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호 PD의 마법, ‘감빵생활’이 주는 판타지라니

도대체 이 따뜻함의 정체는 뭘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다보면 감방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도소는 구치소와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제혁(박해수)이 지내게 된 감방 안 사람들은 의외로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감방에 처음 들어가게 된 제혁이 보게 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로 라면을 끓여먹는 이야기는 이들의 반전 매력을 드러낸다. 마치 탈옥이라도 할 것처럼 쉬쉬하며 무언가를 공모하던 이 감방사람들은 그러나 그것이 뜨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으려는 ‘작전’이었다는 걸 보여주며 이들이 꿈꾸는 것들이 이런 소소한 것이 주는 행복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감방의 방장격인 장기수(최무성)는 겉보기에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기지만 장발장(강승윤)이 아버지라 부를 만큼 방 사람들을 챙기는 인물이다. 장발장은 닉네임처럼 빵을 훔치다 감방에 들어온 인물이고, 고박사(정민성)는 기업사기 전과로 들어왔지만 고발 고소 전문이다. 카이스트(박호산)는 도박으로 들어왔지만 뭐든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만물박사. 풍기는 포스와 달리 혀 짧은 소리로 ‘신라면’인지 ‘진라면’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오게 된 몽롱한 정신으로 할 이야기는 다 하는 나름 귀여운 캐릭터 뽕쟁이(이규형)도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주는 따뜻함의 원천은 이런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욕망들이다. 마침 방영하는 <영웅본색>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장기수를 위해 카이스트가 한 채널 밖에 나오지 않는 감방의 TV를 어떻게든 건드려 다른 채널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훈훈함을 준다. 결국은 장발장이 슬쩍 해온 리모콘으로 쉽게 채널을 돌려버리지만. 

모가지 밖에 나오지 않는 닭볶음이나 일주일에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는 온수 샤워를 위해 끝없이 민원을 넣어 상황을 호전시키는 고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가 나오고 매일 온수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는 그 상황만으로도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이 교도소에 위기상황이 없는 건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작업실의 반장(주석태)은 제혁에게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지만 제 맘대로 되지 않자 그 어두운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제혁을 성추행하려 하지만 그 때 마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교도관 준호(정경호)에 의해 불상사를 피하게 된다. 제혁의 오랜 친구인 준호가 애써 힘을 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건 오로지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교도소가 제혁에게 주는 위기상황과 또 그를 보호해주려는 인물 사이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이 이 드라마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그 느낌이 주는 소박함과 훈훈함은, 사회와는 유리되어 있고 살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곳에서도 ‘슬기로운’ 방식으로 인간적인 삶을 희구하는 인물들의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감방생활을 보고 있는 것이지만 또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금 보게 되는 것.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좌절되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감방생활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먹기 위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를 먹기 위해서, TV의 채널을 돌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또 온수 샤워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래서 그것이 관철됐을 때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어떤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가는 건 엄두도 못내는 해외의 유명 리조트 같은 곳을 날아가야 판타지를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방 같은 뭐 하나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공간에서 아주 소소한 것들을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해내는 그 장면은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역시 신원호 PD답게 감방이라는 차가운 공간조차 사람 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왜 신원호의 마법이라 부르는 지 알 것 같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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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빵생활’, 힘겨운 상황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방법

왜 하필이면 감방생활이었을까. 그리고 거기에 ‘슬기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은 건 무슨 뜻이었을까. <응답하라> 시리즈로 우리에게 익숙한 신원호 PD의 작품 세계를 떠올려보면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이례적이다. 감방이라는 공간 자체가 어딘지 비일상적이고,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질감을 신원호 PD는 단 첫 회만에 지워버렸다.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 제혁(박해수)이 동생을 성폭행하려는 괴한과 격투를 벌이다 중상을 입혀 구치소에 수감되고, 그 곳에서 보내는 며칠간의 이야기가 의외로 일상적이고 심지어 따뜻한 느낌마저 줬기 때문이다. 물론 교도소와 구치소는 다를 수 있겠지만 구치소라고 해도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그런 곳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그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

그렇지만 2심에서 풀려날 것으로 믿었던 제혁이 1심 구형인 1년 실형이 그대로 확정되는 판결을 받게 되면서 제혁이 앞으로 겪게 될 감방 생활이 생각보다는 파란만장할 거라는 걸 예감케 했다. 구치소가 아닌 교도소 이감 이야기가 나오고, 그 곳은 구치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살벌한 분위기라는 것.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것이 단지 고난으로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이 제혁이라는 인물이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혁이 가진 만만찮은 캐릭터 덕분이다. 야구만 잘 했지 어딘지 굼뜨고 어눌하게까지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의외로 치밀한 면을 갖고 있는 인물. 그런 캐릭터를 보여준 건 이 구치소의 부정한 교도관 조주임(성동일)을 자신의 절친인 교도관 준호(정경호)와 함께 한 방에 날려 보낸 에피소드를 통해서다.

CCTV가 찍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어 그 곳에서 수감자들을 폭행하는 등 비리를 일삼아온 조주임이 자신의 돈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제혁에게 앙심을 품자 오히려 그의 뒤통수를 쳤던 것. 테니스공으로 CCTV를 맞춰 사각지대가 찍혀지게 돌려놓고, 그래서 찍힌 영상을 기자인 준호의 동생에게 제보해 결국 조주임은 파면을 당하게 됐다. 또 한 교도관이 요구한 사인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검방(감방 검사) 날짜를 미리 알고는 칼을 구한 건달(이호철)을 징벌방에 들어가게 만들기도 했다. 

즉 이 제혁이라는 인물이 의외로 이 낯선 감방에서도 잘 적응하고, 위기상황에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이런 에피소드들이 보여줬다. 또한 제혁은 고교시절 사고를 당하고도 지독할 정도의 재활훈련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던 인물이다. 어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그래서 어떤 든든함마저 준다. 

2심 공판에서 예상과 달리 1년 형을 확정 받고 다시 구치소로 돌아올 때, 친구인 준호나 가족들 심지어 구치소 교도관들조차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지만, 제혁은 달랐다. 안타까워하는 교도관이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했을 때, 그 날 운동을 빼먹었다며 운동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대목이 그렇다. 빗속을 뛰고 또 뛰는 그 모습은 힘겨운 상황에 그가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간다. 결국 누구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방에 가게 될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특히 지금처럼 힘겨운 현실은 감방이 주는 그 갑갑함이나 답답함과 조응하는 면이 있다. 그러니 그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라는 것. 흔들리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삶이 결국은 그 힘겨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줄 거라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는 제혁이라는 담담한 매력을 가진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는 중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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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왜 사랑보다 우정이 더 소중해보일까

 

MBC <한 번 더 해피엔딩>은 저 <섹스 앤 더 시티>를 닮았다. 전직 걸 그룹 출신인 네 여자들이 함께 모여 신세한탄을 할 때면 더욱 그렇다. 한 때 누군가에게는 로망이었을 잘 나갔던 걸 그룹이지만 현재 나이 들어 살아가는 모습들은 하나 같이 쉽지 않다.

 


'한번더 해피엔딩(사진출처:MBC)'

이혼 후 재혼 컨설팅 업체를 차려 일하는 한미모(장나라)는 오랜 만에 구해준(권율)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 남자 결코 쉽지 않다. 어딘지 타인을 배려하기 보다는 자기 욕심이 강해보이는 남자. 친절해보이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보이지 않는 듯한 모습에 한미모는 어딘지 이건 사랑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그에게 이혼한 전처가 자꾸 마음을 보낸다.

 

모태 솔로로 살아온 고동미(유인나)는 기껏 만난 남자가 사랑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다. 한미모와 함께 일하는 백다정(유다인)은 힘겹게 이어온 결혼생활을 이제 끝내려 한다. 불임인 남편 때문에 겨우겨우 시험관시술로 득남했지만 몸이 망가져 부부관계를 갖지 못한 지 오래됐다. 그러더니 덜컥 유방암에 걸려 수술까지 받게 된다.

 

홍애란(서인영)은 걸 그룹 당시 섹시 천사였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모두에게 잊혀진 평범한 여자가 되었다. 어쩌다 남자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지만 어째 막상 하려니 마음이 찜찜하다. 결국 결혼을 앞두고 모든 걸 뒤집어버린다.

 

<한 번 더 해피엔딩>은 결혼 혹은 재혼을 앞둔 네 여자들의 고민들을 담았다. 어딘지 <섹스 앤 더 시티> 혹은 그 드라마를 우리 식으로 풀어냈던 <달콤한 나의 도시>를 빼닮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혼과 재혼이 이제 그리 낯설지 않게 된 현재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 여자들 모두 남자들과의 관계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혹은 저마다 겪어온 삶이 있어서인지 이제 결혼을 얘기해도 넘어서야할 산들이 너무 많다. 여주인공인 한미모의 상황은 대표적이다. 그녀는 사실 송수혁(정경호)을 좋아하지만 자식을 둔 처지 때문에 다가오지 못하는 그 때문에 구해준 사이에서 헷갈린다. 게다가 송수혁은 아이를 낳은 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내 때문에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사랑이 쉽지 않은 그들이지만 그럴수록 서로를 이해하는 네 사람의 우정은 빛난다. 사기를 당한 고동미와 함께 홍애란은 그 사기꾼을 찾아가 그를 무릎 꿇린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방암이라고 말하는 백다정의 말에 친구들은 진심으로 걱정해준다.

 

사실 어찌 보면 이 네 사람이 서로 우정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삶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굳이 결혼을 목표로 남자를 만나고 만나려하는 일들이 너무 피곤해보이기도 한다. 이미 한번 겪어 본 결혼을 왜 또 굳이 하려고 하는지가 잘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과연 지금도 행복을 위해서는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 번 더 해피엔딩>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남녀 사이의 사랑을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를 다루지만 그럴수록 커지는 건 행복의 조건이 반드시 결혼을 전제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결국 제목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네 여자들이 다시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꼭 결혼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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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해피엔딩>, 빠른 전개에도 감정몰입 괜찮은 까닭

 

거칠 것이 없다. MBC 수목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의 전개 속도는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보다 빠르다. 첫 회에 만난 한미모(장나라)와 송수혁(정경호)은 낯 술 한 잔으로 결혼 직전까지 달려간다. 결혼서약서에 친구인 구해준(권율)까지 동석시켜 사인까지 한다. 물론 서약서는 다행히(?) 접수되지 않았지만 만남에서 결혼까지 조금씩 진행해가는(심지어 어떤 로맨틱 코미디는 이 과정이 전부인 경우도 많다) 드라마와는 너무 다른 빠른 전개다.

 


'한번 더 해피엔딩(사진출처:MBC)'

2회에서는 술이 깬 한미모와 송수혁이 모든 게 술 때문이었다며 전 날 벌어진 일들을 그냥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한 밤 중에 어지럼증을 느껴 응급실로 실려온 한미모가 송수혁의 친구인 구해준을 만나 첫 눈에 빠져버리는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한미모는 구해준을 보고는 대놓고 재혼할 결심을 갖는다. 2회만에 결혼 직전까지 간 남자와 재혼 결심을 하게 만드는 남자, 그렇게 삼각관계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이런 빠른 전개와 속도감은 이 로맨틱 코미디가 다루고 있는 것이 한번 갔다 온(?) 재혼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알 것 다 아는 남녀들이어서인지 숨기고 내숭 떨고 하는 것이 이 드라마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또 좋으면 뭐가 좋다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드라마가 흘러간다. 그 호불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심지어 성적인 면도 숨기지 않는다.

 

장나라라는 배우가 가진 로맨틱 코미디의 연장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른바 장나라표 로코는 귀엽고 솔직한 캐릭터로 여성들의 공감대가 크다. 그 솔직하게 망가지는 모습에 한껏 웃음을 주면서도 순간 짠해지는 공감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장나라는 원숙함을 덧붙였다. 이미 한 번 결혼하고 돌아와 재혼을 꿈꾸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거칠 것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간 지상파드라마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정경호는 JTBC <무정도시><순정에 반하다>에서 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 정경호는 훨씬 더 일상으로 내려온 듯한 편안한 얼굴이다. 의외로 웃음을 주는 과장 연기에도 능하고 동시에 아들을 가진 아빠로서의 진중한 연기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이렇게 단 2회 만에 굉장히 많은 감정적 굴곡을 보여주는 빠른 전개의 드라마가 가능하려면 그것을 소화해내는 연기자가 그만큼 감정연기에 능수능란함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나라는 물론 이런 역할에 베테랑이지만 정경호의 로맨틱 코미디 연기도 만만찮게 자연스럽다. 한껏 웃음을 주다가 갑자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며 눈물을 터트리는 장나라나, 사별한 아내의 이야기 앞에 짐짓 아련해지는 정경호의 감정 연기는 빠른 전개 속에서도 드라마가 단단해보이게 만드는 이유다.

 

결혼만큼 이혼도 늘고 있는 현실이다. 당연히 결혼이나 재혼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업다. 남녀 사이의 때론 달달하고 아프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만큼 이 달라진 세태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그 중심을 잡아주는 장나라와 정경호의 연기력과 매력이 재혼이라는 소재와 잘 맞아 떨어지며 돋보이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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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이 끔찍한 건 그것이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맨홀>의 배경은 강북의 한 마을이다. 어둑한 밤길 마치 공무원들처럼 복지부동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공권력 속에서 그나마 행인들을 지켜주는 것이라면 가로등과 CCTV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맨홀>의 연쇄실종사건이 벌어지는 강북의 그 마을에는 그 가로등과 CCTV를 공권력이 아니라 살인자가 쥐고 있다.

 

'맨홀(사진출처:화인웍스)'

가로등을 마음대로 꺼버리고 그 어둠 속에서 살인자는 일종의 인간사냥을 벌인다. CCTV? 그것은 범죄자들을 찍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아니라 사냥감이 어디로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범죄자의 천리안이다. <맨홀>에서 본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적인 위치를 만들어낸다. 살인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공권력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한 치 알 수 없는 어두운 지하의 그 미로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건 우리에게 끔찍한 경험을 선사한다.

 

<맨홀>은 스릴러 장르지만 그래서 공포에 가깝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단지 자극적인 장면들 때문에만 생겨나는 건 아니다. 이 맨홀로 상징되는 어두운 지하세계가 현실의 무언가를 자꾸만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 위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밑에서는 끌려 들어간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겪는다는 건 우리가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맨홀>의 피해자들을 보면(당연히 그 배경이 강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서민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택시기사가 아버지인 딸이 있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진 동생과 부모를 여의고 그 동생을 돌보는 착한 언니가 있다. 만일 피해자가 기득권층이었다면 이 영화를 통해 그나마 어떤 사회적 분노를 발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피해자들을 그저 선량한 서민들로 보여준다. 심지어 가해자마저 폭력의 피해자로 그려진다.

 

즉 이 <맨홀>이라는 세계에는 지워져 있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이 한쪽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데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기득권층의 세계다. <맨홀>은 그래서 피해자들끼리 벌이는 약육강식 같은 느낌을 보여준다. 강북이라는 맨홀 위의 공간과 그 맨홀 밑의 공간은 또 그 안에서도 어떤 위계를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맨홀 위와 아래가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다. ? 살아남기 위해서.

 

<맨홀>은 그래서 영화적인 통쾌함을 선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네 현실이 그러하듯이 없는 자들이 없는 자들끼리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풍경을 거칠게 담아낸다. 영화는 어두울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 공포의 시간이 차마 쳐다보기 힘든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나마 그 안에서 인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서로간의 끈끈한 가족애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조차 처절한 현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맨홀>이라는 영화 속에서 정유미, 정경호, 김새론은 말 그대로 반짝반짝 빛난다. 사실 이 영화를 끝까지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건 이들의 호연 덕분이다. 정유미는 단단한 연기로 영화에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동생 역할을 하는 김새론은 아마도 괴물을 다루는 영화 속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만들어낸 배우가 아닐까 싶다. 정경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독특한 비주얼의 살인마 이미지를 각인시켜주었다. 이 세 명이 만들어내는 연기의 합은 이 지하세계에서의 쫓고 쫓기는 과정을 바라보는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마지막 맨홀 바깥으로 카메라가 나왔을 때 우리는 그 세상이 낯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토록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는 지하에 비해 너무나 평온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마치 맨홀 속 같은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현실 속에 살아가면서도 문을 꼭꼭 닫아걸고 아무런 일도 없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 그리고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그 삶의 무시무시함을 이 영화는 맨홀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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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법칙>의 딜레마, 에일리라는 가능성

 

문의 기타 연주에 맞춰 에일리가 살짝 Tamia‘Officially missing you’를 불렀을 때 <도시의 법칙>의 새로운 가능성도 살짝 드러났다. 브르노 마스의 ‘When I was your man’<겨울왕국>‘Let it go’를 부를 때는 도시에서 음악과 같은 문화가 왜 필요한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도시생활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음악의 힘이었다.

 

'도시의 법칙(사진출처:SBS)'

뮤즈의 ‘Supermassive Blackhole’ 반주에 즉석으로 도시의 법칙 테마송을 에일리가 선창하고 즉석에서 벌어진 잼 콘서트. 정경호가 들고 온 냄비는 트라이앵글이 되고, 백진희는 아몬드 박스로 박자를 맞추며, 김성수는 차임벨을 대신하는 자전거 휠을 연주하고 에일리는 생수통을 젬베 삼아, 이천희는 냄비 뚜껑을 심벌즈 삼아 즉석에서 벌인 잼 콘서트는 그것이 도시가 주는 매력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김성수가 에일리의 노래를 들으며 뉴욕 와서 귀가 호강한다고 한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도시생존이라는 미션을 안고 뉴욕까지 왔지만 사실상 길거리에 버려진 가구들을 주워오고, 공병을 모아 잔돈을 만들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이들의 삶은 도시생활의 현실 그 자체다. 도시 생존의 바탕은 뭐니 뭐니해도 결국은 이다. 돈이 없다면 먹을 것도 필요한 물품도 구입할 수 없는 곳이 도시니까.

 

이것은 물론 <도시의 법칙>이 탐구하는 도시 생존의 진면목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으로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시청자들이 도시를 통해 보고 싶은 장면은 아닐 것이다. 특히 뉴욕까지 날아갔다면 뭔가 특별한 뉴욕 체험에 대한 판타지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 <도시의 법칙>의 딜레마가 있다. <도시의 법칙>은 도시생존의 현실을 보여주려 뉴욕에서 사실상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시청자들이 보고픈 장면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도시의 법칙><정글의 법칙>과 다른 점이다. 정글이라면 힘겨워도 한번쯤 꿈꾸고픈 로망이 있는 공간이다. 야생의 자연 그대로라는 것은 도시의 편리함이 사라진 것의 불편함은 있을지 몰라도 또한 없어서 좋은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불빛이 없어 별빛이 더 빛나는 것처럼. 하지만 도시는 다르다. 도시는 없는 것으로 좋아질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사실상 도시생존의 핵심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점이다. 돈벌이는 로망이 될 수 없다.

 

<도시의 법칙>은 그래서 도시생존을 강조하다 보면 예능보다는 다큐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요즘처럼 예능과 다큐의 경계가 얇아진 시대에 이런 프로그램의 성격이 잘못됐다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예능을 보는 마음과 다큐를 보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능이 기대하게 만드는 어떤 즐거움과 판타지는 다큐적인 현실의 처절함에 자칫 묻힐 위험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헬퍼로 에일리가 투입된 것은 <도시의 법칙>이 다큐에 빠지지 않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자못 진지하고 때로는 처절한 <도시의 법칙>을 훨씬 즐겁고 때로는 로망을 느끼게끔 만드는 건 바로 에일리가 보여준 문화의 힘이다.

 

굳이 문화가 주는 아련한 즐거움의 로망을 던지기 위해 뉴욕의 화려함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뉴욕의 느낌이 묻어나는 음악과, 아침의 모닝커피 한 잔, 공원에서의 망중한이나, 영화 한 편의 즐거움 그리고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패션 피플의 의상을 통해서도 뉴욕이란 도시가 주는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니. <도시의 법칙>은 에일리가 잠깐 음악을 통해 보여준 것이 무엇인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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