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가 어딘데??’, 황량한 사막? 가득 채워진 사색거리들

사막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황량함’이 아닐까. 아무 것도 없고 버석버석한 모래만 밟히고 씹히는 그 곳을 횡단한다는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해 보인다. 제아무리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예능의 새 트렌드라고 하지만 사막이라는 황량한 곳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담는다는 게 무리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호진 PD가 굳이 사막을 선택한 건 그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또한 넉넉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누는 대화라면 그다지 주목되지 않을 이야기도 사막에서 걸으며 나누니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물론 이 곳에서 나누는 농담은 툭하면 나오는 ‘죽음’이야기와 더해져 웃음 또한 커진다. 희비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그 이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사막은 그 희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역시 넉넉하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사막이 배경이기 때문에 유독 잘 보이는 자막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치 있는 유머도 깔려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사색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귀들이 만들어내는 울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마치 사막이라는 빈 원고지에 하나하나 사색의 글을 적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번지점프 티켓을 샀어도 뛸 차례가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이런 공감 가는 문구로 시작한 3회 분은 ‘왜 굳이 황량한 땡볕을 걸으러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더하고, ‘이제 도로를 벗어나 이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을 적어 넣은 후, ‘이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음’이란 글귀로 이들이 드디어 사막횡단의 시작점에 들어서 있다는 걸 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 여정의 시작에 월프레드 세시저가 쓴 아라비아 사막 횡단기 ‘절대를 찾아서’의 한 대목이 소개된다. ‘우리 주위로는 훤히 드러난 지구의 뼈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래에 씻겨지고 있었다’ 사막이 어떤 곳인가를 잘 드러내는 그 글귀를 통해 ‘모든 안락함’이 40킬로 저편에 있는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막횡단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은 살짝만 뒤틀어내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지병을 토로하는 조세호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고 털어놓고 이어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는 두 번째 지병을 고백(?)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지병 고백은 웃음을 준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힘들 때도 긍정적인 걸 먼저 떠올린다고 말하는 조세호가 잠시 후 급격히 말이 줄어든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짐짓 비장하게 “탐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목표를(말을 못 맺음)..”이라며 무언가 명언을 할 것처럼 하다 결론을 못 맺는 조세호의 모습은 사막이 주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보여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냄으로써 사색과 웃음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사막 횡단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 그 혹독한 환경에 지쳐간다. 차태현은 일행을 살짝 벗어나 모래를 피해 걷기 시작하고 배정남은 동행하는 베두인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를 하소연을 하고 베두인은 노래를 부르며 그 지친 환경 속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 때 붙은 ‘사막 횡단 1시간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간다’라는 자막은 그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베두인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하는 장면에 더해지는 ‘베두인의 삶은 무척 고되다. 이방인은 물론 그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것은 삶 속의 죽음과 같다.’ 같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말이 들어간 자막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삶 속의 죽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뱀이 새를 잡아먹는 기이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장면을 덧붙이기 위해 유호진 PD가 요청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조세호의 과장된 연기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든다. 해가 살짝 저물어 온도가 38도로 떨어지자 “감기 들겠다”고 말하는 지진희의 한 마디가 만드는 웃음은 ‘삶 속의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 삶’ 역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사막의 절경에 감탄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막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해진 자막 역시 저 아이러니한 희비극의 공존을 잘 표현한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지진희가 “우리가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차태현과 조세호가 내놓은 이야기가 너무나 철학적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항상 사람은 생각한대로 하고 싶잖아. 계획대로 되고 싶고. 근데 계획대로 된 건 진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했을 때(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은?” 그러자 그 이야기에 조세호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태현이 형 얘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신인 개그맨 때는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으니까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욕심을 안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들이 또 오더라고요. 희한하게.” 

사막은 ‘평범한 사람도 사색을 하게 하는 땅’이다. 또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온 대신 신비로운 오후가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도 있었다”며 놀랍다는 지진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대목 그대로다. 사막은 황량하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 곳은 더 많은 사색거리와 이야기들을 채워주고 있으니.(사진:KBS)

‘거기가 어딘데??’, 사막이어서 가능한 새로운 묘미들

<1박2일> 시절부터 그랬지만 유호진 PD에게 일이 의외로 커지게 되는 건 애초부터 기획된 결과만은 아니다. 사막 탐험 예능이라는 KBS의 새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도 마찬가지다. “왜 하필 사막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유호진 PD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박2일> 시절부터 해외로 나가면 어떤 걸 해볼까 고민해왔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해외여행을 담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져 더 이상 새로운 걸 찾기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건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사막이 떠올랐고, 막연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녀온 답사여행에서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사막.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러니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피해야할 곳 1순위에 올랐을 공간이 어쩌면 사막이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아예 닿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 오히려 유호진 PD의 마음을 끌었다. 거기에 오롯이 인물들을 투입하고 그들이 마치 빈 도화지에 써나가는 그 행적의 기록들을 담아내는 건 ‘새로운 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 주어야할 재미 부분을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서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걱정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첫 방송분을 들여다보니, 그게 기우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출연진들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만으로도 빵빵 터지는 예능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발대식에서 다들 “어쩌다 낚였다”며 그 자리에 모인 지진희, 차태현, 조세호, 배정남은, 심지어 사막 탐험을 설명하기 위해 탐험가 남영호 대장이 등장하자, “어쩌다 보니 남영호 대장까지 등장한다”며 슬슬 사막 탐험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대장을 맡게 된 지진희는 처음에는 과도한 의욕을 보이다가 조금씩 드는 불안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고, 차태현과 조세호는 어쩌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됐는가를 후회하고 걱정하는 모습으로 또 배정남은 그 와중에 별 생각없이 자신의 역할로 주어진 먹을거리 담당에 충실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물론 그 웃음은 이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방영될 사막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생고생이 주는 힘겨움과 웃음의 양면은 의외로 희비극을 넘나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쩐지 짠하지만 그래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희비극적 요소는 다름 아닌 우리네 삶을 닮아있는 ‘사막을 걷는 행위’에서 이미 시작된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걷는 행위’는 우리가 도시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흥을 이끌어낼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늘 보던 일몰 하나도 사막을 배경으로 떨어질 때 전혀 다른 감흥이 생겨나는 것. 또 음식 하나를 먹는 일이나,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일, 또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그 일 자체가 문득 그저 눈앞에 닥친 일들에 바삐 살아가던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진중한 질문을 던지게 하지는 않을까. 

유호진 PD가 그 선택의 이유로 말한 것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빈 도화지 같은 공간이 바로 사막이다. 그리고 그 사막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일 수 있다. 어디로 걸을 것이며 그 빈 곳에 무엇을 그려 넣을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거기가 어딘데??>라고 묻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곳을 향해 걷는다. 그것은 생존의 길처럼 여겨지지만, 때론 그 길은 남다른 삶의 의미들을 만나게 되는 ‘실존의 길’이 되기도 하니.(사진:KBS)

'미스티', 보다 멋진 김남주의 끝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역대급 충격엔딩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새드엔딩을 담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마지막 회에 이렇게 많은 반전과 파국으로 그 결말을 낸 드라마가 있었을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그 마무리가 엉뚱하게 끝나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든 걸까.

드라마 내내 케빈 리(고준)를 죽인 진범이 누구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고혜란(김남주)의 남편 강태욱(지진희)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강태욱이 진범이라는 사실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작가가 그리려는 <미스티>라는 드라마의 방향과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한 방향이 엇나가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시청자들은 마치 안개처럼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고혜란이 끝내 버텨내며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는 행복한 결말을 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남편 강태욱이 진범이라는 결론은 어떤 식으로도 고혜란의 해피엔딩을 만들 수 없게 했다. 그건 결국 고혜란이라는 인물로 인해 만들어진 비극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고혜란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에 대한 집착이 강태욱과 하명우(임태경) 두 남자를 모두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게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시청자들은 그래도 고혜란의 삶을 지지하고 싶어 했다. 그를 둘러싼 비극들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고혜란이 성공하기 위해 달려온 잘못된 삶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 아니고, 그저 커리어우먼으로서 일터에서도 또 가정에서도 쉽지 않은 삶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미스티>는 그 충격적인 새드엔딩을 통해 고혜란의 성공을 위한 질주가 결국 이 모든 파국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하명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성취를 위한 선택들을 해온 것이 이런 파국을 만들었다는 것.

마지막 회에서는 케빈 리의 아내 서은주(전혜진)와 고혜란의 남편 강태욱이 일제히 “그래서 행복하니?”라고 묻는다. 고혜란은 행복할 수가 없다. 어쨌든 강태욱은 살인을 저질렀고, 자수하러 가지만 하명우가 먼저 자수를 해버리고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써버리자 안개 낀 도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다. 고혜란으로 인해 세 남자의 인생이 끝을 맺었다. 한 사람은 살해됐고 다른 한 사람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다시 들어갔으며 다른 한 사람은 자살을 선택했다.

면회를 온 서은주에게 하명우는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고혜란이 아니라 서은주로부터였다고 말했다. 고교시절 하명우가 고혜란이 찾아갔다는 금은방 아저씨에게 달려가 살인을 저지른 그 시발점이 서은주가 그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었다는 것. 하지만 하명우는 그것이 서은주 탓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저 각자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 결국 우리의 삶은 안개 속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하명우는 말하고 있었다.

<미스티>가 하려 했던 이야기는 욕망의 질주가 결코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삶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안개 속이라는 것이었다. 그 주제의식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이 원했던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좀 더 주체적인 선택으로 힘겨운 현실과 부딪쳐 자신의 성취와 행복을 찾아가는 한 당찬 여성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런 ‘욕망의 질주’가 결국은 파국을 낳는다는 결말은 자칫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려 노력한다는 것이 모든 걸 파괴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고혜란이라는 진화된 여성 캐릭터가 마지막에 이르러 퇴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째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충격과 반전은 역대급이지만, 그것이 신선한 결말이 아닌 그저 충격으로만 남은 건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고혜란 같은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멋진 여성상을 세워두고 끝내 주저앉힌 듯한 느낌은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사진:JTBC)

‘미스티’, 만일 김남주가 범인이 아니라면 어째서 우리는

과연 강태욱(지진희)이 케빈 리(고준)를 죽인 범인일까.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강태욱이 케빈 리의 차를 뒤쫓아 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교통카메라에 찍혀 날아온 고지서를 우연히 발견한 고혜란(김남주)는 놀라워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강태욱이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 그 눈물은 어쩌면 당일 케빈 리와 고혜란이 함께 있는 장면을 남편 강태욱이 봤으면서도 눈감아주려 했었기 때문에 흘리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진 것을 그가 봤을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정황들은 강태욱이 케빈 리를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건 하명우(임태경)가 강태욱에게 한 말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명우는 강태욱이 고혜란을 사랑하는 건 알겠지만 보호해줄 수 있는 지는 아직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건 하명우가 강태욱에게 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 역시 고혜란과 얽힌 어떤 사건 때문에 살인죄로 감방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마치 하명우와 강태욱은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다.

게다가 강태욱이 드라마 초반 그처럼 고혜란에게 냉담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가 갑자기 이런 극적인 변화를 보인 어떤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건 케빈 리가 나타나면서 생긴 질투로 인해 촉발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됨으로써 고혜란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건 물론 가정이지만, 형사가 의심하고 서은주(전혜진)가 거의 확신하는 범인이 고혜란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즉 고혜란은 커리어우먼으로서 버텨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사력을 다해 고군분투한 것이고, 그래서 다소 술수를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실 보도’라는 자신의 소명을 다한 것뿐일 수 있다. 제 아무리 성공해 어떤 위치에 올라가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시아버지의 끝없는 욕망이 더해져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 안간힘을 쓴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현실의 압박을 깨치고 나오는 통쾌한 인물로 받아들이면서도 어떤 악녀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가 법 정의까지 무너뜨리고 언론을 탄압하는 세력과 맞서 싸울 때 어떤 통쾌함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가 성공하기 위해 남편의 사랑보다 일을 더 우선시 하는 모습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심지어 그가 진범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의심을 하게 되는 걸까. 혹 거기에는 여성들이 가정이 아닌 일을 선택하고, 사회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백안시하는 편견과 선입견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남성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들을 드러내는 것에, 심지어 그것이 부정한 방법으로 시도되었다고 해도 지지해왔던 것과 어쩌면 이렇게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갖게 되었던 걸까. 고혜란이 진범이든 아니든 이 커리어우먼이 보여주는 욕망의 질주를 어딘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그 비뚤어진 시선이 어쩌면 <미스티>가 궁극적으로 꼬집으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니었을까.(사진:JTBC)

‘미스티’ 김남주에게 드리워진 두 얼굴의 의미

도대체 케빈 리(고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고혜란(김남주)이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괴로워하면서도 고혜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나선 남편 강태욱(지진희)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혜란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감방까지 갔다온 하명우(임태경)일까. 그도 아니라면 케빈 리의 외도에 가장 큰 상처를 입었던 그의 아내 서은주(전혜진)일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추측들은 드라마 제목처럼 ‘안개 속’이다. 여기서 특히 궁금해지는 건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에게 하명우의 존재를 설명하며 고교시절 금은방 사장을 살해한 이가 바로 하명우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이 고백은 진실일까. 초반에 슬쩍 나왔던 당시 상황 속에서 하명우가 고혜란에게 “넌 앞만 보고 달려가라”고 했던 말은 마치 고혜란의 살인을 하명우가 뒤집어쓴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고혜란이 강태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결혼까지 한 이유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고혜란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가 강태욱과 결혼한 건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강태욱의 희생이 점점 고혜란의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못내 아프게 느껴지며 사랑을 느끼게 되자 고혜란은 강태욱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자신의 결혼 이유가 깨졌기 때문이다. 

고혜란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걸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만일 고혜란이 과거 살인을 직접 저질렀던 인물이라면, 그래서 자신의 성공가도를 막아서는 케빈 리까지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는 희대의 악녀가 맞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 사랑마저도 이용하는 인물이니.

하지만 드라마는 동시에 고혜란을 공고한 남성권력의 피해자이고, 그들 권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보여준다.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수한 편견과 유리천장을 깨야 했던 그는 이제 국장 자리를 놓고 장규석(이경영)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 국장 자리를 제안하는 방송국 대표와 손을 잡게 된 건 자신에게 날아온 검찰의 기소 때문이었다. 케빈 리 살인죄로 기소된 그는 대표에게 강율 로펌이 자신의 사건을 맡아 무조건 이겨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표와 강율이 고혜란을 과연 도와줄 것인가는 미지수다. 고혜란에 의해 한방을 먹은 그들은 그 권력 네트워크를 이용해 고혜란을 궁지로 몰아넣을 궁리를 하고 있다. 진실보도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갖고 있고 그것을 행동을 옮기는 것이 자신의 일라고 생각하는 고혜란은 그래서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과 대결구도를 갖게 된다. 시청자들이 고혜란이 어쩌면 희대의 악녀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남성 권력과 싸우는 피해자로서 그 심경을 공감하게 되는 건 이런 양면이 이 캐릭터에 투영되어 있어서다.

과연 고혜란은 살인까지 저지른 희대의 악녀일까. 아니면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피해자일까. 그 안개처럼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커리어우먼들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되는 양면적인 심경이 아닐까. 물론 극화된 이야기지만 <미스티>는 사랑도 성공도 쉽지 않은 커리어우먼들의 현실을 에둘러 담아내고 있다.(사진:JTBC)

‘미스티’, 시청자도 빠져드는 김남주의 진심 혹은 거짓

제목처럼 ‘안개가 자욱한’ 상황의 연속이다. 과연 그녀의 진심은 무엇이고 또 거짓은 무엇이며 만일 거짓이라면 왜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차량사고로 죽은 케빈 리(고준)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고혜란(김남주)은 참고인이 피의자처럼 취급되는 여론을 마주하게 된다. 청와대 대변인 제의까지 받고 있던 상황에서 고혜란은 대변인 자리는커녕 그가 하고 있던 ‘뉴스9’ 앵커 자리까지 위협받는다. 

그런데 이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가진 심경이 복잡 미묘하다. 그는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그 이상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가 강태욱(지진희)과 결혼하게 된 것도 그가 가진 집안과 배경이 우선이었다. 결혼까지 이런 이유로 선택할만한 인물이라면 더한 일도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그러니 죽기 전 고혜란을 성추행하고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몰래 찍어 협박했던 케빈 리의 죽음에 그를 의심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는 경찰서에서도 또 남편 앞에서도 결백을 항변한다. 그래서 경찰서 바깥에 운집한 기자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 ‘뉴스9’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은 참고인일 뿐이라며 추측성 기사들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송을 한다. 

그 정도라면 그의 결백이 확실해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방송에서 자신의 결백을 항변하는 고혜란의 모습을 보고는 남편 강태욱은 아내에게 이제 믿기로 했다고 말하고 자신에게 기대라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고혜란의 모습은 진짜 그의 결백과 억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또한 데스크인 장규석(이경영)이 한 뉴스란 ‘팩트에 기반한 쇼’이고 고혜란은 역시 그걸 잘 안다는 말이 걸린다. 방송에서의 멘트는 자못 진지한 것이었지만 그건 과연 진심이었을까.

고혜란이 사망 전 차 안에서 케빈 리와 나누는 대화 역시 그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케빈 리에게 강태욱과 결혼한 건 사랑이 아니라 ‘필요’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대신 케빈 리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드러낸다. 차 안에서 케빈 리와 키스를 나누는 고혜란의 모습은 그래서 또 다시 그에 대한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케빈 리에게 안겨 어딘가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그것 역시 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엇이 진심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고혜란이라는 인물은 ‘미스티’한 느낌 그 자체를 보여준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것 같지만 필요하면 누구에게도 거짓을 말할 것만 같은 성공에 대한 강박을 가진 인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아주 격이 있어 보이지만 자신의 앵커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 기자(진기주)가 케빈 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걸 몰래 사진으로 찍어 몰아내는 술수에도 능한 인물이다. 

<미스티>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미스터리한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온전히 이끌어가는 원 탑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고혜란을 연기하는 김남주라는 배우의 속을 알 수 없으면서도 때론 속물적이고 때론 우아하기까지 하며 때론 걸크러시가 느껴질 정도의 통쾌한 면모까지 보여주는 다채롭고 섬세한 감정 연기가 놀랍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미스티>의 고혜란이라는 인물은 이 작품의 동력이면서도 또한 김남주에게 역대급 연기를 끄집어낸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사진:JTBC)

‘미스티’, 김남주의 독한 연기가 남다른 느낌을 주는 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절박하게 만드는 걸까. JTBC 새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성공한 앵커 고혜란(김남주)이 처한 만만찮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치열하게 싸워 여성 앵커로서 성공한 인물이지만, 점점 나이 들어가고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앵커라면 실력과 경륜이 가장 중요할 수 있지만, 방송사가 고려하는 건 오로지 시청률이다. 그래서 당장 시선을 끄는 젊은 기자 한지원(진기주)을 그를 밀어내고 앵커 자리에 앉히려 한다.

고혜란은 앵커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방송사가 어떻게든 인터뷰를 잡으려 하는 케빈 리(고준) 프로골퍼 섭외를 앵커 자리보전을 위한 조건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케빈 리를 섭외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려는 그 순간에 오랜 병원생활을 해왔던 엄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결국 병원이 아닌 공항을 선택한다. 엄마 또한 늘 그에게 말했었다. 넌 성공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가 간다고 살아날 수 없는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하기보다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 

성공을 위해 달려왔고 그렇게 거머쥔 최고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비정한 고혜란을 남편 강태욱(지진희)은 납득할 수가 없다. 유명한 아내를 위한 마지막 배려로서 자신을 놓아줄 때까지 그냥 묵묵히 각자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그는 그래서 고혜란과는 쇼윈도 부부의 삶을 살아간다. 고혜란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생활에서는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이들과 싸워야 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자신이 기댈 곳은 전혀 없다. 스스로 아이를 지워버릴 정도로 그의 삶은 성공에만 맞춰져 있으니 그런 삶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선택한 삶이 점점 추락해가고 있는 걸 느낄 때, 그의 앞에 과거의 연인이었지만 미래가 없다는 이유로 그가 버렸던 케빈 리가 성공한 프로골퍼로서 나타난다. 그것도 보잘 것 없이 살아왔던 그의 여고시절 단짝 서은주(전혜진)의 남편으로. 독하게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현재 위치를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고혜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서은주의 존재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과거 자신이 버렸던 케빈 리 역시 은근히 자신을 도발하는 상황은 또 어떻고.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케빈 리를 섭외하고 자꾸만 그와 얽혀들게 되지만.

하지만 고혜란은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지원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그가 유혹의 시선을 던지는 케빈 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은 사진으로 한지원을 밀어낸다. 그에게 그 사진을 찍어준 기자 윤송이(김수진)는 그를 “독한 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좋다고. 

이건 마치 여성 앵커 버전의 <하얀거탑>을 보는 것만 같다.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이 병원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갖가지 술수들을 다 동원하는 것처럼, 고혜란도 방송국 앵커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자행한다. 심지어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 또한 저버리는 단계에 이른다. 도대체 그는 왜 이렇게 절박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방송국 앵커 자리는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유리천정이라고 불린다. 남성 앵커는 나이가 들수록 경륜으로 받아들이지만, 여성 앵커는 나이가 들면 교체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이 앵커만큼 여성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게 하는 직종이 있을까. 그러니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한 년”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여성이라는 성차에 대한 편견까지 공공연한 곳이 바로 거기이니 말이다. 

그래서 <미스티>의 고혜란에게는 그 독한 행보들이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되면서도 동조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렇게 독하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강한 공감이 깔려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10년 전 <하얀거탑>이 성공을 위한 질주와 그로 인한 파국을 통해 개발시대의 가장들의 자화상을 장준혁이라는 캐릭터로 담아냈던 것처럼, <미스티>는 지금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는 차별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독하게 버텨낼 수밖에 없는 커리어우먼들의 자화상을 고혜란이라는 캐릭터로 담아내고 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김남주는 그래서 고혜란 역할을 연기하는 모습 속에 여성 연기자로서 갖는 정서적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연기자들 역시 나이 들어갈수록 그 위치를 계속 버텨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현실이다. 젊은 연기자들이 치고 올라오고 방송은 더더욱 시청률에만 집중하는 현실이니. 김남주의 연기가 <미스티>에서 남다른 느낌을 주는 건 이러한 캐릭터와 배우 사이에도 존재하는 공감대가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사진:JTBC)

<대박> 최민수, 어떤 사극에도 없던 숙종을 연기하다

 

SBS <대박>의 시청률 성적은 좋지 않다. 동시간대 지상파 꼴찌는 물론이고, tvN <또 오해영>이 기록한 7.9%(닐슨 코리아)보다도 낮은 7.7%까지 추락했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시청률이 급락한 19회에 숙종(최민수)이 죽음을 맞이했다.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급 숙종을 연기한 최민수의 퇴장은 마지막까지 강렬했다.

 

'대박(사진출처:SBS)'

최민수가 연기한 숙종은 지금껏 어떤 사극에서도 보지 못했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장희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가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그건 대본에 있던 장면은 아니었다. 최민수가 현장에서 숙종의 당시 상황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며 제안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온 장면은 의외로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최민수의 숙종 연기가 역대급이었다는 것은 과거 MBC <동이>에서의 숙종(지진희)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드러난다. <동이>에서 숙종은 왕의 위엄보다는 사랑꾼의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그래서 숙빈 최씨(한효주)와의 신분의 뛰어넘는 알콩달콩한 사랑을 선보였던 인물로 해석됐다. 하지만 <대박>에서 숙종은 모든 걸 꿰뚫어보는 왕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이인좌(전광렬)라는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대박>이라는 드라마의 성격 상 자칫 숙종 역할은 가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인좌의 농간을 내려다보듯 눌러버리는 숙종의 카리스마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는 훨씬 더 팽팽해질 수 있었다.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이 이인좌를 잡기 위해 갖가지 명분들을 생각할 때, 왕의 명이라며 그를 잡아 능지처참하라고 소리치는 숙종의 모습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치 아편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짓는 숙종의 모습은 숙빈 최씨(윤진서)의 죽음으로 인해 점점 몸이 쇠해가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가까스로 숨이 붙어 있는 듯한 숙종의 마지막이지만 최민수는 그 모습에서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연잉군과 대길의 대결을 걱정하며 서로가 살 길을 일러주는 모습에는 제왕으로서의 면모와 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면모가 뒤섞여 있었다.

 

드라마는 숙종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연잉군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 모습으로 피곤해하는 숙종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줬다. 이로써 최민수가 만들어낸 숙종의 이미지는 그 인물이 죽고 난 후에도 강렬하게 여운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대박>은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과도하거나 자의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민수의 숙종만큼은 건졌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만큼 최민수의 존재감이 확실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연기자라면 드라마가 어떻건 자기 몫을 해내야 한다는 걸 최민수는 실제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따뜻한 말 한마디>, 왜 제목을 이렇게 잡은 걸까

 

<따뜻한 말 한마디>라니. 이 드라마 일단 제목이 수상하다. 그래서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뭐 딱히 새롭다기보다는 그저 불륜을 다루는 드라마 정도로 처음에는 다가온다. 실제로 극 중에서 유재학(지진희)과 나은진(한혜진)은 불륜관계이고 그 사실은 물론이고 그 상대방이 나은진이라는 것도 유재학의 아내 송미경(김지수)은 알고 있다. 그녀는 짐짓 모르는 척 넘어가려 하지만 곧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폭발하고 만다.

 

'따뜻한 말 한마디(사진출처:SBS)'

불륜은 어쨌든 가장 강한 소재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를 오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불륜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단박에 드러난다. 그것은 나은진의 남편 김성수(이상우)라는 인물을 통해서다. 그는 과거 불륜을 저질렀었고 그걸로 아내와 갈등을 빚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어딘지 퉁명스러운 인물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경험을 한 후 그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내에게 연애시절의 기분을 새삼 느끼게 하려 안 하던 짓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불륜 사실이 처제에 의해 갑자기 들춰져 장모에게까지 알려지자 그는 처가댁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사죄도 하고 전복을 사갖고 가 기분을 풀어주려고도 노력한다. 퉁명스러웠던 인물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인물로 돌아왔을 때 복잡한 감정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어진다.

 

반면 유재학과 송미경 사이에는 이러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없다. 유재학이 번번이 고마워’, ‘미안해로 넘어갈 때마다 송미경은 사랑해라고 말해 달라 요구한다. 하지만 유재학의 입에서는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유재학의 불륜을 그저 넘기려 하다가도 넘길 수 없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이 따뜻한 말 한마디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따뜻한 대화 없이 엇갈리기만 하던 이 위기의 부부는 서로를 향해 폭발하고 만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이야기나 상황의 극적 전개에 더 많이 관심이 가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극적 상황 속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에 집중하는 흔치 않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집중해서 바라보면 이 드라마는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늘 속내를 숨기고 있는 송미경과, 그녀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듯 차가운 말만 골라 내뱉는 추여사(박정수), 명민한 딸 윤정(이채미)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 늘 기분 좋은 말을 건네는 나은진, 하다못해 은행원으로 일하는 은진의 동생 은영(한그루)이 은행에서 말 한마디 때문에 겪는 작은 에피소드들까지 훨씬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결국 이 흔치 않은 제목의 드라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그 해답은 나은진과 송미경이라는 캐릭터와 그들이 구사하는 말 표현 속에 들어가 있다. 나은진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쿠킹클래스의 언니인 송미경 앞에서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라며 진정어린 눈물을 흘릴 줄 아는(속내를 표현할 줄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송미경은 정반대다. 그녀는 나은진이 남편의 내연녀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겉과 속을 달리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기준으로 보면 극과 극의 캐릭터가 바로 그 점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물론 대사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금껏 그것은 어쩌면 표면적인 기능만을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즉 수사적이고 표현적인 대사의 상찬은 넘쳐났지만 그것이 극에서, 아니 우리네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우리네 삶의 비의를 건드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말 한마디가 가진 삶의 변화라니. 실로 당찬 시도가 아닌가.


'부탁해요 캡틴', 억지와 우연의 남발

'부탁해요 캡틴'(사진출처:SBS)

이런 관계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부탁해요 캡틴'의 김윤성(지진희)과 한다진(구혜선)은 같은 비행기를 타는 기장과 부조종사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는 너무나 우연적이다. 한다진의 아버지가 기장이었을 때 김윤성이 부조종사로 비행기를 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은 이게 다가 아니다. 마침 한다진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가 임신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탄 비행기가 하필이면 한다진의 아버지와 김윤성이 조종하는 비행기였고, 하필이면 그 날 또 처음으로 조종관을 잡은 김윤성이 실수를 저질러 비행기가 몹시 흔들리게 된다. 그런데 또 마침 그 때 한다진의 어머니가 화장실에 있다가 배를 부딪쳐 하혈을 하게 되고 그래서 비행기에서 아이를 낳고는 죽게 된다.

이 정도면 작품에서 '신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신이 이들을 하나의 체스판 말처럼 이리저리 옮겨놓고 엮어놓는 듯한 과도한 설정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 비행기에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마침) 첫 비행을 하는 최지원(유선)이 타고 있었는데 하혈하며 쓰러진 한다진의 어머니의 죽음이, 당황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그녀의 책임처럼 되어 있다. 첫 비행을 하는 스튜어디스에게 이런 중차대한 일의 책임을 묻게 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설정일까. 그런데 또 이 최지원은 당시 김윤성의 애인이었다. 이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헤어지게 되지만. 결국 이 비행기에는 이 드라마의 주요인물들이 모두 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들은 또 세월이 흐른 뒤 모두 같은 항공사에서 만난다. 한 명은 기장으로 한 명은 부조종사로 또 한 명은 스튜어디스로. 제 아무리 드라마가 현실이 아니라고는 해도 이런 관계는 너무나 작위적이다. 이러한 억지와 우연의 남발은 이 드라마 곳곳에서 보여진다. 타워관제사인 강동수(이천희)와 한다진이 처음 만나 서로 부딪치는 장면 역시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설정으로 이뤄져 있다. 비행기의 착륙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환자 때문에 착륙을 서두르는 한다진과 비행장 사정으로 이를 허락하지 않는 강동수의 대립이 지나치게 과장되게 만들어지고, 마침 누군가 커피를 엎질러 관제탑 시스템이 마비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일어난다. 누가 봐도 강동수와 한다진의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억지 설정이다.

이밖에도 김윤성과 윙스에어 부사장인 홍인태(최일화) 그리고 그의 딸인 같은 회사 상무이사 홍미주(클라라)의 관계 역시 너무 우연적이다. 김윤성은 어린 시절 홍인태에게 입양되어 홍미주와 함께 자랐는데, 어느 날 벌어진 화재에서 홍미주를 구해냈지만 그 사건 때문에 홍인태에게 파양 당한다. 그런 중차대한 사건을 겪은 인물들이 다름 아닌 윙스에어란 회사에서 한 자리에 만나 서로 대립관계를 갖게 된 것. 이 정도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신의 장난'인 셈이다.

도대체 왜 이런 억지스러운 우연의 남발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걸까. 당연한 일이지만 어떻게든 관계를 엮어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과잉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심자들이나 할 법한 개연성 없는 상황과 관계 엮기는 결국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조종되는 인형처럼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입양된 아들을 찾아가는 승객을 도와주는 한다진과 김윤성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도 현실성을 찾기가 어렵지만, 그것이 결국 김윤성의 파양의 기억과 연결고리를 맺으려는 의도라는 게 너무나 드러나는 스토리 설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연기력 논란을 겪고 있는 구혜선의 문제는 이러한 억지스러운 스토리에 의해 몰입되지 않는 캐릭터의 문제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항공드라마는 그 소재만 두고 보면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즉 공항, 비행기, 기내, 그리고 해외의 풍광들까지 항공드라마는 스펙터클의 유혹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사고 장면 하나만 제대로 그려내도 항공드라마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볼거리가 제공된다. 하지만 제아무리 스펙터클이 시청자의 눈을 유혹한다고 해도 결국 드라마는 디테일한 사건들과 공감 가는 캐릭터들이 관계를 이뤄가며 만들어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클리쉐에 이력이 난 시청자들이라면 "이게 뭐냐-"고 말할 법한 드라마, '부탁해요 캡틴'. 제발 제대로 된 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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