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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6 주부들의 살림, 태안을 살림
  2. 2007/06/05 이 시대 주부, 지수의 사랑법 (4)

지난 달 TV를 보다 문득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도하고는 기분이 영 안 좋았다. 화면을 가득 메운 기름유출사고로 태안에 밀어닥친 절망감은 괜한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왜 분노하게 된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은 마치 신성한 몸을 더럽힌 파렴치범들의 행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어머니 같은 바다는 문명이라는 손에 잔인하게 유린되었다. 한동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만큼.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연일 대선정국에 대한 방송만이 전파를 탔다. 누가 몇 프로 차이로 앞서고 있다는 둥, 누가 무슨 발표를 했다는 둥, 누가 또 거짓말을 했다는 둥, 그렇고 그런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쳐다보면서, 도대체 왜 이 심각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리도 인색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했다. 한 삼 일만 치우면 깨끗해진다고. 삼 일? 삼 년이 지나도 복구가 될까 말까한 일이다.

그러던 중, TV에서 태안의 상황을 그래도 정확하게 짚어준 것은 (놀랍게도) 뉴스가 아니라 ‘라인업’이라는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들이 등장해 한참 사람들을 웃겨야할 상황에 ‘라인업’은 한 시간 동안 침통한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주었다. 태안의 상황에 넋을 잃은 것은 개그맨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추적60분’에서 이 상황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는데 카메라맨들을 향해서 주민들은 고함을 쳤다. “우리 이젠 다 죽게 생겼는데 도대체 정치인들은 뭐하는 거냐구!” 그 말에 가슴이 찡했다.

그 즈음 신문에 감동적인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태안으로 달려간 아줌마들이 아줌마 파워를 보이며 선전(?)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표현대로 쓰자면 이렇다. ‘헌 옷가지로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모습이 마치 방을 닦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을 때도 설거지하는 것처럼 손놀림이 빨랐다.’ 놀라운 표현이지만 이것은 아마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살림하는 자들의 힘이 아닌가.

전국 각지의 새마을 부녀회원 1000여 명은 이곳에 모여 10여 곳에 배치됐고, 아줌마들은 기름닦기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살림을 한 경험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냈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에서 온 신한이(55)씨는 “TV로 보니 천이나 흡착포로 바위 틈새에 낀 기름띠를 닦아내던데 이런 방법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면서 “다음에 올 때는 부침개를 뒤집는 뒤집개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주부의 파워는 여기서만 머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 태안의 주민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서 이들을 돕기 위해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에서 나온 수산물 사주기 운동까지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살림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한다. 마치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업이 없어 가정에 눌러 앉게된 자들이 하는 그런 허드렛일로 치부한다. 살림하는 주부들을 보는 시선 또한 그렇다. 쓸데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는 자로 취급하거나, 괜히 모여 수다만 떨면서 뭘 살까 고민이나 하는 소비꾼들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살림이란 말 그래도 ‘살린다’는 뜻이다. 무엇을? 가만 놔두면 죽게되는 것들을.

그러니 살리는 사람인 주부는 창조적인 직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집이란 하루만 가만 놔두어도 죽은 사람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 다반사다. 사람이란 소비하는 동물이고 그것을 모두 집이 받아내는 상황에서 온전할 수 있는 게 어디 있을까. 살림하는 자들은 바로 이 죽어 가는 것들을 살리는 창조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정신 속에 살림의 정신이 고스란히 박혀 있다는 점이다.

주부들의 살림이 태안을 살리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네들의 생명력이 죽어가는 바다를 살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꼭 그것이 주부가 아니더라도 태안에서 살림을 행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주부가 가진 살림의 정신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습게 보지 말지어다. 주부들의 살림, 그 숭고한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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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살림,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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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이 가장 원하지만 얻기 힘든 것

어찌 보면 화영(김희애)은 ‘내 남자의 여자’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사랑해. 보고싶어. 나 사랑해? 화영은 친구 지수(배종옥)의 남편, 준표(김상중)에게 늘 그렇게 말한다. 준표의 표현대로라면 “늘 도도도도도도...” 이렇게 같은 톤의 표현만 하는 지수하고는 전혀 다르다.

어리석게도 준표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표현법에다, 식물 같이 보이는 지수와 전혀 다른 동물적 육탄공세의 화영에게 정신이 홱 돌아버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화영과 딴 살림을 차린 준표는 완전히 갈라서기까지 자꾸 고개가 지수에게 돌아간다. 함께 있을 땐 실감하지 못했던 지수의 모습을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그렇게 지겨워했던 일상의 반란이다.

일상과 관계는 힘이 세다
화영과 함께 사는 준표에게 지수는 새벽 3시에 전화를 한다. 편도선염으로 고열에 시달리는 아들 경민을 데리고 병원에 가달라는 것. 준표는 두말 않고 새벽길을 달려간다. 그런데 그 새벽 준표는 깨닫는다. 자신은 공짜로 살았다는 것. 이런 새벽길을 지수는 10년 넘게 해왔다는 것을 알게된다.

준표는 차에서 조수석에 앉아 “목말라”하고 말하는 화영에게서, “그냥 물 줘? 녹차?”하고 지수가 하던 말을 떠올리고, “졸려”하고 말하는 화영에게서, “잠이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 건데 잠을 자”하는 지수를 떠올린다. 카라얀은 큰 소리로 들어야 제 맛이라는 화영에게서 논문 쓰는데 방해된다며 숨죽이며 살던 지수를 생각한다.

밥의 기억은 더 지독하다. 화영이 아침으로 주는 빵이나 인스턴트 음식, 심지어는 설익은 감자에 준표는 불평을 하면서 지수가 해주던 밥이 그립다. 심지어 아들 핑계를 대면서 밥 좀 먹여달라며 찾아간 지수네 집에서 두 그릇이나 비우고 생전 안 하던 말, “저녁 잘 먹었어. 고마워.”하는 진심 어린 말을 건네기까지 한다. 준표에게 지겨움으로 인식되던 일상은 그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부메랑처럼 자신을 공격한다.

사는 것과 사랑하는 것, 어느 게 어려울까
아이러니하게도 준표가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던 일상을 깨뜨려 친구의 남자를 얻은 화영이 바란 것 역시 거창할 것 없는 일상이다. 화영은 준표가 주는 생활비에 감동해 울먹일 정도로 뭇 여성들이 갖는 일상을 원하는 여자다. 그러나 화영이 원하는 준표와 ‘슈퍼마켓 가기’나 ‘저녁 산보 가기’는 번번이 일상과 관계의 그물망에 걸린다.

슈퍼마켓에서는 은수에게 걸려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고, 저녁 산보 중 들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아들 친구에게 딱 걸린다. 그것도 모자라 불륜사실을 알게된 집주인에게 거의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하게 된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만 준표는 거기에 진저리를 친다. 모든 여성들이 갖는 일상을 원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거기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자격도 없다.

일상은 힘이 세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 그리고 어려운 것은 사는 것이다. 그러니 화영은 사랑을 쟁취한 연후에 일상마저 얻으려 애쓴다. 요리학원도 다니고 운전면허 시험도 보고 어울리지 않게 “절약!”을 외치기도 한다. 그런다고 그녀가 평온한 부부의 일상을 얻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상처를 주고 빼앗은 관계에서 그건 흉내낼 수는 있어도 얻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빼앗은 거라면 더더욱. 그래서 그녀는 늘 도망중이다.

지수의 일상에 담은 사랑, 살림의 사랑법
‘내 남자의 여자’에서 가장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건 지수다. 그녀는 남편과 친구를 동시에 잃었다. 그 둘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더 힘들게 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지수의 사랑법 때문이다. 그녀의 사랑은 남녀로서의 사랑만이 아니다. 말로 백 번 사랑한다 말하는 것보다 그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사랑을 담아 전한다. 밥 차리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그 모든 행동이 사랑이다. 흔히 일상이란 이름으로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서 그녀가 준표에게 했던 사랑은 그녀의 일상 거의 대부분에 남겨져 있다. 그런 준표가 배신을 한 상황이니 그녀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밥을 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빨래를 하다가 눈물이 나는 건 살뜰했던 일상이 주는 반격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차츰 회복된다. 아무리 상처를 주었다지만 그것마저 끌어안아 긍정으로 고통을 넘어서려 한다. 살림하는 사람들의 본능이다.

장사를 시작하려는 지수에게 준표는 “살림만 했던 사람이 무슨 장사냐”고 말한다. 지수가 차려준 밥상에서 밥을 허겁지겁 먹는 그가 살림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사람. 삶. 살림. 이 세 단어는 모두 ‘살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 가만 놔두면 죽게되는 것을 살리는 것, 그것이 살림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살림’이라는 말은 그저 불평이 아니라, 그 속에 행동으로 담겨지는 사랑을 남자들이 잘 보지 못할 때 하는 주부들의 말이다.

지수의 아버지(송재호)가 하듯, 말없이 정원의 풀을 뽑아주고, “넌 된장국을 정말 잘 끓여!”하며 말해주는 것이 ‘사랑한다’는 백 마디보다 더 값진 것이란 걸 알게 해주는 것이 지수의 사랑법이다. 그녀는 석준(이종원)의 화실을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난 밥순이였나봐. 누가 내가 해준 밥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것이 바로 살림하는 사람의 사랑법이다. 바로 이 시대 대부분의 가정을 지키고 있는 주부들이 하고 있는. 그리고 화영이 가장 원하지만 얻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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