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받지 마세요, 내가 정답입니다.”

전현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굴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닌 전현무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의하면 그가 지난해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만큼 그가 해내는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이 폭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선보인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에는 반드시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전천후 방송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인포테인먼트의 흐름, 전천후 방송인의 탄생

전현무는 방송의 흐름이나 시대의 변화를 앞서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2012년 그가 프리 선언을 했을 때 마침 방송가에는 ‘인포테인먼트’의 흐름이 생기고 있었다. 교양에서조차 정보만이 아닌 재미를 요구하는 새로운 변화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로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아나테이너의 길로 나아간 선택은 이런 변화에 딱 맞는 거였다. 진행자인 MC로서의 역할, 예능에서의 플레이어로서의 역할, 또 코멘테이터의 역할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 건 이 변화의 흐름에 적응한 결과였다.

 

“저는 근데 예전에 이렇게 역할이 다 나뉘어 있을 때부터 그냥 옷만 다르게 입는 거지 다 똑같은 전현무를 하는 거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게스트, 패널, MC, 플레이어 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는데 요즘에 그런 게 없잖아요. 예전에 넌 MC가 왜 이렇게 플레이어를 하려고 해 라고 누군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요?’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역할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옛날부터 저는 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 다르긴 한데, 약간 MBTI처럼 제가 MBTI P인데 P만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저도 J가 한 20% 정도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다 모든 게 섞여 있듯이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색깔을 좀 넣는 거고 게스트일 때는 게스트를 좀 하고... 100% 완벽하게 하나의 성향만 있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까 그것만 조금씩 조절을 하는 거지 역할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려 노력해온 시간들이 들어있다. 과거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루시퍼’ 춤을 추고 하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한 면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여유로워진 예능인으로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가끔 케이블 채널 몇백 번대에 가면 그거(루시퍼) 나와요. 아직도 나오고 있죠. 진짜 민망해서 못 봐요. 저런 멘트를 하고 저런 표정을.. 그리고 남의 말 듣지도 않고 그냥 나 하나 웃기려고 그냥 너무 안쓰러울 정도로 그러고 있어요. 그런데 그랬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것 같고, 지금 이제 막 예능하는 친구들을 제가 이렇게 MC로서 보면 제가 그랬던 모습이 보여요. 귀여워요. 얘들도 10년 뒤에 얼마나 이걸 흑역사로 생각하고 민망해 할까. 근데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여유를 갖기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에서 능력만큼 중요한 건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현무가 방송가에서 섭외 일순위로 꼽히는 건 어쩌면 이 태도와 자세가 남달라서일 게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저는 캐스팅을 당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을 하는 사람한테 캐스팅 하길 잘했다 라는 말을 들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게스트로 나가도 춤을 한 번이라도 더 추고 편집을 하더라도 그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섭외해 줬으니 이렇게 120% 하고 가겠다 라는 마인드로 지금도 하고 있고, 그 초심은 지금도 여전해요.”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는 법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OTT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콘텐츠들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가 ‘나 혼자 산다’에서 이른바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 캐릭터로 MZ들의 다양한 취향에 뛰어들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트렌드란 도대체 뭘까. 

 

“몸이 늙는 거는 병원 가서 어떻게든 노화를 더디게 할 수는 있는데 정신 늙는 거는 답이 없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정신이 늙으면 진짜 두 배 세 배로 늙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가 몇이든 간에 요즘 세대들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려 하죠. 근데 그거를 재미있게 풀어서 ‘트민남’이라고 한거예요. 요즘 애들은 뭐 이거 한대 이러면 이미 나는 늙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든 그걸 알려고 하고 따라해보려고 하면 주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들이 저를 귀엽게 봐요. 저를 친근하게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어떤 추세고, 맛집은 어디가 힙한지 관심이 많고 또 그걸 즐기며 살고 있어요.”

 

트렌드 변화는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연예인보다 인플루언서들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그래서 역으로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뛰어드는 트렌드도 생겨나고 있는데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현무는 아직 그 대열에 들어 있지 않다. 트렌드 변화에 잘 적응해온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행보다.

 

“주변에 유튜브를 안하는 사람이 거의 저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가 오히려 레어템이 돼서 방송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유튜브 하다 보면 콘셉트가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방송을 안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도 유튜브가 하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남들 하니까 나도 계정이나 만들어 놓을까 하는 자세로는 처음 잠깐 주목받다 흐지부지될 것 같아요. 유튜브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해야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또 방송에서 이미 했던 캐릭터를 갖고 비슷한 걸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방송에서 소화못하는 콘텐츠가 있다면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손에 잡히지는 않고 있어요.” 

 

예전에 ‘Moo진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전현무는 브런치 스토리에 ‘트렌드를 대하는 자세’라는 글을 쓴 바 있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가장 나다운 게 곧 트렌드’라고 한 문구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문화에 진심인 것. 그게 가장 트렌디한 일이다.’라고 그는 썼다.

전현무와 함께


뻔한 엄숙주의를 넘어선 펀(fun)한 인물

전현무는 누가 봐도 엘리트다. 연세대를 나왔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 43기 기자로 입사했다 1주일만에 나와 YTN에 앵커로 들어갔으며, 2006년에는 KBS에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언론고시에 있어서 기자, 앵커, 아나운서 모두를 합격한 브레인이었던 것. 하지만 그의 행보는 기자에서 앵커로 앵커에서 아나운서로 옮겨간 후에도 또다시 이전에는 없던 ‘예능에 최적화된 아나운서’로 그리고 프리선언 이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때 엘리트주의와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서서히 유연해진 시대의 흐름이 엿보인다. 

 

“저는 예전부터 영상 매체는 뉴스든 다큐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재밌어야 된다는게 제 철칙이었거든요. 요즘 종편을 보면 앵커들조차 재밌게 하려고 하는데요, 과거에는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거부감이 있었던 건데 저는 이럴 때가 올 거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바쁜 와중에 TV를 켠다는 건 대단한 행위인데 진지한 얘기만 들으려고 보지는 않거든요. 재미가 있어야 보는 거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예전 싸이월드 제 계정에 제가 이렇게 쓴 적도 있어요. ‘재미 없는 건 재앙이다’라고요. 당시에는 아나운서, 코미디언, PD, 기자 등등 역할이 완전히 나눠져 있었는데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인포테인먼트 시대를 지나 어느 순간에는 교양과 예능이 뒤섞이는 시대로 넘어갔다. 실제로 SBS에서는 당시 교양국과 예능국이 통합되어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이 탄생하기도 했다. 교양의 다큐적 요소들이 예능 속으로 들어와 점점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경향도 생겼다. 아나테이너들이 등장하게 된 건 당연지사였고, 전현무는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얘기해도 될 법한 인물이었다. 

 

“아나테이너들이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장성규와 조정식을 응원하거든요. 너무 이쁜 동생들 좀 더 활발히 설쳐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나다움’을 잃지 말라는 거예요. 나다움을 잃고 기존의 아나운서를 흉내내는 순간 불합격입니다. 나다움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흔히들 하는 얘기거든요. 면접장에서도 본인이 보지도 않는 방송의 아나운서를 제 롤모델이라고 하면 거짓말인 거 다 알거든요. KBS 시험 볼 때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개콘’을 얘기했었어요. 실제로  전 ‘개콘’을 매주 일요일마다 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술렁술렁거렸어요. 당시 아나운서들이 진행할 확률이 제로인 ‘개콘’을 얘기했다는 거는 굉장히 전략적이지 않은 답변이었죠. 근데 거기서 그분들은 솔직하게 본 거죠. 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거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런 걸 되게 잘한다. 방송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거를 잃지 말고 면접장에서 어필을 하시면 훨씬 더 합격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요즘 아나운서는 직종 자체가 위기다. 이미 정확한 발음에 특화된 아나운서보다 조금 익숙지 않아도 개성있는 배우가 멘트를 하는 걸 더 선호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서다. 또한 아무 개성 없이 멘트만 하는 아나운서는 AI를 이기기가 어렵다. 전현무가 말하듯 자기만의 어떤 개성이 확실한 목소리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또 감정도 실을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요구된다. 

 

‘나다움’의 아이콘
이른바 ‘멀티테이너’가 당연해진 우리의 일상이다.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일반인들도 한 가지 캐릭터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졌다. ‘부캐’가 대세가 되고, 역할도 많아졌다. 어떨 땐 굉장히 진지해야 되고 어떨 땐 굉장히 가벼워야 하고 이걸 균형 있게 잘해야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한 가지의 나의 모습에 갇혀 있기보다는 다양한 나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삶이 중요해진 현재, 전현무가 말하는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울림이 적지 않다. 그는 예전에 ‘다움’에 대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움’에 갇히면 다 같아지고 ‘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자가 백만 유튜버가 되고 파워 블로거가 되고 인플루언서로 인기를 얻는다.”

 

“‘나다운 게 다움에 갇혀 있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학생다워야 한다, 아나운서다워야 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근데 아나운서답지 않게 해서 성공을 했어요. 그 다움이라고 하는 거는 남이 규정해 놓은 거잖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아나운서는 이래도 돼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싸이월드에 ‘내가 정답이다’라는 글을 썼었어요. 부모님도 정답이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직장 상사, 사장님, 본부장님도 아닌 당신이 정답이에요. 당신 인생의 정답은 당신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나운서 들어가자마자 아나운서다움도 버려 버렸고 이제 프리를 해서도 아나운서 출신 다움에 대한 선입견도 버렸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유튜브를 예로 들면, 방송과는 전혀 상관없는 곤충에 미쳐있거나, 피규어에 미쳐 있고 또 ASMR에 빠져있는 이런 분들이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있잖아요. 100만 유튜버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너무 좋아 죽겠는거, 나다운 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다움은 요즘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과거 직장인다움이라는 틀 안에서 야근을 당연히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벗어나 퇴근 후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워라밸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흔히들 ‘MZ 같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현 세대들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일 게다. 전현무는 그런 점에서 스스로도 말하듯 MZ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MZ였다고도 볼 수 있다. 

 

“MG들의 성향을 20대 때 이미 갖고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회식도 하기 싫으니까 안 가는 게 그 때는 쉽지 않았어요. 신입 아나운서 때부터 저는 회식을 안갔는데, 제 아나운서 송별회 하는 날도 제가 안 갔어요. 그만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그렇게 살아왔죠. 저는 나이 50, 60이 돼서도 이런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아직도 음악 방송을 많이 하지만 아이돌들이 인사하고 오는 걸 싫어합니다. 진심으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누가 인사를 안 왔다고 싸가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아니 바빠 죽겠는데 자기 할 일 하고 가면 되지. 그 시간에 쉬고 무대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아요.”

 

왜 전현무가 이 급변하는 방송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금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인물이 됐는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나다운 것을 잃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나다움’이란 사회적 잣대가 들이미는 무수한 ‘다움’의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전현무의 나다움은 그래서 복잡해진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던진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가는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뉴스1)

 

‘나혼자 산다’부터 ‘전현무계획’까지 가장 방송을 많이 하는 예능인

전현무계획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구일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니다. 바로 전현무다. 그는 현재 고정출연하는 프로그램만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한 건 그가 감당하는 프로그램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이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강심장VS’나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는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특유의 이력 때문이다. 흔히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듯 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줬다. 손범수를 롤모델로 삼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일찍이 갖게 된 그는 그가 다니는 연세대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선배 손범수가 했던 것처럼 대학방송국(YBS)에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로 입사했지만 1주일만에 그만두고 YTN에 들어가 1년 간 앵커로 활동했고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들어갔다. 결국 손범수처럼 되겠다는 꿈을 끝없는 도전 끝에 이루게 된 셈이다. 기자부터 앵커, 아나운서를 모두 섭렵한 이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향후 그가 정보나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특출난 진행능력을 선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된 후 그는 그 직종의 역할이 방송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뉴스 앵커가 되려는 거라면 모를까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의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아나운서들의 자리를 연예인들이 점점 차지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해도 같이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수입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은 출연료(방송사에 소속된 직장인이라 당연한 일이지만)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는 아나운서들이 생겨났고 그 중에는 연예인들처럼 교양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하는 이른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들이 탄생했다.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프리 선언을 한 김성주는 그 성공사례가 됐다. 특유의 스포츠 진행 능력이, 대결과 결과발표가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데서 유용한 능력이 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전현무는 KBS 아나운서 시절부터 차분히 아나테이너로의 전향을 준비한다. 마침 ‘비타민’이나 ‘스타골든벨’ 같은 교양과 맞물린 예능프로그램들이 나오던 시절에 그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전담하다시피하며 자신의 이력을 쌓는다. 그러면서 때때로 아나운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촐싹대는 이른바 ‘깝’을 보여줘 그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방식으로 오히려 큰 웃음을 준다. 그리고 2012년에 드디어 프리선언을 하고 KBS를 퇴사한 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나운서라면 피해야 할 비호감, 밉상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초반에는 팬과 더불어 많은 안티팬도 생겼지만 차츰 캐릭터가 정착되고 적당하게 선을 넘는 방법들을 찾아나가면서 전무후무한 방송인이자 예능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연 프로그램의 진행 능력을 인정받았고,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는 물론이고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까지 섭렵한 예능인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의 ‘트민남’ 캐릭터가 가장 도드라진 건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프로그램을 시대의 조류에 맞는 형태로 이끌어낸 점이다. ‘나 혼자 산다’는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1인가구로 들어온 시대에 혼자 사는 삶을 관찰카메라 방식으로 들여다 본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가 갖는 명분의 이면에는, 연예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겠다는 리얼리티쇼의 태동이 있었다. 즉 리얼리티쇼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1인 라이프를 앞세웠던 것. 하지만 점차 관찰카메라로 불리는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명분보다 중요해진 건 더 리얼한 내용들이었다. 노홍철이 하차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락기를 거치면서 일찍부터 합류해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전현무를 중심으로 기안84, 박나래, 이시언 같은 인물들이 영입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정 출연자들을 중심으로 세우고 간간히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고정 출연자들 간의 케미가 리얼하게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담기게 됐다. 리얼리티쇼에 캐릭터쇼가 더해진 느낌이랄까. 이 두 가지 형식 모두에 최적화된 전현무는 여러 위기 국면을 돌파하며 최근 다시 ‘나 혼자 산다’의 부흥기를 만든 장본인이 됐다. 트민남, 무스키아, 무든램지, 프레디 무큐리 같은 캐릭터들을 탄생시켰고, 박나래, 이장우와 함께 이른바 ‘팜유라인’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먹방여행을 다니는 모습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그는 여행유튜버인 곽튜브와 함께 무작정 길을 떠나 맛을 즐기는 ‘전현무계획’에 출연했다. ‘길바닥 먹큐멘터리’라는 프로그램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무계획’과 ‘계획’을 넘나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 예능의 영향을 받아 대본대로 움직이는 계획적인 프로그램들보다는 계획 없이 돌발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프로그램들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다. ‘전현무계획’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예능 트렌드에 발맞추면서 동시에 기존 예능의 방식(계획이 있는)을 오가는 형태로 기획되었다. 그래서 ‘전현 무계획’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아무 곳이나 무작장 찾아들어가 먹방을 선보이며 사람을 만나다가, ‘전현무 계획’으로 미리 계획한 누군가를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전현무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여러모로 아나운서에서 예능인으로, 캐릭터쇼에서 관찰예능으로 뻗어나가는 전현무의 강점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 같다. 계획을 하면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끈질긴 추진력을 보여주면서도, 때론 계획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유연함을 갖는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분들이라면, 계획과 무계획을 넘나드는 전현무의 행보가 시사하는 점이 분명 있을 게다. (글:국방일보, 사진:MBN)

더 아슬아슬해진 '히든싱어6', 원조가수의 우승이 쉽지 않다는 건

 

JTBC 예능 <히든싱어6>의 관전 포인트는 갈수록 놀라온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이다. 첫 회에 출연한 김연자만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모두 모창능력자들이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난 시즌들에 진짜 가수들이 모창능력자들에게 지는 풍경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화제가 되는 '희귀한 일'이었지만, 이번 시즌은 상황이 역전됐다. 진짜 가수가 모창능력자들을 이기는 것이 특별한 일처럼 여겨질 정도로.

 

비가 원조가수로 출연한 5회는 <히든싱어6>가 가진 모창능력자들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먼저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예 비를 빼고 첫 라운드를 시작한 것. 연예인 판정단들은 저마다 그 목소리를 추리하며 투표를 했지만, 놀랍게도 비는 그 커튼 뒤가 아닌 객석 뒤에서 나타났다. 어려서부터 성장사를 함께 해오며 누구보다 진짜 비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 자신했던 god 박준형은 "사기 방송"이라며 분노하기도 했다.

 

비가 아예 첫 라운드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이 충분했다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첫 라운드에서 1,2번은 실제 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창법과 목소리로 노래해 모두를 혼돈에 빠뜨렸다. 비 역시 객석에서 노래를 들으며 1번이 부를 때 자신이 부르는 줄 착각할 정도라고 했을 정도였다.

 

첫 라운드에서 아예 비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2라운드에서 두 명이 탈락한다는 사실은 비의 긴장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6위는 확연하게 누구인지가 드러났지만 5위는 헷갈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3라운드를 통과한 비는 애초에 보였던 자신감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와 창법은 흉내낼 수 없다 자신했지만 라운드를 거듭하며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창능력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히든싱어>의 중요한 재미 포인트 중 하나인 전현무의 '가수를 쥐락펴락하는 진행'의 묘미도 더 커졌다. 바로 탈락자를 알려주지 않고 한없이 뜸을 들이며 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과정은 당사자들은 힘겨워도 보는 이들에게는 더 큰 몰입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최종 라운드. '러브스토리'를 갖고 치른 그 라운드는 실로 누가 진짜 비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을 보여줬다. 최종 우승자가 된 김현우는 100표 중 무려 54표를 받아 비를 무릎 꿇렸다. 비가 받은 25표의 두 배가 넘는 표를 받은 것.

 

<히든싱어6>는 이제 원조가수의 우승이 아닌 실력이 좋아진 모창능력자들의 우승으로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깝게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못한 비가 기꺼이 우승자를 축하해주는 장면은, 그 우승자인 김현우가 비를 롤모델 삼은 팬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오히려 비를 기쁘게 만들었다.

 

누가 이기든 무슨 상관일까. <히든싱어>는 본래 팬과 스타 사이의 유대관계를 가장 핵심으로 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팬으로서 참여한 모창능력자들이 원조 가수를 이긴다는 건 그만큼 큰 애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실력이 좋아진 모창능력자들로 인해 이제 첫 라운드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반전 무대가 가능해졌고, 더 아슬아슬한 진행으로 몰입도도 높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조가수들이 최종우승을 하기가 쉽지 않아진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제 모창능력자들의 도전이 아닌 원조가수들의 도전이 될 정도로.(사진:JTBC)

 

'나 혼자 산다'가 만드는 독특한 관계망, 그 끈끈함

일주일 내내 전현무와 한혜진의 결별 이야기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동시 잠정하차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성인 남녀가 만나 사귈 수도 있고, 또 헤어질 수도 있는 일에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계속 회자되고 있는 건 어딘가 좀 과한 느낌이다. 

물론 <나 혼자 산다>의 주축이었던 두 사람의 하차가 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심각한 수준의 파장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윤균상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방영분은 향후 잠정적으로 전현무와 한혜진이 하차한다고 해도 이 프로그램이 끄떡없을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 

<역적>에서 홍길동 역할로 선 굵은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윤균상. 하지만 일상에서는 전혀 다른 고양이들의 윤집사가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훤칠한 키가 어딘가 강인한 인상을 주는 윤균상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들 앞에서 한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다. 사실 이런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고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이것이 <나 혼자 산다>가 가진 진짜 힘이 아닐까 싶다.

고양이 발톱과 털을 깎아주고 매일 하는 운동이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 모습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지만, 여기에 더해지는 편집과 스튜디오에서 덧붙이는 이야기들은 이것을 독특한 예능의 웃음으로 만들어낸다. 계단 오르는 운동을 보이기 전에 카리스마 넘치는 연예인들의 몸 만드는 장면을 전제로 슬쩍 편집해 넣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예능화’는 쉽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어느 카페에서 윤균상이 만난 이준혁과 심희섭과의 수다는 과거 <역적>을 찍었을 때의 이야기들과, 밀리터리 덕후인 이준혁의 엉뚱한 유머가 뒤섞이며 편안한 재미를 준다. 취미라고 보기에는 과한 듯 모형 총을 가방 가득 갖고 나타난 이준혁이 군대에서 먹는 비상식량과 맛다시 같은 걸 꺼내놓는 장면에, 마치 방문판매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더해지자 그 상황 자체가 우습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윤균상이 마치 친형들처럼 따르는 이들과의 따뜻하고 편안한 관계가 보는 이들마저 흐뭇하게 만든다. <역적>을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그 때의 장면들도 떠올리게 할 만큼.

요리보다는 조리를 잘 한다는 윤균상이 라면에 햄, 소시지 그리고 마라 소스를 넣은 부대찌개를 끓여내고, 소면을 삶아 골뱅이와 맛다시를 버무려 내놓은 안주에 찾아온 친구들과 술 한 잔 곁들인 수다를 떠는 장면도 그렇다. 그건 우리 누구나 한번쯤 하는 일상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니 저 반짝반짝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들이 우리와 똑같은 일상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공감대가 생겨난다. 

술만 마시면 노래를 부른다는 윤균상이 그 노래 부르는 장면을 화면으로 보며 창피해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은 관찰카메라가 잡아내는 일상에 자신도 모르는 모습이 담긴다는 걸 보여준다. 술에 취해 노래 부르고 들을 때는 그토록 좋았던 그 순간들이 영상으로 들여다보자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낸다. 그 민망한 순간을 스튜디오에서 MC들이 공유하며 함께 괴로워하는(?) 장면에 웃음이 터지는 건 그래서다.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요해진 건 시청자들이 그 출연자들에게 느끼는 친밀감이다. 멀리 떨어진 어떤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를 들여다본다는 그 지점은 <나 혼자 산다>가 갈수록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래서 윤균상처럼 한번 슬쩍 나와 그 일상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마치 친구 같은 친밀함을 갖게 되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이면 다음에 또 만나고픈 아쉬움을 갖는 것. 

전현무와 한혜진의 잠정 동반 하차는 아쉬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나 혼자 산다>가 잘 될 거라는 건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고 잠시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유지되는 관계의 지속성 때문이다. 이처럼 이 프로그램에는 어느 순간 조금 편안해졌을 때 다시 돌아와 근황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윤균상 편을 보면서 이 인물이 언젠가 또 이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를 이어갈 거라는 예감처럼,(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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