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월화극, 조정석과 윤균상이 살아나려면

등장하는 주연들만 놓고 보면 이만한 기대작이 없다. MBC <투깝스>의 조정석이 그렇고, SBS <의문의 일승>의 윤균상이 그렇다. 전작이었던 작품들 속에서 이 두 배우가 거둔 성취는 도드라진 면이 있어서다. 조정석은 <질투의 화신>으로 코미디 연기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고, 윤균상은 <역적>을 통해 감정 선이 남다른 카리스마와 액션 연기가 모두 가능한 배우라는 걸 입증한 바 있다. 그래서 <투깝스>와 <의문의 일승>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키게 된 데는 아마도 이 배우들의 지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잔뜩 기대감을 갖고 들여다본 이들 드라마는 어쩐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투깝스>에서 조정석은 사기꾼인 공수창(김선호)의 영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차동탁이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라면 공수창은 어딘지 뺀질이에 바람둥이 캐릭터인지라, 이 둘을 오가는 조정석의 1인2역이 이 드라마가 주는 코미디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공수창 역할을 맡은 김선호는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간다면 아마도 가장 큰 수확은 김선호의 발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딘지 남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영혼 빙의’ 같은 황당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브로맨스 코미디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도 좋지만 그 속에 깔린 페이소스나 지향점 같은 것이 없는 코미디는 그저 휘발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깝스>가 그 괜찮은 연기조합에도 불구하고 조금 황당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이런 문제는 <의문의 일승>도 마찬가지다. 윤균상의 역시 믿고 보는 몰입도 높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설정이나 개연성은 너무 허술하다. 감옥을 들락날락한다는 그 설정 자체가 그렇고, 그 사형수 김종삼(윤균상)이 가짜 형사로 신분 세탁이 되어 비자금 천억 원의 행방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도 어딘지 황당하다. 물론 그 비자금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적폐에 대한 뉘앙스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암시하지만.

이건 이야기나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의 문제로 보인다.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납득시키기 보다는 빨리 전개하고 그 속에 반전과 위기를 넣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는’ 쪽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이러다 보니 디테일이 부족해지고 그 부족한 디테일은 개연성 부족으로 다가온다. <의문의 일승>이 보완해야 할 건 이야기의 속도보다는 이 인물의 행동 동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디테일한 개연성이 아닐까. 

그래서 <투깝스>나 <의문의 일승>은 조정석이나 윤균상 같은 배우들이 만들어낸 기대감을 생각해보면 2% 부족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투깝스>가 그 코미디 속에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부분이 부족하다면,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만큼 이를 납득시키고 몰입시키는 디테일들이 부족하다. 이 각각의 부분들이 향후 어떻게 채워질 것인가가 월화극 지상파 성패의 향방을 가르지 않을까. 과연 마지막에 웃는 배우는 누가 될까. 조정석일까 윤균상일까.(사진출처: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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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깝스', 조정석의 하드캐리 혜리 연기력 논란 잠재울까

MBC 새 월화드라마 <투깝스>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캐릭터가 절대적이다. 웃음기 없이 진지한 강력계 형사. 게다가 형이나 다름없는 파트너 조항준(김민종)이 살해당했다. 그러니 그 범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는 인물이 바로 차동탁 형사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다. 그래서 <투깝스>는 이 인물에 이른바 ‘깝’ 캐릭터를 집어넣는다. 감방에 있을 때도 조항준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던 사기꾼 공수창(김선호)과 의문의 추격자들을 피해 강물로 뛰어들었을 때 차동탁의 몸에 공수창이 빙의되는 것. 그래서 사건 해결을 위해 진지하기만 한 차동탁이라는 인물과 어딘지 뺀질이의 느낌이 강한 공수창이 동거하는 기묘한 캐릭터가 탄생한다. <투깝스>라는 제목은 바로 이 두 인물이 한 형사의 몸에 공존하는 상황을 통해 사건해결을 위해 공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정석은 역시 진지함을 통해 웃음을 주는 코미디 연기의 달인이라는 것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잔뜩 흥분하거나 진지한 얼굴을 보이지만 어딘지 그것이 드러내는 어린아이 같은 면면들이 은근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이제 ‘깝’ 캐릭터까지 겹쳐지면 조정석의 진가인 진지함과 가벼움의 공존을 통한 독보적인 코미디 캐릭터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투깝스>의 이야기는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전형적인 형사물이고 그 안에 복수코드가 담겨져 있으며, 벌써부터 이어지기 시작한 송지안(혜리) 기자와의 멜로가 예고되어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차동탁과 송지안이 서로 툭탁대며 이어지고 그것이 문득 설렘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니 <투깝스>가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으로 내세울 건 결국 캐릭터다. 같은 이야기라도 캐릭터가 독특하다면 새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동탁은 일단 충분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를 연기하는 조정석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고 실제로 첫 회만으로도 그런 매력은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드라마가 한 배우의 힘에 의해 온전히 움직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차동탁의 상대 역할인 송지안을 연기하는 혜리는 첫 방송부터 연기력 논란이 나오고 있다. 기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서 송지안을 보기보다는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를 더 많이 떠올리고 있어서다. 

워낙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남겨서인지 혜리의 새로운 연기는 그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인한 기자와 코믹한 캐릭터 사이를 오가야 하고, 또한 일과 함께 사랑을 연기해내야 하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캐릭터가 바로 송지안이다.

이 부분은 <투깝스>가 향후 넘어서야 할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조정석의 하드캐리가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혜리가 첫 회에서 갖게 된 연기력 논란은 스스로도 또 이 드라마도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았다. 과연 <투깝스>는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향후가 궁금해진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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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소재는 독특한데 어째서 이리도 어색할까

비행기를 탄 강하람(고아라)이 갑자기 옆에 탄 아이의 뒤편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는 경악하고, 기내의 많은 승객들에게도 그림자들이 있는 걸 알고는 미친 듯이 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OCN <블랙>이라는 드라마에 시선을 집중시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죽음을 보는 소녀가 타인의 죽음을 알면서 막지 못하는 그 능력을 ‘저주’라고 여길 때 그의 앞에 나타난 형사 한무강(송승헌)이 그건 ‘축복’이라고 말해주는 장면에서는 이 두 사람이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블랙(사진출처:OCN)'

이처럼 <블랙>은 최근 들어 특히 많아진, 타임리프 같은 장르적 장치를 가진(타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재의) 드라마의 참신한 변주처럼 다가왔다. 그 많은 타임리프들이 그러하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예지몽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다가오는 죽음’을 막기 위한 노력을 담은 드라마들과는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드라마. 게다가 한무강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다시 살아나는 대목은 향후 저승사자가 빙의된 그와 타인을 죽음을 보는 강하람과의 또 다른 모험담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살아난 한무강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속이 다 보이는 환자복에 잠바 하나를 걸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그 장르적 애매함으로 인해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긴장감을 흩어 놓았다. 마치 속을 다 보이겠다는 듯 쩍벌을 하고 앉거나 롱코트만 걸친 채 바바리맨처럼 여자화장실에서 옷을 열어젖히는 장면은 코미디를 의도한 것이지만 죽음이라는 무게감을 가진 이 드라마의 장르적 긴장감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즉 어느 정도의 유머는 괜찮을 법 했지만 이런 식의 ‘화장실 유머’가 가진 가벼움은 드라마의 성격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니 가뜩이나 연기로 해석하기 힘든 이 낯선 캐릭터 역시 어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기 변신을 의도한 듯 작정하고 뛰어든 모습이 역력한 송승헌이지만 그 장면들이 어떤 매력을 드러내기보다는 그저 망가진 느낌을 준 건 아쉬운 대목이다.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고아라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비행기 신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경악하고 오열하는 그 장면이 주는 충격파는 충분했지만, 그 후로 이 캐릭터는 너무 울거나 자책하는 장면들이 반복됐고, 때때로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응답하라 1994> 이후 늘 보였던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문제도 적지 않다. 한무강이나 강하람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이 몰입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블랙>이 독특한 소재의 드라마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소재가 독특할수록 캐릭터는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야 시청자들에게 그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코미디와 스릴러가 상생하지 못하고 있는 장르적 혼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제시되지 못해 어색하게 느껴지는 연기. <블랙>이라는 괜찮은 소재의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해야할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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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빙의체험을 하게 하는 <곡성>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영화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의 엄청난 에너지에 놀라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뒤집어놓은 도발적인 구상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영화가 일종의 미끼를 던져놓고 관객을 끝까지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며 불편해 한다.

 

사진출처:영화<곡성>

영화 평론가나 기자 같은 전문가들은 <곡성>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이다. 이것은 해외에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 칸 영화제에서 시사회가 끝난 후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은 <곡성>에 대한 찬사를 서둘러 쏟아냈다. ‘올해의 영화’, ‘칸 영화제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걸작’, ‘왜 경쟁부문에 안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악마에 홀린 듯 대단한 걸작’, ‘넋이 나갈 만큼 좋다’, ‘최근 한국영화 중 최고등등 찬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해외의 반응이 이처럼 뜨거운 건 이 영화가 지금껏 해왔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작은 마을에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과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스릴러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무당과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적 요소, 나아가 악마와 좀비까지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곡성>의 독특한 점은 어떤 명쾌한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체로 <곡성>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다. 낚시라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물고기는 자신이 왜 미끼에 걸려 이리저리 휘둘리다 비극적인 끝을 맞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의심을 하고 추정을 하고 믿어보기도 하지만 또 불신하며 배신한다. <곡성>의 종구(곽도원)은 그 과정을 몸으로 겪는 인물이다.

 

그리고 관객이 종구라는 인물을 통해 그 불가해한 일들을 겪어내며 풀어보려 안간힘을 쓴다는 점에서 그는 또한 관객의 매체가 되는 셈이다. 마치 무당이 귀신을 불러내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걸 이해해보려 하는 것처럼 종구는 관객에게는 <곡성>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무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어떤 상정된 메시지를 향해 당연히 달려가는 일반적인 영화를 보던 관점으로 <곡성>을 들여다보면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종구라는 인물 속에 빙의되지만 그 인물이 보고 판단하는 것들이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구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마을에 벌어지는가를 궁구하며 그 깊숙이 파고 들어가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미궁에 빠져 허우적댄다.

 

영화 후반부에 일광(황정민)이라는 무당이 등장해 한판 살풀이굿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관객에게는 굉장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이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종구라는 인물을 통해 코미디처럼 실실 웃으며 <곡성>의 영화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 관객들은 그가 처한 막막함과 절망감에 숨이 턱턱 막힌다. 마치 귀신들린 사람 같은 느낌을 관객 역시 똑같이 느끼게 된다. 그러니 일광의 살풀이는 마치 그걸 풀어줄 것 같은 강력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물론 풀어지기는커녕 더 복잡한 미궁으로 종구는 빠져버리지만.

 

<곡성>절대 현혹되지 마라라는 문구가 달려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절대 현혹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실은 현혹되고 있는 자신을 반증할 뿐이다. 종구는 그 미끼를 물었고 관객은 종구에 빙의되어 역시 미끼를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명쾌하지 않은 영화의 결론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그건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 감독은 의도한 바가 있겠지만 그 결론을 관객들의 몫이라고 남겼다. 이것도 어쩌면 미끼일 것이다. 사실 귀신과 영혼, 악마에 대해 현혹되는 이야기에 명쾌한 결론이 어디 있겠는가. 마치 명쾌한 결론이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영화는 역으로 공격한다.

 

<곡성>은 그래서 마치 빙의 체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바로 그 저항감 때문에 오히려 더 깊게 빠져들고 결국은 그 이면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체험이 모든 이들에게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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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귀신님'에서 '복면가왕'이 보인다면

 

tvN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은 나봉선과 신순애라는 두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본래 나봉선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몸으로 들어온 귀신 신순애(김슬기)는 굉장히 적극적이며 자기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고 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차원을 넘어서 심지어 엉큼하기까지한 모습이다. 그녀는 늘 셰프인 강선우(조정석)를 어떻게 자빠뜨릴까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 나의 귀신님(사진출처:tvN)'

아마도 그것은 신순애의 성격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그렇게 엉큼할 정도로 적극적인 건 그녀가 죽은 귀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처녀귀신이라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죽음을 경험한 그녀는 가끔씩 세상 다 산 사람같은 얘기를 꺼내놓는다. 뭐가 걱정이냐며,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오늘 맛있게 먹고 마시고 즐기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삶이 추구해야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또 그렇게 실천하려 한다.

 

이 신순애의 성격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핵심적인 재미다. 그녀의 도발은 강선우를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들고 당황시킨다. 그것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또 셰프와 보조라는 직장 내 권력관계에 있어서도 역전된 모습이다. 그녀는 말로만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실제로 틈만 나면 강선우의 허벅지를 더듬는다. <시티헌터> 같은 만화에서 여자들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고 코피를 터트리던 남자 주인공이 있었지만, 잘생긴 남자에게 이처럼 껄덕대는 여자 캐릭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도발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은 불편함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녀의 엉큼한 행동은 보는 이들을 빵빵 터트려주면서 동시에 그 귀여운 매력에 빠뜨린다. 많은 이들이 이것이 가능한 게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연기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박보영의 대체 불가 귀요미 이미지는 그녀가 그 어떤 엉큼한 짓을 해도 그 모든 걸 귀여운 짓으로 변화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생겨난다. 그녀가 그렇게 밝고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그녀의 외적인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성격 때문이라는 점이다. 나봉선은 첫 회에 그 본래의 성격으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별 매력이 느껴지지 않던 인물이었다. 소심하고 어눌하기까지 한 그녀는 심지어 답답한 캐릭터라 여겨졌었다. 하지만 김슬기가 연기하는 신순애라는 캐릭터가 빙의되면서 나봉선은 매력이 철철 넘치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의 매력은 그 외적인 것보다는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김슬기는 여러 연기를 통해 시원시원한 성격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성격 좋은 주인공의 친구 역할이 그녀가 늘 맡던 역할이었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필모그래피를 확고하게 만들면서 성장해온 배우다. 그녀는 확실히 연기의 맛을 낼 줄 아는 연기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친구 역할로 주로 출연하게 된 건 그녀의 외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외모 지상주의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는 주인공이라고 하면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기를 잘하고 또 가능성도 확실히 많이 보이는 김슬기에게 이러한 선입견과 편견은 넘어야할 벽이 아닐 수 없다.

 

김슬기가 박보영에게 빙의되어 캐릭터가 완성되는 <오 나의 귀신님>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MBC <복면가왕>이 떠오른다면 거기서 연기자와 캐릭터 이미지 사이에 우리가 생각했던 편견과 선입견이 벗겨져나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보영에 빙의된 김슬기가 비로소 박보영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그 설정은 외적 이미지만큼 중요한 캐릭터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김슬기는 마치 박보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보이고 있는 셈이니까.

 

물론 이건 드라마 속 캐릭터 설정의 이야기이지 박보영과 김슬기의 이야기는 아니다. 김슬기가 빙의한 박보영의 연기 또한 박보영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드라마의 설정이 주는 메시지는 읽을 수 있다. 김슬기가 빙의되지 않던 박보영이 별 매력을 보이지 못했던 것처럼, 외적 이미지는 내적 캐릭터를 만나지 않으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적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느냐에 따라 연기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김슬기는 우리가 막연히 외적 이미지로만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배우다. 물론 이런 양자의 캐릭터를 모두 끌어안고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박보영은 말할 것도 없다. <복면가왕>을 떠올리게 만드는 <오 나의 귀신님>은 그래서 연기자의 이미지와 캐릭터가 만나 만들어내는 매력이라는 것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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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스토리스토리 2011.12.08 13:52 Posted by 더키앙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들을 때마다 나는 호주에서 1년 간 지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도 '전혀 다른 나'였던 그 시절. 나는 통기타 하나 들고 캠퍼스 잔디에 앉아 노래 부르는 베짱이의 삶을 구가했었다. 어쩌면 그리도 걱정이 없었고, 어쩌면 그리도 자유로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할 지경이다. 해외여행을 나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공간에서 언어마저 다를 때 느끼는 그 당혹스런(?) 자유로움이란 때론 숨겨진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 때 나는 마치 연기자들처럼 그 자유로운 캐릭터에 빠져있었고 그 전혀 다른 내 모습이 주는 반전을 짜릿한 쾌감으로 즐기고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 몰입과 반전은 내게는 익숙한 경험이다. '아테나'를 통해 그 가녀린 몸에서 폭발적인 액션을 보여준 수애가 '천일의 약속'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보여줄 때,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그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던 김영철이 '공주의 남자'에서 추상같은 수양대군으로 변신할 때, 나는 그 몰입과 반전이 주는 소름끼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가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이미 촬영은 끝났지만 그 캐릭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여전히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기자를 보며 이 직업은 마치 '빙의'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떤 것에 몰입하고 있을 때, 그들은 숨겨진 또 다른 반전의 얼굴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 무심하게 쳐다보는 카메라 렌즈 때문에 도무지 몰입할 수 없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그 이물감 때문에 잔뜩 긴장해서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머뭇대던 그 기억들. 하지만 차츰 카메라가 익숙해지면서 이런 이물감을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어떤 질문들이 쏟아져 나올 때 마치 내 속에서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또 다른 얼굴이 고개를 내밀고 열심히 답변을 토해내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촬영된 방송분을 TV를 통해 확인하면 또 그 기분이 묘하다. 저런 얘길 과연 내가 했나 싶다. 그건 아마도 몰입된 순간에 튀어나온 내 속의 평론가라는 반전의 얼굴이 한 얘기일 것이다.

가끔은 그 때 호주에서 슬쩍 얼굴을 내밀던 그 자유로운 캐릭터가 그립다. 사막을 횡단하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던 그는 이제 이 도시라는 사막에 앉아 꼼짝없이 노트북에 매여 버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11시간 정도를 날아가면 겨울이 여름이 되는 호주라는 섬이 있다. 비록 노트북 바탕화면에 펼쳐진 어딘지 모를 바닷가를 쳐다보고 있지만 내 속에 숨겨진 캐릭터는 벌써 그 섬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언젠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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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은, 빙의연기가 끄집어낸 그녀의 스펙트럼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 같은 이미지였다. '메리대구 공방전'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되바라진 중학생 역할을 했던 임주은이었기에 그것은 더욱 그랬다. 그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는 얼굴은 임주은이라는 연기자를 그저 지나치게 만들었다. '여고괴담'류의 이제는 트렌디해 보이는 여고생 원혼의 연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귀신에 빙의되는 윤하나라는 연기를 해야 하는 임주은은, 평범한 여고생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분노로 일그러진 원혼들의 얼굴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신은 임주은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연기자의 속에 꽤 많이 내재된 연기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혼'은 표현이 자극적일지는 몰라도, 완성도로 보면 명품이라고 할 만큼 짜임새가 있는 작품이다. 얼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나 그것을 전하는 방식 또한 신선하다. 보통 공포물이라고 하면 원혼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더 무섭고, 따라서 이들을 처결하는 원혼의 복수가 속 시원하게 느껴지는, 그 아이러니한 체험을 이 드라마는 주고 있다. 공포물을 표방한 사회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모두 갖고 있는 양가적인 모습이다. 신류(이서진)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범죄자 프로파일러지만, 처참하게 파괴된 자신의 가족의 복수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과거의 피해자지만, 현재의 가해자가 된다. 살인범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 역시 하나의 치밀한 연쇄살인범으로 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하나의 구조다. 그 핵심적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윤하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윤하나를 연기하는 임주은의 역할이 녹록치 않게 된다. 그녀는 피해자로서의 모습과 가해자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품고 순간순간 오가야 한다. 그것도 한 인물의 변화가 아니다. 여러 원혼들이 그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 많은 캐릭터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얼굴은 오히려 이 연기를 더 효과적으로 만든다. 조금 크게 떠지면서 힘이 들어가는 눈빛으로의 변신은 편안한 소녀의 눈빛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더 소름끼치게 만든다.

'여고괴담'이 수많은 여성 스타 연기자를 발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여성이 원혼으로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연기자들을 연기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한 가지 모습이 아닌 여러 모습을 한 작품에서 드러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으로 보면 여러 인격체를 그 속으로 끌어들여 복수를 하는 '혼'이 임주은에게 요구하는 연기는 그 폭이 더 넓다. 그리고 임주은은 그것을 꽤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이 변신이 '혼'이라는 작품의 핵심적인 것이라고 봤을 때, 임주은의 연기는 말 그대로 '혼'을 살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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