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세상, 바보 같은 박진영이 전하는 묵직한 진심
‘미지의 서울’, 진심을 함부로 말하고 이용하는 세상에 대한 일침
“알아. 나도 안다고 유미지인거.” tvN 토일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박진영)는 유미래(박보영)인 척 하는 유미지(박보영)의 정체를 자신도 알고 있다고 친구인 박지윤(유유진)에게 말한다. 박지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미래인척 하는 미지 앞에서 그녀가 미지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며 호수와 가까워지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수가 미지를 만나러 가려 하자 그 ‘비밀’을 폭로한다. 호수가 좋아했던 사람은 미래였을 거라 착각한 지윤은 그 비밀 폭로를 통해서라도 호수의 발길을 되돌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비밀을 폭로하고 이용하는 지윤에게 호수는 담담하게 말한다. 이미 그녀가 미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술에 취해 호수에게 너한테는 거지말 하기 싫다며 잠꼬대처럼 자기 정체를 드러냈던 유미지였다. 그런 미지를 보며 호수는 반색했다. 자신이 좋아했던 건 미래가 아니라 미지였기 때문이다. 화재 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후 산 하나도 오를 수 없는 몸을 가졌던 호수를 끝까지 산 꼭대기에서 기다려줬던 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호수는 미지의 그 진심을 읽었고 그래서 그녀를 그때부터 쭉 좋아하게 됐다.
<미지의 서울>은 일란성 쌍둥이인 미지와 미래가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보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자신을 챙겨줬던 선배가 회사 내 비리를 폭로해 왕따를 당하자 사내고발을 한 후 직장 내 괴롭힘에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의 끝에 서 있넌 미래였다. 멘탈 강하고 씩씩한 미지가 미래와 삶을 바꿔 살아보기로 한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서로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설정은 그다지 현실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판타지를 통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건 분명하다. 타인의 삶 속에 들어가 발견하게 되는 진심을 보여주려는 것이고, 그 진심을 얼마나 막 대하고 심지어 이용하려는 무례한 세상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 속에서 호수는 이름처럼 잔잔하게 요동없이 누군가의 진심 혹은 비밀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뭔가를 숨길 땐 이유가 있어.”라고 하거나 “곤란한 질문 하나 정도는 있잖아. 그거 굳이 안 물어보는 게 그게 속이는 거야?”라고 하는 그런 인물. 또 설사 누군가의 비밀을 알았다고 해도 함부로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다. “다 아는 게 아니니까. 우연히 뭐 좀 알았다고 둘만의 사정은 또 모르는 거잖아.”
그래서 미지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도 호수는 굳이 그걸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미지가 그 정체를 애써 말하려고 해도 다음에 하란다. 네가 편하게 말할 수 있을 때 그 때 하라는 것. 호수는 그런 인물이다. 누군가의 비밀을 지켜주려 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거기에는 무언가 그들만의 사정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저 함부로 비밀을 말하고 심지어 그 비밀을 마음대로 이용해먹으려는 무례한 세상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미래 대신 공기업에서 일하게 된 미지가 어쩌다 로사식당 건물주 김로사(원미경)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겪게되는 상황도 이 무례한 세상과 관련이 있다. 공기업은 경전철이 지날 그 부지를 어떻게든 매입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로사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점점 인간적으로 다가가 가까워지게 된 미지는 회사가 그 사실을 비밀로 한 채 부지 매입을 하려 한다는 사실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회사 측에 법률대리인으로 들어온 이충구(임철수)는 그런 미지의 진심 또한 이용해먹으려 한다. 일부러 대외비 문건을 미지에게 보여주고, 그래서 그 사실을 김로사 혹은 김로사의 법률 대리인인 이호수에게 알릴 거라고 생각하는 이충구는 아마도 그 사실로 미지가 당할 일들을 빌미 삼아 이호수를 협박하려는 듯 보인다. 즉 미지가 가진 진심조차 이용해 어떻게든 사업에서 이기려는 이충구라는 인물은 돈과 권력이면 다 된다 생각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무례함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호수가 과연 그와 어떻게 대적해 진심을 지켜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함부로 누군가의 진심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입에 올리는 세상 앞에서 상처 입고 미지와 삶을 바꿔 고향에 내려온 후 미래는 안정을 되찾지만 그녀는 또다시 동네 사람들의 소문 앞에 겁을 먹는다. 딸기밭 사장 한세진(류경수)과 사귄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전 자산운용사로 일했지만 도시를 떠나 할아버지가 남긴 딸기밭으로 돌아온 한세진 또한 저 이충구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떠나온 인물처럼 보인다. 한세진은 진심을 다해 딸기밭을 일구고, 그런 자신을 도와주는 미래에 대해 호감을 갖는다. 그는 밖에 있는 건 가짜고 바로 이 밭에서 땀흘려 하는 일이 진짜라고 위로하며 소문에 겁먹는 미래에게 “난 좋은데, 우리 소문”이라는 말로 자신의 속내를 꺼내놓는다.
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 무례한 세상에 이호수나 한세진은 그 정반대 측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미지가 말하듯 어찌 보면 바보 같다. 하지만 이 바보들 앞에 미지도 미래도 마음이 흔들린다. “떠 있는 줄도 몰랐지만 내내 따라오는 달처럼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 없게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바보. 난 이런 바보 같은 이호수가 좋았고, 좋아한다.” 미지의 마음처럼 시청자들의 마음도 똑같이 흔들렸을게다. 늘 마주하고 있는 무례한 세상 앞에서 이들 바보들의 진심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지 고스란히 느꼈을 테니.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