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사건수첩’, 봉골레 파스타와 봉블리가 사극서 만났을 때

이선균과 안재홍이 아니었다면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가능한 작품이었을까. 사실 이 코믹추리극은 사극의 틀과는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임금 예종(이선균)이 셜록처럼 추리를 하고 자기만의 은신처에서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이 그렇고, 사관 이서(안재홍)가 한번 보면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놀라운 시력으로 그를 수행한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배트맨과 로빈, 혹은 셜록과 와트슨의 코믹 버전 사극판이라고 해야할까. 

사진출처:영화<임금님의 사건수첩>

하지만 이런 부조화를 적절한 긴장감과 웃음으로 유화시켜주는 건 다름 아닌 배우 이선균과 안재홍이다. 이선균은 특유의 그 굵직한 목소리가 갖는 임금님의 위엄(?)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봉골레 파스타!”로 기억되는 코믹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 위엄이 슬쩍 슬쩍 무너질 때 이 예종이란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한다. 

아울러 이선균이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임금님의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해낼 수 있게 된 건 다름 아닌 그걸 받아주는 조금은 억울하고 우직하며 선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사관 이서를 연기하는 안재홍 덕분이다. 안재홍은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역할로 우리에게는 ‘봉블리’라는 캐릭터 이미지를 갖게 된 배우가 아닌가. 그 봉블리의 매력은 이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퓨전을 넘어 장르 사극이 그러하듯이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조선시대에 벌어졌을 수도 있는 사건을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기이한 사건과 그로 인해 번져가는 소문들, 흉흉해지는 민심 같은 것들이 음모론과 결합하여 임금님을 옥죄는 가운데, 이를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예종의 추리가 흥미롭다. 물론 그 과정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건 예종과 이서의 주종관계에서 비롯되는 코미디들이다. 

영화는 초반 여러 사건들과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금 지루함을 보이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중반 이후가 지나고 나면 스펙터클한 사건들과 연발 터지는 코미디가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의외로 이서의 예종에 대한 충직한 모습이 뭉클한 브로맨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악역으로는 정평이 난 김희원과 최근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 김홍파가 가벼울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얹어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조선명탐정>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작품들이 그래왔듯이 사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연휴나 명절 같은 시기에 별다른 부담 없이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 적합한 영화다. 대단한 메시지나 의미를 찾기보다는 가벼운 오락 기획물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지금의 시국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메시지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다지 문제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임금님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작품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이선균과 안재홍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점이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연기라기보다는 이들이 가진 독특한 코미디적인 이미지를 사극의 캐릭터와 잘 맞춘 점이 효과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벌이는 한바탕 모험과 웃음. 꿀 같은 연휴에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힘들 때 내 편인 사람, 공표진표 로코의 핵심

 

사랑보다 더 강력한 게 내 편에 대한 판타지인가. 로맨틱 코미디가 그저 사랑만을 다루던 시대에서 이제 일과 사랑을 동시에 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이렇게 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양상은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고 또 영원히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는 사실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서숙향 작가는 일찍이 <파스타> 같은 작품을 통해 살벌한 일터에서 피어나는 로맨틱한 사랑의 이야기를 달달하면서도 짠 내 나게 그린 바 있다. 거기서도 주목되는 건 그 힘든 일터에서 남모르게 그녀를 챙겨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셰프라는 인물이 제공한 강력한 판타지다. 그저 사적인 남녀의 만남과 사랑의 과정이 아니라, 이제는 일과 얽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만큼 커진 현대인들의 욕망이다.

 

SBS <질투의 화신>은 그 배경을 방송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는 이 방송국의 구박덩이로 살아간다. 나름 프로이고 세세하게 준비해 내보내는 그녀의 일 기상예보는 아무도 주목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이 뉴스인지 아니면 쇼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어떤 일로 치부된다. 그런 그녀의 기상예보를 매일 매일 보는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어패럴업을 하고 있는 재벌3세 고정원(고경표)이 그 사람이다.

 

모두가 주목하지 않을 때 그녀를 주목해 바라봐주고, 그녀가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의 계략에 의해 해고통보를 받을 때도 그걸 알아봐주는 인물. 아무도 챙기지 않는 그녀에게 옷을 챙겨다주고 후배와 누가 방송에 나갈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때 은근히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 방송 후 쓰러져버린 그녀를 안고 병원에 바래다주고 엉망진창이 됐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도 잘 했다며 다독여주는 이가 바로 고정원이다.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표나리에게 완벽한 자기 편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고정원보다 더 가까이서 그녀의 진짜 편이 되어주고 있는 인물은 사실 이화신(조정석)이다. 그는 툴툴대는 성격 때문에 그녀에게 버럭 대기 일쑤지만 그러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의 기상예보 방송을 볼 정도로 그녀의 편에 서 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방송을 강행한 그녀에게 응급차를 보내려고 하지만 그 마음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고정원이 그녀를 향해 직진해온다면, 이화신은 쭈뼛쭈뼛 아닌 듯 다가와 버럭대며 슬쩍 마음을 꺼내놓는 츤데레다.

 

<질투의 화신>에 첫 눈에 반하고 확 불타오르는 그런 사랑은 없다. 또 재벌3세가 가진 현실적인 능력에 휘둘리는 신데렐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로맨틱 코미디에는 그녀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고 편들어주며 외적인 조건, 상황과 상관없이 그녀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고정원이 그렇고, 그 고정원의 배려에 마음이 흔들리는 표나리를 보며 질투하면서 조금씩 그녀의 편에 서게 되는 이화신이 그렇다.

 

<질투의 화신>이 코미디보다도 더 웃기고 때론 그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면서도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의 공감대를 가져가는 건 바로 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거기에는 삶과 일의 문제가 끼어들고 그저 확 타오르는 사랑 그 이상의 현실적 공감과 위안이 들어간다. 시종일관 웃다가 조금씩 그 인물들의 마음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현대인들이 가장 갈급해하는 그 욕망, ‘내 편에 대한 욕망때문이 아닐까.

<질투의 화신>, 공효진표 로코에 호불호 나뉘는 까닭

 

공블리의 마법은 또 통할 것인가. SBS <질투의 화신>은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화 되었다고 해도 좋을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 굳이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라고까지 표현하게 된 건 그 뚜렷한 특징과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즉 평범한 듯 보이지만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좌절된 현실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의지의 여주인공은 의외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토록 예쁘고 귀여울 수 없는 여자 주인공의 면면이 처음에는 웃다가 후에는 빠져버리는 마법을 발휘한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프로듀사>에서 새내기 후배PD인 백승찬(김수현)과 술에 취해 미묘한 관계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던 탁예진이라는 열혈 PD 캐릭터가 그랬고,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굉장히 시크한 면들을 드러내며 정신적인 고통에 빠져 있는 장재열(조인성)을 보듬어주던 지해수라는 정신과 의사가 그랬으며 공블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최고의 사랑>의 구애정의 사랑스러움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파스타>에서 예 쉐프!”를 연발하며 일도 사랑도 쟁취하는 서유경이란 캐릭터는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라는 기상캐스터와 유사한 면면이 보인다.

 

같은 서숙향 작가와 함께 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수 있지만,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가 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라는 위치에서 겪는 설움은 <파스타>에서 서유경이 라스페라라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겪는 어려움과 겹쳐진다. 또한 서유경이 사랑에 빠질 유명한 스타기자지만 성격은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이화신(조정석)이라는 인물에게서 <파스타>의 최현욱 셰프를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화신 역시 표나리의 매력에 빠져들 게 될 것이다.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물이 그러하듯이.

 

이처럼 어떤 면에서는 공식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질투의 화신> 첫 회는 물론 이 표나리라는 인물의 힘겨운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을 과장한 면이 있고, 그녀의 엉뚱발랄함을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남자주인공인 이화신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을 반복해 들이댄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공효진이 갖고 있는 연기자로서의 매력과 그녀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다.

 

<질투의 화신>의 이런 전형적이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로맨틱 코미디는 의외로 강점이 있다. 특히 사랑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세계가 함께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성을 부가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오래도록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를 봐왔던 시청자들이라면 너무 비슷한 패턴 안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 익숙함은 <질투의 화신>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약점도 된다.

 

물론 첫 회에 모든 걸 보여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질투의 화신>에는 의외로 고정원(고경표) 같은 극강의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인물도 존재하니 이야기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고 캐릭터도 그 속에서 다른 면면을 드러낼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공효진만 있는 게 아니다. 조정석이 연기하는 화신이라는 조금은 까칠한 기자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떨까. <질투의 화신>은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의 또 다른 성공으로 남을 수 있을까.

<냉장고를 부탁해>, 특별했던 이선균과 샘킴의 조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샘킴 셰프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막연히 <파스타>의 버럭 셰프를 연기했던 이선균을 떠올린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파스타>에서 이선균이 연기한 최현욱 셰프의 모델이 바로 샘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샘킴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최현욱 셰프의 그 버럭이 아니다. 늘 조용조용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심지어 소심함까지 보이는 샘킴은 순둥이캐릭터로 불린다. 즉 파스타 장인으로서의 샘킴을 모델로 했다는 것이지 그의 성격을 캐릭터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냉장고를 부탁해(사진출처:JTBC)'

그래서 처음 샘킴을 프로그램에서 보는 시청자들은 그에게서 기대했던 <파스타>의 버럭과는 너무나 다른 유한 모습에 반색할 수밖에 없다. 수줍게 웃으며 묵묵히 요리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예능과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예능감 쪽 뺀 요리사로서의 진중하고 섬세한 모습의 진정성은 오히려 시청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허세 최현석 셰프가 단박에 입맛을 확 사로잡는 자극적인 맛의 캐릭터라면 샘킴은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변함없는 맛의 캐릭터다.

 

그러니 샘킴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먼저 만들었던 이선균이 게스트로 나오고 그의 냉장고를 털어 그를 위한 요리를 샘킴이 해주는 그 콜라보레이션은 그 조합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만들 수밖에 없다. 너무나 친하기 때문에 이선균은 마치 <파스타>의 최현욱 셰프가 돌아온 것 같은 버럭 오더를 날리고, 그것을 샘킴이 마치 후배 요리사나 된 듯 예 셰프를 외치며 만드는 상황. 이 상황은 게스트로 나온 이선균은 물론이고 샘킴이라는 캐릭터가 모두 살아나는 장면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물론 셰프들이 마치 기록경기를 하는 듯 냉장고의 평범한 재료들로 현란하게 요리를 내놓는 것이 메인 요리가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출연하는 셰프들끼리, 또 셰프와 게스트, 셰프와 진행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와 케미들이 만들어내는 사이드 디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어찌 보면 비슷한 형식이 매번 반복되면서도 그것이 별로 물리지 않는 맛을 계속 낼 수 있는 건 바로 이선균과 샘킴 같은 관계들의 조합이 의외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어깨 너머로 셰프들의 요리를 봐오며 이제는 셰프 못잖은 요리를 내놓는 김풍과 그가 사부로 모시는 이연복 대가의 관계를 떠올려 보라. 마치 감초 역할을 하는 인물처럼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김풍은 요리에 있어서도 다른 셰프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셰프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걸 상쇄시켜주는 건 이연복 대가 같은 인물과 사제지간 같은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허세 최현석 셰프가 최근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오세득 셰프와 크롱셰프 이찬오의 사이에 앉아서 두 셰프를 서로 비교하며 내놓은 멘트들은 이 세 캐릭터들의 관계와 다른 매력들을 부각시킨다. 감성 돋는 이찬오 셰프와 어딘지 무뚝뚝한 매력의 오세득 셰프. 두 사람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아재개그의 신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셰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의 대결구도나 툭탁거림은 그 자체로 친근함의 표시로 다가온다.

 

어디 요리가 한 가지 재료만으로 맛이 날까. 결국 요리의 맛이란 여러 재료들이 저마다의 맛을 내고 그것이 하나로 섞여 조화를 이룸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요리가 여러 번 만들어져도 식상하지 않고 늘 새로운 맛을 내는 건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출연자들이라는 재료들의 조화와 케미가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샘킴과 이선균의 재미있고 훈훈한 콜라보는 바로 이런 <냉장고를 부탁해>만의 묘미를 잘 보여준 사례다.



게스트로 보이는 <삼시세끼>의 초지일관

 

tvN <삼시세끼>의 가장 큰 특징은 정착형 예능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곳을 계속 찾아가는 여행과는 달리,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변화과정에 집중한다. 늘 새로움을 줘야 하는 일반적인 예능으로서는 그리 유리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워 보이는 풍경이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도시인들의 로망을 건드렸다. 그저 하루 세끼 챙겨먹는 일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인 시간들.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그런 무료함은 어느새 판타지가 되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인지라 <삼시세끼>가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카메라는 옥순봉 세끼집 주변에 자라는 꽃을 벌의 시점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하고, 작물들이 자라나는 장면들을 생명의 신비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경이로운 장면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반복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패턴을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삼시세끼>는 게스트라는 변수를 활용한다. 새로운 손님을 초대함으로써 그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

 

최근 <삼시세끼>의 게스트 활용법을 보면 쿡방 전성시대를 총망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를 배워온 손호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요리 대결을 벌이는 홍석천이 찾아온 데 이어 드라마 <파스타>로 버럭 셰프 캐릭터를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이선균이 다음 게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쿡방의 주역들을 게스트로 출연시키면서도 거기에 <삼시세끼>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명민함이 돋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이 아니라 손호준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냉장고를 부탁해>의 전문 셰프들이 아니라 연예인 요리사인 홍석천을, 그리고 <파스타>의 실제 모델이었던 샘킴이 아니라 그 드라마 주인공인 이선균을 출연시킨다는 건 특별한 선택이다. <삼시세끼>는 전문 셰프들을 출연시키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삼시세끼>가 요리사들의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는 쿡방과는 다른 결을 가진 예능이라는 걸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삼시세끼>는 요리사들의 예능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요리를 해먹는 것이 포인트다. 그러니 백종원보다는 요리 무식자에 가까운 손호준이 낫고, 요리만이 아니라 특유의 흥을 가진 홍석천이 훨씬 낫다. 물론 이선균은 요리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의 버럭 캐릭터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손호준은 <집밥 백선생>에서 배워온 강된장으로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김광규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삼시세끼> 내용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손호준이 김광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그 관계가 훨씬 더 주목되었다. 홍석천이 출연한 방송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선보인 태국식 요리들만큼 흥미를 준 것은 딱딱하게 타버린 빵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제빵왕 서지니의 변명이었다.

 

쿡방이 대세지만 <삼시세끼>는 그렇다고 전문 요리사들을 데려와 화려한 요리 쇼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한 끼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손호준이나 홍석천, 이선균이 모두 요리와는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출연이 화려한 쿡방을 예고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래서 평범하고 보통인 한 끼를 고수한다는 점은 <삼시세끼>가 가진 일관된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일이다



막장드라마들 속 <참 좋은 시절>의 가치

 

착한 여잔 나쁜 남잘 좋아해 왜. 나쁜 남잔 나쁜 여잘 좋아해 왜. 그래서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해. 근데 너는 이런 내 맘을 몰라 왜.’ 최근 발표된 2NE1착한 여자라는 곡이다. 노래가 말해주듯이 요즘 착하다는 것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나쁘다는 것이 쿨하고 세련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한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줄곧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가치로 세워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열광이 더 두드러진다. <학교 2013>에서 이종석만큼 주목을 끈 김우빈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울분 같은 걸 보여준다. 김우빈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상속자들>을 통해서 그 매력을 폭발시켰다. 최근 <사남일녀> 같은 가족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고 있는 김우빈은 오히려 이 나쁜 남자 이미지로 고정되는 자신을 부담으로까지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나쁜 남자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이 진짜 악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나쁘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상처받은 착한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나쁘다는 건 캐릭터의 능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나 <나쁜 남자>의 김남길처럼 재력이든 능력이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쁘게 행동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 즉 나쁘다는 건 성공한 자, 혹은 가진 자의 자신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선의 가치가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착한 드라마들은 독하디 독한 막장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KBS의 새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대해 낯설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거꾸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독한 드라마들에 중독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이전 동시간대 드라마였던 <왕가네 식구들>은 그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 때문에 막장 논란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다. <왕가네 식구들>의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의 이 착함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세컨드와 함께 가족을 이뤄 생활하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서로를 챙겨주기 바쁜 며느리와, 권위라고는 손톱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자애롭다 못해 연민마저 느껴지는 시아버지,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이 집에 맡긴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사는 여인이나, 어찌해 갖게 된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못하고 동생이라 부르며 사는 그 여인의 아들 또한 그 밑바탕에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오로라 공주>처럼 툭하면 작가의 손에 의해 인물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와는 정반대다. <참 좋은 시절>에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이미 <고맙습니다>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경희 작가는 선의 가치를 믿게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마치 세상에 매력적인 착한 남자는 없다는 세태와의 정면대결을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극이고 일일극이고 할 것 없이 막장이 창궐하며 선의 가치보다는 악의 가치를 세련됨의 상징이나 되듯이 보여주는 요즘의 세태에 이 드라마는 어딘지 투박해보여도 정감이 가는 참 좋음의 가치를 새삼 드러내준다. 선하다는 건 진정 한물 간 가치가 아니다. 다만 난무하는 자극이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넝쿨', '뿌리', '최고' 작가의 공통점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이 세 작품을 쓴 작가들의 공통점이 뭘까. 바로 예능작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쓴 박지은 작가는 KBS '사랑과 전쟁', '멋진 친구들', '이색극장- 두 남자이야기' 등 코미디와 시트콤을 쓴 경력이 있다.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는 '사랑의 스튜디오'와 '테마게임'을 거쳤던 예능작가 출신이다. 또 '파스타'를 쓴 서숙향 작가는 '주병진쇼'를 거쳤고,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최고의 사랑' 등 쓰기만 하면 히트를 치는 홍자매 역시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던 작가들이다.

 

 

'최고의 사랑'(사진출처:MBC)

이들은 모두 예능 작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 이외에도 비슷한 점들이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작품에는 연기력 논란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 연기력 논란은커녕 오히려 작품을 거치면서 배우의 가치가 급상승한 경우가 더 많다. 한예슬이 지금껏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홍자매가 쓴 '환상의 커플'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여전히 나상실 캐릭터에 대한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윤제문, 송중기, 한석규, 장혁, 신세경 거의 모두가 미친 존재감이었던 '뿌리 깊은 나무'도 마찬가지고, 현재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주목받는 김남주나 유준상도 마찬가지다.

 

이렇다 보니 이들 작가들과 작업하려는 배우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조금 연기력이 약하다 싶은 배우들조차 그들 작품을 하고 나면 특유의 존재감을 갖게 되니 안 그럴 수가 없을 게다. 이것은 예능 출신 작가들 특유의 캐릭터에 대한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된다. 물론 드라마 작가들 역시 캐릭터에 집중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예능 출신 작가들은 캐릭터 발굴이 하나의 일상처럼 되어 있다. 누구든 카메라에 들어오면 그들의 특징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뽑아내는 것이 그만큼 훈련이 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기존 드라마 제작에서 작가와 배우가 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즉 기성 드라마 작가들은 물론 배우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배우에게 요구하는 면이 더 많다. 작품의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손동작 하나 대사 토씨 하나까지 마음대로 고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김수현 작가와 작업한 배우들의 진술을 통해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것인가를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예능 출신 작가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즉 배우가 캐스팅되면(본래 의도와 달리 다른 배우가 캐스팅되는 경우도 있다) 그 배우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오히려 캐릭터화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분히 예능의 방식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경우 출연자의 캐릭터화는 임의로 만들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본래 출연자에 내재된 개성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여러 모로 예능 출신 작가들의 작품에서 왜 연기력 논란이 적고, 캐릭터가 유독 눈에 띄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가 먼저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것을 배우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과, 배우가 가진 장점이나 개성을 작가가 자신이 만든 캐릭터와 잘 조화되게 하는 방식. 물론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은 이들 예능에서 잔뼈가 굵어 드라마로 넘어온 작가들에게 배우들이 몰리는 분명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가 아닌 타 분야의 연예인들의 연기 분야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어서인지, 최근 들어 드라마계에서 (캐릭터를 잘 살려주는) 예능작가들에게 부쩍 러브콜을 던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작금의 드라마들은 점점 예능적인 코미디와 상황극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진지한 드라마의 대중성은 그만큼 낮은 게 현실이다). 예능작가들은 본인이 하는 일에 비해서 대우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시트콤 하나만 써도 예능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제반 상황들을 고려해본다면 앞으로 예능 출신 작가들의 드라마 작가 진출이 빈번해질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실제로 그 움직임은 지금도 가시화되고 있다.

멜로가 전문직을 끌어안을 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군의 남녀들이 삼각 사각으로 엮이던 전통적인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등장한 것이 전문직 장르드라마다. 그만큼 직업에 대한 디테일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 '멜로는 이젠 별로'라는 인식이 자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파스타'는 그 하나로서 멜로드라마가 거꾸로 전문직의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그 오랜 전통으로 볼 때, 드라마가 가진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극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그 속에 사랑과 이별이 빠질 수는 없다. 즉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추락은 그 본질적인 요소의 추락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무늬만 전문직인 캐릭터들과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돌고 도는 복잡한 삼각 사각관계의 멜로드라마는 그 내적인 장치를 모두 시청자들에게 들킴으로 인해서 식상해져 버렸다.

그 해법은 멜로드라마의 추락과 함께 부상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발견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문직의 세계, 권력과 욕망과 자기 성장이 부딪치는 그 세계 속에서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화제성으로 주목받았던 '하얀거탑'이 20%대의 시청률에 머문 것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멜로드라마와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결합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뉴하트' 같은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와 멜로드라마가 적절히 엮어지면서 시청률에도 성공하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재미적인 요소의 한 부분으로서 멜로를 활용하는 것이지, 멜로드라마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 멜로를 다루면서 전문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일의 세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었다. 커피 전문점이라는 공간과 그 금녀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고은찬이라는 캐릭터는 모두 직업적인 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위에서 이 청춘 멜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파스타'는 그 연장선에서 좀 더 직업적인 전문성이 확장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쉐프를 꿈꾸는 여성 요리사 서유경(공효진)과 새롭게 부임한 마초 쉐프 최현욱(이선균)의 밀고 당기는 멜로를 그리는 이 드라마는, 그 멜로의 틀 속에 직업적인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주방에서의 쉐프의 사랑은 자칫 요리사들에 대한 형평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이 멜로가 갖는 장애요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즉 직업이 사랑의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만 빠져 직업을 등한시하던 과거적인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양상이다.

'파스타'는 막내 요리사와 쉐프의 사랑을 그리면서 또한 여성 쉐프의 꿈을 꾸는 한 여성 직업인의 성장드라마를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멜로드라마는 성공적으로 전문적인 직업의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유경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자기 직업에 대한 사랑은 이 멜로드라마를 팽팽하게 해준다. 사랑 앞에서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은 현대 직업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일과 사랑 사이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이로써 '파스타'를 통해 한 단계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분명하다.

팽팽한 긴장감 놓지 않는 '파스타'의 일과 사랑

'선덕여왕'의 독주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된 월화극 삼파전에 '파스타'는 꼴찌로 시작했다. 장르적으로 보면 그것은 당연해 보였다. 사극 '제중원'이 당연히 시청률 1위를 할 것이고, 사회극의 성격을 가진 '공부의 신'이 그 다음을, 그리고 멜로드라마인 '파스타'가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가 가진 힘에 의한 서열은 '공부의 신'이 앞서나가고 '제중원'이 뒤떨어지면서 무너졌다. 그 와중에 멜로드라마로서 '파스타'는 놀랄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사극 '제중원'을 앞서나갔고, '공부의 신'이 종영하고는 드디어 시청률 20%를 넘기면서 수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멜로드라마는 그다지 시청률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멜로드라마들이 갖는 천편일률적인 삼각 사각 구도의 사랑타령이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멜로드라마가 그 특성으로 취해왔던 '운명적인 거창한 이야기'가 작금의 시청자들에게 그저 감정 과잉의 드라마로 인식되게 된 것은 가장 큰 멜로드라마의 한계로 지적되었다. 따라서 멜로드라마의 이야기구조는 사극 속으로 편입되거나, 가족드라마 속으로 들어가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 속에 끼워 넣어지는 상황에 도달했다. 멜로드라마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 현실(리얼리티)을 확보하는 것으로서 '파스타'가 시도한 것은 일과 사랑을 적절히 엮는 것이었다. 그간의 멜로드라마들이 저마다 멋진 직업을 가져왔지만 직업과는 상관없이 남녀 간의 감정 게임에 몰두해왔다면, '파스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요리사라는 직업 속에서 그 일이 갖는 의미에 천착하면서도, 그것을 또한 사랑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서유경(공효진)이라는 캐릭터가 기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멜로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전문직 장르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성장드라마가 갖는 개인적 성취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멜로드라마를 끼워 넣던 형국에서 거꾸로 멜로드라마가 전문직 장르드라마를 활용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파스타'는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요리사로 성장해가는 서유경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사랑은 새롭게 부임한 까칠한 셰프 최현욱(이선균)과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라스페라의 주방은 이 일과 사랑이 동시에 얽혀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최현욱의 호언장담처럼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말한 그 곳에서 조금씩 그 선을 넘어서는 멜로는 그만큼 달콤해지고, 서열이 엄격한 주방에서 조금씩 인정받아가는 서유경의 일은 그만큼 흐뭇해진다.

결국 '파스타'가 보통의 멜로드라마들이 겪던 침체의 길을 걷지 않고 끝까지 힘을 유지하면서 막판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과 사랑을 엮으면서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면 이미 결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지만, '파스타'는 공개적인 연인 선언을 한 이후에도 라스페라라는 공간 속에서 살얼음을 걷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것은 어쩌면 '커피 프린스 1호점' 이후부터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는 '전문직이 있는 청춘멜로'의 경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외과의사 봉달희' 같은 멜로가 섞인 전문직 장르드라마는, 이제 '파스타' 같은 전문직의 리얼리티를 살려낸 멜로드라마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파스타'의 서유경, 그녀가 사랑받는 이유

'파스타'의 서유경(공효진)이라는 캐릭터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 같은 순정만화 속 신데렐라가 아니다. 물론 쉐프 최현욱(이선균)의 사랑을 받지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삶을 의탁하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그렇다고 서유경이 엣지 있는 '스타일'의 박기자(김혜수) 같은 캐리어 우먼을 대변하는 공격적인 캐릭터도 아니다. 그녀는 이제 막 3년 간의 주방보조에서 벗어나 프라이팬을 쥔 막내 요리사일 뿐이다.

서유경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 신데렐라와 캐리어 우먼 사이에 서 있는 존재다. 이것은 그녀가 주로 보여주는 얼굴 표정에서 드러난다. 그녀는 조금 억울한 듯 막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자주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일, 예를 들면 자신의 라커에 김산(알렉스) 사장이 몰래 붙여놓는 선인장 사진을 발견하거나, 버럭 쉐프의 작은 인정에도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녀는 자기감정에 그만큼 솔직하다. 최현욱에 대한 호감을 그녀는 숨기지 않는다. 쉐프가 기지를 발휘해 전 사장인 설준석(이성민)의 모함으로부터 그녀를 벗어나게 해주었을 때,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최현욱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내가 미쳤나봐"하고 부끄러워한다. 자기감정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솔직하고 밝은 면모는 보는 이를 절로 웃음 짓게 만든다.

일과 사랑을 다루는 청춘 멜로드라마인 '파스타'가 풋풋한 느낌을 주는 것은 서유경이라는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일에 있어서는 당당하고, 사랑에 있어서는 솔직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다고 이 캐릭터가 일에 있어서 프로페셔널이거나, 사랑에 있어서 능수능란한 여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일과 사랑 둘 다 출발선상에 서 있다. 이처럼 어리숙한 그녀가 도대체 남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서유경이라는 청춘이 갖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 때문이다. 그녀는 주방에 들어서면 쉐프의 말에 고개 숙이는 저자세를 보이지만, 그것을 오히려 약으로 받아들인다. 배움과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라 생각하는 것. 그녀는 자신에게 도래할 미래의 성장을 굳게 믿고 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모습은 최현욱이 이태리로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상대방(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모습은 서유경이 얼마나 큰 자존감을 갖고 있는 여성인가를 말해준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한다면, '파스타'의 라스페라는 어쩌면 현실 사회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 사회로 진입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의 모습을, 주방보조 3년을 지내고 나서야(이것은 꼭 인턴 같은 비정규직을 말하는 것만 같다) 비로소 프라이팬을 쥐는 서유경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까. 그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당당하고 밝고 솔직한 그녀를 보면서 어떤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신데렐라 같은 판타지를 거부하고, 그렇다고 세상과 싸우는 여전사의 험난하기만 한 길에서도 벗어난 서유경에게서 행복하고픈 젊은 청춘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91)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80)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087,569
  • 362476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