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무비’, 이런 시간이 없다면 사는 건 얼마나 고통일까
박보영과 최우식의 ‘멜로무비’, 영화 같은 사랑에 담은 사람이야기
아홉 살에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보겠다고 마음 먹는 아이는 영화가 그리도 좋았던 걸까. 아니면 홀로 어두운 밤을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그만큼 힘겨웠던 걸까. 넷플릭스 드라마 <멜로무비>는 부모를 일찍 잃고 형과 함께 비디오가게에서 살며 밤새 비디오를 보는 고겸(최우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두운 방안을 빛으로 채워주는 영화에 빠져드는 아이 고겸으로부터.
영화를 좋아해서일까. 스물 여섯 살이 된 고겸은 배우로서의 꿈을 키우며 영화판에 들어왔다가 김무비(박보영)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연출 스태프에게 빠져든다. 무비라는 이름이 고겸을 잡아끌었지만, 정작 무비는 자신의 이름이 싫다. 영화 판에서 일하다 과로로 일찍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애증 때문이다. 가족까지 등지고 열심히 영화를 향한 꿈을 펼쳤지만 이렇다할 영화 한 편 제대로 내지 못했던 아버지. 그렇게 일찍 떠난 아버지에게 무비는 그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겠다며 영화판에 뛰어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화 촬영현장에서 만난다. 한 사람은 영 연기에는 재능이 없어보이지만 사람이 좋아 누구나 좋아하는 너스레 가득한 청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스텝으로 일하고 있지만 한 발 물러나 섬처럼 그들과는 섞이지 않는 조용한 청춘이다. 고겸은 마치 주인 따라 다니는 댕댕이처럼 김무비를 졸졸 따라다니고 그런 고겸에게 어느 눈오는 날 김무비는 첫 키스를 한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키스를.
하지만 삶이 어찌 영화 같은 순간들로 채워지랴. 그 키스를 한 날 이후 갑자기 고겸은 사라져버리고 김무비는 기다리다 지쳐 마음을 접는다. 아버지가 갑자기 떠났을 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알았던 무비였다. 그래서 누구와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겨우 고겸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다시금 찾아온 건 그 고통이었다.
고겸 또한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형은 회복하기 어려워보였지만, 고겸의 정성스런 간병으로 다시 살 수 있게 됐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고, 고겸은 간병하며 할 수 있는 글을 쓰다 영화 평론가가 된다. 무비는 고겸을 마음 속에 지워내며 영화 감독의 길을 걸어간다.
한편 고겸의 어린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시준(이준영)과 주아(전소니)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지만 어느 날 주아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겠다며 떠나버린다. 음악의 꿈을 갖고 있고 재능도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시준은 자신의 뮤즈인 주아를 잃은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나타난 주아가 시준에게 자신이 만들 영화의 음악감독이 되어달라 요구하면서 이들의 손에 닿지 않는 아픈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멜로무비>는 미래의 꿈 앞에서 불안해하고 때론 예기치 않은 일들 때문에 흔들리면서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게 되는 청춘남녀들의 멜로를 그리는 작품이다. 평론가와 영화감독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와 음악감독이라는 네 인물의 직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연인과 친구로 얽혀 그려내는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해 우리는>을 쓴 이나은 작가의 색깔 그대로 <멜로무비>는 풋풋하고 경쾌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생각보다 쓰디 쓴 삶의 서사가 담겨져 있다. 그 고통스런 삶의 모습이 밝게 그려지는 건 다름 아닌 어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그 밝음을 잃지 않는 고겸이라는 인물 덕분이다. 그는 아홉 살 어린 나이에 홀로 비디오가게에서 살아가며 일하러 간 형을 기다리며 살아야 했지만, 그 시간을 영화를 보는 즐거움으로 채웠던 아이였다.
이 지점은 <멜로무비>가 가진 웃음과 행복감 가득한 사랑이야기에 삶의 무게감이 얹어지는 대목이다. 알고 보면 모두가 저마다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걸 <멜로무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들을 담담히 보여주면서 조금씩 꺼내 놓는다. 갑자기 사망한 부모 대신 이제 겨우 이십대에 덜컥 동생을 부양해야 했던 형, 그 형이 사고를 당하자 모든 일을 접고 형을 간병해 살려낸 동생, 영화의 꿈을 꿨지만 현실의 무게에 무참히 꺾여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와의 시간이 간절했지만 먼저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린 딸, 남자친구의 뮤즈가 되어 응원했지만 점점 자신이 사라지는 걸 알고는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자와 그 여자가 떠난 후 그 시간대에 머물러 살게 된 남자...
발랄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멜로무비>에는 고통스런 삶들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삶들을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의 순간들이고 어쩌면 한 발 물러나 그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선이라고 이 작품은 말하는 듯 하다. 그건 마치 영화를 닮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그 속으로 우리를 인도해 잠시 아픈 현실을 잊게 해줌으로서 또 그 어둠 바깥으로 나오게 해주는, 영화를.
고겸과 무비가 어느 어두운 밤 한적한 곳에서 오픈카에 앉아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나눌 때 저 편에 보이는 달은 그래서 <멜로무비>가 하려는 이야기를 그림 한 폭에 담아 놓는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어둠 가득한 삶 속에서 저 달처럼 빛나는 달달한 멜로영화 한 편이 주는 위로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힘이라는 것. 그렇게 사랑이야기가 사람이야기가 되고 달달함이 묵직한 감동으로 이어지는 작품, 바로 <멜로무비>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