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데 상상 이상, ‘집밥 백선생’ 매력의 원천

국을 하나 끓이려면 먼저 육수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요리초보자들은 선뜻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게 국을 끓이는 일이다. <집밥 백선생3>가 신혼부부들을 초대해 만든 집밥 콘서트에서 첫 레시피로 내놓은 게 간편한 무새우젓국과 감자새우젓국인 건 그런 부담감을 없애주기 위함이다. 육수를 내기 위한 별다른 재료 없이 무와 새우젓, 감자와 새우젓만으로도 충분히 맛이 나는 국이 가능하다는 걸 백종원은 보여줬다. 

무와 감자를 일단 들기름에 볶아준 후 새우젓을 넣어 그 짭쪼름한 맛을 더해주고 물을 부은 후 액젓, 간장으로 간을 해 내놓는 초간단 레시피였지만 이를 먹어본 신혼부부들은 놀라는 얼굴이었다. “멸치 조미료를 넣은 줄 알았다”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로. 그러니 이 한 장면으로 많은 요리초보자들은 국을 만들 때의 그 부담감을 단번에 덜어낼 수 있을 게다. 국 끓이는 일이 이렇게 쉬웠어?

집밥 콘서트에서 내놓은 레시피들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전기밥솥에 불린 쌀과 갖가지 재료들과 소스까지 한꺼번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뚝딱 오므라이스와 취나물밥을 만들었던 것. 흔히 전기밥솥은 밥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마련이고, 오므라이스 같은 요리는 갖가지 재료들을 볶고 비벼 겨우 완성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걸 한 방에 해결해버린다는 건 우리가 갖고 있는 요리에 대한 상식을 깨버렸다. 

물론 이런 요리 레시피가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집밥 백선생>은 잘 알고 있다. 요리는 레시피가 어려워서 안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런 상황들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는 걸. 그래서 백종원은 자주 요리 레시피를 선보이면서 특별한 상황을 거기에 부여하곤 한다. 맞벌이 부부가 아침을 챙겨먹기가 쉽지 않은 상황을 상기해보면, 밤에 잠들기 전 전기밥솥에 재료들을 넣고 예약 취소 버튼을 눌러놓는 것만으로 아침에 오므라이스를 챙겨먹을 수 있다는 그 상황은 요리 욕구를 확 올려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좀 더 고급스런 버전으로 오므라이스에 계란을 입히는 장면도 놀라운 파격을 보여줬다. 먼저 계란을 얇게 펴서 익힌 후 그 위에 밥그릇에 담은 오므라이스를 얹고 마치 보쌈을 싸듯 계란으로 오므라이스를 싸서 접시에 뒤집어 놓는 방법을 쓴 것. 모양이 잘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키친 타올로 덮어 손으로 모양을 잡아주는 팁에는 제자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뚝딱 만들어진 오므라이스의 비주얼이 음식점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집밥 콘서트가 보여준 레시피는 김치볶음밥보다 더 쉬운 김치리조토. 김치볶음밥을 똑같이 하다가 물 2컵을 넣고 버터 치즈 소금을 첨가하는 것만으로 김치볶음밥과는 또 다른 리조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레시피 역시 상식을 깨는 레시피였다. 볶던 밥에 물을 붓는다는 걸 그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나.

집밥 콘서트는 <집밥 백선생>이 가진 매력이 바로 이 ‘간단한데 상상 이상’이라는 ‘가성비’에 있다는 걸 보여줬다. 또한 그걸 구현해내기 위해 기존 레시피가 아닌 기상천외한 상식 파괴의 시도를 보여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요리 그 자체보다 요리를 하게 만드는 그 간편하면서도 효과 있는 레시피.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집밥을 챙겨먹고 싶은 이들이라면 매료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사진:tvN)

‘집밥 백선생’, 제자들이 있어 가능해진 새로운 볼거리들

tvN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은 어느덧 시즌3 40회를 앞두고 있다. 시즌1이 스페셜까지 합쳐 38회, 시즌2가 36회를 했으니 통산 100회를 훌쩍 넘은 셈이다. 사실 요리 레시피라는 한 가지를 갖고 이렇게 오래도록 예능 프로그램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물론 요리 프로그램이라면 교양으로서 충분할 수 있지만,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 하나만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만큼을 이어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래서 시즌3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살짝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새로 제자로 투입된 이규한, 남상미, 윤두준, 양세형이 있었지만 결국은 ‘요리 무식자’에서 요리를 알아가는 그 스토리텔링은 시즌1이나 시즌2 그대로일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3는 이전 시즌들과는 살짝 다른 면들을 보여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자들의 변화가 만들어낸 새로움이었다.

시즌3 39회에 소개한 돼지갈비를 이용한 갈비탕, 갈비볶음 그리고 육개장을 보면 그 자체가 사실 파격이다. 주로 갈비탕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소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해먹는 요리법을 응용한 이 요리들은 간편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제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시청자들로서는 상대적으로 값도 싸고, 요리도 간편하며, 맛도 그만인 이 요리를 한 번쯤 해보고픈 욕망이 생길 법하다. 

즉 백종원은 이번 시즌에서 상식을 깨는 요리법을 종종 소개해 제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지난 회에 했던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닭칼국수는 물론이고 들깻가루를 이용해 만드는 너무나 간단한 들깨칼국수 그리고 비빔칼국수도 지금껏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레시피였고, 김밥 하면 다양한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단일 재료로도 충분히 맛을 냈던 어묵김밥이나 건새우김밥도 새로운 레시피였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깨는 요리는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일종의 응용편이라는 점이다. 돼지갈비로 만든 육개장이 가능한 건, 이미 육개장을 해본 그 경험에 돼지갈비라는 재료에 맞는 약간의 응용이 있어서였다. 돼지갈비볶음이 설탕과 양파를 먼저 넣어 충분히 볶아주는 것만으로도 맛을 낼 수 있다는 건 이미 양파를 충분히 볶았을 때 풍미가 높아진다는 걸 다른 요리들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즉 이번 시즌3가 흥미로웠던 건 기존 시즌1,2에서 소개됐던 요리 방법의 그 원리들이 응용됨으로서 더 깊은 요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하다못해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양념으로서 액젓은 이제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백종원의 레시피 응용편만큼 시즌3를 빛낸 건 바로 제자들이다. 물론 시작점에서 양세형은 확실히 다른 제자들보다 요리능력자로서의 면면을 뽐냈지만, 뒤로 갈수록 그 차이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만큼 다른 제자들도 성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백종원은 자신이 요리를 하기 전에 각자 아이디어를 보태 요리를 내보이라는 미션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밥을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보라는 주문에 윤두준은 간장계란밥을 응용한 밑간을 한 김밥을 내놨고, 이규한은 모짜렐라 치즈를 녹여 속재료로 만든 김밥을 내놓았다. 이런 응용은 이 프로그램을 하며 배운 요리법들을 김밥이라는 과제에 적용해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은 단지 먹방과 요리의 성장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이번 시즌에서 제자들이 달라졌던 건 ‘맛 표현’ 부분이다. 양세형이 먼저 나서서 보여줬던 섬세한 맛 표현은 차츰 다른 제자들의 각기 다른 표현방식으로 이어졌다. 사실 눈과 귀로만 백종원식의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어진 음식의 맛을 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누구나 맛봤을 기존 음식의 맛을 인용해 그 맛 표현에 활용했다. 마치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 맛 설명을 위해 갖가지 묘사들을 동원하듯이.

이런 제자들이 있어 가능해진 건 다음 회에 예고된 것처럼 이제 제자들이 백종원을 위해 한 때의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다. 그간 배웠던 것들을 응용해 제자들이 어떤 요리를 내놓을까 하는 점이나, 그 요리를 먹고 백종원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풍성해진 볼거리로의 진화가 가능했던 건, 역시 제자들이 함께 하는 그 시너지가 있어서가 아닐까.

‘집밥’, 신화 버리자 활짝 열린 상상초월 요리신세계

백종원은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할 때부터 자주 했던 말이 “야매”, “우리끼리의 비밀”이었다. 그것은 그가 하는 요리가 가진 파격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요리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곤 했던 어떤 이미지를 깨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파격이지만 또한 요리를 정석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심리적 저항감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이것을 ‘야매’라고 낮춰 마치 웃음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곤 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하지만 tvN <집밥 백선생>이 지금껏 해왔던 요리들의 신세계를 돌아오면 그 ‘야매’가 의도치 않게 해온 놀라운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우리가 요리하면 생각하는 그 정형화된 이미지를 깬 것이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집밥’의 이미지를 깬 것이다. ‘엄마의 밥상’만을 집밥으로 생각했었다면 <집밥 백선생>은 ‘집에서 먹는 밥’, 즉 누구나 다 해먹을 수 있는 밥을 ‘집밥’으로 새로 이미지화시켰다. 그건 ‘집안일 분담’을 위한 그 어떤 주장들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집밥의 신화를 깬 자리에 들어온 건 상상을 초월하는 요리의 세계다. 식빵을 구워서 잼 발라 먹을 줄만 알았던 우리들은 그걸 밀대로 밀고 돌돌 베이컨과 함께 말아서 구워 마치 롤처럼 잘라먹는 방식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것이야 어딘가의 레시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마트에 가면 1+1의 단골메뉴처럼 나와 있는 양념돼지갈비를 가지고 간단하게 갈비고추장찌개, 갈비된장찌개를 만드는 건 집밥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색할만한 레시피가 아닐 수 없다. 

굴소스가 없을 때 굴소스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고, 굴전을 만들 때 굴에 부침가루를 조물조물 묻혀 달걀을 넣고 바로 전을 붙여내는 간단함을 보여준다. 값싼 냉동낚지를 사다가 소금으로 빡빡 닦아내고 살짝 물에 데쳐 탱글탱글하게 심폐소생을 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게를 넣어서 만드는 뿌팟퐁커리를 게살로 뚝딱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맛의 상상을 통해 상식을 깨는 요리가 가능해진 건 모두 그 ‘야매’ 정신 덕분이었다. 

물론 이건 백종원이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요리사업가로서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해온 전력이 있고, 그러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노하우가 이러한 상식 파괴 요리 레시피들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혼자 보유하고 개인적 사업으로만 활용하기보다는 방송을 통해 그 노하우를 알려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집밥’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런 요리의 세계를 <마이 리틀 텔레비전>처럼 캠핑 요리 같은 개념이 아니라 <집밥 백선생>이라는 ‘집밥’의 틀로 묶어놓은 연출의 묘가 한 몫을 차지했다. 

<집밥 백선생>은 현재 시즌3로 33회를 마쳤다. 시즌1이 37부작이었고 시즌2가 36부작이었으니 전체 분량이 100회를 훌쩍 넘긴 셈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2015년부터 현재 2017년까지 그 2년 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 기간 사이에 우리가 오래도록 갖고 있던 그 ‘집밥’의 이미지가 깨지고 요리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중요한 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집밥3’, 지금 백종원에게 필요한 건 일반인과의 소통

tvN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 LA특집에서 백종원이 한 요리 중 가장 빛난 건 아마도 한 교민의 가정집에서 한 짠지냉국이 아니었을까. 사실 가장 쉽게 만든 요리가 바로 짠지냉국이었다. 짠지를 그저 잘게 자른 후 물을 붓고 고명으로 파를 얹은 것이 요리의 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냉국을 먹어본 교민은 이내 먹먹해졌다. 오랜 타지에서의 생활로 잊고 있던 고향의 맛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것은 ‘군내’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맛이지만, 나이든 세대에게는 어릴 적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맛이었다. 결코 자극적이지도 또 화려하지도 않은 맛이지만 먹다보면 조금씩 찾게 되는 맛. 느릿느릿 시간을 두고 묵혀져 은근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그런 맛. 짠지냉국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한 요리는 그래서 LA특집의 가장 큰 수확물로 남았다. 

그런데 만일 이 짠지냉국을 평소에 <집밥 백선생>이 하던 대로 스튜디오에서 제자들과 만들어 먹었다면 어땠을까. 거기에서 어떤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이 짠지냉국이 어떤 감동을 주는 맛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건, 바로 거기 그 맛이 고향의 맛으로 다가오는 교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맛이란 이처럼 일반화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맛이고 누군가에게는 심지어 싫어하는 군내에 불과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물 나는 것. 그것이 맛의 실체다. 

그리고 이것은 <집밥 백선생>이 시즌3까지 이어오며 해왔던 쿡방 전도사로서의 ‘일반화된 맛’이 또한 갖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양념이 과하다는 비판이 가끔 등장하기도 하고, 그래서 양념은 각자 입맛에 맞게 그 양을 조절하라고 굳이 백종원이 얘기를 했던 건 바로 맛의 일반화가 갖는 오류를 넘어서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만능간장’으로 대변되는 백종원 쿡방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어느 정도의 맛’을 내는 ‘일반적인 맛의 공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 백선생>에 남는 아쉬움은 그 공식이라는 것이 갖는 한계로 인해 비판의 소지 또한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LA특집은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의외의 발견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맛의 체감을 인정하고, 다양한 일반인들과 어우러지는 일이다. 교민이 참여했던 것처럼 일반인들이 가진 맛의 기억과 어우러지는 쿡방. 그래서 백종원이 일반적인 맛을 제안하면서도 그 특수성을 찾아 어떤 맛의 공감대를 추구하는 그런 방식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걸 이번 LA특집이 말해주고 있었다.

쿡방이 범람하고 레시피 또한 넘쳐나는 시대에 백종원의 신 생존법으로 제시되는 건 그래서 일반인과의 소통이다. 지금껏 스튜디오 안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일반인들이 사는 현장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더 다양한 맛의 세계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맛으로 녹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툭하면 쿡방, 스타MC 집착, 슬럼프를 불렀다

 

2016년 한 해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면 한 마디로 말해 슬럼프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 같다. 무언가 한 해를 대표할만한 새로운 예능이 탄생하지 않았고, 그저 과거의 명성을 이은 장수예능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 때 트렌드였다고는 해도 여전히 비슷비슷한 쿡방을 내놓고, 이제는 한 물 간 스타MC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기획한다. 이래서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 깊은 슬럼프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판타스틱듀오(사진출처:SBS)'

쿡방, 먹방 트렌드가 생긴 건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tvN <삼시세끼>가 나온 게 언제인가.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tvN의 경우 이 트렌드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쿡방, 먹방 트렌드를 이끌어낸 셈이니 그 수혜 역시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삼시세끼>를 빼놓고 보면 다른 프로그램들은 이제 식상해졌다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올리브TV에서 실험한 <8시에 만나><조용한 식사> 같은 프로그램은 나홀로족들의 문화를 반영한 참신한 시도였지만 <수요미식회><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들은 화제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tvN의 쿡방, 먹방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최근 등장한 <인생술집> 같은 경우 대놓고 음주 방송을 표방할 정도로 자극적이지만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래도 음주방송의 아슬아슬함을 인생이라는 묵직한 주제로 덮으려다 보니 재미로만 나가기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JTBCtvN의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상파로 가면 SBS <백종원의 3대천왕> 같은 프로그램은 먹방의 자극만 강조할 뿐, 너무 뻔한 이야기들의 나열이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 전체 예능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건 이른바 장수예능들이 그나마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KBS의 자존심을 살린 건 여전히 <12>이고, MBC는 명불허전 <무한도전>이 독보적이었다. SBS는 상대적으로 약화된 예능의 양상을 보였는데 그나마 상징적인 프로그램은 <런닝맨>이었다. 물론 최근 무리한 의욕으로 시즌2를 선보이려다가 종영을 예고하고 말았지만.

 

이런 사정은 tvN이나 JTBC도 마찬가지다. tvN의 간판예능은 여전히 <삼시세끼>이고 <집밥 백선생>도 계속 일정한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JTBC는 최근의 시국을 타고 <썰전>이 급부상했고, 이어서 <말하는 대로> 같은 프로그램이 주목받게 되었다. 결국 tvNJTBC도 올 한 해 자체적인 힘으로 새로운 예능을 성공적으로 내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트렌드를 그대로 가져온 안이한 기획도 예능이 슬럼프에 빠진 이유 중 하나다. 대표적인 것이 음악예능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를 통해 여전히 힘을 발휘한 MBC<복면가왕>이나, 뮤지컬, 성악까지 영역을 넓힌 JTBC <팬텀싱어>, 마지막을 상정하고 배수진을 침으로써 참신해진 SBS <K팝스타>가 있었지만, 상반기 음악예능들을 보면 <판타스틱 듀오>, <신의 목소리>, <듀엣 가요제> 같은 프로그램들은 너무 천편일률적이었다.

 

음악예능만이 아니다. 여행 소재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소재다. SBS <꽃놀이패>의 경우, 여행 예능이 이제 끝물에 도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마치 <12><런닝맨>의 중간 어디쯤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다시피 <12><런닝맨>도 과거의 뜨거웠던 그 프로그램들은 아닌 게 지금의 현실이다.

 

또한 여전히 스타MC에 기대려는 속성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미 스타 MC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 시청자들도 좀 새로운 얼굴들을 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여전히 리스크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스타MC를 먼저 염두에 두는 기획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MC를 내세우게 되면 그들의 스타일을 반영하게 되고 결국 프로그램들은 비슷비슷해진다. 게다가 한 프로그램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 동시다발적으로 출연하는 스타 MC들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예능프로그램들을 식상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슬럼프는 어찌 보면 도약을 위한 과도기적 상황일 수 있다. 즉 변화라는 것은 결국 저점을 찍었을 때 비로소 실행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의 달콤했던 성공의 기억들을 지워내야 한다. 그리고 열어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리스크일지라도 감수하지 않으면 슬럼프는 벗어나기가 어렵다

<집밥 백선생>의 맛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레시피들

 

tvN <집밥 백선생>을 그냥 시청하는 것과 그걸 보고 한 번 따라 해보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냥 보는 것이야 음식을 소재로 한 토크쇼에, 쿡방과 먹방을 덧붙여놓은 정도지만, 직접 따라서 해보는 건 마치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번 성취감을 맛본 후에는 프로그램이 완전히 달리 보인다. , 양파 같은 기본 재료들도 심상찮게 보이고 그걸 볶거나 삶거나 하는 조리 과정도 새롭게 다가온다. 재료를 달리해 저 조리방법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러면서 다음 회의 재료가 공개되면 미리부터 마트로 가 그 재료를 사 놓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도대체 <집밥 백선생>이 나한테 무슨 마법을 건거야 하는 생각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집밥 백선생2(사진출처:tvN)'

<집밥 백선생>은 비판이 많았다. 백종원이 프렌차이즈 사업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집밥과 과연 어울리는가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또 물론 방송의 과장된 편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슈가보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지면서 지금도 설탕을 넣을 때면 미묘한 머뭇거림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이 있다고 해도, <집밥 백선생>이라는 프로그램이 우리 같은 요리무식자들에게 주는 효용성은 모든 걸 용서하고도 남는다. 집에서 홀로 해먹는 요리라고 해봐야 라면 끓여 먹는 정도였던 우리를 이제는 볶음 우동도 만들고 쟁반 짜장도 만들며 제육볶음 정도는 뚝딱 해치우고, 양파만 달달 볶아도 맛이 완전히 다른 카레를 내놓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물론 이런 레시피가 새로운 것은 아닐 게다. 하지만 제 아무리 레시피가 있으면 뭐하나. 그걸 보고 실제로 해볼 수 있을 만한 동기를 부여해주지 않는다면 두꺼운 요리책 속의 수많은 레시피들은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을 게다. <집밥 백선생>은 그래서 그저 어떤 재료들을 갖고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대한 기본 레시피만으로 맛을 낸 프로그램이 아니다. 거기에는 이 프로그램만이 갖고 있는 독특하며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숨겨진 레시피들이 있다. <집밥 백선생>만의 특별 레시피.

 

1. 간편하다

<집밥 백선생>의 특별 레시피 중 가장 강력한 건 바로 간편하다는 점이다. 그 많은 만능을 제조해낸 건 바로 이 간편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만능간장, 만능된장, 만능고추장, 만능춘장까지. 물론 음식전문가들은 이 만능의 천박함을 얘기한다. 그런 단순한 공식(?)이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음식의 세계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해먹는 음식이 모두 작품처럼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다. 특히 요즘처럼 맞벌이 가정이 늘고 있고 그래서 간편하지 않으면 해먹기 힘든 현실 속에서는 음식을 작품 대하듯 하는 이런 태도가 심지어 위화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똑같아도 좋으니까 기본이라도 하게 해줘. 아마도 <집밥 백선생>의 간편함에 환호하는 열혈 시청자라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2. 응용이 무한하다

간편하게 만능으로 일단 장을 제조해 놓고 냉장고에 넣어 두면 그 응용이 무한하다는 점은 <집밥 백선생>의 레시피를 일종의 마법처럼 여기게 되는 이유다. 만능간장 하나로 꽈리고추에 넣어 먹기도 하고, 잡채를 만들기도 하며, 가지를 조려 먹기도 한다. 만능춘장을 만들면 단 몇 분 만에 쟁반짜장이 가능하고, 짜장 라면이 짜장 떡볶이는 너무 쉬운 음식이 된다. 이건 단지 만능 장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 테면 파 기름 내는 것 하나만 알고 있어도 볶음밥 맛이 달라지고 볶음 우동의 맛이 달라진다. 한 가지 레시피를 알고 나면 거기에 재료만 살짝 바꿔도 다른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지대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레시피대로 따라하다가 차츰 다른 재료를 넣어 응용해보게 되는 것. <집밥 백선생>의 세계는 초심자들도 요리라는 즐거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3. 이건 마치 화학실험실 같다

남자들에게 그래도 요리가 낯설다면 <집밥 백선생>은 그 부엌을 마치 화학실험실처럼 활용함으로서 그 낯섦을 상쇄시켜준다. 계량컵으로 돼지고기 두 컵, 간장 한 컵, 양파 두 컵... 이런 식으로 죽 늘여놓고 그걸 프라이팬에 하나씩 차례로 넣어 요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요리에 익숙지 않은 남자들에게는 마치 화학실험을 하는 것 같은 흥미를 유발한다. 물론 이 화학실험은 그 결과물로 맛좋은 안주를 만들어내기도 하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4. 없어도 된다

요리 무식자에게 재료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무슨 요리를 레시피를 보고 하려고 하다가도 재료 하나가 없다면 포기하는 게 다반사다. 요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그 재료가 없으면 결코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밥 백선생>에서는 없는 건 없는 대로 패스하는 통쾌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원 재료가 없을 때 대체할 수 있는 걸 알려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굴소스가 없을 때 간장으로 비슷하게 맛을 내는 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모든 게 있어야 제 맛을 낸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 포기하게 되는 요리를 <집밥 백선생>은 쿨하게 패스함으로써 우리 같은 요리무식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5.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이른바 요리에 대한 신화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다. 이를테면 엄마의 손맛같은 것이 그것이다. 물론 엄마의 손맛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과도하게 신격화하는 건 요리를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장벽을 만든다.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집밥의 의미를 과도하게 엄마의 밥상으로만 상정하게 되는 것도 이런 신격화 때문이다. 하지만 <집밥 백선생>은 내놓고 누구든 따라 하기만 하면 되유라고 말한다. <집밥 백선생>은 그래서 누구나 집에서 해먹는 밥집밥의 의미로 재위치시킨다.

 

6. 고급진 것처럼 보인다

가끔 쑥스러운 듯 백선생은 우리끼리의 사기라는 표현을 쓰면서 똑같은 음식도 조금만 달리해 고급진것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물론 전문요리사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을 알려주면서도 이런 자기 폄하를 하는 것이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 팁이 굉장히 유용하게 활용된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고 눈으로도 먹는 것이니. “있어 보이는 건맛만큼 중요한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있어빌리티가 또 하나의 능력으로 치부되는 시대에는 더더욱.

쿡방은 끝물? <집밥 백선생>은 다르다

 

쿡방은 끝물인가? 사실 너무 많은 쿡방, 먹방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이제 식상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tvN <집밥 백선생>을 보는 시선은 약간 다르다. 그저 방송으로서의 재미만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은 실제로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요리무식자들이 주방 문턱을 넘는 것을 수월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집밥 백선생2(사진출처:tvN)'

<집밥 백선생>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은 물론 있다. 때로는 과해 보이는 양념이나 편법처럼 보이는 간단한 레시피. 그것이 집밥이라는 의미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선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집밥은 당연히 엄마의 밥상이라는 그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일일 수 있다. 집밥을 그저 집에서 누구나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밥 정도로 내려놓고 보면 요리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벽을 넘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요리를 너무 성역화하는 관점은 이제 넘어서야할 때가 되었다.

 

<집밥 백선생2>의 첫 회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를 정확히 보여줬다. 네 명의 새로운 제자들, 김국진, 이종혁, 장동민, 정준영은 요리 자체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편안함(?)을 주는 인물들이다. 요리 앞에서 이들의 어리숙한 모습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은 웃음과 동시에 나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토스트는 물론이고 계란 프라이 하나 해본 적 없어 보이는 모태 요리무식자 김국진은 물론이고, 닭볶음탕에 불순물도 제거하지 않고 마구 양념만 집어넣어 끓여내는 이종혁, 나름 완벽주의자에 창의적인 요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괴작을 만들어내는 고집불통 장동민, 요리 블로거로서 허세와 폼은 가득하지만 정작 맛은 별로 없는 요리를 만들어온 정준영. 이들이 이번 시즌2에서 보여줄 변화와 성장은 고스란히 시청자들 스스로도 그런 변화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즌2 첫 회에서 도드라진 건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이다. 잘 안하지만 하면 나름 잘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이종혁이 요리를 하려는 이유는 우리가 <아빠 어디가>를 통해 봤던 준수와 탁수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 위함이고, 한 번도 안 해온 요리를 김국진이 배우려하는 건 늘 엄마가 해주는 밥을 언제까지나 먹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국진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래서 <집밥 백선생>이 기획하고 있는 의도를 잘 드러내준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 수술을 받으러간 사이 김국진이 느꼈을 집밥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그래서 공감가는 대목이다. 늘 받아먹기만 했던 집밥을 이제는 나 스스로 해먹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고, 가능하다면 어머니가 원했던 것처럼 내가 배운 요리로 맛난 걸 해드려야 할 때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

 

결국 집밥이란 누구든 누구를 위해서든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지칭하는 것일 게다. 물론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레시피가 많은 요리무식자들을 위한 레시피로 활용되고 있지만 그런 정보보다 더 중요한 건 요리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는 일이다. 이것이 <집밥 백선생>을 그저 그토록 쏟아져 나오는 쿡방의 하나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이고, 우리가 <집밥 백선생> 시즌2를 기다려온 이유다

예능부터 드라마까지, tvN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치들

 

tvN <치즈 인 더 트랩>이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 겪은 갖가지 논란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역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를 이끌었던 <응답하라 1988>이 엔딩에 이르러 누가 누구와 결혼하느냐를 두고 벌어진 뜨거운 논쟁들은? <꽃보다 할배>부터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까지 내놓기만 하면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던 나영석 PD표 예능에 대해 최근 들어 힘이 빠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사실 tvN은 작년 한 해 동안만도 어마어마한 성장을 만들었다. 그 전면에 섰던 건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였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로 케이블로서는 그간 넘지 못할 벽이라 여겼던 두 자릿수 시청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면, 신원호 PD는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거푸 성공시키며 대표적인 tvN표 드라마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의 콜라보레이션은 지금 방영되고 있는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확실한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 명의 블록버스터급 프로그램들의 성공에 힘입어 <집밥 백선생>이나 <수요미식회> 같은 레귤러 프로그램들 역시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렇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형국이 만들어졌고, 이제는 두 사람이 아니라도 <미생>에 이어 <시그널>까지 대박을 낸 김원석 PD표 드라마가 또 한 축의 성공을 만들어내며 tvN의 브랜드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지상파 드라마에 식상해했던 시청자들은 이제 tvN의 영화 같은 장르드라마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연전연승과 승승장구에는 그만한 고민거리도 생기기 마련이다. <치즈 인 더 트랩><응답하라 1988>의 멜로를 두고 벌어진 설전이 말해주는 것처럼 tvN 드라마들은 비상한 대중들의 관심만큼 그것이 엉뚱하게도 논란으로 이어지거나 심지어 스포일러로 이어져 제작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이런 승승장구하는 대박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들은 높아진 기대치 때문에 부담감도 그만큼 늘어났다. <치즈 인 더 트랩>에 이어 그 바톤을 이어받은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2회만에 3.6%(닐슨 코리아)라는 꽤 괜찮은 시청률로 순항하고 있지만 이런 흐름은 또 이어질 후속작에 대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CJ로 와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작을 내지 않은 나영석 PD의 부담감은 그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여전히 뜨겁지만 <꽃보다 청춘> 시리즈가 과거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는 반응들 역시 적지 않게 등장하는 건 여러 차례 반복된 시리즈의 피로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다시 <삼시세끼>로 돌아가는 것도 그다지 좋은 선택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CP급이 된 나영석 PD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후배 PD들을 지원해주고 밀어주는 역할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은 1년에 하나 정도 천천히 준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당연한 선택이고 또 바람직한 선택이다. 너무 많은 기대감으로 인해 나영석 PD가 큰 부담감을 갖는 건 방송사로서도 또 그의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일이다.

 

지상파와 비교해 소소한 시청률을 기록했던 몇 년 전이라면 tvN의 이런 성과는 부담이라기보다는 축하할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상파와 본격적인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높아진 위상만큼 그걸 지켜내기 위한 고민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그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집밥 백선생>이 낮춰놓은 요리에 대한 진입장벽

 

보통 육개장이라고 하면 세 시간은 족히 공을 들여야 만들 수 있는 요리다. 고기를 푹 삶아야 하고 그렇게 삶아낸 고기는 일일이 먹기 좋게 잘라내야 한다. 국물을 내고 갖가지 재료들을 손질해 넣고 다시 끓여내야 비로소 육개장이 탄생한다. 물론 특별한 날에 엄마들이 정성을 들여 끓여낸 육개장 맛을 따를 건 없을 게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가족이 함께 산다고 해도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져 누구 하나 이렇게 시간 들여 요리를 할 여력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니 정식은 아니지만 단 20분의 속성으로 그 육개장 맛을 내는 백종원표 레시피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20분에 뚝딱 만들어낸 육개장이 저 엄마들이 정성들여 끓인 육개장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먹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요리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중요하다. 스스로 그럭저럭 만들어 끓여낸 육개장은 비록 간소화된 것이라도 우리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20분 육개장이 갖고 있는 이 간편함은 아마도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레시피가 갖는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요리는 어렵다? 사실 어려움보다 더 큰 문제는 귀차니즘이다. 삼시세끼를 해먹는다는 것은 물론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일 수 있겠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거리일 수 있다. <집밥 백선생>이 정곡을 찌른 곳은 바로 이 귀차니즘이다. 백종원의 역할은 대단히 특별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일상적인 요리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에 있다.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집밥 백선생>은 꽤 많은 레시피들을 공개했다. 우리를 처음 놀라게 한 건 만능간장처럼 한 번 만들어놓으면 두고두고 이런저런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간편함이 요리에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파스타를 라면 끓이듯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만능오일’, 다양한 고기 양념에 사용하는 만능소스같은 만능 시리즈를 소개했다. 이처럼 만능이 많아진 건 요리에 문외한인 남성들을 제자로 키운 덕(?)이다. 복잡한 건 딱 싫어하는 남자들에게 만능같은 요리 공식은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만능시리즈들에 주목하는 건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요리를 해온 주부들도 이 만능 시리즈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간편함 때문이었다. 굴전 하나를 만들어도 그냥 굴전이 아니라 초간단 굴전을 선보인다. 큰 사발에 굴을 넣고 부침가루를 넣어 조물조물 반죽하고 사발 한 켠에 계란을 풀어 계란 묻힌 굴을 기름에 부쳐내면 끝. 도대체 굴전 하나 만드는데 사발 하나로 계란 부치듯 쉽게 만든다는데 눈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혹자들은 이처럼 간편한 레시피가 본래 음식의 고유한 맛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집밥 백선생>이 백종원표 간편한 레시피를 알려주는 건 본래 음식의 고유한 맛을 지워버리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간편함을 더해 요리의 문턱을 낮춰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렇게 요리의 세계에 첫발을 디디고 혹 시간 여력이 있다면 더 본연의 음식을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집밥 백선생>1월 말을 기점으로 휴식을 갖는다고 한다. 6개월 남짓의 시간들이었지만 그간 꽤 많은 레시피들을 알려주었고 그것이 요리의 저변을 확대시킨 것도 분명하다. 된장찌개를 하나 끓이는 것도 또 김치로 전을 부치는 것도 그 레시피 자체보다 힘든 건 요리에 뛰어들기 위해 넘어야 하는 심리적인 진입장벽이다. <집밥 백선생>은 그 간편한 레시피를 통해 진입장벽을 한층 낮춰놓은 점에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영석 PD가 끌어주고 신원호 PD가 밀어주면

 

이제 일주일 남았다. <응답하라 1988>의 첫 방송. 아마도 <응답하라> 시리즈를 못내 기다려왔던 팬들이라면 이 일주일이 길게도 느껴질 법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응답하라 1997>이 성공하고 시즌2는 나오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던 신원호 PD였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가 나왔고 그것 역시 성공하자 분위기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제 계속해서 나올 것만 같은 쪽으로 흘러갔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하지만 거기서도 신원호 PD는 선을 그었다.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무성한 소문만 돌뿐 구체적인 계획은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가 2년여가 지나서야 <응답하라 1988>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응답하라>의 팬들 입장에서는 기다림이 길고도 긴만큼 기대감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 1988>은 이러한 기다림과 기대감만큼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촬영 때문에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는 신원호 PD인지라, 총괄기획을 맡고 있는 이명한 본부장에게 슬쩍 <응답하라 1988>에 대해 물었다. 주저 없이 대본이 잘 빠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기대할만한 얘기였다. 신원호 PD만큼 꼼꼼하게 연출을 해내는 감독도 많지 않으니 말이다.

 

<응답하라 1988>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 드라마의 소개에는 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 코믹 가족극이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다. 가족극이라고 하면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 것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 골목 다섯 가족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건 지금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과거에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웃들까지 큰 범주로서 가족 같은 관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층간소음으로 불미스런 일까지 벌어지는 아파트촌의 삶이 우리네 현실이 되어 있다. 그러니 이 코믹하고 왁자지껄한 가족극의 이야기는 의외의 향수와 따뜻함이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응답하라 1988><삼시세끼> 어촌편과 앞뒤로 편성되어 또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낼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미 신원호 나영석의 이 라인업은 2년 전 <응답하라 1994><꽃보다 누나>의 연속 편성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바 있다. 당시 <꽃보다 누나>는 첫 회에 9%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넘겼고 첫 회 2%를 간단히 넘기는 것으로 시작해 최고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격. 이명한 본부장은 이 나영석 신원호 라인업을 통해 올 한 해 tvN의 다양한 성과들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나영석과 신원호가 이른바 블록버스터들을 전면에서 성공시켜나가고, 주중의 레귤러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은 <집밥 백선생>이나 <수요미식회> 같은 허리를 받쳐주는 프로그램들이 포진했으며, 여기에 <오 나의 귀신님>이나 <두 번째 스무 살> 같은 tvN표 드라마들까지 선전했으니 올해 tvN의 수확은 대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 나영석 PD와 신원호 PD. 다음 주로 예정된 이들의 콜라보레이션은 그래서 마치 올 한 해 tvN의 성취를 표징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이들은 또다시 믿고 보는 PD로서의 성공담을 들려줄 것인가. 다음 주가 몹시도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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