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블로거의 시선 (96)
주간 정덕현
단 한 순간입니다. 마지막 1분여. 이배영 선수가 끝내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바를 놓지 않은 것도 그 짧은 순간이었고, 장미란 선수가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무게를 오로지 자기자신의 기록을 깨기 위해 들어버린 것도 그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역도는 바로 이 1분여의 시간에 폭발적인 집중을 하게 만드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1분여의 드라마를 보고는 쉬 잊혀져버리는 비인기종목이기도 하죠. 역도를 소재로 한 '킹콩을 들다'는 120분짜리 영화입니다. 1분여의 강렬하게 기억되었다가 허무하게 잊혀져버리는 각본없는 드라마는 어떻게 120분 간의 영화 속으로 담기게 되었을까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우리가 본 그 1분을 위해 선수들은 몇 년에 걸친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며 훈련을 하죠. 그러니 어찌보면 그..
'결혼 못하는 남자'는 제목의 '못하는'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남자에 대한 동정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조재희(지진희)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적인 통념상 나이 마흔이면 결혼해서 아이가 있어야 정상적이라고들 말하죠. 그런데 이 외부세계와는 단절되어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조재희를 보다보면 문득 문득 그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그는 조직의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그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인물이 아니죠. 어쩌면 조직이 그를 견뎌내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운영하는 사무실에서 그는 동료이자 친구인 윤기란(양정아)에게 모든 조직의 스트레스를 넘겨 놓은 채 자기 일에 빠져 신나게 놀고 있습니..
'트랜스포머'라는 두 시간 반 동안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롤러코스터에 동승하려면 먼저 생각 따위는 집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생각할 겨를조차 없게 화면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로봇들은 달려나갑니다. 왜 이 로봇들이 변신 전, 자동차의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이 영화는 롤러코스터의 속도감 그 자체를 즐기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위에서 생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안전벨트를 고정시키는 것처럼, 이 영화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그 장본인은 트랜스포머라는 매혹적인 변신로봇이죠. 어린시절 변신로봇을 갖고 놀았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휘리릭 뚝딱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없이 변해가는 ..
'트리플'은 인물의 관계로만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렌디한 설정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그 첫번째는 신활(이정재)-이하루(민효린) 사이에 싹트는 멜로 라인이다. (물론 피는 한 방울도 안섞였지만) 오빠-동생 하던 사이인 이들은 조금씩 애정의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신활-최수인-장현태(윤계상)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 멜로 라인이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고 그렇게 된 것이지만) 현태는 친구 신활의 아내인 최수인을 사랑하게 된다. 세 번째는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지만 조해윤(이선균)-강상희(김희) 사이의 멜로 라인이다. 이들은 우연히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강상희의 거리두기로 인해 조해윤은 그 사정거리 바깥에서 늘 마음을 졸이게 된다. 단순하게 표피적으로 그리고 부박하게 이들 ..
'찬란한 유산'을 찬란하게 만드는 인물은 단연 한효주일 것입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고은성은 이 드라마에서는 블랙홀 같은 인물이죠. 그녀의 매력은 뻗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먼저 우연히 만나 생명을 빚지게 된 장숙자(반효정) 여사는 그녀의 사람 됨됨이에 푹 빠져 유산까지 물려주려고 하죠. 아무리 힘겨워도 늘 기본을 지키는 고은성이라는 캐릭터라면 자신의 기업이 가진 뜻이 망가지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장년층의 마인드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성공한 그들은 때론 뭐 하나 어려움 없이 자라 당연한듯 유산을 받아 살아가려고 하는 현 세태가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죠. 하지만 고은성 같은 사심 보다는 그 유산을 남기는 분의 뜻을 깊게 이해하고 그 뜻에 맞게 유산을 쓰려..
스타들은 많아도 연기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또 연기자들은 많아도 다양한 연기변신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연기자들은 많지 않죠. 또 아무리 다양한 연기변신이 가능한 전천후 연기자라 해도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한 연기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거북이 달린다'의 김윤석은 그 몇 되지 않는 연기자에 속하는 배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다채로운 연기변신을 끊임없이 해오면서도 그 속에 우리 식의 정서가 늘 배어 있으니 말입니다.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대중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해가 2006년도 일 것입니다. 그 해 그는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를 통해 먼저 그 얼굴을 알렸습니다. 주말이면 리모콘 쥐고 방바닥 뒹구는 전형적인 뺀질남이지만 속내는 아내를 사랑하는 그가 연기한 강윤호라는 캐..
주말은 온전히 이승기의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찬란한 유산'에서 부잣집 아들로 철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1박2일'에서 생고생하는 이승기를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이번 '1박2일'은 하루 일찍 팀원들이 소집되었는데 촬영 때문에 늦게 도착한 이승기는 죄송하다고 하고는 곧바로 옥상에 마련된 텐트에 몸을 눕혔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들 멍 때리고 있는 그 시간, 이승기는 늘 그렇듯 샤워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찍어 바르며 촬영을 준비합니다. 이승기의 이런 모습은 '1박2일' 초창기부터 계속되었습니다. 야생에 몸을 던지면서도 늘 자신을 관리하고 챙기는 그의 자세는 다른 멤버들과는 비교되는 것이었죠. 뭐 사내가 이런데 나와서 하루 정도 좀 안챙기고 대충 지내면 되지 웬 유난이냐고 할 수도..
'무한도전'을 보다가 문득 '스파이더맨'의 한 대사가 떠오르더군요. "힘있는 자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죠. '무한도전'은 이제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예능의 한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껏 시도한 실험과 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의 많은 틀들을 깨고 새로운 형식들을 제시함으로써 전체 예능에 끝없는 자극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특집으로 방영된 '여드름 브레이크' 역시 전형적인 우리네 형사물을 패러디하면서 예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다 인지하고 있으신 것들이겠지만 '무한도전'의 이러한 웃음 뒤에는 김태호 PD가 자막과 연출을 통해 콕콕 박아넣은 풍자정신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번 특집에서는 몇몇 자막과 설정으로 연결시키는 것만으로 재개발과 철거민의 문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