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영웅들

1982년 극장가는 두 명의 할리우드 액션스타들로 들썩거렸다. 그 한 명은 후에 아이콘이 될 모자를 쓰고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머리를 헝겊으로 질끈 동여맨 채, 손에는 달랑 대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바로 ‘레이더스’의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와 ‘람보’의 존 람보(실베스타 스텔론)다. 그들의 무기가 말해주듯이 이들은 말 그대로 몸과 몸이 부딪치는 정통 아날로그 액션 히어로들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 이 아날로그 액션 히어로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인디아나 존스와 람보는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과 ‘라스트 블러드’라는 부제를 각각 달고 다시 극장가에 걸려졌다. 최근 돌아온 아날로그 액션 히어로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이미 ‘다이하드 4.0’으로 건재함을 과시한 존 매클레인(부르스 윌리스) 역시 26년의 세월 동안 절대로 죽지 않는(die hard!) 면모를 보여주었고, 1977년에 탄생한 최고령의 록키 발보아(실베스타 스텔론)는 최근 동명의 영화 속에서 여전히 매운 주먹을 과시했다.

007 시리즈에서 그 주연배우가 계속해서 바뀌었던 걸 생각해보면, 영화와 함께 똑같이 나이를 먹어왔고, 그 나이 그대로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이들은 특별한 존재들이다. 즉 캐릭터와 배우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배우로는 대체가 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또한 배우들에게 있어서도 이 캐릭터들은 배우인생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한 바가 크다. 바로 이 점, 배우와 캐릭터가 시너지를 이루고 있는 지점이 무려 30여년 간이나 같은 배우로 시리즈가 지속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그것이 의미가 없다면 영화는 공염불이다. 혹자들은 이들의 귀환이 이 액션 히어로들의 탄생을 보았던 3,40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일 뿐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은 액션 자체의 향수가 맞을 것이다. 최근 들어 액션은 디지털과 만나면서 ‘테크노’라는 수식어를 갖고 화려한 CG를 앞세워 너무나 깔끔해지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이 이제 고민하는 것은 선명하고 깔끔한 화질이 아니라, 조금 거칠고 흔들리더라도 리얼한 영상이다. 디지털이 거꾸로 아날로그를 꿈꾼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아날로그 액션 히어로들은 자신의 입지를 세운다. ‘다이하드 4.0’에서 디지털 테러에 대항할 수 있는 이들은 컴퓨터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컴퓨터 자체를 부숴 버리는 아날로그 히어로가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것이 존 매클레인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다. ‘록키 발보아’에서 록키는 급변하고 변질되어 가는 세태를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개탄하며 옛 가치로의 복귀를 주창하는 영웅으로서 기능하며, ‘람보4’에서 존 람보는 자신의 아날로그적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미얀마라는 정글을 선택한다.

또한 최근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4’는 시대를 과거로 되돌려 시리즈 본연의 재미요소들을 고스란히 복원해낸다. 이 시리즈의 재미는 냉전시대의 국가 간의 유물 찾기 경쟁에서 비롯되는데, 그 냉전의 당사국이 독일 나치에서 소련으로 바꿔놓음으로서 그 대결구도를 유지한다. 인디아나 존스가 이미 고인이 된 헨리 존스(숀 코넬리)의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세월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인디아나 존스의 액션은 과거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노익장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 캐릭터 자체가 그다지 힘에 의존한다기보다는 지성과 유머감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귀환한 영웅들이 보여주는 옛날 액션은 이른바 작금의 테크노 액션이 보여주지 못하는 진중함과 리얼함을 담보하면서 지금의 세대들까지 열광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마치 어디서든 손쉽게 영상을 접하는 시대에, 과거의 영사필름을 볼 때 느끼는 실감 같은 것이다. 세월의 무게에 조금은 힘겨워 하고 조금은 둔하지만 그래도 이 아날로그 영웅들의 귀환이 반가운 것은, 이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마저 손쉽게 그래픽으로 처리되는 세상에서 오히려 땅에 발을 붙박고 뛰어다니는 진짜 사람이 그리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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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시청률 경쟁, 컨텐츠 질 떨어뜨린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대한 비교 기사들이 여기저기 뉴스로 올라온다. 그 대표주자는 ‘무한도전’과 ‘1박2일’. ‘무한도전’에 대한 기사가 뜨면 마치 반박이라도 하듯이 댓글이 달리기 일쑤인데, 눈여겨볼 점은 그 댓글 중에는 ‘1박2일’을 언급하는 대목들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반증이지만 지나친 경쟁구도를 볼 때 꼭 그래야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무한도전’과 ‘1박2일’, 시청률 비교는 넌센스
‘무한도전’과 ‘1박2일’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저 단순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시청률 비교는 넌센스다.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떻게 소재와 포맷, 그리고 캐릭터 구성이 다르게 연출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비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좋아한다고 ‘1박2일’을 비난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입장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 하루는 ‘무한도전’을 즐기고 다음날에는 ‘1박2일’을 즐기면 안 되는 것일까.

이것은 물론 지나친 시청률 경쟁의 결과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이 경쟁구도를 갖는 것은 ‘무한도전’이 가진 ‘예능의 지존’이라는 별칭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 전체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시청률 비교라는 것은 동시간대에 경쟁하는 비슷한 프로그램들 사이에서만이 의미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9시대에 하는 뉴스 프로그램이나, 10시대에 하는 방송3사의 드라마, 혹은 일일드라마의 시청률 같은 것이 비교대상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끼여든 프로그램(예를 들면 국가대항 축구경기 같은)으로 타방송사가 영향을 받는 것처럼 시청률이란 상대 평가된 수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대도 다른 이러한 프로그램의 단순비교는 현재 방송사간의 치열해진 시청률 경쟁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라인업’의 하차가 말해주는 것
그렇다면 이러한 시청률 경쟁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일까. 일견 경쟁이란 좋은 컨텐츠의 전제조건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실제는 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경쟁구도 속에서 프로그램들은 저마다의 독자성을 가지고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된다 싶은 형식이나 소재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무한도전’의 독주에 도전장을 내밀고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형식으로 등장한 ‘라인업’의 하차는 많은 걸 말해준다.

시청률 경쟁의 측면에서 보면 ‘무한도전’과 정면으로 부딪친 것은 ‘1박2일’이 아니고 ‘라인업’이다. ‘1박2일’은 승승장구하고 ‘라인업’은 하차한 이유는 그 다른 방영시간대와 창조적 재해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즉 ‘1박2일’은 ‘무한도전’과는 방영시간대도 달랐고, 형식에 있어서도 여행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여 창조적으로 재해석해낸 데 반해, ‘라인업’은 그러한 전략들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라인업’의 하차는 지나친 경쟁구도 속에서 차별화 전략을 쓰지 않고 미투 전략을 쓴 결과가 가져온 시행착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프로그램 사이에서 유난히 베끼기 논란이 많은 것도, 바로 이 시청률 경쟁으로 인해 생겨난 비슷비슷한 형식을 구사하는 프로그램들이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다. 즉 비슷한 형식 속에서 그 형식이 요구하는 소재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겹칠 수밖에 없게 된다. 국내의 프로그램이 해외의 프로그램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때론 시청률 경쟁의 압박감에 몰려 실제로 표절을 감행하게 되기도 한다.

‘무한도전’과 ‘1박2일’, 경쟁대상 아니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단지 예능 프로그램만 그런 것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비슷한 소재들이 된다 싶으면 거의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시청률 경쟁이 낳은 또 다른 폐해다. 주말드라마들이 온통 아줌마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한 가족드라마이면서 신데렐라 이야기로 가득하며, 한 때는 고구려 사극으로, 다음에는 퓨전사극으로 몰렸다가, 최근에는 방송을 소재로 한 전문직 드라마에 쏠리는 현상도 단순한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되는 것만 된다’는 식의 시청률 공식이 생겨나고 있다. 예능은 어떤 식으로든 리얼리티쇼를 가미해야만 하며, 드라마는 사극이나 전문직, 혹은 가족드라마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여타의 시도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며, 프로그램들은 소재나 형식면에서 획일화되고, 결국 시청자들은 그만큼 다양한 볼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은 서로 경쟁하는 대상이 아니다. ‘무한도전’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재미와 감동을 주며, ‘1박2일’은 답답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마음이 설레기 마련인 여행이라는 단어에 끌린다.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이 두 프로그램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내길 기대한다. 다행스럽게도 토요일 일요일로 나뉘어 편성되어 있는 이 두 프로그램으로 인해 주말이 내내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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