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만만’은 가고, ‘무릎팍도사’는 사는 시대

국내 대표적인 연예 토크쇼 ‘야심만만’이 5년여의 긴 여정을 끝냈다. 한 때 20%에 육박하던 고공 시청률에 비해서는 쓸쓸한 퇴진이다. 시청률이 어느새 10%대 미만까지 추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야심만만’의 추락을 불러왔을까.

재미와 정보의 균형이 깨지다
많은 이들은 프로그램 내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야심만만’은 설문 조사 결과 내용을 연예인들이 출연해 맞추는 형식의 토크쇼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맞추는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사담이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첫 키스하기 좋은 장소는?’이란 질문이 나오면 MC는 연예인에게 ‘언제 첫 키스를 했습니까?’하고 묻는 식이다. 이런 진솔한 연예인들의 이야기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미디어를 통해 회자되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알아본다는 두 가지 기능이 만나면서 ‘야심만만’은 재미와 정보를 모두 껴안을 수 있는 획기적인 토크쇼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그 균형이 깨지는 지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홍보성 질문들이 설문으로 등장하고, 출연진 역시 홍보를 위한 인물로 맞춰지면서 심리에 대한 정보는 온데간데없고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흐르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야심만만’이 추락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초창기 ‘야심만만’은 연예인들의 진솔한 이야기(사실은 사생활에 가까운)를 끄집어내면서 인기를 끌었으나, 지나친 홍보성 포맷으로 인해 그 신뢰성을 잃게 된 것이다. 2007년 들어 급부상한 리얼리티쇼들은 한편으로 ‘야심만만’의 진솔한 이야기마저 홍보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몸 개그가 자리한 세상, 말은 독해진다
한편으로 몸 개그가 자리를 잡으면서 말은 점점 자리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리얼리티쇼가 주창하는 리얼리티는 말보다는 몸에 손을 들어주었다. 몸은 가식 없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점점 편집의 공포에서 짧아져만 가는 개그의 시간 속에서 순간적으로 웃음을 주기에 적합했다. 반면 말로만 진행되는 토크쇼는 점점 ‘연예인들이 출연해 저들끼리 노는 말장난’ 정도로 인식되어갔다.

물길이 막히면 물은 돌아가기 마련. 몸 개그가 자리한 세상에서 말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더 커지고 독해지는 것이었다. 막말과 호통이 2007년도 예능의 키워드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독해졌다는 것은 단지 막말개그와 호통개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야심만만’의 밤이었던 월요일밤을 처음 잠식하기 시작한 것은 편성이 바뀌기 전 죄민수의 몸 개그가 작렬하던 ‘개그야’였다. 그러나 ‘개그야’의 편성이 바뀌면서 월요일 밤 토크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야심만만’은 물론이고 ‘지피지기’가 아나운서들을 내세워 토크를 시작했고 ‘미녀들의 수다’는 그 속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다.

‘야심만만’과 ‘지피지기’가 고만고만한 10% 미만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미녀들의 수다’는 15%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유는 논란을 몰고 다니는 몸과 말의 자극적인 배합 때문이다. 프로그램 명에서부터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굳이 미녀들을 모아놓고 서로 다른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성희롱에 가까운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는 데 있다. ‘지피지기’는 아나운서라는 베일에 싸인 직업의 속살을 끄집어내면서까지 분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몸이 부상하고 말이 가라앉은 세상, 자막이 뜨다
왜 하는 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도전에 기꺼이 몸 하나를 던져 웃음만을 끄집어내는 몸 개그가 급부상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이 독해지고 거칠어지고 커지면서 토크쇼가 하던 말의 본래기능은 자막으로 흡수됐다. 오로지 웃음을 만들기 위해 몸을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 자막은 스스로 비하하거나 꼬집으면서, 오히려 그 몸 개그가 웃음만을 위한 것이란 점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같은 자막들이 몸 개그와 함께 등장하는 식이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몸 개그의 힘 앞에서 거칠어진 말은 과거처럼 편집되지 않는다. 이유는 이 프로그램들이 리얼리티쇼를 주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본에 의한 대사가 아닌, 즉흥적인 애드립에 의존하는 말을 수위가 높다해서 편집을 해버리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리얼리티의 손실로서 드러난다. 따라서 말 수위는 높게 하면서 그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은 자막이 맡았다. 출연진이 우연히 만난 청소부에게 실수로 비하에 가까운 말을 한다 해도, 자막은 이런 식으로 붙는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이런 자막이 붙는 순간 그 출연진의 막말은 프로그램 자체가 매도시키는 셈이 된다.

알 수 없는 행동들과 순서가 없어 서로 뒤엉키는 거친 말들이 오고갈 때, 촌철살인의 자막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니 몸 개그의 시대에 말이 선 자리는 두 지점이 된다. 하나는 독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막으로 남는 것이다. ‘야심만만’의 종방이 말해주는 것은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추면 성공하던 토크쇼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점이다. 이 리얼리티 시대에 강호동이 처한 입장은 토크쇼의 변화를 또한 말해준다. ‘야심만만’의 강호동은 가고,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은 살아남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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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순’, 핸드볼을 닮은 아줌마들

그동안 많은 스포츠를 다루는 영화들이 포착한 것은 이 땅의 마이너리티였다. ‘슈퍼스타감사용’의 패전처리투수 감사용이 그렇고,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외인구단이 그러하며 ‘말아톤’의 초원이와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이가 그렇다. 최근작으로 다큐멘터리로서 놀라운 흥행을 거둔 ‘비상’의 인천유나이티드FC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소외되거나 주목받지 못한 변방의 인물들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여자 핸드볼팀 역시 이런 견지에서 보면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감사용이나 외인구단처럼 늘 꼴찌를 해왔던, 그래서 한번의 우승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이 아니며, 초원이나 기봉이처럼 장애를 이겨내고 평범함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아니다. 물론 인천유나이티드FC처럼 최하위팀도 아니었다. 그들은 경기장에서만큼은 시작부터 늘 최고였고 이미 올림픽 2연패의 주역들이었다. 이 점은 임순례 감독에게는 여러 모로 의미부여가 가능한 지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늘 평가절하 되어온 여성, 특히 결혼한 아줌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실력이 아닌 돈의 논리로 인기종목은 더 인기를 끌고 비인기종목은 더 소외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들의 ‘박수 받지 못하는 우승’, ‘우승하자마자 해체되는 팀’에서부터 시작된다. 술자리에서 이제 갈곳이 없어진 팀원들이 신세한탄을 할 때, 최고의 선수였던 미숙(문소리)이 가장 당연한 듯 상황을 받아들이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만큼 미숙은 오랜 핸드볼 경기를 통해 포기를 밥먹듯 살아왔던 셈이다. 하지만 그 포기는 핸드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팀은 해체돼도 직원대우를 해준다는 말에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정직원이겠죠”하고 미숙이 물었을 때, 그녀는 이미 당연히 비정규직이란 점을 예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상으로 돌아간 그들의 삶은 핸드볼과 닮아있다.

경기 때문에 생리 조절을 하기 위해 약을 복용한 탓에 불임이 되어버린 정란(김지영), 일본에서는 잘나가던 감독이지만 국내에 와서는 이혼녀라는 이유로 감독대행에서 경질되고 선수로서 뛰어야 하는 혜경(김정은), 그리고 남편 때문에 빚쟁이에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어 늘 경기장에 아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고 한편으로는 생계를 위해 뛰어야 하는 미숙은 핸드볼 경기 그 자체와 동일한 처지다. 게다가 그들은 핸드볼 팀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이른바 아줌마들이라는 편견, 구시대적 방식을 고수하는 늙다리로 후배들에게나 감독에게서 모두 비아냥을 듣는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핸드볼이다. 비인기 종목으로서의 핸드볼은 생계를 어렵게 했고, 그럼에도 핸드볼을 떠날 수 없는 삶을 만들었다. 수많은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자학적인 포기가 일상이 된 그들이 다시 그 지긋지긋한 핸드볼 팀으로 모여든 이유는 그들에게 있어 핸드볼만이 그들의 심장을 뜨겁게 해준 진짜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편견 어린 세상과 싸움을 시작한다. 일상 속에서의 남성들과 주목받는 인물들이 그러한 것처럼, 상대는 신체조건이 월등히 좋은 유럽선수들이다. 그들과 대항하기 위해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인 훈련 따위가 아니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경기 속에서 이미 알고 있다. 그 방법은 ‘더 빨리 뛰고 더 많이 뛰는 것’뿐이란 것을.

이미 싸우는 방식도 알고 있고 그 방식으로 이겨본 경험도 있는 최고의 선수들이 다시 모여 고군분투하는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헐리우드 식의 ‘노력하면 된다’는 교훈담이 아니다. 이 영화는 포기에 대한 영화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 늘 걸림돌이던 남편의 음독으로 경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미숙이 전화를 한다. “미안한데. 나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포기하지마.” 그녀는 오랜 음지 생활 속에서 습관화 되어버린 포기, 희생 같은 것들을 그 순간 뛰어 넘는다. 포기를 넘어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도래한다. 그러니 경기의 승패 따위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이미 그들은 결과가 어떻게되든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여준 것이다.

임순례 감독의 탁월한 전략은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을 최고의 연출로 보여준다. 자칫 감정 과잉이 될 수도 있었던 영화는 그녀의 전략대로 다큐멘터리적인 차가움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영화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핸드볼은 팀 플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아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지칭한 것처럼 은근히 기분 좋은 연대의식을 부추긴다. 막연히 알고 있던 여자 핸드볼선수들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극장문을 들어선 관객들은 후배선수들과 감독의 시선을 공유하면서 차츰 변모하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내가 대한민국 아줌마들 안 믿으면 누굴 믿어”라고 말하는 감독과 같은 입장이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서 흘러나오는 실제 선수들과 감독의 다큐 영상으로 영화는 현실로 슬금슬금 걸어나온다.

그래서일까. 등장하는 실제 감독이었던 임형철 감독이 당시에 힘겨웠던 그들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억누를 때, 똑같은 감정이 되는 것은. 그 때 당시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감독처럼 그 영화를 보고 일어나는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해지는 것은. 그리고 뒤늦게 우리네 생애 최고의 순간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은. ‘우생순’은 그 성패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온 몸을 던져 노력하던 그 순간이 우리 생애의 최고라고 말하는 영화다. 당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느냐고 되묻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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