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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경 드라마, 하지만 육아 예능 그 의미

 

적어도 우리네 드라마 상에서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것 같다. 흔하디흔한 가족드라마들이 파경을 다루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해지만 재혼한 여자가 겪는 또 한 번의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나듯이 이 드라마에서 결혼한 이들은 하나 같이 불행하다. 재혼한 여자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뻔뻔해질 수 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재혼한 남자는 아내가 아이를 보듬어주기는커녕 아이를 심지어 질시하는 미성숙한 인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결국 김수현 작가가 하려는 얘기는 타인과 함께 살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자신을 기만하고 결혼한 이들은 예정된 파행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결혼은 반드시 해야 될 어떤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라는 전언.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에 세 번 결혼할 여자의 언니는 아직까지 미혼인데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보다는 동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최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등장하는 싱글턴(혼자 사는 삶)을 표징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는데 주목할 점은 그녀 역시 그다지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결혼해서 누군가와 같이 살거나, 아니면 미혼으로 혼자 살거나 그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는 파경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부부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서로 주고받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당연한 선택지로 내세워지던 이혼이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변수들에 의해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아이의 문제가 그렇고, 양가 가족들의 문제가 그렇다. 때로는 그렇게 한 발 물러서고 나서 오히려 상대방이 이해되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한다. 이 드라마 역시 결혼이 남녀 간의 사랑을 묶어내는 틀로서 얼마나 불안한 제도인가를 잘 드러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제시되는 상황은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크라이넨버그는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점점 결혼의 틀로 들어가기 보다는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이 늘고 있고, 통신혁명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대도시의 형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삶을 만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 혁명적인 수명연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삶을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 비율이 네 집 건너 한 집에 육박하고 있으니 싱글턴의 사회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식샤를 합시다> 같은 드라마나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방송 콘텐츠들이다. 이 라이프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결혼은 사실상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 제 아무리 선택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문제다. 남자든 여자든 그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한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이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종족 보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TV만 켜면 여기 저기 아이들이 나오는 육아 예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점점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는 느낌. 그것이 왠지 결혼이 선택이 되고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무관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왜일까. 우리는 어쩌면 책임 없는 과실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상의 행복이라고 할 지라도.

Posted by 더키앙

가족보다 더 우선되는 개인의 시대, 싱글턴

 

최근 가족드라마를 보면 흥미로운 경향들이 두드러진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곤 했던 가족드라마는 언젠가부터 파탄 일보 직전의 이른바 막장이 되거나, 불륜 혹은 이혼에 직면한 가족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문영남 작가의 <왕가네 식구들>이 소재로 내세운 것은 시월드(시댁)가 아닌 처월드(처가)지만 여기서 왕가네가 보여주는 진면목은 경제적으로 몰락하거나 가족 윤리가 파탄 난 가족의 모습이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제목처럼 아예 재혼한 한 여성이 엄마로서의 삶마저 포기하고 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도 김수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결혼과 이혼이 부쩍 많아진 현 세태 속에서 행복의 문제를 질문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가족주의라는 사회적 틀이 가진 한계처럼 보인다. 이제 따뜻하고 힘겨우면 늘 찾던 그 가족의 양태는 과거의 시대로나 가야 만나 볼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김정수 작가의 <맏이>는 그래서 시간을 60년대까지 되돌린 후에 다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속에서 가족은 물론 여전히 아련함을 남기지만 그것은 추억이나 회고일 뿐 현재를 얘기해주는 것은 아니다.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해체를 드러내는 요즘, ‘싱글턴(singleton)’이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대중문화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도대체 싱글턴이란 뭘까. 단언적으로 말해 싱글턴은 독신주의나 노총각, 노처녀와는 다른 개념이다. 독신주의나 노총각, 노처녀 모두 결혼을 전제로 해서 결혼을 안 하는(혹은 못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싱글턴은 결혼과 상관없이 혼자 사는라이프 스타일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젊은 나이에 부모와 혼자 떨어져 사는 이들이나,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사는 이들, 또 나이가 들어 부양하는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싱글턴은 독신주의나 노총각, 노처녀 같은 단어가 갖고 있기 마련인 수동적이거나 부정적인 뉘앙스도 있지만 동시에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뉘앙스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테면 과거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혼자 사는 삶을 즐기는 남자 주인공처럼.

 

라이프 스타일에 특히 민감한 대중문화는 싱글턴을 앞 다투어 다루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아예 대놓고 혼자 사는 남자들의 다양한 삶을 예능의 코드로 품어냈고, 올리브 채널의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는 대형마트의 가공식품을 재가공해 맛볼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하면서 그 타깃을 혼자 밥 먹는 것이 어색한 1인 가구에 맞췄다. KBS의 특이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독>이나, 반려견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온스타일 <펫토리얼리스트>는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또 최근 시작한 tvN <식샤를 합시다>1인 가구들이 곤란을 겪는 두 가지 문제, 즉 식사와 안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물론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아직까지는 주로 먹거리 문제 정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건 쉬워도 혼자 밥 먹는 게 어려운 1인 가구들에게 먹는 문제가 최대의 고민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점심시간 혼자 맛집을 찾아갔다가 왠지 미안해서 발길을 돌린 경험은 싱글턴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SBS 스페셜>싱글턴, 혼자 살아서 좋다!?’라는 제목으로 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율이 네 집 건너 한 집에 육박하고 있고 2030년에는 세 가구 중 하나가 1인 가구가 될 것이라며 싱글턴은 이미 확정된 미래라고 말한다. 즉 과거의 대가족이 핵가족을 거쳐서 결국은 싱글턴의 삶의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 이렇게 확정된 미래라 단언하는 데는 그만한 사회적 토대의 변화가 근거로서 깔려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크라이넨버그는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점점 결혼의 틀로 들어가기 보다는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이 늘고 있고, 통신혁명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대도시의 형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삶을 만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 혁명적인 수명연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삶을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가족주의에 여전히 몰두하고 있는 사회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가정적 결합을 촉진하는 무익한 캠페인에 에너지를 적게 투입하고, 이미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도록(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사교활동도 활발하게 하도록) 돕는 데 집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가족주의 형태를 거의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회가 갑작스레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두 소화해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혼자 살아서 좋다고 외치는 이들은 그 혼자 사는 삶을 마음껏 영위할만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혹은 선망하는 직업 같은 제반 조건들이 갖춰진 싱글턴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즉 잘 사는 이들에게는 싱글턴이 하나의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외롭게 버텨내야 하는 불안한 삶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싱글은 그들을 받쳐줄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갖춰졌을 때 골고루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지금껏 유지해온 시스템이 온통 가족제도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싱글턴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머릿속으로는 이미 진행형이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칫 더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양극화로 치달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단적으로 고독사나 고독한 노년의 삶은 이미 사회문제로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독사 문제는 싱글턴의 삶이 이미 우리네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이 변화된 삶에 대해 사회가 아직까지 아무런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인 가구 비율이 이미 50%에 육박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공동주택이라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통해 혼자 살면서도 이웃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해주기도 하고, 또 저소득층에게는 안정된 주거생활이 가능하도록 주택보조금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싱글턴의 삶이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국가와 사회가 나서 막아주고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아직 요원하기만 한 일이다.

 

우리네 대중문화에서 다뤄지는 싱글턴의 삶은 주로 화려한 면만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일종의 선망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연히 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하다가는 오히려 불행한 상황에 놓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화려하건 불행하건 싱글턴은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사회유형이라는 점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든,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그것도 아니라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이 새로운 사회유형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그 파장과 사회적 비용은 훗날 더 톡톡한 대가를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오랜 가족주의의 전통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 가족이란 여전히 불변의 가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TV를 켜건, 영화관을 가건, 아니면 흘러간 가요 한 자락에도 우리는 가족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가족주의가 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가족주의는 때론 가족 이기주의로 변질되기도 했고, 나아가 혈연, 지연, 학연 하는 가족주의의 또 다른 부정적 결과로 확장되기도 했다.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이 개인주의적 삶은 때론 가족주의의 부정적인 면들을 상쇄해주는 대안적 가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늘어난 수명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 싱글턴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어쨌든 가족주의 시대의 황혼은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세결여>, 김수현 작가표 드라마의 한계인가

 

여전히 똑같다. 재벌가 사람들의 수다와 누가 누구와 결혼했고 이혼했으며 또 결혼하려 하는가 하는 이야기. 게다가 여전한 문어체 대사 어투는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물론 이 속사포로 쏟아지는 문어체 대사는 과거에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김수현 작가표 명대사로 칭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하소연이나 넋두리 같은 문어체 대사는 관찰 카메라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감 없이 찍어 보여주는 시대에는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그럼에도 김수현 작가라는 이름 석자의 힘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메시지를 갖고 왔는지에 우선 이목이 집중된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제목이 담고 있는 것처럼 달라진 결혼관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과거의 결혼이라고 하면 어딘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면, 요즘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이혼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나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된 시대다.

 

과거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결혼을 목표로 하고 한 식구가 될 그 당사자들과 집안사람들 간에 야기되는 갈등들을 주로 다뤄왔다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난 후에 발생하는 삶들, 이를테면 이혼이나 재혼 같은 것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가장 파격적인 인물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지칭하는 주인공, 오은수(이지아)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지만 전 남편과 가진 아이와는 떨어져 살고 있다. 새 남편의 집안에서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오은수는 여자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다. 요즘 세태에서 이혼이라고 하면 “그래 그럴 수도 있어”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이 문제라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까지 포기하고 재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사회적 통념이 얘기하듯이 여성으로서의 잘못된 삶일까. 바로 이 질문이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기존 드라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흥미로운 건 오은수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이지아라는 점이다. 대중들 모르게 서태지와 함께 살았고 헤어졌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져 큰 파장을 만들었던 배우. 어찌 보면 상당히 오은수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지아라는 배우가 이 배역에 캐스팅 되었을 것이다. 김수현 작가가 이지아에게 주문한 말 “네 안의 틀을 깨고 나와라”라는 말은 그래서 작품의 캐릭터를 위한 얘기이면서, 동시에 이지아에 대한 충고이기도 하다. 즉 이 작품은 이혼에 대한 통념을 깨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또한 이지아로 대변되는 이혼녀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도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제의식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가 여전히 쥐고 있는 것은 가족이라는 틀이다. 물론 이혼을 얘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제도라는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을 생각해보자. 결혼? 이제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 정도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결혼이 주는 사회적 부담감이 너무 큰 데다가 ‘혼자 사는 삶’ 이른바 ‘싱클턴(Singleton)’이라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가 아닌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주제의식은 과거 세대에게는 파격적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지금 현 세대들에게는 고루하게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리얼하게 들리지 않는 문어체식의 대사들은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한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지아의 성형설이 먼저 불거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작용한다. 그 하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이지아의 표정연기가 대단히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고, 또한 드라마의 대사 톤들이나 천착하는 메시지가 그다지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수현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도발적이다. 엄마로서의 삶보다 여자로서의 삶이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이 그렇다. 하지만 요즘은 혼자 살아가면서 엄마로서도 여자로서도 살 수 있는 시대다. 굳이 결혼만이 유일한 여자의 삶의 선택지는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이 시선으로 바라보면 왜 저들이 저렇게 결혼과 이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지아 성형설이 먼저 불거진 데는 그만큼 몰입하게 되지 않는 드라마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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