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기까지’와 ‘왕이 된 후’

‘이산’의 긴장감이 떨어진 이유
겉으로 보기에 ‘이산’이나 ‘대왕 세종’같은 최근의 사극들은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산’은 이미 정조(이서진)의 등극까지 험난한 과정을 끝내고 이제 통치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집중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숨 가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달려오던 ‘이산’은 영조가 죽고 정조가 즉위하는 순간부터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30%에 육박하던 시청률이 거의 20%까지 추락했다. ‘이산’은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졌다. 과거에는 성송연(한지민)과의 멜로 라인과 이산-노론 벽파 간의 대결양상은 병렬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한 가지 고리로 엮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연결고리가 흐릿해지면서, 각각의 이야기로 흩어지고 있다. 정무에 힘겨운 정조가 성송연을 가끔 그리운 얼굴로 바라보는 것 이외에, 둘을 이어주는 사건의 고리는 찾기 어렵다.

‘이산’이 막연히 ‘백성’이란 단어를 들고 나왔을 때는(주로 영조에 의해) 그 막연함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꽂혔을 것이다. ‘복잡한 건 싫고’ 그저 성군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한 단어가 더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왕이 된 이후의 정치는 다르다. 여기서는 막연한 ‘백성’이란 단어가 잘 먹히지 않는다. 현실정치의 세계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노비의 폐지’라는 정책 하나는 수많은 반대논리들을 이끌어내고 거기에서 대결양상을 만들어낸다. 그 논리 속으로 들어가면 진짜 정치가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은 ‘이산’ 제작진에게는 곤혹스러운 문제다. 제작진들은 시청자들이 바로 이 복잡한 정치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좀더 단순한 필터가 필요한 상황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노론벽파의 수장인 장태우(이재용)다. 정치적인 쟁점은 캐릭터가 세워짐으로 해서 선악 구도로 단순화된다.
이런 단순화 과정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껏 연승가도를 달려온 이병훈 PD가 사극에서 모두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다루고 그 정점에서 끝을 맺었던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병훈 PD에게 ‘이산’은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게다가 왕이란 캐릭터는 더 복잡한 정치를 그것도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이 부분을 대중들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대왕 세종’이 말해주는 정치사극의 어려움
거기에 대한 답은 오히려 ‘대왕 세종’이 말해주고 있다. ‘대왕 세종’은 이 두 가지 면모, 즉 주인공의 성장과정과 정치적 쟁점들이 모두 자세하게 다뤄지는 드라마다. 만일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대왕 세종’은 정치인이라는 전문직을 역사적으로 다루는 역사 전문직 드라마의 한 분파라 보여진다. 모든 주인공들의 대사들은 정치적 뉘앙스를 갖고 있으며 그 뉘앙스 하나로 어떤 인물들은 정치적 죽음을 맞기도 한다. 거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조차도 없으니, 이 하드보일드한 사극은 미드의 한국사극 버전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정한 시청률을(폭발적인 시청률이 아니다) 유지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이미 자리를 잡아버린 주말사극에 대한 관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쟁점과의 반대편 날개인 주인공의 성장과정 때문이다.

정치가 재미없다는 것은 정치에 대한 불신감에서부터 비롯된다. 내가 아무리 뭐라 해도 바뀌지 않는 정치의 세계, 그러니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가 되어버린 정치는 괜히 골치만 아픈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은 조장된 바가 크다. 정치적인 선택(하다 못해 투표 하나라도)은 골치가 아픈 게 아니라, 바로 우리네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가 주는 환타지(주인공의 성장)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을 뭐라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동시에 다뤄지는 현실의 문제(전문직으로서의 현실성)를 외면하는 것은 자칫 드라마의 반쪽(중독적인 면)만 반복해서 보는 경향을 낳을 수 있다. 왕이 되기까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이 된 후의 통치과정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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