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들/이 영화는 봐야해

'만약에 우리', 삶이 색깔을 갖는다는 건

D.H.JUNG 2026. 1. 12. 16:55

빛은 우리에게 색을 가져다 준다.

어둠의 무채색을 밀어낸다. 

김도영 감독의 영화 '만약에 우리'는 그 삶의 색깔에 대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세계를 병치한다.

무채색의 세계와 색채를 가진 세계.

고향을 떠나온 청춘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무채색을 색채로 바꾼다. 

현실은 고시원과 작은 자취방을 전전하지만

서로의 꿈을 지지하며 그 무채색의 삶은 색깔을 갖게 된다.

만약에 우리

자신이 만든 게임으로 100억을 벌겠다는 꿈을 가진 은호(구교환)와 자신이 설계한 집을 갖고픈 정원(문가영).

은호의 꿈은 시골 식당을 운영하며 가난하게 살아온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픈 욕망에서 피어나고,

정원의 꿈은 보육원에서 자라나 가족도 내 집도 없이 지냈던 삶에서 피어난다. 

서울은 그런 꿈을 꾸는 곳이지만, 그 꿈은 현실과는 너무나 멀다. 

 

어느 날 짐을 싸들고 은호의 자취방으로 온 정원이 말한다. 

"고시원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조그마한 창문으로 해가 손바닥만 하게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슬펐어."

그러자 은호는 비록 자취방이지만 커튼을 활짝 쳐 햇볕을 방안으로 부른다.

그리고 말한다. "이거 너 가져." 

무채색의 삶에 색깔을 주는 건 서로를 향한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만약에 우리

하지만 그것으로 무거운 현실을 그들이 이겨낼 수 있을까. 

자신 혼자라면 버텨낼 수 있을지 몰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어가고 그래서 서로의 꿈을 서로가 가로막고 있다고 여겨지자 그들은 안타깝게도 이별한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긴 시간을 지나 그들은 다시 우연히 만난다. 

그들은 각자의 꿈을 이뤘다.

은호는 자신이 만든 게임으로 성공했고

정원은 건축사가 되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들의 꿈을 이뤘지만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는 삶이 됐다. 

은호가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낳아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햇볕 잘 들어오는 집 한 칸 마련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게 된 그들이지만

그들은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그걸 해줄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걸 주고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만약에 우리

'만약에 우리'는 가진 것 없는 청춘이 꿈과 사랑 사이에서 둘다 갖지 못하는 현실을 그렸다. 

유약영 감독의 원작인 '먼훗날 우리'에서는 다시 만나 서로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게 된 그들이 나누는 명대사가 나온다.

"네 바람대로 다 됐다면?"

"결국 다 가졌겠지."

"서로만 빼고."

이 대사는 두 사람이 함께 지내며 꿈을 이뤘다고 해도 결국은 서로를 사랑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걸 암시한다.

꿈과 사랑은 어째서 이다지도 엇갈리게 된 걸까. 

만약에 우리

사랑과 현실의 대결이랄까. 

'만약에 우리'에는 그것이 느껴진다. 

제 아무리 사랑으로 현실을 버텨내려 해도 

결국 현실이 사랑을 갈라서게 만드는 잔혹한 시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에릭이 제인을 못찾으면 어떻게 돼? 새드엔딩이잖아."

은호가 만드는 게임 속에서 에릭은 제인을 찾아다니는데 만일 못찾으면 어떻게 되냐고 정인이 물었을 때 은호는 답한다.

"세상이 흑백이 되어버려."

결국 그 흑백의 세상은 게임 속에서나 채색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게임 속이라고 해도 그건 이들의 아름다운 기억이 된다. 

한 뼘 볕이 들어오던 시절에도 총천연색이었던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