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같지만 실제 사건으로 채워진 ‘노무사 노무진’
‘노무사 노무진’, 저런 황당하고 기막힌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까 싶지만
매번 교양시험이라는 명목으로 말도 안되는 문제들을 내서 청소노동자들을 모욕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대학교? 그것도 시험을 보는 날이면 교양에 맞게 정장을 차려 입고 오라고 한다. 청소노동자들은 매번 시험을 보는 것도 그렇지만, 그 결과에 따라 해고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한 청소노동자는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MBC 금토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에 등장한 청소노동자에 대한 한국대학교의 갑질 사건은 너무 황당해 과연 이런 기막힌 일이 현실에 있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로 한 내용이다. 2021년 국내 최고의 명문대에서 실제 벌어졌던 이 사건은 결국 기숙사 휴게실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되는 비극을 낳았던 사건이었다. 이들은 이러한 갑질은 물론이고 주6일 근무, 엘리베이터도 없이 건물을 오르 내리며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에 몰려 있었다. 결국 유족들은 대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유족에 대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노무사 노무진>은 노무진(정경호)이라는 노무사가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들의 귀신을 본다는 판타지 설정이 들어 있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저승 같은 곳에서 보살(탕준상)을 만나 계약을 한 후 살아돌아온 노무진은 그 후로 그 귀신들의 한을 풀어주는 노무사로 활약하게 된다. 게다가 노무진이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나희주(설인아) 그리고 고견우(차학연) 같은 캐릭터들도 어딘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적 캐릭터의 과장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저 상상력으로 그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지만, 놀랍게도 그 안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모두 실제 벌어졌던 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도 그렇지만, 1,2회에 등장했던 실업계 고등학생의 사망사건은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또다시 발생해 사회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또 3,4회에 등장한 간호사를 자살로 내몬 사건도 마찬가지다. 병원 내에서 실제 벌어진 이른바 ‘간호사 태움’ 사건이 그것이다. 또 6회 마지막에 잠깐 등장했던 편의점 알바 윤재(유선호)의 죽음은 33도 폭염에 카트 정리 업무를 하다 쓰러져 사망한 한 대형마트 직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노무사 노무진>이 굳이 귀신 보는 노무사라는 판타지 설정까지 해가며 이 실제 사건들을 드라마로 소환해내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마도 이런 식의 재미있는 설정이 아니라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러한 현실 문제에 대해 우리들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 5,6회 내용에서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학교측에 부당함을 호소할 때 보이는 일부 대학생들의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그들 중 몇몇은 심지어 공부에 방해된다며 고소까지 하려 한다.
이 장면은 실제로도 벌어진 일이지만, 이를 통해 드라마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그건 갑질이 벌어지는 노동현장의 심각함만큼 이에 대해 내 일이 아니라며 지나치는 무관심이 저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절망을 안기는가 하는 것이다. 노무진이 귀신을 보게 되는 설정으로 그려지게 된 건 그래서다. 죽은 이후에나 관심을 갖는 노동자의 현실을 노무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우회적으로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사 노무진>을 보는 감정은 복합적이다. 판타지 설정과 과장된 캐릭터는 유쾌하고 코믹하게 드라마를 보게 만들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심각한 노동 현장의 갑질들은 보는 내내 뒷목을 잡게 만들고,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은 먹먹한 울림을 준다. 웃다가 화났다가 울게 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노무진이 귀신을 보거나 귀신에 빙의되어 그 현실을 보듯, 드라마에 몰입해 이러한 경험을 대리하게 해준다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