 가지다. 다이어트의 방법들은 유행처럼 돌고 돈다는 것과, 결국 다이어트의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단식이나 절식으로 살을 빼려고 노력한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거꾸로 몸의 역공(?)을 받을 수 있다. 적게 먹는다는 것은 몸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결국 몸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저장하려 하며, 그것은 결국 지방(이것이 지방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을 더 만들어내게 만든다. 한 가지 음식만을 섭취해 살을 빼겠다는 건, 마치 영양 불균형을 스스로 초래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우둔한 생각이다. 운동도 가장 안전한 방법처럼 소개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몸을 망치게 만든다. 운동은 신체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스. 따라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은 신체는 비정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증상으로는 급성적으로 심한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으로 나타나며 만성적으로는 근육통, 만성피로 등이 나타난다. 또한, 소위 과사용증후군이라 불리는 근육이나 관절의 각종 손상 등도 가끔 발생하게 된다. 또 편안하게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방흡입술 같은 몸에 칼을 대는 과감한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미 몇몇 언론에서 발표된 것처럼 이것은 보조적인 것일 뿐, 그 자체로 살을 빼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따라서 똑똑한 다이어트를 하려면 일단 기본적인 생활 속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쉬운 말이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그것은, 좀 적게 먹는 습관을 들이고 적당한 운동을 무리하지 않고 매일 해주며, 지나친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을 오히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똑똑한 다이어트가 무식한 살빼기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생활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속성 코스의 어떤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삶은 자연스레 당신의 진정한 다이어트를 이루어주는 열쇠가 된다.

삶의 다이어트, +사고에서 -사고로
자 이제 몸의 시대에서 방만해진 몸을 거꾸로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사고이다. 균형 잡힌 삶이란 당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 즉 생활의 다이어트는 당신의 정신과 몸을 모두 균형 잡히게 해주는데, 그것은 사고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먼저 버려야 할 것은 과거의 플러스(+)적인 사고관을 버리는 것이다. 플러스(+)적인 사고관이란 무언가를 축적하기 위해 살아가는 욕망의 사고관이다. 더 많은 돈을 축적하고, 더 좋은 차를 사고, 더 넓은 집을 사고, 더 좋은 음식을 먹겠다는 욕망의 사고관은 삶의 비만을 만든다. 욕망에 가득한 삶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보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부작용이다.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만 살찌우면 그만이라는 가족이기주의는 그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 플러스(+)적인 사고관이 가져오는 이러한 병폐는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대신 조금씩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비워나가는 마이너스(-)적인 사고관은 이미 풍요라는 이름으로 비만병의 징후를 앓기 시작한 이 시대에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자신이 쓸 만큼을 쓰고 주위와 나누는 그런 사고방식,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해서 소비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욕망 자체를 줄이겠다는 환경 생태적인 사고 같은 것이 마이너스(-)적인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촌에서 어느 나라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 죽고, 어느 나라는 먹을 것이 넘쳐나 과잉되어 죽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플러스적인 사고관이 만들어낸 자원의 동맥경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수술이 중요한 것처럼, 아예 이런 흐름이 막히는 것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면 이 시대에 맞는 사고관이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당신이 고민하는 당신 몸의 다이어트의 문제는 그저 당신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지구 위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연관되어 있는 삶의 균형의 문제이다. 우리들 하나 하나가 그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려고 할 때, 그것을 어떤 구호 같은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당신의 몸을 변화시키고, 당신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당신이 살아가는 사회와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당신의 균형잡인 삶은 지구라는 존재가 현재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줄 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세계 최초 유기농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

이젠 뮤지컬도 유기농(?) 시대인가. 세계 최초 유기농 뮤지컬을 주창한 ‘총각네 야채가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뮤지컬은 현실에 치이면서도 좋은 야채와 과일을 소비자들에게 전하겠다는 꿈으로 야채가게를 낸 다섯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왜 처녀도 아저씨도 아줌마도 아닌 굳이 ‘총각네’ 야채가게였을까. 그것은 ‘총각’이라는 이미지가 갖는 독특한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열정에 가득 차 있고, 꿈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배고프지 않은 그 젊음. 하지만 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을 또한 온몸으로 느끼며 때론 좌절하고, 때론 엇나가는 그 젊음의 굴곡. 그래도 순수함을 잊지 않고 초심을 지키려는 젊음의 건강함 같은 것들이 그 단어 하나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야채가게가 갖는 두 가지 의미, 즉 건강과 상품이라는 두 가치는 총각들이 갖게 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즉 좀더 값싸게 좋은 야채와 과일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건강한 마음은 이 젊음들에게는 이상이지만, “그래도 장산데...”하는 마음에서 남는 상품을 팔고자하는 욕망은 현실이다. 그러니 ‘총각’과 ‘야채가게’는 그렇게 잘 맞는 궁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기농 뮤지컬’이라는 말은 단지 이 뮤지컬의 내용이 좋은 야채와 과일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뮤지컬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들, 예를 들면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와, 그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세트들, 그리고 그 위를 가득 메우는 대규모 인원들의 군무 같은 것들과는 이 뮤지컬이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화려한 무대의 장면들에 넋을 잃고 보다가 극장 문을 나설 때 무언가 허전함이 남았던 기억. 그 허전함의 실체는 어쩌면 뮤지컬의 본 맛(그 뮤지컬만의 내용이나 형식)보다 조미료 맛(뮤지컬이라면 흔히 떠올리는 코드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새로움은 별로 없고 그다지 메시지도 없는 뮤지컬이 화려함이라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명품 뮤지컬로 둔갑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총각네 야채가게’가 유기농인 점은 바로 그런 포장을 걷어냈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소박한 야채가게로 시선을 낮추자, 뮤지컬은 볼거리를 넘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뮤지컬은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 세상에 대한 지켜야할 것과 지켜지지 않는 현실, 상품논리와 대결을 벌이는 먹거리의 문제 같은 많은 이야기들을 그 총각들을 통해 보여준다.

볼거리와 화려함보다는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뮤지컬이 ‘총각네 야채가게’다. 이 뮤지컬은 또한 극작가이자 방송작가, 그리고 연극배우인 이재국 작가가 만든 청춘스토리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풋풋함이 살아있는 ‘총각(?) 뮤지컬’이지만, 한편으로 기존 뮤지컬에 익숙했던 분들에게는 밋밋한 맛을 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부분들이 어떤 지점에서는 의미과잉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조차 이 뮤지컬의 어떤 제스처로 읽혀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무래도 유기농이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맛보다는 의미를 찾게 되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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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이야기,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예쁜 공주가 나와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이야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백설공주 이야기는 이제 어린 아이들마저도 하품을 할 정도의 컨텐츠가 되었다. 지금은 못생겨도 당당하고 능력 있는 피오나 공주가 차라리 박수를 받는 시대. 능력 없이 오로지 예쁜 외모만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백설공주는 시대착오적인 컨텐츠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후 백사난. 본래 표준말은 난쟁이지만 작가가 난장이라 표현함)’는 어떤 식으로든 본래 동화의 재해석을 요구한다.

가장 흔한 동화로 가장 특별한 사랑을 전하는 연극
이 2001년부터 무려 8년 동안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백사난’이 원작 동화에서 선택한 것은 공주가 아니라 난쟁이다. 일곱 난쟁이 중에서도 가장 작은 막내이자 벙어리인 반달이를 그 중심에 세우자 이야기는 왕자 공주 같은 높으신 분들에서 아주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백사난’이 거기서 발견한 것은 왕자와 공주 같은 표피적인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깊고 보편적인 인간애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왕비의 음모로 난쟁이들이 사는 안개숲에 들어온 백설공주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왕비는 계속해서 백설공주를 죽이려 한다. 그 때마다 백설공주를 사랑하는 막내 반달이가 나서서 그녀를 구하는데 마지막 저주를 풀기 위해 데려온 왕자와 깨어난 공주가 결혼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반달이는 끝내 자신의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죽고, 안개꽃 속에 묻힌다는 이야기. 작고 말도 못하지만 가장 큰 사랑을 한 반달이의 이야기는 그다지 복잡하고 무언가 대단한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이 연극이 어린이극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단순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웬 일일까. 이 어린이극에 차츰 어른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왠만한 복잡한 사연의 이야기에도 끄덕 없던 그들이 연극의 말미에 가서는 함께 간 아이의 손을 잡고 대책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된 것은.

대사보다 강한 동작의 진정성, 몸으로 표현하다
그 이유는 이 연극이 대사보다는 동작으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다. 말 못하는 반달이가 백설공주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추는 춤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렬하게 진심을 전해준다. 따라서 이 연극의 진짜 힘은 백설공주 스토리의 재구성에 있다기보다는 연출의 힘에 있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형식 상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이 마치 그림동화책을 읽어주듯 마임과 춤과 노래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연극은 그 몸의 언어가 가진 진정성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준다. 몸의 언어는 말의 내용이 담은 앙상함을 넘어서 그 행위 자체에 마음이 깃들기 마련이다.

단순한 천 조각 몇 개로 바다에 빠진 백설공주를 구해내는 반달이를 표현하고, 등장인물들이 몸으로 만들어낸 계단과 바다를 지나 공주를 구할 수 있는 장미요정의 눈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하나의 짧은 무용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말보다는 동작으로 그려주는 연출은 그대로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감동을 주는 그림동화책 같은 효과를 준다. 가장 인상깊고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은 마치 글자 가득한 페이지를 읽고서 넘긴 다음 페이지에서 보게된 양면 가득한 그림이 주는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어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 것은 바로 이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연출이 가진 단순함과 순수함이다.

사회적 약자, 미(美) 그리고 자연
게다가 이 연극은 시점을 공주에서 난쟁이로 낮춤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끌어낸다. 연극 속에서 인간들은 난쟁이를 못살게 굴었고 그래서 안개숲 속에 숨어살게 된 것. 하지만 그 숲에 들어온 백설공주를 두고 난쟁이들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난쟁이들은 자신들의 집을 깨끗이 치워준 공주의 착한 마음씨를 보고 함께 살자고 한다. 이를 통해 외모(피부색이나 장애 같은)를 통한 편견을 가진 인간들과 마음을 쳐다보는 난쟁이들이 대비된다. 난쟁이들 중에서도 막내, 게다가 말조차 못하는 달님이가 주인공인 점은 이 연극의 낮은 곳에 대한 깊은 애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이 연극은 미(美)를 지키려하는 예술에 대한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백설공주는 바로 미의 상징이며, 난쟁이가 ‘땅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황금을 찾아내 갈고 닦아 아름다운 보물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을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의 추악함을 상징하는 왕비가 바로 그 미를 없애려하는 자이며, 난쟁이는 그 미를 구하려는 존재로서의 예술가로 그려진다. 결국엔 안개꽃밭이라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감으로써 이 예술가는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체로도 읽혀진다. 개인적인 욕망으로 채취하려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주는 자연.

‘백사난’의 이 다채로운 시선들은 보여지는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강변하기보다는 습자지에 빨려드는 물기처럼 보는 이의 온 몸으로 흡수된다. 연극의 끝자락에서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은 스며든 물기가 어느새 당신 가슴 가득 차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동화의 힘이기도 하다. 그 순수한 동화의 세계 속에서 잊고 있었던 단순하지만 위대한 사랑을 발견하게 하는 연극, ‘백사난’을 보고 나오는 길, 어쩌면 당신의 마음 속에는 그토록 사랑스러운 난쟁이가 안개꽃 숲에서 춤을 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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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좋아해’, 두시간 반짜리 추억여행

불이 꺼지고 부분 조명이 떨어지는 곳에 한 연사가 등장하더니 7,80년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고서는 난데없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한다. 모두 기립! 하는 그 소리에 관객들은 저마다 킥킥대며 일어나 태극기를 바라본다. 그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젊은 관객들은 이 진풍경이 신기하기만 한 모양. 앉은 채 이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집단적인 동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의 시작은 이처럼 보다 적극적인 관객들의 동의를 요구한다. 저녁 6시가 되면 애국가가 흘러나오며 모든 국민이 멈춰 서야만 하고, 극장에 가서도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 애국가에 대한 예의를 표해야하던 그 옛날의 국민의례란 지금 이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웃음이 터질 만큼 말도 안 되는 상황일 것이다. 그것은 70년대 개발독재를 살아왔던 중장년층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중장년들을 위한 헌사
하지만 이미 그 어두운 시대의 터널을 지나온 자들의 여유랄까. ‘진짜 진짜 좋아해’의 도입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의례조차 이제는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어버렸다. 억압의 기억조차 이러할진대 그 억압 속에서 숨통을 틔게 해주었던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들이 오죽할까. 새마을운동이다, 수출목표 달성이다 하며 쉴 새 없이 살아가던 당대의 일꾼들, 지금의 중장년층들에게 당시 뮤지컬이란 호사 중에 호사였을 터. 그네들이 향유했던 문화의 기억은 오히려 저자거리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나, 심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볼 수 있던 청춘영화 한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가 77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와 같은 해 발표된 혜은이의 노래를 뮤지컬 속으로 가져온 것은 바로 그 중장년들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가가 사치였던 그들에게 바치는 두 시간 반 짜리 추억여행. 스토리 위에 음악을 만들어내는 뮤지컬과 달리, 노래를 중심에 세우고 부수적으로 스토리를 끼워 넣는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받는 ‘손 안대고 코 풀었다’는 비판은 이 뮤지컬에서도 그 혐의를 벗기가 어렵지만, 굳이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그저 흘러나오는 당대의 음악 속에 또 그 조금은 구닥다리의 이야기(이것은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다)를 보면서 너무 바빠 잊고 살아왔던 과거의 추억과 조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코드들과 유행가
고고음악이 흘러나오는 롤러스케이트장, 청춘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빵집, 정동의 마이하우스, 백마역의 화사랑, 통행금지, 양평 보트장, 조다쉬 청바지와 케리부룩 숙녀화, 교복, 장발단속, 통기타, 버스 안내양, 흥얼대던 맛동산 노래, 봉황기 고교야구대회, 교회와 그 종탑 등등. 추억을 끄집어내는 시대적 코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잊었던 청춘의 기억들은 새삼스러워진다. 여기에 스토리와 묘하게 연결되면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그 자체로 즉각적인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벗님들의 ‘당신만이’는 인물들 간의 사랑의 감정이 피어날 때 흘러나오며 그 아릿한 감성을 전해주고,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는 통행금지와 맞물리면서 당대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풀어낸다. 윤시내의 ‘열애’는 그 진지한 분위기가 사랑의 열병에 달뜬 인물과 만나면서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고, 혜은이의 ‘진짜 진짜 좋아해’는 프로포즈 장면과 딱 들어맞는다. 물 흐르듯이 스토리 전개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듣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 속에 있던 그 무언가를 꺼내주는 뮤지컬
그리고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순간이 바로 이 뮤지컬이 도달하려는 지점이다. 이 뮤지컬은 7,80년대의 상황을 보여주기보다는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들의 마음 한 구석에 뽀얀 먼지를 쓰고 있던 당대의 앨범을 스스로 열게 만든다. 늘 일에 지쳐 무엇에 쫓기듯이 살아오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데는 인색했던 그네들에게 뮤지컬은 더 신나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라고 등을 떠민다. 그 때의 무채색 노동의 기억들 속에서 순간 순간 빛나던 총천연색의 향수 어린 추억들을 끄집어 내놓고는 그것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시간임을 증명해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춘의 기억이다. 강압적으로 머리가 깎이고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어야 하고, 치마 길이가 짧으면 단속에 걸리던 시절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만큼 아름다웠던 청춘. 누구에게나 한번쯤 열병처럼 다가왔던 첫 사랑의 기억. 지금은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때는 장난기 많고 반항적이던 친구들과의 추억. 처음 국민의례에서 쭈삣대던 당신이 어느새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벌떡 일어나 함께 합창을 하게되는 건 가진 건 없어도 그것 하나면 충분했던 당신의 청춘을 그 지점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 감상 포인트
- ‘거침없이 하이킥’의 OK해미, 박해미와 연기는 물론 예능프로그램에도 나와 웃음을 주는 박상면, 그리고 허리케인 블루의 김진수, ‘며느리 전성시대’의 이필모 같은 쟁쟁한 배우와 개그맨이 춤추고 노래하며 애드립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 송골매의 메인보컬이었던 구창모가 음악감독을 맡아 수십 곡에 달하는 7080 유행가들을 선별했다. 트로트에서부터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
- 가만히 앉아 감상만 하는 뮤지컬은 No! 익숙하고 흥겨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등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뮤지컬이다.
(사진 : (주)트라이프로(www.tripro.co.kr/jinj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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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보다 값진 것들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전을 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위해 마련된 공연. 인순이가 무대 위에 올랐을 때, 이미 객석의 선수들의 눈은 젖어있었다. 이제 인순이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그녀의 노래, ‘거위의 꿈’은 온 선수들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메달을 따고 못따고가 뭐가 중요할까. 그 순간 선수들의 가슴 속에는 똑같은 공감의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날갯짓을 해온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쳐주는 아낌없는 박수였다.

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단연 금메달. 하지만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선전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실상 올림픽이라는 국가적인 이벤트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를 잃게 되는 격이다. 올림픽의 금메달보다 값진 것들은 성공보다 아름다운 실패이며, 그림자에서 빛을 향해 걸어나왔다는 그 자체이자,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자신의 한계와의 싸움에서의 승리이다. 올림픽의 진짜 메시지는 승리하기 위해 치르는 전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 같은 한계와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피어나는 평화다.

성공보다 아름다운 실패, 이배영의 역도
경기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중국 관중들은 자국 선수들이 출전했을 때는 환호를 질렀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이 출전하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162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몸무게 72킬로그램의 적은 체구의 우리나라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작은 몸 앞에는 자기 몸무게의 두 배가 훨씬 넘는 184킬로그램의 역기가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 선수는 첫 번째 시도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불운을 겪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2차 시도에서 186킬로그램을 신청했지만 역시 실패. 3차 시기 역시 실패할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올라 환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 그는 마지막 3차 시기에서 결국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하지만 끝내 역기를 놓지는 않았다. 그 순간, 경기장 분위기는 돌변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국 관중들이 뜨거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배영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의 또 다른 영웅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림자에서 빛으로 나온 왕기춘
늘 1인자의 빛에 가려 그림자로 지내온 유도선수가 있다. 남자 유도에 있어서 그랜드슬럼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의 훈련파트너였던 왕기춘이 그 주인공이다. 2006년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왕기춘은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이원희의 훈련파트너로 뽑혀 태릉선수촌에 입성했다. 이원희가 왕기춘을 상대로 메치기를 연습하면서 세계 무대를 휩쓸 때, 왕기춘은 이원희의 메치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하나하나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이원희를 누르고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한판승의 사나이’를 이긴 실력이니 그 기대가 오죽했을까. 하지만 왕기춘은 경기 도중 늑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다친 몸을 이끌고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까지 올랐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결국 은메달에 그친 그는 눈물을 흘렸다. 누구보다 미안한 건 이원희 선수였을 것이다.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 부담감을 안고 그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남현희
4년에 거의 한 번 정도 보는 경기들이 있다. 올림픽이나 되어야 보게 되는 경기들. 그 중에 아마도 펜싱은 그 4년에 4년을 더해서 겨우 보게된 종목이 아니었나싶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김영호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후 우리는 8년 간 이 종목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녀 검객, 남현희를 통해 펜싱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154센티미터의 키에 45킬로그램의 작은 체구로 키 크고 팔이 긴 서양선수들과 싸우는 모습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경기를 연상케 했다. 체구의 불리함을 그녀는 빠른 발놀림으로 극복하면서 한 박자 빠른 공격과 스피드로 상대를 압도했다. 그녀는 아깝게 결승에서 5-6으로 졌지만 세계랭킹 1위인 이탈리아의 베찰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을 벌였다. 서양인들로만 가득했던 시상식대에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올림픽의 메시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어찌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보다 값진 것이 이들의 이야기뿐일까.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자유형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고 200미터에 출전해 자신의 우상인 마이클 펠프스와 대결을 벌여 은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 여성으로서 몇 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을 다잡고 세계 그 누구와의 대결이 아닌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역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장미란 선수, 중국이라는 불리한 조건과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10점 과녁에 화살을 꽂아 넣은 우리네 양궁 삼총사들... 아마도 올림픽에 출전한 거의 모든 선수들이 하나씩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세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지나친 경쟁으로만 달려가는 듯 하다. 중국의 과도한 승부집착은 많은 경기에서의 판정의혹을 불러일으켜 심지어 레슬링 경기에서는 메달을 반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지나친 애국심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잘못된 응원전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우리네 TV들도 금메달에 집착한 나머지 은메달에 그친 선수들에게 무심한 방영을 했고, 몇몇 네티즌들은 그 선수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욕설에 가까운 글들로 공격했다. 뒤늦게 자성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이러한 양상들은 다분히 작금의 경쟁사회를 보는 것 같은 씁쓸함을 전해준다.

역도의 이배영 선수는 ‘단박인터뷰’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이잖아요. 금메달 전쟁. 하지만 그건 올림픽 정신이 아니에요. 올림픽은 평화거든요.”
그렇다. 올림픽이 전하는 메시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진 상대선수를 격려해주는 모습,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려는 모습. 이런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이다. 올림픽이든 아니면 사회에서든 최선을 다한 모든 이 땅의 2등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줘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은 한국원자력연구원 (http://www.kaeri.re.kr/) 사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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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광장을 지구촌으로 확장시켰다

전경과 시민간의 승강이가 벌어지는 현장. 자칫 폭력 진압, 폭력 시위가 연출되려고 하는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누군가 외친다. “찍어요! 찍어서 올려요!” 그러자 여기 저기서 무수한 카메라들이 고개를 들이민다. 시민들의 손에 들려진 폰카들이 그 수많은 눈들을 번뜩이자 긴장은 순식간에 풀어진다. 카메라의 힘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디지털이 아날로그적 마인드를 넘어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시대의 광장은 물리적인 충돌로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고, 87년 610민주항쟁이 그랬다. 그 때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마치 선점하거나 사수해야할 진지였다. 세상을 향해 사회의 부조리를 외치는 장소로서의 광장은 유일한 시민들의 매체였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밀실이라는 매체로 은밀히 자행되던 부정부패와 폭력을, 그들은 광장이란 매체 위에 올려놓고 세상에 성토했다.

밀실 매체에 익숙한 권력자들은 광장을 에워싸고 외부와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광장의 매체기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했다. 그 원천봉쇄 속에는 광장의 확장기능을 하는 방송사와 신문사라는 매체도 끼어있었고, 어떤 매체는 거기에 동조하다못해 거꾸로 권력자의 매체를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국민들의 십시일반으로 한겨레신문이 탄생한 것은 광장의 매체가 되어야할 이 권력매체들이 권력자의 시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미 성숙해진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한 길을 터놓고 있다. 디지털로 무장한 시민들은 이제 한 명 한 명이 저 방송사의 힘에 준하는 매체의 힘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 폰카로 찍은 폭력 진압의 장면은 순식간에 디지털을 타고 전국, 아니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방송사의 한정된 기자들 수를 생각해보면 매체력은 이미 시민들이 압도하고도 남는 상황이 된 것이다.

촛불 시위가 과거의 폭력 시위와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은 바로 이 디지털의 특성 때문이다. 아날로그가 바리케이드에 막혀진 소통의 창구를 뚫기 위해 물리적 힘을 써야했다면 디지털은 그저 공간을 뛰어넘기만 하면 된다. 주먹과 쇠파이프, 그리고 화염병을 들고 싸워야했던 아날로그 세대들의 소통을 향한 안간힘은, 이제 현장을 보여줄 카메라 하나와 현장에서 상징화해 보여질 촛불이면 되게 되었다. 따라서 보여지고 보여주는 촛불들 하나하나는 완벽한 매체가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매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디지털 공간 속에 만들어진 토론의 장은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수십만 명의 광장 역할을 한다. 이 디지털 광장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과 아이디어들이 번뜩인다. 저마다 각자 가진 입장들은 다르지만 어떤 한 가지에 같은 입장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표현의 문제(한 촛불이라는 매체로서의)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공통된 이슈에 공감했을 때, 그것은 실제 광화문 광장의 촛불들의 모임으로 화한다.

정치적인 이슈 같은 거대담론이 지배했던 80년대 민주화 시대에 한 방송사의 카메라는 엄청난 힘을 과시했지만, 이제 이슈가 생활 속으로 숨어 들어온 시대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대신 그 카메라를 대신하는 것은 촛불들이 각자 생활 속에서 들고 있는 카메라들이다. 미국 쇠고기 문제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가 더더욱 촛불들의 매체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촛불들의 자발성에 배후를 운운하거나, 매체로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광장에 선 시민들 앞에 컨테이너박스 같은 물리적 차단막을 세우는 것은 지금 정부의 마인드가 얼마나 아날로그적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끔씩 보여지는 고층건물에서 부감으로 찍혀진 촛불집회의 인파들은 그 수많은 매체들이 한 가지 목소리로 모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압도적이고도 아름다운 ‘보여짐’이다. 그 보여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촛불이라는 매체는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마치 각각으로 흩어져 저마다의 역할만을 묵묵히 하던 시민이라는 디지털 코드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퍼포먼스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의미들은 디지털을 타고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광장이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지구촌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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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키앙

웰빙과 로하스를 넘어 그린 노마드로

갑갑한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면 문득 문득 자연의 품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렇다고 도시를 떠나 산다는 것은 도시가 주는 혜택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떠나지 않고도 자연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 그린 노마드다.

‘1박2일’이 환기해주는 생각
도시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야생의 상황에 놓여진다면? 이것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기본 컨셉트이다. 간단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의미는 이중적이다. 즉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도시를 탈출해 자연을 꿈꾸지만, 또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도시의 문명, 즉 인공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출발선상에 선 ‘1박2일’의 멤버들은 어떤 기대감에 차 있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현지에 떨어져 1박2일을 지내는 그들은 잠을 자고 세수를 하고 밥을 해먹고 하는 기본적인 일들마저 도전이 된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즉 문명이라는 안전한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진 인간에게 자연은 그리움이면서도 동시에 도전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율배반적인 자연에 대한 태도의 어떤 해결점을 제시하는 것이 ‘그린 노마드’다. ‘노마드’에 ‘그린’이 붙어 만들어진 이 용어는 그린(green)으로서의 자연과 노마드(digital nomad)인 문명의 결합을 시도한다. 노마드족이란 노트북이나 휴대폰 같은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외부와 접촉하면서 일정한 직장이나 주소에 얽매이지 않는 이들을 말한다. 즉 문명의 최첨단에서 그것을 이용해 시공간의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은 ‘1박2일’의 멤버들처럼 야생 속에 던져진다 해도 디지털과 통신을 통해 여전히 문명과 접속해서 생활할 수 있다. 몽고의 평원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nomad)이라 하더라도 늘 디지털은 열려 있고 이 열려진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은 지구촌의 일원으로 문명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마드족이 자연 속에서도 문명을 연결한다면, ‘그린 노마드’는 거꾸로 문명 속에서도 자연을 느끼려 한다.

‘그린 노마드’, 문명 속으로 들어온 자연
푸른 잔디가 깔린 언덕처럼 편평하지 않고 굴곡이 있는 카펫이 있다면 어떨까. 등받이가 되어주는 불쑥 솟아오른 카펫에 누워 TV를 본다면? 정말 언덕에 누워 구름을 쳐다보는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스페인의 디자인 회사인 나니마르키나에서 선보인 ‘나는 카펫(Flying Carpet)’이다. 집안에서 즐기는 피크닉이라는 컨셉트로 만들어진 이 제품은 바닥은 늘 편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연의 굴곡을 그대로 담아 아파트 집안이라도 마치 야외 들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형태로 보면 나무처럼 만들어졌지만 기능은 냉장고인 캐나다 양코 디자인에서 개발한 나무집 냉장고(Tree House Fridge)는 과일을 꺼내 먹을 때마다 마치 나무에서 과일을 따먹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또 프랑스의 디자인회사 스마린의 ‘리빙 스톤’ 쿠션은 강가의 자갈밭 이미지를 그대로 잡아낸 쿠션으로 마치 부드러운(?) 자갈의 품속에 안겨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것은 분명 실제 자연이 아닌 인공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것이거나 아니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점이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아파트에서 하는 화초재배 같은 것도 역시 그린 노마드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는데 혹자는 이것이 자연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엄밀히 보면 자연이 아닌 인공이다. 자연은 자연 상태 그대로 있을 때만이 그 본래의 자연이며, 화분에 옮겨지는 그 순간, 인간의 의도 속에 놓여지게 된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인공이란 그 말 자체로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운명이 아닌가. 그러니 인공이라 하더라도 자연을 추구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린 노마드가 이런 자연을 닮은 인공 속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을 긍정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웰빙과 로하스를 넘어 생활 속으로
바로 이 점 인공과 자연에 대한 희구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실제적인 몸은 욕망과 상관없이 자연 그 상태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웰빙이 병원에서만 얘기되던 건강을 생활 속으로 끌어내린 것은 바로 이 생활 속에서의 인공과 자연의 부조화가 결국은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웰빙 문화가 환경과 건강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 ‘무한건강주의’ 에 머물렀다면 로하스 문화는 본격적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로 차원을 넓혔다. 하지만 그린 노마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환경친화적 삶이 아니라 바로 그 자연을 삶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더불어 즐기는 문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연 속으로 탈출하기 보다 ‘자연을 내 곁으로’ 끌어들인다는 발상의 전환은 노마드족의 키워드인 디지털적인 삶이 그 기반을 제공한다. 디지털이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그 공간으로 자신이 물리적인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가상으로라도 내 눈앞으로 끌어들이는 ‘원격현전’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차가운 디지털의 인공은 그 속에서도 따뜻한 아날로그의 자연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린 노마드는 인공의 힘으로 무한한 시공간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얻은 디지털 노마드가, 이제는 정신적으로라도 사람냄새, 자연냄새를 찾게 됐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 시대의 징후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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