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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떠올리는 별자리 이야기

당신이 가끔 고개를 쳐들고 별을 보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가.
지금도 저기 당신의 별은 빛나고 있건만,
당신은 지금 왜 고개를 떨구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별을 보던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꿈꿀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그 별
매포 외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길은 늘 낯설고 두려웠다. 버스가 당도하는 시각은 늘 어둠이 내린 한밤중이었고,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려면 빛 한 자락 찾기 힘든 캄캄한 길을 걸어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어머니는 어떻게 걸었던 것일까. 어린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그게 궁금했다. 배 건너 와요- 어둠만큼 깊은 정적 속에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 한참 후에 저편에서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나룻배의 움직임을 강물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겨우 알게 될 즈음, 문득 쳐다본 하늘 위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 빛 한 자락 없는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나며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던 그 별들은 지금도 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

물론 그 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이제 도시의 빛에 멀어버린 눈은 그 별을 바라보지 못한다. 별들은 분명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고, 지금도 건네고 있지만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어머니가 조곤조곤 들려주시던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갇혀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꿈으로 채워주곤 했다. 그 때 알았다. 이야기는 바로 꿈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선덕여왕'의 별자리가 상기시킨 것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이 끊임없이 그 때의 그 별자리를 상기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덕만(이요원)이 태어날 때 화두처럼 던져진 "북두칠성의 개양성이 둘로 갈라져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대적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은 바로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미실(고현정)과 덕만이 천문을 사이에 두고 권력의 대결구도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이 별자리의 이야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 인물의 정지된 화면 위로 반짝반짝 빛나며 별자리들이 드리워지는 엔딩장면은 오래도록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별자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별자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것처럼 이야기일 뿐이다. 하늘의 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별들은 그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일 뿐,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어머니처럼 그 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하는 사람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것은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주 오래 전, 하늘의 별빛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두려움의 하늘을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하늘로 변모시킨 이야기꾼은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아무 의미 없이 죽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었을 테니까. 그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었을 테니까. 이야기는 실로 꿈의 다른 말이다.

'선덕여왕'은 그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환상을 내세웠다면, 덕만은 희망을 내세웠다. 환상은 실체를 모르면서 이야기를 믿는 것이라면, 희망은 실체를 알면서도 이야기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별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별자리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삶의 계획들, 덕목들, 꿈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야기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을 실체로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당신의 별자리,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별자리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들이야말로 저 하늘의 별처럼 그저 흩어져 무엇이 될 지도 모르고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 존재들이 어떻게 삶의 목표를 만들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빈 도화지를 하나씩 받았고, 그 위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이야기들을 써나갔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별자리 이야기다. 당신 스스로 꿈꾸었던 인생이 이야기처럼 그 속에는 들어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일러주는 대로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빛 한 줄기 없어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암흑의 길 위를 한 발작씩 걸어왔다. 두려움조차 없이. 어떻게? 이야기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힘겨워질 때, 고개 숙인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바로 그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일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도시의 불빛에 멀어버린 눈을,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를 찾기 위해 한참을 달려 인적 드문 어딘가로 떠나도 좋을 것이다. 그 곳에 서서 어린 시절부터 늘 거기서 이야기의 빛을 쏟아내던 그 별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 그 상상의 힘을 복원하는 것. 당신이 힘겨운 것은 현실이 주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어느새 상상하기를 멈춰버린 당신 자신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을 보자. 적어도 하늘에 붙어 있는 별은 숙여진 당신의 고개를 꼿꼿이 쳐들게 할 것이니.

Posted by 더키앙

똑똑한 TV의 시대, 새로운 가족의 풍경

자물쇠를 찬 바보상자, 옛날TV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TV에 대한 첫 기억으로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자물쇠’라고 말할 것이다. 큰 맘 먹고 아버님이 모셔온(?) TV는 방 한 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접근 불가능의 물건이었다. 가구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던 그 녀석은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양옆으로 연 후에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교육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 시기, 이른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저희들끼리만 보려고 누군가 고안했던 고약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가린다고 안볼 우리들이었을까. 저녁 시간마다 TV를 볼 수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가는 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결국 서랍장에 모셔둔 TV 때문에 밖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백기를 든 아버님은 저녁 공부 몇 시간을 조건으로 자물쇠를 풀어내며 감금된 TV를 해방시켜주었다. 그 순간,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저 바깥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던 우리들의 눈도 해방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보상자이기는커녕 온갖 진기한 세상의 일들을 바로 눈앞으로 가져다 주는 놀라운 알라딘의 마술램프가 아니었나 싶다.

TV는 늘 집안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고, 가족들은 TV를 중심으로 저녁을 보내기 시작했다. TV가 점점 많이 보급될수록 동네의 유대감도 TV로 매개되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프로레슬러 김 일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연실 박치기를 해댈 때마다 온 마을은 들썩거렸고, ‘짜자자잔짜잔 -’하는 특유의 시그널송이 울리면 당연히 그 앞에 앉아 봐야만 했던 ‘수사반장’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은 묘한 집단적인 도취감마저 느끼게 했다. 바보상자로 서랍장 속에 가둬져 있던 TV는 어느새 가족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상시대, 여가로 자리한 TV, 가족을 대리해주다
80년대 컬러TV시대가 열리자 바뀌어진 총천연색 화면은 그 때까지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신기하기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명암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흑백TV가 가진 그 아우라를 깨버린 것은 바로 그 컬러영상이 아니었나 싶다. 컬러시대와 함께 현란해진 광고들은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영상은 점점 대중화되었다. 이른바 영상시대에 우리는 들어와 있었다.

때마침 등장한 리모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광고들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 전에 방영되던 수십 개에 달하는 광고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TV 앞으로 가서 드륵 드륵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채널을 바꿔주는 리모컨은 멀찌감치 놓여진 소파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TV 시청을 새로운 여가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에서부터 ‘게리슨 유격대’, ‘맥가이버’에 이르는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은 지금의 미드 열풍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던 당대에 ‘주말의 명화’는 안방극장이란 말을 탄생케 했다.

가족들은 이제 집에서의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TV를 통해서 하기 시작했다. 리모콘을 누가 쥐는가는 그 가족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느냐를 대변했고, 그것에 따라 가족들은 멜로 드라마를 보며 울거나,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거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웃곤 했다. 오랜 시간 가족의 중심에 서있던 TV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고, 심지어 핵가족화되고 개인화된 공간으로 사라진 가족을 대리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똑똑한 TV 시대, 시공을 넘어 개개인의 삶 속으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컴퓨터는 점점 TV를 향해 진화했고 결국 이 두 지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IPTV가 등장했다. TV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즉 송출하는 영상을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은 수정되어야 했다. 이제 자신이 보고싶은 영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 있고, 보다가 무언가 해야할 다른 일이 생기면 화면을 멈춰놓을 수도 있다. 물론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보면서 좀더 분석적으로 TV를 바라볼 수도 있다. 분석적인 시선들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지고 그 힘이 모아져 TV가 독주하는 것을 견제한다. IPTV 시대의 TV란 이제 늘 대상으로서 시청자를 세워놓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집중되는 존재로 변모했다. 이른바 똑똑한 T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동네에 한 대 있는 TV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어린 시절과, 또 TV 한 대를 놓고 서로 가족들이 리모콘 쟁탈전을 벌이던 시대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실로 수없이 많은 TV들에 둘러싸여 가족의 풍경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거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 TV와 버리기에는 아까워 안방 한 구석에 놓아둔 옛날 TV는 물론이고, 버튼 하나로 유선TV로 변신하는(?) 모니터, 자동차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네비게이션 속으로 들어온 DMB,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꺼내 TV를 볼 수 있는 휴대폰까지. 가족들은 저마다의 시공간 속에서 TV(이제는 그저 영상이라 불리는)와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본방을 사수하고 있을 때, 자녀들은 DMB나 모니터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고, 못 본 프로그램들은 IPTV를 통해 언제든 내려볼 수 있게 되었다. 다운로드를 통한 시청은 몰아보기 같은 새로운 시청 패턴을 만들어 이제 주말 가족의 여가풍경을 바꾸기도 했다. TV를 중심으로 채널권으로 대변되는 가족 간의 관계는 이제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매체 선택 가능성(시공간을 넘어서는)으로 인해 좀더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에 의한 강권이 아닌, 저마다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이 똑똑한 TV의 시대에 이제 바보상자는 자물쇠가 채워진 저 과거의 서랍 속에 넣어진 옛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우리 가족 구성원의 풍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하지만 TV가 똑똑해지거나 아니면 바보로 있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이제 당신의 집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가족을 돌아 보라. 그 가족은 충분히 똑똑한가, 아니면 여전히 바보인가.(이 글은 IPTV가이드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MBC스페셜’ 곰배령 사람들 편에서는 강원도 오지 중의 오지인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취재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길에 바퀴가 빠져버리자 취재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뒤에서 차를 민다. 그것은 만일 현지에 살아가는 생활인들이라면 몹시 곤란하고 귀찮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를 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는 그 사건(?)조차 일상의 파격이 주는 어떤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결국 차가 오를 수 없는 길에서부터 카메라와 장비를 메고 한 시간이 넘게 산을 올라가야 했다.

현장에서조차 현지인들과 방문인들의 느낌이 이다지도 다른데, 오지에서의 삶에 대한 현지인들의 느낌과 그걸 편안하게 집안에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며 보는 우리의 느낌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 아름다운 곰배령의 눈과 자연 풍광이 담겨진 영상 속에서 현지인들이 겪는 실제 삶의 아우라는 이미 여러 차례 벗겨져 있다. 시청하는 입장에서 그 곰배령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노스탤지어의 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는 이미 카메라와 TV의 인공적인 작업들에 매개된(그래서 익숙한) 산골이 있을 뿐, 실제 혹한의 날씨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밤의 포근한 어둠이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을 감싸안는 그 느낌, 산골 생활에 귀할 수밖에 없는 생선 요리가 주는 미감, 인공이 삭제된 공간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야생화들, 그 야생화에서 벌들이 모아놓은 벌꿀을 손으로 직접 뜯어먹는 그 느낌 같은 것들은 체험될 수 없다. TV 속의 곰배령은 따라서 엄밀히 말해 진짜 곰배령이 아니다.

‘곰배령 사람들’같은 다큐멘터리는 그래도 촘촘한 취재를 통해 현실에 가까운 곰배령을 재현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은 어떨까. 이른바 여행 버라이어티쇼가 주말이면 몇 명의 캐릭터들을 내세워 여행을 대리하고 있고, 아침방송과 저녁방송에서는 매일 여행지로 달려간 리포터들이 현지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시청자들 앞에 날라다주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의 향수를 채워주기 위해 매개된 영상이 여행을 대리해주는 것을 그다지 나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매개된 영상이 바꿔놓는 진짜 여행지의 모습이다.

진짜 시골은 ‘패밀리가 떴다’가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이 삭제된 공간이 아니며, ‘1박2일’이 보여주는 것처럼 먹거리를 놓고 복불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매개된 삶이 더 리얼하게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이 진짜가 아닌 여행지의 영상들은 진짜 여행지를 바꿔버린다. 종종 촬영에 따른 현지인들의 불만이 논란거리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워낭소리’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성공하자 경상북도가 이 촬영지를 관광상품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매개된 영상이 삶의 공간마저 여행지로 바꾸는 이 현상은, 이제 노동실종의 시대에 시골이라는 공간이 노동과 삶의 공간이 아닌 전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다이어트

“다이어트 아니면 죽음을(Diet or die!)!” 이 말장난 같은 문구가 식상해질 정도로 다이어트는 이제 생활이 되었다. 과거 같으면 “다이어트를 한다”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표현 속에 다이어트가 있었다면, 지금은 “운동을 한다”거나 “좀 덜 먹는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행동방식으로 다이어트가 들어와 있다. 이것은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이 이제는 삶의 한 행동양식 속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굶어서 병나던 시대에서 많이 먹어 병나는 시대로
우리나라에서 다이어트라고 하면 최근의 일처럼 여겨지지만 서구에서 다이어트의 역사는 꽤 이전으로 돌아간다.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인 지나 콜라타가 쓴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에 의하면 서구에서 다이어트는 이미 19세기에 광풍이 불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바이런은 식초 다이어트의 선두주자였으며, 저단백 다이어트,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등등 다양한 다이어트 비법들이 이미 당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다이어트를 얘기한다면 일단 80년대는 들어서야 그 본격적인 유행의 흐름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몇몇 특정 계층들은 그 이전에도 서구의 다이어트를 생활 속에서 실행하고 있었겠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유행처럼 퍼진 것은 그나마 좀 먹고 살기 시작해지는 80년대 이후부터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80년대 이전까지 우리의 관심사는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그 때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음식을 통해 축적할 수 있는가 하는 ‘영양’에 있었다. 70년대 짜여진 영양식단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그 영양의 3대요소로서 우리 생활에 이것을 어떻게 골고루 섭취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균형 잡힌 식단’에 있다. 이른바 식품 피라미드에서 위 3대 요소는 그 피라미드 속에서의 위치가 정해진다. 피라미드의 맨 밑 부분은 곡류, 즉 탄수화물이 차지하고 맨 윗 부분은 육류 즉 지방과 단백질이 차지한다. 그런데 이 피라미드의 중간에는 과거의 3대 요소 이외에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채소와 과일 즉 비타민, 무기질, 섬유질 같은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추가된 것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것들은 실제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요소들이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를 대사시키는데 활용되는 요소들이다. 이처럼 지금 같은 과잉영양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먹는 것은 오히려 병을 일으킨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못 먹어서 병이 났고,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 병이 난다. 따라서 과거의 관심사는 잘 먹는 것이었고, 지금의 관심사는 오히려 잘 배설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들어 점점 늘어가는 위장질환과 장 질환, 고혈압,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들은 바로 이런 변화를 말해주는 바로미터다.

정신의 시대에서 몸의 시대로
그러나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은 위에서 언급한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다. 20세기 후반까지 사실상 몸은 정신의 지배를 받으며 핍박받는 존재였다. 수행을 위해 고행하는 몸과 시각이 주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위해 코르셋에 구겨 넣어지는 몸이란 존재는 늘 정신의 하위의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과학의 시대가 인체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몸은 오히려 정신을 지배하는 그 무엇으로 바뀌어졌다. 몸의 생리학적인 변화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몸의 시대를 열었다.

몸은 더 이상 숨기거나 억눌려져야될 존재가 아니라 드러내고 가꾸어져야할 존재로 변모했고, 따라서 몸 가꾸기는 당당해졌다. 과거에 똥배는 인격이라는 정신적인 무엇을 뜻했지만, 지금은 그저 축 늘어진 비계덩어리로 거꾸로 그 사람의 게으름과 나태를 뜻하게 되었다. 몸 가꾸기는 보기 좋은 외모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다이어트에 대한 작금의 지대한 관심은 바로 이 몸의 시대가 가져온 변화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몸의 시대로의 변화는 시대적 흐름일 뿐, 거기에 어떤 가치판단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몸의 시대가 가진 긍정적인 요소, 즉 몸을 가꾸고 또 그로 인해 건강을 챙기며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유하겠다는 그 목적에 우리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무식한 살 빼기, 똑똑한 다이어트
다이어트에 대한 수많은 유행 속에 숨겨진 것은 두 가지다. 다이어트의 방법들은 유행처럼 돌고 돈다는 것과, 결국 다이어트의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단식이나 절식으로 살을 빼려고 노력한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거꾸로 몸의 역공(?)을 받을 수 있다. 적게 먹는다는 것은 몸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결국 몸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저장하려 하며, 그것은 결국 지방(이것이 지방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을 더 만들어내게 만든다. 한 가지 음식만을 섭취해 살을 빼겠다는 건, 마치 영양 불균형을 스스로 초래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우둔한 생각이다. 운동도 가장 안전한 방법처럼 소개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몸을 망치게 만든다. 운동은 신체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스. 따라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은 신체는 비정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증상으로는 급성적으로 심한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으로 나타나며 만성적으로는 근육통, 만성피로 등이 나타난다. 또한, 소위 과사용증후군이라 불리는 근육이나 관절의 각종 손상 등도 가끔 발생하게 된다. 또 편안하게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방흡입술 같은 몸에 칼을 대는 과감한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미 몇몇 언론에서 발표된 것처럼 이것은 보조적인 것일 뿐, 그 자체로 살을 빼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따라서 똑똑한 다이어트를 하려면 일단 기본적인 생활 속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쉬운 말이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그것은, 좀 적게 먹는 습관을 들이고 적당한 운동을 무리하지 않고 매일 해주며, 지나친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을 오히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똑똑한 다이어트가 무식한 살빼기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생활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속성 코스의 어떤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삶은 자연스레 당신의 진정한 다이어트를 이루어주는 열쇠가 된다.

삶의 다이어트, +사고에서 -사고로
자 이제 몸의 시대에서 방만해진 몸을 거꾸로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사고이다. 균형 잡힌 삶이란 당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 즉 생활의 다이어트는 당신의 정신과 몸을 모두 균형 잡히게 해주는데, 그것은 사고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먼저 버려야 할 것은 과거의 플러스(+)적인 사고관을 버리는 것이다. 플러스(+)적인 사고관이란 무언가를 축적하기 위해 살아가는 욕망의 사고관이다. 더 많은 돈을 축적하고, 더 좋은 차를 사고, 더 넓은 집을 사고, 더 좋은 음식을 먹겠다는 욕망의 사고관은 삶의 비만을 만든다. 욕망에 가득한 삶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보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부작용이다.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만 살찌우면 그만이라는 가족이기주의는 그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 플러스(+)적인 사고관이 가져오는 이러한 병폐는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대신 조금씩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비워나가는 마이너스(-)적인 사고관은 이미 풍요라는 이름으로 비만병의 징후를 앓기 시작한 이 시대에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자신이 쓸 만큼을 쓰고 주위와 나누는 그런 사고방식,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해서 소비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욕망 자체를 줄이겠다는 환경 생태적인 사고 같은 것이 마이너스(-)적인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촌에서 어느 나라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 죽고, 어느 나라는 먹을 것이 넘쳐나 과잉되어 죽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플러스적인 사고관이 만들어낸 자원의 동맥경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수술이 중요한 것처럼, 아예 이런 흐름이 막히는 것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면 이 시대에 맞는 사고관이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당신이 고민하는 당신 몸의 다이어트의 문제는 그저 당신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지구 위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연관되어 있는 삶의 균형의 문제이다. 우리들 하나 하나가 그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려고 할 때, 그것을 어떤 구호 같은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당신의 몸을 변화시키고, 당신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당신이 살아가는 사회와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당신의 균형잡인 삶은 지구라는 존재가 현재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줄 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올림픽, 금메달보다 값진 것들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전을 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위해 마련된 공연. 인순이가 무대 위에 올랐을 때, 이미 객석의 선수들의 눈은 젖어있었다. 이제 인순이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그녀의 노래, ‘거위의 꿈’은 온 선수들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메달을 따고 못따고가 뭐가 중요할까. 그 순간 선수들의 가슴 속에는 똑같은 공감의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날갯짓을 해온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쳐주는 아낌없는 박수였다.

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단연 금메달. 하지만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선전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실상 올림픽이라는 국가적인 이벤트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를 잃게 되는 격이다. 올림픽의 금메달보다 값진 것들은 성공보다 아름다운 실패이며, 그림자에서 빛을 향해 걸어나왔다는 그 자체이자,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자신의 한계와의 싸움에서의 승리이다. 올림픽의 진짜 메시지는 승리하기 위해 치르는 전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 같은 한계와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피어나는 평화다.

성공보다 아름다운 실패, 이배영의 역도
경기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중국 관중들은 자국 선수들이 출전했을 때는 환호를 질렀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이 출전하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162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몸무게 72킬로그램의 적은 체구의 우리나라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작은 몸 앞에는 자기 몸무게의 두 배가 훨씬 넘는 184킬로그램의 역기가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 선수는 첫 번째 시도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불운을 겪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2차 시도에서 186킬로그램을 신청했지만 역시 실패. 3차 시기 역시 실패할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올라 환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 그는 마지막 3차 시기에서 결국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하지만 끝내 역기를 놓지는 않았다. 그 순간, 경기장 분위기는 돌변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국 관중들이 뜨거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배영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의 또 다른 영웅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림자에서 빛으로 나온 왕기춘
늘 1인자의 빛에 가려 그림자로 지내온 유도선수가 있다. 남자 유도에 있어서 그랜드슬럼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의 훈련파트너였던 왕기춘이 그 주인공이다. 2006년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왕기춘은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이원희의 훈련파트너로 뽑혀 태릉선수촌에 입성했다. 이원희가 왕기춘을 상대로 메치기를 연습하면서 세계 무대를 휩쓸 때, 왕기춘은 이원희의 메치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하나하나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이원희를 누르고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한판승의 사나이’를 이긴 실력이니 그 기대가 오죽했을까. 하지만 왕기춘은 경기 도중 늑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다친 몸을 이끌고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까지 올랐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결국 은메달에 그친 그는 눈물을 흘렸다. 누구보다 미안한 건 이원희 선수였을 것이다.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 부담감을 안고 그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남현희
4년에 거의 한 번 정도 보는 경기들이 있다. 올림픽이나 되어야 보게 되는 경기들. 그 중에 아마도 펜싱은 그 4년에 4년을 더해서 겨우 보게된 종목이 아니었나싶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김영호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후 우리는 8년 간 이 종목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녀 검객, 남현희를 통해 펜싱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154센티미터의 키에 45킬로그램의 작은 체구로 키 크고 팔이 긴 서양선수들과 싸우는 모습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경기를 연상케 했다. 체구의 불리함을 그녀는 빠른 발놀림으로 극복하면서 한 박자 빠른 공격과 스피드로 상대를 압도했다. 그녀는 아깝게 결승에서 5-6으로 졌지만 세계랭킹 1위인 이탈리아의 베찰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을 벌였다. 서양인들로만 가득했던 시상식대에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올림픽의 메시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어찌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보다 값진 것이 이들의 이야기뿐일까.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자유형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고 200미터에 출전해 자신의 우상인 마이클 펠프스와 대결을 벌여 은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 여성으로서 몇 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을 다잡고 세계 그 누구와의 대결이 아닌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역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장미란 선수, 중국이라는 불리한 조건과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10점 과녁에 화살을 꽂아 넣은 우리네 양궁 삼총사들... 아마도 올림픽에 출전한 거의 모든 선수들이 하나씩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세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지나친 경쟁으로만 달려가는 듯 하다. 중국의 과도한 승부집착은 많은 경기에서의 판정의혹을 불러일으켜 심지어 레슬링 경기에서는 메달을 반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지나친 애국심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잘못된 응원전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우리네 TV들도 금메달에 집착한 나머지 은메달에 그친 선수들에게 무심한 방영을 했고, 몇몇 네티즌들은 그 선수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욕설에 가까운 글들로 공격했다. 뒤늦게 자성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이러한 양상들은 다분히 작금의 경쟁사회를 보는 것 같은 씁쓸함을 전해준다.

역도의 이배영 선수는 ‘단박인터뷰’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이잖아요. 금메달 전쟁. 하지만 그건 올림픽 정신이 아니에요. 올림픽은 평화거든요.”
그렇다. 올림픽이 전하는 메시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진 상대선수를 격려해주는 모습,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려는 모습. 이런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이다. 올림픽이든 아니면 사회에서든 최선을 다한 모든 이 땅의 2등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줘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은 한국원자력연구원 (http://www.kaeri.re.kr/) 사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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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광장을 지구촌으로 확장시켰다

전경과 시민간의 승강이가 벌어지는 현장. 자칫 폭력 진압, 폭력 시위가 연출되려고 하는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누군가 외친다. “찍어요! 찍어서 올려요!” 그러자 여기 저기서 무수한 카메라들이 고개를 들이민다. 시민들의 손에 들려진 폰카들이 그 수많은 눈들을 번뜩이자 긴장은 순식간에 풀어진다. 카메라의 힘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디지털이 아날로그적 마인드를 넘어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시대의 광장은 물리적인 충돌로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고, 87년 610민주항쟁이 그랬다. 그 때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마치 선점하거나 사수해야할 진지였다. 세상을 향해 사회의 부조리를 외치는 장소로서의 광장은 유일한 시민들의 매체였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밀실이라는 매체로 은밀히 자행되던 부정부패와 폭력을, 그들은 광장이란 매체 위에 올려놓고 세상에 성토했다.

밀실 매체에 익숙한 권력자들은 광장을 에워싸고 외부와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광장의 매체기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했다. 그 원천봉쇄 속에는 광장의 확장기능을 하는 방송사와 신문사라는 매체도 끼어있었고, 어떤 매체는 거기에 동조하다못해 거꾸로 권력자의 매체를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국민들의 십시일반으로 한겨레신문이 탄생한 것은 광장의 매체가 되어야할 이 권력매체들이 권력자의 시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미 성숙해진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한 길을 터놓고 있다. 디지털로 무장한 시민들은 이제 한 명 한 명이 저 방송사의 힘에 준하는 매체의 힘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 폰카로 찍은 폭력 진압의 장면은 순식간에 디지털을 타고 전국, 아니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방송사의 한정된 기자들 수를 생각해보면 매체력은 이미 시민들이 압도하고도 남는 상황이 된 것이다.

촛불 시위가 과거의 폭력 시위와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은 바로 이 디지털의 특성 때문이다. 아날로그가 바리케이드에 막혀진 소통의 창구를 뚫기 위해 물리적 힘을 써야했다면 디지털은 그저 공간을 뛰어넘기만 하면 된다. 주먹과 쇠파이프, 그리고 화염병을 들고 싸워야했던 아날로그 세대들의 소통을 향한 안간힘은, 이제 현장을 보여줄 카메라 하나와 현장에서 상징화해 보여질 촛불이면 되게 되었다. 따라서 보여지고 보여주는 촛불들 하나하나는 완벽한 매체가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매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디지털 공간 속에 만들어진 토론의 장은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수십만 명의 광장 역할을 한다. 이 디지털 광장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과 아이디어들이 번뜩인다. 저마다 각자 가진 입장들은 다르지만 어떤 한 가지에 같은 입장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표현의 문제(한 촛불이라는 매체로서의)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공통된 이슈에 공감했을 때, 그것은 실제 광화문 광장의 촛불들의 모임으로 화한다.

정치적인 이슈 같은 거대담론이 지배했던 80년대 민주화 시대에 한 방송사의 카메라는 엄청난 힘을 과시했지만, 이제 이슈가 생활 속으로 숨어 들어온 시대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대신 그 카메라를 대신하는 것은 촛불들이 각자 생활 속에서 들고 있는 카메라들이다. 미국 쇠고기 문제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가 더더욱 촛불들의 매체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촛불들의 자발성에 배후를 운운하거나, 매체로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광장에 선 시민들 앞에 컨테이너박스 같은 물리적 차단막을 세우는 것은 지금 정부의 마인드가 얼마나 아날로그적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끔씩 보여지는 고층건물에서 부감으로 찍혀진 촛불집회의 인파들은 그 수많은 매체들이 한 가지 목소리로 모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압도적이고도 아름다운 ‘보여짐’이다. 그 보여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촛불이라는 매체는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마치 각각으로 흩어져 저마다의 역할만을 묵묵히 하던 시민이라는 디지털 코드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퍼포먼스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의미들은 디지털을 타고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광장이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지구촌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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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논리의 끝, 사람도 자연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아이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 아이의 하루를 생각해보는 것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아이의 생활을 파고드는 위해한 환경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위험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아이들의 급식으로 올려지는 건 아닐까.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걸리지는 않을까.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유전자 변형 옥수수를 모르는 사이 먹고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한편 급증하고 있는 아이 성폭력 사건 사고에 재수 없이 휘말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인 불안감까지 걱정은 끝이 없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나은 것은 없다. 삶의 기본 조건이라는 의식주를 두고 볼 때, 나아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양적인 측면에서 볼 때, 먹거리와 집의 수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그 질적인 측면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대량 소비의 길 위에서 가축들은 광우병 소, 구제역 돼지, AI 닭으로 땅에 묻히고 있으며, 채소들은 유전자 변형 옥수수, 농약 투성이 야채들로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주거생활은 오히려 서민들의 터전을 빼앗고 사는 집을 살(구매) 집으로 전락시켰다. 의복은 일견 과거보다는 그 상황이 낫다고 보일 수도 있다. 허나 옷이 그 실용적인 측면을 넘어서 과시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외면에만 치중하는 정신적인 공백 상태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길은 없다.

이처럼 의식주에 있어서 그 질적인 저하를 피부에 실감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오히려 부족하고 가난했던 시절의 풍족함(?)을 그리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개발이란 본시 그 초반에는 풍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족을 초래한다는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불편한 집들이 불도저로 말끔하게 밀어내어지고 그 위에 지어지는 아파트의 편리함이 주는 대가는 의외로 크다. 그 대가는 대부분 자연의 파괴에서 비롯된다. 과거라면 어디서나 쉽게 밟을 수 있던 땅을 밟기가 어려워진 현대인들은 그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서, 시야를 저 끝까지 트이게 만들었던 낮은 집들 대신 세워진 고층건물들에 포위되어 있다. 아파트 한 채를 짓기 위해 들어가는 자재들은 또한 다른 곳에서 포획된 자연 채취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대가는 인간이 자연보다는 인공을 더 편안하게 생각하는 자연 외적인 존재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자연과 유리된 사고방식이 초래하는 착각은 인간 자체를 포획 혹은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인 이상, 개발 논리의 그물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편리함은 다른 누군가의 불편함 때론 죽음이 되기도 한다. 즉 개발 논리의 끝은 결국 그 대상을 거기 살아가는 사람으로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숙고되어져야 할 사안이다. 자연적인 흐름의 강줄기를 개발자의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사고방식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생명을 담보로 하겠다는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거기 사는 생명들에 대한 고려가 부재하다.

환경과 생명에 대한 장기적 안목 없이 눈앞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벌이는 정책적 결정이란 이제 밖을 나돌아다니기조차 불안해진 아이들의 현재처럼, 앞으로 아이들의 미래까지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것은 지금도 이미 그렇지만 앞으로도 점점 생활을 생존으로 만들어 삶의 질을 끝없이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란 그저 먹고 잠자고 거리를 마음껏 다닐 수 있는 대단할 것 없는 생활이 아닌가.

아파트 개발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주거의 양극화를 경험한 것처럼, 위생이 불분명한 먹거리의 무분별한 수입허가는 먹거리의 양극화 나아가 건강의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양극화를 육체화시키는 이 과정은, 이제 개발의 논리가 우리네 몸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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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TV를 보다 문득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도하고는 기분이 영 안 좋았다. 화면을 가득 메운 기름유출사고로 태안에 밀어닥친 절망감은 괜한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왜 분노하게 된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은 마치 신성한 몸을 더럽힌 파렴치범들의 행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어머니 같은 바다는 문명이라는 손에 잔인하게 유린되었다. 한동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만큼.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연일 대선정국에 대한 방송만이 전파를 탔다. 누가 몇 프로 차이로 앞서고 있다는 둥, 누가 무슨 발표를 했다는 둥, 누가 또 거짓말을 했다는 둥, 그렇고 그런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쳐다보면서, 도대체 왜 이 심각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리도 인색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했다. 한 삼 일만 치우면 깨끗해진다고. 삼 일? 삼 년이 지나도 복구가 될까 말까한 일이다.

그러던 중, TV에서 태안의 상황을 그래도 정확하게 짚어준 것은 (놀랍게도) 뉴스가 아니라 ‘라인업’이라는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들이 등장해 한참 사람들을 웃겨야할 상황에 ‘라인업’은 한 시간 동안 침통한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주었다. 태안의 상황에 넋을 잃은 것은 개그맨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추적60분’에서 이 상황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는데 카메라맨들을 향해서 주민들은 고함을 쳤다. “우리 이젠 다 죽게 생겼는데 도대체 정치인들은 뭐하는 거냐구!” 그 말에 가슴이 찡했다.

그 즈음 신문에 감동적인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태안으로 달려간 아줌마들이 아줌마 파워를 보이며 선전(?)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표현대로 쓰자면 이렇다. ‘헌 옷가지로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모습이 마치 방을 닦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을 때도 설거지하는 것처럼 손놀림이 빨랐다.’ 놀라운 표현이지만 이것은 아마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살림하는 자들의 힘이 아닌가.

전국 각지의 새마을 부녀회원 1000여 명은 이곳에 모여 10여 곳에 배치됐고, 아줌마들은 기름닦기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살림을 한 경험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냈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에서 온 신한이(55)씨는 “TV로 보니 천이나 흡착포로 바위 틈새에 낀 기름띠를 닦아내던데 이런 방법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면서 “다음에 올 때는 부침개를 뒤집는 뒤집개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주부의 파워는 여기서만 머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 태안의 주민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서 이들을 돕기 위해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에서 나온 수산물 사주기 운동까지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살림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한다. 마치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업이 없어 가정에 눌러 앉게된 자들이 하는 그런 허드렛일로 치부한다. 살림하는 주부들을 보는 시선 또한 그렇다. 쓸데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는 자로 취급하거나, 괜히 모여 수다만 떨면서 뭘 살까 고민이나 하는 소비꾼들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살림이란 말 그래도 ‘살린다’는 뜻이다. 무엇을? 가만 놔두면 죽게되는 것들을.

그러니 살리는 사람인 주부는 창조적인 직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집이란 하루만 가만 놔두어도 죽은 사람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 다반사다. 사람이란 소비하는 동물이고 그것을 모두 집이 받아내는 상황에서 온전할 수 있는 게 어디 있을까. 살림하는 자들은 바로 이 죽어 가는 것들을 살리는 창조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정신 속에 살림의 정신이 고스란히 박혀 있다는 점이다.

주부들의 살림이 태안을 살리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네들의 생명력이 죽어가는 바다를 살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꼭 그것이 주부가 아니더라도 태안에서 살림을 행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주부가 가진 살림의 정신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습게 보지 말지어다. 주부들의 살림, 그 숭고한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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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살림, 태안

잘못 나온 호칭, 그 역할 바꾸기의 행복

“엄마!”
아이가 내게 엄마라고 한다. 나는 문득 아이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목소리를 여자처럼 해서 아이에게 되묻는다.
“왜 그러니?”
그러자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걸 깨달은 아이는 씩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아니... 아빠. 이것 좀 봐줘.”
아이의 숙제를 돌봐주면서 문득 이런 경험이 유달리 우리 집에서는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이의 말실수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직장을 다니는 아내 대신, 칼럼니스트로 집안 생활까지 도맡게 된 나는 낮 시간을 대부분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함께 생활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종종 아이에게 아내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놀려주던 것을 흉내내면서 엄마 목소리로 내게 대꾸하곤 한다.
“왜 그래요. 여보?”
아이는 가끔 엄마를 아빠로 오인해 부르기도 한다. 늘 나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인에 박인 탓이다. 그러면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피식 웃어버린다.

그런데 이 잘못 나오는 호칭들은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차츰 기분 좋게 들려왔다. 부모와 하루를 온전하게 보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있어서 엄마의 부재를 아이가 느끼지 않는다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잘 해주는 것도 없는데, 아이가 기대는 것을 보면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내가 아이에게 “여보”하고 잘못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어느덧 아내가 없는 낮 시간대에 내 심부름도 해주면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잘못 나오는 호칭은 대상을 한 가지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아버지라는 특정한 틀로서 아버지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는 아버지라는 상이 가진 갖가지 이미지들이 겹쳐지게 된다. 그것은 때론 오해일 수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호칭이 갖는 허울 때문에 더욱 아버지처럼 보여야 하는 상황에 있을 수 있다. 물론 아버지는 그 안에 권위적인 모습 이외에도 모성애적인 부드러움까지 다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이가 아버지를 엄마라고 잘못 부를 때, 이러한 틀은 깨진다. 그 작은 틈새가 주는 여유는 그런 경험을 해본 이들에게는 쉬 이해되는 것일 것이다. 순간적인 해방감 같은 그 느낌은 바로 그 호칭이 주는 억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것을 알게 모르게 교육받아왔다. 남자는 남자라는 역할에 여자는 여자라는 역할에.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왜곡이 일어난다. ‘남자답다’는 말의 기준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때론 그 말은 성별의 차이를 넘어서 사회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이건 성별이 아닌 성차별이 된다.

성차별은 상대방 성에게만 가해지는 억압이 아니다. 성차별은 성차별을 교육받은 자에게도 행해지는 억압이다. ‘남자다움’을 지상과제로 교육받은 남자는 바로 그 성차별적 사고관에 갇혀 소위 여성들이 해야할 일을 하는 것에 곤혹을 느낀다. 그러나 어떨 때는 그걸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장인댁에 갔는데, 장모님이 마침 출타중이시고 장인과 단둘이 있게 되었다. 시간은 저녁시간대. 배는 고픈데 그렇다고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대부분 이럴 경우, 중국집배달이 대안이 되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장인과 사위가 각자 집에 혼자 있을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둘 다 밥 한 끼 정도는 뚝딱 챙겨먹을 수 있는 데도 굳이 시켜먹는 것은 바로 남자로서 교육받은 것이 서로의 눈치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말실수 가족이다. 아빠는 엄마가 되기도 하고, 엄마는 아빠가 되기도 한다. 아이는 때론 아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무언가 집안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음이 겪는 불편함 같은 것이 없다. 그만큼 역할 바꾸기에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보고자란 아이는 앞으로도 사회 속에서 성별을 넘어 더 당당히 자신을 밝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우리가 말실수 가족인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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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아이 우산을 펴주다 손바닥에 작은 상처가 났다.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것을 빼고, 하루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밥을 챙겨먹고...

비가 오기에 간혹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콘크리트가 아닌 맨 흙바닥이었던 옛날 시골집에
살 때는 비가 오면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시멘트에 물이 부어질 때 나던 것 같은 그 텁텁한 냄새는
잘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빗방울과 함께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콘크리트로 뒤덮여진 서울로 오면서
그 냄새는 향수가 되었다.
그래도 흙먼지 알갱이들이 만들어내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운동장이었다.

아이의 학교를 찾았다.
그 곳에서 한참을 서서 운동장으로 떨어져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와서는 늘 그렇듯 간식을 챙겨주고
학원가는 아이를 바래다주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날 밤, 욱신거리는 손바닥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비는 그쳐 있었고 손바닥에 난 작은 상처는 덧나 있었다.
퉁퉁 부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또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며칠이 또 지났다.
작은 상처였지만 손바닥의 상처는 낫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다.

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
늘 물에 젖어 있는 손을 하고 있던 어머니.
거기 그렇게 있는 지 조차 몰랐던,
그래서 때론 마치 저 바닥의 흙먼지처럼
때론 저 무심히 내리던 비처럼,
때론 늘 젖거나 상처나도 묵묵히 일을 해주던 손처럼,
의식하기 어려웠던 어머니.
내 삶의 타자가 아닌 일부였던 어머니.

세상에는 그렇게 존재감을 느끼기가 어려울 정도로
삶의 일부가 된 것들이 있었다. 이 상처처럼.

손바닥의 상처는 나을 기미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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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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