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와이프’, 한지민을 보면 우리의 착각이 깨진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그가 맞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때가 있다. 지금 삶의 맥락 바깥으로 살짝 벗어났을 때 우리가 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사람이나 삶은 의외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 의해 부추겨진 세속적인 욕망과 클리셰에 빠져버린 일상 속에서 진짜를 보지 못했던 삶이 그 바깥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건 서우진(한지민)이라는 인물이 다른 상황에서 얼마나 다른 인물로 다가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 차주혁(지성)에게는 분노조절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숨 막히는 아내였지만, 과거를 되돌려 첫사랑에 성공함으로써 재벌가 딸인 이혜원(강한나)과 결혼해 살아가게 된 차주혁이 다시 만난 그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랑스럽고 건강한 인물이다.

그렇게 바뀐 운명을 살게 된 차주혁의 시선을 통해 <아는 와이프>는 과거의 서우진과 현재의 서우진이 어째서 그리도 다른가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서우진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차주혁이 현실에 지쳤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던 것들이 그를 달라보이게 하는 것이다. 흔해져버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일터에서의 갑질과,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자신만이 전담해야 하는 일처럼 의무가 되어버린 독박육아. 남편은 자신도 힘들다고 자그마한 숨 쉴 공간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지지고 볶는 워킹맘으로서 숨막혀하고 있던 서우진이었다. 

그 때 차주혁은 서우진이 얼마나 힘겨워 하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만 힘든 줄 알았다. 하지만 과거의 운명을 되돌려 이혜원과 결혼하게 된 그가 자신이 다니는 은행에서 다시 서우진을 만나고 그가 얼마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는가를 새삼 발견하면서 그는 깨닫는다. 본래 서우진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 드라마는 차주혁이라는 남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지금 현재 평균치 남성들의 시선을 가진 차주혁은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의 한계를 가진 인물로 시작한다. 차주혁은 돈 많은 아내 덕분에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가는 드라마 속 남성들의 로망처럼 그려지지만, 정작 그는 조금씩 그것이 허망한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재벌가 장인 댁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살아왔던 배경이 완전히 달라 이혜원의 삶의 방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상경해 집을 찾은 자신의 부모에게 호텔을 잡아주겠다는 혜원의 말은 이해는 되지만 남편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 사서 내놓은 듯한 스테이크보다 그는 우연히 찾았던 서우진의 집 어머니가 싸준 갓김치가 더 당긴다. 그는 문득 서우진과 함께 갔었던 분식집의 떡볶이와 돈가스 그리고 빙수가 그립다.

<아는 와이프>는 틀에 박힌 막연한 판타지들이 가진 허구성과 일상 속 깊이 스며들어 있어 체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네 삶의 불평등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재벌가 사위로 살아가는 차주혁이 게임 전용 소파까지 구비된 거실의 풍경이나, 은행에서 여직원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커피 심부름을 하는 그런 일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허구와 불편한 풍경들이 등장하는 건 그것이 당연한 삶이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판타지들이나 불편한 풍경들이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차주혁의 시선에서 가장 그 편견을 깨는 인물은 바로 서우진이다. 어떤 진상 고객 앞에서도 당당하고, 분노 조절 장애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 뒷얘기에조차 뒤끝 없이 풀어내는 털털함이 있고, 무엇보다 명랑하고 밝아 주변 사람들까지 밝게 만드는 건강한 에너지가 있다. 차주혁은 그를 보며 그가 알고 있던 그 아내가 맞나 다시금 눈을 의심하게 된다. 

서우진의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와 연결된다. 그래서 서우진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한지민은 우리가 알던 그 한지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귀여운 고등학생과 삶에 찌든 억척스런 워킹맘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밝고 사랑스러운 직장인의 모습을 넘나들며.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안다 착각하며 살아가는 걸까. <아는 와이프>는 그 이야기를 차주혁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채 살아온 남성의 시선을 통해 질문한다. 그가 봐왔던 것들과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표피적인 것들이었으며, 비뚤어진 것인가를 그가 서우진을 달리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통해 담아낸다.(사진:tvN)

이상한’이 가감 없이 보여준 요리·육아에 대한 편견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민지영의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해 함박스테이크를 만드는 모습이 방영됐다. 사실 그 장면은 조금 낯선 느낌을 주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이 특이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요리를 하는 걸 보니 사실상 요리를 하는 건 시어머니였다. 자신이 메인 셰프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야채를 칼로 써는 모습만 봐도 어딘가 불안할 정도였다. 결국 요리의 끝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몫으로 남았다. 민지영의 남편 김형균은 요리를 하는 동안 갑자기 졸립다며 혼자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잤다. 

그렇게 만들어진 함박스테이크을 민지영은 맛있게 먹으며 사진에 담았다. 그러면서 “시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첫 음식”이라는 것에 큰 의미부여를 했다. 김형균은 “시아버지가 만든 함박스테이크”라는 의미로 “시함박”이라 이름을 붙여 가족들을 모두 웃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시아버지의 요리로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가족의 풍경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요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보였다. 즉 여성들에게 요리는 당연한 것이지만, 남성이 하면 “해주는 것”으로 여기는 편견이다. 물론 시아버지가 요리를 해준다는 것 자체가 기특한 일이긴 하지만, 그걸 이색적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우리네 요리의 의무가 온전히 여성들에게만 부여되어 있다는 걸 에둘러 보여줬다. 

가장 프리(?)할 것 같았던 마리도 시어머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며느리라는 걸 김장을 함께 담그는 과정에서 보여줬다. 물론 각자 일정들이 있어 빠진 것이라고 해도, 김장처럼 몸 쓰는 일이 많은 일을 당연하다는 듯 여성들이 전담하는 건 우리 사회가 가진 요리에 대한 생각들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긴 손톱으로 힘들게 시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고, 마침 돌아온 시아버지와 수육에 김치를 얹어 같이 먹는 장면은 그래서 단란한 가족의 한 때처럼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여성들의 전담 의무가 되어 있는 요리에 대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육아에 있어서 이런 점은 더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수유 같은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육아를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만 남기는 건 불합리한 일이다.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에 있는 김재욱과 그의 아내 박세미는 과연 육아에 있어서 똑같이 그 일을 분담해나갈 수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관찰카메라라는 특징 때문에 우리가 지나치던 일상적 풍경들도 객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어준다. 며느리들과 그들을 둘러싼 삶의 풍경들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여자가 하면 당연하고 남자가 하면 ‘해주는 것’이 되어 있는 요리나 육아의 세계. 그 편견들을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이상한 풍경의 발견으로 드러내주고 있다.(사진:MBC)

‘미스티’, 만일 김남주가 범인이 아니라면 어째서 우리는

과연 강태욱(지진희)이 케빈 리(고준)를 죽인 범인일까.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강태욱이 케빈 리의 차를 뒤쫓아 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교통카메라에 찍혀 날아온 고지서를 우연히 발견한 고혜란(김남주)는 놀라워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강태욱이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 그 눈물은 어쩌면 당일 케빈 리와 고혜란이 함께 있는 장면을 남편 강태욱이 봤으면서도 눈감아주려 했었기 때문에 흘리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진 것을 그가 봤을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정황들은 강태욱이 케빈 리를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건 하명우(임태경)가 강태욱에게 한 말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명우는 강태욱이 고혜란을 사랑하는 건 알겠지만 보호해줄 수 있는 지는 아직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건 하명우가 강태욱에게 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 역시 고혜란과 얽힌 어떤 사건 때문에 살인죄로 감방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마치 하명우와 강태욱은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다.

게다가 강태욱이 드라마 초반 그처럼 고혜란에게 냉담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가 갑자기 이런 극적인 변화를 보인 어떤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건 케빈 리가 나타나면서 생긴 질투로 인해 촉발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됨으로써 고혜란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건 물론 가정이지만, 형사가 의심하고 서은주(전혜진)가 거의 확신하는 범인이 고혜란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즉 고혜란은 커리어우먼으로서 버텨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사력을 다해 고군분투한 것이고, 그래서 다소 술수를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실 보도’라는 자신의 소명을 다한 것뿐일 수 있다. 제 아무리 성공해 어떤 위치에 올라가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시아버지의 끝없는 욕망이 더해져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 안간힘을 쓴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현실의 압박을 깨치고 나오는 통쾌한 인물로 받아들이면서도 어떤 악녀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가 법 정의까지 무너뜨리고 언론을 탄압하는 세력과 맞서 싸울 때 어떤 통쾌함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가 성공하기 위해 남편의 사랑보다 일을 더 우선시 하는 모습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심지어 그가 진범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의심을 하게 되는 걸까. 혹 거기에는 여성들이 가정이 아닌 일을 선택하고, 사회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백안시하는 편견과 선입견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남성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들을 드러내는 것에, 심지어 그것이 부정한 방법으로 시도되었다고 해도 지지해왔던 것과 어쩌면 이렇게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갖게 되었던 걸까. 고혜란이 진범이든 아니든 이 커리어우먼이 보여주는 욕망의 질주를 어딘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그 비뚤어진 시선이 어쩌면 <미스티>가 궁극적으로 꼬집으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니었을까.(사진:JTBC)

‘미스티’, 김남주의 독한 연기가 남다른 느낌을 주는 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절박하게 만드는 걸까. JTBC 새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성공한 앵커 고혜란(김남주)이 처한 만만찮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치열하게 싸워 여성 앵커로서 성공한 인물이지만, 점점 나이 들어가고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앵커라면 실력과 경륜이 가장 중요할 수 있지만, 방송사가 고려하는 건 오로지 시청률이다. 그래서 당장 시선을 끄는 젊은 기자 한지원(진기주)을 그를 밀어내고 앵커 자리에 앉히려 한다.

고혜란은 앵커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방송사가 어떻게든 인터뷰를 잡으려 하는 케빈 리(고준) 프로골퍼 섭외를 앵커 자리보전을 위한 조건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케빈 리를 섭외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려는 그 순간에 오랜 병원생활을 해왔던 엄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결국 병원이 아닌 공항을 선택한다. 엄마 또한 늘 그에게 말했었다. 넌 성공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가 간다고 살아날 수 없는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하기보다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 

성공을 위해 달려왔고 그렇게 거머쥔 최고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비정한 고혜란을 남편 강태욱(지진희)은 납득할 수가 없다. 유명한 아내를 위한 마지막 배려로서 자신을 놓아줄 때까지 그냥 묵묵히 각자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그는 그래서 고혜란과는 쇼윈도 부부의 삶을 살아간다. 고혜란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생활에서는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이들과 싸워야 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자신이 기댈 곳은 전혀 없다. 스스로 아이를 지워버릴 정도로 그의 삶은 성공에만 맞춰져 있으니 그런 삶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선택한 삶이 점점 추락해가고 있는 걸 느낄 때, 그의 앞에 과거의 연인이었지만 미래가 없다는 이유로 그가 버렸던 케빈 리가 성공한 프로골퍼로서 나타난다. 그것도 보잘 것 없이 살아왔던 그의 여고시절 단짝 서은주(전혜진)의 남편으로. 독하게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현재 위치를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고혜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서은주의 존재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과거 자신이 버렸던 케빈 리 역시 은근히 자신을 도발하는 상황은 또 어떻고.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케빈 리를 섭외하고 자꾸만 그와 얽혀들게 되지만.

하지만 고혜란은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지원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그가 유혹의 시선을 던지는 케빈 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은 사진으로 한지원을 밀어낸다. 그에게 그 사진을 찍어준 기자 윤송이(김수진)는 그를 “독한 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좋다고. 

이건 마치 여성 앵커 버전의 <하얀거탑>을 보는 것만 같다.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이 병원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갖가지 술수들을 다 동원하는 것처럼, 고혜란도 방송국 앵커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자행한다. 심지어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 또한 저버리는 단계에 이른다. 도대체 그는 왜 이렇게 절박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방송국 앵커 자리는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유리천정이라고 불린다. 남성 앵커는 나이가 들수록 경륜으로 받아들이지만, 여성 앵커는 나이가 들면 교체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이 앵커만큼 여성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게 하는 직종이 있을까. 그러니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한 년”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여성이라는 성차에 대한 편견까지 공공연한 곳이 바로 거기이니 말이다. 

그래서 <미스티>의 고혜란에게는 그 독한 행보들이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되면서도 동조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렇게 독하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강한 공감이 깔려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10년 전 <하얀거탑>이 성공을 위한 질주와 그로 인한 파국을 통해 개발시대의 가장들의 자화상을 장준혁이라는 캐릭터로 담아냈던 것처럼, <미스티>는 지금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는 차별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독하게 버텨낼 수밖에 없는 커리어우먼들의 자화상을 고혜란이라는 캐릭터로 담아내고 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김남주는 그래서 고혜란 역할을 연기하는 모습 속에 여성 연기자로서 갖는 정서적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연기자들 역시 나이 들어갈수록 그 위치를 계속 버텨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현실이다. 젊은 연기자들이 치고 올라오고 방송은 더더욱 시청률에만 집중하는 현실이니. 김남주의 연기가 <미스티>에서 남다른 느낌을 주는 건 이러한 캐릭터와 배우 사이에도 존재하는 공감대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사진:JTBC)

‘감빵생활’ 박해수, 첫 회부터 빠져드네 이 캐릭터

뭐 이렇게 따뜻한 감방 이야기가 있나. tvN 새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리가 감방을 소재로 한 장르물들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그런 클리셰들을 뒤집는다. 동생을 성폭행하려는 괴한을 제압한 것이 뭐 그리 큰 죄일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슈퍼스타 프로야구선수인 김제혁(박해수)은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 판결을 받아 구치소에 수감된다. 일단 감방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 자체가 우리가 흔히 뉴스 사회면에서 발견하는 그런 사건이 주는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다.

판결을 받으러 법정으로 가는 길 형이 태워준 차를 타고 가는 김제혁은 자신의 삶이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맑은 날 기상예보가 말하는 눈이 오겠냐는 생각을 깨버리고 눈이 내리듯, 금세 빠져나올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길게 느껴질 감방생활이라는 터널 속으로 김제혁은 빠져 들어간다. 

구치소에 수감된 김제혁에게 벌어지는 일들도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예상을 뒤집는다. 구치소 풍경은 마치 갖가지 인물들이 모여 난장판이 되곤 하는 파출소 풍경을 닮았고, 수감되기 전 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비인권적인 몸수색은 의외로 인권을 고려한 몸수색을 바뀌어 있다. 이러한 클리셰 뒤집기는 그가 신참으로서 감방에 처음 들어가 고참들에게 당할 것으로 생각됐던 신고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신고식이라며 눈을 가리고 손목을 그어 그 피를 나눠 마실 것처럼 꾸몄지만 사실은 김칫국물을 떨어뜨려 그를 놀려먹었던 것. 

김제혁이라는 감방이 낯선 인물의 시점으로 들여다보는 감방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감방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장르물들이 하나의 상투적인 소재들로 활용됐던 그런 내용들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따뜻한 물에 샴푸를 하고, 소고기뭇국을 먹으며, 원하면 사과를 얻어먹을 수도 있는 곳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보여주는 감방의 정경이다. 

그래서 김제혁은 이 낯선 감방생활에서 고충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갑자기 구치소로 들어오게 되어 집에 택배로 온 전복과 문을 열어놓고 나온 일과 보일러를 켜놓고 온 일, 카드 값 같은 것들을 더 걱정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리와는 유리된 세계로 생각되던 감방이 사실은 우리 일상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곳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이렇게 감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클리셰를 여지없이 깨버리고 그곳 역시 일상적인 공간이라고 보여주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로 다가온다. 물론 같은 방에서 지내는 할아버지가 ‘묻지마 살인범’이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지만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물론 수감자에 대한 교도관의 체벌 같은 폭력은 없지만, 조주임(성동일)처럼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권력을 유용한 부정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감을 준다. 

그런데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도대체 왜 감방을 이토록 보통의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그려내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래서 엄청난 일이 또 벌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또 그 곳 역시 하나의 일상적 공간이라는 걸 통해 우리네 삶에 공존하는 일상과 비일상을 말하려는 건 아닐까. 

김제혁이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그는 야구는 잘하지만 일상생활은 어딘가 모자라는 듯 습득력이 느린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충격적이어도 다소 무디게 덤덤히 그걸 받아들이는 인물이며, 그러면서도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나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조금 모자란 듯 보이지만 돈을 요구하는 교도관에게 뇌물을 주기보다는 감방 동기의 어머니 수술비를 대신 내주는 그 행동에서 이 캐릭터가 굼뜨긴 해도 명쾌한 자기만의 사리분별을 갖고 있고 이를 거침없이 행동에 옮기는 인물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요즘 사람 같지 않은 훈훈함은 아마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그려내려는 감방으로 축소된 살풍경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고,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꿋꿋이 지켜나가며 살아가는 김제혁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사실상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이자 주제 그 자체처럼 보인다. 그래서 왜 신원호 PD가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박해수라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세웠는지 이해가 된다.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을 통해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라면 오히려 캐릭터에 어떤 선입견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별로 없는 하얀 도화지 같은 박해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김제혁이라는 인물 그대로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단 첫 회만으로 작품이 가진 인간적인 훈훈함을 그 무뚝뚝한 표정을 통해 드러내줄 정도로.(사진:tvN)

‘어서와’ 덕분에 갈수록 외국친구들이 늘어간다

우리에게 인도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하다. 여행자들에게는 편안히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어 있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 돼지고기는 아예 먹지 않는 곳으로 여겨지곤 한다. 카스트 제도의 영향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고, 빈부 격차는 심각할 정도로 큰 곳. 그런 곳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이고 실제로도 그런 모습을 갖고 있지만 그게 과연 전부일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나온 럭키는 한국에서 지낸 지 21년이나 된 인도친구다. 그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또 인도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도 알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선입견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 중간에 서서 우리가 가진 인도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인도친구들이 우리나라에 가진 선입견을 깨주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했다. 

인도가 치안이 불안하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며 빈부 격차와 신분사회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는 걸 럭키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초대한 친구들, 비크람, 샤샨크, 카시프 등은 우리의 이런 선입견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편견 없이 우리 문화에 스며들었다. 특히 흥 많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아이 같은 매력을 가진 비크람은 이번 인도 친구들의 여행을 더더욱 즐겁게 만들어준 존재로서 인도를 더 친숙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낯설 수 있는 한국음식을 선입견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나, 경복궁에서 한복 입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사진을 찍고, 한식 투어를 하며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런 모습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인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흥 많고 늘 농담을 던지는 그 낙천적인 사고방식은 오히려 인도가 가진 긍정적인 자산처럼 보였다. 종교적인 영향 하에서 생겨난 삶에 대한 긍정과 낙관.

비크람의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그의 시선으로 우리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다. 양평으로 떠난 캠핑 여행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날 비크람이 쓰레기 분리수거와 청소를 하는 우리네 문화를 영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점이 그랬다. 물론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할 일은 다 했지만, 비용을 치르고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런 일들을 스스로 한다는 것이 영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 사실 이런 문화는 우리에게도 가끔 낯설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지만 그걸 굳이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비크람의 행동은 그 문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사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이제 어느 정도 이 색다른 여행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이 공항에 도착하고 낯선 한국음식과 교통을 경험하고 친구를 만나 즐거운 한 때를 보내며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을 하는 것. 물론 그것은 대부분의 외국인 여행자들의 여행경험일 것이지만 방송이란 그걸 계속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패턴이 주는 단조로움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패턴의 식상함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아마도 매력적인 외국친구들 덕분일 게다. 독일 편을 통해 우리에게는 지금도 기억에 남게 된 페터, 마리오, 다니엘은 물론이고, 러시아 편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레기나, 엘레나, 아나스타샤 그리고 이번 인도친구들까지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에게는 외국친구들이 늘어가고 있다. 

돌아가는 그들에게 다시 오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친숙함을 느끼게 됐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많은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다. 이번 인도편에서 우리는 비크람, 샤샨크, 카시프를 처음 만났지만, 떠나는 그들은 어느새 박구람, 서상구, 강씨가 되어 있었다.

‘청춘시대2’, 우리네 청춘들에겐 너무 많은 폭력들

<청춘시대2>에서 시즌1에 비해 두드러지는 건 폭력적인 사회 현실을 담은 풍경들이다. 이미 시즌1에서 데이트 폭력을 겪었던 예은(한승연)은 대표적이다. 그 때의 그 충격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예은은 밤길을 혼자 걷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그래서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의 하우스메이트들이나 친구들이 그를 에스코트해주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청춘시대2(사진출처:JTBC)'

그는 피해자지만 그 때의 사건으로 오히려 더 고통을 겪는다. 며칠 간 납치 감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엉뚱하게 해석되며 누군가 자신의 사물함에 저주하듯 창녀라고 쓴 사진을 넣어둔 걸 발견한 그는 다시금 그 때의 가해자인 고두영(지일주)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피해자인 그에게 엄마는 도리어 그의 평소 행실을 운운하며 나무란다. 행실을 그렇게 해서 그런 일을 겪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은재(지우)는 그게 왜 예은의 잘못이냐며 발끈한다. “선배 엄마가 잘못한 거잖아요.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선배가 뭘 잘못했다고 엄마한테 그런 말을 들어요. 선배는 피해잔데 왜 선배 탓을 해요? 사과하라고 해요.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해요.” 성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에 대해 작가는 은재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예은을 ‘나쁜 사람’으로 덧씌우는 세상의 편견 속에서 유일하게 그를 챙기는 건 하우스메이트들을 제외하면 우연히 만나게 된 권호창(이유진)뿐이다. 그는 예은에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고 “예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역시 지독한 왕따의 피해자로서 자폐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타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그것을 겪은 이들 뿐이란 이야기다. 

<청춘시대2>는 그 인물 하나하나가 저 마다 겪고 있는 사회적 폭력들을 담고 있다. 벨 에포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듯 발랄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저마다의 폭력 앞에 놓여져 있다. 연예 기획사에 입사한 윤진명(한예리)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뭐라 항변할 수가 없다. 무려 5년간을 연습생으로 지내게 하고 가능성이 없어보이자 결국 계약기간 7년을 채우지 않고 해체시켜 버린 아이돌그룹을 보며 그 역시 부당함을 느끼지만 자신 또한 회사에서 생존해야하는 입장이다. 

벨 에포크로 오게 된 조은(최아라)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아빠 때문에 고통 받는다. 그 다른 여자 사이에 낳은 딸을 데리고 와 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며 엄마에게 이혼을 설득해 달라는 아빠의 말에 그는 또 다시 상처받는다. 송지원(박은빈)은 이 벨 에포크에서 가장 걱정 없어 보이는 털털한 캐릭터지만 그 역시 어딘가 과거의 커다란 상처가 잠재되어 있다. 그 상처로 인해 오히려 너스레를 떠는 지금의 성격이 생겼을 가능성이 여러 복선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청춘시대2>는 그래서 ‘청춘’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들의 풋풋하고 발랄한 사랑이야기만을 그리기보다는 그들이 겪고 있는 상처들을 다루고 있다. 그 상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청춘들에게 마치 당연한 듯 가해지는 폭력으로부터 비롯된다. 마치 아파야 청춘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지듯, 그런 정도의 폭력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현실. 세상에 청춘이어서 당해도 되는 폭력이 있을까. <청춘시대2>는 그 폭력들 앞에서 서로 연대하고 서로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주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아프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오는 드라마다.

'도봉순' 박보영, 이 슈퍼히어로가 던진 진짜 메시지

“너 왜 이렇게 치마가 짧아?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지마.” 인국두(지수)의 이 말에 도봉순(박보영)은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다. 젊은 여자들만 폭행 납치하는 사이코가 출몰하는 동네, 형사 인국두의 그 말은 물론 도봉순이 걱정 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비뚤어진 여성관을 담고 있다. 세상에 벌어지는 여성관련 성폭력 사건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성 때문인가.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기 때문인가.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놀라운 건 인국두의 이런 말에도 도봉순은 아무런 자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짝사랑해온 인국두의 이 말 속에 담겨진 “너무 예쁘게”라는 말에만 집중하며 행복해한다. 이런 상황은 시청자들이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의 인국두와 도봉순의 관계를 보며 어딘지 잘못됐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두 사람은 너무나 순수해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에 빠져 있다. 인국두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처럼, 도봉순도 사회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여성들에게 부가하는 ‘예뻐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그래서 도봉순은 그녀가 안민혁(박형식)과 술을 마시다 만취해 클럽에서 봉을 뽑아 흔든 것이 카메라에 찍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에 창피해하며 책상 아래로 들어가 우울해한다. 사실 이 장면은 여성을 성적으로만 소비하는 세태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다못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봉 하나를 세워두고 여성들이 봉춤을 추는 장면을 내보내는 시대가 아닌가. 그 봉을 뽑아 휘두르는 도봉순의 모습은 그냥 넣은 장면이 아닐 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극중 캐릭터 도봉순은 이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힘쎈 여자 도봉순>이 그 로맨틱 코미디의 포장 아래 숨겨둔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이 드라마는 그래서 도봉순이 동네에 출몰하는 사이코를 제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그녀가 스스로 각성하는 일이다. 사이코가 젊은 여성들을 유괴해 자신의 은신처에 가둬두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도봉순도 또 인국두도 마치 공기처럼 되어버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여성을 성추행하는 치한의 손가락을 비틀어 응징하면서 “내가 힘을 제대로 쓴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도봉순은 그래서 이러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지만, 자기가 만든 편견에 갇혀 그 힘을 공공연히 세상에 드러내는 걸 창피하게 여기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봉순 스스로가 이것이 여성으로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나아가 그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은 그녀가 놀라운 힘을 가진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된다. 그것은 이 땅의 여성들이 힘이 없어서 때론 핍박받는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존재하는 힘을 스스로 인정하거나 각성하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이 도봉순이 ‘힘쎈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될 인국두를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멋진 남성으로서의 자각이 될 테니 말이다. 

이 드라마가 이러한 캐릭터의 함의를 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역시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길 수밖에 없다. 힘과 여자를 이토록 멋지면서도 귀엽고 러블리하게 봉합해낼 수 있는 이 연기자의 결이야말로 이미 시청자들에게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얼마나 예쁜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임당에 드리워진 편견과 선입견들, 깨질 수 있을까

 

사실 어떤 인물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그 당대의 시선이 담기기 마련이다. 역사라는 것이 어차피 사실의 적시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덧대진 현재적 시선을 담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임당이라는 인물은 단적인 사례일 게다. 그저 율곡의 어머니라는 것이 강조되어 여필종부삼종지도같은 실상과는 그리 상관없는 현모양처 이미지가 후대에 덧대진 인물이 바로 사임당이기 때문이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그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하필이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시점에 드라마로 만든다는 이야기는 또 다른 오해와 선입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것이 박근혜 정부를 은근히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니냐는 섣부른 의혹까지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사임당을 연기하게 된 이영애와 그녀의 남편과 연관된 새누리당 이야기까지 덧붙여지니 드라마가 나오기 전부터 부정적인 의혹들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사임당은 애초에 여필종부나 삼종지도와는 상관없는, 훨씬 독자적인 삶을 살아온 예술가에 가깝다. 그녀는 당대의 결혼풍습이 허용하는 선에서 거의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펼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특히 뛰어난 여류 예술가로서의 사임당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오해와 선입견을 생각해보면 너무 과소평가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다.

 

최근 30부까지 편집된 드라마를 몰아서 봤어요. 큰 작품은 끝내고 나면 되도록 빨리 털어내는 편이라, 많이 잊어버린 상황에서 드라마를 보게 됐죠. 많이 잊어버린 상황에서 보다 보니 깜짝깜짝 놀랐어요. 대사나 내용을 보시다 보면 굉장히 리버럴(진보적인)한 드라마라는 걸 아실 거예요. 감독님께 우리 이거 미리 나갔으면 블랙리스트 1번 갔을 거다라고도 했어요.”

 

최근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기자간담회에서 박은령 작가가 굳이 블랙리스트라는 표현까지 쓴 까닭은 그간 사임당에 대해 쌓여 있는 오해와 선입견을 의식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블랙리스트라면 다분히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를 옹호하려 한다는 일부 선입견 역시 전혀 사실 무근임을 명확히 하려는 뜻이 그 말 속에는 담겨 있다.

 

이건 그저 작가가 이런 오해들을 우려해 그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그저 <사임당>이 아니라 거기에 빛의 일기라는 부제 성격의 제목을 덧붙여 놓은 건 이 작품이 예술가로서의 사임당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일 게다. 게다가 드라마는 사임당의 로맨스를 허구적 이야기 설정으로 담고 있다. ‘현모양처의 이미지와는 정반대 흐름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사임당에 대한 불편한 오해와 선입견이 만들어진 건 사실 사임당이라는 본인의 삶 때문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영수 여사의 국모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이미지가 덧 씌워졌다는 게 학계의 이야기다. 여기에 오만 원권에 사임당이 들어가게 되면서 그 부정적으로 덧씌워진 이미지는 불편함으로 굳어지게 됐다.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그래서 그 시작부터 넘어야 할 산들이 산재한 상황이다. 사임당이라는 본래 인물의 모습이 아니라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가져와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지금의 대중들에게는 너무나 불편한 잔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사임당, 빛의 일기>가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깨주는 것 또한 허구로 재구성된 것일지라도 작품이 해야 될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떨까. <사임당, 빛의 일기>는 이 구태가 만들어낸 왜곡이라는 산들을 넘어 사임당이라는 인물의 현재적 가치를 새롭게 그려낼 수 있을까

비슷한 패턴 반복, <막영애> 역량 이어가려면

 

일터에서 각종 편견으로 시달리며 살아가는 영애씨(김현숙). 그녀에게 사랑이 나타나고 알콩달콩한 사랑이 익어가며 이번에는 영애씨가 결혼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갑자기 이를 가로막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결국 전전긍긍하던 영애씨는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드라마는 다음 시즌으로 넘어간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는 지금 이 패턴의 스토리에 갇혀 있다.

 

'막돼먹은 영애씨(사진출처:tvN)'

이번 시즌15는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고정 팬들에게는 영애씨가 제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라게 만들었다. 지난 시즌에서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결혼하지 못했던 승준이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한 후 돌아와 영애씨와 여전한 사랑을 확인하게 만든 드라마 초반에만 해도 그런 바람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혹시나역시나였다. 엄마의 반대를 간신히 이겨내고 승준을 집으로 초대해 정식으로 인사를 하려던 날 승준이 친구 상갓집에 간다며 나타나지 않은 것. 알고 보니 상갓집 간다는 것도 거짓이었고 그게 밝혀지자 승준은 쫓아오는 영애씨를 뒤로 하고 줄행랑을 쳤다. 전화도 받지 않는 승준 때문에 하루 종일 사고만 내던 영애씨에게 승준은 전화를 걸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낙원사 건물 판 돈으로 친구 빚을 갚아줘 무일푼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에게 돈을 타내려고 다녔다는 것.

 

결국 돈 때문에 영애씨에게 소식도 없이 잠수를 탔다는 사실은 그녀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허탈함을 느낀 건 영애씨만 아니었다. 드라마를 애청하던 시청자들도 똑같은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승준이 잠수 타고 전전긍긍하는 영애씨를 담은 2회 분의 이야기가 너무 작가의 자의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의도적으로 영애씨의 결혼을 가로막는 설정처럼 보였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는 패턴을 반복하며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벗어나 산으로 가고 있다.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가 고작 결혼 못해 안달 난영애씨의 이야기던가? 그렇지 않다. ‘막돼먹은현실에 대한 블랙코미디다. 영애씨의 일터인 낙원사가 실제 낙원이 아닌 찌질하기 그지없는 초라한 현실인 것처럼, 막돼먹은 건 영애씨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걸 이야기하려던 드라마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연애와 결혼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 자체로 우리네 사회의 편견을 깨는 요소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즉 막돼먹은 건 영애씨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인간미가 넘치는 영애씨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나 알콩달콩한 사랑을 이어가는 대목은 현실의 냉혹한 편견을 깨는 시원스러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애씨가 결혼에 집착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런 현실의 뒤통수를 치는 속 시원함은 사라지게 되었다.

 

애초에 다큐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을 내세웠던 <막돼먹은 영애씨>는 사실은 6mm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저예산의 현실을 역발상한 것이었다. 그러니 조금은 조악한 영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조악한 영상의 <막돼먹은 영애씨>막돼먹은 드라마로 보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영애씨라는 캐릭터와 저예산으로 찍혀졌지만 진솔함을 담은 이 드라마의 형식이 잘 어울린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화드라마의 편성 시간대로 들어온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제 그런 조악한 영상은 뛰어넘었다. 시즌15를 하고 있는 어찌 보면 레전드 시즌제 드라마라는 명성에 걸맞는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 하지만 어째 이야기는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차라리 다큐드라마 시절의 그 헝그리한 느낌이 그리워진다.

 

드라마가 결혼에 대한 집착을 하게 되면 이야기는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집착만으로 어떻게 드라마가 더 다양한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결혼 하는 것과 동시에 드라마도 끝내야 한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막돼먹은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을 영애씨라는 캐릭터를 통해 계속 끌어갈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라리 결혼을 하게 해주고, 그 이후에 벌어질 사건들을 이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우리네 현실은 결혼 후에도 막돼먹은 상황들이 너무나 많으니(어쩌면 갈수록 더 많아진다) 말이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45)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34)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110,288
  • 13617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