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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이상해’가 드러낸 동거·결혼에 대한 세대 차이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결혼 전 동거는 잘못된 일일까. 차정환(류수영)과 변혜영(이유리)의 동거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사실을 숨겨 충격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 변혜영 역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동거’를 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를 모르겠다고 부모들 앞에 대놓고 말했다. 그건 변명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이었다.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가 화두로 꺼내 놓은 건 최근 달라진 결혼관과 동거에 대한 생각이다. 동거는 변한수(김영철)와 나영실(김해숙) 같은 부모 세대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다지 넉넉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똑 부러지게 잘 자라 변호사가 된 딸 변혜영이 동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대만큼 더 큰 실망감을 안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변혜영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비난하는 가족들 앞에 적어도 동거에 있어서는 당당했다. 결혼 전 함께 살아봐야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고, 그래서 하는 동거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 사실 그녀의 말대로 결혼부터 덜컥하고 살다가 아이까지 생겼지만 그제서야 생각이 바뀌어 이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떤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인가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딸을 둔 부모의 경우 동거를 더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과거의 혼전순결을 강조하던 비뚤어진 여성관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동거를 하는 것 자체가 여성으로서의 삶의 끝처럼 여기는 여성관이다. 하지만 어디 지금 우리네 삶이 그러한가. 동거를 찬성하는 쪽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건 성별과 상관없는 경험이고 선택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차를 <아버지가 이상해>는 아들의 경우와 딸의 경우를 비교해 논점으로 끌어내고 있다. 즉 변혜영의 오빠인 변준영(민진웅)은 혼전에 김유주(이미도)와의 아이를 먼저 덜컥 갖게 되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부모 역시 충격을 받긴 하지만, 의외로 선선히 이를 받아들이고 결혼을 허락했다는 것. 그 와중에 김유주의 입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거와 임신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동거를 반대하는 것도 또 그러다가도 덜컥 임신을 하고 오면 결혼을 서두르는 것도 결국 남성과는 달리 여성을 바라보는 과거의 성별의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즉 변한수와 나영실의 다른 태도 속에는 은연 중에 아들과 딸에 대한 다른 입장이 들어가 있다는 것. 

변혜영은 자신이 틀렸다며 몰아세우는 가족들 앞에서 그건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라고 말했다. 부모의 생각도 맞지만 자신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는 것. 그저 이전 세대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이상해>가 변혜영의 동거에 대한 입장을 통해 꺼내놓은 건 지금의 달라진 결혼관에 대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더 이상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락 여기는 세대들에게 동거는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 세대들은 여전히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당사자들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세대들이 갖게 된 결혼관이 그러할 진대.

Posted by 더키앙

‘신혼일기’ 안구커플, 어째서 갈등도 예뻐 보일까

두 사람은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안재현은 모든 것이 완벽하길 원한다. 주방도 설거지거리 없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저녁 준비도 미리미리 해둬야 한다. 집이 추워지는 새벽에는 일어나 난로에 장작을 더 넣어둬야 한다. 그래야 아내 구혜선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르다. 하다못해 산책하는 걸음걸이마저 다르다. 안재현이 성킁성큼 걷는다면 구혜선은 느릿느릿 걷는다. 

'신혼일기(사진출처:tvN)'

두 사람은 ‘다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안재현은 삐친다고 한다. “부부는 똑같아야 되는 거 아냐? 생각도 같아야 되는 거 아니야?”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구혜선은 남편이 딴에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가 결혼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결혼을 했고, 당신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고 그렇기 때문에 난 계속 노력할거야.”

tvN <신혼일기>는 첫 회 그들의 알콩달콩함을 보여주더니 다음 회에는 역시 신혼이면 빠질 수 없는 갈등을 다루었다. 신혼을 지낸 부부들은 모두가 공감할 내용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어느 날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으니 서로의 다른 점들은 타인에게 불편을 만들 수밖에 없다. 또 늘 두 사람이 똑같은 느낌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구혜선처럼 침잠해 혼자 있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그런 그녀의 다른 모습이 화를 내는 것처럼 여겨져 안재현처럼 계속 “왜 그러냐”고 묻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오히려 화를 풀어주려던 사람이 화를 내게 되는 경우까지. 

가사 분담 문제는 신혼생활에서 가장 먼저 흔하게 부딪치는 일이다. 누가 밥을 하고 청소를 하며 빨래를 하는 생활의 문제들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으니 누가 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처음이냐 구혜선이 그랬다는 것처럼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두 달이 지난 후 그녀는 안재현에게 자신의 힘겨움을 토로했고 그래서 그는 가사분담을 시작했다. 최근 2개월간은 아예 자신이 맡아서 가사 일을 전담하고 있다고. 안재현은 구혜선 말대로 최선을 다해 그녀를 이해하려 하고 있고 자신이 한 얘기대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힘겨움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노력을 한다는 것은 어쨌든 ‘힘겹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으니까. 똑같이 식사 준비를 해도 나오는 설거지 양에 대해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 안재현에게서 그걸 느낄 수 있다. 어쨌든 그는 노력하고 있고, 그런 노력에 담긴 진심이 아내 구혜선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믿는다. 

<신혼일기>가 보여주는 두 사람에게 굉장히 진지한 갈등은 결혼생활이 오래되어 이제 신혼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베테랑 부부들에게는 그 자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 것이다. 물론 이들처럼 신혼 초기의 가사 분담 같은 걸로 벌어지는 갈등이란 정말 심각한 일처럼 다가오기 마련이고, 또 결코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참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안구커플’의 갈등은 알콩달콩한 모습이 아니라도 여전히 예뻐 보인다. 갈등들을 서로 얘기하고 그 소통을 통해 힘겨움을 공감하며 또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인정하고 그것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모두 부부의 ‘사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저런 때가 있었다. 각자 우리는 서로 달랐고 그래도 그 다른 것들을 받아들였으며 서로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걸 <신혼일기>는 새삼 되새겨준다. 그래서 그들의 갈등을 보며 미소 짓게 된다.

Posted by 더키앙

세상을 보는 두 가지 눈, 다름 혹은 같음

당신에게 '다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당신은 그를 배척하는가. 아니면 거꾸로 같은 점을 찾는가. '초능력자'는 오락영화의 외피를 갖고 있지만 그 겉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그 속에 꽤 진지한 질문이 들어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제목은 '초능력자'이지만, 그 타인을 보는 것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강동원)이 한쪽 다리가 없어 의족을 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 그 초인의 능력이 유일하게 미치지 않는 단 한 사람, 임규남(고수)이 마지막에 전동휠체어를 탄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왜 이 영화의 초능력자들은 그 엄청난 힘을 가졌음에도 마치 장애를 가진 사람들처럼 그려지는 걸까.

'초능력자'는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지만 여타의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그들이 지구를 구한다거나, 멸망시킨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공간도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지 않고, 서울의 한 공간, 그것도 세운상가나 시장통 같은 지극히 서민적인 공간에 국한되어 있다. 눈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이 하는 것은 지구를 손에 넣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전당포나 사채를 빌려주는 회사, 은행 같은 곳을 털어 먹고 사는 게 그가 하는 일이다. 그에게는 야망이 없다. 다만 이렇게 다른 존재로 태어나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저주가 있을 뿐이다. 지구 전복의 욕망이 거세된 초인이 가진 유일한 욕망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비범함이 가진 욕망과 그 욕망의 올바른 사용, 즉 정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범함이 다름이 되고 다름이 차별이 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또 다른 축에 서 있는 비범한 존재, 임규남이 외국인 노동자들과 더불어 형 동생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임규남은 다른 존재에 대해서(사실 나와 타인은 모두 다른 존재들이다) 다른 점을 찾기보다는, 같은 점을 찾는 인물이다. 그는 타인과 공감하려하고 소통하려 한다. 따라서 어느 날 맞닥뜨린 초인이 '다르다'는 그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죽이는 것에 임규남은 분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초인이 타인을 마음껏 죽일 수 있는 것은 그들을 '다른 존재'로서 인식하기 때문인 반면, 임규남이 지나가는 행인의 불행을 막기 위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몸을 던지는 것은 그들을 그래도 '같은 존재'로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초인과 임규남의 '다름'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의 싸움처럼 보인다.

이런 진지한 질문들이 넘쳐나는 '초능력자'는 그래서 그저 슈퍼히어로물을 기대하고 보는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대결의 롤러코스터를 신나게 질주하기보다는 타인들 앞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갈등상황들이 계속 전개되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진지한 마음으로 듣다보면 나중에 "남들과 다르단 거 정말 힘들다 그치"하고 묻는 초인과 그 다르다는 것을 차별로 인식하는 초인에게조차 "너 이름이 뭐냐?"고 묻는 임규남의 의미심장한 대사가 주는 지적인 쾌감을 가질 수도 있다.

'초능력자'의 그 능력이 눈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명확하게 한다. '초능력자'는 세상을 보는 인식의 문제를 초인과 임규남의 대결로서 그려내는 것이다. 세상에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그런 우리들이 타인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저들은 나와 다르다는 시각과, 저들은 나와 같다는 시각이다. 다른 점을 찾는 시각이 20세기까지의 분류의 시대를 이끌어왔다면, 같은 점을 찾는 시각은 21세기의 통섭의 시대로 열리고 있다. 지금은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듯 '공감의 시대'다. 당신의 눈은 어느 쪽인가. 여전히 타인과 나를 구별 짓고 그것을 심지어 차별로까지 여기는 초인의 눈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하려는 임규남의 눈인가. 강동원의 반짝거리지만 어딘지 외계인 같은 눈인가, 아니면 고수의 흐리멍덩해 보여도 어딘지 정감가는 눈인가.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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