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없는 세상, ‘파수꾼’의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지점

“니들이 못 잡고 안 잡으니까 내가 대신 잡았잖아!” MBC <파수꾼>이라는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아마도 이 조수지(이시영)가 던지는 한 마디 속에 압축되어 있을 것이다. 검찰이 있고 검사가 있지만 그들은 범인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검장의 아들이 조수지의 아이를 살해한 혐의를 받자 검찰은 그 아들을 무혐의로 만드는 것으로 지검장에 줄을 서려 한다. 결국 아이가 희생되자 조수지는 법 정의가 이 사회에서 무력하다는 걸 실감하고 스스로 총을 든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녀가 살인미수로 현상수배범이 되어 쫓기며 살아가는 것이었고, 그 지검장은 검찰총장이 되어 그녀를 더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파수꾼(사진출처:MBC)'

법이 정의의 편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걸 담은 드라마들은 꽤 많았다. 대부분의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이런 테마들을 담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수상한 파트너>에서도 가진 것 없는 여주인공이 엉뚱하게 살해 용의자가 되었다가 남주인공에 의해 가까스로 풀려나지만 그 후로 이 남녀의 미래는 가시밭길이 되어버린다. 법 정의가 진실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가진 자들을 비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생겨난 현실들이다. 

<파수꾼>은 그래서 아예 법 바깥에서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가상조직을 판타지로 그려낸다. 조수지를 끌어들인 이 조직은 장도한(김영광)을 수장으로 서보미(김슬기)와 공경수(키)가 함께 모여 비뚤어진 법 정의를 바로잡는 일을 음지에서 한다. CCTV를 통한 감시와 해킹을 통한 정보 수집 등을 서보미와 공경수가 한다면, 조수지는 몸으로 부딪쳐 임무를 수행하는 행동대원이다. 

그래서 <파수꾼>의 관전 포인트는 시작부터 보여졌던 이시영의 액션이 그 첫 번째다. 오토바이로 자동차를 추격하며 아슬아슬한 액션을 선보이는 이시영의 걸 크러시는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화제가 되는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가 가진 겉모습일 뿐이다. <파수꾼>이 가진 실제의 힘은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숨겨진 분노와 울분 속에 들어 있다. 

이시영이 연기하는 조수지라는 인물은 딸을 잃는 그 과정을 통해 그 울분을 드러내지만, 시작부터 어딘지 출세에 눈먼 속물 검사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장도한은 더 큰 분노를 숨긴 채 와신상담하는 중이다. 그는 정의를 향해 직진하려 애쓰는 김은중(김태훈) 검사에게 말한다. “너처럼 하면 절대 저들을 못 잡아.”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장도한은 그래서 검찰 조직 속으로 들어온 언더커버나 마찬가지다. 보통 조폭들 속으로 들어간 형사들의 언더커버가 그려지는 것과 달리, 검찰 조직을 상대로 들어온 검사의 언더커버가 의미하는 건 이 법 정의를 구현해야할 집단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다. 

그래서 <파수꾼>은 법 집행을 하는 검찰과 싸우는 은밀한 조직의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사적인 정보들을 캐내고 그것을 통해 협박을 하기도 하는 이 파수꾼들은 그래서 법 바깥에 존재한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범죄행위가 포함된 사투지만 더 큰 악과 싸우다는 점에서 용인된다. 

어찌 보면 단순한 대결구도다. 하지만 이 단순함이 의외로 힘이 세지는 건 지금의 대중들이 느끼는 법에 대한 정서가 이 불씨를 불길로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무수히 쏟아지는 법비들과 싸워나가는 법정드라마들은 돈 없으면 무고해도 죄인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담고 있다. 이들의 액션이 그저 통쾌하기보다는 어딘지 짠하게 다가오는 건 이렇게 해서라도 잠깐이나마 속이라도 풀어보겠다는 정서가 그 안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심’, 진실에 대한 갈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3년 6월 그리고 2015년 7월 이렇게 2회에 걸쳐 이른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뤘다. 그 사건은 이미 2000년에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살인죄로 검거된 15세 소년은 재판에서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구형받았고 결국 10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미 다 지나가버린 사건을 다시 들고 온 건 한 소년의 청춘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그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함이었다. 형사들의 강압수사로 모텔에 끌려가 몇 시간 동안 죽도록 맞고는 어쩔 수 없이 쓴 자술서 한 장이 만든 엄청난 비극. 

사진출처:영화<재심>

영화 <재심>은 바로 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시 끄집어낸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시금 영화로 끄집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는 점은 영화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재심>은 이 실화에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덧붙여 극화함으로써 사건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도 충분히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재심>이 영화를 통해 담고자 하는 건 저 <그것이 알고 싶다>가 처음 이 지나간 사건을 다시금 꺼내온 의도와 같다. 그것은 2000년에도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됐던 2013년, 2015년에도 또 지금 현재 2017년에도 여전히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는 걸 말해준다. 극중 변호사인 이준영(정우)과 피해자인 조현우(강하늘)가 던지는 질문,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그것이다. 

<재심>이라는 제목에 담겨져 있지만 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다시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이미 구형도 끝나고 감옥에서 수감생활도 마쳤지만 애써 그 고통스런 세월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여전히 진실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묻어둔 이들은 그 대가로 얻은 권력을 여전히 쥐고 살아간다. 다시 들여다보려는 이들로부터 그 진실을 다시 숨기려 권력을 이용하면서.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이렇게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가던 이준영과 조현우 모두 그 진실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삶을 찾게 된다는 점이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 일종의 서비스로 의뢰인의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의뢰인이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던 이준영. 그리고 진실을 묻어두고 심지어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한 후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아온 조현우. 그들은 그 묻어준 진실을 다시 꺼내려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구원을 받는다. 웃음이란 걸 잃고 살아가던 그들이 진실 앞에 연대하고 비로소 웃음을 찾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사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재심>을 보다보면 새삼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당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추적하던 담당PD는 강압수사를 했던 담당형사를 찾아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때까지도 버젓이 형사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인터뷰를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정식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대해 PD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경위님께서 정식절차를 말씀하십니까? 최영진(가명)을 정식절차에 의해서 수사하셨습니까?” 아무 답변도 하지 못하는 담당형사가 버럭 화를 내자 PD는 계속해서 묻는다. “모텔에는 왜 데려가셨습니까?” “왜 구타하셨습니까?”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건 이런 의혹들에 대한 계속된 질문이 아닐까. <그것이 알고 싶다>가 던진 질문이 한 억울한 소년의 삶과 잘못된 법 정의를 바꾸어 놓았듯이, <재심>은 그 이야기를 다시금 가져와 지금도 어딘가에 묻혀지는 진실로 인해 고통 받는 현실이 바꿔지기를 꿈꾸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썰전>, 유시민이 썰어 낸 담화문의 실체

 

JTBC <썰전>은 마치 논술시험 풀이 해제를 보는 것만 같았다. 문제는 청와대가 내놓았고 그 해체는 유시민이 했다. 대통령의 3차 담화문의 내용이 워낙 애매모호하고 정교한 정치적 의도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의 표현과 그 이면에 담긴 진짜 내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치 배배 꼬아놓은 문제처럼 내놓은 담화문을 유시민은 명쾌하게 풀어냈다.

 

'썰전(사진출처:JTBC)'

통역을 전체를 하면 앞부분 절반 정도는 딱 요약하면 이거예요. 나는 애국자야. 그리고 나 결백해. 나 먹은 게 없어. 아래 것들이 다 먹었어. 그거 관리 못한 게 내 유일한 잘못이야. 이게 앞부분이고요. 뒷부분은요. 제가 통역을 하면 이렇게 되요. 내가 잘못 없는데 자꾸 시끄럽게 나가라고 그러니까 나 결심했어. 국회에서 합법적인 절차와 일정을 만들어주면 받아들일게. 하야는 없어. 가로열고 너네 합의 못할걸? 괄호 닫고. 맨 뒤에 하나 생략한 거는 내가 이렇게 나올 걸 몰랐지? 메롱.”

 

물론 이건 <썰전>이 취하고 있는 예능의 방식이다. 그래서 다소 표현이 거칠게 되어 있지만, 바로 그런 직설적인 표현들 덕분에 짐짓 교양의 폼을 잡고 있는 담화문의 뒷면에 숨겨져 있는 실체들이 보다 쉽게 풀이된다. 그것은 유시민이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의 형식에 힘입어 대중들의 목소리로 해제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담화문의 골자를 그렇게 간단히 요약한 다음, 이 담화문에 담겨진 박근혜 대통령의 자의식, 법의식, 그리고 정치의식을 들여다본다. “앞부분을 보면 대통령의 자의식이 보이는데요, 이런 대목이에요. ‘정치 시작했을 때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 해왔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거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직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밝힌 거예요. 지독한 나르시시즘이고요. 그리고 확신이에요. 나는 애국자라는 확신이요.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대통령 자신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로 담화문에 담겨진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대목에서 유시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법의식을 들여다본다.

이 얘기는 우리 법은 국가보안법만 제외하고는 모든 형법이 행위를 처벌하는 거에요. 생각과 의도를 처벌하는 게 아니고. 범죄의 의도가 없어도 범죄의 행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거에요.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이 일이 법에 어긋 나냐 안 어긋 나냐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내가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만을 눈여겨보는 거예요.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의식이 없었다고 봐요.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의지, 고의 또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인식이 없었으리라고 봐요. 이 일을 할 때. 그리고 본인은 확신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억울해요. 박근혜 대통령은 무지무지 억울해요 지금. 이거는 되게 무지한 거거든요. 사실은. 법에 대해 인간에 대해서 무지한 거예요.”

 

그리고 이번 담화문의 가장 논란이 큰 정치에 대한 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을 통역한다. “제 대통령직 임기단축. 사임이 아니에요.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 퇴진문제가 아니고 진퇴문제에요. 나아갈 진 물러날 퇴. 이거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서 물러나겠다는 뜻으로 해석을 해요 자꾸 사람들이. 임기단축이란 표현을 쓴 거는 하야할 뜻이 없다는 의미에요. 두 번째로 퇴진이라는 단어를 안 쓰고 진퇴를 쓴 거는 그냥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제가 해석하기에는. 그리고 자기가 물러나는 것이 아니고 정권을 이양하는 거예요. 내가 하야하고 탄핵 당해서 쫓겨나는 게 아니고 내가 정권을 이양하는 거예요.”

 

말과 말의 부딪침은 마치 무사들이 휘두르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교하다. 이번 담화문에 대해서 전원책 변호사는 듣자마자 똑똑한 사람들이 붙었구나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담화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만들어낸 후폭풍은 컸다. 하지만 그것을 조목조목 썰어서 풀이하고 통역해내는 유시민은 그들을 똑똑한 바보들이라고 지칭했다. 그것은 이번 사안이 정치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 여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을 스톱시키는 건 이 카드로 가능하겠지만 국민들을 스톱시킬 수는 없어요.”

 

대통령의 3차 담화문을 풀어낸 유시민의 통역은 <썰전>이라는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소 예능적인 표현으로서의 썰전이지만 그건 아마도 권력자의 말 한 마디는 무기 같은 것이라는 전제가 담긴 의미가 깔려 있다. 그 칼날에 유시민의 통역이 맞서고 있는 듯한 장면들. <썰전>이 그 진가를 발휘 하는 순간이다. 유시민은 이렇게 조각조각 썰어 담화문의 실체를 드러내놓고 국민적 분노의 에너지가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압력솥이에요. 정치적으로 볼 때 압력솥이라서 밑에서 계속 김이 올라와요. 뚜껑을 어딘가에 따야 이게 빠질 거 아니에요? 아니면 폭발하니까. 빠질 수 있는 데가 대통령의 자진 하야. 이것도 하나의 통로고. 또 하나는 국회의 탄핵. 이것도 제도를 통해서 김을 배출시키는 거란 말이에요. 이 에너지를. 근데 이 두 개가 다 안 되고 구멍이 다 막히게 되면. 에너지가 식어버리면 모르겠는데 김이 계속해서 올라오게 되면 그 솥은 어떻게 될 거냐? 이 점이 저는 불안하게 느낍니다.” 

냉정하게 바라본 박유천과 이진욱의 문제

 

배우는 일종의 가면을 쓴 존재다. 대중들은 그것이 진면목이길 기대하지만 사실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판타지 속의 캐릭터를 연기해내는 것이 배우들의 역할이다. 물론 가면을 쓴다고 해서 가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기론에서 가면은 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꺼내놓는 일이다. 그러니 가면에도 배우 자신의 많은 모습 중 하나가 비춰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 좋은 배우이기도 하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사진출처:MBC)'

최근 벌어진 박유천과 이진욱의 스캔들은 배우로서 사생활 노출이 어떤 의미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이 배우들 누구도 자신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폭행이라는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며 파헤쳐지기 시작한 사생활은 그들의 배우로서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법적으로는 두 사람 다 무고를 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노출된 사생활들은 그간 그들이 쌓아놓은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거의 무너뜨렸다.

 

이진욱이 말한 것처럼 무고는 정말 큰 죄.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법적으로 죄가 없는 이진욱이나 박유천에 대한 대중들의 감정은 결코 좋지 않다. 그것은 법적 공방 도중 흘러나온 원나잇이라는 표현이나 화장실같은 단어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상식적인 관계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이고 미혼이니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고루한 일이다. 그리고 이른바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에 대한 완고한 자세를 요구하는 사회가 그리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배우라는 직업과 이런 사생활 노출로 인해 생겨난 이미지들이 부딪칠 때다.

 

배우의 사생활 노출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배우라는 직업에는 그다지 좋을 수가 없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이미지에 선입견을 만들기 때문이다. 배우는 여러 가면을 써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대중들에게는 더 쉽게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서 배우라는 직업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결국 무고임이 드러났고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일이 문제가 되어 이미지에 직격탄을 입은 박유천과 이진욱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적인 입장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것이 사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만일 드러났을 때 그 반향이 배우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미리 조심했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어떤 면에서 보면 사생활 문제가 야기하는 윤리적인 문제보다 대중들이 더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로서 보였던 이미지와의 괴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괴리는 향후 이들의 연기에 대중들이 더 이상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억울해할 일이라기보다는 최소한 미안해야 할 일이다.

 

박유천과 이진욱 모두 남겨진 문제는 명백하다.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적인 문제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죄는 벗어났지만 배우의 가면 뒤에 보이지 말아야할 이미지가 노출되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 현재의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배우 이미지를 쌓아나가야 그나마 연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의 문제는 이미지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무고가 인정됐다고 해서 떳떳하다거나 당당하다는 식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 건 별반 소용이 없다. 이미지(든 실체든)를 부정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강용석과 장동민, 과연 자숙기간은 불필요한 일인가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부적절한 멘트 때문에 대중들의 질타를 받았던 장동민은 그 후 자숙의 기간을 갖지 않고 방송을 강행했다. 많은 논란 연예인들이 논란이 터지고 나서 그 진위와도 상관없이 자숙 기간을 가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여기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장동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자숙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털어놓았다.

 


사진출처:MBN

그는 자숙이라는 것은 방송을 쉬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오히려 그렇게 칩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짐을 안고 계속해서 사죄를 하고 사과를 하면서 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했다. 집안의 가장이고 생업으로 방송을 하는그로서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의 대가로 방송을 쉬어라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한 다른 연예인들이 방송을 그만두고 쉬는 것은 각자의 판단이며 그의 판단으로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잘못한 분들께 사과하고 웃음을 드리는 것이 사죄라고 얘기했다.

 

장동민의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대중들과 논란 연예인들 사이에 존재해오던 이른바 자숙의 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방송을 그저 잠시 접는 것이 자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이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자숙이라는 것도 또 그 자숙기간이라고 하는 것도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안에 따라 또 각자 연예인들의 판단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동민은 일하면서 자숙하겠다는 자신만의 자숙방법을 얘기한 것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는 달리 들릴 수 있다는 오해의 소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별다른 조치 없이 똑같이 일을 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액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자숙으로 인한 징벌적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는 자숙을 자숙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가진 대중들이라면 장동민의 말은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법적인 사안이 아니다. 그저 호불호의 문제일 뿐이다. 장동민은 이렇게 일하면서 자숙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것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 진심이 닿을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로 역효과를 낼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점이다. 장동민의 선택이 있었고, 이제 남은 건 거기에 대한 대중들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자숙이나 자숙기간에 대한 이런 새로운 생각은 최근 강용석이 했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 속에서도 들어가 있다. 그는 그 인터뷰에서 과거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논란으로 “11개월을 그냥 놀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조용히 지낼 필요가 있었나 싶다자숙 기간이 1개월이든 1년이든 10년이든 비난할 사람은 비난한다. 그래서 이번엔 바로 일을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을 섣불리 들을 수 없는 게 강용석의 말이 그리 틀린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숙 기간을 갖고 어떤 인물은 몇 개월만에 쉽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인물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비난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자숙기간이 그만한 징벌적 의미를 갖고 있다면 그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전혀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러니 스스로 결정하는 자숙기간을 굳이 가질 필요가 있겠냐는 게 강용석이 얘기하는 요지다.

 

실제로 최근 들어 자숙기간은 그다지 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경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중들에게 자숙의 의미란 사실상 한 번 엇나가면 영영 보기 불편한 사람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이것은 자숙을 선택하는 연예인들 입장과는 사뭇 상반되는 일이 된다. 연예인들이 자숙을 선택하는 건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숙기간은 불필요한 일일까. 여기에 대한 열쇠도 결국은 이제 대중들이 쥐게 되었다. 자숙기간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남다른 자숙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너무 뻔뻔한 태도가 아니냐는 식으로 또 다른 논란을 만들 수도 있다. 논란과 자숙. 연예계에 불변의 룰처럼 여겨져 왔던 그 공식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는 이들에 의해 파기될 것인가.



민감한 세금문제, 정서적 지지가 관건인 <삼시세끼>에는 큰 부담

 

장근석의 세금신고누락 관련 보도에 관해 소속사에 확인해 본 결과 고의성은 없었다. 이미 과징금을 납부하여 법적인 책임 없이 완료가 된 사안이라는 해명을 들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장근석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시기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장근석 측과 합의해 프로그램 하차를 결정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삼시세끼> 하차를 결정한 tvN측의 이야기 속에는 제작진의 고충이 엿보인다. <삼시세끼> 어촌편은 이미 몇몇 티저 예고들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이미 시작 전부터 대중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터져 나온 장근석의 세금 논란은 이 모든 열광의 불씨를 순식간에 꺼버릴 수 있는 문제로 다가왔다.

 

이미 찍어놓은 분량에서 장근석만을 편집해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삼시세끼>는 무엇보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거기서 발생하는 정서적인 교감이 절대적인 프로그램이다.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프로그램 콘셉트가 아니기 때문에 이 방송 편집의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제작진들 입장에서는 작품을 스스로 망가뜨려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영석 PD는 장근석의 하차를 결정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중들에게는 민감하게 다가오는 세금문제가 정서적인 지지가 관건일 수밖에 없는 <삼시세끼>에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거라는 걸 그 역시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나영석 PD<삼시세끼>는 강원도편이 그랬던 것처럼 정서적 지지가 프로그램의 전제가 되고 그 위에 재미요소들을 얹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이 기반이 되는 정서적 지지가 깨진다면 재미요소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장근석의 세금누락관련 사안은 tvN측이 밝힌 것처럼 법적인 문제를 동반하는 사건은 아니다. ‘이미 과징금을 납부해 법적인 책임 없이 완료가 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정서는 법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물론 장근석의 소속사인 트리제이컴퍼니측은 이 사안이 장근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회사의 회계상 오류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도 납득될 수 있는 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시기상 적합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나영석 PD 특유의 보편타당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대중들의 눈높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연출자다. 그의 프로그램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끊임없이 대중들의 생각과 공감하려는 노력.

 

그러니 장근석의 세금 논란을 대하는 대중적인 정서가 결코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나영석 PD가 첫 방송 하루를 앞두고 하차라는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재편집 때문에 한 주가 늦춰지게 되었고, 또 편집을 하게 되면 그만한 프로그램의 손실을 겪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나영석 PD는 대중들과의 지속적인 공감대를 지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들 입장에서도 지지할만한 선택임은 분명하다.

 

<피노키오>, 진경의 개과천선 왜 <펀치>를 닮았을까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와 월화드라마 <펀치>를 보다보면 그 유사한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피노키오>는 언론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고, <펀치>는 법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다. 물론 소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정치, 언론, 법은 같은 드라마인 것처럼 똑같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피노키오>에서 언론은 대기업 회장과 결탁해 여론조작을 일삼으며, 그 대기업 회장은 그 위에 정치인과 맞닿아 있다. 이 커넥션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양으로 고통 받는다. 기하명(이종석)과 최인하(박신혜)는 이 커넥션을 폭로하고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피노키오>가 그나마 어떤 풍자를 섞어 약간의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면, <펀치>는 쉴 틈 없는 진지함과 무게감으로 법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권력 투쟁만이 남은 현실을 두드려 댄다. <펀치>의 이태준(조재현) 총장이나 윤지숙(최명길) 법무부 장관은 그 과정에서 결탁된 언론들을 움직여 여론을 조작한다. 그들과 맞서 박정환(김래원)과 신하경(김아중)은 그들의 결탁을 밝혀내려 한다. <피노키오>와 다른 얘기 같아도 주인공의 관점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가진 파괴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펀치>의 박정환은 이태준을 검찰총장으로 세운 인물로서 그를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마음을 바꾼 내부고발자다. <피노키오>의 송차옥(진경) 부장은 대기업 회장인 박로사(김해숙)와 결탁한 부패언론인이었지만 딸 최인하로 인해 개과천선해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나선다. 박정환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태준 총장을 감옥에 보내려 하고, 송차옥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박로사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려 한다.

 

작년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도 잘 살펴보면 이 구조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정치-언론-법이라는 커넥션에서 변호사의 입장을 통해 들여다본 <펀치><피노키오>의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김석주(김명민)라는 내부고발자가 등장한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붙어 그들의 죄를 덮는 역할을 해온 인물이지만 드라마 제목처럼 어떤 계기를 만나 개과천선하면서 오히려 이들과 싸워나간다.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더 힘을 발휘하고 오히려 현실적이라 여겨지는 건 선악 구도가 그다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이들이 나쁜 놈들과 싸워 이기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펀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나쁜 놈덜 나쁜 놈이 맞붙는 형국이 훨씬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펀치>의 박정환이 내가 살아왔던 세계의 방식으로 더 나쁜 놈들과 맞서는 장면이나, <피노키오>의 송차옥이 박로사가 취할 일련의 방식들을 모두 꿰면서 거기에 맞는 대처방식을 얘기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통쾌하면서도 현실감을 만든다.

 

드라마 속 내부고발자들이 해결사로 등장하는 이 상황은 씁쓸한 현실을 담아낸다. 시스템 바깥에서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스템 안을 경험한 이들만이 그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현실이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 드라마들의 커넥션 구조가 꽤나 현실감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준 사건이 되었다. 박창진 사무장을 위시한 대한항공 전현직 사원들의 내부고발은 이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끄집어낸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들 덕분이라는 걸 드라마도 현실도 말해주고 있다.

 

<펀치>, 정의와 진실을 빙자한 끝없는 난타전의 현실

 

이것은 난타전이다. 한쪽에서 스트레이트를 날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어퍼컷을 올린다. 주먹이 날아갈 때마다 피가 튀고, 맞은 자는 휘청거리지만 금세 자세를 잡고 회심의 일타를 날린다. 게다가 이 난타전의 주인공은 절박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 내에 상대방을 넘어뜨리지 않으면 자신은 허망하게 링을 내려와야 한다.

 

'펀치(사진출처:SBS)'

드라마 <펀치>는 바로 이 권력의 링 안에서 벌어지는 난타전이다. 제 멋대로 해석되고 활용되고 이용되는 법은 스트레이트이자 어퍼컷이고, 국민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언론은 카운터펀치가 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박정환(김래원)과 그와 함께 하게 된 전처 신하경(김아중)이 한 편이라면 서로의 약점을 쥔 채 동거에 들어간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과 윤지숙(최명길) 법무부장관이 다른 한 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난타전은 처음부터 편이 이렇게 정해져 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박정환과 이태준이 한 편이었고, 신하경과 윤지숙이 다른 한편이었지만 이태준이 박정환을 배신하고, 윤지숙의 숨겨진 본색이 신하경에게 드러나자 판이 바뀌었다. 오션캐피털을 가지려는 이태준 총장과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으려는 윤지숙 장관을 움직이는 동력은 돈과 권력이다. 그들은 번지르르한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런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박정환과 신하경은 목적이 약간 다르다. 신하경이 정의와 진실을 추구한다면 박정환은 오로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박정환이 날리는 펀치는 그래서 절박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이렇게 말하는 박정환에게는 죽음을 앞둔 자의 욕망에 대한 무상함이 담겨 있다. 정의로운 검사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진한 싸움 따위는 하지 않는 박정환이 그나마 이 살벌한 링 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이태준, 윤지숙과 맞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정의를 얘기하지만 드라마의 재미는 저마다의 목적 앞에서 끝없이 변화하고 부딪치는 인간군상의 이야기에 담겨져 있다. 적어도 <펀치>는 정의로운 자가 승리한다는 식의 순진한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들이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일 것이다. 정의 운운하며 발표되는 사안들은 겉치레일 뿐이고 그 내막은 그네들의 끝없는 욕망들이 꿈틀댄다.

 

가끔씩 뉴스로 보여지는 대기업 회장의 병보석 이야기나, 병역 브로커를 두고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의 거래, 인사권을 갖고 벌이는 장관과 총장의 갈등 같은 것들은 우리가 현실에서도 늘 뉴스로 보던 것이지만 그 내막을 드러내는 드라마는 그것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달한다. 아마도 땅콩 회항을 염두에 둔 시퀀스인 듯한 브로커의 해외도피를 막기 위해 비행기를 돌리려 하자 이를 막는 윤지숙 장관의 대사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된 윤지숙 장관은 항공보안법 42조를 얘기하며 회항을 막는다. “항공보안법 제 42조 위계 또는 위력으로 항공기의 정상 운행을 방해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얘기했듯이 어차피 링이란 현실의 또 다른 축소판일 것이다. <펀치>라는 링은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축소해 보여준다. 그러면서 저들의 입에서 툭하면 호명되는 정의와 진실의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를 아프게도 드러내준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박정환처럼 저들의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다 알고 있는 자가 죽음 같은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돌리고, 저 자신마저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 해야 겨우 가능성을 보인다는 걸 <펀치>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그리고 더 나쁜 놈이 있는 현실. <펀치>는 그 난타전의 현실에 날리는 주먹이다.

 

변호사들의 개과천선, 서민들에게는 판타지

 

우리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호사가 서민들을 위해 변호하는 장면은 얼마나 될까. 아니 실제 현실에서는? 서민들이 변호사를 쓴다는 일은 그렇게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사들의 일이란 돈 많은 이들을 의뢰인으로 삼았을 때 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물론 인권변호사 같은 특별한 존재들이 있지만.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변호사의 개과천선이 주는 깊은 감동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영화 <변호인>이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는 세법 변호사로 돈을 버는 지극히 평범한 속물 변호사에서 자신과 인연이 있는 국밥집 아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난다. 서민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변호사가 일종의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지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법에 의해 움직이고 그 법은 돈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닌 억울한 서민들의 편에 서는 변호사는 그래서 서민들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는 최고의 로펌인 차영우펌의 에이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는 오로지 회사에 돈을 주는 재벌 의뢰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변호를 해온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하고 기억상실을 겪게 되면서 그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 테마다.

 

엄청난 법 지식과 노련한 경험을 갖춘 이 변호사 슈퍼히어로는 사고 후 깨어난 병원에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서민들의 일들을 척척 해결해낸다. 옆 병상에 있는 자동차 사고를 겪은 이가 보험회사 직원과 벌이는 실랑이를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몇 마디 던지는 걸로 김석주 변호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카시트는 대물배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보험회사 직원의 말에 대해 그는 만 8세 이하 아이들은 카시트에 태우는 게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에 카시트가 고객 개인의 편의나 취향에 따라 장착된 설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당연히 보험회사에서 대물배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또 병상에서 떨어져 다친 환자에게 병원측이 그건 환자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2차 사고라며 병원비나 간병비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자, 김석주 변호사는 병원 내에서 충분한 보호장치를 하지 않았고, 병원 지배구역 내에서 일어난 일이며, 간호 수칙과 간호 매뉴얼을 100%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병원측이 병원비, 간병비를 보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법 조항과 적용에 대해 잘 모르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 이 김석주 변호사는 뭐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마디 던지는 것만으로 일을 척척 해결해낸다. 이것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그 대단한 실력과 능력을 가진 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서민들을 위해 쓴다는 것.

 

김석주 변호사의 옆자리에 위치해 그와 점점 가까워질 존재로서 이지윤 인턴(박민영)의 역할 또한 작지 않다. 그녀는 김석주 변호사의 변화를 가까이서 목도하는 인물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곱씹게 해주는 역할이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질 멜로는 그 인간적인 변화가 가져오는 달콤함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왜 현실에서는 개과천선한 변호사를 만나기 힘들까. 그것은 그 직업적 선택이 결국은 자본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 정의를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게다. 그래서일 것이다. 더더욱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나 <개과천선>의 김석주 변호사 같은 이들의 변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마치 사회적 부조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거꾸로 정의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처럼.

리쌍 논란, 갑의 횡포? 잘못된 법이 문제다

 

리쌍이 지난해 산 건물에 임차인과의 갈등으로 빚어진 이른바 ‘갑의 횡포’ 논란은 시시비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리쌍의 입장에서 보면 36억의 빚을 내서 산 건물의 임차인이 계약서에 명시되어있는 계약기관과 상관없이 전 주인과 5년을 구두계약 했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임차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 주인이 구두로 보증금이 3억을 넘지 않으니 임대차 보호법에 해당되어 5년을 장사할 수 있다고 구두계약 했다가 후에 슬그머니 임대료를 조정해 보호받지 못하게 된 사정이 억울할 것이다.

 

'리쌍(사진출처:정글엔터테인먼트)'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그 임대료 조정조차 새로운 건물주인 리쌍에게 임대인으로서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했던 일처럼 여겨졌을 수 있다. 물론 리쌍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건물주로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임대사업장에 어떤 사업 계획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그들은 임차인의 사정을 감안해 도의적인 보상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임차인이 이를 거듭 거부하고 리쌍이 연예인이라는 입장을 약점 삼아 버티는 모습은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흔히 건물주와 임차인 사이의 관계를 그저 모두 갑을 관계로 치환해서 마치 갑이 을에게 늘 횡포를 부리는 것으로 바라본다. 물론 일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임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제대로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른바 권리금을 제 멋대로 올리는 임차인 때문에 그 피해가 건물주에게 미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이번 리쌍의 경우는 연예인이라는 공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여론의 약자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즉 이번 리쌍과 임차인 사이에 벌어진 사안을 단순히 갑의 횡포니 을의 억지니 하며 바라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왜 이런 분쟁이 생겨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리쌍이 애초에 전 건물주와 계약할 때 임차인들과의 이런 미묘한 입장들을 사전에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고, 임차인 역시 전 건물주가 보증금 액수를 조정할 때 확실하게 서면 계약서로 5년을 보장받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즉 현재의 법에서는 건물을 사거나 임대차 계약을 할 때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사전에 모두 서면으로 남겨놓아야 분쟁의 소지가 없다는 얘기다.

 

사실 이 문제는 보는 입장에 따라 누가 잘했고 잘못 했는가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누구는 건물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싶지 않겠는가. 또 누구는 임차인으로서 손해보고 가게를 빼주고 싶겠는가. 문제는 이렇게 분쟁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시키는 법 조항이다. 법이란 것이 결국 이런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분쟁에 대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임차인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2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를 제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임대차 보호법’이라는 것이 실로 애매한 기준으로 그 보호대상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울의 경우에 보증금이 3억 원을 초과하지 않는 상가건물 임차인들만을 보호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얘기는 임차인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처럼 “5천에 250만 원짜리 세입자는 보호를 받고, 5천에 251만 원짜리 세입자는 보호 안 되는” 이상한 현실을 보여준다.

 

리쌍이라는 연예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론화된 것이지만, 이런 건물주와 임차인의 문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갑을 관계로 치환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자칫 감정싸움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 있다. 갑의 횡포니 을의 눈물이니 하며 최근 갑을 관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갑을 관계로 환원해 바라보는 것은 자칫 특정 사안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리쌍 논란의 핵심은 갑을의 문제라기보다는 잘못된 법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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