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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질문, 가수는 무릇 어떠해야 하나

 

<무한도전>이 또 음원을 낸 줄 알았다. 음원차트에 1위부터 7위까지 아이유의 새 음원 전곡이 올라 있었다. 그저 화제성이겠지 했다. 하지만 웬걸? 노래를 들어보니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물론 마음같은 시적 가사를 써낼 때부터 어딘가 일을 낼 것 같은 아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23일 발매된 네 번째 미니앨범이자 그녀의 첫 프로듀싱 앨범인 챗셔(CHAT-SHIRE)’의 타이틀곡인 스물셋을 들어보니 그 가사가 농익었다.

 


아이유(사진출처:로엔트리)

어느 쪽이게? 뭐든 한 쪽을 골라. 색안경 안에 비춰지는 거 뭐 이제 익숙하거든.’ 그녀는 스물셋 먹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수수께끼처럼 내놓고는 끊임없이 이런 모습일까 저런 모습일까를 추론하게 만든다. 물론 답을 주지 않는다. 사랑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는 아니 돈이나 많이 벌 것이라고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아이유는 이제 이런 모순되고 어찌 보면 다양한 모습들이 사실은 사람의 진짜 실체라는 걸 알아차린 듯하다. 많은 이들은 색안경 안에 한 가지 모습만을 담으려 하지만.

 

스물셋의 나이에 다양한 얼굴들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당당하게 드러내는 아이유는 이제 더 이상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하고 부르던 그 아이 같던 소녀가 아니다. 물론 여전히 풋풋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삶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여자의 테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징적인 시어로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푸르던의 가사는 대단히 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이다. ‘너는 조용히 내려 나의 가물은 곳에 고이고. 나는 한참을 서서 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그 밤.’

 

이미 장기하와의 사랑이 알려졌지만 그게 뭐 어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는 아마도 이런 노래의 가사가 전해주는 것처럼 그녀 스스로 이미 성숙한 데서 나오는 것일 게다. 과거 국민 여동생이라는 색안경에 갇혀 있을 때 그녀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스물셋의 아이유는 그래서 그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그대로의 그녀를 드러내는 노래를 한다. 노래는 그래서 아이유의 마음이자 언어다.

 

아이돌이나, 그게 아니라도 연예인이라는 위치는 늘 이런 저런 소문과 논란으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나이 어린 소녀가 그 살풍경한 연예계 속에서 자라나며 차츰 단단해졌다. 그게 가능했던 건 아이유가 여느 아이돌들이 그렇듯이 콘셉트부터 춤 동작까지 완벽하게 기획된 노래를 그저 인형처럼 부르는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많았던 성장통과 이야기들은 그래서 그녀의 노래 속으로 들어가 담담해졌다.

 

그저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무릇 아티스트라면 해야 할 행보가 바로 이것이다. 삶이 묻어나고 경험이 축적되어, 때로는 깊은 아픔까지도 한 곡조의 노래 가사로 뽑아내는 일. 아이유는 이제 겨우 스물셋이지만 그걸 해내고 있다. 물론 그건 스물셋의 경험치에 해당하는 풋풋하고 귀여운 심정의 토로다. 하지만 이것이 솔직하게 음악에 담기는 작업이 계속될 때 우리는 아이유라는 아티스트의 온전한 성장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화점으로 스물셋의 아이유가 있었다는 걸 떠올릴지도



Posted by 더키앙

연애가 아이돌에게 미치는 영향

 

아이돌도 사람이다. 그러니 적당한 나이에 누군가를 만나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가 이상한 일이다. 활짝 피어난 청춘들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건. 그건 과장되게 말하면 청춘의 방기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자. 우리는 그들이 모태솔로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아이유(사진출처:로엔트리)'

아이유가 장기하와 사랑에 빠졌다. 디스패치가 또 하나의 특종을 낚았다. 이런 특종이 나올 때마다 이제는 무슨 큰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이런 연예인 열애 특종이 보도되는가 하고 되묻곤 한다. 물론 그건 음모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십성 연예인 뉴스들은 많은 정치적 현안들을 덮는 것이 사실이다. 국정 교과서 논란 같은 중대한 사안들은 연예인 뉴스들에 슬쩍 가려져 이슈를 분산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유의 열애설이 보도된 후 그 반응이 흥미롭다. 과거 같으면 팬들의 실망 가득한 토로들이 나아가 반감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을 게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러려니 한다. 하긴 사랑할 때도 됐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 상대가 대중들에게 호감인 장기하라는 사실도 물론 작용한다. 하지만 아이유가 그간 보였던 음악적 성취들이 이런 열애설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아이유는 작년 꽃갈피라는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김창완의 너의 의미’, 조덕배의 나의 옛날 이야기같은 옛 노래들을 다시 히트시켰다. 물론 이전에도 그녀는 김광진이나 윤상, 이적 같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신구세대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꽃갈피에서 아이유의 감성은 더 짙어졌다. 원곡을 거의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성숙해진 노래의 해석력을 보여줬다.

 

서태지와 함께 소격동으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드라마 <프로듀사>에 삽입됐던 마음은 놀라운 감성과 더불어 거의 시에 가까운 가사가 한결 원숙해진 음악적 성취를 보여줬다. ‘툭 웃음이 터지면 그건 너. 쿵 내려앉으면은 그건 너. 축 머금고 있다면 그건 너. 둥 울림이 생긴다면 그건 너.’ 도대체 이런 가사를 그렇게 깊어진 감성으로 불러내는 데야 웬만한 목석도 마음이 흔들릴밖에 도리가 없을 게다.

 

물론 필자 맘대로 상상하는 것이지만, 아마도 아이유의 이런 깊어진 감성은 사랑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나눈다는 건 그 사람을 성숙하게 해주는 일이다. 장기하와 아이유가 가까워진 건 음악적 교감이 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김창완이라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장기화와 아이유는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소녀시대는 한 때 더 이상 소녀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소녀들이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태연과 엑소 백현의 열애와 결별은 큰 화제가 되었다. 갖가지 가십성 추측 기사와 과장된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두 사람은 쿨하게 같은 소속사의 좋은 선후배로 남게 됐다고 밝혔다. 사람 사이의 사랑과 결별은 그 당사자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겪으며 갖게 되는 아픔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장통이 되기 마련이다.

 

이번 소녀시대가 발표한 라이온 하트가 좋은 반응을 얻더니 태연이 솔로로 내놓은 곡들이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타이틀 곡 ‘I’는 지금껏 태연이 솔로로 발표했던 곡들과는 사뭇 다른 색깔로 그녀의 음악적 성숙을 보여준다. 마치 팝음악을 듣는 듯한 비트에 태연 특유의 쭉쭉 뽑아 올리는 시원스런 고음은 외국의 팝 디바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앨범에 있는 ‘U R’은 익숙한 태연 특유의 발라드 감성이 느껴지는 곡이다.

 

물론 아이돌들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며 그로인해 성숙해지면서 음악도 성장했다는 건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아이유나 소녀시대 그리고 태연의 음악은 확실히 성숙해져 있다. 아마도 이제 아이돌의 열애에 대해 대중들이 보내는 이 쿨한 반응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드러나지 않았어도 사실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것이라는 걸 모두가 예상한 바라는 것이며, 나아가 그 일련의 정상적인 과정들이 음악에도 성숙된 결과로 돌아오게 해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아이돌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에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좋은 음악으로 팬들에게 되돌려질 테니. 적어도 아이유와 소녀시대 태연에 있어서는 분명.



Posted by 더키앙

소극장으로 간 한국대중음악상, 왜?

결국 대중음악은 소극장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말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갑작스런 지원중단 발표 후, 시상식을 연기해온 ‘한국대중음악상’은 애초에 건국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학전 소극장으로 축소 개최되게 되었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한국의 그래미’, ‘한국의 빌보드’를 만들고 ‘대중음악전용관’을 짓겠다며 대중음악을 키우기 위해 무려 1275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애초에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키우겠다던 대중음악은 ‘한국대중음악상’이 말하는 그 대중음악이 아니었던 것일까.

혹자들은 ‘한국대중음악상’에 인디밴드들과 같은 상대적으로 낯선 음악인들이 대거 수상자 명단에 들어있는 점을 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음악들이 그 명단에 들어있지 않고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음악인들이 거기에 있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혹자들은 그 점을 들어 ‘한국대중음악상’이 아니라 ‘인디음악상’이냐는 비아냥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껏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들만이 대중음악이라고 불려진 것에 대한 ‘한국대중음악상’의 도발적인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대중음악은 물론 상업적일 수 있지만 그 전에 대중의 정서를 음악적으로 잘 표현한 음악에서 먼저 찾아져야 하는 것이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이 생기게 된 것은 방송사와 대형 기획사 저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린 국내의 음악 시상식이 갖는 한계를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대중들까지 인식하게 되면서부터다. 대중음악이 갖는 상업적 성격은 몇몇 대형 기획사들의 승자독식구조를 지속시켰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방송사의 시상식은 그네들의 홍보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무엇보다도 문제였던 것은 그네들에 의해 대중음악이라 호명되는 몇몇 음악들이 대중들의 다양한 기호를 묵살하고 획일화시킨다는데 있다.

이렇게 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키워내겠다고 한 ‘대중음악’과 ‘한국대중음악상’이 말하는 ‘대중음악’ 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그래미 운운하면서 127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말할 때부터 그 대중음악의 성격 속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상업성에 경도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지원중단은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또한 자생적인 대중음악의 발전을 지원한다기보다는, 국가 통제 하에 대중음악의 틀을 두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중음악에 대한 상반된 접근이 1275억을 투자하겠다고 하면서도 고작 몇 천만 원에 불과한 지원비를 굳이 중단하겠다고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작년 한 해, TV 음악 프로그램에 일대 변혁을 불러온 인디 밴드들(‘장기하 밴드'나 ‘갤럭시 익스프레스' 같은)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은 ‘한국대중음악상’이 이제 변화해가는 대중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를 제대로 선점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윤도현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장르 구분을 넘나드는 음악의 소개가 그 전조를 보였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은 작금의 ‘이하나의 페퍼민트’, ‘음악여행 라라라’, ‘스페이스 공감’같은 프로그램들로 그 다양성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것은 TV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과거와 같은 몇몇 상업적으로 성공한 음악에만 편향된 형식만으로는 대중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상 규모가 작아진 금번 ‘한국대중음악상’에는 김동률, 토이, 원더걸스, 다이나믹듀오, 태양, 윤하, 양방언 등이 불참해 아쉬움을 남겼다. 진행자인 윤도현과 이하나는 “우리 권위 있는 거 맞죠?”하는 농담까지 했으니 그 썰렁한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금번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단연 화제는 ‘싸구려 커피’로 3관왕의 영예를 안은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는 작금의 대중음악에 인디의 정신을 살리며 참신함을 불어 넣어준 음악으로 당연히 받을 걸 받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싸구려 커피의 정서를 노래로 부른 ‘싸구려 커피’라는 음악이 싸구려가 아니듯, ‘싸구려 커피’에 영예를 준 ‘한국대중음악상’이, 화려하지 못한 협소한 공간에서 조촐히 벌어진 싸구려(?) 음악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싸구려 커피의 그 달달함과 속쓰림 역시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의 화려함이 장악한 것처럼 보이는 현재, 우리네 대중들의 정서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러한 대중들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이해해야 한다. 소극장으로 내려간 ‘한국대중음악상’은 마치 이제 막 바깥 세상을 향해 나오려고 하던 다양성을 지평으로 하는 대중음악들이 다시 저 좁은 공간으로 내려보내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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