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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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 뭐 이런 쿨한 오디션이 있나

D.H.Jung 2012. 3.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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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 경연에도 하모니가 들리는 이유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서바이벌일까, 아니면 음악 그 자체일까. 아마도 1년 전만해도 우리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서바이벌'이었을 것이다. 그 경쟁 스토리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지금 '서바이벌'이 갖는 경쟁적인 스토리는 어딘지 구질구질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굳이 덕지덕지 스토리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음악과 무대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지는 어떤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닐까.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는 이렇게 달라진 오디션의 관전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제목 자체가 ‘배틀 라운드’이고, 무대 역시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이름이 불려지면 오르는 사각의 링 같은 서바이벌의 느낌을 풍기지만, 실제 그 위에서 부르는 두 사람(그 중 한 명은 떨어진다)은 절정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첫 링(?)에 오른 장재호와 황예린은 그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의 ‘안부’를 마치 연인 같은 느낌으로 불러주었다. 기둥처럼 굳건하게 중심을 세워주는 장재호의 보이스 위에 화려하게 장식되는 황예린의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듣는 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파워풀한 지세희의 목소리에 브릿팝의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오경석의 목소리가 겹쳐져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듯 불려진 ‘맨발의 청춘’, 너무 뛰어난 목소리들의 화음 때문에 백지영으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만든 유성은과 임진호가 부른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4차원 소녀 우혜미와 파워풀한 보컬의 정소연이 블루스적인 감성을 흠뻑 느끼게 해준 신촌블루스의 ‘아쉬움’은 또 어떻고. 이것은 분명 한 명은 탈락하는 배틀 라운드지만 최고의 무대 그 자체에 더 방점이 찍히는 무대였다.

즉 서바이벌을 통해 누군가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은 그저 결과일 뿐이고, 사실은 과정 즉 무대에서 만들어지는 이 두 사람의 놀라운 어우러짐이 ‘배틀 라운드’의 진짜 얼굴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포인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보이스 코리아’는 질척이지 않고 대단히 쿨한 느낌을 선사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하지만, 무대에서는 배틀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함께 부르는 노래 그 자체에 집중하고 모든 걸 그 화음에 쏟아 붓는다. 그렇기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그 서바이벌 결과의 순간에 잠깐 흐르는 눈물은 기존 오디션이 갖는 신파의 느낌이 아니라 대단히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최선을 다해 무대 위에서는 싸운 선수들이 무대를 내려와 서로를 토닥이는 그런 쿨함.

오디션 프로그램을 서바이벌로 보게 되면 자극으로만 흘러가게 된다. 독설이 난무하고 누가 떨어질 것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묻힐 수밖에 없다. 결국 오디션에서 서바이벌은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도전자들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자극제. 하지만 이제 음악을 듣기 시작한 대중들은 자극제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음악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K팝스타’의 수펄스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다. 모두가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탄생한 수펄스라는 네 명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절정의 하모니는 듣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 순간 우리는 이것이 서바이벌의 무대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음악에 집중했던 것이 아닌가.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가 보여준 그 특유의 쿨함은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징후로 보인다. 음악이다. 서바이벌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