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누나’, 캐스팅만으로도 꿀 떨어지는 설렘이라니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예쁜 누나’ 윤진아(손예진)와 ‘밥 사주고픈 동생’ 서준희(정해인)가 함께 웃으며 거리를 걷는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브루스 윌리스의 ‘Save the last dance for me’는 이 장면을 하나의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버린다. 

누나 동생의 나이 차가 있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함께 걷는 그 장면에서 서준희의 손이 윤진아의 어깨 위로 가려다 멈추며 어색하듯 엉뚱한 포즈를 취한다. 그 장면이 너무나 풋풋하게 다가온다. 이미 연애 경험들이 있을 법한 그들이지만 그 장면에는 마치 이제 막 첫사랑을 경험하는 듯한 이들의 풋풋함이 담겨진다. 

그 장면을 더 설레게 만드는 건 그저 모습만 봐도 마음이 이끌리는 두 사람의 표정들이다. 윤진아 역할을 연기하는 손예진은 나이가 무색한 청순한 얼굴에 특유의 눈웃음을 날린다. 서준희 역할의 정해인은 하얀 치아를 슬쩍 드러내며 미소를 지을 때마다 소년 같은 매력이 터진다. 물론 해맑은 소년의 얼굴에서 ‘예쁜 누나’에게 지분거리는 전 남자친구 앞에서는 남자의 얼굴로 바뀌지만.

올드 팝을 깔아 넣은 그 장면 속에서 느껴지는 건 조금은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더 아련해지는 ‘옛날 식 사랑’의 기억들이다. 어쩌면 너무나 쉬워져 버린 스킨십과 감각적인 삶이지만, 윤진아와 서준희가 영화관에서 팝콘을 나눠먹으며 손길이 닿지 않을까 신경 쓰는 모습은 더더욱 마음을 잡아끈다. 자동차에서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는 손길이 주는 이토록 강렬한 설렘이라니.

서로에게 마음이 이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이 차와 누나, 친구 관계로 얽혀있어 좀체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두 사람. 그래서 서준희는 윤진아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다 문득 말을 돌려 “매일 밥 사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자 윤진아는 자기가 언제 밥 안 사준 적 있냐고 답한다. 그들은 ‘밥 사주는 걸’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건 사실상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지 못하다 직장 동료인 강세영(정유진)이 서준희에게 작업을 걸려고 하자 갑자기 서준희의 손을 꼭 잡는 윤진아의 모습은 그 어떤 멜로의 스킨십보다 더 두근거리는 장면으로 다가온다. 이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그 꿀 떨어지는 눈웃음과 미소를 나누며 쉽지 않은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서준희의 누나 서경선(장소연)이 윤진아의 절친이라는 사실이나, 서준희와 윤진아의 동생 윤승호(위하준)가 친구라는 사실, 그래서 윤진아의 부모 또한 서준희를 잘 알고 있다는 그런 관계들은 이 두 사람만의 시간이 주는 달달함과 팽팽한 갈등을 만들어낸다. 과연 이들은 이 갈등들을 넘어서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요즘처럼 본격 멜로가 쉽지 않아진 상황 속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도리어 그 정통 멜로의 구도를 가져왔다. 물론 안판석 감독 특유의 현실감각이 넘쳐나는 영상과 상황들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이들의 멜로는 그 자체로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건 설렘 가득한 멜로 그 자체다. 그리고 이 본격 멜로에 한껏 힘을 부여하고 있는 건 손예진과 정해인이라는 배우라는 걸 부정하긴 어려울 것 같다. 손예진의 눈웃음과 정해인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사진:JTBC)

‘예쁜 누나’, 팍팍한 일상 손예진, 그래서 더 간절해지는 설렘 정해인

어째서 그저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평범한 농담을 나누며 집까지 바래다주는 그 일상을 보여줄 뿐인데 이토록 설레는 걸까. 새로 시작된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는 누나 동생의 관계처럼 등장하지만 벌써부터 왠지 모를 멜로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 보이는 눈빛과 작은 손짓들까지 누나 동생의 관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이야기는 그 겉면만 보면 그리 특별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즉 남자친구와 헤어진 윤진아와 그를 위로해주는 절친 서경선(장소연) 그리고 그의 동생 서준희가 자연스럽게 누나 동생 관계로 엮어져 있고, 윤진아와 서준희의 관계가 조금씩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다. 흔히 멜로에서 보게 되는 우연적이거나 운명적 만남 같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만남도 없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흔한 만남 같은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남다른 설렘으로 다가오게 되는 건 윤진아가 겪고 있는 일상의 피로함이 안판석 감독 특유의 디테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만남이 곤약 같다’며 이별을 통보하는 남자친구에, 가맹점 관리를 하며 벌어지는 업무 스트레스들과 술자리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들까지 마치 우리가 겪는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디테일들이 담기면서 윤진아가 가질 삶의 피로를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공감대와 그에 대한 일종의 연민 같은 시선을 고스란히 대리해주는 인물이 바로 서준희다. 

오픈 기념 선물이 도착하지 않아 가맹점으로부터 호된 곤욕을 치른 윤진아는 사실 그 실수가 남호균 이사(박혁권)가 결재를 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지만 그걸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잘못으로 떠안았다. 그것이 회사생활이기 때문이다. 더러워도 버티기 위해서는 상사의 실수를 덮고 자신의 실수로 떠안는 것.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상한 윤진아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서준희가 있다. 밥 사달라는 핑계로 만난 윤진아를 만난 서준희는 점심에 “금기를 깬다”며 와인을 시켜 마시고 계산도 자신이 한다. 그러니 지친 윤진아는 금세 점심 한 끼에 마음이 풀어진다. “덕분에 맛있게 분위기도 밥도 잘 먹었다. 금기도”라는 윤진아의 말에 “맛을 봤으니 윤진아 이제 큰일 났다”고 하는 서준희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그의 존재가 윤진아에게 이미 특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사들의 성희롱이 난무하는 회식 자리의 피곤을 그대로 떠안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또 일을 하는 윤진아는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춘다. 마침 클럽에 놀러간다던 서준희의 이야기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았을 테고, 그렇게라도 자신을 위로하는 몸짓을 해보고 싶었을 터다. 그런데 그 순간 윤진아를 다시 찾아온 서준희가 그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저 시선을 주고 따뜻한 미소를 짓는 것뿐이지만 그 장면에 시청자들은 설렐 수밖에 없다. 피곤한 일상을 누군가 바라봐주는 그 따뜻한 시선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설렘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 제목처럼 멜로가 일상에 닿아 있다. 그들의 멜로는 엄청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보여주는 판타지적인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루어질 수 없어 목숨을 거는 운명적 사랑도 아니다. 그저 ‘밥 잘 사주는’ 일상에서부터 비롯되어 생겨나는 사랑의 감정을 잔잔한 디테일 속에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설렘은 깊어진다. 손에 닿을 듯한 일상의 공감이 보다 강력한 현실감을 주기 때문이다.(사진:JTBC)

‘윤식당’, 익숙한 듯 낯선 나영석 PD의 명민한 선택

‘나도 저런 데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아마도 tvN 새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을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지도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어느 한적한 섬. 유럽과 호주에서 온 여행자들이 북적대며 오로지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 그 곳에서 작은 한식당을 연다는 건 나영석 PD가 기획의도로 밝힌 것처럼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일이 아닐까. 

'윤식당(사진출처:tvN)'

여기서 키워드는 이 복잡한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고, 낯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가끔 삶이 지긋지긋해지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얘기하게 될 때, 우리는 이 곳을 떠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진다. 사실 그건 ‘이번 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곳’이 잘못됐을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생을 가져다줄 기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못한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어떤 메뉴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며 점점 빠져든 <윤식당>의 사장 윤여정과 그녀를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챙기는 밝고 맑고 명랑한 정유미, 그리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의외로 사려 깊고 그래서 어딘지 든든함을 주는 이서진. 이런 구성원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이니 함께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이겠나. 

나영석 PD는 명민하게도 이렇게 낯선 곳에서 식당을 열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마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처럼 그려냈다. 제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불고기 하나를 메인으로 만들어 덮밥, 면, 햄버거로 만드는 건 할 수 있을 게다. 게다가 불고기는 호주인들 같은 경우에는 ‘코리안 바비큐’로 이미 유명해진 메뉴다. 쉽게 할 수 있지만 그 효과도 좋은 <윤식당>의 기본 메뉴는 그래서 이들의 ‘개업’에 시청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정착이 그간 나영석 PD 예능의 핵심이었다면 <윤식당>은 이 두 가지를 엮었다. 나영석 PD표 예능의 또 다른 반복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윤식당>에는 기존 예능들과 달리 ‘개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집어넣었다. 힐링 예능으로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왔던 나영석 PD표 예능은 그래서 이 ‘개업’이라는 장치를 통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긴장감을 더했다. 

게다가 <윤식당>은 윤여정, 이서진, 정유미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곳을 찾는 손님들과 벌어지는 교감이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 된다. 그들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보면서 느낄 어떤 보람 같은 것들은 <윤식당>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가 아닐 수 없다. 일에 있어서 보람 같은 걸 느껴본 게 도대체 언제였던가 싶은 분들에게는 더더욱. 

손님이 얼마나 올 것인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고 너무 안와도 걱정이라는 윤여정에게 이서진은 긍정적인 비전을 내놓는다. 생각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올 것 같다는 것. 그 말에 윤여정은 기분좋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윤식당 개업 바로 전날 교차하는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개업일 손님을 기다리며 한없이 물을 들이키는 윤여정의 그 기분 좋은 긴장감. 그래도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주는 즐거움. <윤식당>은 나영석 PD표 예능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가져와 또 다른 세계를 열고 있다. 그런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공항 가는 길>, 공간이 주는 위안과 기억들

 

비행이 있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최수아(김하늘)는 서도우(이상윤)가 보낸 메시지를 받는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것. 그런데 그 때 딸 효은(김환희)에게서 전화가 온다. 텅 빈 집에 아이가 혼자 서 있다. 기장인 아빠는 시드니에 있고, 승무원인 엄마는 이제 비행을 하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 그런데 문득 최수아는 그 텅 빈 집에 홀로 있을 아이의 잔상이 마음에 못내 가시처럼 박힌다.

 

'공항가는길(사진출처:KBS)'

버스에서 내린 최수아는 갑자기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현주언니한테 효은이 데리고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 깜박 했다. 하 김밥. 속은 만들었는데 효은이 한테 말도 못했고. 아 밥을 안했다. 아 김도 없지. 아 내가 뭘 해놓고 나온 거지?’ 그녀는 갑자기 모든 일들이 낯설어진다. 그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 빨래를 햇볕에 너는 아줌마를 보고는 어느 날 불쑥 사표를 내버린 선배 현주(하재숙)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너무 평온해 보이는 거야.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았구나. 그때서야 하늘도 보이고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왜 이렇게 하루하루 미친년처럼 사나...”

 

KBS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정서의 많은 것들을 담아낸다. 최수아에게 공항 가는 길은 이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우리가 공항을 갈 때 느끼곤 했을 어떤 낯선 세계에 대한 막연한 설렘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부채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챙겨줘야 할 아이가 있는 집. 그 곳은 벗어나고픈 곳이기도 하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최수아의 일상은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되어 있다. 그 발단은 딸 효은이를 해외 유학시키려 보냈다가 그 룸메이트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다시 귀국하게 되면서부터. 부부 둘 다 일을 하는 통에 딸 봐줄 사람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시어머니에게 부탁하지만 도리어 다치게 됨으로써 그녀 역시 최수아가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된다. 게다가 효은이의 룸메이트였던 애니가 하나의 인연이 되어 그 아빠인 서도우(이상윤)와도 선을 넘는 관계가 되어 버린다.

 

그 복잡한 일상들로부터 최수아는 도망치고 싶다. <공항 가는 길>이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공항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출구로서의 공간을 통해 최수아의 감정과 갈등을 담아낸다. 서도우와의 첫 만남과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공간이 공항이라는 건 이 드라마가 얼마나 공간이 주는 상징과 느낌, 감정들을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한강을 바라보며 전화 통화를 할 때의 그 느낌이나, 햇살 좋은 어느 날 고택의 툇마루에 앉아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의 그 좋은 느낌, 골목길을 걸을 때 그 좁은 공간이 주는 아늑함, 허허벌판에 불어오는 조용한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들... ‘조종실에서 본 밤하늘, 알래스카의 연어 맛, 시드니의 맥주 한잔, 두바이 사막의 해질녘, 그리고 지금 여기 이층에서의 여명같은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공간에 서 있을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따뜻함과 설렘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이 드라마에는 배경이 아닌 주요 이야기로 다뤄진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애니가 왜 아빠도 없는 그 낯선 곳의 작업실로 때만 되면 갔을까 하는 점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미스테리면서 동시에 주제의식이 될 것이다. 공간은 결국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고 그리움이 아닌가. 공간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남아서 그 곳의 만남과 헤어짐과 아픔과 그리움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좋은 기억을 담은 공간은 자꾸만 발길을 잡아끌게 하기도 하지만, 힘겨운 기억들이나 복잡한 일상들은 그 공간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게 한다.

 

<공항 가는 길>이 놀라운 건 바로 이 공간이 주는 일탈과 위로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벗어나려 하면서도 이끌리는 공간. 결혼이나 집, , 일상 등은 우리를 응집시켜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하지만 동시에 그 곳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게도 만든다. 그 사이에서 최수아라는 인물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모습은 그래서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작지않은 위안을 준다. 복잡한 현실이 주는 힘겨움과 그 곳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의 위로.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런 잠시간의 위로가 힘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잊지 말아요. 두고두고 힘이 될 거예요.”라고 서도우가 말하듯.

<공항 가는 길>이 불륜을 다루는 특별한 방식

 

어느 낯선 도시에서 잠깐 3,40분 정도 사부작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복잡한 생각이 스르르 사라지고 인생 별거 있나 잠시 이렇게 좋으면 되는 거지... 3,40분 같아. 도우씨 보고 있으면.”

 

'공항가는 길(사진출처:KBS)'

최수아(김하늘)가 하는 이 한 마디의 대사는 <공항 가는 길>이라는 드라마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도우(이상윤)와 함께 있으면 좋다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기혼자들끼리 마음이 오고간다는 걸 뜻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륜의 정서를 담지는 않는다.

 

그것은 잠깐 동안의 일탈이다. 늘 가던 길에서 잠깐 멈춰서거나 어느 날 살짝 자신도 모르게 다른 길을 걷다가 느끼는 잠시 동안의 일탈. 고작 3,40분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일탈이 어쩌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그런 경험.

 

이 드라마의 제목이 <공항 가는 길>인 것은 그래서 단순히 그 길에서 최수아와 서도우가 만났다는 걸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우리가 공항을 갈 때 느끼는 그 설렘과 낯섦 그리고 여행의 의미만큼 더해지는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이나 일탈의 느낌에서 오는 살짝 현실을 벗어난 듯한 그 해방감 같은 정서를 이 제목은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다고 함부로 일탈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인연이 어느 길에서 갑자기 등장했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이나 떨림 같은 세세한 감정들을 잡아낸다. “공항, , 새벽. 몇 시간 전인데 벌써 까마득하다는 최수아의 말은 공항에서 서도우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에 대해 그녀가 현실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서도우 역시 딸의 죽음으로 그 유해를 갖고 돌아올 때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최수아와의 공항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비가 내리고 그래서 잠시 딸의 유해가 들어있는 가방을 최수아에게 맡긴 채 차를 끌고 오는 서도우의 눈에 마치 자신의 딸이라도 되는 듯 그 가방을 꼭 껴안고 있는 그녀에게서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건 어떤 따뜻함과 위로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런 좋은 감정들은 조금씩 쌓여가며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만들어낸다. 딸의 유해를 납골당에 안치하고 사진을 붙이던 서도우가 어린 나이에 해외생활을 했던 딸 때문에 어렸을 적 사진 밖에 없는 걸 확인했을 때, 마침 그녀와 함께 살았던 자신의 딸이 갖고 있던 사진을 발견한 최수아가 그걸 서도우에게 보내주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인연이 어떻게 이어져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은 정성스럽게 이어져 있어요. 한 올 한 올. 인연이란 건 소중한 겁니다.” 서도우의 어머니인 고은희(예수정)는 도우에게 딸의 유품을 챙겨준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하라며 조각보를 내민다. 그녀는 인간문화재 매듭장이다. 매듭은 인연의 또 다른 상징이다. <공항 가는 길>의 관계들은 그래서 이 고은희가 말하는 것처럼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이어져 있다.

 

마치 그 잠깐 동안의 일탈이 주는 좋은 감정. 서도우가 그 3,40분 같다고 고백한 최수아에게 그는 생애 최고의 찬사예요.”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저 좋아하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로나 휴식 같은 특별한 시간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주는 인간적인 뿌듯함 같은 느낌이 들어가 있다.

 

최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서도우의 집으로 향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위스키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런데 그 독한 위스키의 느낌에서 기내 일식을 떠올린다. 마치 거대한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그 강렬함. 하지만 그 느낌은 타버릴 것 같은데 멀쩡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아마도 불륜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공항 가는 길>이 만들어내는 정서일 게다. ‘온 몸이 타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렬하지만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얽혀진 인연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치인트>, 그 어떤 멜로보다 공감 큰 까닭

 

저것은 치즈일까 트랩일까. 아마도 사랑이든 현실이든 첫 발을 내딛는 청춘들에게는 그것이 치즈처럼도 보이고 트랩처럼도 보이기 마련이 아닐까. tvN <치즈 인 더 트랩>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은 이 청춘들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의 두 가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홍설(김고은)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선배 유정(박해진)이나, 가난한 형편에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하는 학업,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는 갖가지 아르바이트가 모두 말 그대로 덫 속에 놓인 치즈로 보일 테니.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꿀 알바로 알려진 대학원 조교실 일자리는 그녀의 생각과는 영 다르다. 일찍 출근해도 또 조금 늦게 출근해도 뭐라고 하고, 커피를 타와도 안타와도 뭐라 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조교는 쉬워 보여 치즈 같던 이 일자리 속에 놓여진 트랩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까지 바래다 주던 유정이 사귀자고 한 그 말은 그녀에게 달콤한 치즈처럼 그녀를 설레게 하지만, 그 후로 어쩐 일인지 연락을 하지 않는 그의 냉담한 모습은 그녀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를 믿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그녀가 위험에 처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그냥 무시했다는 주연(차주영)의 거짓말은 유정이 혹시 덫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강교수(황석정)가 낸 팀 과제에서 팀원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혼자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모두 한 홍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팀원들 때문에 공동책임으로 D를 맞게 되자 혼란스러워진다. 강교수를 찾아가 사정을 해보지만, 그녀는 사회생활에서는 힘들어도 팀과 함께 해나가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예외는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만일 학교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온전한 교육의 장이라면 강교수의 예외 없는 교육방식이 옳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홍설에게 학교생활은 학점을 잘 받아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현실로 다가온다. 교육적 효과를 위해 잘못한 일도 없이 낮은 학점을 받고 그렇게 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러니라니.

 

<치즈 인 더 트랩>은 우리가 봐왔던 청춘 멜로의 전형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 다뤄지는 이야기의 질감이 그리 가벼운 건 아니다. 거기에는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깔려 있고, 그 기반 위에 달콤한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가 얹어져 있다. 사랑은 치즈처럼 달콤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겐 덫처럼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막상 홍설이 유정과 사귀기로 하고 첫 데이트를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과 와인을 척척 시켜먹는 유정이 그녀는 낯설다. 심지어 차로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내려서 차문을 열어주는 유정의 모습 앞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한다. 늘 덫 같은 현실 속에서 함부로 대해져왔던 그녀는 당황한다. 그녀에게 유정은 그래서 그 현실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그토록 차갑게 느껴지고, 심지어 두렵게까지 여겨지던 유정이 아닌가. 그런 그가 자신 앞에서 달콤한 미소를 보낸다니.

 

멜로와 현실의 세계는 종종 병치된다. 예를 들어 멜로 속 백마 탄 왕자님은 넘을 수 없는 빈부 격차의 현실을 판타지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하지만 유정이란 백마 탄 왕자님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멜로드라마 속의 그 판타지와는 사뭇 다르다. 과거 멜로 속 왕자님들이 잘 살아도 사실은 착한 존재로 판타지화되었다면, 유정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때론 달콤해서 설레게 만들지만 냉랭한 이성으로 돌아가면 두려울 정도의 차가움을 보여준다.

 

유정이란 존재는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행복한 판타지와 냉정한 현실을 동시에 품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표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사랑도 학업도 일도 현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우리 시대에 청춘들은 그것들이 모두 치즈처럼도 보이지만 동시에 트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비슷해져버린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그 감정을 종잡을 수 없어 당황해한다.

 

실로 사랑과 현실을 이렇게 제대로 엮어 보여주는 멜로드라마는 결코 흔치 않다. <치즈 인 더 트랩>이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김고은이나 박해진 같은 단지 멋진 배우들의 호연과 이윤정 PD 같은 베테랑 연출자의 감성적인 연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이 드라마가 사랑에 있어서도 현실에 있어서도 지금의 청춘들(아마도 중년들까지)에게 주는 공감은 그 어떤 것보다 크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풍선껌>, 결혼보다 썸이 좋은 요즘 세대의 멜로 트렌드

 

tvN 월화드라마 <풍선껌>의 제목이 왜 풍선껌인가를 궁금해했던 시청자라면 8회에 나왔던 이른바 풍선껌 키스를 보며 고개가 끄덕여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리환(이동욱)의 집에서 오누이처럼 친구처럼 함께 자라온 행아(정려원). 그 행아가 풍선껌에 한껏 바람을 넣고 물고 있는데 리환이 키스를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리환은 제 입에 들어온 행아의 풍선껌을 장난스럽게 분다.

 


'풍선껌(사진출처:tvN)'

이 장면은 <풍선껌>이 남자사람친구 혹은 여자사람친구였던 관계가 연인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라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대사가 다양한 상징적인 표현들로 되어 있는 이 드라마의 특성을 이해하는 분들이라면 그 키스신에서 쓰인 풍선껌에서 남다른 상징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입 바람을 넣어 부풀어 오르는 풍선껌은 마치 이제 막 연인관계에서 부풀어 오르는 설렘 같은 걸 말해주는 것만 같고, 그것이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옮겨가며 풍선이 불어지는 건 그 설렘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처럼 보인다.

 

물론 풍선껌이란 소재는 질척하지도 않고 오히려 아이 같은 순수함과 천진함을 덧붙인다. 그러니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듯 키스 후의 장난스런 풍선불기와 웃음이 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는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 있다. 결혼은 미지수다. 즉 리환과 선을 보고 의외로 그의 친절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홍이슬(박희본)에게서는 결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리환과 행아 사이에는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우정과 사랑의 중간 어디쯤에서 한껏 풍선껌처럼 부풀어 오른 그 상태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SBS <너를 사랑한 시간>의 이진욱이나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N <응답하라1988>의 류준열이 그런 것처럼 <풍선껌>의 이동욱은 이른바 친구인 듯 연인 같은 남자 사람 친구로서 이 드라마를 통해 한껏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물론 이동욱이 이 드라마를 통해 주목받는 건 차근차근 쌓여온 연기력이 한 몫을 하는 것이지만 그가 입고 있는 남자 사람 친구 리환이란 캐릭터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도대체 이 시대에 그 많은 남자 사람 친구들이 등장하고 이처럼 매력을 발산하게 된 건 왜일까.

 

그것은 달라진 결혼관과 연애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즉 결혼은 이제 더 이상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결혼을 목표로 세우는 드라마들이 어딘지 지나간 옛사랑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 게다. <풍선껌>이 행아가 그간 사귀다 지쳐버린 강석준(이종혁)으로부터 벗어나 친구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해온 리환에게로 돌아오는 이야기인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강석준과의 연애가 과거의 형태라면 리환과의 연애는 지금의 연애 세태를 담고 있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홍이슬의 사랑방식이 과거의 그것처럼 여겨지고 행아의 사랑방식이 현재의 그것처럼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공유한 연인들은 결혼에 대한 판타지가 없다. 대신 함께 커왔던 일상적인 기억들을 쌓아오면서 친구 관계가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아마도 결혼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라는 무게감을 요즘의 청춘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이라는 현실의 무게를 벗어나 친구처럼 연인인 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관계를 맺는다. 마치 이루어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존재하고, 그것을 살짝 살짝 넘어설 때 마음 한 구석에 피어나는 썸의 두근거림을 즐긴다. 그저 씹을 땐 껌이지만 살짝 바람을 넣으면 부풀어오르는 풍선껌처럼.



<장수상회>, 먹먹한 꽃할배, 아련한 꽃누나

 

<꽃보다 할배>에서 박근형은 여전히 정력적인 청년의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 <장수상회>에서 그가 연기하는 성칠은 이름에 걸맞게 성질머리 고약하고 고집 센 노인네다.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은 세련되고 섬세한 여배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화 <장수상회>에서 그녀가 연기하는 금님은 나이 들었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가녀린 여성이다.

 

사진출처:영화 <장수상회>

꽃할배와 꽃누나의 만남은 의외로 가슴 설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고약하고 고집 센 노인네였던 성칠이 금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하는 모습은 마치 이제 첫사랑에 빠진 청춘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어딘지 금님이라는 인물은 수상하다. 마침 재개발을 추진하는 마을에서 유일한 반대자인 성칠의 마음을 되돌리려 일부러 접근한 인물처럼 보인다.

 

이러한 수상함은 영화가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반전을 예고한다. 그 반전의 이야기는 <장수상회>가 단순한 노년의 사랑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던 이야기를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여기서 남녀 간의 사랑의 이야기는 가족 간의 사랑의 이야기로 나아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로 커져간다.

 

<장수상회>의 아버지 성칠은 어느새 짐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혼자 살기 때문에 자신이 죽으면 장례를 지내달라며 통장과 비밀번호를 적어 놓은 성칠의 봉투를 발견하고 금님이 미안하다며 오열하는 장면은 은근슬쩍 숨겨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끌어낸다. 아마도 그 장면을 보며 뭉클해졌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표현은 하지 않아도 그처럼 외로웠을 거라는 걸 금님처럼 똑같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짐처럼 취급되어온 아버지에 대한 각성은 영화 속의 공간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한 때는 논밭이었던 땅이 도시가 되고 그 도시의 한 구석에 장수상회가 세워진다. 그 장수상회는 다시 장수마트가 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재개발을 꿈꾼다. 과거는 그렇게 조금씩 지워지고 사라져간다. 성칠이 그토록 재개발을 반대했던 것은 그저 성질 고약한 노인네의 고집에 불과했던 게 아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끝까지 한 자락이나마 쥐고 있고 싶은 그 간절함이 거기에는 묻어난다.

 

죽어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을 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남아있는 자식들만을 생각하는 건 아버지들의 인지상정이다. “자식은 부모 가슴 한 켠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돌덩이와 같다는 말은 이런 아버지들이 표현하지 않는 속내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건 결국 사랑이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든 울지 맙시다. 어차피 잠깐 떨어져 있는 거니까.” 성당에서 성칠이 금님에게 하는 이 말 속에는 사랑만이 가능하게 하는 불멸의 가능성이 담겨있다. 모든 것은 사라져가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금님과 성칠이 서로의 이름을 건네던 그 설레던 첫 만남의 기억이 영원히 남아있는 한.

 

삶은 희극처럼 경쾌해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비극처럼 묵직해진다. <장수상회>는 그래서 코미디의 발랄함과 동시에 휴먼드라마의 진지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물론 드라마틱한 장치들을 하기 위해 조금은 작위성이 들어가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어찌 보면 뻔한 노년의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한참 웃다가 먹먹해지고 아련해지는 그런 영화다.

 

<꽃할배> 최지우, 할배들의 며느리감, 짐꾼의 썸녀

 

제 아무리 최지우 때문에 할배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지우가 아니었다면 이번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의 이런 밝은 에너지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삶의 경륜이 묻어나는 어르신들의 무게감이 있다면 최지우라는 경쾌함과 발랄함이 더해져 이번 <꽃보다 할배>가 더 풍성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할배들에게 어떤 활력을 주는 존재이면서 짐꾼 이서진에게는 보고만 있어도 미소를 짓게 하는 존재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모두가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 여정이 설날을 전후에 잡힌 어르신들은 괜찮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 같은 게 있었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조금은 쓸쓸했던 것. 그런 마음을 챙기고 채워준 건 다름 아닌 최지우가 아침으로 준비한 떡국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밝혔듯 잘 하는 요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둘러 앉아 떡국을 먹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주는 훈훈함은 할배들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최지우는 요리든 영어든 아니면 가이드 역할이든 뭐든 척척 잘 해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든 정성을 다해 하는 모습이 보는 이들을 흡족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떡국을 만들면서 지단 하나를 제대로 얹으려 노력하는 모습이나, 필요한 영어회화를 노트에 적어서 준비하고 다니는 자세나, 또 홀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선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도 마음 졸이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런 노력 속에는 어르신들에 대한 그녀의 살가운 마음이 묻어난다.

 

올림픽경기장을 찾아간 어르신들이 한번 뛸까요?”라는 최지우의 제안에 때 아닌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장면은 아마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장면이다. 그녀의 가벼운 제안이 순간적으로 어르신들을 동심으로 되돌려 놓은 것. 그렇게 한번 그 역사적인 올림픽경기장에서 뛰면서 아마도 어르신들은 새로운 추억 하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한편 최지우가 짐꾼으로 투입되면서 생겨난 이서진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저 대화만 나눠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 보조개를 만들어내는 이서진. 물론 경비 때문에 소소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말 한 마디면 먼저 몸이 움직이는 이서진이다. 떡국을 만들면서 보조역할을 하는 이서진은 대충대충 하려고 하지만 최지우의 시어머니 잔소리를 그래도 다 들어준다.

 

무엇보다 이서진과 최지우가 그려내는 알콩달콩한 그림은 <꽃보다 할배>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르신들을 가이드 해주고 챙겨주는 일이 짐꾼의 역할이지만 그렇게 힘들 수 있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는 건 최지우가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다. 이런 썸 타는 분위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지우가 어르신들의 마음까지 살뜰히 챙기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없이 훈훈해진다면, 이서진과의 미묘한 감정 교류에서 어떤 설렘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흡족한 마음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러니 어찌 사랑받지 않을 수 있을까. 할배들의 며느리감이자 짐꾼의 썸녀인 최지우라는 존재가 <꽃보다 할배>에서 빛나는 이유다.

 

<삼시세끼>가 묻는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런 걸로 예능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고추 장아찌를 담근다며 항아리를 사다가 고추를 넣고 간장 양념을 끓여 넣는다. 장아찌가 잘 되게 하기 위해 눌러 놓을 돌을 구하러 간 이서진은 소식이 없다. 알고 보니 뭐든 과한이서진이 짱돌 하나를 구하려고 별 고심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어찌어찌해 고추 장아찌를 담아낸다는 이야기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 아무 것도 아닌 짧은 에피소드는 그러나 <삼시세끼>라는 예능 신세계에서는 충분한 예능 소재가 된다. 가져온 짱돌이 항아리 구멍에 맞지 않아 투덜대는 이서진과 다 채워넣고 고추에 미리 냈어야할 구멍을 안내 다시 꺼내 고추 자르게 만드는 옥빙구 택연이 있으니 금상첨화다. 어떻게 이런 소소함이 예능이 될까.

 

그것은 메인으로 내세울만한 극적 내러티브가 없는 <삼시세끼>라는 신세계 덕분이다. 도시와 유리된 이 곳에서는 뭐든 하나하나가 작은 모험(?)처럼 다가온다. 사실 곰탕 한 그릇 먹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도시에서라면 유명한 곰탕집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삼시세끼>에서는 다르다. 가마솥에 밤새 우려낸 국물에 기름을 덜어내고 직접 담근 깍두기와 텃밭에서 갓 뽑은 파를 썰어 가마솥 밥과 함께 내놓는 곰탕. 하나하나 손길이 닿은 그 일련의 과정들은 곰탕 한 그릇의 맛은 물론이고 그 훈훈함까지 더해준다.

 

없다는 것은 <삼시세끼>에서는 이 새로운 공간에서의 설렘과 모험의 시작이다. TV가 없어 할 게 서로 떠드는 일이고, 보일러가 따로 없어 군불을 때며, 커피 메이커가 없어 맷돌로 갈아 커피를 한약 내듯 뽑아낸다. 물론 해야 될 일들이 많아 바로 눈앞에 펼쳐진 구름 낀 옥순봉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렇게 옥순봉 풍경 한 번 쳐다보고 지나갈 도시인들이 느낄 수 없는 시골 체험의 묘미가 거기에는 있다. 하다못해 이 곳에서는 강아지 밍키의 성장 하나도 볼거리다.

 

갓 딴 텃밭 채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솥뚜껑에 기름 뿌려 만든 달걀프라이를 솥밥에 얹어 참기름, , 고추장을 넣고 썩썩 비벼먹는 맛은 그래서 그대로 도시인들에게는 로망이 될 수밖에 없다. 생김에 숟가락으로 기름을 살살 칠하고 소금을 뿌려 숯불에 직접 구워낸 김은 또 어떤가. 비록 손은 많이 가지만 그렇게 한 장 한 장 구워내 한 통 가득 담긴 김이 주는 느낌은 말 그대로 뿌듯하다. 석쇠에 구운 고등어 한 점이 주는 훈훈함. <삼시세끼>는 멀리서 바라보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곳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매번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진다.

 

여기에 수수밭 베기같은 노예 놀이는 마치 <12>의 복불복처럼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에 팽팽함을 만들어낸다. 노동이 만들어내는 땀의 힘은 <삼시세끼>에서도 여지없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저 삼시세끼 챙겨먹는 시골 생활의 소소함을 클로즈업하고 거기에 강도 높은 노동을 얹으니 나영석 PD만의 균형 잡힌 예능 신세계가 탄생한다. 마치 소꿉장난하는 듯한 설렘은 이 세계가 건네는 꿀잼의 덤이다.

 

여기에 이서진처럼 전혀 과하지 않은 나영석 PD만의 스타일로 재미에 의미가 덧붙여진다. 물 한 잔을 얻어 마시러 군청에 들어간 택연을 차에서 서진이 기다릴 때 마치 맞춘 것처럼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내레이션.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 행복은 삶의 의미이며 목적이고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표이며 지향점이다.” 힘든 하루의 노동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거실에서 뒹굴대는 이서진과 택연의 모습이 그 내레이션 위에 겹쳐진다.

 

조지 오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 서진이 수수를 베는 모습이 이어지고, “빅토르 위고.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라는 멘트에 백일섭이 이서진에게 무언가를 먹여주는 장면이 보여진다. 그리고 자막. ‘아아 나는 정말 노예인가 아닌가 과연 행복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 자막의 목소리는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지 않았을까.

 

마침 군청에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돌아온 택연이 패트병에 담아온 물을 서진에게 건네자 그가 물을 마시는 장면에 이런 자막이 붙는다. ‘아 역시 난 행복해..’ 이것은 나영석 PD<삼시세끼>가 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는 이들을 훈훈하고 흐뭇하게 만드는가를 잘 보여주는 편집 영상들이다. 이제 나영석 PD는 시골의 짱돌 하나로도 예능을 만들어내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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