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온 마스’에서 ‘수사반장’ 감성이 느껴진다는 건

OCN 토일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 최불암이 등장했다. 그것도 과거 <수사반장>의 한 장면 속에서 TV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다. 물론 그건 사고 이후 1988년으로 가게 된 한태주(정경호) 형사가 보는 환영 속에서다. 흑백화면의 <수사반장>에서 튀어나온 최불암은 한태주를 다독이며 “자넬 도와주러 왔네”라고 말했다. 

아주 짧은 장면이지만 <수사반장> 속 최불암이 이런 방식으로 <라이프 온 마스>에 들어왔다는 건 실로 의미심장한 까메오이자 오마주가 아닐 수 없다. <라이프 온 마스>는 현재에서 과거로 가게 된 인물이 겪는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혼돈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988년의 복고적 감성을 담고 있는 수사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수사물은 과연 지금의 수사물과 무엇이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 걸까. 

지금의 수사물은 MBC <검법남녀>가 보여주듯, CSI류의 과학수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들이 담겨지는 게 당연하지만, 198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담는 수사물이라면 사건도 또 그 사건의 수사과정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라이프 온 마스>가 가져온 정서는 바로 최불암으로 대변되는 <수사반장>의 감성이다. <라이프 온 마스>의 사건은 마치 <수사반장>의 시그널이 흘러나올 것 같은 우리 식의 정서가 깔려 있다. 

어느 조그마한 마을 갈대밭에서 청산가리가 들어간 막걸리를 마시고 죽은 이장의 살인자를 추격하는 사건이 그렇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유순희(이봉련)가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그 스스로도 자신이 이장을 죽였다고 증언해 사건은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뒤집는 한태주의 끈질긴 수사과정.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한태주는 순희의 딸 영주(오아린)가 이장에게 지속적인 추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이장에게 갖다 준 건 영주지만 그걸 시킨 건 이장의 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장의 딸은 남편마저 락스를 지속적으로 먹여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고, 심지어 운신이 불편한 엄마까지도 음식에 락스를 타 먹이고 있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비정하고 치밀한 존속 살인사건이었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비정한 사건 속에서도 <수사반장>식의 따뜻한 감성을 더했다는 점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지만 순희는 딸이 잘못될까봐 거짓진술을 했고, 딸은 엄마가 잘못될까봐 침묵하고 있었다는 모녀 사이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 그렇다. 

이런 식의 수사는 과거 <수사반장>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저 엽기적인 사건만을 해결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 최불암이 구축한 캐릭터는 그래서 그 비정한 현실 앞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인간에 대한 연민이 담겨진 그 시선을 보여주곤 했다. <수사반장>이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라 휴먼드라마 같은 느낌을 줬던 건 그래서다. 

이번 최불암과 <수사반장>에 대한 오마주는 <라이프 온 마스>가 그저 1988년으로 되돌아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그 독특한 장르적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사건에 있어서도 또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사건만이 아닌 사람이 보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라이프 온 마스>가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지만 완전히 우리네 드라마처럼 해석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최불암이 <수사반장>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드라마라니.(사진:OCN)

'효리네2' 우리도 이상순·효리와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다

비 내리는 날의 감각과 감성들이 깨어나는 것만 같다. 폭설이 내렸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을 재촉하는 촉촉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던 날, JTBC 예능 <효리네 민박2>의 감성과 감각들도 촉촉해졌다. 손님들이 모두 놀러 나간 후, 오붓한 시간을 갖게 된 이효리와 이상순이 빗속에서 노천욕을 즐기는 장면은 여느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기분 좋게 들려오는 빗방울이 데크에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에, 그 톡톡 터지는 그림 같은 정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뜨끈한 물속에서 고즈넉한 우산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이 일깨워주는 감각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욕탕의 따뜻함과 빗방울의 시원함, 그리고 조용할 때야 비로소 들리는 빗소리들과 한적할 때야 비로소 보이는 빗방울들이 온 몸의 감각을 깨우는 그런 느낌들이 비 오는 <효리네 민박2>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비가 오면 알 수 없는 설렘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이효리가 굳이 이상순이 품을 들여 애써 펴 놓은 우산 바깥으로 나와 비를 온몸으로 맞는 건 그래서일 게다. 촉촉이 내리는 빗물과 어우러지며 자연의 일부가 되는 느낌. 그래서 문득 너무 애쓰며 버텨왔던 어떠한 노력들도 그다지 불필요해지는 느낌. 이효리가 말하는 ‘자유’가 그런 것이 아닐까.

비가 오면 본래 소리는 더 낮게 깔리고 더 잘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에서 어디 그런 낮은 빗소리가 들려올 틈이 있을까. 하지만 갑자기 흥이 난 임윤아가 핑클의 ‘블루레인’을 부르는 소리는 아주 작게 불러도 이층까지 들려온다. 그 노래를 이효리가 함께 부르다가 결국 옥주현까지 전화로 연결해 맞춰가는 하모니가 그 어떤 공연보다 기분 좋게 다가오는 건 노래 자체 때문이 아니라 비 오는 날의 어떤 설렘 같은 게 거기 더해져 있어서다. 비, 추억이 깃든 노래, 오랜 친구에 대한 그리움 같은.

어둑어둑해지는 민박집으로 하나 둘 비를 피해 둥지로 돌아온 새들처럼, 저마다의 먹거리 한 가지씩을 가져온 손님들이 그걸 한 상에 늘어놓고 풍족한 저녁을 함께 하는 모습도 그 어느 때보다 정겹다. 민박객 중 누군가가 했던 말처럼, 크게 많은 일을 한 것 같지 않아도 저런 곳이라면 마음이 한없이 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에서 놓고 온 많은 일들을 잠시 모두 잊어버린 채 그 집과 사람들이 깨워내는 감각과 감성들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근 들어 자연이 주는 감각과 감성들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은 오히려 TV를 볼 때이다. 관찰카메라의 시대에 더더욱 정교해진 카메라들은 도시 생활을 하며 느끼지 못하고 잊고 있던 많은 소리들과 장면들을 속속들이 포착해 보여준다. 차 소리에 귀먹고 불야성 같은 도시의 빛에 눈먼 우리들의 감각을 아이러니하게도 관찰카메라가 잡아낸 소리와 장면들로 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미세먼지들 때문에 오히려 비 오는 날이 더 기다려지는 요즘, 비 오는 어느 날 제주도의 한 집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들은 그래서 남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효리네 민박2>를 보다 저들이 비가 오니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이 그리워지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봄비가 내리는 날이라면 이제 한 번쯤 잠시 멈춰서서 주변을 돌리고픈 마음이 드는 것도.(사진:JTBC)

'키스', 캐릭터에 설득력 부여하는 감우성 진심 담긴 연기

과연 감우성이 아니었다면 이 멜로 가능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초반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처럼 과감한 표현들과 설정들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처럼 보였다. 안순진(김선아)이 처한 힘겨운 상황들도 또 무표정의 삶을 살아가는 손무한(감우성)의 상황도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벼움이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드라마 마지막에 살짝 들어가는 ‘에필로그’는 무언가 이 멜로드라마가 생각만큼 가벼운 건 아니라는 예감을 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손무한의 시한부 삶이 등장하고, 안순진의 딸이 죽게 된 상황과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부서졌던 그 일들이 소개되면서 드라마는 꽤 무거워졌다.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는 걸 <키스 먼저 할까요?>는 드러내고 있는 것.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무한과 안순진의 멜로가 무거움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때론 웃음과 설렘까지 만들어내는 그 균형점을 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손무한이 과거 안순진이 그토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했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는 걸 알게 된 안순진이 그와 결혼까지 하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부부가 됐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안순진은 먹던 걸 토해내듯 자신이 손무한과 함께 한 시간들을 토해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그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겉으로는 재산이 200억이고 혼인신고도 했으니 그 유산을 받아 그가 죽은 후 혼자 빈둥대며 사는 게 ‘복수’라고 말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손무한의 옆에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어찌 보면 손무한이 지금껏 안순진에게 해온 ‘아낌없이 주는 숙주의 삶’에서 느껴진 사랑의 감정을 그 역시 느꼈기 때문일 게다.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러면서도 모든 걸 주고 가려는 그의 마음에서 어떤 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이야기 설정만을 두고 보면 굉장한 논쟁점을 갖고 있는 드라마다. 즉 이 드라마는 어느 제과의 과자 때문에 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내게 된 피해자와, 그 과자의 광고를 내놓고 사고가 난 후에도 피해자를 돕지 않았던 가해자가, 그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접근했던 ‘실수’로 ‘계획에 없던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다. 거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정서의 장벽이 놓여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해자가 어떻게 해야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사과와 용서를 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그러다 덜컥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2차 가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해지는 건 가해자로서 손무한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 죄책감과 부채감 그리고 어쩌다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손무한 역할을 연기하는 감우성은 놀라울 정도로 이런 논쟁을 무화시키는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진심이 가득 담긴 연기가 아니면 이 논점 많은 멜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사진:SBS)

‘키스먼저’ 야하기는커녕 먹먹한, 독특한 19금 드라마의 등장

“같이 잘래요?” 사실 19금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는 야한 뉘앙스를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는 이 대사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야하기는커녕 먹먹해진다. 그건 진짜 혼자이기 때문에 솔로의 중년이 겪는 불면의 고통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감우성)이 “자러 올래요?”라고 던진 질문에 1도 기다리지 않고 “네”라고 답하는 순진(김선아)의 모습에서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가 느껴진다. 

바로 이런 점은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멜로의 지점들이다. 청춘의 멜로라면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사랑의 궁극적 결실로서 등장하지만, 이들 중년의 멜로는 키스보다 ‘하룻밤’보다 더 큰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차갑게 식어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말 한 마디가 된다. 그래서 19금의 상황들이 대담하게도 전개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놀라운 감성들이 포착된다.

‘오늘만 살자’는 문신을 새긴 후, 안 해본 짓을 하겠다며 진창 술을 마시고 오래도록 안 해봤던 ‘같이 자는 일’을 하기 위해 코스프레 무인 모텔을 찾은 그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감성들 역시 이 드라마만이 갖는 멜로의 독특한 코드를 보여준다. 시청 앞 지하철 콘셉트로 꾸며진 방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그 공간이 주는 독특한 에로티시즘을 느끼기보다는 지하철이 주는 남다른 감흥에 젖어든다.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떠오르는 그 모텔 방의 정경 속에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무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그들을 같은 시간대의 같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머물고 있는 연인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버린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지나쳐갔을 것이지만, 어느 날 그렇게 한 공간에 서 있게 된 사람들에게서 새삼 느껴지는 기적 같은 느낌을 무한은 말한다. 그래서 그 곳은 지하철 콘셉트의 모텔이 주는 에로틱한 상상이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시간을 달리는 공간 위에서 드디어 마주한 운명적인 만남을 더 떠올리게 한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씩 결혼을 했고 배우자들의 배신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처를 겪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도 딱지가 앉은 채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먼저 두 사람은 단지 남녀의 욕망으로 이끌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없는 고적한 한겨울의 동물원에서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무한이 자살을 시도하려던 순진을 애써 구해낸 건 어쩌면 자신을 구해내는 일과 다른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욕망의 이끌림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상처를 공유하고 그 상처가 내 것인 양 다독이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래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의 19금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개되지만, 야하기보다는 먹먹해진다. 19금 상황 속에서도 욕망이 저만치 뒤로 물러나고 대신 그 순간이 주는 따뜻한 ‘기억’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마음이 더더욱 느껴지기 때문이다. “키스 하면 당신이 오늘도 기억을 지울 것 같아서” 무한은 순진에게 키스 하지 못한다. 

웬만한 일들에 그리 놀라지도 않고, 이제는 밖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별로 없어 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는 과정은 그래서 가슴 시린 느낌으로 다가온다. 19금이지만 먹먹한 이상한 드라마의 등장이다.(사진:SBS)

따뜻한 스릴러, 우리가 ‘터널’에 주목하는 이유

스릴러는 안 된다? 우리네 드라마의 오랜 공식이 깨져가고 있다. 그 시발점은 김은희 작가가 쓴 tvN <시그널>이었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해 잔인한 살인을 이어가는 스릴러물이지만 <시그널>은 놀라운 시청률과 완성도에 대한 호평까지 얻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스릴러물이 어떤 잔인함과 공포 같은 자극적인 소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피해자의 절절한 감성과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형사들의 간절한 감정 같은 것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시그널>은 그래서 스릴러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터널(사진출처:OCN)'

그러고 보면 OCN <터널>은 <시그널>에서 시작한 한국형 스릴러의 신호가 이제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터널>은 <시그널>의 그 인간적인 형사들이 주는 따뜻함이 전제되어 있고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들의 아픈 감성이 전편에 걸쳐 느껴진다. 그래서 이 3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온 박광호(최진혁)라는 인물이 어떻게든 살인범을 잡아 사건을 해결하고 본래 시간대로 되돌아가 그 후에 벌어졌던 많은 비극들을 되돌리기를 시청자들은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렇게 인물이 주는 인간적인 냄새는 박광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이 더 편안하게 스릴러 장르를 보게 되는 이유가 된다. 어딘지 우직하고 빈틈도 있어 보이는 인물이고, 30년 전의 사람이니 지금 시대의 디지털 문화에는 거의 무식자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가 30년 후 다시 만나게 된 강력1팀장 전성식(조희봉)이 과거 막내였다는 사실은 상명하복의 딱딱해질 수 있는 경찰서의 풍경을 때론 우습고 때론 훈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런 점들은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형사들의 입장에 빙의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스릴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범인을 잡기 위한 그 간절한 마음을 똑같이 느끼게 해준다. 

또한 스릴러 장르가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건 일종의 연속극 개념으로 드라마를 봐온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이 장르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들이 편편이 끊어지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의 캐릭터는 계속 쌓여질 수 있지만 이처럼 매 사건이 나오고 그것이 해결되면 다른 사건이 나오는 식의 전개는 드라마에 대한 점증적인 몰입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터널>은 여기서도 전개 방식에 있어서의 운용의 묘를 찾아낸다. 그것은 각각의 사건들이지만 그것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사건으로 연결시킨 점이다. 이를테면 신재이(이유영)라는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으로 입양됐다 돌아온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오빠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의 입을 열게 하는 이야기를 통해 설명된다. 어머니가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상처를 가진 김선재(윤현민)는 역시 군대에서 구타로 죽은 아들 때문에 아내까지 잃게 된 한 아버지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그 사건을 통해 설명된다. 

과거에서 온 박광호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같은 이름을 가진 형사 행세를 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범행을 저지른 한 여자의 사건을 통해 설명된다. 즉 각각의 사건들이지만 그 사건들이 환기시키는 상황들은 주인공들의 상황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으로써 각각의 사건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이들을 일관되게 하나로 모으는 건 바로 연쇄살인범이라는 존재다. 박광호도 김선재도 또 신재이도 모두 연쇄살인범이라는 한 인물을 잡으려는 공동의 목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사한 사건이 다시 벌어지고 과거에 잡았다 놓친 연쇄살인범 정호영(허성태)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며 그를 추적하기 시작하지만 새롭게 국과수 부검의인 목진우(김민상)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반전에 시청자들은 일관되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사실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건 어떤 외부에서 들어온 형식이 우리 식의 정서에 맞게 제대로 변형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터널>을 한국형 스릴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 정서가 저 미드의 스릴러와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자극적인 장면과 허를 찌르는 반전만이 아니라 어떤 따뜻한 느낌과 나아가 가족적인 관계망이 주는 끈끈함 같은 것들이 <터널>에는 유기적인 구성을 통해 잘 보여지고 있다. <시그널>이 촉발한 한국형 스릴러는 <터널>에 와서 완성되어가고 있다.

'미녀와 야수', 다시 보니 도드라지는 여성주의적 시선들

아마도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미 그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어떻게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됐던 왕자가 본 모습으로 돌아오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고, 하다못해 그 유명한 OST의 강렬한 음률 정도는 기억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실사판이라고 해도 영화 <미녀와 야수>를 보러 가는 이들이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진출처:영화<미녀와 야수>

하지만 의외로 <미녀와 야수>는 봄꽃이 한창 피어나 콘텐츠들의 비수기로 불리는 현 시점에 11일 현재 460만 관객을 넘어섰다. 다 알고 있는 뻔한 얘기일 수도 있는 <미녀와 야수>의 그 무엇이 우리네 대중들의 발길까지 잡아끌었을까.

그 첫 번째는 아마도 뮤지컬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미녀와 야수>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라라랜드>의 대성공은 뮤지컬 영화가 갖고 있는 묘미 역시 대중들에게 인식시킨 면이 분명히 있다. 어찌 보면 대사 도중 노래를 하는 뮤지컬 영화의 특성은 관객들에게 그 장르적 특성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뮤지컬 영화의 음악이 어떻게 대사보다 더 감성적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가 하는 그 경험을 충분히 연습시켜주었다. 

<미녀와 야수>는 물론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그 유명한 OST를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음악이 중요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흘러나오는 OST와 뮤지컬 영화로서 전편에 걸쳐 음악적이 재해석이 들어간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영화적 특성과 뮤지컬적 특성을 잘 연결해 마을에서 숲으로 숲에서 야수의 성으로 스펙터클한 카메라의 이동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깔아 넣는 음악의 묘미는 뮤지컬 영화만이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관객이라도 그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런 뮤지컬 영화가 주는 새로움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 <미녀와 야수>의 힘이 되어주었다면, 다시 보게 됨으로써 이 스토리가 가진 여성주의적 관점을 다시금 찾아내는 건 생각을 자극하는 지적인 힘이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법에 빠진 왕자를 구해내는 공주의 이야기이고, 진정한 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도발적인 질문은 벨(엠마 왓슨)이라는 여자주인공의 면면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마법에 걸린 야수와 잘 생겼지만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사냥꾼 개스톤(루크 에반스)의 대비는 비뚤어진 남성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들어가 있다. 사냥꾼이 가진 폭력성은 심지어 사람까지 사지에 내버려두는 잔혹함을 드러내지만 야수는 단 한 차례도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늑대들의 공격으로부터 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야수와 개스톤이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세워두고 영화는 누가 진짜 야수인가를 묻는다. 

여기에는 이성의 빛이 비이성의 어둠을 깨치고 나오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계몽주의적 시각 또한 깔려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벨이 엄청난 야수의 서재에 들어가면서 그의 지적인 매력을 알게 되는 장면이 그렇고, 책과는 담을 쌓고 대신 사냥에만 몰두하는 개스톤이 모든 걸 힘으로 얻어내려는 모습이 그렇다. 

여러모로 <미녀와 야수>에는 그 뻔한 이야기 이상을 담아내는 새로운 재미들이 촘촘하다. 뮤지컬 영화 특유의 음악적 재해석에 귀를 기울이며 영화에 빠져들다 보면, 이 이야기가 이토록 혁신적인 생각들을 일찍이 담고 있었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과 비이성, 미와 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점들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생각할 지점을 준다는 것 역시.

볼빨간 사춘기에 대한 열광, 이미 준비된 것들이었다

 

잘 영글었다. 한 번 들으면 빠질 수밖에 없는 목소리. 하지만 볼빨간 사춘기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귀를 부드럽게 긁어주었던 건 아니다. 이 소녀들이 <슈퍼스타K>의 오디션 무대에 나왔을 때만 해도 그 목소리는 제대로 영글지 않아 심지어 음정이 불안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도 이미 볼빨간 사춘기의 시대는 어느 정도 예고되어 있었다. 독특한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에 군살을 쪽 뺀 어쿠스틱한 사운드, 그리고 대단하다기보다는 귀엽게까지 다가오는 랩까지 어우러져 미처 영글지도 않았던 그녀들은 오디션 탈락 후에도 오래도록 귓가에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볼빨간 사춘기(사진출처:쇼파르뮤직)'

그리고 지난 4월 발표한 하프앨범 레드 이클(RED ICKLE)’에서 볼빨간 사춘기는 드디어 제대로 익은 목소리를 들려줬다. 거기 수록됐던 초콜릿이란 곡은 이 예사롭지 않은 신예 듀오의 색깔을 왠지 쌉쌀해 근데 또 달콤해라는 가사로 들려줬다. 안지영의 목소리는 초콜릿처럼 쌉쌀한 상큼함이 묻어나면서도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순수하고 밝은 사춘기의 이미지이면서도 때때로 목소리의 깊은 맛은 재즈싱어의 농익음을 담고 있었다.

 

당시 수록곡 중 가장 대중적인 느낌을 주는 곡은 싸운날이란 곡이다. 포크록의 느낌이 물씬 배어있는 마치 테일러 스위프트를 연상케 하는 이 곡은 경쾌하게 시작해 강렬한 사운드로까지 이어지며 볼빨간 사춘기의 다채로운 음악적 매력을 드러내줬다. 경북 영주의 시골밴드로 소개됐던 볼빨간 사춘기는 그 이미지 그대로 소박하면서도 소녀들 특유의 발랄함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몇 년 사이 여기에 그들이 갖고 있던 음악적 가능성들이 좋은 곡들과 어우러져 얹어졌다. 그러니 이들이 우주를 줄게라는 곡으로 역주행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는 일은 그저 기적이 아니다. 이미 이 소녀들의 음악은 우주를 줄 만큼 깊어져 있었으니.

 

볼빨간 사춘기에 대한 열광은 개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 좋은 음악, 공감 가는 가사 같은 온전히 음악적인 것들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다. 이 소녀들의 발랄한 이미지 역시 시각적인 것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먼저 이들의 음악적 특성들이 그걸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치장하는 것 하나 없이 온전히 무대에 올라 소박한 기타 반주와 목소리 하나로 어필한 무대. 그것이 볼빨간 사춘기가 가진 매력의 원천이다.

 

그녀들의 노래가 SNS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돌고 돌며 조금씩 대중들을 팬층으로 이끌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요란한 쇼케이스와 현란한 볼거리로 가득 채워지는 뮤직비디오들, 그리고 발매 즉시 차트 정상에 떡 하니 올라가는 그런 음악과는 다른 가치. 단번에 차트 정상에 오른 곡들이 그만큼의 속도로 사라져가는 것과는 달리, 볼빨간 사춘기의 곡들은 그래서 천천히 귀에 적셔져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과거 10센치가 대중들에게 어필했던 것도 그저 홍대의 한 카페에서 조촐하게 들려주는 노래들이 유튜브 같은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부터였다. 그 때도 권정열의 보컬과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윤철종의 기타 반주는 소리 소문 없이 대중들의 귀에서 귀로 전달되었다. 볼빨간 사춘기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역시 이런 흐름을 보이고 있다.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들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음악. 가을에 걸맞게 잘도 영글었다.

<내 귀에 캔디>가 끄집어낸 매력적인 감성들

 

마치 분위기 있는 멜로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건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리얼 예능이다. ‘폰중진담이라는 콘셉트로 방영되고 있는 tvN <내 귀에 캔디>는 오로지 스마트폰 하나로 배터리가 소진될 때까지 남녀가 소통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설정의 예능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과거의 폰팅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프로그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과는 사뭇 다른 매력적인 감성들이 묻어난다.

 

'내 귀에 캔디(사진출처:tvN)'

장근석과 유인나가 이른바 캔디폰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각자 다른 공간인 서울과 상하이에서 동시간대의 일상을 공유하는 장면은 사실 마법 같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 상하이의 동방명주 타워 근처를 돌아다니는 유인나와 서울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는 장근석이 서로 있는 장소의 사진을 주고받고, 때로는 화상 통화를 통해 연결되는 장면들이 그렇다. 유인나도 장근석도 얘기했듯 서로 다른 장소에 홀로 있었지만 그들은 마치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 귀에 캔디>라는 기획은 다분히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서로 목소리와 문자로 마음을 전하는 전화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있는 곳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의 기능도 갖고 있다. 그러니 과거라면 이 기획에 꽤 많이 필요했을 장치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는 셈이다. 물론 그들을 따라다니며 동행 취재할 PD와 작가는 필요하겠지만 오롯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두 사람이 나누는 소통에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스마트폰이다.

 

영상으로 모든 걸 공유할 수도 있는 시대에 굳이 서로의 존재를 블라인드 처리하고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게 한 건 그 베일에 가린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예능적 의도만은 아니다. 영상으로 모든 걸 드러내는 것보다 오히려 목소리로만 대면할 때 훨씬 더 진솔해지고 내면에 있던 진짜 속내가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근석은 그래서 자신의 어려웠던 청춘시절부터 최고의 주가를 올려 쉴 틈 없이 살았던 시절까지를 유인나에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그것은 연애 감정처럼도 여겨지지만, 그것보다 큰 건 누군가와 진심을 나눈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다.

 

<내 귀에 캔디>는 소통의 즐거움과 함께 여기 대상으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궁금증 또한 중요한 재미요소로 들어가 있다. 연예인들은 직업적 특성상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들은 그래서 어쩌면 진심을 주고 받는 일에 누구보다 갈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의 이런 욕구는 <내 귀에 캔디>라는 프로그램이 그들의 진솔함 면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배우 지수와 대화를 나눈 개그우먼 이세영은 자신이 직업적 특성 때문에 늘 과장된 모습으로만 비춰져온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걸 드러냈다. 지수와의 대화에서 온전히 한 여성으로서의 따뜻함과 귀여움을 그녀는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었다. 새로 등장한 경수진은 처음 연결된 상대남에게 낯설음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유인나가 얘기했듯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대나무숲 같은 존재로 상대방을 만들어준다.

 

<내 귀에 캔디>는 스마트폰 시대에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에는 수백 개의 전화번호들이 있지만, 그들 중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오히려 계속 울려대는 스마트폰에 관계의 피곤을 느끼는 게 현대인들이 아닌가. <내 귀에 캔디>는 이 상황을 뒤집어 스마트폰을 통한 진솔한 대화와 소통이 주는 묘미를 선사한다. 장근석의 진심과 그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그 과정을 보며 어떤 설렘을 느꼈다면 그건 우리 자신 역시 그런 소통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20주 동안 하현우, 고음 아닌 다양한 음악의 맛 살려

 

하현우!” MBC <복면가왕>에서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복면이 벗겨지는 순간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그간 얼마나 입가에만 맴돌며 부르지 못했던 이름인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암묵적으로 쉬쉬하던 이름. 그의 이름이 들려오는 걸 들으며 하현우는 아마도 그간의 부담감을 털어내고 속 시원한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복면가왕(사진출처:MBC)'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한다는 것만큼 가수들에게 이상한 일도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졌기 때문에 그 무대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사실 복면 쓰고 노래하는 모습이 부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면을 쓰는 건 단 한 가지 이유다. ‘편견없는 무대를 선보인다는 것.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무대는 강렬했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국카스텐의 하현우의 고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상상한 고음이 있다면 거기서도 또 한 차원 더 높은 고음으로 이어져 듣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드는 그런 고음이다. 그가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고 신해철의 ‘Lazenca save us’ 같은 곡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같은 곡은 그가 가진 절정의 고음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노래였다.

 

그리고 그 고음은 제 아무리 복면을 쓰고 불러도 국카스텐 하현우라는 걸 누구나 알게 만들었다. 목소리가 복면을 뚫고 나온 것이다. <나는 가수다2>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 있던 가창력. 하지만 <복면가왕>에서의 고음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즉 얼굴을 내밀고 절정의 고음을 부르는 모습이 어딘지 자신이 노래를 잘한다는 걸 강변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복면을 쓴 채 부르는 노래는 자신은 최대한 숨기고 대신 노래를 살리는 가수 본연의 모습을 더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러자 하현우의 고음이 아닌 다른 음색들과 매력들까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에서는 그가 얼마나 감성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었고,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차분히 불러낸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는 고음이 아니더라도 그의 노래가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걸 증명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가 된 공일오비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이제 10연승을 앞두고 스스로 무대를 내려오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더 강력한 가창력을 구사할 수 있었지만 하현우는 그보다 매력적인 휘파람 소리로 노래를 마무리 지었다. 20주 만에 복면을 벗은 그는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동네 음악대장 하현우가 증명한 건 <복면가왕>이라는 무대의 존재가치다. 이미 <나는 가수다2>를 통해 알고 있던 하현우의 가창력이지만 <복면가왕>은 복면이라는 장치는 그의 고음에 가려져 우리가 잘 몰랐던 그의 다양한 음색의 매력을 드러내주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복면이라는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차단막(?)이 이토록 큰 힘을 발휘할 줄이야

<슈스케>부터 <K>까지, 인디 기웃대는 오디션

 

<슈퍼스타K6>의 파이널 무대에 곽진언과 김필이 올랐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직접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싱어 송 라이터들이다. 각각 인디 신으로 활동해오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슈퍼스타K6와 K팝스타4(사진출처:Mnet, SBS)'

물론 이런 싱어 송 라이터로 활동하는 가수들은 이미 인디 신에는 넘치고 넘쳤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틈새를 타고 방송가로 넘어오고 있다는 것이고, 또 이들에 대해 대중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이미 각종 음원차트를 열면 그게 그거인 듯 반복되는 기성 가요계의 곡들에 식상해져 있다. 아이돌 아니면, OST가 대부분이고, 그 작곡자들이나 프로듀서를 염두에 둔다면 거의 몇몇의 인물이 가요계 전체를 독식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다 보니 가수는 달라도 노래는 다 비슷해지는 붕어빵 차트인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앞서가는 건 가요계 종사자들이 아니라 대중들이다. 대중들은 새로운 음악을 찾는다. 인디 신이 소박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방송가나 가요계가 외면하고 있어도 대중들이 이를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홍대 앞에서 노래 부르는 그들을 찾아 발품을 팔고, 유튜브를 뒤져 자신들이 좋아하는 인디 신의 음악을 SNS를 통해 알린다. 자발적인 흐름들이다.

 

그나마 가요계 흐름에서 가장 민감하게 트렌드를 반영하는 게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들어 인디 신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곽진언이 <슈퍼스타K6>에서 우승을 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흘러온 오디션 프로그램의 흐름이나 가요계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보면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저음으로 그저 자신의 목소리에 감정을 담아 조근 조근 가사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그 담담함이 대중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건 기성 가요계에서는 좀체 발견하기 힘든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대중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그런 음악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시작한 <K팝스타4> 첫 방송의 단연 화제는 인디 뮤지션인 이진아가 부른 시간아 천천히라는 곡에 쏟아진 열화와 같은 반응이다. 심사위원들이 보인 경악과 당황과 놀람이 섞인 조금은 과장된 심사평은 차치하고라도 대중들은 그녀의 키보드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것이 자신들이 듣기를 원하던 그 노래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인디 신에 이미 익숙한 대중들이라면 이진아의 시간아 천천히가 그리 낯선 곡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대중들에게 그 곡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라고 평하는 심사위원의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우습고 한편으로는 허탈하게 다가왔을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디 신에서 활동해왔다. 다만 방송과 가요계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곽진언도 이진아도 인터넷에 이름 석 자를 치면 이제 그들이 과거 활동했던 모습들과 당시 불렀던 곡들을 누구나 찾을 수 있다. 그 노래들을 들어보면 이들은 오디션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완성된싱어 송 라이터들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 때나 오디션 무대에서나 똑같은 음악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수들을 세워놓고 가창력이 어떠니 하며 가르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저음으로 부르는 곽진언이 우승을 하고 독특한 감성을 가진 이진아가 주목받는 시대다. 노래는 취향이 되었고 순위가 아닌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슈퍼스타K6><K팝스타4>도 인디 신을 기웃거리는 건 당연한 결과다. 지금껏 가요계와 방송이 무시했던 그들이지만, 그들만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며 묵묵히 음악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오디션 출연은 그래서 기성 가요계에 이런 질문을 새삼 던지고 있다. 좋은 음악이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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