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우리에게 이 영화의 울림이 적지 않은 이유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엘르>는 집으로 난입한 복면의 남자에게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난폭한 그 장면을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가 바라본다. 그런데 이 미셸의 반응이 이상하다. 강간을 당했다면 응당 굉장한 충격을 받아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해야 하지만, 그녀는 마치 그것이 일상이라는 듯 깨진 잔을 빗자루로 치운다. 물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친구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만 더 놀라는 건 친구들이다. 그녀는 너무나 담담하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사진출처:영화<엘르>

그녀의 이 담담한 얼굴은 관객들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그녀의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친구인 안나(앤 콘시니)와 함께 게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미셸은 마침 회사에서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캐릭터의 성폭력 동영상이 메일로 전 직원에게 퍼지는 사건을 겪는다. 하지만 누가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뿐 그녀는 역시 이를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공포심을 갖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담담해진 이유로서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이 밑거름을 제공한다. 아버지가 수십 명을 무차별 살해한 사이코패스였고, 그 살해 현장에서 찍힌 그녀의 사진은 마치 그녀마저 아버지의 공범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사실 이 정도의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면 그녀의 담담함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녀는 폭력적인 사건들이 일상인 세상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감옥에서만 평생을 산 아버지를 그녀의 엄마는 자꾸만 찾아가 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트라우마이며 벗어나고픈 과거일 뿐이다. 엄마는 집착적으로 젊은 남자와 그 나이에도 연애를 하고, 미셸은 그런 엄마의 삶이 어딘지 잘못되어 있다고 느낀다. 또 피부 색깔이 다른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믿으며 여자친구에 집착하는 아들의 삶 역시 엇나가 있다 여긴다. 무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이 겪는 사건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잘못된 것들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다만 어떤 촉발점이 없을 뿐이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촉발점이 되어준다. 친구인 안나에게 엄마의 연애행각을 보며 “내가 저렇게 살면 죽여줘”라고 말하는 미셸은 엄마처럼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보다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은 단지 안에 들어가는 재에 불과한 삶이라는 걸 엄마의 죽음으로 확인한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가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엇나가게 만든 아버지라는 트라우마를 진정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 총 쏘는 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정작 교도소를 찾아간 그날 아버지는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가 찾아가겠다는 그 말 한 마디가 아버지에게는 총알이 되어 날아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가 자신이 호감을 가졌던 이웃집 남자 패트릭(로랭 라피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끌림과 폭력 사이에서 갈등한다. 평상시 신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패트릭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동시에 폭력이 아니면 사랑이 되지 않는 그 남자의 실체 앞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패트릭이라는 남성은 얼마나 여성들에게 폭력이 일상적으로 가까이 존재하는가를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 모든 문제들을 자신이 겪었던 그 방식으로 해결한다. 과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차별 살인 속에서 자신이 피해자였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황 속에서 가해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그 살인 현장에 서게 되지만. 

<엘르>는 일상적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절한 복수를 하는 그런 영화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성들을 둘러싼 일상적 폭력들이 섬뜩할 정도로 잘 담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자벨 위페르의 그 무심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철한 얼굴은 그래서 쿨하게도 다가오지만 동시에 일상적 폭력 속에서 둔감해진 여성의 아픈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한 편이 이토록 다양한 상징적 의미들과 확장성을 갖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특히 우리처럼 여성들이 오래도록 가부장적 틀에서 살아오며 피부에 이식되어 이제는 그게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자행되는 일상의 폭력들을 겪는 사회에서 <엘르> 같은 영화가 주는 울림과 카타르시스는 의외로 크다. 여성들이 느낄 폭력의 실체를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그런 영화다.

<내 귀에 캔디>가 끄집어낸 매력적인 감성들

 

마치 분위기 있는 멜로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건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리얼 예능이다. ‘폰중진담이라는 콘셉트로 방영되고 있는 tvN <내 귀에 캔디>는 오로지 스마트폰 하나로 배터리가 소진될 때까지 남녀가 소통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설정의 예능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과거의 폰팅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프로그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과는 사뭇 다른 매력적인 감성들이 묻어난다.

 

'내 귀에 캔디(사진출처:tvN)'

장근석과 유인나가 이른바 캔디폰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각자 다른 공간인 서울과 상하이에서 동시간대의 일상을 공유하는 장면은 사실 마법 같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 상하이의 동방명주 타워 근처를 돌아다니는 유인나와 서울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는 장근석이 서로 있는 장소의 사진을 주고받고, 때로는 화상 통화를 통해 연결되는 장면들이 그렇다. 유인나도 장근석도 얘기했듯 서로 다른 장소에 홀로 있었지만 그들은 마치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 귀에 캔디>라는 기획은 다분히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서로 목소리와 문자로 마음을 전하는 전화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있는 곳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의 기능도 갖고 있다. 그러니 과거라면 이 기획에 꽤 많이 필요했을 장치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는 셈이다. 물론 그들을 따라다니며 동행 취재할 PD와 작가는 필요하겠지만 오롯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두 사람이 나누는 소통에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스마트폰이다.

 

영상으로 모든 걸 공유할 수도 있는 시대에 굳이 서로의 존재를 블라인드 처리하고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게 한 건 그 베일에 가린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예능적 의도만은 아니다. 영상으로 모든 걸 드러내는 것보다 오히려 목소리로만 대면할 때 훨씬 더 진솔해지고 내면에 있던 진짜 속내가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근석은 그래서 자신의 어려웠던 청춘시절부터 최고의 주가를 올려 쉴 틈 없이 살았던 시절까지를 유인나에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그것은 연애 감정처럼도 여겨지지만, 그것보다 큰 건 누군가와 진심을 나눈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다.

 

<내 귀에 캔디>는 소통의 즐거움과 함께 여기 대상으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궁금증 또한 중요한 재미요소로 들어가 있다. 연예인들은 직업적 특성상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들은 그래서 어쩌면 진심을 주고 받는 일에 누구보다 갈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의 이런 욕구는 <내 귀에 캔디>라는 프로그램이 그들의 진솔함 면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배우 지수와 대화를 나눈 개그우먼 이세영은 자신이 직업적 특성 때문에 늘 과장된 모습으로만 비춰져온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걸 드러냈다. 지수와의 대화에서 온전히 한 여성으로서의 따뜻함과 귀여움을 그녀는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었다. 새로 등장한 경수진은 처음 연결된 상대남에게 낯설음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유인나가 얘기했듯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대나무숲 같은 존재로 상대방을 만들어준다.

 

<내 귀에 캔디>는 스마트폰 시대에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에는 수백 개의 전화번호들이 있지만, 그들 중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오히려 계속 울려대는 스마트폰에 관계의 피곤을 느끼는 게 현대인들이 아닌가. <내 귀에 캔디>는 이 상황을 뒤집어 스마트폰을 통한 진솔한 대화와 소통이 주는 묘미를 선사한다. 장근석의 진심과 그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그 과정을 보며 어떤 설렘을 느꼈다면 그건 우리 자신 역시 그런 소통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류화영의 <청춘시대>, 어째서 공감될까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강이나(류화영)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서 그녀는 다른 청춘들과는 삶 자체가 다르다. 일단 대학생이 아니고 그래서인지 연애와 일에 있어서도 다른 청춘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좋게 표현하면 연애를 일로서 하고 있고(스폰서를 받는다), 나쁘게 표현하면 그녀 스스로도 말하듯 몸을 팔아 살아간다. 그러니 청춘의 연애가 갖는 아픔이나 상처 같은 것이 있을 리 없고, 또 미래의 일자리를 위한 고군분투도 없다. 다만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그녀가 벨 에포크에서 일종의 왕따를 겪게 되는 건 대학생이 아니라는 걸 숨겼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쁜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예은(한승연)에게는 그녀의 자유로운 남성 관계(?)를 일종의 더러움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녀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강이나를 더럽다고 말함으로써 힘겨운 자신은 깨끗한 사랑을 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결국 술에 취한 강이나가 같이 사는 친구들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게 되고 그것이 그녀가 다시 벨 에포크에서 살게 되는 이유가 되지만 그녀가 이질적인 존재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예은과 강이나의 문제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예은의 그 나쁜 남자친구가 강이나에게까지 유혹의 손길을 뻗치자 그녀는 절망하며 강이나를 더러운 창녀로 몰아세운다. 예은은 강이나가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못되게 굴지만, 결국 힘겨워 엇나가는 예은을 보호해주는 건 강이나다. ‘강언니로 불리는 강이나라는 캐릭터는 이 가녀린 청춘들 속에서 일종의 해결사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연애만이 아니다. 일에 있어서도 강이나는 청춘의 현실에 일종의 냉소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알바를 세 개나 하며 현실에 찌들어 살아가는 윤진명(한예리)에게 강이나는 왜 그렇게 어렵게 사냐쉽게 사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자체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처럼 여기는 윤진명은 강이나의 삶이 잘못 됐다고 부정하지만, 매니저가 내미는 유혹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녀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이나는 이처럼 <청춘시대>라는 드라마에서 연애와 일에 걸쳐져 있으면서 때로는 해결사 역할을 때로는 현실에 대한 냉소를 보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 벨 에포크의 청춘들 사이에서 방외자 혹은 왕따 같은 존재이지만 그들을 걱정하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주려 노력하며 그들을 둘러싼 현실에 온 몸으로 냉소를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강이나를 연기하는 류화영이라는 배우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과거 왕따 사건으로 티아라에서 방출된 화영이란 이름의 가수가 이제는 어엿한 배우의 자리로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적어도 <청춘시대>에서 그녀는 류화영이 아니면 다른 누가 가능했을까 싶은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강이나라는 캐릭터는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 때 시련을 겪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강이나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젊은 배우답지 않은 다채로운 얼굴들을 보여주고 있다. 섹시한 이미지에서 통쾌한 걸 크러시의 느낌은 물론이고 과거의 아픔을 트라우마처럼 갖고 있는 처연한 느낌까지 그 한 캐릭터를 통해 소화해내고 있는 것. 그녀에게 <청춘시대>는 그래서 남다른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티아라의 화영에서 이제 배우 류화영으로 돌아온.

청춘 보고서 <청춘시대>, 그저 달달한 멜로를 선택하지 않은 까닭

 

JTBC <청춘시대>에는 무려 다섯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윤진명(한예리), 정예은(한승연), 송지원(박은빈), 강이나(류화영), 윤은재(박혜수)가 그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캐릭터들이다. 연애가 사치일 정도로 여유 없는 짠한 청춘의 전형을 보여주는 윤진명,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나쁜 놈이란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정예은, 늘 인기 만점이지만 정작 남자친구는 없는 모태솔로 송지원, 제 몸 하나 맘대로 굴려 스폰서를 전전하며 막 살아가는 구질구질한 건 못 견디는 강이나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귀여운 새내기 윤은재.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하지만 무려 다섯 명의 이런 반짝이는 여주인공을 세우고 있는 드라마에 눈에 띄는 남자주인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남자를 초대해 벌인 이른바 수컷의 밤파티를 보면 이런 면들이 단박에 드러난다. 윤진명은 아예 파티에 참가하지 않았고, 정예은은 결국 그 나쁜 놈을 데려왔다. 강이나는 바에서 알게 된 어딘지 미스테리한 아저씨를 초대했고 윤은재는 벌칙이 싫어 자신을 따라다니는 선배 윤종열(신현수)을 데려왔다. 파티를 주도한 송지원은 역시 캐릭터에 걸맞게 한 사람도 초대시키지 못했다.

 

누가 봐도 청춘 멜로드라마라고 여길만한 <청춘시대>에 정작 남자주인공이 이렇게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나마 자신의 현실 때문에 남자를 자꾸 밀어내는 윤진명에게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이는 박재완(윤박)이 눈에 띄는 남자지만, 그 역시 이 드라마에서 중심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윤종열 역시 조금씩 윤은재와 가까워지지만 남자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존재감은 아니다.

 

그렇다고 멜로의 애틋함이나 달달함이 없는 건 아니다. 윤진명과 박재완의 관계는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시청자들은 알지만, 그 관계를 거부하는 윤진명의 현실이 너무나 공감가고 그렇게 밀려나면서도 늘 곁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서성이는 박재완이 못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의 외적인 요소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렸던 윤은재가 차츰 그녀의 옆자리에 있는 선배 윤종열에게 마음을 주는 모습은 한 마디로 풋풋한 첫사랑의 설렘이 묻어난다.

 

그런데 <청춘시대>는 이들의 멜로를 살짝 살짝 양념처럼 치고는 있지만 결국 에포크 하우스에 함께 살고 있는 여자 다섯 명의 이야기가 본맛이라는 듯 그들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젊음을 공유한 그들이지만, 그들은 저마다 아픈 비밀스런 자신들만의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 신발장 귀신을 이야기하며 그 귀신이 보인다는 송지원이나, 누군가 죽기를 바랐다는 윤진명(그녀는 식물인간인 자신의 동생이 죽기를 바란다) 그리고 속으로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하는 윤은재는 물론이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팔찌에 무언가 비밀을 갖고 있는 강이나도 모두 미스테리한 과거의 아픔들을 숨기고 있다.

 

멜로는 이들 청춘의 겉면이지만 <청춘시대>는 그 이면에 놓여진 청춘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이것은 <청춘시대>라는 드라마가 그저 달달한 사랑 타령을 하는 단순한 청춘 멜로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거기에는 일종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보고서 같은 아픈 현실의 이면들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숨겨져 있다.

 

어찌 보면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결국 멜로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여성들에게 남자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건 가장 중요한 선택의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춘시대>는 여자주인공들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반면 남자주인공들은 살짝 뒤로 밀려나 있다.

 

이것은 혹시 그저 청춘을 첫사랑같은 이야기로 다룰 수만은 없는 지금의 현실이 투영된 건 아닐까. 물론 그들도 사랑하고 싶어 하고 그것이 청춘의 중요한 순간들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현실이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쉽게 그럴 듯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워 달달한 사랑을 그려냈다면 훨씬 쉽게 대중성을 확보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청춘시대>는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그건 달달할 뿐 현실을 마비시키는 거짓 판타지이니까. <청춘시대>가 대중성을 떠나 괜찮은 드라마라는 이유다.

<청춘시대>, 가장 찬란해야할 청춘들의 씁쓸한 현실

 

나 좋아해요? 아직도 나 좋아해요? 좋아하지 마요. 누가 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약해져요. 여기서 약해지면 진짜 끝장이에요. 그러니까 나 좋아하지 마요.”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의 윤진명(한예리)은 자신이 알바로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만난 박재완(윤박)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녀는 어쩌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받는 일을 밀어내야 하는 입장에 처한 걸까.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그녀는 맹렬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잡는 중이다. 몇 년 째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은 그녀에게는 아픔이면서 동시에 짐이다. 동생이 위급해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그녀는 오열하던 엄마가 동생이 회복됐다는 이야기에 멍해져버리는 모습을 목도한다. 동생은 그렇게 살아났지만 그건 또한 그 엄마와 누나에게는 지독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윤진명이라는 캐릭터가 <청춘시대>를 통해 전하는 청춘의 단상은 처절하다. 그녀는 거의 웃지 않고 말할 때도 또박 또박 할 말만 던진다. 그리고 알바에서 알바로 넘어가는 삶을 전전한다. 그녀가 그 때 그 때 하는 건 빼고 정기적으로 하는 알바만 3개다. 학생 과외,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그리고 새벽 편의점 알바.

 

손님들이 몰리는 금토일 주 3회를 하는 레스토랑 알바를 그녀가 무려 2년째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주말의 휴식 따위 반납한 지 오래라는 걸 말해준다. 그녀가 유일하게 일주일에 딱 한 번 자신에게 주는 휴식이라고는 맥주 한 잔 혼자 집에서 마시는 정도다. 새벽에 편의점 알바를 하는 까닭은 손님이 별로 없는 그 시간대를 이용해 공부를 하려는 목적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버는 돈은 과외비 30만원, 시급 7천 원 받는 레스토랑 알바비 40만원, 주중 56시간씩 30시간 편의점 알바로 버는 72만원. 대충 140만 원 정도다. 많이 버는 것 같지만 그 중 일부는 동생의 병원비로 들어간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알바에서 알바로 뛰어다니고 어떤 면으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버텨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간에 갑자기 끼어든 박재완의 친절은 그래서 그녀를 흔들리게 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버텨내던 그녀의 얼굴에 자꾸만 웃음 같은 걸 피어나게 하고 기대감 같은 걸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기대감과 희망이 무너졌을 때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녀가 겪어온 삶 때문이다. 그녀도 한 때는 평범이라는 단어를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토록 죽도록 일해 고작 하고 싶은 것이 대기업 직원이다. 그녀는 평범해지고 싶어 한다. 그녀가 평균 이하의 위치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하고 묻는 박재완의 물음에 그녀는 내 동생이 안 죽었어요.”라고 답한다. 그 말 속에는 이 가녀린 청춘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현실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녀는 박재완에게 이별통보를 해놓고는 뒤늦게 그 아픔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걸 깨닫는다. 밤늦게 홀로 오열하는 그녀를 같은 쉐어하우스에 사는 청춘들이 보듬어 안는다.

 

박재완이 그녀의 마음에 슬쩍 들어오던 날 창가에서 그를 보고 잠시 자신의 견디는 삶바깥으로 나왔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창문에 손가락을 찧어 손톱이 들려버린다. 그 상처 난 손톱은 아마도 그녀가 처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마치 그렇게 덜렁대는 손톱처럼 아슬아슬하고 아픈 일이라는 걸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결국 손톱을 떼어내고 울먹이며 쉐어하우스 메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손톱이 빠졌는데 이렇게 아플 줄 몰랐어. 아파서 죽을 거 같애. 아파서. 아파서 죽을 거 같애.”

 

손톱이 빠지는 고통. 어쩌면 그것보다 더 아픈 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매일 매일을 버텨내야 하는 그녀의 현실일 것이다. <청춘시대>라는 어딘지 달달할 것처럼 여겨지는 드라마는 이처럼 짠 내 물씬 풍기는 현실로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물론 그 겉모습은 청춘들의 발랄함으로 경쾌하게 그려지지만, 그 청춘의 달콤함만이 아닌 짠 내 나는 현실을 <청춘시대>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이 보다 솔직한 지금의 청춘의 자화상일 테니.

에릭, 서현진의 인생작 된 <또 오해영>

 

서현진이 이렇게 예뻤던가. 에릭이 이렇게 멋있었나. 아마도 tvN <또 오해영>을 보면서 시청자들의 느낌은 비슷할 게다. 드라마가 좋으면 배우들은 더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또 오해영>이란 작품 속에서 그냥 오해영을 연기하는 서현진이 그렇고, 깐깐하게 소리를 듣고 모으는 박도경을 연기하는 에릭이 그렇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또 오해영>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웃음이 충만한 드라마지만, 또한 금수저 흙수저를 달리 해석한 듯한 1급수와 3급수의 사랑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안겨주는 그런 드라마다. 1급수에서 그들끼리 만나고 사랑해온 예쁜 오해영(전혜빈)’3급수에서 살아온 그냥 오해영은 박도경이라는 인물을 사이에 두고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을 시도한다.

 

1급수와 3급수의 비교는 그냥 오해영이 항상 괴로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예쁜 오해영이 늘 주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는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그냥 오해영은 항상 비교되면서 무시되는 모습을 보일수록 시청자들의 마음은 드라마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박도경이 그런 느낌을 갖는 것처럼 한없이 그냥 오해영이 짠하게 다가오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

 

사실 어떤 면으로 보면 전혜빈이 연기하는 예쁜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일 수 있다. 늘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며 예쁜 척하는 듯한 그 모습이 그렇다. 반면 그냥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다. 털털하고 솔직하며 한편으로는 동정이 가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 그러니 드라마 속에서 그냥 오해영예쁜 오해영이 처한 상황은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거꾸로 느껴지게 된다. ‘그냥 오해영이 더 예쁜 존재로 다가오는 것. 이것은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마법 같은 장치다.

 

물론 예쁜 오해영역시 나쁜 의도를 가진 존재는 아니다. 그녀가 도경을 결혼식 날 바람 맞춘 데는 그만한 남모를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연이 드러나는 순간 도경은 두 오해영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도경의 캐릭터다. 그는 과연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1급수에 살아가면서 그들끼리 사랑하는 그런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는 건 도경이 가진 직업에서 드러난다. 도경은 소리를 찾고 모으는 일에 그 누구보다 깊게 빠져 있다. 그는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빛에도 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지나가는 찻소리 등이 겹쳐지면 그 빛의 소리가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 하다못해 분노한 여자가 찬 깡통 소리도 경쾌한 소리와 화난 소리로 구분해내는 인물이 도경이다.

 

굳이 이 드라마가 도경에게 이런 직업을 부여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캐릭터를 그려내려 한 게 아닐까.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도경은 현실적으로는 1급수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지만 그는 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런 인물이다. 스스로를 3급수라 표현하는 그냥 오해영이 점점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하지만 그냥 오해영이 말하는 1급수와 3급수의 세상은 어찌 보면 그녀가 가진 오해이자 편견일 수 있다. 그녀 스스로도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이 아니라 애초에 사랑에는 급수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어찌 보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장르에 이토록 촘촘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그것을 또한 두 오해영 캐릭터와 도경이라는 인물로 그려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나 균형 있게 그려지고 있어 캐릭터들이 그토록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현진과 에릭, 그리고 나아가 전혜빈까지 이 작품이 인생작이 될 거라는 기시감은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애가 아이돌에게 미치는 영향

 

아이돌도 사람이다. 그러니 적당한 나이에 누군가를 만나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가 이상한 일이다. 활짝 피어난 청춘들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건. 그건 과장되게 말하면 청춘의 방기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자. 우리는 그들이 모태솔로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아이유(사진출처:로엔트리)'

아이유가 장기하와 사랑에 빠졌다. 디스패치가 또 하나의 특종을 낚았다. 이런 특종이 나올 때마다 이제는 무슨 큰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이런 연예인 열애 특종이 보도되는가 하고 되묻곤 한다. 물론 그건 음모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십성 연예인 뉴스들은 많은 정치적 현안들을 덮는 것이 사실이다. 국정 교과서 논란 같은 중대한 사안들은 연예인 뉴스들에 슬쩍 가려져 이슈를 분산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유의 열애설이 보도된 후 그 반응이 흥미롭다. 과거 같으면 팬들의 실망 가득한 토로들이 나아가 반감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을 게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러려니 한다. 하긴 사랑할 때도 됐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 상대가 대중들에게 호감인 장기하라는 사실도 물론 작용한다. 하지만 아이유가 그간 보였던 음악적 성취들이 이런 열애설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아이유는 작년 꽃갈피라는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김창완의 너의 의미’, 조덕배의 나의 옛날 이야기같은 옛 노래들을 다시 히트시켰다. 물론 이전에도 그녀는 김광진이나 윤상, 이적 같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신구세대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꽃갈피에서 아이유의 감성은 더 짙어졌다. 원곡을 거의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성숙해진 노래의 해석력을 보여줬다.

 

서태지와 함께 소격동으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드라마 <프로듀사>에 삽입됐던 마음은 놀라운 감성과 더불어 거의 시에 가까운 가사가 한결 원숙해진 음악적 성취를 보여줬다. ‘툭 웃음이 터지면 그건 너. 쿵 내려앉으면은 그건 너. 축 머금고 있다면 그건 너. 둥 울림이 생긴다면 그건 너.’ 도대체 이런 가사를 그렇게 깊어진 감성으로 불러내는 데야 웬만한 목석도 마음이 흔들릴밖에 도리가 없을 게다.

 

물론 필자 맘대로 상상하는 것이지만, 아마도 아이유의 이런 깊어진 감성은 사랑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나눈다는 건 그 사람을 성숙하게 해주는 일이다. 장기하와 아이유가 가까워진 건 음악적 교감이 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김창완이라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장기화와 아이유는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소녀시대는 한 때 더 이상 소녀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소녀들이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태연과 엑소 백현의 열애와 결별은 큰 화제가 되었다. 갖가지 가십성 추측 기사와 과장된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두 사람은 쿨하게 같은 소속사의 좋은 선후배로 남게 됐다고 밝혔다. 사람 사이의 사랑과 결별은 그 당사자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겪으며 갖게 되는 아픔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장통이 되기 마련이다.

 

이번 소녀시대가 발표한 라이온 하트가 좋은 반응을 얻더니 태연이 솔로로 내놓은 곡들이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타이틀 곡 ‘I’는 지금껏 태연이 솔로로 발표했던 곡들과는 사뭇 다른 색깔로 그녀의 음악적 성숙을 보여준다. 마치 팝음악을 듣는 듯한 비트에 태연 특유의 쭉쭉 뽑아 올리는 시원스런 고음은 외국의 팝 디바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앨범에 있는 ‘U R’은 익숙한 태연 특유의 발라드 감성이 느껴지는 곡이다.

 

물론 아이돌들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며 그로인해 성숙해지면서 음악도 성장했다는 건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아이유나 소녀시대 그리고 태연의 음악은 확실히 성숙해져 있다. 아마도 이제 아이돌의 열애에 대해 대중들이 보내는 이 쿨한 반응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드러나지 않았어도 사실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것이라는 걸 모두가 예상한 바라는 것이며, 나아가 그 일련의 정상적인 과정들이 음악에도 성숙된 결과로 돌아오게 해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아이돌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에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좋은 음악으로 팬들에게 되돌려질 테니. 적어도 아이유와 소녀시대 태연에 있어서는 분명.



강균성, 노래, 예능, 강연까지 못하는 게 없는 남자

 

강균성을 주목시킨 건 그의 특별한 성대모사였다. <라디오스타>에서도 <무한도전>에서도 강균성은 틈틈이 자신만이 가진 과장된 성대모사를 통해 그 존재감을 보였다. 그것은 목소리와 표현력의 결합이었다. <무한도전> 식스맨 특집을 할 때는 그래서 그가 가진 다양한 캐릭터들이 그의 연기를 통해 쏟아져 나와 감정 기복 많은 다중이의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캐릭터 플레이고 성대모사라는 개인기였다.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예능의 한 지분을 가져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관찰카메라의 시대다. 그런 연기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한 건 진짜 그 사람의 인성이나 가치관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SBS <썸남썸녀>를 통해 조금씩 보여지는 그의 진면목은 이 예능 새내기가 꽤 괜찮은 확장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썸남썸녀>는 일찍부터 그가 함께 지내게 된 출연자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의 독특한 연애학개론을 선보인 바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사뭇 고루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혼전순결같은 이야기를 자기만의 확고한 가치기준을 통해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은 우습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꽤 진지한 그의 진짜 모습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런 그가 대학에서 청춘들 앞에 연애에 대한 강연을 하는 모습은 의외로 신선했다. 썸에서 연애로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을 칠판에 적어 놓은 후, 결혼을 전제한 만남이 왜 진정한 만남이 될 수 있는가를 설파하는 모습은 실로 고루하기는커녕 파격적이면서도 진지했다. 그 강연 내용은 사실상 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실제 모습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가 강연을 통해 반드시 그래야 한다가 아니라 그런 삶의 방향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는 건 중요한 대목이다. 그것은 그가 꽤 자기만의 확고한 주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그렇다고 타인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강균성의 연애학 개론을 듣고 난 후 <썸남썸녀>가 그와 최희와의 데이트를 보여준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강균성은 어찌 보면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빠라는 호칭을 의도적으로 쓰며 친근함을 보이는 최희에게 그는 또박또박 존칭을 사용했고, 선을 넘기 보다는 늘 예의를 차리는 쪽이었다. 그건 거리감을 느껴지게 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연애학 개론을 이미 들은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의 그런 말과 행동이 자신만의 가치관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너무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과정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만큼 순수함을 지켜내려는 노력에서 강균성이라는 인물의 내면적인 매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

 

노을의 보컬로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갖고 있는데다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끼와 개인기는 물론이고 이제는 리얼 예능이 드러내기 마련인 진면목의 매력까지. 강균성은 확실히 많은 가능성을 가진 예능 새내기임이 분명하다. 이러니 <무한도전>도 식스맨으로 그를 눈독 들였을 테고.



모든 직장 드라마가 <미생>일 필요가 있나

 

기대가 너무 큰 것일까. 아니면 너무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일까. 이제 2회를 남긴 <프로듀사>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다. 여러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건 <프로듀사>가 애초에 예능 PD들의 세계를 다룬다고 해놓고서 사실은 예능국에서 연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그러면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는 <미생>과의 비교다. 연애 없이도 샐러리맨의 현실을 절절하게 다룬 <미생>. 두 말할 여지없이 <미생>은 수작 중의 수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직장을 다루는 드라마가 <미생>이 될 필요가 있을까.

 

<프로듀사><미생>처럼 샐러리맨들을 치열한 하루하루를 통해 그려내려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프로듀사>라는 제목에 이미 들어있다. 많은 이들이 PD라고 하면 막연히 갖게 되는 그 편견과 선입견. 그래서 심지어 자 직업인 양 프로듀사라고 부르는 그 관점을 뒤집고 풍자해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목적이다.

 

그러니 <프로듀사>의 신입PD 백승찬(김수현)<미생>의 인턴사원 장그래(임시완)는 같은 신입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다. 장그래가 스펙 없는 청춘의 절망과 그것을 뛰어넘는 판타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라면(이건 <미생> 역시 100%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담은 드라마라는 걸 말해준다), 백승찬은 괜찮은 집안에 서울대생의 스펙을 가진 청춘으로 누구나 선망할만한 PD가 되지만 사실은 그게 다 쓸 데 없이 고스펙이라는 걸 웃음의 코드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러니 백승찬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실로 미천한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장그래가 딱풀 하나 때문에 엄청난 시련을 겪는 주인공이라면, 백승찬은 A4지 한 부를 얻기 위해 수차례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마치 엄청 중요한 일인 양 진지하게 해야 하는 주인공이다. 그는 프로그램을 멋지게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일보다 먼저 선배들의 점심 식단을 각각의 기호에 맞춰 주문해줘야 하는 인물이다.

 

이것은 <프로듀사>가 예능국 사람들을 그리는 시각이다. 거기에는 일보다는 윗사람 눈치를 더 많이 보며 의전에 더 신경 쓰는 김홍순(김종국) PD도 있고, 프로그램보다 자신의 안위와 가족의 안락만을 먼저 추구하는 이름만 김태호 PD(박혁권)도 있다. 예능국장인 장인표(서기철)는 심지어 기획사 사장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다. 물론 전혀 방송국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의외로 능력을 발휘하는 <뮤직뱅크> 막내 작가 김다정(김선아) 같은 인물도 있다.

 

물론 백승찬을 비롯한 이런 인물들이 예능국 사람들의 전부를 대표해서 보여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프로듀사>는 이런 예능국 PD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연히 드라마틱한 일의 세계는 잘 보이지 않는다. ? 이것은 일종의 풍자이면서 선입견 깨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 일하려면 엄청난 스펙이 필요해? 하지만 정작 하는 일은 너무 소소해 비루하게 보일 정도다.

 

<프로듀사>는 이렇게 쓸 데 없이 고스펙인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코미디의 요소로서 바탕에 깔아놓고 그 위에 누구나 집중할 수 있는 연애 이야기를 얹어 놓았다. 즉 연애 이야기가 전면에 나와 있는 건 드라마의 대중적인 선택이다. 김수현이 있고 아이유, 공효진이 있는데 연애 이야기를 안 한다고? 그건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건 <프로듀사>의 연애 이야기가 전면에 보인다고 해서 예능국에서 벌어지는 일의 세계를 다루지 않은 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그 방식이 <미생>의 방식이 아니라 차라리 <개그콘서트><무한도전>무한상사같은 예능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너무 소소하거나 가볍게 여겨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모든 걸 다큐처럼 그려야 할까. 그건 또한 예능의 방식을 너무 낮게만 치부하는 편견은 아닌가.

 

크게 바라보면 <미생>이나 <프로듀사>나 그 기저에 깔려있는 메시지는 다를 것이 없다. <미생>이 스펙 없는 청춘의 문제를 다룬다면, <프로듀사>는 쓸 데 없는 스펙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니까. <미생>이 그것을 눈물로서 그렸다면 <프로듀사>는 웃음으로 그려낸 것뿐이다.

 

<프로듀사>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세운 것처럼 충분히 예능의 성격을 가져와 예능국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그러면서도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현장에서 벌어지는 편집이나, 예고, 결방 같은 사안들을 소재로 가져와 달달한 멜로와 섞어 인간관계의 문제로 확장시켜 바라보는 괜찮은 시도도 보여줬다. 아마도 <프로듀사>는 올해를 통틀어 KBS가 그나마 시도한 유일한 실험작일 것이다. 그 괜찮은 시도들을 단지 덮어놓고 예능국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로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안타까운 면이 남는다.

 

<프로듀사>, 예능으로도 드라마로도 완성도 높다

 

예능 드라마. <프로듀사>가 내세우고 있는 이 문구는 낯설다. 그래서인지 김수현 같은 초특급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를 한 편의 이벤트성 작품처럼 오인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12.2%의 시청률을 내고 드디어 11% 시청률의 SBS <정글의 법칙>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이런 오인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금요일 밤 거의 한 번도 시청률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던 <정글의 법칙>이 아니던가. KBS가 돌연변이존이라는 변칙 편성을 하면서 예능과 드라마를 다양하게 투입했지만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 <정글의 법칙>이라는 아성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사>라는 예능 드라마의 파괴력은 결국 <정글의 법칙>을 압도했다.

 

예능 드라마라는 표현은 낯설지만 <프로듀사>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가 왜 그런 표현을 덧붙였는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즉 이 드라마는 예능만큼 코믹하다. 어떤 상황과 장면들은 하나의 콩트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빵빵 터진다. 이를테면 백승찬(김수현)의 엄마인 이후남(김혜옥)이 탁예진(공효진)과 쓰레기 분리수거와 자동차 주차 문제로 티격태격하다가 두 사람이 승찬의 직장상사이고 또 승찬의 엄마라는 걸 서로 알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은 한편의 <개그콘서트>.

 

박지은 작가는 이런 순간적인 상황에 웃음의 코드를 심어 넣는 데 너무나 능숙하다. 백승찬이 저녁으로 고기를 사주자 탁예진이 나 후배한테 이런 거 얻어먹고 그러는 사람 아니다라고 말한 후, 다음 장면에 허겁지겁 고기를 집어먹는 모습을 그려 넣는다. 회사 운동회에 가족들을 데려와 뷔페를 먹게 하는 김태호 PD는 직업을 이용해 가족들을 챙기는 인물로 웬만한 개그 캐릭터를 능가한다. <프로듀사>는 촘촘하게 이러한 예능적인 웃음의 코드들을 한 신 한 신 채워 넣는다. 예능 드라마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소소한 시트콤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드라마가 방송사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면서도 그 안에 드라마틱한 연애의 담론을 끼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5편집의 이해’, 7언론 플레이의 이해’, 8러브라인의 이해’, 9결방의 이해라는 부제를 가진 이야기들은 그래서 예능이라는 장르를 잘 들여다보게 해주면서도 그걸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편집의 이해는 편집이 가진 선별적인 특성을 이 드라마의 인물관계를 통해 재해석했다. 즉 술김에 탁예진이 라준모(차태현)에게 마음을 고백한 것을 라준모는 모르는 척 기억의 편집을 해버린다. 하지만 편집된다고 해서 원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백승찬은 라준모에게 비겁하다고 질책하기도 한다.

 

결방의 이해는 아이돌 신디(아이유)가 처한 상황과 라준모 PD<12>이 처한 상황을 기막히게 연결시켰다. <12>을 치고 들어오는 파일럿 프로그램 때문에 라준모 PD가 괴로워하는 장면은 변대표(나영희)에 의해 신인이 세워지고 대신 점점 밀려나는 신디의 처지와 오버랩된다. <프로듀사>는 예능국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 예능의 방식을 끌어와 그것을 통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듀사>가 그저 그런 기획성 작품에 머물지 않는 완성도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몇 초마다 한 번씩 빵빵 터트려주는 예능 같은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그 안에서 예능국의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저 김수현만을 내세운 이벤트성 드라마라고? 그 안에 촘촘히 채워진 완성도를 들여다보지 못한 성급한 판단이다. <프로듀사>는 드라마적으로도 또 예능적으로도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216)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006)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2,922,782
  • 380616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