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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 조작 논란이 가져온 후폭풍 만일 조작 논란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뉴질랜드편은 훨씬 더 흥미로웠을 지도 모른다. 뉴질랜드라는 무수한 판타지 영화에 등장했던 공간이 주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을 것이고, 그 안에서 마치 대본 없이 찍은 한 편의 영화처럼 병만족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원시 체험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전사의 후예, 마오리족이 주는 강인한 인상이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대한 이국적인 정서를 만들어냈을 것이고, 그들에게 배우는 생존기술 또한 좀 더 팽팽한 긴장감을 동반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무 것도 없이 석기시대로 돌아간 초심의 이야기는 거꾸로 그 자체가 우리가 문명의 빛에 가려, 잊고 있었던 풍족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을 게다. 하지만 조작 논란의 여파는 컸다..
'마루 밑 아리에티'에는 거대한 스케일이 없다. 이야기의 배경은 고작 한 시골의 별장 같은 저택의 반경을 넘지 않고, 주요 등장인물도 아리에티 가족 3명, 이 저택에 요양온 쇼우와 할머니, 가정부 이렇게 3명, 그리고 아리에티와 같은 소인족으로 외부에서 들어온 사피라까지 모두 합쳐봐야 7명 정도다. 이야기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처럼 다이내믹하지 않다. 요양 차 시골에 온 소년이 소인인 아리에티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전부. 어찌보면 심심할 정도로 단순한 구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지극히 작고 사소해보이는 애니메이션이 우리의 가슴을 이토록 설레고 울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다. 3D의 화려한 기술이 점점 일반화되어가는 시대에, '마루 밑 아리에티'는 완전히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한 작품이다. 자..
‘드래곤 길들이기’, 어른과 아이가 모두 공감하는 이유 왜 드래곤을 길들이려는 것일까. 마을을 쳐들어와 쑥대밭을 만드는 드래곤들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바이킹족의 마을. 아이들조차 드래곤을 죽여 진정한 바이킹 용사가 되길 원하는 그 곳에 싸우기보다는 드래곤과 공존하려는 히컵이라는 소년의 존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모험과 재미를 선사하지만 그걸 보는 어른들에게도 꽤 많은 시사점을 발견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하는 결코 작지 않은 환경적인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바타’에서 나비족들과 제이크 설리가 익룡을 닮은 이크란을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은 ‘드래곤 길들이기’의 히컵이 친구가 된 드래곤 투스리스(toothless 이빨이 없다는 뜻으로 히컵이 붙여준 이름)를 타고 날아다니..
자연,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 우리에게 ‘무소유’의 삶을 몸소 보여주고 떠난 법정 큰 스님이 평생 강조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연(自然)’이라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숲과 바다 같은 그 자연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자 그대로의 뜻으로 ‘스스로 그러한’ 것을 뜻하기도 한다. 즉 어떤 인위적인 흐름이 부여되지 않은,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바로 자연이고, 그것을 우리는 숲과 바다와 나무 같은 자연을 통해 발견한다. 자연의 흐름이란 실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즉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약해지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법정 큰 스님은 우리에게 이 자연적인 삶을 거스르지 말고 그 흐름대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 ‘무소유’는 자연이 자연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식이었다.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
개발 논리의 끝, 사람도 자연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아이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 아이의 하루를 생각해보는 것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아이의 생활을 파고드는 위해한 환경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위험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아이들의 급식으로 올려지는 건 아닐까.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걸리지는 않을까.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유전자 변형 옥수수를 모르는 사이 먹고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한편 급증하고 있는 아이 성폭력 사건 사고에 재수 없이 휘말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인 불안감까지 걱정은 끝이 없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나은 것은 없다. 삶의 기본 조건이라는 의식주를 두고 볼 때, 나아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양적인 측면에서 볼 때..
베트남에 와서 처음 눈에 띈 것은 오토바이였다. 베트남 하면 시클로라지만 이제 시클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는 개미집에 물을 부은 것처럼 끝없이 골목길에서 튀어나오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가만히 그것들을 보고 있거나, 자동차를 타고 그 길에 서 있거나, 혹 그 오토바이들이 무차별로 달리는 그 도로를 건너야 할 때마다 삶은 죽음과의 사이에서 왔다 갔다 움직였다. 그래도 그 무질서 속에 질서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용케도 차들은 오토바이를 피해달리고, 오토바이들도 저마다 잘 가는 걸 보면... 그리고 바오밥 나무를 보았다. 뿌리가 온통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그 나무는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가지들과 둥치가 달라붙어 있었다. 메콩강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배를 타고 어..
욕망과 사랑 사이, 당신은 행복한가 고단한 도시생활에 지쳐 며칠 쉬러 내려간 시골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었나. 시간이 멈춰버린 듯 늘 그 자리에 앉아 언젠가는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묵묵히 한 때의 밥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에게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나.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은 바로 그 때 느꼈던 포근함, 피폐해진 몸을 다시 되살려놓던 창조적인 힘, 잔뜩 중독된 생활 속에서 날카로워진 신경을 보듬는 해독의 손길, 그런 것들로 인해 충만해지는 생명감 같은 걸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클럽이 망하고, 술 담배에 몸도 망가진(간경변이다) 영수(황정민)는 도시생활에 지쳐 시골 요양원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거기서 자연을 닮은 은희(임수정)를 만난다. 그녀는 폐 질환 환자로 8년 째 요양원에서 살아왔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