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 저질스러웠던 80년대뒤집는 통쾌한 워맨스
'애마', 진선규가 완벽 재연한 80년대 저질 속물, 이하늬와 방효린도 빛났다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중장년들에게 <애마부인>이라는 영화는 머릿속에 각인된 선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게다. 나체로 말을 타고 달리는 이미지에, 후시녹음된 과장된 연기톤의 목소리 그리고 특유의 처연한 느낌이 묻어나는 OST까지... 지금도 그 포스터를 다시 보면 ‘애마에게 옷을 입혀라’, ‘완전성인영화시대의 화려한 팡파레’라는 선정적인 문구와 함께 가슴을 강조한 안소영 배우의 이미지가 이 시대의 선정성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80년대 민간인 학살을 통해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노골화된 3S(Screen, Sports, Sex) 정책으로 이른바 ‘벗기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엠마누엘 부인(1974)>을 모티브로 삼아 나온 영화가 <애마부인>이다. 개봉 당시 몰려든 관객들 때문에 서울극장 매표소가 붕괴될 정도로 대박을 터트린 작품. 그렇다면 이 영화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어떨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80년대 폭력적이며 선정적이고 저질스러운 시대를 표상하는 <애마부인>을 전복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어떻게든 여배우를 벗겨 돈을 벌어 보려는 제작자와, 그 선정성을 용인해주는 대가로 여배우들의 성상납을 받는 권력자들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부딪치는 톱스타 정희란(이하늬)과 신인배우 신주애(방효린)의 워맨스가 빛나는 투쟁기라고 할까.
그 더러운 세상을 한 명의 캐릭터로 품은 인물이 신성 영화사 대표 구중호(진선규)다. 불공정 계약으로 묶인 여배우들을 먹잇감 삼아 권력층에 성상납하고 그 비호 아래 선정적인 영화를 세워 돈벌이를 하는 시대의 괴물이다. 정희란이 톱스타의 반열에 올라 점점 통제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영화 <애마부인>의 주인공을 오디션을 통해 신인으로 세우는데 그 인물이 바로 신주애다. 그는 <애마부인>에 정희란을 조연으로 세워 콧대를 꺾으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신인 신주애가 톱스타 정희란을 밀어내는 구도처럼 시작하지만, 신주애가 권력 최상층부의 파티에 억지로 끌려가는 일을 당하게 되면서 이 두 사람은 이제 같은 노선에서 자신들을 착취하려는 저들과 싸우는 입장이 된다. ‘X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구중호 앞에서 이들은 스스로 더 ‘X년’이 되어 저들과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구중호가 불쾌한 모습을 드러내면 낼수록 드라마의 화력은 높아지고, 그가 무너질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통쾌해진다. 또한 이 시대의 괴물 앞에 정희란과 신주애의 워맨스는 더더욱 끝끈해진다.
늘 선한 얼굴로 따뜻한 감동을 주거나 혹은 코믹한 웃음을 선사하는 역할을 해왔던 진선규인지라, 구중호 같은 더러운 악역 연기는 더더욱 눈에 띤다. 특히 이처럼 더러운 역할을 하면서도 특유의 희화화를 해내는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보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그저 기분 나쁜 느낌만을 주는 게 아니라, 이 인물을 한없이 뒤틀어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통쾌함마저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진선규로 인해 분노와 풍자적 웃음이 절로 뒤섞이게 만드는 악역이 제대로 서게 됨으로써, <애마>는 그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됐다. 더러운 시대와 맞짱 뜨는 여배우들의 처절한 싸움으로 <애마부인>의 선정성을 뒤집는 통쾌한 풍자도 가능해졌다. 구중호가 입에 달고 다니는 ‘X년’이라는 욕이 이끌어내는 감정 때문일까. 맨 마지막에 이르러 신주애가 다짐하듯 말하는 대사 속에서 이 욕은 시대와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로 깊은 울림을 갖는다.
“80년대라고 달라진 거 하나 없고, 세상은 여전히 엿같고, 맨날 우린 엿을 먹고, 새로운 시대 같은 건 없어 씨발. 그래서 난 앞으로 더더 어마어마한 썅년 할 거야.” 신주애의 이 대사는 80년대의 이야기지만 현재와의 여전한 동지의식을 자극하게 만드는 대사가 아닐까. <애마>는 80년대 저질 속물을 완벽히 재현해낸 진선규의 악역과, 그와 싸우는 이하늬, 방효린의 존재감이 더할 나위 없이 빛나는 작품이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