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일기’, 농사의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는 충분하지만

tvN 새 예능프로그램 <식량일기>가 첫 회에 주로 화제가 된 건, 과연 직접 알에서부터 부화시켜 키운 닭을 과연 잡아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즉 출연자들이 처음 상견례(?)를 할 때 사온 닭과 식재료들로 닭볶음탕을 해먹었을 때는 그토록 맛있기만 했던 그 음식을, 이제 그 재료들까지 직접 생산해 만들어먹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지자 과연 키운 닭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딜레마가 생겼던 것. 

이는 닭을 식량으로 보느냐 아니면 관계를 맺은 하나의 생명으로 보느냐의 차이였다. 내가 직접 키우지 않고 누군가 잡은 닭은 아무런 감정 교환이 없었다는 점에서 식량으로 볼 수 있지만, 알이 부화되어 나온 병아리들을 손수 키우며 그 과정을 들여다본 이들은 쉽게 그 닭을 식량으로 치부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중간에 갑자기 진중권과 최훈을 등장시켜 어찌 보면 ‘철학적’일 수 있는 이 딜레마를 두고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식량일기>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딜레마이기도 했다. 즉 알에서부터 병아리가 되고 또 병아리가 닭이 되는 그 과정을 담는 방식에 있어서,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재미 포인트가 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고 있는 ‘식량’이라는 관점을 보여주는 데는 불편함이 생겨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자라는 작물들이나 성장하는 닭을 그저 식량으로만 보며 무심하게 다룬다면 프로그램의 재미 부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화기에 달걀을 넣고 21일을 기다리며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탄생 과정은 신비하기까지 했지만 그렇게 감정을 부여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약간의 불편함은 피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 병아리가 닭볶음탕의 재료가 되는 걸 자꾸 상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현대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요리해 먹는 음식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길러진 것들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과물인 식량의 재료로서 닭고기를 요리해먹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그건 우리가 없는 것처럼 치부해온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어서라는 걸 이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가 충분해지는 만큼 <식량일기>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를 추구하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농사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다. 농사의 과정을 보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보는 재미를 주기는 쉽지 않다. 이건 이미 <청춘불패>나 <인간의 조건> 도시농부편 같은 프로그램들이 가졌던 딜레마이기도 했다. 다큐적인 의미는 충분했지만 그렇게 의미가 강해질수록 예능적인 재미를 추구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는 것.

과연 <식량일기>는 직접 키운 닭을 먹는다는 사실이 주는 딜레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농사라는 소재가 갖는 의미만큼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다큐적으로는 흥미로운 실험이지만 예능으로서의 의구심이 남는 대목이다.(사진:tvN)

지적인 재미 더한 예능, 낯설지만 시도는 긍정적

예능의 끝은 다큐라고 했던가. 최근 tvN의 예능 행보가 흥미롭다. 사실상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좋을 프로그램들이 예능의 외피를 쓰고 등장하고 있어서다. 금요일 밤에 방영되는 <숲속의 작은 집>이 그렇고, 월요일 밤에 새로 들어선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가 그렇다. 

<숲속의 작은 집>은 제목처럼 숲 속에 덩그러니 지어진 작은 집에서 일련의 ‘행복실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소확행’이니 ‘미니멀 라이프’, ‘오프 그리드’ 같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소재로 끌어와 ‘실험의 형식’으로 담았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고 아예 제작진이 못 박은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방한 형식과 내용을 갖고 있다. 

그나마 예능적인 면을 찾자면 박신혜나 소지섭이 이 행복실험의 피실험자로 들어왔다는 정도일 것이지만, 요즘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 역시 연예인들의 출연이 낯설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예능의 특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 이들이 숲속에서 벌이는 작은 행복실험들은 다큐멘터리적인 지적인 재미를 담고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무언가가 없는 곳에서 찾아내는 새로운 행복이란 도시적 삶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물론 눈보라가 치는 바람에 봄의 기분을 내기는 어려웠지만 봄나물을 직접 채취해 한 끼를 해먹는 과정은 소박하지만 도시에서 먹는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마음을 잡아끄는 면들이 있다. 그건 제철음식이 갖는 자연의 흐름과, 그 흐름에 순행하는 삶의 건강함이 언제나 마트에 가면 어떤 식재료도 살 수 있어 제철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도시의 삶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그런 빵빵 터지는 재미를 찾기는 어렵다. 그걸 반영하듯 시청률도 4.7%(닐슨 코리아)에서 시작했지만 2%대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애초부터 나영석 PD가 말한 것처럼 ‘심심한 프로그램’이고, ‘시청률 상관없이 만든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시청률로 평가할 수 없는 의미는 충분히 있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각들을 일깨우고, 지적인 재미를 더해준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다큐멘터리 실험은 충분히 성과가 있다고 보인다.

한편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제목은 예능스럽지만 실상 안을 들여다보면 세계 미식기행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이 프로그램 역시 그나마 예능적인 느낌을 주는 건 백종원이라는 캐릭터가 들어가 있다는 정도다. 하지만 이미 과거 EBS에서 미식기행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바 있는 백종원이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은 온전히 음식을 담은 다큐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첫 회에 방영된 청두에서 진행된 방송은 잘 만들어낸 다큐멘터리의 질감을 보여줬다.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백종원이 그 음식의 유래를 설명하는 동안 영상은 그 음식이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을 거쳐 만들어지는가를 다큐적 영상으로 포착해낸다. 심지어 컴퓨터 그래픽까지 들어가 설명되는 음식의 역사는 예능의 영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백종원은 특유의 캐릭터에 걸맞게 구수한 멘트를 이어가며 길거리에서 만나는 음식을 먹는 먹방과 그걸 만드는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재미를 준다. 하지만 역시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을 소개한다는 그 정보적인 재미다. 다분히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으로 지적인 재미를 더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라는 점이다.

역시 이 프로그램도 시청률은 높지 않다. 첫 회에 1.6%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새로운 시도가 가진 의미는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사실 최근 예능의 트렌드가 되어 있는 관찰카메라라 불리는 리얼리티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장르다. 그만큼 예능과 다큐의 영역은 점점 그 차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경계를 지워가는 중이다. 그러니 tvN 예능의 다큐 시도는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오락채널로서의 tvN이 그간 교양 프로그램을 제대로 세울 기회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다큐와 손잡은 예능 프로그램은 tvN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보인다. 나름 tvN표 교양이 저 <알쓸신잡>이나 <어쩌다 어른>에 이어 조금씩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어쩌면 예능 프로그램의 영역확장으로 일반화될 가능성이 짙다. 앞으로 예능과 다큐는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질 테니 말이다.(사진:tvN)

박신혜·소지섭의 ‘숲속의 작은집’, 이 기분 좋은 심심함이란

심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한 것들이 많았다. 다만 우리가 도시생활에서 했던 그런 일들이 아니었던 것일 뿐. tvN 예능 <숲속의 작은집>은 도시생활에서 너무 많은 소리와 빛과 욕망들 때문에 가려졌던 또 다른 소리와 빛 그리고 평온함을 우리 앞에 보여줬다. 심심하다는 건 도시생활의 기준으로 말했을 때 그랬다는 것이지만, 그 곳에서는 심심함을 넉넉히 채워주는 또 다른 즐거운 감각들이 깨어났다. 

‘실험’, ‘다큐멘터리’, ‘피실험자’ 등등. <숲속의 작은집>은 그 스스로도 기존 예능프로그램과는 너무나 다른 것들을 담는 것에 대한 제작진의 불안감을 그 표현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이 불안한 것뿐이지, 그 길에 새로운 설렘이 있다는 걸 이 실험적인 프로그램은 충분히 보여줬다.

첫 날 주어진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실천들은 그래서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가진 것들을 꼭 필요한 것만 빼고 덜어내고, 밥 한 그릇 반찬 하나로 저녁 한 끼를 하는 체험은 어째서 우리가 비워내야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질 수 있는가를 일깨워주는 것들이었다. 너무 많은 걸 갖고 있을 때는 그 가진 것들의 소중함이나 그 고유의 가치들을 느끼기 어려운 법이다. 옷도 그렇고 먹을 것도 그렇다. 

하지만 밥 한 그릇 반찬 하나를 놓고 대하는 저녁 밥상은 그 밥과 반찬이 주는 맛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많은 반찬들이 가득한 밥상 위에서 그 맛들의 향연을 누릴 때는 정작 반찬 하나가 가진 맛을 제대로 누리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밥 한 그릇만을 오롯이 집중해 먹게 되면 오래 씹을수록 올라오는 밥 자체의 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이 실험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박신혜와 소지섭을 캐스팅한 점이었다. 두 사람은 성향도 너무 달랐고, 또 각각 다른 공간, 다른 날씨 속에서 이 숲속의 시간들을 경험했다. 그들의 성향이 다르다는 건 각각 이 숲속의 작은 집에 가져온 가방의 크기에서부터 나타났다. 박신혜가 꽤 무거워 보이는 트렁크 두 개를 낑낑대며 가져왔다면 소지섭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볍고 단출한 가방 하나가 끝이었다. 

트렁크 가득 채워온 옷가지며 먹을거리들을 소개하는 박신혜와, 어쩌면 이런 단출한 삶 자체가 너무나 익숙해 보이는 듯한 소지섭은 그래서 어떤 비교하는 재미를 선사했다. 밥과 반찬 하나로 저녁을 해먹으라는 미션에 울상이 되어버린 박신혜가 도시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하게 만들었다면, 그 미션에도 “배가 고프면 먹겠다”는 소지섭의 모습은 이 오프그리드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줬다.

그래서 깨어난 건 도시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들이다. 너무 많은 빛 때문에 사실은 하늘에 지천을 깔려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별을 보며 행복해하고, 너무 많은 소리들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했던 빗소리, 바람소리, 개울가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 가득한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청각에 집중하며 시냇물 소리를 찾아가는 소지섭의 발걸음은 그래서 그 기분 좋게 숲이 녹아든 듯한 축축한 공기와 청량한 물소리가 더해져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스마트폰이 어디든 우리를 연결해주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바람소리와 물소리, 빗소리를 들려주는 앱을 다운로드에 듣곤 한다. 가끔은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 깊은 고요 속에서 잃어가던 나의 감각을 다시 찾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본래는 자연의 일부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낯선 도시 속에 살아가다보니 잊고 있던 우리 자신. 우린 지쳐있었던가 보다. <숲속의 작은집>의 기분 좋은 심심함에 이토록 빠져드는 걸 보니.(사진:tvN)

<배우학교>, 다큐 찍은 박신양, 예능 하려던 유병재

 

그저 그런 연기 오디션이나 연기를 소재로 한 예능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졌던 시청자들이라면 tvN <배우학교>의 첫 방송이 사뭇 낯설게 다가왔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 출연한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물론 스스로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건 그만한 용기를 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이 예능이라는 점은 이만큼의 진지함과 압박감을 요구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첫 회만 두고 얘기하자면 <배우학교>는 예능이라기보다는 다큐에 가까웠다. 박신양은 진심으로 그 학교를 찾아온 출연자들에게 연기를 가르쳐주려 했고 그래서 그 첫 번째 관문으로서 자기소개 시간에 왜 연기를 하려는가에 대한 압박질문을 던졌다. 처음 자기소개를 하러 나온 남태현에게 집요하게 왜 연기를 하려는가를 물었고, 자꾸만 머뭇거리며 회피하려 하는 속 얘기를 결국은 꺼내게 만들었다. 자신의 연기력 논란에 드라마 제작진들부터 연기자들까지 모두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고 최소한 그런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토록 압박감과 긴장감을 유발하고 첫 모습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눈물까지 흘리는 이 장면은 <배우학교>가 향후 어떤 모습의 프로그램이 될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박신양의 어찌 보면 가혹하다싶을 정도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 독한 질문들은 일종의 화두였다. 지금껏 어찌어찌해 캐스팅된 연기를 하기는 했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들. 연기란 무엇이고 나는 왜 연기를 하려하는가에 대한 연기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유병재는 아마도 자신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해왔던 대로 이 프로그램 역시 배우수업이라는 상황에서의 재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병재의 이 생각이 깨지는 건 단 몇 분 간의 질문세례면 충분했다. 박신양에게 심지어 자신이 선생님으로서 합격시켰다는 식의 무례한 얘기까지 꺼낸 건 분명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 말은 웃음이 아닌 무거운 분위기로 돌아왔다. 결국 거듭된 박신양의 질문 속에 압박감을 느낀 유병재는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유병재를 데리고 침대가 놓여져 있는 숙소로 간 박신양은 그를 다독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게 해주었고, 그날 밤 그에게 두 번째 주어진 자기소개 시간에는 훨씬 더 차분한 목소리로 왜 연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게 했다. 발표하는 것 자체가 훨씬 편해진 그에게 박신양은 연기 또한 그렇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잘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박신양이 압박질문을 통해 하게 했던 자기소개 시간은 사실은 여기 참가한 출연자들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고 또 단단한 껍질을 깨고 그 속살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연기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면 먼저 자신을 제대로 보고 인정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박신양의 첫 수업은 그래서 연기자라면 가져야 될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끄집어낸 시간들이 될 수 있었다.

 

<배우학교>는 결코 웃기려는 예능이 아니라는 것을 첫 방송은 보여줬다. 예능을 하려던 유병재를 진지한 연기의 세계로 이끄는 박신양의 진심이 느껴졌다. 물론 상황 자체가 웃음을 유발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것이 목적이 되지는 않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배우학교>는 웃음보다는 눈물과 땀이 더 느껴질 예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가장 큰 이유다

<배우학교>의 박신양, 연기에 대한 진정성 보여줄 수 있을까

 

박신양과 예능. 어딘지 낯선 조합이다. tvN이 새롭게 시도하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 <배우학교>가 시작 전부터 관심을 끌어모은 건 바로 이 낯선 조합에 대한 호기심 덕분이다. 왜 박신양은 <배우학교>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선택했을까. 지금껏 해왔던 배우로서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실로 이례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박신양이 누군가. <편지>, <약속> 같은 영화로 또 <파리의 연인>, <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같은 드라마로 그 누구보다 화려한 필모그라피를 보여주는 배우다. 물론 최근에는 2011년 작품인 <싸인> 이후에 이렇다 할 작품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연기력에 있어서 누구나 인정했던 배우가 바로 박신양이다.

 

하지만 박신양은 2007<쩐의 전쟁>에서 이른바 고액 출연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쩐의 전쟁>이 인기를 끌면서 연장방송된 번외편에서 회당 155백만 원의 출연료로 추가계약을 한 사실은 당시 제작사였던 이김프로덕션과의 법정 분쟁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결국 밥정은 박신양의 손을 들어줘 이김프로덕션이 추가 계약대로 386십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문제는 이 고액의 액수가 만들어낸 적지 않은 파장이었다.

 

드라마 제작사 협회가 나서 박신양이 거액의 출연료 요구로 드라마 발전을 방해하고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명목으로 박신양의 드라마 출연을 무기한 정지하기로 의결했고, 그 액수가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박신양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가워졌다. 결국 이 여파로 박신양은 2011<싸인>에 출연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안방극장에 얼굴을 내밀 수가 없었다.

 

사실 연장방송을 한 것이 더 잘못이고, 거기서 추가계약을 했다면 그 액수대로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박신양에게 이러한 계약이나 출연료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에 대한 진정성이 이 논란에 의해 상당히 흐려져 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진짜라기보다는 이미지의 문제다. 그런 돈의 이미지가 배우로서 온전히 서 있던 박신양에게 드리워지게 됐다는 것.

 

이런 일련의 흐름을 통해 볼 때 박신양의 <배우학교>라는 예능 프로그램 선택은 꽤 괜찮은 행보라고 보인다. 다른 예능도 아니고 연기로 소재로 하는 예능이 아닌가. 게다가 박신양이 제작발표회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분석해보면 그는 결코 이 프로그램을 예능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연기에 대한 진심을 담아서 이 프로그램을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학교>는 그런 점에서 박신양의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 출연하는 이른바 발연기제자들의 진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여기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발연기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 정도로 드러내놓겠다는 건 진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의 다른 말이 아닐 것이다.

 

과연 <배우학교>는 박신양과 그 제자들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담당 PD인 백승룡 PD는 이 프로그램이 예능인지 드라마인지 다큐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바로 그 헷갈리는 지점에 그 진정성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배우학교>도 또 박신양도.

<도시의 법칙>의 딜레마, 에일리라는 가능성

 

문의 기타 연주에 맞춰 에일리가 살짝 Tamia‘Officially missing you’를 불렀을 때 <도시의 법칙>의 새로운 가능성도 살짝 드러났다. 브르노 마스의 ‘When I was your man’<겨울왕국>‘Let it go’를 부를 때는 도시에서 음악과 같은 문화가 왜 필요한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도시생활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음악의 힘이었다.

 

'도시의 법칙(사진출처:SBS)'

뮤즈의 ‘Supermassive Blackhole’ 반주에 즉석으로 도시의 법칙 테마송을 에일리가 선창하고 즉석에서 벌어진 잼 콘서트. 정경호가 들고 온 냄비는 트라이앵글이 되고, 백진희는 아몬드 박스로 박자를 맞추며, 김성수는 차임벨을 대신하는 자전거 휠을 연주하고 에일리는 생수통을 젬베 삼아, 이천희는 냄비 뚜껑을 심벌즈 삼아 즉석에서 벌인 잼 콘서트는 그것이 도시가 주는 매력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김성수가 에일리의 노래를 들으며 뉴욕 와서 귀가 호강한다고 한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도시생존이라는 미션을 안고 뉴욕까지 왔지만 사실상 길거리에 버려진 가구들을 주워오고, 공병을 모아 잔돈을 만들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이들의 삶은 도시생활의 현실 그 자체다. 도시 생존의 바탕은 뭐니 뭐니해도 결국은 이다. 돈이 없다면 먹을 것도 필요한 물품도 구입할 수 없는 곳이 도시니까.

 

이것은 물론 <도시의 법칙>이 탐구하는 도시 생존의 진면목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으로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시청자들이 도시를 통해 보고 싶은 장면은 아닐 것이다. 특히 뉴욕까지 날아갔다면 뭔가 특별한 뉴욕 체험에 대한 판타지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 <도시의 법칙>의 딜레마가 있다. <도시의 법칙>은 도시생존의 현실을 보여주려 뉴욕에서 사실상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시청자들이 보고픈 장면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도시의 법칙><정글의 법칙>과 다른 점이다. 정글이라면 힘겨워도 한번쯤 꿈꾸고픈 로망이 있는 공간이다. 야생의 자연 그대로라는 것은 도시의 편리함이 사라진 것의 불편함은 있을지 몰라도 또한 없어서 좋은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불빛이 없어 별빛이 더 빛나는 것처럼. 하지만 도시는 다르다. 도시는 없는 것으로 좋아질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사실상 도시생존의 핵심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점이다. 돈벌이는 로망이 될 수 없다.

 

<도시의 법칙>은 그래서 도시생존을 강조하다 보면 예능보다는 다큐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요즘처럼 예능과 다큐의 경계가 얇아진 시대에 이런 프로그램의 성격이 잘못됐다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예능을 보는 마음과 다큐를 보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능이 기대하게 만드는 어떤 즐거움과 판타지는 다큐적인 현실의 처절함에 자칫 묻힐 위험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헬퍼로 에일리가 투입된 것은 <도시의 법칙>이 다큐에 빠지지 않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자못 진지하고 때로는 처절한 <도시의 법칙>을 훨씬 즐겁고 때로는 로망을 느끼게끔 만드는 건 바로 에일리가 보여준 문화의 힘이다.

 

굳이 문화가 주는 아련한 즐거움의 로망을 던지기 위해 뉴욕의 화려함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뉴욕의 느낌이 묻어나는 음악과, 아침의 모닝커피 한 잔, 공원에서의 망중한이나, 영화 한 편의 즐거움 그리고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패션 피플의 의상을 통해서도 뉴욕이란 도시가 주는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니. <도시의 법칙>은 에일리가 잠깐 음악을 통해 보여준 것이 무엇인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니 세월호의 참상 실감

 

JTBC<마녀사냥> 대신 세월호 참사 관련 소재로 특별 제작된 <다큐쇼>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를 방영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우리의 시선은 줄곧 TV의 상단 우측이나 좌측에 쏠려 있었다. 거기에는 실종자 수와 사망자 수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바뀔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허물어졌다.

 

'다큐쇼(사진출처:JTBC)'

하지만 숫자는 폭력적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정부의 실종자 발표는 계속해서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희망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가 곧 정정되었고 그 숫자도 계속 바뀌었다. 그 때마다 정부의 변명은 계산 착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산 착오에 실종자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에게는 그 숫자 하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기 때문이었다.

 

<다큐쇼>에서 마련한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세월호 참사라는 막연한 문구 아래 가려진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간다. 그 배에는 두렵다는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준 의로운 분도 타고 있었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받고 구조된 친구는 사망자로 돌아온 친구 앞에서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그 분의 가족들은 애써 의연하려 노력했다. 자식의 정의로운 선택 앞에 입을 앙다물었지만 그래도 보내는 마지막 길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배에는 마지막 순간에 구조된 부부도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부부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모든 시간이 거기에 멈춰 있었다. 아내는 충격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남편은 그 아내를 어쩌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 구조되는 순간 부모와 형제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8세 아이를 함께 탈출시키며 그 부부는 또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죽음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배에는 중국인 부부도 있었다. 착실하게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다는 그 부부는 그러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 부부의 가족들은 외국인이라고 확인도 되지 않는 상황에 놀라움과 분노를 표했다. 마지막 순간 배에 들어가는 그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며 눈물을 훔치는 유가족들은 결국 이 부부의 영혼결혼식을 치러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배에는 승무원은 맨 마지막이라고 외치며 끝까지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박지영 승무원도 있었다. 한 생존자는 그녀가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또 자신을 도와주어 살아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제 겨우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떠난 그녀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진정한 선장이었다는 메모를 남겼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무수한 숫자들과, 막연한 세월호 참사라는 문구가 아니라 그 숫자와 문구 뒤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오열이 남겨져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숫자가 아닌 그 분들의 면면과 마지막 행적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일. 그것이 아프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해야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침몰한 배가 아니다. 숫자가 아니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안타까운 <송포유> 논란, 좀 더 섬세한 배려가 있었다면

 

추석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송포유>는 애초의 기획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나듯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처럼 ‘일진 미화’ 같은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목적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

 

'송포유(사진출처:SBS)'

오히려 <송포유>는 이런 사회적인 마찰이나 불편한 시선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지는 기적의 ‘하모니’를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합창을 소재로 한 여러 프로그램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목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룰 때 그것은 그 자체로 소통의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게다.

 

이런 프로그램이 주는 감동을 우리는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이나, 영화 <하모니> 그리고 지난 2011년 12월에 <SBS 스페셜>에서 방영되었던 ‘기적의 하모니’를 통해서도 본 적이 있다. 특히 ‘기적의 하모니’에서 김천 소년교도소 소년수형자 합창단의 멘토로 출연했던 이승철은 당시에 그가 느꼈던 소통의 경험이 이번 프로그램 출연의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좋은 의도와는 별개로 <송포유>는 불편한 방송이 되어버렸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송포유>가 영화 같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미셸 파이퍼가 교사로 출연했던 <위험한 아이들> 같은 영화는 그것이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라는 허구적 장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함보다는 감동을 안겨준다.

 

하지만 <송포유>는 다르다. 거기 출연하는 아이들이 지금은 달라졌다고 해도 과거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고통으로 각인된 실제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주목된다는 것 자체가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모순처럼 여겨질 수 있다. 가해를 한 아이들은 방송에 나와 주목받고 심지어 폴란드 합창대회에 나갈 기회가 주어지지만 정작 피해를 입은 학생들은 그걸 바라봐야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송포유>가 서 있는 예능과 다큐 사이의 어정쩡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어찌 보면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는 문제 학생들을 다루면서 <송포유>는 다큐적인 깊이로 들어가기보다는 예능적인 가벼움으로 건드린 면이 있다. 즉 이렇게 문제 학생들이 되어 끝단에 몰려 있는 아이들이 왜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부모와 사회의 책임은 없는지, 피해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은 없는지 그래서 그 아이들은 과거를 후회하는지 등등 다차원적인 접근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예능으로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능적인 차원으로만 접근해 아이들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들만을 보여준다면 거기에는 왜 이들이 방송에까지 나와 기회를 얻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가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송포유>는 2편까지 마치 조폭처럼 험악한 아이들과 그들이 반항을 하면서도 합창 연습을 하는 장면들만 들어갔을 뿐, 그들의 내면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송포유>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이 그랬듯이 꽤 긴 호흡으로 접근해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필요하다면 피해 학생들의 이야기까지 같이 다뤄졌다면 <송포유>는 진정한 기적의 소통이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 3회 분량으로 다뤄지면서 이런 세세한 이야기들은 그저 훑고 지나가버린 상황이 되었다.

 

다큐와 예능을 퓨전하는 것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지만 이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때로는 지나친 미화나 경직성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퓨전이 가진 위험성이기도 하다. <송포유> 논란은 바로 이 예능과 다큐가 접목되는 최근 트렌드가 어떻게 접근되느냐에 따라 얼마나 민감해질 수 있는가를 드러낸 안타까운 사례가 되었다.

 

물론 방송이 교조적일 필요는 없다. 또 잘못을 저지른 문제 학생들이라고 해서 그저 방치하고 배제하며 때로는 격리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즉 이 문제를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으로 보는 시각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모든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송이라는 결과다. 문제 학생들뿐만 아니라 피해 학생들까지 고려한 좀 더 섬세한 배려와 사회적인 접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진짜사나이>의 가치, 군대와 일반인의 소통에 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진짜사나이>는 진짜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군대를 다녀왔거나 아직 군대에 가보지 않았던 사나이들이고(심지어 외국인도 있다) 군부대에서 일반사병들과 실제로 일주일씩 머물며 병영을 체험한다. 방송은 그 체험을 포착해 예능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진짜 날 것의 군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된다. 군 기밀이라도 유출된다면 큰 일이지 않은가.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진짜사나이>의 내무반은 그래서 특별히 방송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김수로와 샘 해밍턴, 류수영, 서경석, 손진영, 그리고 장혁과 박형식이 일반사병들과 함께 일주일 간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특별한 내무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서 함께 일주일을 지내는 일반사병들도 선별된 병사들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특별하게 마련되고 통제되지 않는다면, 방송은 그 자체로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출연자들이 진짜 군인이 아니고, 내무반이 실제 내무반이 아니며, 일반사병들도 선별된 병사라고 해서 이것이 전부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함께 유격훈련을 뛰면서 헬기 레펠을 하고 화생방 훈련을 하거나 행군을 하면서 흘린 땀과 눈물을 어찌 가짜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진짜 군인들과는 다소 다른 체험일 수 있다는 것일 뿐,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짧게나마 군대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진짜 체험일 것이다. 군 소재 예능을 하기 위해 연예인이 실제로 군대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것은 <진짜사나이>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그것은 예능이 아니라 다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다큐는(실제로는 르뽀에 가깝겠지만) 아마도 비방용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을 게다. 군 기밀에 가까운 장면들도 많을 테고, 때로는 군대의 내밀한 사병들 간의 마찰과 충돌도 적지 않을 게다. 그것을 방송으로 다 내보내다보면 그것은 리얼리티를 빙자한 막장 방송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진짜사나이>가 보여주려는 것은 도대체 뭘까. <진짜사나이>는 예능이라는 본분에 맞게 적절한 선까지의 ‘군대 체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체험에 들어간 연예인들의 소임은 자신이 진짜 군인임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처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며 때로는 그 와중에도 어떤 보람과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진짜 군인일 수는 없다. 일반인으로서 군대 체험을 하는 것일 뿐.

 

<진짜사나이>의 방송 프로그램적인 가치는 바로 이 일반인과 사병들이 한 막사에 들어가 일주일을 함께 생활하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군인과 일반인들을 한 곳에 넣고 벌어지는 화학작용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너무 다른 존재처럼 여기며 심지어 군바리라고 비아냥대던 그들이 사실은 우리의 동생들이고 아들들이며 오빠들이라는 사실이다. <진짜사나이>를 통해서 군대는 그래서 좀 더 우리에게 가까운 곳이 된다.

 

군대가 비리나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곳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폐쇄적인 집단으로서만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기 싫은 곳이지만 의무이기 때문에 억지로 가야하는 곳. 그래서 간 사람은 마치 다른 세계로 간 듯이 치부하며 그 속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들도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그저 수긍하던 그런 곳이 군대가 아니었던가. 물론 군 당국이 개입하기 때문에 좋은 면만을 끄집어내고 그것이 전부인 양 호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믿어줄 만큼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다.

 

국가 안보와 밀접한 군 기밀이 아니라면 이제는 군대도 좀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한 첫 발은 군대를 좀 더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곳으로 인식시키는 일이다. 이것이 <진짜사나이>가 가진 목적이며 의도이고 가치다. 따라서 <진짜사나이>는 실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바람직한 진짜 군인의 위상과 이미지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인 것만은 분명하다. 만일 이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주고, 그래서 대중들이 좀 더 군대에 관심을 갖게 되며 그로 인해 군대 문화에도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정글> 병만족의 생고생, 재미는 없는 이유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편에서 병만족의 웃음을 찾는 것 쉽지 않다. 이들이 서 있는 공간이 웃음을 허락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말 그대로 고행의 연속이었다. 고산병으로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한 그 곳을 20킬로가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극도로 예민해진 병만족이 말다툼을 하는 장면은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고투를 벌이고 있는가를 말해주었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그 와중에도 김병만의 희생과 도전정신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오지은의 무거운 배낭까지 대신 짊어지고 오르는 모습은 마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보려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목적지인 폭순도 호수까지 가까스로 올라가 그 절경 앞에 감탄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산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정준은 숨을 쉴 수가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날 것의 생고생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그래서 그 땀이 보여주는 진정성이 분명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그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던 즐거움과 재미는 상대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편은 마치 등산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깨알 같은 재미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한 편 내내 산을 오르고 오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병만족의 모습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번 히말라야편은 현지 적응 훈련으로 들어간 바르디아 정글에서도 생각만큼의 재미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야생동물 관찰이라는 새로운 재미요소가 있었지만 그것이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지루해진 것도 사실이다. 야생의 뱅갈호랑이를 보는 장면은 물론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 과정은 오로지 기다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 먹거리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척박한 환경이기 때문에 야생동물을 찍은 대가로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이 반복됐는데 이것 역시 <정글의 법칙> 특유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했다.

 

그나마 이번 편에서 발견한 웃음은 안정환이었다. 그는 깨알 같은 농담으로 고생하는 병만족들의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히말라야편은 <정글의 법칙> 특유의 다큐와 예능 사이에 놓여진 재미가 상당부분 사라져 버렸다. 사냥의 재미도 찾기가 어려웠고 힘겨운 와중에도 즉석에서 상황극을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웃음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숨어서 야생동물을 내내 관찰하거나, 하루 종일 산을 오르는 장면만이 반복되서 나온 느낌이다.

 

이것은 히말라야라는 공간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다. 극에서 극으로 바뀌는 기후와 그냥 서 있는 것조차 힘든 고산지대의 특성이 웃음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라는 점이다. 결국 히말라야라는 공간은 그림은 멋있지만 다양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예능의 공간으로서는 너무 혹독했다는 점이다.

 

<정글의 법칙>이 다큐와 변별력을 가질 수 있는 건 거기에 여유와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예능적인 포인트가 없다면 굳이 <정글의 법칙>을 볼 까닭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 뉴질랜드편에서 불거져 나온 진정성 논란에 대한 해답으로서 히말라야 같은 극한의 오지를 선택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글의 법칙>만이 갖고 있는 다큐와 예능 사이에서 벌어지는 재미는 담보할 수 있었어야 한다.

 

<정글의 법칙>은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의 정글 속으로 뛰어들면서도 그 안에서 또한 도시인들이 느끼기 어려운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전해주었던 프로그램이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은 불편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누리게 되는 관계의 해방이나 자유 같은 즐거움이 병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정글의 법칙>이 아니었던가. 극한의 오지에서 생고생을 하는 병만족의 노력은 그래서 그 진심이 전해지지만, 안타깝게도 재미는 그다지 없는 편이다. 다큐가 아닌 예능 <정글의 법칙>이 살아나야 이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매력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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