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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쥐나는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

 

무모한 시도처럼 보인다. 이 시대에 순애보를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2%를 넘지 못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어떤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겨진다. 이 시대는 이제 이런 사랑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걸까. 그저 즉물적이고 직설적이며 감각적인 사랑의 시대. JTBC <사랑하는 은동아>가 주는 아련함과 그리움은 도무지 공감되기 힘든 걸까.

 


'사랑하는 은동아(사진출처:JTBC)'

제목이 벌써 <사랑하는 은동아>. 세련되지도 않고 어찌 보면 너무 구시대적인 느낌마저 주는 제목. 그래서 선뜻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한 번 보고 빠져들게 되면 이만큼 늪처럼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드라마도 없다. 마치 과거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고 훈훈하게 했던 옛 사랑이야기에 대한 기억들이 방울방울 피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 일드 <러브레터>를 보며 느꼈던 기억 같기도 하고, 윤석호 PD의 계절 드라마가 주던 기억의 숨은그림찾기를 보는 듯한 기억 같기도 한 그런 느낌.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게 된 은동이를 한 남자가 잊지 못하고 20여년 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 몇 차례 만나서 사랑이 깊어갈 즈음,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은동이(김사랑)와 운명처럼 다시 만난 지은호(주진모)가 그 옛 사랑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촘촘히 들어가 있는 장치들은 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에 촉촉한 감성의 비를 내려준다. 자서전이라는 장치는 마치 <러브레터>의 연애편지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에 쥐가 나게 만든다. 은동이 자신이 은동인 줄 모른 채 지은호에게 들은 은동이와의 사랑 이야기를 적어나간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설렘과 먹먹함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옛 사랑의 기억이 자서전의 글귀들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단서가 되어 다시 지은호와 은동이를 이어준다는 설정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상대방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서도 이미 달라진 상황(은동이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다)으로 인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중요한 장치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뭐든 즉각적으로 연결하고 이뤄지고 헤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사랑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이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운 그런 사랑.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맘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가슴 한 켠이 무너지지만 그런 아픔조차 넉넉히 감당해내게 하는 사랑. 어찌 보면 너무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거리가 유지되어 있어 더더욱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

 

시청률은 낮지만 그 낮은 시청률로 모든 걸 평가하기에는 아까운 드라마가 <사랑하는 은동아>. 일단 첫 회를 보게 되면 끝까지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는 그 느릿느릿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진중한 사랑의 이야기로 이 시대에 잊고 있던 진짜 사랑의 기억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지은호가 은동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마치 그녀가 된 듯 가슴에 먹먹함이 느껴졌던 것처럼. 은동이의 잊혀진 기억이 지은호의 순애보로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Posted by 더키앙

송승헌의 전쟁 같은 사랑, 연우진의 시 같은 사랑

 

남자의 사랑, 뭐가 달라서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제목을 붙인 걸까. 임재범은 ‘너를 위해’라는 곡에서 남자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줄 거야. 널 위해- 떠날 거야.’ 아마도 송승헌이 연기하는 한태성이라는 남자의 사랑이 이럴 것이다. 남자의 사랑은 팩을 하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달라는 여자 친구 앞에서 당황하는 것만큼 어색하고 면구스러운 그런 것이 아닐까.

 

'남자가 사랑할 때'(사진출처:MBC)

남자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래서 여자들이 사랑을 통해 받고 싶은 표현과는 동떨어질 때가 많다. 한태성에게 짐짓 다가와 자신의 딸 미도(신세경)가 피아노 치는 남자를 멋있어한다며 슬쩍 귀띔을 해주듯이 여성들이 원하는 사랑의 표현방식은 현실적이기보다는 로맨틱한 어떤 것일 게다. 따라서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삼는 멜로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남자의 사랑이란 현실적이기보다는 여성들의 판타지가 묻어난 것일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남자가 사랑할 때>는 이 판타지와는 조금 결이 다른 남자의 사랑을 전면에 내보인다. 한태성의 사랑은 첫눈에 반한 미도에게 달려가 사랑고백을 하는 그런 식이 아니다. 그는 미도의 뒷바라지를 하고 그 집안을 돕고 가끔은 현실에 찌든 삶을 털어낼 여유를 제공하며 앞으로의 미래와 꿈을 돕는다. 물론 가끔 얼굴에 진짜 팩을 붙이고 인증샷을 보내거나, 시집의 한 문구를 그녀의 집 앞 칠판에 적어놓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 그의 사랑의 진짜 얼굴은 아니다.

 

그래서 신사의 모습으로 사랑 앞에 어린아이처럼 쑥스러워하는 한태성이 그에게 도발하는 구용갑(이창훈)에게 야수성을 목격했을 때 미도는 놀랄 수밖에 없다.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 같지만 그것은 사랑 앞에 모든 것이 무장해제 된 남자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저 전쟁터 같은 세상에 나가면 또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이 남자들의 사랑 방식인 셈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에는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 한태성이라는 인물과 대척점으로서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이재희(연우진)라는 인물도 있다. 한태성이 보내준 해외출장에서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인물. 본래 인생에서의 판타지란 이처럼 현실적인 공간에서 몇 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짧지만(어쩌면 짧기 때문에) 더 강렬한 한 때의 추억은 어쩌면 여자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재희는 그래서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시 같은 사랑을 하는 캐릭터다. 칠판에 ‘이 봄이 좋아. 네가 있어서’라고 적어 놓은 그에게 미도의 아버지가 “그게 끝이냐?”고 묻자 그는 “내가 봄을 불렀어. 너를 주려고.”하고 그 시의 뒤를 말해준다. 젊은 시절 문학을 했다는 미도의 아버지는 “유치하니 좋구만.”하며 이재희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이재희는 퀸의 앨범이나 대학의 티셔츠 하나로 마음을 전하는 그런 사랑을 하는 존재다.

 

한태성과 이재희의 사랑은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한태성이 남자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이재희는 여자들이 갖는 판타지의 하나로서의 남자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재희가 이러한 판타지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한태성과 이재희의 형인 이창희(김성오)의 전쟁 같은 삶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여유 덕분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심지어 판타지에 빠진 것처럼 사랑할 때 그 밑에는 누군가의 현실적인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미도에게 그래서 한태성의 사랑은 연인보다는 아버지 같은 느낌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남자의 이 전쟁 같은 사랑은 결실을 보게 될 것인가. 어쩌면 한태성은 저 임재범이 부른 ‘너를 위해’의 노래가사처럼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떠나주는 사랑을 할 지도 모르겠다. 미도의 행복을 위해 그녀의 판타지를 깨지 않고 든든히 지켜주는 현실적인 테두리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남자가 사랑할 때>의 진짜 모습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저 뒷전에서 남모르게 해왔던 것처럼. 어딘지 옛사랑의 느낌이 묻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남자가 사랑할 때>의 사랑은 천편일률적인 판타지 멜로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Posted by 더키앙

'제빵왕 김탁구'의 탁구, '자이언트'의 강모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80년대를 풍미한 이현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등장하는 까치의 이 대사는 당대의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의 소외된 인물들이 지옥훈련을 통해 강자로 재탄생하지만, 결국 엄지에 대한 절대적 사랑 앞에 승리마저 포기하는 까치. 그 사랑에는 당대 사회분위기가 잘 녹아있다. 사회적인 문제와 직접적으로 부딪치기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회귀하는 깊은 감상주의가 바탕에 깔려있지만, 거기에는 사랑을 위해서는 뭐든 해내는 강한 남성에 대한 열망이 담겨져 있다.

30년이 지났지만 지금 안방극장에는 이 까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모든 것을 가진 이 시대의 마동탁들과 대결을 벌이며 그 지독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윤시윤)와 구마준(주원)의 유경(유진)을 사이에 둔 대결구도가 그렇다. 안기부에 끌려간 유경을 구하기 위해 "2년 간 유경을 만나지 않는다"는 마준의 제안을 수락하는 탁구의 이야기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지옥훈련을 떠나는 까치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 떠나있는 시간동안 마준은 마치 마동탁처럼 끊임없이 유경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뭐든 원하는 것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마준이 유경의 사랑은 얻을 수 없는 상황이나, 아무 것도 없지만 남다른 재능으로 최고의 제빵왕으로 거듭나는 탁구의 이야기, 또 그 탁구 주변인물로서의 진구(박성웅)나 인목(박상면) 그리고 갑수(이한위) 같은 인물이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주변인물들처럼 보여지는 것도 그렇다. 아마도 우연의 일치겠지만, 김탁구와 구마준이라는 이름에서도 옛 만화 속의 인물들이 떠오른다. 독고탁과 마동탁.

당대의 사랑은 늘 빈부의 격차 속에서 사랑이 현실을 이길 수 있는가의 질문을 던진다. 남성 캐릭터는 가난한 자신의 현실을 이겨내고 강한 남자로 다시 자신의 사랑 앞에 서려하고, 여성 캐릭터는 끊임없는 현실의 유혹 앞에 흔들린다. 아마도 이런 구도의 부활은 꽉 막힌 사회적인 억압 속에서 자꾸만 움츠러드는 남성들의 강한 남자에 대한 판타지 때문일 것이다. 어딘지 촌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한편 '자이언트'의 강모(이범수) 역시 또 다른 까치의 부활이다. 사랑하는 여자 정연(박진희)을 늘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다가서려는 그녀를 속에도 없는 말로 밀어내고는 절규하는 그 모습은 까치의 옛사랑 그대로다. 물론 대사로 "널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안하지만, 그의 행동이 그 대사를 대신한다. 그 사랑을 방해하는 존재로 조민우(주상욱)는 마동탁의 역할이다. 뭐든 다 가졌지만 정연의 사랑만은 가질 수 없는 존재.

쿨한 사랑의 시대에 촌스럽게 느껴지는 까치식의 사랑이 21세기에 부활한 것은 왜일까. 물론 그것은 이 두 작품이 모두 7,80년대를 다루는 시대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감성이 현재와 만나는 지점이 분명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강한 남성에 대한 희구, 그 시절에 대한 향수다. 물론 이 두 작품에는 까치식의 이야기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희생적 사랑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성장과 행복에도 주목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 향수를 자극하는 옛사랑과 현재적인 관점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이 교차하는 세대의 접합점은, 이들 드라마가 왜 과거를 다루면서도 현재의 인기를 끄는 지를 잘 말해준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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