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네 역사에서 단종만큼 비극적인 왕이 있을까.
부왕인 문종을 일찍이 여의고 겨우 10살의 나이에 보위에 올랐다.
하지만 즉위 1년만에 숙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잃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이 모두 처형되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너구리도 졸도하는' 오지의 섬 청령포로 유배를 갔고
그 곳에서 죽음을 당했다.
역사에서 패자는 주목받지 못하는 법.
단종 역시 역사의 뒤안길에 안타까운 패자로 보여졌을 뿐,
새롭게 재조명되지는 않았다.
<관상> 같은 영화에서도 오히려 주목된 건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명대사를 남긴 수양대군이 아니었던가.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왜 이토록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이야기를 다시 가져왔을까.
그건 이 인물이 현 시대의 청춘들을 대변하는 듯 보여서였을 게다.
결국 단종의 비극은 권력욕에 눈이 먼 수양대군이나 한명회 같은 간신들이 저지른 반역으로
그 피해를 온통 남은 청춘들이 겪게 된 사건이다.
영화는 그래서 단종(박지훈)은 물론이고 그가 유배됐던 청평포 광천골의 청년 태산(김민)의 고초를 담는다.
사리사욕에 눈먼 잘못된 정치가 후대에게 어떤 비극으로 돌아가는가를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유약한 인물로만 막연히 그려지곤 했던 단종의 모습과 달리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은 때론 위엄있고 때론 자애로우며 때론 용맹한 왕으로 그려진다.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는 호랑이와의 에피소드가 상징적인데
아마도 수양대군을 표징하는 듯한 호랑이 앞에서도 "네 상대는 나야"라고 나서는 단종을 보고
사람들은 "역시 왕은 왕"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종만이 아니다.
그의 마지막을 지킨 실존인물 엄흥도(유해진)가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엄흥도는 단종이 사사된 후 버려진 시신을,
삼족을 멸한다는 수양대군의 엄포에도 굴하지 않고 수습했던 인물이다.
역사에 단 몇 줄로 남은 이 인물을 장항준 감독은 유쾌하고 사람냄새나는 어른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유배된 단종을 감시하라는 명을 받지만
그는 살뜰히 단종의 밥상을 챙기며 안위를 걱정하고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하는 것처럼 따뜻하게 보살핀다.

역사가 이미 스포인 비극이지만,
영화는 엄흥도라는 민초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인물을 세워
해학과 웃음 또한 빼놓지 않는다.
아마도 장항준 감독은 이 안타까운 청춘의 마지막 순간을
엄흥도와 그 마을 사람들의 사람냄내 나는 정으로
꼭 보듬고 싶었던 모양이다.
단종의 비극을 보듬어주는 엄흥도의 희극이 보는 이들을 웃다가 먹먹하게 하고
끝내 비극 앞에 눈물을 짓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는 두 개의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가 그 첫번째 질문이다.
이것은 현재에도 우리가 단종을 강등된 호칭인 노산군이 아닌 단종으로 부르고
대신 세조를 '수양대군'으로 부르는데서 그 답이 있다.
우리에게 진짜 왕은 단종이다.
두번째 질문은 "진정한 어른은 누구인가"다.
권력에 눈이 먼 한명회 같은 간신이 아닌
가난해도 가치있는 삶을 선택한 엄흥도가 바로 그 어른이다.
역사에 상상력을 살짝 더한 작품이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를 환기시키는 작품으로 그 울림이 적지 않다.
202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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