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들은 그래도 마음가는 사랑을 한다

33세 여성들의 고민
‘여자 서른, 자신있게 사랑하고 당당하게 결혼하라’의 저자이자, ‘노처녀 통신’ 운영자인 최재경씨는 현재 한국의 여성들은 노처녀의 연령대를 대체로 33세로 본다고 한다. 여성들이 결혼보다는 사회생활을 통한 자아성취에 더 가치를 두면서 ‘결혼은 서른 너머’라 생각하는 만혼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3세를 노처녀로 생각하는 걸 보면 서른을 넘으면서 나름대로 결혼에 대한 강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최재경씨에 의하면 이 나이의 문제는 ‘괜찮은 총각들이 하나 둘 어린 여자들과 결혼을 해버려 결혼할 상대는 점점 줄어드는걸 알면서도 여자는 전혀 눈이 낮아지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자아성취를 위해 노력과 시간을 들여 얻은 지위와 재력, 학력 등으로 웬만한 평범한 남자로는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우야 뭐하니’의 33살 고병희는 좀 ‘색다른’ 노처녀이다. 33살이지만 뭐 하나 이룬 것도 없고, 연애라는 걸 해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다른 여자들처럼 현실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전작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그 ‘평범한’ 혹은 ‘평범 이하인’ 캐릭터가 가진 로망의 힘이 더 공감을 주고 설득력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김삼순의 문제가 ‘뚱뚱함’과 ‘촌스러운 이름’에 있었다면, 고병희의 문제는 ‘나이’와 ‘현실적인 능력, 지위 따위’에 있다. 왜 작가는 하필이면 보통(?)의 노처녀가 아닌 이런 경쟁력 떨어지는 노처녀를 주인공으로 세운 걸까.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는 33살이란 나이는 보통 여자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른 모양이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주책이라고 여기던 고병희가 드라마 중반 이후부터 박철수를 향해 ‘마음가는 대로하자’고 말하는 대목부터 드라마는 육체에서 마음으로 선회하며, 나이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것은 고준희와 박병각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상으로는 실제로 결혼과 같은 구체적인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 나이가 아닌 마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작가는 이들 캐릭터들의 몸의 나이와 마음의 나이가 다르다는 것을 통해 마음가는 대로해야 하는 확고한 이유를 보여준다. 고병희는 숫자로서의 나이가 주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 그 마음은 여전히 풋풋한 소녀이며, 박병각 역시 소년 같은 면모를 불쑥불쑥 보여준다. 심지어는 고병희의 엄마인 조순남은 아직도 오드리 햅번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소녀처럼 가슴이 설렌다.
현실 따위도 중요치 않아

우리 삶에서 33세 살 먹은 노처녀들을 여우에 비유하는 것은 그들이 고병희처럼 용기 있게 마음가는 사랑을 선택하지 않고, 사실은 나이, 현실, 조건 사람을 선택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 숫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먼저 스스로 나이가 주는 강박을 버리고, 마음을 직시하라고 한다. 그들에게 ‘여우야 뭐하니’하고 묻는 것이다.
사랑과 마음을 선택해야한다는 이 당연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은 작가가 구축한 탄탄한 캐릭터와, 어디선가 보았던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해낸 주연에서부터 조연까지의 출연진들 몫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공감의 이유는 이 당연한 질문에 당연하지 않게 살아가게 되는 우리사회의 나이에 대한 편견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 아닐까. 이 드라마는 나이, 현실, 조건을 자꾸 따지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여우들에게 용기를 내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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