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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이 애끓는 아빠의 분노를 어찌 공감하지 않을까 늘 미안한 딸이었다. 엄마를 암으로 먼저 보내고 나서도 잘 챙겨주지 못했다. 일 때문에 그 흔한 스키장도 한 번 놀러가지 못했다. 그런 딸이 어느 날 싸늘한 시신으로 그것도 심각한 성폭행의 흔적이 있는 몸으로 돌아왔다. 이걸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이 던지는 화두는 이토록 섬뜩하고 아득하다. 시신을 확인하러 간 아빠가 문 앞에서 버럭 화를 내며 “내가 왜 여길 가야되는데”하고 소리칠 때부터 관객의 마음은 이 아빠의 고통을 실감한다. 텅 빈 눈. 떨리는 손. 그리고 오열. 오로지 딸의 죽음에 너무나 미안해서,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모두가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만 같아 아빠는 복수의 칼날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린다. 이렇게 아빠의 마음이 바탕에 깔려 ..
과 버스커버스커의 '벗꽃엔딩' 그것은 해피엔딩이었을까 새드엔딩이었을까. 의 엔딩은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어딘지 동화적인 공간 속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보게 된 오수(조인성)와 오영(송혜교)의 키스로 끝이 났다. 겉으로 보면 해피엔딩처럼 보여지지만, 그 장면이 가진 동화적인 느낌은 그것이 모두 한 자락 꿈 같은 아련함을 남기기도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열린 선택이었던 셈이다. 드라마의 스토리구조 상 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그 위에서 삶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되는 이유’ 혹은 ‘사랑이라는 삶의 존재 근거’ 같은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라는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바라볼..
'그 겨울', 이미 해피엔딩인 이유 멜로라는 장르는 그저 판타지에 불과할까. 우연적인 만남, 운명적인 사랑, 신분과 죽음마저 초월하는 사랑... 멜로라는 장르에는 분명 판타지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판타지들이 하나 둘 모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어떤 울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멜로가 단지 판타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판타지가 환기하는 현실을 지향하기도 한다는 걸 말해준다. 는 ‘슬픈 동화’ 같은 판타지를 통해 돈에 지배된 살벌한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는 멜로다. “차라리 사기를 치지. 사랑을 하게 하지 말 걸. 나 같은 놈, 사랑을 하게 하지 말 걸.” 오수(조인성)의 참회는 이 드라마가 가진 대결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가짜 오빠 행세를 하며 78억을 받아내기 위해 시..
의 배종옥과 김태우, 악역에도 격이 있다 에서 왕비서(배종옥)과 조무철(김태우)은 미스테리한 인물들이다. 누가 봐도 악역이지만 그 속내를 좀체 알 수가 없다. 왕비서는 눈 먼 오영(송혜교)의 뒷바라지를 하며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마치 엄마처럼 오영을 걱정하고 챙기지만, 그녀가 사실 오영의 눈을 멀게 방치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모성이 아니라 모성에 대한 괴물 같은 집착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녀는 오영을 평생 옆에 두고 챙기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 했던 것. 왕비서가 자신의 집착이면서도 그것을 모성으로 꾸몄다면, 조무철은 정반대 악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무철은 오수(조인성)로 하여금 오영에게 거짓 오빠 노릇을 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100일 안에 78억을 갚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
'천일'의 긍정론, '브레인'의 부정론 공교롭게도 월화극 두 편이 모두 뇌 질환을 다뤘다. 종영한 '천일의 약속'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서연(수애)과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지형(김래원), 그리고 그녀를 이해하고 같이 아파하는 주변인물들을 통한 인간애를 다뤘다. 반면 '브레인'은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뇌수술 전문의가 된 이강훈(신하균)이 역시 뇌종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그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과정을 다뤘다. 두 사람 다 죽음을 맞이하거나 목도해야 했지만, 바로 그 죽음을 다루면서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사뭇 다르다. '천일의 약속'이 서연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그래도 인간적인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이..
'여인의 향기', 멜로를 벗어나야 희망이 보인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병실을 빠져나와 그간 꿈만 꾸고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들은 알게 된다. 삶이란 것이 길든 짧든 그렇게 뭔가를 해보는 그 과정이라는 것을.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지금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인의 향기'의 모티브를 따온 알 파치노 주연의 동명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 영화에서는 장님이 된 퇴역장교가 자살여행을 떠나는 얘기가 나온다. 여행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죽으려던 것. 하지만 그렇게 해보니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겨난다. 탱고는 바로 그런 열정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삶은 그렇게 빛날 수 있다. 장님인 슬레이드(알 파치노)는 아이러니하게도 멀쩡..
‘여인의 향기’, 이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주는 진지함 알파치노가 주연한 ‘여인의 향기’는 우리에게 탱고로 기억된다. 장님이 된 퇴역장교 슬레이드(알파치노)가 어느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과 추는 탱고. 그 장면이 좀체 잊히지 않는 것은 그 속에 꽤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슬레이드는 절망감 속에 자살여행을 떠난 것이었고, 그래서 죽기 전 해볼 수 없던 것들을 해보며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우는 중이었던 것. 그래서 그 춤은 절망감 속에서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는 삶의 의지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아도 선율을 따라 움직이는 몸처럼. 김선아의 복귀작, ‘여인의 향기’는 여러모로 알파치노의 ‘여인의 향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여행사 말단직원으로 지내다 어느 날 암 선고를 받는 이연재(김선아)..
역사가 외면한 낮은 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추노’는 왜 그토록 많은 죽음을 보여주었을까. 혜원을 호위하던 백호(데니안), 명나라 출신 여자 자객 윤지(윤지민), 원손을 지키던 궁녀 필순(사현진)의 죽음은 소소한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 세상을 저주한 천지호(성동일)의 죽음은 시청자들을 가장 안타깝게 했으며, 태하의 심복 한섬(조진웅)의 죽음은 시청자들을 울렸다. 본래 죽을 운명이었던 최장군(한정수)과 왕손이(김지석)는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순진하게 ‘노비들의 세상’을 꿈꾸던 개놈이(이두섭)나 끝봉이(조희봉)를 위시한 노비당 인물들은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했다. 업복이(공형진)는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이경식(김응수)과 그 분(박기웅)을 죽이고 결국 죽음의 길로 들어섰고, 주인공 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