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래요' 뻔한 상투성, 유동근·장미희 연기까지 이상하다

주말극은 이 상투성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또 결혼반대 코드에 뻔하디 뻔한 뒷목 잡게 만드는 악역 캐릭터다. 다만 KBS 주말극 <같이 살래요>가 다른 게 있다면 그 결혼 반대하는 대상이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라는 점이다. 효섭(유동근)과 미연(장미희), 둘 사이는 핑크빛이고 그래서 결혼까지 오가고 있지만, 이 둘을 미연의 아들 문식(김권)은 대놓고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반대하는 이유가 황당하다. 결국 미연의 재산 때문이라는 것. 문식은 그래서 몰래 친부를 만나고 미연과의 재결합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의 주말극에서 늘상 나오던 상투적인 장면인 부모가 자식 결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식의 설정을 거꾸로 뒤집어 자식이 부모 결혼에 간섭하는 이야기. 

이렇게 되자 보통의 주말극에서 악역을 자처하던 시부모는 이 드라마에서는 문식이라는 자식으로 바뀌었다. 빌딩주인 미연의 금수저 아들로 절대 갑으로서 살아온 철없는 이 인물은 이미 회사 내에서도 효섭의 아들인 재형(여회현)에게 대놓고 갑질을 하는 악역이다. 문식은 그래서 결혼반대에 갑질 상사라는 ‘욕받이’ 역할을 자처하게 됐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마도 이제 시청자들이 대충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문식 같은 절대 악역이 세워지고 나면 그 악행으로 인해 시청자들을 공분시키는 몇 가지 사건들이 더 벌어질 것이고, 결국 그 악행을 알게 된 부모는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게다. 극중에서 효섭이 말하듯, 자식의 허물은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게 부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을 겪다 결국은 문식이 무너지거나 혹은 개과천선하는 이야기에 효섭과 미연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지는 과정이 담겨지지 않을까.

물론 <같이 살래요>가 애초에 보여주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는 분명하다. 그것은 엄마 혹은 아빠로만 살아왔던 노년 세대의 재결합이라는 새로운 가족형태 속에서 빚어지는 자식들과의 갈등이다. 실제로 이런 문제가 현실에서 벌어질 때 가장 갈등을 만드는 건 역시 재산 문제다. 자식들은 부모의 결혼으로 들어온 배우자가 재산이 목적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되고, 결혼하려는 당사자들은 자식들의 그런 의심을 상처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가 들어 같이 산다는 문제는 단순히 사랑의 문제만이 아닌 현실적인 일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려나감에 있어서 위아래도 없이 폭주하는 문식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상투적 악역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폭주할수록 시청률은 올라가지만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갈수록 부정적으로 변해간다. 결국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발견하게 되는 그 캐릭터와 이야기의 뻔한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상투적인 이야기 구조 때문일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효섭과 미연 역할의 유동근과 장미희의 연기조차 어딘가 옛날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저마다의 개성과 아우라가 넘치던 이 배우들의 연기에서 마치 옛 멜로 속 신파적인 연기 톤까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야기의 상투성이 연기까지도 전형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사진:KBS) 

‘나저씨’ 신구 캐릭터는 어째서 갑질 재벌들 비판처럼 보일까

현실에도 이런 회장님이 있을까. 성폭력으로 시작됐던 미투 운동이 이제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어서일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장회장(신구)이 마치 이런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안 E&C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다. 건물을 설계하고 그 위험을 진단하는 일을 하는 회사라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의 대부분이 이른바 ‘성장 지상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 윤상무(정재성) 같은 인물은 실적을 위해 건물의 안전진단도 적당히 하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그것이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이 회사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제대로 일을 하는 인물이 주인공 박동훈(이선균)이다. 그는 건축구조기술사로서 경영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은 건물에 대한 ‘구조적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소신을 지켜나간다. 모두가 라인에 붙어 자리보전을 위한 암투에 몰두할 때 그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는 인물이 바로 장회장이다. 왕전무(전국환)가 쥐락펴락하며 자기 회사인 양 힘을 넓혀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로얄패밀리의 아들인 도준영(김영민)을 대표로 세우긴 했지만 그는 그가 미덥지 못한 인물이라는 걸 알아본다. 실제로 도준영은 이 회사 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의 뒷조사를 하거나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와 바람을 피우고, 장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캠핑장에서의 ‘불 피우기’를 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처럼 보인다.

장회장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사실상 이 회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회장님이지만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봐온 회장님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회사라서 그런지 애사심이 남다르고, 진짜 일을 하는 박동훈 같은 인물에게 선선히 다가가 “밥 한 번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가 남다른 회장님이라는 게 드러나는 대목은 회사의 비정규직이었던 이지안(이지은)이 그의 과거를 뒷조사하는 이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자 버럭 화를 내며 그를 찾아오라고 하는 부분에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상무 심사를 위한 부하직원의 인터뷰 자리에 나가 그가 얼마나 따뜻한 인물이었는가를 피력하며 이 회사에서의 몇 개월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말한 바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장회장은 그래서 이지안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됐고, 그런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소식에 “사과라도 해야겠다”며 찾아오라 했던 것.

스펙과 자기 측근만을 챙기고, 직원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렸다는 재벌가 회장님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이런 회장님은 아마도 판타지일 것이다. 그저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낙으로 여기고, 저 비정규직 사원 하나의 일에까지 이토록 마음을 쓰는 회장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장회장의 면면이 갑질 재벌들의 비판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라이브’, 미투·약자·적폐 현실 담은 노희경 작가의 저력

노희경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경찰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낯선 직업은 아니다. 흔한 형사물들 속에서 늘 등장했던 그들이 아닌가. 하지만 tvN 금토드라마 <라이브>에서 경찰은 우리에게 드디어 진짜 얼굴을 드러낸 느낌이다. 때론 딜레마에 빠지고, 매뉴얼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억울하게 당하며, 심지어는 올바르게 경찰 일을 해왔다는 것 때문에 중징계를 받기도 하는 경찰들.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리경찰만 있는 것도 아닌,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라이브>는 담았다. 

노희경 작가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건, 경찰이라는 특정 직업을 깊이 있게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들을 포착해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성범죄를 다루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미투 운동의 한 자락이 포착되고, 국회의원들의 음주운전 거부 사건 같은 걸 다루며 역시 사회적 사안으로 떠오르는 갑질 행태가 담겨지는 식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염상수(이광수)가 오양촌(배성우)을 구하기 위해 총기를 사용한 것 때문에 오히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사건은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양으로 내몰리는 일선 경찰의 문제가 담겼다. 그 사건에서 보이는 건 검경의 수뇌부들이 저지르는 적폐청산의 문제와, 진실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균형을 잃은 언론의 문제다. 결국 약자들은 올바른 선택을 하고도 늘 힘 있는 자들이 빠져나가는 구실이 되는 현실을 맞이하기도 한다.

‘최고의 경찰 부부’라고 자임하는 오양촌과 안장미(배종옥)가 둘 다 중징계를 받는 대목도 그렇다. 특히 안장미는 연쇄 성범죄자를 붙잡은 장본인이면서도 오히려 ‘늦게 잡았다’며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수뇌부를 차지한 남성 권력들은 비겁하게도 안장미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뒤로 숨어버린다. 이것이 <라이브>를 통해 노희경 작가가 전하려는 경찰의 진면목이었다. 

드라마 초반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강제해산시키는 장면으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라이브>가 그리려는 건 공권력으로서의 경찰들을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들이고, 그래서 그 힘 있는 누군가의 잘못되고 비겁한 선택들이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경찰들까지도 모두 욕되게 하고 있다는 것. <라이브>가 비판하려는 건 그래서 그 잘못된 권력구조들, 경찰 수뇌부의 적폐에 대한 것이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염상수를 위해 그를 변호하는 오양촌이 ‘사명감’을 강조해왔던 자신을 후회한다고 말하며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일선에서 사명감이 아니라면 버텨내기 힘든 갖가지 더럽고 두려우며 때론 힘겨운 일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적어도 그 사명감 하나는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애꿎은 그들을 희생양 삼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경찰들이 진짜 접하는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우리 사회가 가진 갖가지 문제들이 드러난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과 사회정의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요즘, <라이브>의 일선 경찰들을 통해 전하는 노희경 작가의 메시지는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마치 우리 사회의 환부를 경찰이라는 특정 직업군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 느낌. 노희경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사진:tvN)

‘예쁜 누나’, 갑질 세상 이 작은 드라마가 바꾸고 있는 것들

“어떤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나보다 더 날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주기 위해서 애쓰는 어떤 사람을 보면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사람이 덜 걱정하게. 안심할 수 있게. 내가 내 자신을 더 지켜나가야겠다.”

왜 갑자기 예전과 달라졌냐고 묻는 직장 상사 공철구(이화룡)의 물음에 윤진아(손예진)는 그렇게 말했다. 툭하면 회식자리에서 성차별과 성희롱, 성추행까지 하던 공철구는 갑자기 회사대표가 여직원들의 불만수리를 한다는 소식에 겁먹고 윤진아를 회유하려 저녁을 사주는 자리였다. ‘윤탬버린’이라고 불리던 윤진아는 회사대표가 여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예쁜 누나 윤진아와 밥 사주고픈 동생 서준희(정해인)의 풋풋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흥미롭다. 그건 하도 갑질이 일반화되어버려 심지어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고 살았던” 윤진아가 바로 그 사랑을 통해 변화하게 됐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서다. 

웬 사랑이야기에 이런 시퀀스와 대사가 들어갔을까 싶지만, 잘 들여다보면 윤진아의 변화는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의 대중들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사람의 변화와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작은) 사회의 변화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시대의 변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사랑이야기에 사회적 사안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절묘하게 엮어 놓았다고 보인다. 

사실 최근 들어 사회적 이슈가 된 일이지만, 권력에 의한 갑질 행태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런 갑질은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게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세상이 그렇다”며 “간 쓸개 다 빼놓고” 일터로 나가는 이들은 그걸 그냥 수용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내재화는 결국 갑질 아래서도 탬버린을 들고 맞춰주는 자기 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몇몇 사건들을 보면 세상이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물 컵을 던지고 욕설을 하는 일이 늘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고 일파만파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을들이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는 잘 들여다보면 저 윤진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그간은 그 누구도 그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고 지지해주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에 대중들이 귀를 기울인다. 대중들은 그 상처 입은 분들에게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와 서준희의 사랑이 더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들의 사랑은 그들만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를 넘어서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에 의해 작은 사회가 변화하는 그 과정까지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상처 주는 세상에 서로가 상처를 껴안아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윤진아가 서준희에게 녹음 파일로 보내는 마음은 그래서 더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준희야 나야. 고마워. 나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게 될 줄 몰랐어. 너는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많이 배우고도 있어. 사랑은 한없이 아낌없이 한 사람만을 위해서 모든 걸 쏟아내는 마음이라는 걸. 그래서 사랑을 할 때는 서준희처럼. 준희야. 사랑해. 아주 많이. 아주 오래오래 사랑할게.”(사진:JTBC)

‘우만기’ 김현주, 흔들리지 않는 그에게 기대고픈 건

김현주가 이런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배우였던가. KBS 월화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에서 물론 단연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건 김명민이다.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김명민은 영혼이 바뀐 송현철의 역할을 진짜로 두 사람이 섞여있는 듯 연기해내고 있다. 간간히 김명민의 얼굴에서 영혼이 빙의된 고창석의 표정이나 모습이 보일 때는 실로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며 직장에서나 직장 밖에서나 좌충우돌의 시간을 보내는 송현철(김명민)의 모습이 보이면 보일수록 자꾸만 그 옆에 서 있는 선혜진(김현주)이 눈에 띈다. 아마도 개차반이었던 지점장 송현철과의 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을 그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굳건히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니 “나 좀 도와줘요”하고 애원하는 송현철에게 이 침착하고 단단한 인물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선혜진은 처음부터 주목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송현철의 아내로서 마치 도우미 취급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그런 정도의 인물로 슬쩍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물이 이혼을 결심하고 있고, 돈 많은 남편으로부터 먼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마트에서 일하는 모습을 통해 그 존재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통 선혜진 정도의 사모님이라면 정반대로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으로 마구 살아갈 것 같지만, 이 인물은 정반대다. 고객의 불편을 들어주고 그 편의를 해결해주는 일을 하는 선혜진은 단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트의 대표인 금성무(조셉 리)가 해외입양아였다는 사실을 듣고는 부모를 찾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친절은 물론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이 인물이 가진 ‘선함’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인물이 그저 선하기만 해서 무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마트의 진상 고객에게는 확실하게 매뉴얼에 따라 거부할 건 거부하고 잘못된 건 지적하는 그런 강단을 보인다. 이른바 ‘갑질’ 아래 무작정 고개 숙이고 당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드라마가 그리는 풍경(이건 최근 신문 사회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일이지만)이지만, 선혜진은 다르다. 그는 사태를 들여다보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 말하는 인물이다.

학교에서 아들이 친구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학교에 와서도 선혜진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사모님의 모습과는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자기 자식 편만 드는 그런 사모님이 아니라, 먼저 앞뒤 정황을 다 살핀 후 자기 아들이 친구에게 “못생겼다”고 놀린 사실이 문제의 발단이었다는 걸 이해하고 오히려 사과한다. 

게다가 선혜진은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해서 또 다른 관계의 틈입을 허용하는 인물도 아니다. 금성무의 과한 친절에 대해 그는 선을 긋는다. 사장과 직원 사이에 그 이상의 친절은 불편하다는 걸 드러내는 것. 남편과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그래도 그가 일말의 기대 같은 걸 갖고 있는 것도 남다른 면모다. 영혼이 바뀐 송현철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 그는 다시 이 남편을 기대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이혼장을 내밀지만.

<우리가 만난 기적>은 영혼이 바뀐 송현철이 만들어내는 변화들을 기적 같은 사건들을 통해 그려내는 드라마다. 그런데 송현철만큼 이 드라마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은 선혜진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좀체 발견하지 못했던 가졌지만 따뜻하고 올곧은 생각을 가진 ‘기적 같은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김현주는 큰 과장 없이 이 인물을 깊이 있게 연기해냄으로써 다소 판타지와 과장이 많아 들뜰 수 있는 이 드라마에 안정감을 선사하고 있다. 정체성 혼돈으로 힘겹게 버텨가던 송현철이 선혜진에게 “나 좀 도와줘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도 읽힌다. <우리가 만난 기적>이라는 드라마에 김현주라는 배우의 도움은 앞으로 기대이상으로 필요해질 것으로 보인다.(사진:KBS)

‘리턴’, 스릴러의 쫄깃함에 담아낸 사회적 메시지

도대체 이 드라마의 무엇이 이토록 시선을 잡아끄는 걸까. SBS 수목드라마 <리턴>은 스릴러 장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인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와인바를 운영하던 염미정(한은정)이 살해됐고, 그로 인해 그와 내연관계를 가져온 강인호(박기웅)가 구속되었다. 하지만 강인호는 무고함을 주장하고 대신 그의 악당 친구들, 오태석(신성록), 김학범(봉태규) 그리고 서준희(윤종훈)가 의심을 받는다. 

그런데 드라마는 돌연 이 악당들의 시선으로 그들 역시 이 살인사건에 갑자기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이 살인범이 아니었다는 것. 김학범이 오태석에게 보낸 차 트렁크에서 염미정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그들은 그 사체를 오태석의 사유지인 강원도 채석장에 묻어버리지만, 사체는 엉뚱하게도 어느 도로 위에 놓여진 트렁크 속에서 발견된다. 이 악당들 이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걸 드라마는 은연 중에 보여준다.

한편 절친인 강인호가 살인누명을 쓰고 검거된 상황을 자백하기 위해 나섰던 서준희가 오태석과 김학범에 의해 붙잡혀 싸움을 벌이고, 김학범이 돌로 내리쳐 쓰러진 서준희를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태석은 일부러 사망한 걸로 속여 차에 태워 벼랑으로 밀어버린다. 사체 유기 사건을 덮으려 오태석이 서준희를 제거하려 한 것. 하지만 드라마는 또 서준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스토리 진행 방식은 <리턴>이 가진 특징이다. 악당들에 의해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악당들이 진범일 거라 추적하는 최자혜(고현정) 변호사와 강인호의 아내이자 변호사인 금나라(정은채) 그리고 형사 독고영(이진욱)은 그래서 그 엉뚱하게 흘러가는 사건에서 새롭게 연루된 인물들을 하나씩 만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독고영의 파트너 형사인 김동배(김동영)이고, 두 번째는 악당들의 펜트하우스 아래층에 살고 있는 김정수(오대환)다. 

진실에 다가갈 때 엉뚱한 진실이 다시 등장하고, 진범인 줄 알았던 악당들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사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걸 발견하게 만들며, 전혀 무관해 보였던 김동배 같은 인물이 사건에 연루된다. 이렇게 사건은 점점 갈수록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가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의문의 인물을 투입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더 점입가경으로 만든다. 스릴러 장르가 가진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끝없이 뒤집는 것으로 <리턴>은 고유의 동력을 만들어간다. 

흥미로운 건 <리턴>이 가진 여러 관점들의 교차다. 이 드라마는 복잡해 보여도 어느 정도는 사건의 윤곽을 예측할 수 있다. 즉 가진 재력을 바탕으로 갖가지 갑질과 악행을 저질러온 악당들, 즉 강인호를 포함해 오태석, 김학범, 서준희를 누군가 살인사건의 곤경 속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 사건의 ‘설계자’는 그들이 스스로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그 설계자는 분명 과거 이들에 의해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리턴>에는 악당들의 시선과 이 사건을 쫓는 변호사와 형사의 시선 그리고 이 전체를 관망하는 ‘설계자’의 시선이 교차된다. 변호사와 형사는 그래서 악당들을 추적하고 그 와중에 드러나는 설계자를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을 만나게 된다. 즉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악당들이 가진 권력과 금력으로 저질러온 갑질과 사건은폐 같은 사회적 사안들이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리턴>은 스릴러로서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전개가 주는 재미는 물론이고 그 궁금증으로 파고들어가는 사안들이 진실을 드러낼 때 보여주는 사회적 의미까지 담아내는 작품이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 이토록 집중하게 되는 건 그래서 스릴러 장르의 반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회적 사안들(권력과 재력으로 자행되는 사회의 시스템)의 진실이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사진:SBS)

‘황금빛 내 인생’, 재벌가의 갑질에 대처하는 아빠들의 각성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것인가.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보면 숨죽이며 상황들을 받아들이고만 살아오던 아빠들이 있다. 서민 출신이지만 노명희(나영희)와 결혼해 재벌가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살아온 최재성(전노민)과, 한 때는 중소기업을 운영해왔지만 사업이 망하고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하며 살아온 서태수(천호진)가 그들이다. 

드라마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워놓은 구도 탓이겠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사적인 욕심 때문에 재벌가 딸을 바꿔치기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양미정(김혜옥)이고, 최도경(박시후)과 서지안(신혜선)이 가까워지는 것도, 서지수(서은수)가 선우혁(이태환)과 사귀는 것도 자신들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며 갖가지 갑질로 방해하는 인물이 바로 노명희다. 

드라마의 전반부가 주로 양미정이 딸들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일로 인해 생겨난 파장들을 왜곡다뤘다면 후반부는 노명희가 자신의 자식들이 양미정의 집안과 얽히는 걸 막기 위해 벌이는 범죄에 가까운 갑질들로 인한 파장을 다뤘다. 그 결과는 양갓집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나 각자의 삶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에서 빠져버렸거나 소외된 인물들이 바로 아빠들이다. 보통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엄마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하더라도 아빠들이 집안 대소사에 의견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아빠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기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아빠들의 이런 수동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삶이 가정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구도를 세운 건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아빠들이 가진 양면적인 문제를 서태수와 최재성을 통해 담아내고, 어떤 면에서는 이들의 각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드라마가 그려내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그 각성을 먼저 보인 아빠는 서태수다. 그는 가족들만을 생각하며 자기희생적으로 살아온 삶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찾으려 집을 떠난다.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아니라 오로지 서태수라는 개인의 삶을 찾아나가는 것. 

그가 변화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극적인 장면은 서지안과 최도경이 사귀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집을 찾아와 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노양호(김병기) 회장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맞서는 서태수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딸에 대한 억측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노양호에게 일방적으로 뺨을 맞으면서도 그를 노려보는 서태수는 더 이상 이 모든 상황들에 수동적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의 각성을 보여준다. 

한편 노명희의 폭주 앞에서 딸 서지수(서은수)마저 삶이 파탄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걸 보게 된 최재성 역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 마주한다. 분노하는 최재성은 노명희 앞에 나서 그저 눌러놓고만 있던 분노를 터트린다. 과거 서지수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가 외도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노명희 때문이 아니었냐고 토로하는 것.

그간 지독할 정도로 당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오고, 자기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던 아빠들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부장의 귀환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과거 아빠들의 삶(자기 삶이 아닌 가족들을 위한 삶 혹은 금력에 의해 억눌린 삶)이 왜곡시킨 것들을 이제 충분히 알게 된 그들이 자신의 삶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후,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됐다는 걸 보여준다. 

서태수와 최재성이라는 두 아빠의 각성은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이 다루는 아빠 세대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빠들도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그럭저럭 버텨내는 삶을 살기 위해 눌러두었던 자신만의 삶을 찾아내고 제 목소리를 낼 때라는 것. 이들 아빠들이 이 꼬일 대로 꼬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뜻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그래서다.(사진:KBS)

‘부암동 복수자들’, 세상은 넓고 복수할 일들은 넘쳐난다

이 통쾌함과 훈훈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복수’라는 장르적 틀을 충실하게 따르는 드라마다.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 있고 그들에게 당한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 피해자들이 모여 ‘복수자 클럽’을 만든다. 그리고 응징한다. 전형적인 복수 장르의 틀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사진출처:tvN)'

그런데 <부암동 복수자들>이 주는 ‘복수’의 양태는 그 정서적 느낌이 다르다. 그것은 이 복수자가 된 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이 환기시키는 현실 때문이다. 재벌가의 딸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아들을 들인 남편 때문에 분노하는 정혜(이요원), 서민으로서 자식을 위해 갑질 앞에서도 눈물을 참고 무릎을 기꺼이 꿇는 도희(라미란)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점잖은 교수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 고통 받는 미숙(명세빈)은 각각 외도와 갑질과 폭력이라는 사회적 사안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특히 공분할 수 있는 사안들이지만 크게 보면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이 주는 분노라는 점에서 보면 딱히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이들이 저마다 가진 사안들이 환기시키는 현실들은 이 복수가 사적인 차원의 것 이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복수 자체가 현실에 대한 강력한 풍자이며 비판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복수자 클럽에 이수겸(준)이라는 유일한 남성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물론 이수겸은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미성년으로서 그 자체가 사회적 약자다. 그런 점에서 이 여성들과의 연대가 그리 이질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미성년의 인물이 복수하려는 대상이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을 낳아준 부모들. 이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낳아주기만 하면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자신을 온전히 키워준 할머니가 그에게는 유일한 부모다. 그래서 자신을 낳고는 사실상 버린 부모들은 복수 대상이 된다. 그 부모들이 이수겸을 현재 원하는 이유는 그가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인 이병수(최병모)는 대를 이어 재벌가에서의 입지를 가지려는 것이 목적이고, 생모인 수지(신동미)는 아들을 통해 한 몫 잡으려는 속셈이다. 심지어 수지는 할머니가 있는 산소 땅과 집마저 팔아버리려 한다. 자본의 힘은 자식마저 이용하는 비정함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수겸의 복수가 말해주는 건 자본화된 비뚤어진 세상에서 잘못된 어른들에 대한 응징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 네 명의 복수자 클럽이 완성되는 걸 보여주는 첫 복수전으로서 성추행을 일상으로 아는 교장을 그 대상으로 세웠다. 물론 그 복수의 방식은 엉뚱한 면이 있다. 교장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 처벌을 받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자에 접착제를 붙이고 설사약을 먹여 곤혹스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그건 이 복수자 클럽이 던지는 경고 메시지였지만 그래도 진정한 복수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몇몇 소극적인 복수의 장면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라도 어떤 응분의 대가를 받는 이들이 현실에서는 보기가 더 힘드니 말이다. 또한 복수와 함께 이 복수자클럽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그 연대의 모습이 주는 훈훈함을 빼놓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복수 그 자체보다도 <부암동 복수자들>에 시청자들이 매료되는 지점은 바로 그들 간의 연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현실화되기 쉽지 않은 복수보다 서로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그 힘은 어쩌면 그 복수를 현실화시킬 수도 있으니.

시청률 껑충 ‘부암동 복수자들’, 긴장하는 지상파

기어이 tvN <부암동 복수자들>이 일을 낼 모양이다. 2회 만에 시청률이 4.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첫 회 시청률 2.9%에서 이처럼 훌쩍 뛰어오른 시청률이 더 놀라운 건 이 드라마의 편성 시간대가 tvN이 올 가을 들어 공격적으로 내놓은 9시30분대였다는 점이다. tvN은 월화수목 9시30분을 드라마 타임으로 편성함으로써 10시에 시작하는 지상파 드라마들과의 한 판 승부를 예고한 바 있다. 

'부암동 복수자들(사진출처:tvN)'

만일 <부암동 복수자들>이 이 추세대로 시청률 상승을 기록한다면 지상파 드라마들은 고스란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부암동 복수자들>이 2회에 4.6%의 시청률을 내며 순항을 시작하는 순간, 지상파 드라마들은 주춤하는 모양새다. MBC <병원선>이 10%,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9.7%를 기록했다. 

<부암동 복수자들>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이야기의 참신함 때문이다. 바람을 피워 생긴 다 큰 아들을 집으로 들이는 남편 때문에 복수를 결심하는 재벌가 사모님 정혜(이요원), 겉보기엔 성공한 교직자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 인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미숙(명세빈), 그리고 소중한 아들을 위해 무릎 따위는 천 번이고 꿇을 수 있다는 생선가게를 하며 살아가는 도희(라미란). 이들이 모여 꿈꾸는 세상에 대한 복수라니. 

바람, 폭행, 갑질이라는 복수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공분의 요소들을 저마다 가진 캐릭터들이 ‘복수’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대하는 이야기에서 주목되는 건 복수의 통쾌함만이 아니다. 서로 복수를 해주기 위해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대전제는 사는 환경도 다르고, 빈부의 격차도 큰 이 여성들을 끈끈한 자매애로 묶어놓는다. 

생선가게를 하는 엄마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비린내 난다”며 왕따를 당하는 도희의 아들 희수(최규진)가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어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줘야할 처지에 몰린 도희. 그녀가 정혜와 미숙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벌이는 파티는 금세 이들 사이에 놓은 삶의 환경과 빈부 차이 같은 장벽을 허물어뜨린다. 도희의 집에서 소맥을 마시며 “언니”라고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귀여운 주정을 부리는 정혜와 그녀가 “진짜 언니 같다”고 말하는 미숙이 보여주는 자매애는 그 관계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면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이른바 ‘부암동 복수자 소셜 클럽’의 여성들이 처한 문제들이 자식들과도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혜의 집으로 갑자기 들어온 남편의 숨겨둔 아들인 이수겸(준)은 정혜의 자식은 아니지만 그녀가 처한 남편과의 문제로 얽혀있고, 미숙은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딸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정혜의 아들과 미숙의 딸은 도희의 아들과 같은 학교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부모들의 ‘복수’와 ‘연대’만큼 그 2세들의 관계 또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부암동 복수자들>은 지금의 흐름대로 일을 내고야 말까. 지상파 드라마들과 주중전쟁이 본격화된 현재, 이 드라마의 향배는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새롭게 tvN이 만들어낸 주중 9시 반 드라마 시간대라는 새로운 시간이 형성되게 되면 지상파는 긴장할 수밖에 없어서다. 지금으로서는 이 드라마의 파괴력이 만만찮게 보인다.

‘쌈마이웨이’ 김지원, 신데렐라 걷어차고 내 길 간다

“무빈 씨 생각엔 백마 태워 호강시켜 주길 바라는 여자들이 세상에 널렸을 거 같은가 본데 그 신데렐라는 이제 드라마에서도 안 먹혀요. 진짜 현실에선요, 자기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수두룩 짱짱하다고. 그니까 유리구두! 개나 주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최애라(김지원)은 박무빈(최우식)이 선물한 구두를 벗어던졌다. 사실은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을 사귀어온 박무빈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되게 해주겠다며 그가 사준 구두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갔던 길을 돌아온다. 그녀를 걱정해 찾아온 고동만(박서준)은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며 분노하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가슴이 떨린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보통의 멜로와 어떻게 결이 다른가를 정확히 보여준다. 최애라가 대사로 얘기했듯이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먹히지 않는 시대다. 그렇게 된 건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현실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 신데렐라가 가당키나 한 판타지인가.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의 전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안에 ‘갑질하는 현실’의 그림자를 제대로 드리워놓고 있어서다. 최애라도 고동만도 갑질을 당하는 건 ‘일’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아무렇게나 쓰다 버려지지만, 그런 갑질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박무빈이 최애라에게 이끌리게 된 계기를 보라. “걔가 좀 나대잖아요? 쥐뿔도 없는 놈이 항상 신나 있고. 그게 거슬린다.”고 말하는 박무빈에게서 느껴지는 건 가진 자의 오만과 독선이다. 그는 단지 고동만처럼 ‘없는 놈’이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꼴이 거슬려 그의 것을 빼앗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 

일터에서 청춘들이 일상처럼 만나는 갑질은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도 끼어들었다. 과거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부자들에 의해 신데렐라가 되는 여주인공을 통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면, <쌈마이웨이>는 보기 좋게 그 유리구두의 판타지를 부숴버린다. 그렇게 드러난 실체는 달달하기는커녕 너무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고동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 헤어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를 반복하며 그 지독한 현실의 신데렐라가 된 박혜란(이엘리야)은 뻔뻔하게도 다시 고동만 앞에 나타나 그를 자기남자로 만들려 한다. 그녀는 이제 고동만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건 그녀가 이제 돈이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그랬으므로.

하지만 고동만도 최애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고동만은 박혜란에게 자꾸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최애라는 박무빈이 만들어주겠다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던진다. 그래서 그들은 오롯이 맨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지켜낸다. 이 맨발의 청춘이 현실에 치여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못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건 그래서다. 

일도 사랑도 갑질 투성이인 세상, <쌈마이웨이>는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청춘이 더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 당당한 <쌈마이웨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깔려 있어 이 청춘멜로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들이 갑질 세상에 날릴 통렬한 돌려차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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