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비평

인플루언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D.H.Jung 2024. 9. 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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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플루언서’가 꺼내 보여준 인플루언서들의 민낯

최근 넷플릭스에서 흥미로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놨다. ‘더 인플루언서’가 그것이다. 77인의 인플루언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특정 미션을 수행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성공했고 살아남았는가가 엿보인다. 

더 인플루언서

관심으로 생존하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더 인플루언서’의 포스터에는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한 줄이 사실상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아프리카TV 등 소셜 플랫폼에서 내로라하는 인플루언서 77인이 한 자리에 모여 끝까지 살아남는 1인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인플루언서들은 각자의 구독자수에 비례해 3억원이라는 총상금 액수를 나눈 수치가 ‘몸값’으로 찍히는 목줄을 차고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시작된 서바이벌. 그건 소셜 플랫폼에서 구독자와 조회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축소판처럼 보인다. 

 

77인이 저마다 ‘좋아요’ 15명, ‘싫어요’ 15명씩 투표하는 첫 번째 미션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 같은 보통의 상식으로 본다면 ‘좋아요’를 얼마나 많이 받고 ‘싫어요’를 적게 받느냐가 이 미션의 관건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즉 ‘좋아요’ 수에서 ‘싫어요’ 수를 빼서 누가 더 많은 수를 얻느냐가 이 미션의 승리자일 거라 여겨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그걸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을 많이 제작해옴으로서 브레인 중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진용진은 정확히 꿰뚫어본다. 결국 관심을 얼마나 많이 끄느냐가 관건인 인플루언서들에게 ‘좋아요’든 ‘싫어요’든 많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이 관점은 실제로 이 미션의 진짜 목표가 된다. 그걸 간파한 이들은 이제 ‘좋아요’가 아닌 ‘싫어요’를 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구독자수가 많아 가장 많은 상금을 가진 이들이 ‘싫어요’의 타깃이 되었지만, 진용진의 이 생각이 전파되면서 이제는 ‘싫어요’를 요구하는 이상한 풍경들이 생겨난다. 치열하게 ‘싫어요’를 받아낸 장근석과 빠니보틀은 그래서 이 미션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다.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그 문구가 사실상 이 서바이벌의 색깔이라는 걸 이 첫 번째 미션이 드러낸다. 재미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인플루언서들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이 미션은 말해준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그 후 9년

2015년 MBC에서 방영됐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의 세계가 이미 도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전조였다.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지상파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인터넷 방송으로 넘어가는 그 과도기의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부분 담겨진 예능이었다. 거기에는 김구라, 초아, 홍진영 같은 연예인들이 참여했지만 동시에 이말년이나 황재근, 차홍, 정샘물 같은 인플루언서적인 파워가 느껴지는 비연예인들도 참여했다. 스튜디오에 꾸려진 여러 방들에 들어가 저마다 인터넷 방송을 하고 가장 시청률이 높은(평균 시청률과 최고 시청자수로 계산) 출연자가 우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현재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박진경 PD와 함께 연출했던 이재석 PD가 기획, 연출한 ‘더 인플루언서’는 그간의 시간만큼 변화된 콘텐츠의 환경을 보여준다. 일종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넷플릭스 버전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이제는 소셜 플랫폼에서 유명해져 많게는 연간 수십 억의 수입을 얻게 된 인플루언서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 미션으로 치러진 라이브 방송 미션을 보면 그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미션을 위해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거꾸로 연예인들을 섭외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도서관은 배우 설인아를 섭외했고, 준우는 가수 에일리를 섭외했다. 무엇보다 이 거꾸로 뒤집어진 영향력을 말해주는 건 장근석이 초보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전에 뛰어들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연예인들에게도 인플루언서는 이제 하나의 워너비가 되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콘텐츠보다 관심이 더 앞서는 현실

그런데 막상 ‘더 인플루언서’에서 여러 미션들을 통해 살아남는 생존자들을 보니 그것이 콘텐츠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오로지 ‘관심’이 우선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진용진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뉘앙스를 풍기거나, 자신의 수익을 공개한다거나 하는 식의 관심 끌기에 집중했다. 장근석이 매운 음식들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방을 하고, 뷰티 크리에이터인 이사배가 분장에 가까운 화장술을 보여주는 콘텐츠로서의 방송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결과는 영알남(영어 알려주는 남자)이나 차홍처럼 콘텐츠로 승부하는 이들은 탈락하고, 진용진은 살아남았다. 또 벼랑 끝에 몰려 넷플릭스 욕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 장지수는 끝내 살아남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른바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다. 

 

이런 미션 방식과 결과들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2인1조 팀전으로 치러진 피드 사진 미션에서도 평가단 100인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무르게 하는 건 사진의 내용이 아니었다. 궁금증을 자극하는 모습이나 글귀들이 더 높은 주목도를 낳았고, 인플루언서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자극적인 사진을 시도하기도 하고 나아가 아예 사진이 아닌 글귀로만 채워진 피드도 올라왔다. 또 SNS를 통해 최대한 많은 댓글을 받는 미션에서도 선물 공세를 한다거나,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이름을 다는 이벤트를 하는 등의 시도들이 이어졌다. 댓글을 유도하기 위한 이들의 노하우가 드러나긴 했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콘텐츠를 통해 주고받는 소통이라는 댓글 본연의 기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지막 최종 라운드에 올라온 오킹, 장지수, 빠니보틀 그리고 이사배 중 끝까지 살아남은 이사배와 오킹의 대결에서 결국 오킹이 3억원 상금의 주인공이 된 사실은 인플루언서들에게 콘텐츠만큼 중요한 게 관심을 유도하는 노하우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화장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로 승부한 이사배는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오킹의 선거전을 방불케 하는 방송과 먹방, 즉석 소개팅 등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또한 ‘더 인플루언서’는 우승자가 된 오킹이 그간 인기만큼 크고 작은 논란의 주인공이고 최근에도 코인 관련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도 들여다볼 지점이 있다. 이것은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조차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 세계의 높은 영향력에 비해 갖는 낮은 책임감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건 상대적으로 연예인들보다 이들의 영향력이 낮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최근 방송이 이제 유튜브 같은 소셜 플랫폼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실제로 피식대학이 지역 비하 논란으로 순식간에 많은 구독자들의 이탈을 경험한 건 영량력이 높아진 이들에게도 그만한 책임을 요구하게 된 현실을 잘 말해준다. 

 

엄청난 관심을 받고,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천문학적인 돈을 벌기도 해서 부러움을 사지만 ‘더 인플루언서’를 통해 보는 그들의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야 하는 SNS 시대의 씁쓸한 현실이다. 인플루언서는 그 극단화된 사례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글:시사저널,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