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4.17 배종옥과 서정연, '예쁜 누나' 위에 '멋진 언니'
  2. 2007.10.31 말실수 가족

‘예쁜 누나’ 서정연과 ‘라이브’ 배종옥, 이 멋진 언니들

‘예쁜 누나’ 위에 ‘멋진 언니’가 있다?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예쁜 누나’ 윤진아(손예진)가 있다면, 그 위에는 은근히 무뚝뚝한 척 그를 돕는 ‘멋진 언니’ 정영인(서정연) 부장이 있다. 깐깐하고 빈틈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인물은 이 막돼먹은 회사 남자 상사들로부터 윤진아를 은근히 보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해 다른 남자 상사들(심지어 대표까지)도 쉽게 대하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회식자리에서 윤진아를 위해 보인 모습은 그 속내를 드러낸다. 늘 그러했듯 ‘개저씨’ 공철구(이화룡) 차장이 와서 윤진아를 부르며 고기를 구우라고 지시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를 거부해 싸해진 분위기. 공철구가 회사 내 위계질서가 엉망이라고 대표에게 성토하자, 정영인은 남자 직원을 불러 고기를 구우라 지시하면서 이런 위계를 말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서준희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변화한 윤진아. 회식자리에서 늘 보이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인 윤진아에 대해 정영인은 오히려 “윤진아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자신이 더 고맙다고 말한다. 그는 윤진아에게 “훌륭하다”며 눈치 빠르게 “너 요즘 연애하지?”하고 묻는다. 예뻐졌다는 것. 정영인이 말하는 예쁘다는 표현은 그래서 중의적으로 들린다. 하나는 실제로 연애하는 사람이 보이는 예뻐짐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달라진 삶의 자세가 보여주는 예뻐짐이다. 

정영인이 윤진아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미루어 그가 이 성차별이 가득한 회사에서 어떻게 버텨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남다른 철저함과 빈틈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일처리, 게다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 얼굴은 그가 부장 자리까지 오면서 겪었을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든든하게 서 있는 정영인이 윤진아에게는 하나의 버팀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의 안장미(배종옥) 역시 정영인 같은 ‘멋진 언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경찰생활에서 악착 같이 일해 여청계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 되었다. 관내에서 벌어지는 연쇄 성범죄를 수사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항상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이제 막 새로 들어온 한정오(정유미)가 그래서 마치 자신의 옛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일 수 있다. 그래서 한정오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면서 안장미는 “너랑 호흡이 잘 맞았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안장미의 ‘멋진 언니’ 역할은 경찰로서만이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도 톡톡하게 드러난다. 그건 이미 과거 한정오가 성폭행을 당했을 시절부터 그를 알고 있던 안장미가 툭툭 던지는 인생 조언 속에 담겨진다. 한정오는 자신이 당한 성폭행으로부터 이제는 멀쩡하다며 트라우마가 없는 자신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자, 안장미는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가 꼭 생겨야 돼? 사건 당한 것도 억울한데 꼭 괴롭기까지 해야하냐고. 난 그것도 다 편견 같은데. 심플하게 생각해. 넌 그냥 그 일이 벌어진 걸로 받아들인 거야. 사건이 났고 넌 잘못이 없고 시간은 지났고 현재 넌 경찰이 된 거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나 <라이브>는 모두 여성 주인공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만큼 시선이 가는 건 그들 위에 먼저 그 현실을 살았던 선배 언니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한 만큼 부하 직원에게 똑같이 되돌려주는 경우가 현실에는 더 많다. 하지만 자신이 당한 일을 후배들은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어떤 롤 모델이 되어주는 선배 언니들도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그들의 쉽지 않은 노력들이야말로 진짜 세상을 바꿔가는 힘일지도.(사진:JTBC)

말실수 가족

생활의 발견/생활의 단상 2007.10.31 10:48 Posted by 더키앙

잘못 나온 호칭, 그 역할 바꾸기의 행복

“엄마!”
아이가 내게 엄마라고 한다. 나는 문득 아이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목소리를 여자처럼 해서 아이에게 되묻는다.
“왜 그러니?”
그러자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걸 깨달은 아이는 씩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아니... 아빠. 이것 좀 봐줘.”
아이의 숙제를 돌봐주면서 문득 이런 경험이 유달리 우리 집에서는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이의 말실수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직장을 다니는 아내 대신, 칼럼니스트로 집안 생활까지 도맡게 된 나는 낮 시간을 대부분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함께 생활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종종 아이에게 아내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놀려주던 것을 흉내내면서 엄마 목소리로 내게 대꾸하곤 한다.
“왜 그래요. 여보?”
아이는 가끔 엄마를 아빠로 오인해 부르기도 한다. 늘 나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인에 박인 탓이다. 그러면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피식 웃어버린다.

그런데 이 잘못 나오는 호칭들은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차츰 기분 좋게 들려왔다. 부모와 하루를 온전하게 보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있어서 엄마의 부재를 아이가 느끼지 않는다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잘 해주는 것도 없는데, 아이가 기대는 것을 보면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내가 아이에게 “여보”하고 잘못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어느덧 아내가 없는 낮 시간대에 내 심부름도 해주면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잘못 나오는 호칭은 대상을 한 가지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아버지라는 특정한 틀로서 아버지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는 아버지라는 상이 가진 갖가지 이미지들이 겹쳐지게 된다. 그것은 때론 오해일 수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호칭이 갖는 허울 때문에 더욱 아버지처럼 보여야 하는 상황에 있을 수 있다. 물론 아버지는 그 안에 권위적인 모습 이외에도 모성애적인 부드러움까지 다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이가 아버지를 엄마라고 잘못 부를 때, 이러한 틀은 깨진다. 그 작은 틈새가 주는 여유는 그런 경험을 해본 이들에게는 쉬 이해되는 것일 것이다. 순간적인 해방감 같은 그 느낌은 바로 그 호칭이 주는 억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것을 알게 모르게 교육받아왔다. 남자는 남자라는 역할에 여자는 여자라는 역할에.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왜곡이 일어난다. ‘남자답다’는 말의 기준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때론 그 말은 성별의 차이를 넘어서 사회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이건 성별이 아닌 성차별이 된다.

성차별은 상대방 성에게만 가해지는 억압이 아니다. 성차별은 성차별을 교육받은 자에게도 행해지는 억압이다. ‘남자다움’을 지상과제로 교육받은 남자는 바로 그 성차별적 사고관에 갇혀 소위 여성들이 해야할 일을 하는 것에 곤혹을 느낀다. 그러나 어떨 때는 그걸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장인댁에 갔는데, 장모님이 마침 출타중이시고 장인과 단둘이 있게 되었다. 시간은 저녁시간대. 배는 고픈데 그렇다고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대부분 이럴 경우, 중국집배달이 대안이 되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장인과 사위가 각자 집에 혼자 있을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둘 다 밥 한 끼 정도는 뚝딱 챙겨먹을 수 있는 데도 굳이 시켜먹는 것은 바로 남자로서 교육받은 것이 서로의 눈치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말실수 가족이다. 아빠는 엄마가 되기도 하고, 엄마는 아빠가 되기도 한다. 아이는 때론 아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무언가 집안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음이 겪는 불편함 같은 것이 없다. 그만큼 역할 바꾸기에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보고자란 아이는 앞으로도 사회 속에서 성별을 넘어 더 당당히 자신을 밝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우리가 말실수 가족인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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