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미와 신예은의 우정이 사랑보다 더 기대되는 ‘백번의 추억’
‘백번의 추억’, 설렘보다 체온이 더 센 이 시대의 현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다. 세 번의 내 인연보다 한 번의 네 만남이 더 강하고 힘이 센 운명이었던 거야. 그래서 내 행복추구권은 다시 거둘까 해. 왜냐하면 너한테도 너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 다음으로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나에겐 바로 너니까.”
JTBC 토일드라마 <백번의 추억>에서 영례(김다미)는 절친 종희(신예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재필(허남준)을 만나보라며 자신이 주말에 버스안내양 일의 대타를 서주겠다고 한다. 재필에 대한 마음을 제대로 전해보지도 못한 영례는,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만큼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는 그런 친구다.
영례와 종희가 일하고 있는 100번 버스의 안내양들은 단체로 숙식하며 살아간다. 제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그 누가 편안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살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 청춘의 온 시간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 이른바 K장녀로서 동생들 챙기고 심지어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합숙하며 일을 한다.
영례(김다미)는 바로 그 K장녀다. 하루 종일 시장통에서 뽑기 만들어 팔고 아이들 목마 태워주는 걸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엄마를 도와 버스 안내양으로 일한다. 우리 집안의 ‘대들보’라며 대학 다니는 오빠만 챙기는 엄마가 야속하지만,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뼈 빠지게 일하는 엄마와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 기다리는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한다. 멀미를 하면서도 버스안내양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공부에 대한 꿈을 꾼다.
그 고단한 삶에 종희가 들어와 두 사람은 절친이 된다. 종희는 껌 좀 씹어본 듯한 걸크러시를 보이지만, K장녀라기보다는 어딘가 가정폭력의 피해자 느낌을 풍긴다. 한없이 당차고 밝아 보이지만 권투시합에서 맞는 재필을 보고 그만두라고 외칠 만큼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마도 오빠의 상습적인 폭력을 피해 달아난 듯 보이는 종희는 가난이 힘들긴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례의 엄마가 비탈길에서 끌던 리어카와 함께 굴러 크게 다치고, 리어카도 망가지자 종희는 선뜻 영례에게 돈이 가득 채워진 인형을 건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 요새 일기 쓴다. 니가 선물해준 만년필로. 근데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영례랑 뭘 했다’ ‘재밌었다’ ‘너무 웃었다, 행복했다’ 난 그런 단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었거든. 근데 너 덕분에 사는 게 좀 재밌어졌어. 그러니까... 그건 쨉도 안돼. 넌 나한테 더 큰 걸 주고 있는 걸.”
<백번의 추억>은 절친 영례와 종희 사이에 재필이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엇갈린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례는 재필을 좋아하지만, 재필은 종희를 좋아한다. 하지만 종희는 영례가 재필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 재필과는 선을 그으려고 한다. 백화점 사장 아들인 재필의 처지와 버스 안내양인 영례와 종희의 처지 역시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보통의 멜로에서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등장하면,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경쟁하듯 다투는 구도가 많지만, <백번의 추억>은 어딘가 다르다. 재필을 두고 벌어지는 사랑의 경쟁보다는 영례와 종희의 우정이 더 세게 느껴진다. 멜로보다 센 워맨스랄까. 영례와 종희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재필을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설 정도다. 물론 마음은 아프겠지만.
왜 이런 구도가 나오는 걸까. 그건 이 엄혹한 시절의 K장녀와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영례와 종희가 마주한 현실이 달달한 설렘보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을 더 강렬히 원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영례의 어려운 사정을 챙겨주는 종희와 동료 버스 안내양들의 따뜻함이, 재필을 두고 볼어지는 로맨스보다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백번의 추억>은 그래서 사랑보다 더 진한 우정을 기대하게 만든다. 로맨스, 브로맨스보다 더 진한 워맨스를.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