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폐허가 된 이보영의 마음, 중요해진 전혜진의 역할

대행사

“아니, 사는 것도 쓴데 먹는 것도 맨날 이렇게 쓰면 무슨 힘으로 버티겠어요?”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에서 조은정(전혜진)이 케이크를 챙겨다주며 하는 그 말에 고아인(이보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고아인의 쓰디쓴 삶은 그의 책상 위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쓴 커피가 늘 놓여 있고, 한쪽에는 머리를 쥐어 짤 때 습관적으로 물고 있었던 담배들이 쌓여 있다. 

 

고아인이라는 캐릭터에서 특이했던 점은 바로 이 담배를 피우지도 않으면서 습관처럼 물고 일을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피웠다 끊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담배를 물고 있는 행위는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업무의 과중함이 느껴지고 건강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의 성격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느껴지는 건 ‘결핍’이다. 무언가를 습관적으로 입에 물고 있는 건 어쩌면 어려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엄마의 부재가 만들어낸 심리적 결핍과 불안감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대행사>는 물론 고아인이라는 이 파이터가 태생과 학력, 성별로 차별하는 세상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매 번 위기 속에서도 상대들을 곤욕을 치르게 만들고 실력으로 무너뜨리는 사이다가 가장 큰 매력인 드라마다. 그래서 이렇게 전면에서 치고 나가는 고아인 같은 캐릭터의 서사에 간간이 워킹맘으로서 실력은 있지만 집에서도 은근히 회사를 그만두기를 바라는 압력 앞에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는 조은정 같은 캐릭터의 서사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6회에 드러난 조은정의 존재감은 <대행사>가 그리려는 것이 고아인이라는 인물의 전쟁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고아인이 저 차별하는 세상과 맞짱을 뜨며 보여주는 사이다가 <대행사>의 한 축이라면, 조은정이 일로 성공하고픈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이와 가족을 챙기느라 그게 쉽지만은 현실에 대한 공감과 위로가 이 드라마의 또 한 축이다. 

 

어찌 보면 고아인도 조은정도 삶의 균형을 잡고 있기 보다는 극과 극으로 나가 있는 사람들이다. 고아인은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가족 따위는 아예 없는 존재이고, 개인적인 삶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회사 동료들과 어우러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적인 연애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며 드라마에서 그 이야기 들어주는 친구도 없다. 가족도, 동료도, 친구도, 애인도 없는 말 그대로 모든 관계에서 ‘고아’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오로지 자신 스스로만 서 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조은정은 정반대로 자신 스스로의 삶이 잘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회사에서는 카피라이터로 괜찮은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다지 인정해주지 않는 워킹맘이고, 집에 돌아가면 회사 그만 두라는 철없는 아들과 은근히 애들 금방 자란다며 아이를 챙기길 바라는 시어머니, 남편 앞에서 답답하기만 한 며느리, 엄마다. 

 

하지만 이 극과 극의 삶을 살아가는 고아인과 조은정이 서로의 영역 속으로 들어오는 일이 생긴다. 조은정이 포기하고 사직서를 내려던 순간, 고아인이 그를 CP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한 것. 조은정은 사직서를 찢어 버리고, 집에는 아이에게 사직서를 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집을 나와 출근하는 길이 너무나 즐거워진다. 그만큼 이 인물은 고아인과 달리 낙천적이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인물이다. 

 

고아인도 조은정도 쓰디쓴 삶 앞에 놓여 있지만, 그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상반된다. 치열하게 싸워 쟁취하려는 고아인이라면, 주어진 상황이 어려워도 수긍하고 받아들이며 즐겁게 버텨나가는 조은정이다. 이 둘의 조합은 그래서 <대행사>를 흥미롭게 만든다. 싸워야 쟁취할 수 있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게 싸우다 자신을 고갈시키는 ‘상처뿐인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보통 일터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인물을 위로해주고 지지해주는 요소로 멜로가 등장하곤 하지만, <대행사>는 그런 클리셰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초반만 하더라도 게임회사 대표인 정재훈(이기우)과 혹여나 멜로적 관계가 만들어지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 관계는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정재훈이 고아인에 대한 호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고아인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 고아인 주변에는 다른 지지자들이 서 있다. 사내 정치에서 밀려나 포차를 하고 있는 과거 고아인의 사수였던 유정석(장현성)이 그렇고, 같은 팀에서 늘 든든하게 고아인을 업무적으로 챙겨온 한병수(이창훈) 부장이 그렇다. 하지만 유정석과 한병수가 업무적인 지지를 해주는조력자들이라면 조은정은 그 결이 사뭇 다르다. 업무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폐허된 고아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아인의 사이다 가득한 전쟁과 더불어 조은정의 따뜻한 위로 한 스푼이 있어 <대행사>의 서사가 균형 있는 재미를 더하게 됐다.(사진:JTBC)

  • ‘마인’, 재벌가 이야기로 욕망을 성찰하는 드라마

 

냉정한 이야기지만 아마도 자본주의에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그 사람이 가진 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일 게다. tvN 토일드라마 <마인>은 바로 ‘나의 것’이라는 의미의 ‘mine’을 제목으로 삼고, 효원그룹이라는 재벌가의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엄청나게 넓은 대지 위에 커다란 건물이 카덴자 그리고 작은 건물이 루바토라 불리는 이 대저택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예술작품에 가까운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게다가 완벽한 카스트를 이루는 이 집의 위계는 이 곳에서 살아가는 주인들과 그들을 완벽하게 케어해주는 메이드들로 나뉘어있다. 조선시대나 어울릴 것 같은 ‘도련님’이라는 지칭에 헛웃음을 흘리는 신참 메이드는 헤드 메이드에게 소리를 빽 지르며 “여기는 어나더 월드”라고 알려준다. 그 다른 세상을 구조화하는 건 다름 아닌 돈이다. 그래서 메이드들도 여기에 적응하고 갑질하는 저들 세계에 남고 싶어 한다. 지나칠 정도로 충분한 돈을 주니까. 

 

tvN 드라마 '마인'

그런데 재벌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엉뚱하게도 엠마 수녀(예수정)의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주기도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재벌가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설명하는 목소리 역시 엠마 수녀다. 이 지점은 <마인>이 이 작품을 쓴 백미경 작가의 성공작이었던 JTBC <품위 있는 그녀>와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품위 있는 그녀>가 부유층들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는데 집중했다면, <마인>은 모든 걸 다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속에서 진짜 가져야할 것을 못 가진 이들의 삶을 성찰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이 극단화된 부유층의 이야기는 ‘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어떤 성찰의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심축은 역시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과 둘째 며느리 서희수(이보영)다. 재벌가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자라온 정서현은 가족조차 비즈니스를 하듯 대하며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이들에게 관계는 ‘가진 것’에 따라 달라지는 서열과 무관하지 않다. 정서현은 맏며느리로서 집안 대소사를 결정하고 예술 사업을 통해 대외적인 일까지 관장하지만, 가족 관계는 차갑기 그지없다. 알코올과 도박에 빠져 사는 남편은 남이나 다름없고, 그의 이혼한 아내가 낳은 아들 수혁(차학연)은 모자간의 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모든 걸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젊어서 사랑했던 동성 애인을 잊지 못하고 또 드러내지도 못한 채 가슴 속 깊이 봉인해놓고 살아간다. 가진 것이 의미 없어지는 삶이다. 

 

반면 여배우였다 결혼해 효원가에 들어온 서희수는 정서현과 달리 비서와도 자매처럼 지내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 전 부인의 아들과도 친아들 같은 정을 준다. 하지만 모든 걸 다 가졌다 생각하는 그에게도 위기가 시작된다. 시크릿 튜터로 들인 강자경(옥자연)이 조금씩 자신이 가졌던 것들을 건드리면서다. 서희수의 남편 한지용(이현욱)과 이미 과거에 비밀스런 관계였을 것으로 보이는 강자경은 그래서 서희수의 모든 걸 빼앗으려 할 것이고, 이 둘의 사투는 드라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서희수가 저 정서현과는 ‘가지려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정서현은 자신의 사랑 같은 삶의 진정한 것 대신 재벌가 맏며느리의 삶을 가지려 했지만, 서희수는 이 낯선 재벌가에 들어와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희수가 가지려는 건 그래서 ‘재벌가 며느리’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이 대비는 향후 이 드라마가 갖진 대결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온갖 욕망으로 가득 채워진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진짜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 물론 <마인>의 겉면은 재벌가를 둘러싼 치정과 불륜, 후계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상속 싸움, 가진 것으로 나뉜 신 카스트 속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갑질 등등 자극적인 광경들이지만, 그 속은 마치 이들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는 성찰적 시선이다. 여러모로 <품위 있는 그녀>에서 한 걸음 더 깊어진 작가의 고민이 느껴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PD저널), (사진출처:tvN)

모두가 '화양연화', 과거는 현재를 어떻게 구원하나

 

"찾았다. 윤지수."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에서 대학시절 재현(박진영)은 지수(전소니) 앞에 나타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헤어진 후 중년이 되어 어느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재현(유지태)은 지수(이보영)를 찾아낸다. 그토록 긴 세월동안 아픈 손가락처럼 마음 언저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통증을 남기고 있던 그를.

 

<화양연화>가 그 먼 길을 돌아 재현과 지수를 다시 만나게 한 건, 현재의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제 다시는 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에 다시금 꽃을 피워보기 위함이다. 형성그룹 회장의 사위이자 부사장이지만 사냥개처럼 부려지며 살아가는 재현은 노조를 위해 앞장서다 배신자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죽음이 장산 회장(문성근)의 짓이었다는 걸 알고는 복수를 결심한다.

 

또 지수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윤형구(장광)와 아들 영민(고우림)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불행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장산 회장과 결탁해 부정을 저질렀던 아버지로 인해 사랑했던 재현과 헤어졌고, 이세훈(김영훈)과의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이혼했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엄마와 동생 지영(채원빈)이 죽고 나서 아버지마저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 불행 속에서도 지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대학시절 재현을 통해 들여다보게 된 약자들의 삶을 그가 놓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형성그룹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들을 위해 시위에 나선다. 젊은 시절 갖고 있던 그 순수하고 선하며 정의로운 그 마음이 있어 그는 부당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맞서며 살아낸다. 정작 재현은 너무나 먼 곳으로 떠나 달라져 있었지만.

 

그래서 중년이 되어 재현이 지수를 찾아낸 건 어쩌면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지수를 만나 대학시절의 그 순수하게 피웠던 열정의 꽃을 다시금 들여다 본 그는 현재를 바꾸기 시작한다. 애초에는 복수심과 욕망으로 형성그룹 장산 회장과 맞서려 했지만, 지수를 만난 후 그는 본래 자신이 있었던 약자들을 들여다보고 정의를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비리를 고발해 장회장이 죗값을 받게 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장 회장과 아내 장서경(박시연)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자신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전문경영인을 세워 회사를 정상화시킨 것.

 

불행했던 장서경과의 결혼생활을 마무리 지은 재현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지수 앞에 선다. "찾았다. 윤지수." 재현의 그 말은 아마도 자신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재의 재현은 지수를 찾아내고, 과거의 지수가 하는 말들을 들었고, 현재의 지수 역시 과거의 재현 앞에서 드디어 활짝 웃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재현이 과거의 재현을, 현재의 지수가 과거의 지수를 꼭 안아준다.

 

화양연화. 꽃처럼 예쁘던 순간들이 있어 우리는 어쩌면 견딜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과거들을 매 기억 속에서 만남으로써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 게다. 그 때가 화양연화였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래서 지금도 화양연화다. 그건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화양연화다. 그래서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슬퍼할 것도 이미 지나버렸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삶은 언제나 흐르고 있고 꽃은 언제든 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먼 거리를 버텨온 이들을 위해 <화양연화>가 건네는 위로다.(사진:tvN)

시대적 비극을 담아 '화양연화'가 하려는 이야기

 

아련했던 청춘시절의 첫 사랑을 추억하고 그 설렘으로 현재를 변화시키는 드라마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는 그런 이야기를 건네고 있지만 윤지수(이보영)와 한재현(유지태)이 겪어온 끝없는 비극은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래도록 여동생 지영(채원빈)과 차별받아왔던 지수. 남자친구 재현이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아버지 윤형구(장광)가 공권력까지 동원해 그들을 막았고 결국 지수는 재현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백화점 붕괴 사고로 여동생과 엄마를 잃고 나서 재현을 떠났다. 군에 강제로 끌려간 재현을 만나러 갔던 그 날 여동생과 엄마가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 지수는 이 일로 재현을 원망하게 될까봐 이별을 택했다.

 

지수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엄마와 여동생이 사고로 죽었고, 아빠는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중이다. 결혼에 실패해 이혼했고 부양하는 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 결국 자퇴를 하게 됐다. 그는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우면서 살지만,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학부모로 다시 만나게 된 재현이지만 대기업의 사위가 되어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데 과연 재현의 삶은 평탄했을까. 대학시절 그토록 약자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싸워왔던 그가 어째서 형성그룹 회장 장산(문성근)의 사위이자 사냥개가 되어 갖가지 비리들에 대한 죄를 온전히 뒤집어쓰고 있을까.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 군 생활을 하던 도중 아버지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됐고 그 이유는 형성그룹 장 회장이 사주한 노조파괴에 프락치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이용당했기 때문이었다. 재현은 지금 장 회장에게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너무 먼 거리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여겼던 지수와 재현은 이로써 어쩌면 공동의 목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대학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지수와 재현이 형성그룹과 맞서 약자들의 편에서 싸우는 그런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것.

 

<화양연화>는 지수와 재현의 삶에 드리워진 비극들을 통해 우리네 사회가 겪었던 아픔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1980~90년대 학생운동으로 겪은 아픔들은 물론이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같은 대형 사고들이 만들어낸 시대적 비극이 그러하다. 게다가 그 비극은 지금도 지속된다. 약자들은 여전히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고,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기도 하며 법 위에 군림한다.

 

그래서 <화양연화>의 지수와 재현이 그려나가는 사랑이야기는 적폐세력들과 싸우는 정의의 구현과 겹쳐진다.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이 피워가는 옛 사랑의 기억들은 그래서 당대의 순수했던 약자들을 위한 삶과 정의에 대한 불씨를 다시금 피워낸다. 과거에 이들의 사랑을 막아섰던 이들이 현재도 그들 앞에 서 있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목표를 사랑 그 이상으로 확장시킨다.

 

물론 이처럼 시대의 갖가지 비극들을 온전히 다 겪는 인물의 이야기는 다소 작위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드라마가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기보다는 과거를 회고함으로써 느리게 전개되고, 그 비극이 계속 반복됨으로써 답답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중년의 시청자들은 이들의 사랑이 이제라도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동시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이들을 막아 세웠던 부정한 현실들이 청산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우리네 시대를 관통하는 비극들을 통해 사랑과 정의의 문제를 연결시켜놓은 이 부분은 <화양연화>가 가진 색다른 지점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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