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봐야해

무녀가 결합시킨 K오컬트와 K팝이라니!(‘케이팝 데몬 헌터스’)

D.H.JUNG 2025. 7. 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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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K오컬트 이번엔 K팝과 만나 글로벌 히트

케이팝 데몬 헌터스

투둠- 하는 소리와 함께 ‘넷플릭스’의 이니셜이 지나간 후, 기성세대에게는 한때 일본을 대표하는 상표로 여겨졌던 ‘소니’가 등장한다. 이 작품이 미국의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됐다는 걸 보여주는 크레딧이다. 더불어 점점 커지는 관객들의 연호 소리.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헌트릭스!”를 외치는 풍경이 이어지는데 그건 누가 봐도 K팝 슈퍼스타의 공연장 모습이다. 그 풍경 위로 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작품의 주인공들인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 루미, 미라, 조이를 소개하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세상은 너희를 팝스타로 알겠지만 너희는 훨씬 더 중요한 존재가 될 거다. 너희는 헌터가 될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놀랍게도 <전설의 고향> 같은 사극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국형 오컬트의 서사다. 오래 전부터 인간 세상을 탐했던 악령들이 있었고 그들이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 그들의 왕 귀마에게 그 기운을 보냈는데 그 때 그들을 지켜줄 세 명의 영웅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놀랍게도 무녀들이다. 신칼 등을 무기 삼아 악령들을 물리치는데, 그 물리치는 방식은 춤과 노래다. 케이팝 슈퍼스타들인 루미, 미라, 조이는 바로 그 영웅의 계보를 물려받은 데몬 헌터스들이다. 

 

이처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과 K오컬트를 하나로 묶어냈다. 그건 바로 무녀라는 한국의 무속신앙 속 특별한 존재들을 통해서다. 실제로 무녀들이 굿을 하는 장면은 춤과 노래가 결합되어 누군가의 혼을 빼는 퍼포먼스의 현장이기도 하다. 무녀들이 굿하는 장면이 뽑아내는 에너지들은 그래서 <곡성>에서부터 <파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K오컬트에 해외가 주목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됐다. 서양의 오컬트가 사제의 구마의식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작품에 부여한다면, 우리의 K오컬트는 무녀의 굿하는 장면이 그걸 대체하곤 했던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바로 그 무녀의 굿을 사람을 홀리는 K팝의 춤과 노래로 재해석해냈고, 그 굿에 빨려들어 영혼을 치유받기도 하는 대상들을 K팝이라는 세계 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유대감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기도 하고 또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팬덤으로 해석했다. 황당해 보일 정도로 도전적인 해석이지만,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톡톡 튀는 캐릭터들과 이러한 해석 자체를 즐기게 만드는 유머, K팝과 그 팬덤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음악과 디테일한 소재들의 재연 등등, 한 마디로 치열함이 느껴지는 메이킹 과정을 통해 그 도전은 전 세계적인 공감으로 이어졌다. 

 

최근 K콘텐츠의 글로벌한 성공에 힘입어 한국문화를 힙하게 받아들이게 된 글로벌 시장 속에서 매 장면 매 순간 한국 문화의 정경이 담겨진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팬들은 물론이고 글로벌 팬들까지 매료시킨다. 라면과 김밥 같은 K푸드가 등장하고,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하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시선을 잡아끈다. 민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고, 헌트릭스와 대결하는 남성 아이돌그룹 사자보이즈는 갓을 쓴 저승사자의 모습이다. 한글 간판이 즐비한 거리와 한약방, 목욕탕 같은 공간들은 우리 같은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 친근한 어떤 것들이지만, 아마도 해외의 K콘텐츠 팬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힙하게 느껴지는 새로움일 게다.

 

이처럼 한국문화의 정경들이 매회 담겨 있는 것처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 팝이나 K드라마 같은 K콘텐츠에도 진심이다. 완벽한 K팝 슈퍼스타 ‘헌트릭스’를 재연하기 위해 테디 같은 블랙레이블 소속 프로듀서들이 음악에 참여했고 리정과 잼 리퍼블릭이 안무를 맡았다. 트와이스, 오드리 누나, 이재(EJAE)같은 한국 혹은 한국계 아티스트들이 노래했다. 물론 이 작품의 진심은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간 매기 강 감독이나 아트디렉터 다혜 셀린 김 같은 제작 참여자들의 마음이 모여서 생겨난 것이다. 또한 K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멜로적 상황이나 출생의 비밀 같은 클리셰들도 작품의 서사 속에 녹여져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뭉쳐져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낸 결과, 공개하자마자 글로벌 순위 1위에 등극하는 열광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플릭스 패트롤에서 단박에 1위에 올랐고, 넷플릭스 톱10 투둠에서도 글로벌 순위 2위에 올라섰다. 마치 무녀들의 후세인 헌트릭스가 춤과 노래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해낸 것처럼, 이 작품은 단박에 K팝과 K오컬트를 묶어 전 세계 대중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낸다. 

 

한국의 아티스트가 참여하고 한국계 감독이 연출했지만 앞서 서두에 이 작품의 오프닝을 설명하며 말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소니에서 제작한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즉 미국의 애니메이션업체가 K팝은 물론이고 K오컬트를 끌어와 무엇보다 다채로운 한국문화를 한국 배경으로 그려낸 작품이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것이다. 국적 개념을 뛰어넘어 이제 그 나라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문화든 소재로 쓸 수 있고 이를 통해 글로벌 반향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 국내의 콘텐츠 제작업계가 이제 글로벌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자극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