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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는 왜 이틀을 날아가 음식을 배달했을까

 

"어여 먹어 이 미꾸라지 같은 놈아." 할머니 분장을 한 정준하는 가봉에서 대통령 경호원으로 일해 온 박상철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한참 나이 많은 박상철씨지만 정준하의 그 말에 웃음이 피어나왔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낯선 타향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오면서도 결코 보이지 않았을 눈물. 정준하의 '꾸지람(?)'에서 박상철씨는 어린 시절 되비지를 해주시며 그런 말을 건네곤 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에서 정준하가 40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가봉으로 날아가 전한 건 단지 엄마의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아들 역시 머리가 희끗희끗해져가고 있었지만 정준하가 배달해준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만둣국과 되비지는 순식간에 시간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4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는 이역만리에서 꽤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의 음식은 그 거리와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해주는 마법 같았다.

 

"음식 먹을 때 엄마 생각하며 울지 말고 먹어라." 노모가 보낸 영상 편지 속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울지 말고 먹으라니. 엄마는 그 순간에도 아들이 울다가 먹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음식을 만든 자신을 떠올리기 보다는 아들이 한 끼라도 잘 챙겨먹길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노모가 정준하를 아들처럼 껴안아주었던 그 따뜻한 온기를 이제 정준하가 그 아들을 껴안아주며 전하는 장면은 '배달의 무도'가 전하고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닌 마음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들은 정준하가 진짜 엄마라도 되는 양 오래도록 꼭 껴안고 있었다.

 

최근 음식은 방송의 주재료가 되었다. 여기저기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게 쿡방이고 먹방이다. '배달의 무도'는 그러나 그 흔해진 음식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음식이란 본디 그걸 해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고, 함께 먹던 사람의 추억과 기억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엄마의 손맛'이라는 말은 그 음식의 맛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엄마의 자식 생각하는 그 마음이 주는 푸근함과 따뜻함이 깃든 맛일 것이다.

 

<무한도전> 굳이 이틀 가까이나 되는 시간을 들여서 이역만리의 땅으로 날아가 '배달'을 하겠다고 했는지에 대한 의아함은 노모와 정준하 그리고 아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서 거대한 '공감'으로 변모했다. 실로 편해진 세상이 아닌가. 이제 스마트폰만 켜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글로컬(글로벌+로컬)'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은 그런 문명의 이기들이 아니라는 것을 <무한도전>은 보여주었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음식 한 끼에는 그래서 이 글로컬한 세상이 결코 쉽게 전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감동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늘 아들이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하는 노모의 마음과 그 마음을 음식 한 끼를 통해서도 그대로 전해 받고 우는 아들. <무한도전> 정준하가 배달한 건 그저 음식이 아니었다.

 

 

Posted by 더키앙


한류가 글로벌 경제에 던지는 시사점

한때 박진영은 미국 진출을 선언하면서 미국시장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철저한 '미국화'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이 그랬다. 당시에는 우리 음악은커녕 우리나라에 대한 인지도 자체가 미국 대중들에게는 거의 없었을 때니까. 그래서 박진영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의도적으로 국적을 내세우지 않았다. 원더걸스 또한 그런 현지화 전략에 맞춰 주변에서부터 차근차근 차트로 진입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이것은 박진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창기 SM엔터테인먼트가 보아를 일본에 진출시킬 때 그녀를 한국인이 아니라 코스모폴리탄으로 포장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당시 보아는 영국에서도 몇 개월을 살았고, 뉴욕에서도 살았으며, 그래서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하며 노래도 잘하는 천재소녀로 이미지 메이킹되었다. 결과는 일본에서의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과연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면 박진영이나 원더걸스, 그리고 보아가 같은 방식을 취했을까. 아닐 것이다. 현재 K팝이 과거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점은 가사의 언어일 것이다. K팝은 우리 언어로 불려진다. 그것은 국내나 해외나 마찬가지다. 파란 눈에 노란 머리를 갖고 있는 유럽인들도 한국말로 춤까지 곁들여가며 K팝을 부른다. 만일 그것이 영어나 일어였다면 어땠을까. 그 감흥이 달랐을 것이다. 한국어라는 그들에게는 이국정서의 언어가 주는 판타지가 K팝에는 분명 스며있다.

이미 소셜 네트워크 같은 매체의 확장으로 지구촌화되어버린 시대가 가져오는 감성은 K팝의 성공에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한다. 이제 그들은 그들 것과 비슷한 게 아니라 그들 것과는 다른 우리의 콘텐츠를 요구한다. 이것은 다양성의 요구 때문이다. 이제 이질적인 것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이 되었다. 따라서 K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해외의 콘텐츠들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것을 잘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진영의 '미국화' 주장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의 K팝의 성공은 외국인들의 눈과 귀에 맞출 일이 아니라, 그들의 눈과 귀가 K팝에 번쩍 뜨이게 하는 것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따라서 지금 국내의 음반제작사들은 전략 자체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이미 더 이상 수익을 얻을 게 없는 국내 시장을 넘어서기 위해 애초부터 해외를 겨냥한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면, 이제는 그 포커스를 오히려 국내에 더 맞추는 추세다. 국내시장에서의 주목과 성공이 거꾸로 해외에서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여기에는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의 방송이 해외에도 생중계되는 달라진 네트워크가 전제로 깔려있다. KBS ‘생방송 뮤직뱅크’는 KBS월드를 통해 금요일 전 세계 74개국에서 동시에 생중계 된다. 물론 방송이 나오지 않는 곳이라도 소셜 네트워크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방송 콘텐츠들은 어디든 날아간다. 그러니 굳이 해외시장 개척 같은 거창한 일에 투자하기보다 차라리 ‘뮤직뱅크’에 나가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글로벌이 아니라 글로컬(글로벌+로컬)이 효율적인 시대다.

이것은 드라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한류 한류 하지만 우리 드라마가 미드를 흉내 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그렇게 블록버스터들은 우리가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미드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반면, 우리 정서나 문화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는 로맨틱 코미디류나 멜로는 그런 점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가진다. 여기에는 일본을 포함해 미국, 유럽 같은 서양에는 발견하기 어려운 우리 만의 끈끈한 정서가 숨겨져 있다. 이 사랑과는 또 다른 가족적이며 정(情)적인 감성은 같은 멜로를 그려도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신드롬을 만들었던 것에 바로 전후세대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그 따뜻함(배용준의 미소로 대변되는)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미남이시네요'와 '매리는 외박중'으로 일본에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것은 장근석의 그 아기 같은 미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 미소에 '미남이시네요'나 '매리는 외박중'이 다루고 있는 K팝적인 소재들이 어떤 상승작용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류 드라마의 양상 역시 마찬가지다. '시크릿 가든'이나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작품들이 파란 눈에 금발의 아주머니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쿨한 사회일수록 더더욱 그리워지고 희구하게 되는 그 정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하루의 피곤한 일상에서 집으로 돌아와 어딘지 위안 받고 싶은 마음으로 TV를 켜면 온통 쏟아져 나오는 게 '캅 콘텐츠(cop contents)' 같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미국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왜 거기 우리네 로맨틱 코미디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 그 이유를 쉬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의 성공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콘텐츠의 성공이 예측가능한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벌어진 한류는 예측 가능한 결과들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현재 일본에서 불고있는 장근석 신드롬이 여러모로 배용준 신드롬을 그대로 닮아있다는 점은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배용준의 ‘겨울연가’나 장근석의 ‘미남이시네요’는 모두 국내에서는 시청률이 저조했지만(물론 둘 다 인터넷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겨울연가’ 이후 10여 년의 한류의 흐름이 있었지만 여전히 돌발적인 사건으로 한류가 생겨났다는 거다.

여기에는 시청률 산정 기준이 만들어내는 착시현상이 들어가 있다. 지금의 시청률 산정기준은 TV 주시청층인 중장년층의 시청률에 거의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즉 세대적인 고려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콘텐츠는 TV는 물론이고 인터넷이나 IPTV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비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 시청률 잣대가 광고비와 연계해서 제작을 압박한다면 나올 수 있는 콘텐츠는 불을 보듯 뻔한 것들일 것이다. 따라서 최근 쏟아져 나오는 눈앞의 시청률에 목매는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한류 드라마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글로컬이 통하려면 이 국내와 해외 사이의 착시현상을 없애줄 수 있는 내부적인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콘텐츠만이 아니라 모든 글로컬 시장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선결조건이 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세계 진출’이 목표였다. 그래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유럽에, 중국에, 미국에 현지 공장을 세웠다. 우리 상품은 현지화 전략에 따라 그네들의 문화에 맞춰 코딩되었다. 현지인들과 교류하기 위해 그네들의 문화를 배웠고, 그 문화에 적합한 사내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지금도 유효한 얘기다. 그 곳은 분명 외지이고, 우리는 그들에게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즉 아무리 잘 해도 결국 우리는 이방인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물건을 잘 팔아도 우리는 남이다. 그러니 물건을 잘 팔면 팔수록 그래서 시장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이 이방인에 대한 반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의 것을 따라하는 현지화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것을 어떻게 하면 지역시장의 왜곡 없이 세계와 나눌 수 있는가 하는 ‘투명한 소통체계’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문화는 더더욱 중요해진다. 상품이 아닌 문화가 도달할 때 한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의 소통은 더 원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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