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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북극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기록’이다. 거기에는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에게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이른바 명작 다큐들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볼거리다. 물론 이 볼거리란 단지 스펙타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영상으로서의 볼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최근 연달아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명작 다큐들, 즉 ‘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북극의 눈물’에는 바로 이 시공을 초월하는 볼거리들의 유혹이 넘쳐난다. EBS ‘한반도의 공룡’은 공룡이 존재했던 8천만년 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초..
경기불황 속 음악전문프로그램들의 특별한 선택 힘겨운 삶에 노래만큼 위안을 주는 게 있을까. 최근 음악전문프로그램들의 ‘선택’을 보면 경기불황에 지친 대중들에게 음악이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 지를 확인하게 된다. 보여주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들려주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바뀐 것이나,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작은 공간 속의 음악으로 대중들을 초대하거나, ‘라라라’처럼 아예 대중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추구하는 것은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 선택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지향은 하나, ‘소통과 공감’이다. 윤도현이 가진 록커로서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힙합과 록밴드 같은 ‘한번 놀아 보자!’는 분위기가 러브레터에 있었다면, ‘페퍼민트’는 고스란히 ‘감상하고 느껴보자’는 분위기가 스며있는 이하나의..
어딜 보나 다 불황이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들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TV는 어떤 존재로 각인되고 있을까. 1,2년 전만 해도 TV의 화두는 리얼리티였다. 드라마에서 트렌디를 벗어나 좀 더 디테일과 현장감을 살린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꽃을 피웠고, 예능에서는 버라이어티 쇼 앞에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발빠른 케이블TV에서는 리얼리티쇼들을 서둘러 수입하거나 자체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막돼먹은 영애씨' 같은 다큐드라마가 나왔으며,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낸 페이크 다큐가 하나의 대세처럼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채널을 어느 쪽으로 돌리든 프로그램이 하는 얘기는 이랬다. "이거 리얼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리얼이라는 수식어는 과거에 비해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난 달 간송미술관 앞은 때아닌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줄은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고적하기로 유명한 그 미술관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유는 단 한 점의 그림 때문이었다. 신윤복의 ‘미인도’. 지금껏 다른 화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된 적이 없는 신윤복, 게다가 조선시대의 춘화(?)로까지 오도될 정도로 흔하게 보여진(그래서 본격적인 미적 가치에 대한 조명은 덜 된) 그의 ‘단오풍정’, ‘과부탐춘’, ‘월야밀회’같은 그림이 아닌 ‘미인도’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이 신드롬이라고까지 지칭할 수 있는 신윤복에 대한 열기를 만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한 편의 팩션에서부터 비롯됐다. 바로 ‘바람의 화원’이다. 미술관 풍경이 말해주는 신..
적어도 대중문화에 있어서 동성애는 이제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물론 동성애 코드와 동성애 컨텐츠는 다르다. 동성애 코드는 남장여자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 동성애 같은 상황을 연출하지만 분명히 이성애를 다룬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미인도’같은 것이 그 부류다. 반면 동성애 컨텐츠는 게이들의 문제를 천착한 ‘후회하지 않아’나 최근 개봉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같은 것들로 이들 컨텐츠들은 진짜 동성애자들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동성애 코드나 동성애 컨텐츠나 불문하고 바라보면 지금 대중문화 속에서 동성애라는 소재 자체는 과거처럼 음지에 숨겨진 그 무엇이 아니다. 특히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르면 동성애는 마치 공기처럼 일상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이 꽃미남 게이를 조연으로 세운..
이하나의 이미지에 맞춰진 음악 프로그램, ‘이하나의 페퍼민트’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자리에 ‘이하나의 페퍼민트’가 들어섰다.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분위기에 익숙해졌었던 분들이라면 ‘이하나의 페퍼민트’가 낯설게도 느껴졌을 것이다. 가장 다르게 다가온 것은 분위기가 훨씬 차분해졌다는 점이다. ‘러브레터’가 윤도현의 록커로서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프로그램 속으로 가져와 좀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연출했다면, ‘페퍼민트’는 이하나 특유의 엉뚱하면서도 귀엽고 또 한편으로는 차분한 이미지를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대로 무대의 변화로도 연결되었다. 록커로서의 윤도현과 어울리는 ‘러브레터’의 넓은 무대는 통기타를 들고 분위기 있는 노래를 조분조분 들려줄 것만 ..
‘미인도’의 남장여자, ‘바람의 화원’과 뭐가 다른가 신윤복 열풍이다. 이정명 작가의 팩션 ‘바람의 화원’이 이 불황기에도 연일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고,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매회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지난 달 열렸던 간송미술관 개관 70주년 행사에는 때아닌 관객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었다. 다름 아닌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화 ‘미인도’가 개봉함으로써 신윤복 신드롬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 왜 신윤복은 갑자기 이 시대에 등장했을까. 그것도 남장여자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예술가의 초상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이 남장여자로 설정된 것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사료가 만든 상상력의 소산이면서 동시에, 그나마 남아있는 그림..
“‘바람의 화원’은 바람 같은 작품”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다. 아니 이건 인터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강남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고 차를 마시며 ‘바람의 화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인적인 사생활을 중시해 인터뷰를 극도로 꺼린다는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작가를 만나기 위해 필자는 사진기와 녹음기, 심지어는 노트까지 포기했다. 대신 이야기를 들을 작정이었다. 그러니 이 글은 애초부터 인터뷰 형식에 앉혀질 운명이 아니었다. 다만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바람처럼 떠다니는 이정명 작가의 이야기, 그 단편들을 적어놓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이 막연함 속에서 이정명 작가가 신윤복의 그림을 앞에 두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며 느꼈을 막막함과 또 그 속의 어떤 설렘을 고스란히 느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