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표 학원액션물, 이번엔 이정하다
‘하이스쿨 히어로즈’, 1등 강박 이정하의 억압된 감정 폭발 액션
“병원 놈들은 다 나쁜 놈들이야. 접대만 받으려고 하고. 의사들은 지들이 최고인줄 알아.”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ONE:하이스쿨 히어로즈(이하 하이스쿨 히어로즈)>에서 의겸(이정하)의 아버지 석태(김상호)는 아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는 의사들에게 접대를 해 판로를 뚫어야 하는 의료기기업체를 운영한다. 의사가 못되어 아버지(김종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그 그늘 아래 살아가는 걸 콤플렉스로 갖고 있다. 그에게서는 의사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더불어 갑질하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겹쳐진 이중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푸념을 늘어놓는 석태는 의겸이 문제 풀이를 틀리자 손가락으로 머리를 기분나쁘게 툭툭 밀며 꾸짖는다. “김의겸. 집중 안할래? 집중 안해?” 석태의 그 행위는 마치 직장에서 직원들을 쥐잡듯 하는 그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는 의사의 갑질에 대한 분노를 그렇게 직원들을 잡아 푸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의겸이를 어떻게든 1등 하게 만들어 의사가 되게 하려는 집착에도 그 엇나간 욕망과 분노가 엿보인다.
그렇게 머리를 툭툭 미는 행위는 의겸이의 분노 버튼을 건드리지만, 그은 애써 그 감정을 눌러놓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일진들이 같은 행위를 하자 그의 분노는 폭발한다. 싸움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타고난 근성을 가진 의겸이 어쩌다 학교폭력을 일삼는 일진들과 연루되어 하나하나 그들을 제끼게 되는 건, 그래서 그의 안에 내재된 분노가 저 일진들을 향해 표출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약한 영웅>으로 토종 OTT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던 웨이브가 <하이스쿨 히어로즈>라는 또다른 학원액션물 오리지널 드라마로 돌아왔다. 공부에 집착하는 너드가 학교폭력에 휘말려 일진들과 하나하나 일전을 벌여나가는 학원액션물의 틀을 가진 작품이지만, 이 드라마에는 학교 폭력과 연결된 사회의 다양한 폭력들이 겹쳐져 있다는 게 특징이다.
앞서 석태와 그의 아들 의겸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양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등이 되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을의 입장에 처하게 되는 사회 현실을 경험하는 기성세대(부모)는, 그 좌절과 분노를 고스란히 후세대(자식)에게 쏟아냄으로써 그들을 1등 강박 속에 억압받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억압이 만들어낸 후세대의 분노는 그들 세계의 폭력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비뚤어진 현실은 의겸의 형이 의대에 들어가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현실을 만들지만 그럼에도 이들 부모들의 욕망은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형을 실패로 보고 동생은 그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며 더 몰아세운다. <하이스쿨 히어로즈>의 서사 구조가 저 <약한 영웅> 같은 학원 액션물과 살짝 다른 지점은 주인공인 의겸이 가진 억압된 정서들이 학교의 빌런들을 때려 눕히는 카타르시스의 폭력으로 발현된다는 점이다.
의겸이 가진 그 억압된 정서를 이용해 ‘하이스쿨 히어로즈’라는 일진 때려잡는 팀을 만드는 윤기(김도완)도 또 다른 자신만의 목적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원에 누워 있는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인물. 따라서 학교 빌런 잡는 영웅처럼 시작하지만, 그렇게 발현된 폭력성은 의겸 또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중독적인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6500만 조회수를 기록한 레전드 웹툰 원작으로, 벌써부터 <약한 영웅>의 뒤를 잇는 웨이브표 학원액션물의 탄생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약한 영웅>에 슬픈 눈빛을 가진 박지훈이 있었다면, <하이스쿨 히어로즈>에는 이정하가 있다. <무빙>으로 순수한 슈퍼히어로의 면모를 보였다면 <하이스쿨 히어로즈>에서 이정하는 눈 돌아가는 비틀린 학원 히어로로 돌아왔다. 학원 액션 특유의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학생들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현실들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웨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