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의 거친 말투, 해설보다 예능이 낫다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경기만큼 뜨거웠던 것이 바로 중계 전쟁이었다. 처음 그 승기는 MBC가 확실히 잡은 것처럼 보였다. 이미 <아빠 어디가>를 통해 친숙한 이미지를 갖게 된 김성주와 안정환이 나란히 축구 중계석에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KBS 중계를 했던 이영표의 승리로 돌아갔다.

 


'쿡가대표(사진출처:JTBC)'

심지어 문어영표, 표스트라다무스라는 애칭이 생겨날 만큼 이영표는 확실한 논거와 자료를 들어 해설하면서 축구 해설만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김성주의 안정된 진행에도 불구하고 안정환의 해설은 만담처럼 들렸다. ‘때땡큐나 다소 거친 표현들이 등장해 자극적인 재미를 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축구 해설의 묘미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후 <아빠 어디가>도 폐지되고 안정환은 좀체 그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 것이 KBS<청춘FC>였다. 역시 안정환의 텃밭은 축구였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예능적인 모습이 아니라 축구와 축구를 하려는 후배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진심어린 모습으로 보여줬다. 이 진정성은 안정환이 그저 리환이 아버지도 아니고, 다소 자극적인 말투로 만담 같은 입담을 뽐내는 예능인이 아니라 본래 축구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주었다.

 

그렇게 안정환의 진심어린 모습이 바탕을 만들어내면서 그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시 그의 진가를 끄집어내는 인물은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온 김성주였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함께 출연해 축구 얘기보다는 나이트 얘기를 더 많이 꺼내 놓으면서 솔샤르를 미드필더라 했다가 쏟아지는 반발에 축알못(축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방송은 예능적인 재미를 만들어주었다. 첫 출연에 우승. 안정환과 김성주의 조합의 힘을 확인시키는 순간이었다.

 

이 조합이 보여준 성과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MC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어주었다. 정형돈의 부재로 인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인물로서 일일 MC로 참여한 안정환이 결국 고정으로 자리하게 된 것. 여전히 거친 면이 분명하지만 안정환은 프로 MC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형돈과의 비교점을 빗겨갈 수 있었다. 프로 MC를 대신 세우려 했다면 대체불가 정형돈과 비교되며 힘겨웠을 그 자리가 이런 프로그램 자체가 낯선 안정환이 들어오자 색다른 분위기로 만들어졌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자리에 들어가면서 그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쿡가대표>에도 자연스럽게 발탁됐다. 명절 파일럿으로 방영됐던 <미래일기>에서도 할배가 된 안정환은 꽤 괜찮은 느낌을 선사했고, <인간의 조건>에서도 특유의 소탈한 모습으로 호감을 만들어냈다.

 

해설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던 그가 예능에서 이처럼 짧은 시간에 대세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예능에서 보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축구에서 보면 스트라이커에 가깝다. 늘 전면에 드러나진 않지만 한 번 기회를 잡으면 누구보다 화려하게 센 모습을 드러낸다. 해설에서 거칠게 다가왔던 말투는 예능에서는 오히려 진솔하게 느껴진다.

 

물론 아직 안정환은 원석에 가깝다. 하지만 늘 새로운 얼굴에 갈증을 느끼는 예능에서 그가 올해의 유망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김성주 없이 홀로서기를 하게 됐을 때 비로소 안정된 방송인으로서의 안정환의 위치가 만들어질 것이지만, 다소 거친 현재의 원석 상태가 어쩌면 대중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젊은 피 광희 신고식, 나이든 <무도> 멤버들에게는

 

쫄쫄이를 입고 나온다는 건 작정했다는 뜻이다. 웃기기 위해 뭐든 하겠다는 예능인으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그 몸매(?)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옷에서는 묻어난다. 그들은 쫄쫄이를 입고 100킬로로 달려 나가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화장을 하고, 짜장면을 먹는다. 거대한 여객기를 맨손으로 끌겠다며 차가운 진흙탕에 빠지고 발 위에 균형을 잡은 채 기내식이라고 제공되는 음식을 입으로 받아먹는 연습과정을 거친다. 잔뜩 더러워진 얼굴에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구르고 또 구른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것은 <무한도전> 클래식이라고도 불리고, 한편으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도 불린다. 벌써 10년 전부터 이들이 시도했던 것들이다. 그 때만 해도 그들은 훨씬 젊었다. 모두가 30대의 미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40대에 저마다 아이를 가진 아빠들이다. 이들 아빠들의 작정한 듯 망가지기로 한 웃음 속에는 깊은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열심히 뛰고 넘어지고 망가지게 만드는가.

 

클래식이라고도 부르는 데서는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난다. <무한도전>과 함께 나이 들어온 시청자라면 정준하가 과거 롤러코스터 위에서 날려 보낸 짜장1의 심지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명장면의 회고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새내기 광희의 신고식을 겸해 다시 짜장 2호에 이어 짜장3호를 날렸다. 입 안 가득 면발을 물고 얼굴 가득 짜장 범벅이 된 채.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라는 표현에 걸 맞는 힘겨운 미션들은 이 40대 아빠들의 도전에 짠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버님 박명수가 롤러코스터 위에서 새로운 화장품을 어떻게든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어떻게든 그걸 꺼내 얼굴에 바르려는 모습 속에는 웃음을 주기 위해서 뭐든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물웅덩이를 가운데 놓고 서로 잡아당겨 그 진창에 빠뜨리는 미션에서 보여준 박명수의 놀라운 선전은 그래서 아버님이라는 수식과 만나면서 먹먹한 느낌마저 준다.

 

젊은 피 광희의 신고식으로 시도하게 된 <무한도전> 클래식이자 <무모한 도전>이지만 광희보다 오히려 더 빛나는 건 40대 아빠들의 여전히 빛나는 투혼이다. 광희가 허수아비젊은 배영만종이인형그리고 졸라맨이라고 불리는 반면, 이들 10년 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오며 나이 들어간 아빠들은 여전히 너무도 익숙하게 망가지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러니 이들의 웃음을 주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에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는 이제 뭐든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젊은 날의 치기보다는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의 무게 같은 것도 느껴진다. 그 힘겨운 미션들을 반복하며 이동하는 차안에서 그들끼리 바보처럼 과장되게 아닌데요?”를 반복하며 웃는 모습 속에는 10년 간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동료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힘겨운 상황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웃어야 한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젊은 피 광희는 이들이 웃음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코 <무한도전>이라는 자리가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자리는 인기에 군림하는 왕좌가 아니라 진창 위에 몸을 굴리는 가장 낮은 자리라는 걸 깨닫지 않았을까. 아마도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후에도 여전히 쫄쫄이를 입는 걸 서슴지 않을 모습들. 추억에 젖다가 또 웃다가 짠해지는 순간이었다.

 

<무도> 식스맨, 흥미롭지만 남는 아쉬움

 

이미 방송 시작 전부터 화제부터 논란까지 벌어졌던 MBC <무한도전>식스맨’. 그 첫 방송에는 기대만큼 남는 아쉬움도 많았다. 첫 회에 식스맨 물망에 오른 이들은 장동민, 김영철, 전현무, 데프콘, 광희, 주상욱이었다. 이밖에도 예고편에 등장한 인물들은 이서진, 유병재, 강균성, 홍진경, 홍진호 같은 인물들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여기 등장한 후보들은 이미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인물들이다. 장동민이나 전현무, 데프콘 같은 인물은 이미 대세라고 표현될 정도로 갖가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유병재나 강균성 같은 인물은 새롭게 등장했지만 역시 타 프로그램에서 발군의 활약을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든 존재들이다.

 

사실 식스맨은 <무한도전>의 필요에 의해 진행되는 기획이다. 길에 이어서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하차하게 되면서 남은 다섯 명으로는 여러 미션들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한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여섯 명은 되어야 팀을 나눌 수도 있고, 두 명씩 짝을 지어 미션을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섯 명은 어딘지 애매하다.

 

노홍철을 복귀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논란이 나왔지만, <무한도전>이 그런 무리수를 쓸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유재석은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며 선을 그었다. 필요에 의해 진행되는 기획이고, 기존 멤버를 복귀시키려는 의도가 아예 없다면 이제 남은 건 어떤 인물이 식스맨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하지만 먼저 첫 방송에 나온 인물군들을 보면 각각 자기만의 영역을 가진 후보들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무한도전>과 잘 어울릴까 하는 의구심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사실 자기만의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한도전> 고유의 분위기와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자기 색깔을 내다보면 <무한도전>과 마찰이 생기고, 그렇다고 <무한도전>에 맞춰주다 보면 자기 색깔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바깥에서 만들어져 들어온 새로운 캐릭터가 <무한도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한도전>의 팬들이 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무한도전>이 독특한 것은 거기 출연자들이 거의 무명에서부터 시작해 성장해오는 과정들을 팬들과 함께 공유했다는 점이다. 그런 멤버들 속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 분위기를 바꿔 나간다면 그건 자칫 논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잘 나가는 예능인들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식스맨으로 넣는 건 <무한도전>의 색깔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잘 나가는 이들이 저희들끼리 이리저리 모여 잘 나가는 건 <무한도전>이 그리는 세상이 아니다. 그들 역시 잘 못나갈 때 평균 이하로 시작해 지난한 노력을 통해 지금 현재의 최고 위치에 올라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 식스맨은 여러 모로 잘 나가는 예능인을 뽑기보다는 오히려 예능에서는 존재감이 없거나 신인에 해당하는 인물을 들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무한도전> 식스맨이 패러디하고 있는 영화 <킹스맨>에서 애거시라는 청춘은 멋진 스파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시작했다. 다만 스파이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무한도전> 식스맨은 그런 자질과 가능성이 있으되 대중들에게는 아직까지 예능인으로서 자리하지 못한 인물군에서 나오는 편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막내로 들어와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때, 그 인물은 실제로 <무한도전>의 멤버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한도전>의 기존 멤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현무를 보면 KBS가 보인다

 

하나도 놀랍지 않다. 전현무가 KBS에 사의를 표명하고 프리선언을 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KBS측이 아직은 모른다며 그걸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전혀 놀랍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간 전현무가 KBS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라. 제아무리 직원이라도 또 당사자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이리 저리 프로그램에 투입되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다른 MC들이 몇 백만 원의 출연료를 받아갈 때 자신은 달랑 몇 만 원을 받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을 이가 있을까.

 

 

'불후의 명곡2'(사진출처:KBS)

물론 돈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전현무가 아나운서에서부터 시작해 토크쇼 게스트, 버라이어티쇼, 음악 프로그램, 퀴즈쇼, 라디오까지 전방위적으로 투입되는 과정이 적절하다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매니지먼트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현무는 급격하게 소비된 측면이 없지 않다. 매니저가 없는 전현무 입장에서 그것을 해줄 수 있는 곳은 KBS 뿐이다. 과연 KBS가 전현무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물을 제대로 관리했을까.

 

만일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라면 <생생정보통> 같은 교양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최후의 보루처럼 아나운서라는 이미지를 버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디오나 퀴즈쇼 같이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 투입되기 보다는 한두 개의 굵직한 프로그램에서 존재감을 높이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또 <남자의 자격>이나 <불후의 명곡2>에 투입되는 과정처럼 그저 들어가라 해서 들어가야 하는 땜빵용 캐스팅은 피해야 마땅하다.

 

전현무는 <남자의 자격>에서 김성민과 이정진이 빠져나가면서 들어오게 되었고, <불후의 명곡2>에서는 김구라를 대체하는 자리에 들어오는 가시방석에 그것도 녹화시작 단 몇 시간 전에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프로그램 투입은 전현무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전현무는 애매한 정체성의 혼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나운서라는 직함은 갖고 있으나 아나운서로서의 역할은 없는 그를 아나운서실이 반길 리 없고, 그렇다고 예능인들이 KBS 직원인 그를 같은 입장에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전현무의 고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물론 현재 전현무가 초반과 달리 비호감과 호감의 가운데서 줄타기를 하게 된 것은 스스로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기댈 데가 없다 보니 함께 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고 그럼에도 자기 분량을 채우려다보니 이기적으로 비춰진 면이 있다. 이것은 애초에 예능을 바랐던 전현무가 그만큼 준비는 덜 되어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그가 프리 선언을 한다고 해도 불안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구성원들과 함께 풀어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전현무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현무가 가진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KBS의 인력관리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SBS가 개국했을 때나 최근 종편이 개국했을 때 KBS에서 유독 인력의 유출이 많았다는 것은 직원 개개인에 맞춰진 인력 운용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 속에서 부속물처럼 움직이게 되어 있는 KBS의 인력 운용 체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인력이 빠져나가도 언제든 그곳을 다른 인력으로 채우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KBS의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엿보인다. <1박2일>의 시즌2를 맡게 된 최재형 PD나 <남자의 자격2>를 맡게 된 정희섭 PD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의도치 않은 피해자일 수도 있다.

 

전현무가 프리 선언을 하건, 아니면 KBS에 잔류하건 그건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또 프리 선언의 성패 또한 본인의 몫이다. 잘 될 수도 있고 잘 못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재 전현무가 처한 상황이 KBS라는 조직이 그에게 일정부분 부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전현무가 프리 선언을 한다고 해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조직이 직원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데 직원이 어떻게 그 조직에 끝까지 남아있겠는가.

예능인과 방송인 사이, 전현무가 처한 상황

 

전현무는 밉상이다. 선배건 후배건 사사건건 깐족대는 건 일쑤고, 프로그램은 실수투성이다. 춤은 저질 수준이고 노래는 듣기 힘들 정도다. 물론 누구나 알다시피 이건 캐릭터다. 하지만 아무리 캐릭터라고 해도 본업이 아나운서라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아나운서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 어딘지 딱딱하고 단정하며 신뢰가 가는 그 이미지를 그는 확실히 뒤집어엎었다. 아이러니이지만 바로 이 반전요소 때문에 전현무는 대중들의 눈에 들었다.

 

 

'불후의 명곡2'(사진출처:KBS)

아나운서라는데 개그맨보다 더 웃긴다는 사실은 전현무라는 전혀 새로운 방송 캐릭터의 핵심적인 포지셔닝이다. 물론 기존에 아나테이너로 대변되는 아나운서들의 변화의 징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전현무는 다르다. 그는 여타의 아나테이너들처럼 방송사로부터 프리선언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아나테이너들에게도 어떤 보이지 않는 벽으로 여겨지던 버라이어티쇼까지 진출했다. '생생정보통'에서 아나운서로서는 튀는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던 전현무는, '해피투게더'나 '남자의 자격'에서 한없이 망가지며 웃음 주는 전현무로 변신했다.

 

전현무는 따라서 현재 아나운서라기보다는(물론 서류상으로는 아나운서가 맞겠지만), 예능인에 더 가까운 포지셔닝으로 옮겨갔다. 아나테이터라는 위치가 시대적 요청(정보에도 재미를 요구하는)에 의한 아나운서들의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면, 전현무는 아예 그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에게서 우리는 신뢰 있는 정보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전현무에 요구하는 건 밉상 캐릭터거나 저질 댄스거나 돌발 발언으로 스튜디오를 초토화시키는 그 독특한 예능감이다. 우리는 어느새 전현무에게서 재미만을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지점은 전현무에게는 그다지 유리한 것이 아니다. 전현무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애초부터 개그맨이나 예능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아나운서라는 어딘지 엄밀해 보이는 직업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예능감이 훨씬 돋보였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나운서로서의 이미지나 포지션이 점점 흐릿해지는 건 나아가 예능인으로서의 포지션 또한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에 KBS가 파업 중이라는 사실은 전현무에게는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서 방송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나운서들이 스스로 자신을 어떤 위치에 세우는가 하는 점은 자신들의 정체성과도 관련 있는 문제다. 방송PD들과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 전현무는 어떤 위치에 자신을 세울 것인가. 방송인인가 아니면 예능인인가. 오상진 아나운서와의 비교점이 만들어지고, 개념과 무개념 운운되는 논란이 생긴 건 지금껏 전현무 같은 애매모호한 포지션의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활동은 연예인처럼 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위치는 방송사의 직원이자 아나운서인 전현무는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애매한 포지션 때문에 곤혹을 치를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모두가 파업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연예인처럼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전현무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연예인(방송인)이든 아니면 방송사에 소속된 아나운서든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이런 애매한 포지션은 사라지겠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현무는 아나운서라는 바탕과 그것을 뒤집는 예능인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 사이에 축조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전현무는 지금 위태로운 위치에 서 있다. 아나운서라는 바탕을 버리면 자칫 밉상이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밉상이 될 판이다. 그렇다고 예능인으로서의 활동을 좀 더 본격화하거나 아예 버릴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것은 전현무라는 독특한 경계의 캐릭터를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필 동료 아나운서들이 거리로 나가는 이런 시기에, '불후의 명곡2'에서 하차한 김구라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은 그래서 전현무에게는 정말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현무는 그저 본격적으로 예능인으로서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아나운서라는 본래 위치를 함께 가져갈 것인가. 그 상황이 애매하고 선택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지만 사실 정답은 나와 있다. 아나운서라는 위치를 버리는 순간, 예능인으로서의 길도 쉽지 않은 것이 전현무가 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현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김태원이 예능으로도 부활에 성공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사실상 현 예능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조건들을 다 갖춘 예능인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과한 평가라 여겨진다면 찬찬히 하나씩 그가 가진 면모들을 들춰보는 것으로 다른 설명은 불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예능에서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독특한 말투 때문입니다.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합니다"라는 어투에 "~응"하고 꼬리를 올리는 특유의 말투는 그의 토크가 가진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주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죠. 물론 말투는 늘 내용과 상관관계를 갖습니다. 이런 말투가 말하는 것은 그가 살아온 굴곡진 인생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이제는 그것을 여유있게 관조하며 유머로 풀어낼 수 있는 그 시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속에는 록커라는 자존심도 숨겨져 있죠.

바닥으로 추락했던 경험들을 객관화해서 남 얘기하듯이 툭툭 털어내는 그것은 즉각적으로는 웃음을 줍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한번쯤 그 속사정을 생각하게 만들죠. 그것이 김태원이 작곡한 곡들과 연결될 때, 그의 말이 전해주었던 웃음은 어떤 감동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러니 김태원은 토크의 형식(말투)과 내용을 모두 갖춘 예능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예능에서 또 한 축이 되는 몸개그는 어떨까요. 김태원은 현재 국민약골 이윤석을 능가하는 할머니 캐릭터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그의 저질 체력은 늘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보여주었죠. 줄넘기 한 번을 넘기기 어려워 안간힘을 쓰는 모습과, 선착순하면 아예 포기하고 천천히 걷는 모습은 김태원만의 귀차니스트로서의 몸을 캐릭터화해 주었습니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한다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등의 저질 몸은 그 자체가 몸개그가 되었죠.

김태원을 할머니 캐릭터로 만든 요소 속에는 저질체력과 닮은 외모뿐만이 아니었죠.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그의 형편없는 상식 수준(이것은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예능 캐릭터로서는 분명 유리한 요소죠)은 그를 할머니 캐릭터에 부합하게 만들었습니다. 엉뚱한 답변은 물론 그의 사차원 정신세계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를 갖춤으로서 김태원은 예능인이 갖추어야 할 저질 몸과 캐릭터를 강화시킬 수 있는 저질 지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관통해보면 김태원은 현재 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는 사람처럼 그려지게 됩니다. 만일 김태원의 캐릭터가 여기에 머문다면 그것은 바보같은 캐릭터가 될 수는 있어도 어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지금의 김태원 캐릭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태원은 이런 저질의 몸과 체력과 지능을 보여주면서도 자신이 음악인이라는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 예술인으로서의 끼를 놓지 않은 것이죠. 이것은 다른 부족한 부분들을 모두 상쇄시켜 매력으로 전환시켜주는 중요한 점입니다.

또한 김태원은 여러 토크쇼에 나와서 아내와의 남다른 금슬을 과시했습니다. 그의 따뜻한 면모는 예술인으로서의 남다른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부족해보이고 또 그것이 친근한 아저씨 인상을 부가시켰습니다. 우리 록의 전설이라는 아우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친근해 보이는 그 독특한 이미지는 김태원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죠.

무엇보다 김태원의 이 모든 것들은 꾸며진 것이 아니라 리얼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스스로도 밝혔듯이 삶 자체가 드라마틱했던 그는 지금 그 드라마틱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예능인인 것이죠. 이렇게 보면 예능인으로서의 김태원은 이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시대가 발견한 캐릭터라고 보여집니다. 그는 현재 예능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예능인이 분명합니다.

예능인의 맨 얼굴, 김C

‘1박2일’의 ‘백두산 특집’에서 배로 19시간, 버스로 23시간을 이동한 출연진들.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쇼지만 눈을 뜬 강호동은 먼저 눈곱부터 닦아내고, 가까이 놓여있는 카메라에 얼굴 크게 잡힌다고 투덜댄다. 이승기는 늘 그래왔듯이 그 와중에도 생수를 조금 따라서 세수를 한다. 만인에게 얼굴이 노출되는 연예인이라면 습관적으로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 때 불쑥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방송을 위해 안 씻을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C. 그 이유는 “우리의 여정이 힘들다는 걸 그냥 표현”하기 위해서란다.

‘1박2일’에서 김C는 사실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는 캐릭터는 아니다. 복불복 게임의 벌칙으로 고추냉이가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된다면 아마도 예능에 익숙한 이들은 그것이 실제 맵건 맵지 않건 ‘확실하게 맵다는 리액션’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김C는 다르다. 그저 먹고는 그저 그렇다는 표정을 지을 뿐 과장된 리액션은 보이지 않는다. 김C의 존재가 부각됐던 번지점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승기와 은지원이 못한 번지점프를 하는데 있어서 김C는 예능인들 특유의 과장된 몸짓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뛰어내린 후, “이런 거라도 해야한다”고 담담히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과장되지 않은 모습은 ‘1박2일’에서는 사실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명한PD가 밝힌 대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진가는 ‘꾸미지 않는 것’에서 자연스러울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호동이 표현한 대로 “눈만 감으면 시체”가 되는 김C의 얼굴은 이미지로 메이크업된 것이 아닌, ‘예능인 본래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백두산까지의 여정에서 다른 팀원들이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고생을 역설하는 것보다, 버스 맨바닥에서 자고 일어난 김C가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다”고 하는 말 하나가 더 실감을 준다.

지금까지 김C가 ‘1박2일’에서 보여준, 아니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보여준 행보들도 거의 자신의 맨 얼굴에 가깝다. 김C가 소설가 이외수씨의 집을 추천해 찾아간 것은 ‘1박2일’에서 기획된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김C와 이외수씨의 관계가 그렇듯 돈독하다. 김C가 쓴 책에 이외수씨가 삽화를 그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 만난 그들은, 이외수씨가 김C의 콘서트에서 퍼포먼스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춘천에서 오래 생활했고, 사실상 거지처럼 살았던 적이 있으며, 예쁜 색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 이외에도 그들은 삶 자체가 꾸며지지 않은 맨 얼굴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뜨거운 감자’의 보컬로서 ‘봄바람 따라간 여인’을 부르는 김C의 음악 또한 치장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시류를 타는 이른바 히트곡들과 비교해 조금은 덜 세련된 면이 있지만 바로 그것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쩌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고집하는 음악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마련인 독특한 그들만의 매력일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찾아가 김C가 ‘서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리는데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가 노래를 할 때나 예능을 할 때나 혹은 라디오를 하거나 내레이션을 할 때나 늘 솔직한 진지함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선 예능인들이 늘 웃고 밝은 얼굴을 보이려 할 때, 막상 그 카메라를 메고 들고뛰는 제작진들의 힘겨운 얼굴처럼, 김C는 그 카메라 이면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보여주는 힘이 있다. 어쩌면 김C의 꾸미지 않는 얼굴은, 앞으로는 늘 웃고 있지만 때로는 찡그리고, 눈물도 나고, 힘겨워 하기도 하는 모든 예능인들의 맨 얼굴을 표상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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