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블로거의 시선 (96)
주간 정덕현
"씁쓸하구만.." 작년 이 한 마디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준호. '개그콘서트'와 '희희낙락'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그는 안타깝게도 도박사건에 연루되어 진짜 말 그대로 '씁쓸한 인생'을 맞았습니다.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 부문 수상자 명단에도 올랐지만 자숙하는 의미로 참석하지 않았고, 자신의 개그 인생과 맞닿아 있는 '개콘'이 10주년 특집 방송을 녹화하는데도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씁쓸한 인생'으로 이제 씁쓸했던 그 인생을 훅 날려버리나 싶었는데, '씁쓸한 인생'이 말이 씨가 되어 진짜 씁쓸한 인생이 되어버렸던 거죠. 지난주 개콘 PD와 만난 자리에서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하류인생', '같기도', 그리고 '달인' 이전에 최장수 ..
착한 드라마, '별을 따다줘'가 끝나는 날, 조촐한 쫑파티가 있었습니다. 착한 드라마다운 참으로 따뜻한 종방연이었죠. 정지우 작가님과 그간 고생했던 제작진들과 배우들, 관계자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어우러지는 한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드라마 속에서 우리를 몇 달 간 울리고 웃겼던 반가운 얼굴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까칠 엉뚱한 매력을 보여준 김지훈, 씩씩한 얼굴로 우리의 마음을 때론 아프게 때론 흐뭇하게 했던 최정원, 따뜻한 남자 신동욱,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채영인, 덜 자란 듯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켠... 그런데 이 종방연은 다른 종방연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에게 동심을 일깨워준 아이들이 어른들 사이 사이에 별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이죠. 주황이 박지빈은 제..
'개그콘서트' 김석현PD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개콘' 코너 중 '달인'이 최장수 코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주 걸리다가도 재미없으면 퇴출되고 마는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서 '달인'의 장수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큰 건 그 단순한 몸개그가 가진 힘이었을 것입니다. 김병만은 몸개그에 관한 한 독특한 자기 영역을 갖고 있는 개그맨이죠. 저는 무엇보다 과거 '웃음충전소'에서 김병만이 했던 '따귀맨'을 가장 인상깊게 기억합니다. '따귀맨'은 따귀를 때리는 그 몇 장면들, 우리가 육안으로 보면 그냥 지나쳤을 그 장면을 고속촬영을 통해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습니다. 살이 막 떨리는 그 장면들이 주는 포복절도의 웃음이란.. 당시 '웃음충전소'를 연출했던 ..
'천만번 사랑해'와 '그대 웃어요'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종영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의 해피엔딩이 너무나 다른 느낌을 주는 건 왜일까요. '천만번 사랑해'는 사실상 그 해법을 찾기 어려운 거미줄 같은 관계를 인위적으로 얽어놓았습니다. 자신이 결혼한 남자가 하필이면 자신이 대리모로 한 아이가 사는 집이라는 우연은 오로지 여주인공의 신파를 만들어내기 위한 자극적인 설정이었죠. 하지만 이 상황에서 고은님(이수경)은 자식을 선택할 수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살 수도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극단적 상황의 해결은 결국 극단적인 처리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죠. 고은님의 위암과 시어머니인 손향숙(이휘향)의 치매 설정은 이 무리하게 얽힌 관계를 풀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고은님은 결국 ..
시청자들의 드라마 볼거리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졌습니다. 과거에는 해외 로케만 하더라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차량 추격전이나 총격전만으로도 볼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 그런 단순 볼거리는 더이상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지 못합니다. 몇 년 전부터 등장했던 일련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볼거리라도 어떤 스토리와 맥락을 갖거나 아니면 새로운 연출로 만들어진 볼거리가 아니라면 이제 '돈낭비'했다고 비난할 정도로 시청자의 눈은 높아졌죠.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그 시청자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통상적인 볼거리에 이야기를 끼워맞추다 실패한 대작드라마들인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의 후속작을 보는 것 같았죠. 다분히 의도된 첫..
재주는 '무도'가 넘었지만... 이제 곧 밴쿠버에서 동계 올림픽이 시작됩니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거기에는 아마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연아 선수겠죠. 그녀의 금번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의 금메달 도전은 국민적인 관심사를 넘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녀는 물론 경기장에서의 매력적인 연기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은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녀가 국민여동생으로서 누구에게나 지지받는 존재가 된 것은 이 경기장 안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경기장 밖에서의 옆집 동생 같은 수수한 얼굴이 균형있게 비추어졌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예능 ..
"당신이 신경쓰인다"는 말은 정지우 작가의 작품에서는 "사랑하게 됐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멜로드라마를 그리지만, 그 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 간의 관계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인간애를 바탕에 깔고 있죠. 그래서 그녀의 드라마는 '측은지심의 드라마'가 됩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될 그 마음을 이끌어내는 드라마죠. 변호사 원강하(김지훈)는 스스로 자신을 '마음이 없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드러낼 때마다 맞았다"고 술회하며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고 말하죠. 그의 집은 그 마음이 없는 원강하의 그 텅빈 공허를 형상화해낸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으로 진빨강(최정원)과 동생들이 불쑥..
'그대 웃어요'는 보면 볼수록 최불암을 닮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삶은 그렇게 힘겨운 것이라는 듯 잔뜩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사람좋은 인상으로 쇳소리처럼 바람빠지는 웃음 소리를 내는 최불암은 바로 이 드라마의 얼굴 같습니다. 처음에는 왜 제목이 '그대 웃어요'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최불암이 그 특유의 웃음을 지을 때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 앞에는 아마도 이런 문장이 생략되어 있었겠지요. '삶이 힘들더라도'. '그대 웃어요'의 할아버지 강만복은 간암판정을 받았지만 손주의 행복한 결혼을 보고 싶어 그 사실을 숨깁니다. 자식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할아버지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역시 이를 숨깁니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밑바탕에는 이 숨겨진 마음,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