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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캅>, 자본기계는 사이코패스와 뭐가 다를까

 

물론 드라마가 극화한 이야기일 것이다. <미세스캅>에 등장하는 KL그룹 회장 강태유(손병호)는 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살인을 사주하는 조폭 두목처럼 그려진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비호하기 위해 비리 경찰을 매수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정을 덮기 위해 살인을 사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그 힘은 모두 돈, 자본에서 나온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미세스캅>이 흥미로운 대목은 이 강태유가 살인을 사주하고 현장을 벗어나다가 같은 동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쫓기는 연쇄살인범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짧은 순간 강태유와 연쇄살인범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강태유는 자신의 살인 사주를 숨기기 위해 연쇄살인범이 찍힌 블랙박스의 메모리칩을 최영진(김희애) 형사에게 건네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강태유라는 인물을 자신의 살인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범. <미세스캅>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즉 비뚤어진 재벌이나 연쇄살인범이나 사람을 죽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별다른 동요나 감정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렇게 범죄와 결탁된 재벌들이 사이코패스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우리는 자주 봐왔다. 왜 그럴까.

 

물론 재벌은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걸 대신하는 건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다. 돈은 모든 걸 덮어버린다. 수치화해버리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거래 관계로 치환해버린다. 자본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4대강 사업처럼 사람의 터전은 물론이고 자연의 터전에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포크 레인을 드리우는 것 같은 그 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이 가능한 것은 그 앞에 자본이라는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 뒤로 숨어 그것이 자신의 죄라는 걸 애써 부정한다. 마치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살인을 살인이 아닌 하나의 게임으로 치부하듯이.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마를 둘 다 상대하는 존재가 그냥 형사가 아니라 미세스캅이라는 건 그래서 꽤 상징적이다. ‘미세스캅을 굳이 이 드라마가 캐릭터로 그린 건 아줌마라는 특징을,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형사라는 직업과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치 엄마가 이 위험천만의 사회 속에 내보내는 딸을 걱정하는 모성애가 겹쳐진다.

 

15일 간격으로 가출한 여자 아이들을 납치해 게임을 하듯 잔인하게 죽이는 연쇄살인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거래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비뚤어진 재벌. 그 앞에 서 있는 미세스캅이란 인물은 그래서 다분히 우리네 살벌한 현실 앞에서 가족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끌어낸다.

 

그녀의 분노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에 똑같이 절절함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우리는 모두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 앞에 매일 같이 맨살을 드러내고 떨어야 하는 현실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저 극화된 드라마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치부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몹시도 불편해지는 건 어찌된 일일까.



Posted by 더키앙

<냄새를 보는 소녀>가 남궁민을 활용하는 방식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연쇄살인마 권재희(남궁민)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 드라마는 지리멸렬해졌을 지도 모른다. 멜로와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와 형사물이 공존하는 이 드라마는 그 긴장과 이완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때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진 소녀 오초림(신세경)과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최무각(박유천)의 알콩달콩한 멜로에 자칫 긴장감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일찌감치 권재희가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밝혀놓은 이 드라마는 이 인물의 주도면밀함을 알리바이를 꾸미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그의 존재감을 세웠다. 철두철미하고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으며 대단히 영리한 두뇌를 가진 연쇄살인마. 그가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드러내자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의 위협을 받는 오초림이나 최무각 또는 오초림의 아버지인 오재표(정인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됐다.

 

최근 몇 회 동안 드라마의 엔딩에 권재희를 세워놓은 건 그런 점에서 확실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가 오초림의 존재를 알아채고 마치 어떻게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엔딩 크레딧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 하나는 장난처럼 죽일 수 있는 연쇄살인마이면서도 권재희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그런 단점을 부여함으로서 극에 긴장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오초림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사진을 훔쳐 뒷조사를 하려는 권재희와, 그 사진을 바꿔 그가 영원히 오초림을 알아볼 수 없게 하려는 최무각과 형사들의 두뇌싸움은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권재희라는 극악의 캐릭터를 제대로 세워놓음으로써 드라마가 아주 작은 단서나 물건 하나로도 쉽게 극적 긴장감이 가능하게 한다는 건 대단히 효과적인 방식이다. 이제는 그가 누군가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짓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을 주고, 보호해주고픈 오초림 같은 주인공 옆에 서기만 해도 끔찍해진다. 그는 특별히 끔찍한 행위를 드러내 보인 적이 별로 없다. 생각해보라. 권재희가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는 유혈이 낭자했던 장면이 있었던가를. 그런 구체적인 폭력의 장면 없이도 이런 효과를 낸다는 건 주목해볼 일이다.

 

거기에는 남궁민이라는 연기자의 공이 절대적이다. 친절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다가왔던 그는 어느 순간 연쇄살인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웃음을 섬뜩한 살기로 바꿔놓았다. 어딘지 무심한 듯한 두 눈이 무언가를 멍하게 응시할 때 시청자들은 이 인물이 어딘가 보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박유천과 신세경이 보여주는 스릴러와 멜로를 넘나드는 연기 역시 괄목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남궁민이라는 존재감이 없었다면 이 연기들 역시 밋밋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궁민이라는 연기자 하나가 드라마에 만들어내는 힘은 그래서 절대적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를 계속 해서 궁금하게 하고 보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에게서 나온다.

 

Posted by 더키앙

모든 것들의 자연스러운 혼재, <냄새를>의 세계

 

달콤함과 살벌함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적어도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있어서만큼은 이 경계가 무너진다. 장르적 재미에 엄격하거나 그 틀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런 공감각적인 형사물에 적이 놀랐을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이토록 철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전 범죄를 실행해 옮기는 권재희(남궁민)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 드라마는 일찍부터 그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그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은폐하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권재희가 의사 천백경(송종호)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다. 그는 부주방장과 비밀 레시피를 만드는 시간을 자신의 알리바이로 이용한다. 미리 레스토랑에 도착해 요리를 준비해 오븐에 넣고, 타이머를 이용해 자동으로 시간에 맞춰 켜지게 만들어놓은 후 그는 트레일러에 천백경의 차를 실어 낯선 곳에 버리고 온다. 예약된 음식이 조리되는 그 시간을 자신의 알리바이로 만든 것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은 세밀하게 시간별로 보여준다. 알리바이를 더 그럴 듯하게 하기 위해 대리기사를 이용해 레스토랑에 두고 간 차를 국도휴게소로 가져오게는 하는 시퀀스는 그래서 기막힌 알리바이의 장치가 된다. 그 차가 나가는 걸 본 부주방장에게 권재희는 전화로 집에 향신료를 가지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대리기사가 국도휴게소로 가져온 차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온다. 굳이 천백경의 차를 옮기는데 트레일러를 이용하는 점이나, 트레일러의 번호판을 바꾸고, 대리기사에게 대포폰을 쓰는 등의 디테일들은 심지어 이 권재희의 치밀한 범죄행각을 흥미롭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런 살벌함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 권재희에 의해 동생을 잃은 뒤 감각을 잃어버린 최무각(박유천)과 역시 그에게 부모를 잃은 뒤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갖게 된 오초림(신세경)의 달콤한 멜로가 또 한 축이기 때문이다. 순경이지만 동생의 복수를 위해 강력계의 일원으로 수사에 뛰어든 최무각을 초감각 소녀 오초림이 돕는다. 그것은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이용한 특별한 수사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오초림이 개구리 극단에서 개그맨을 꿈꾸는 소녀라는 점은 이 달콤 살벌한 수사멜로물(?)에 코믹한 설정까지 덧붙여 놓는다. 무뚝뚝한 최무각이 오초림과 콤비가 되어 개그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장르적인 틀로만 바라보면 낯설다. 심각한 살인사건의 수사를 하는 주인공이 갑자기 극단에서 개그 코너를 선보인다는 건 만일 그리스 시대 극작가들이 봤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장르는 혼재되고 왜 캐릭터는 장르 안에서 비현실적으로 일관성만을 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시대다. 개구리 극단 대표 왕자방(정찬우)이 최무각에게 집 날려 먹을 때도 머리에 꽃 달고 개그했어... 개그맨은 그런 거야.”라고 얘기한 게 바로 진짜 현실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애도하면서도 개그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닌가.

 

달콤함과 살벌함의 혼재. 범죄물과 멜로 게다가 코미디까지 뒤섞이는 장르의 경계 해체. 이런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지는 건 마치 무감각 소년이 초감각 소녀와 만나는 그 설정처럼 자연스럽다. 이것은 초감각 소녀 오초림이 바라보는 냄새의 세계와 같다. 거기에는 일관된 냄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취와 향기가 뒤섞여 있다. 그것을 볼 줄 아는 오초림의 시선은 그래서 이 수상한 드라마가 가진 장르 같은 경계를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다.

 

그래서 이 <냄새를 보는 소녀>의 세계 안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는 현실의 실체들이 보여진다. 강력계 형사가 되고픈 순경, 개그우먼이 되고픈 초감각 소녀, 연쇄살인범 셰프.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왔던 직업군들의 일관성이 이들에게는 없다. 형사물과 범죄물이 갖고 있는 그 살벌함이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과 잘 어우러지는 세계. 너무 진지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가벼울 이유도 없는 그런 세계.

 

무각은 극단에서 보조스텝으로 전락해 상심하는 오초림에게 불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매운 불족발에 슬픔을 숨겨 오초림은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음식점을 나오며 이렇게 말한다. “눈물 콧물 다 뺐더니 아주 시원하네.” 이것은 쿨 하고픈 현 세대들의 표현방식일 것이다. 그 시원함이 무엇 때문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랴. <냄새를 보는 소녀>의 기묘한 재미가 달콤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살벌함에서 기인한 것인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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