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장용, 예수정이 그려낸 노인과 존엄

어째서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잘 걸어주지 않을까.
'사람과 고기'를 보고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집 앞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람과 고기'라는 영화는 없다.
결국 불광역 근처 NC 백화점에 있는 영화관까지 발품을 팔아서 영화를 보고 왔다.
분명히 있는데 상영관에 들어오지 않아 마치 없는 것 같은 영화.
'사람과 고기'는 그런 취급을 받는 영화와 똑닮은 영화다.
폐지 주우며 근근히 살아가는 형준(박근형)과 우식(장용)은 어느 날 폐지 한 점 때문에 길거리에서 드잡이를 한다.
그러다 채소가 담긴 좌판까지 침범한 그들에게 화진(예수정)이 따끔한 한 마디를 하면서 세 사람의 관계가 이어진다.
또 다른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폐지 줍던 형준과 우식이 마주치고,
형준은 우식에게 자기 집으로 가서 커피 한 잔 같이 마시자고 권한다. 그 날 미안했다며.
그런데 찾아간 형준의 집이 멀쩡한 단독주택이라는 걸 보고 우식은 놀란다. 왜 형준이 폐지 줍고 다니는지 의아한 것.
그런 우식에게 형준은 한 마디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집만 있고 수입 없고 자식들은 싸가지가 없어. 됐어?"
커피를 내오려는 형준에게 우식이 묻는다.
"그런데 커피 말고 밥은 없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형준이 아내가 생전에 끓여줬던 소고기 뭇국 이야기를 꺼내고
우식은 그런 그걸 해먹자고 제안한다. 자신이 고기를 가져오겠다며.
그런데 우식은 엉뚱하게도 정육점에서 고기를 훔쳐온다.
소고기 뭇국에 들어갈 야채를 사러 화진을 찾은 형준은
어떻게 그걸 끓이는가를 묻다가 와서 직접 끓여주면 안되냐고 묻는다.
결국 세 사람은 그렇게 만나 맛있게 소고기 뭇국을 나눠먹는다.

하지만 물에 빠진 고기는 진정한 고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꺼낸 우식이
고기를 사주겠다면 찾아간 고깃집에서 '무전취식'을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연쇄 무전취식을 하며 죄책감과 불안감과 더불어 사는 맛을 느끼게 되는 이 노인들의 이야기를 그려간다.
'보니 앤 클라이드'의 독거노인 버전이랄까.
죽을 날이 눈앞에 보이는 노인들은 그것이 범죄라는 걸 알면서도 그 사는 맛에 빠져든다.
'돈 있어야 먹을 수 있고 혼자 먹기엔 서러운 음식'인 고기는 돈도 돈이지만 함께 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이들은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알게된다.
"살면서 이렇게 가슴 뛰어본 적 있어?"

영화 속에서 가장 아픈 장면은 형준이 찾아간 친구의 고독사 이야기다.
돈 안들이고 죽는 법으로 영양실조를 선택한 그 친구의 임종을 지키며
"오늘 안 죽으면 기다려야 하나"라고 묻는 형준의 농담에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라며 쓸쓸히 웃는 친구의 모습은
이 나라에 노년들에게 존엄은 과연 있는가를 질문하게 한다.
사람이 존엄을 잃으면 한덩이의 고기와 다를 바 뭐가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노년은 마치 없는 시간대의 존재들처럼 치부한다.
여전히 생산성 중심으로 존재를 인정하는 우리네 사회의 산업화 이후 관성 때문이다.
하지만 노년들은 존재하고 앞으로는 더더욱 많아질 게다.
복지적 차원이 아니라도 사회를 위해서 이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큰 재앙이 있을까.

박근형, 장용, 예수정이라는 대배우들이 이 작은 영화에 기꺼이 출연한 데는 이런 이유가 한 몫을 할 게다.
배우들 역시 나이 들면 설 역할이 줄어들거나 혹은 전형적인 역할로 고정되기 마련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들 대배우들에게 이 작품 속 '보니 앤 클라이드' 같은 독거노인들의 면면은 큰 의미로 다가왔으리라.
작은 영화들 역시 그 존재를 무시당해 왔다는 점에서 그 처지는 이들 독거노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작아도, 아니 어쩌면 작아서 더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볼 수 있는 극장의 풍경이 되길 바란다.
영화 속 엔딩에 들어간
본래 시인이었던 우식의 목소리로 들려준 '청춘'이라는 시가 귀에 쟁쟁하다.
목청껏 웃고 싶어서
목놓아 울어본다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창공을 잊은 채 주저앉아 그저 펄럭이는 날개짓
가슴속에 할 말이 너무 많아 배고픔도 잊어버린다
호떡 하나 주세요
그 한마디 건네기 겸연쩍어 여적 춥다
시린 가슴 덥혀지게 불이나 질러볼까
눈떠 보니 아침 햇살은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