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드라마

법정드라마인데 먹는 장면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올까

D.H.JUNG 2025. 7. 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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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자 하는 일... ‘서초동’이 그리는 슬기로운 변호사 생활

서초동

빨리 먹고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데 아직 충분히 두부에 양념이 배지 않았다며 기다리란다. 음식에 진심인 배문정(류혜영)은 그래서 두부 하나하나에 양념을 끼얹어가며 굳이 기다리게 했다가 함께 한 모임 사람들이 먹게 해준다. 그 곳에 모인 안주형(이종석), 조창원(강유석), 하상기(임성재) 그리고 새로 모임에 들어온 강희지(문가영)는 배문정이 시키는 대로 기다렸다 먹는데 기다릴 땐 투덜대던 그들도 역시 그렇게 먹으니 맛있다고 인정한다. 

 

이거 법정드라마 맞아? tvN 새 토일드라마 <서초동>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분들이 적지 않을 게다. 법정이 나오고, “존경하는 재판장님!”을 외치는 변호사와 상황을 극적으로 뒤집기 위한 숨겨진 증인이 법정에 출두하는 그런 장면들을 예상했다면, <서초동>은 말한다. 그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장면일 뿐이라고. 

 

대신 <서초동>은 이제 9년차 어쏘 변호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안주형의 너무나 회사원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흔들리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하기 싫은’일이지만 직장인이기에 해야 하는 그 지긋지긋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일한다. 법정에서는 초짜 변호사로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상대에게 시간이 지연되는 게 싫어 조언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맡은 소송의 승소와 패소에 거의 무감한 얼굴을 보여준다. 

 

안주형은 자신이 많은 사건이나 그 의뢰인에 더 이상 깊게 마음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관심하지도 않은 그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9년차의 변호사 밥이 만든 짬이다. 의뢰인이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폭력을 쓰지 않았을 거라 섣불리 판단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의 사연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다만 보다 정확한 사실을 모으고 그걸로 자신이 맡은 의뢰인에게 이로운 스토리를 법을 통해 써준다고 생각한다. 

 

법정에서 마주한 상대에 대한 지나친 대결의식도 없다. 자신의 의뢰인이 입장이 있는 것처럼 상대 역시 상대의 입장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차갑고, 냉정하며 심지어 AI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찌 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살아남기 위한 그의 생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뢰인에게 변호사 그 이상으로 마음을 깊이 줬다가 받을 수 있는 상처가 왜 없었겠나. 

 

안주형이라는 인물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서초동>은 우리가 봐왔던 법정드라마의 극적인 서사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 이들은 그 법정드라마들이 승소에만 집착하는 것과 정반대로, 점심 시간에 뭘 먹을까에 더 집착한다. 이들은 바빠 죽겠는데 주문하면서부터 빵가루 묻혀 갓 튀겨서 만들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돈가스집에서 꼭 점심을 먹으려 든다. 왜?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이들은 애써 점심을 먹으며 강변하고 있는 중이다. 

 

생활밀착형의 민사사건들이 소재로 등장하고, 그 사건을 맡은 서초동 변호사들의 사건만큼 진심인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채워져 있으며, 그 안에서 이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성장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의사들이 등장하는 의학드라마지만 그 작품이 병원에서의 극적인 사건만큼 밴드를 하고 함께 음식을 먹는 일에 진심을 보여주는 것처럼, <서초동>도 변호사들이 등장하는 법정드라마지만 이들의 일상에 더 진심이다. 

 

<서초동>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법정드라마는 그래서 법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더불어 이들의 사무실이 있는 서초동 주변과 이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일상들이 겹쳐져 있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만렙의 직장인 노하우로 살아가는 안주형 같은 인물 앞에, 자기 사건도 아니지만 마음이 쓰여 프로보노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강희지 같은 오지라퍼가 나타나면서 이들을 부딪친다. 그건 변호사 생활에서의 갈등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안전함을 깨고 시작되는 관계의 서막처럼도 보인다. 

 

이제 법이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싸우는 이야기가 주는 공감은 과거만큼 크지 않게 됐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현실을 통해 법 또한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걸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극적인 법정의 히어로들 이야기보다, <서초동> 같은 법정을 다니는 직장인들 같은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보다 당장의 맛나는 점심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변호사들의 이야기가.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