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 아닌 사랑, 남궁민과 전여빈은 과연 그걸 해낼까
우리영화’, 그 흔한 시한부 소재인데 어딘가 다른 이유
“자문을 맡게된 시한부 이다음입니다.”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에서 이다음(전여빈)은 이제하(남궁민)에게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이제하는 아버지의 유고작인 ‘하얀사랑’을 리메이크하려 한다. 그런데 그 작품은 주인공이 시한부인 멜로드라마다. 그래서 그 사정을 제대로 알기 위해 병원 의사들의 자문을 요청했는데, 돌고 돌아 이제하 앞에 진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이다음이 나타난 것이다.
시한부. 소재만으로도 ‘신파’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 때 신파가 트렌드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던 옛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눈물의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신파는 작품성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처럼 됐다. 특히 요즘처럼 쿨내가 풀풀 나는 그런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젊은 세대에게 신파는 눈물에 푹 절여진 축축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러니 신파는 이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소재가 되었다.
<우리영화>라는 드라마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이제하는 아버지의 유고작 ‘하얀사랑’을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신파라고 생각한다. “신파가 그러라고 만든 거니까. 그렇게 시원하게 쏟아내고 나면 내가 마치 대단한 사랑을 한 것 같고 그러니까 일종의 착각?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거죠.” ‘하얀사랑’을 몇 번이고 봤고 볼 때마다 감동이었다는 이다음에게 그는 냉정하게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다음은 생각이 다르다. “착각 아닌데요.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나누고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다 괜찮을 거다. 사랑이 있으면. 그걸 보고 있으면 견딜 힘이 생겨요. 그렇게 대단한 사랑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도 해보고 싶고. 해보려면 살아야 될 거 같고. 그니까 쉽게 말해서 ‘하얀사랑’은 나한테 항암이고 방사선 치료다, 뭐 이런 얘기요.” 진짜 시한부로서 그 영화에 등장하는 시한부 설정이 그저 신파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차이는 뭘까. 신파가 그저 시한부 설정을 가져와 눈물샘을 자극하는 용도로 쓰고 버리는 어떤 것이라면, 사랑은 그 설정을 보고 나서 나도 그런 대단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란다. 그래서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는 것. 그렇게 이다음이 말할 때 이제하는 문득 엄마를 떠올린다. 역시 시한부의 삶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끝까지 어린 아들 앞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살려 했던 엄마.
애초 이제하는 아버지의 유고작 ‘하얀사랑’의 리메이크를 맡지 않으려 했다. 이유는 당시 엄마가 시한부인 상황에서 여배우와의 염문이 있었던 아버지가 그런 시한부 설정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위선’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하얀사랑’의 초고를 보고 그 원작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가 쓴 작품이었다는 알게 된 이제하는 마음을 바꿔 먹는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증오도 또 엄마에 대한 이해도 그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될 수 있을 거라 예감한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영화>는 시한부라고 하면 신파를 떠올리게 하는 그 소재를 가져온 작품이지만, 그러한 선입견을 벗어내고 진짜 사랑의 이야기를 꺼내보이려 한다. 그건 단지 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한부에 처한 삶을 진정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함이고 끝내 사랑하려 함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사건이 빵빵 터지며 전개되는 그런 속도의 전개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하나 인물 깊숙이 들어가 그 복잡한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빌드업을 선택했다.
시작은 어딘가 느리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특히 1회는 마지막 장면인 “자문을 맡게된 시한부 이다음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오기 전까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엔딩 이후 2회부터 이다음이 자문을 맡다가 이제하와 대화 중 그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고 욕망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그 때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구나. 이제하 이 사람만 내 인생에 캐스팅한다면.’ 시한부로서만 치부되어 온 삶이 영화에 캐스팅되는 순간 주인공의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지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조건이 있어요. 죽지마요.” 이제하는 그런 말로 이다음을 캐스팅한다. 물론 그 ‘죽지마요’라는 말 앞에는 어쩌면 ‘영화를 다 찍기 전에는’이라는 가로 안의 대사가 숨겨져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 말은 이다음을 설레게 만들 것이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이제 주인공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의 말이니 말이다. <우리영화>에서 이제하와 이다음이 만들어가는 ‘하얀사랑’은 그래서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그건 감독과 배우로서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뜻도 되지만, 두 사람이 그 과정에서 만들어가는 사랑의 의미도 된다. 결코 그저 신파로 치부될 수 없는 그런 사랑.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